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난정鄭蘭貞 4편
■ 정난정(鄭蘭貞) 4편
1565년(명종 20년) 4월 6일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사림파는 기다렸다는 듯 척신세력의 상징인 보우와 윤원형을 탄핵했다. 명종이 경연에서 한나라 문제가 외삼촌 박소를 죽인 사례를 언급하자, 그 신호에 맞춰 8월 3일 대사헌 이탁과 대사간 박순이 윤원형의 죄악을 26조목으로 적시하며 처벌을 종용했던 것이다.
그 중에 첫째는 관비의 소생인 정난정을 부인으로 삼았고, 그녀의 딸을 덕흥군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려 한 죄였다. 천출의 자식을 감히 왕가에 들여보내려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실부인 김씨의 재산을 빼앗아 굶어죽게 했고, 도망노비들을 비호했다는 죄목도 포함되었다. 혐의의 대부분이 정난정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사림의 시각에서는 윤원형보다 보우대사와 함께 불교 부흥에 앞장섰던 그녀가 더 미웠던 것이다.
그해 8월 21일 윤원형은 파직되어 황해도의 강음 땅으로 방귀전리(放歸田里)되었다. 방귀전리(放歸田里)란 유배형보다 한 등급 가벼운 조치로 벼슬을 삭탈하고 고향으로 내쫓는 형벌이었다. 그러자 정난정도 그와 동행했다. 그들은 명종이 자신들을 절대 외면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천출에 대한 양반들의 집요한 공세를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1565년(명종 20년) 8월 27일, 사헌부와 사간원에서는 이구동성으로 명종에게 정난정의 부인첩을 회수하여 정처와 첩실의 명분을 바로세우라고 상주했다.
그렇다고 명종은 외삼촌을 기다렸다는 듯이 내칠 수는 없었다. 임금과 신료들의 형식적인 상소와 거절이 한 달 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결국 명종이 못이기는 척 그들의 청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정난정은 졸지에 첩실로 강등되었다. 한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해 9월 8일 윤원형의 전부인 김씨의 계모 강씨가 정난정을 김씨 독살 혐의로 고소했던 것이다.
“사위 윤원형은 젊었을 때 딸 김씨와 결혼하여 여러 해를 함께 살았는데, 정윤겸의 서녀 정난정을 얻은 이후 임금을 속여 내쫓았습니다. 게다가 김씨의 종들로 하여금 원주인을 능멸하고 모욕하게 했고, 가산을 모두 빼앗고 마침내 종적을 없애 버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김씨가 매우 굶주려서 정난정에게 먹을 것을 구하자, 정난정이 음식 속에 독약을 집어넣고 가져다주었는데 김씨가 먹고 즉시 죽었습니다. 온 집안이 모두 그 원통함을 알고 있었으나 대단한 위세를 두려워하여 감히 소장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소장을 접수한 형조에서는 강상(綱常:삼강오륜)에 관계되는 일이라서 자신들이 처리할 수 없다며 역모 등 체제사건을 다루는 의금부로 이첩했다.
- 5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