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난정鄭蘭貞 5편
■ 정난정(鄭蘭貞) 5편
의금부에서는 구슬이를 비롯한 10여 명의 여종들에게 자백을 강요했다. 그들이 거부하자 잔혹한 고문이 이어졌다. 결국 장독을 이기지 못한 여인들이 모두 죽고 한 사람만 살아남았다. 짜 맞추기 수사와 고문에 의한 자백이 증거로 인정되던 시절의 공식적인 악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된 결과가 나오지 않자, 그해 10월 14일 좌부승지 홍인경은 명종에게 정난정을 잡아 가두고 추국하기를 청했다
의금부는 사건의 진상 파악보다는 정난정 한 사람에 대한 공격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명종은 어머니 문정왕후의 국상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삼촌과 외숙모를 죽이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으므로 차일피일 시간을 끌었다. 막다른 상황을 감지한 정난정은 냉정하게 최후를 대비했다. 그녀는 국청에 마소처럼 끌려가 뭇 양반들의 망신과 조롱 속에 목숨을 잃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정경부인이 되었어도 천비는 끝내 천비인가 보다. 그래도 나는 정경부인으로 죽으련다.”
1565년(명종 20년) 11월 3일 마침 금부도사가 죄를 지은 평안도 장수를 체포해 오던 도중 금교역에서 말을 바꾸어 탔다. 그 장면을 오해한 노비가 정난정에게 금부도사가 오고 있다고 알렸다. 그러자 정난정은 갖고 있던 비상으로 미련 없이 목숨을 끊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에 넋을 잃은 윤원형도 그로부터 5일 후 같은 방법으로 자살했다. 윤원형 부부의 동반자살 소식을 들은 신료들은 쾌재를 부르며 정난정을 천민으로 환원시켰지만 아들 윤효와 윤충원은 해당되지 않았다. 그들은 부모가 죄안에 오르기 전에 죽었으므로 공식적으로 죄인의 자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양반들은 사서(私書)에서 정난정을 남편 윤원형을 사주하여 국정을 파탄 내고 강상을 어지럽힌 요녀로 묘사했다.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정난정의 동복 둘째 오빠는 담(淡)인데, 그는 언젠가는 정난정이 반드시 화근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일체 그녀와 왕래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가 찾아올까봐 집 입구의 담을 꼬불꼬불하게 쌓아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통로를 만들었다. 정난정은 늘 가마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가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 때문에 정난정은 그의 집에 가볼 수가 없었고, 덕분에 윤원형과 정난정이 몰락한 뒤에도 화를 입지 않았다. 정난정에 대한 기록은 이처럼 정사나 야사 모두 정난정을 조선의 질서를 어지럽힌 타락한 여성으로 묘사하였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