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6일 화요일

새 왕조의 시작

■ 새 왕조의 시작

■ 새 왕조의 시작

이성계는 새 왕조의 체제를 정비하면서 동시에 향후 화근이 될 가능성이 있는 왕씨 성을 가진 왕족의 씨를 말리겠다는 듯이 왕씨들을 집단적으로 죽이고, 고려의 진짜 마지막 왕인 공양왕도 교살했다. 야사에는 이 때 왕씨들이 전(全)씨나 옥(玉)씨 등으로 성을 바꾸어 자손을 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성계는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신하들의 거듭된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을 저지른 것처럼 실록에 나와 있지만, 실제로 위화도 회군을 강행하고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무릅쓰고 개국 4년 만에 한양천도를 단행할 정도의 강단이 있는 인물인 점을 고려하면, 실록의 이성계에 대한 기술은 이성계에 대한 미화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태조는 즉위 초에는 국호를 그대로 ‘고려(高麗)’라 칭하고 법제도 모두 고려의 고사(故事)를 따를 것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차츰 새 왕조의 기틀이 잡히자 고려의 체제에서 벗어나려 했다. 명나라에 대해 사대정책을 쓰면서, 명나라의 양해 아래 새 왕조의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확정하고, 1393년(태조 2)부터 새 국호를 썼다.

다음에는 새 수도의 건설이 필요했다. 1393년 9월에 착공해 1396년 9월까지 태묘·사직·궁전 등과 숙정문(肅靖門: 北門)·흥인지문(興仁之門: 東大門)·숭례문(崇禮門:南大門)·돈의문(敦義門:西大門)의 4대문, 광희문(光熙門)·소덕문(昭德門)·창의문(彰義門)·홍화문(弘化門)의 4소문(小門) 등을 지어 왕성의 규모를 갖추었다. 숭유척불정책(崇儒斥佛政策)을 시행해 서울에 성균관, 지방에는 향교를 세워 유학의 진흥을 꾀하는 동시에 불교를 배척하는 정책을 폈다. 이처럼 그는 새 왕조의 기반과 기본정책을 마련했다.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나라의 재정, 병권, 세자교육까지 몽땅 맡기고, 정도전을 비방하는 신하를 귀양까지 보내는 등 정도전의 동조자이면서 적극적 후원자였다. 정도전은 나라 운영에 무한의 능력을 보이면서도 이성계에게 진심어린 충성을 다했다. 무엇보다도 사심, 즉 부정축재를 한 것이 없는 등 이성계에 있어 그는 능력 있고 충직하고 믿음직한 신하 그 자체였다. 정도전은 이성계의 신임을 바탕으로 조선의 기틀을 빠르게 잡아 갔으나, 이로 인해 반대세력의 미움을 사게 되는 것도 필연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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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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