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9일 토요일

◇ 이병철의 ‘최대 업적’은 이건희 발탁

◇ 이병철의 ‘최대 업적’은 이건희 발탁

◇ 이병철의 ‘최대 업적’은 이건희 발탁

삼성그룹을 취재한 동료 기자가 ‘이건희 회장의 도쿄 까마귀’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이 회장이 도쿄를 방문했을 때 ‘도쿄 사는 까마귀가 모두 몇 마리인가’라고 느닷없이 질문해 수행 임원이 진땀을 흘렸다는 일화였다. ‘그것도 기사냐’는 비난도 있었고 ‘이 회장은 특이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 회장은 정말 ‘다른 사람’이었다.

지난 25일 타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출근하는 게 뉴스가 될 정도로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한 ‘은둔의 경영자’였다. 사물이든 현상이든 취미든 일단 관심 가지면 뿌리를 뽑을 정도로 파고들었다. 본인은 엄청나게 고민한 주제인데 어눌한 어조로 툭툭 질문하니 다른 사람 듣기엔 선문답 같았다. 금융 계열사 사장단을 모아 놓고 회사 매출을 챙기는 게 아니고 “신용카드업의 개념이 무엇이냐”고 묻는 식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이건희 회장을 ‘사상가(big thinker)’라고 표현했다.

삼성의 반도체 진출은 1983년 이병철 회장이 선언했지만, 씨앗은 한참 전인 1974년 30대 이건희 회장이 뿌렸다. 당시 사재를 털어 도산한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반도체에 대해 이 회장은 “양심 산업이자, 타이밍 사업”이라고 ‘업(業)의 개념’을 남다르게 정의했다. 박사부터 기능직까지 종업원 수천명이 300여 공정에서 단 한 번 실수 없이 합심해서 일해야 하는 ‘양심 산업’이고, 남보다 조기에 양산해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타이밍 사업’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 회장이 파악한 반도체 ‘업의 본질’이었다. 그래서 미국⋅일본 경쟁 기업들이 불황에 머뭇거릴 때 주저 없이 투자했다.

이 회장의 ‘뒷다리론’도 유명하다. “뛸 사람은 뛰어라. 말리지 않는다. 걷기 싫으면 놀아라. 안 내쫓는다. 그러나 남의 발목은 잡지 말고 가만있어라.” 세계 초일류를 꿈꾸고 일궜지만 그런 이건희 회장도 실패한 분야가 자동차 산업이다. 적자를 거듭하다 손을 떼야 했다. 당시엔 ‘문어발’ 경영이라 비난받았지만 만약 이 회장이 끝까지 자동차에 매진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일론 머스크와 경쟁하지 않았을까.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창업 1세대다. 이병철은 장남 상속의 관행을 깨고 막내아들 이건희를 후계자로 선택했다. 파격이었다. 이건희에게서 ‘무언가’를 보았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글로벌 초일류’라는 새 지평을 열었다. 이 역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다. 이건희를 선택한 것이야말로 이병철의 ‘최대 업적’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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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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