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4일 일요일

공민왕의 기록

■공민왕의 기록

■공민왕의 기록

공민왕은 재임 초 · 중반에는 우리나라 역사상 보기 드문 개혁군주라고 평가되기에 충분한 개혁을 이루어 냈다. 그러나 신돈을 죽이고 난 후 그 재임 말년의 기록은 괴이하기 짝이 없다. 조선 건국 후에 쓰여진 고려사와 동국통감 등 역사서에는 공민왕이 재임 초 · 중반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행동들, 미치광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 행위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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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이 신돈을 제거한 후 술에 찌들어 살거나, 젊고 예쁜 시녀들을 자기 방안으로 불러들여 용모 단정한 귀족자제들로 만들어진 자제위소속 김흥경, 홍륜 등과 음행을 하게 만들고, 자신은 방문 틈으로 지켜보는 변태적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또 공민왕은 마음이 통하면 홍륜 등을 자기 침실로 불러들여 동성애를 했다. 그리고 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의 후계자를 만들기 위하여 홍륜 등을 시켜 왕비를 강간하게 하고, 그들 사이에 자식이 생기면 자신의 아이로 삼으려 했다. 1374년 9월 공민왕은 내시 최만생으로부터 자신의 익비가 홍륜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공민왕은 익비의 자식을 자기 자식으로 만들고자 최만생에게 왕비와 같이 잔 홍륜과 그의 무리를 죽이라 명했다. 하지만 최만생은 공민왕이 홍륜 등을 죽인 후에 자신도 죽일 것이라고 직감하고 홍륜 무리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고, 그들과 공모하여 공민왕을 먼저 죽일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날 밤 만취한 상태로 잠들어 있던 공민왕을 죽이고 말았다. 공민왕은 즉위 23년만인 45세에 허무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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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은 고려사에 나온 공민왕 말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고려사는 공민왕 사후 20년이 지나,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 등에 의해 전왕조사(前王朝史)를 정리하려는 『고려국사』 편찬으로부터 시작해 세종 때 여러 번 간행을 반복하다 57년 만인 문종 1년에 『고려사』로 마무리되었다. 고려사 완성 당시 60년 정도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면 그 당시 상황을 잘 알 수 있는 생존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기처럼 쓰인 조선왕조실록과는 달리, 고려사는 조선 건국세력들이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쓰인 역사서인 만큼, 공민왕과 고려 말의 상황에 대해 상당한 왜곡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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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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