2024년 3월 17일 일요일

왕으로 산다는 것 9편

■ 왕으로 산다는 것 9편

■ 왕으로 산다는 것 9편

주강(晝講) 이후에는 지방관으로 발령받고 떠나는 신료나 지방에서 중앙으로 승진해 오는 관료들을 만난다. 특히 팔도의 관찰사나 중요지역의 수령들은 왕이 친히 만나 업무를 당부하고 그 지역의 민원을 들어준다.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왕은 야간에 대궐을 호위하는 군사들 및 장교들과 숙직관료들의 명단을 확인하고, 야간 업무를 정해준다.

왕은 해지기 전에 다시 저녁공부인 석강(夕講)에 참석해야 한다. 석강이 끝나면 잠시 휴식을 취한다. 저녁 후에도 낮 동안의 업무가 밀려 있으면 야간집무를 본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대비와 왕대비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공식적인 하루 일과가 끝난다.

왕의 업무일정은 이렇듯 매우 빠듯하다. 이외에도 왕이 참석해야 하는 무수한 공식행사나 국가제례가 있다. 왕이 자기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는 쉽지 않다. 조용히 명상에 잠기거나 독서를 하는 시간은 밤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왕이 챙겨야 하는 업무는 만기(萬機)라고 부르듯이 산처럼 많았다. 병나거나 업무에 싫증을 내서 정사를 돌보지 않으면 결재해야 할 문서가 금새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따라서 훌륭한 왕이 되려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를 뒷받침할 업무능력과 육체적 건강이 요구되었다.

한편 왕이 공식적인 업무에서 벗어날 기회도 있었다. 우선 3정승을 비롯하여 정 1품 이상의 관료가 사망하면 3일간 조정의 업무를 정지했다. 정경 이상의 관료가 죽었을 때는 2일간, 판윤을 지낸 사람의 경우 1일간 조정업무를 쉬었다. 세시풍속 상의 명절에도 휴무하였다.

조선시대 왕의 일상생활은 일 년을 주기로 반복되었다. 농사 짓는 일반 농민들의 생활이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도록 정책적으로 배려하고 격려해야 하는 왕의 일 년 일정에는 농부들의 농사력에 맞추어 농업을 장려하는 행사가 꽤 많이 들어 있다. 정월 초하루에 왕은 새해에도 농업에 힘쓸 것을 당부하는 글을 반포하는데, 이를 권농윤음(勸農綸音)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새해 첫날 왕은 망궐례(望闕禮)를 하였다. 이는 왕이 조정의 신료들을 모아 놓고 북쪽에 있는 중국 천자를 향해 새해인사의 절을 올리는 것이다. 망궐례 이후에는 조상신과 공자에게 인사하기 위해 종묘와 성균관에 행차한다. 그리고 새해인사를 하는 종친들과 신료들을 만난다.

봄의 한가운데인 음력 2월이 되면 농부들은 농사준비로 바빠진다. 이 때 왕은 농민들에게 농사의 시범을 보인다는 의미에서 친경례(親耕禮)를 행한다. 친경은 왕이 직접 밭을 가는 의식인데, 선농단(先農壇)에서 왕이 직접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드린 후에 행해진다. 여름철에는 가뭄과 홍수를 구제하기 위해 국가에서 수많은 제사를 지냈다.

특히 하지가 지나고도 비가 오지 않으면 큰 가뭄으로 간주하여 대대적으로 기우제를 지냈고, 반대로 홍수가 나면 기청제(祈晴祭)를 지낸다. 가을이 되면, 왕도 봄에 친경하고 심은 농산물을 직접 수확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이를 친예제(親刈祭)라고 한다. 또 죽음이 내리는 가을에 맞추어 집행을 미루던 사형수들에게 형집행을 명령한다.

겨울은 농민들이 바쁜 농사일을 쉬는 때이고 모든 생명이 다시 소생할 때를 기다리는 준비의 계절이다. 이때 왕은 도로를 수리하고 성벽을 증축하는 등의 토목공사를 하게 한다. 겨울에 내려야 할 눈이 내리지 않으면 기설제(祈雪祭)를 지낸다.

- 10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