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여만리장성壞汝萬里長城 - 너의 만리장성을 허물려고 하느냐, 어리석게 보호막을 없애다.
괴여만리장성(壞汝萬里長城) - 너의 만리장성을 허물려고 하느냐, 어리석게 보호막을 없애다.
무너질 괴(土/16) 너 여(氵/3) 일만 만(艹/9) 마을 리(里/0) 긴 장(長/0) 재 성(土/7)
萬里長城(만리장성)이라 하면 중국의 상징처럼 먼저 떠올려지는 기나긴 성이다. 실제 길이는 2700㎞에, 지형의 높낮이를 반영한 길이로도 6352㎞라 하니 만리엔 턱없이 모자란다. 하지만 달에서도 보인다는 인류최대의 토목공사임은 모두 인정하여 일찍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일상에서도 여러 곳에 비유로 사용되는데 서로 넘나들지 못하는 장벽이나 창창한 앞날을 가리킨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성을 쌓는다’는 우리 속담은 남녀의 은밀한 만남이나 잠간 사귀더라도 깊은 정을 맺을 수 있음을 말했다. 一夜萬里城(일야만리성)이나 一夜之宿 長城或築(일야지숙 장성혹축)으로 한역된다.
‘너의 만리장성을 허물려고 하느냐(壞汝萬里長城)’란 뜻의 이 성어는 순간적 욕심에 든든한 방패막이를 제거하는 어리석은 짓을 나타낸다. 自毁長城(자훼장성)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의 원주인은 宋(송)나라의 장군 檀道濟(단도제, ?~436)다. 혼란스런 南北朝(남북조, 420~589) 시대의 송나라는 北魏(북위)가 호시탐탐 노렸으나 백전노장 단도제가 굳건히 지키고 있어 침략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명성엔 시기하는 무리가 따르는 법이라 간신들이 단도제를 제거하고 권력을 마음대로 좌우하기 위한 음모를 꾸몄다. 唐(당)의 李延壽(이연수)가 쓴 ‘南史(남사)’의 내용이다.
단도제를 총애하던 3대 文帝(문제)가 병석에 누운 틈을 타 왕족 劉義康(유의강), 劉湛(유담) 등이 어명이란 구실로 그를 수도 建康(건강)으로 불러들여 투옥했다. 뒤늦게 속은 것을 안 단도제는 불같이 화를 냈는데 눈빛이 횃불이 타는 것처럼 이글거렸다.
目光如炬(목광여거, 炬는 횃불 거)란 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그리고 두건을 벗어 땅에 내팽개치고선 너희들이 스스로 만리장성을 허물려고 하는 짓인가 하며 고함을 질렀다(乃脫幘投地 曰 乃壞汝萬里長城/ 내탈책투지 왈 내괴여만리장성).‘ 幘은 머리쓰개 책. 단도제가 분사하고 가족까지 몰살당하자 기다렸다는 듯 북위가 밀고 내려왔다. 권신들이 안전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위험을 자초한 것이다.
편안하게 안전한 생활을 누리는 사람들은 누군가 그것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나라든 알게 모르게 안전을 위해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가 잘 났다는 어리석은 사람은 누가 진정으로 자신을 생각해 주는지 알지 못한다. 위험이 눈앞에 닥쳐야 그것을 막아준 만리장성이 누구였는지 알게 되지만 때는 늦었을 경우가 많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