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 나들이
■ 우리말 나들이
1. 진이 빠지다
식물 줄기나 나무껍질 등에서 분비되는 끈끈한 물질을 ‘진(津)’이라고 한다. 나무의 진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생활에 널리 쓰였다. 소나무에서 얻은 송진(松津)은 예로부터 피부병을 고치는 약으로 쓰거나 방수가 되는 성질을 이용해서 나무배의 갈라진 부분에 발라 물이 새는 것을 막기도 했다. 가구에 옻칠을 할 때 쓰는 것은 옻나무에서 뽑은 진이고, 고무는 고무나무 진으로 만든다. 그런데 진을 계속 뽑아내면 나무는 기운 없이 시들시들하다가 심하면 말라죽게 된다. 사람 역시 계속 일만 한다면 기력이 다 빠지고, 만성피로로 진이 빠진 나무처럼 시들시들해질 것이다. 그래서 거의 죽을 정도로 기력이나 힘이 없는 것을 ‘진이 빠졌다’고 한다.
‘진이 빠지다’와 같은 뜻으로 ‘녹초가 되다’, ‘파김치가 되다’는 말이 있다. ‘녹초’는 녹은 초를 말한다. 초가 녹아내려 흐물흐물 형체가 없어진 것처럼 사지에 힘이 다 빠지고 맥이 다 풀렸다는 의미이다. ‘파김치’는 파에 갖은 양념을 해서 버무린 김치이다. 줄기가 빳빳하게 살아있는 생파와 비교해 보면, 파김치는 숨이 죽어 부들부들해 진다. 기운이 다 꺾이고 지친 사람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2. 찧고 까불다
옛날에는 기계가 없었기 때문에 농사일을 할 때 봄철 모내기부터 가을걷이까지 모든 과정을 일일이 손으로 했다. 가을에 벼를 베고 나면 벼이삭에서 낟알을 털어 내고, 이 낟알을 절구나 방아에 찧어서 껍질을 벗겨 내야 비로소 쌀이 된다. 낟알에 섞여 있는 잡티나 절구질이 끝난 쌀에 뒤섞여 있는 잡티들을 골라내기 위해 키질도 해야 한다. 키에 곡식을 올려놓고 위아래로 흔들면 가벼운 잡티가 날아가는데, 이것을 ‘까불다’라고 한다. 아이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 장난치며 노는 것을 ‘까불다’ 또는 ‘찧고 까불다’라고 하는데, 바로 이 절구질과 키질에서 비롯된 말이다.
말이나 행동이 침착하지 못하고 경망스러울 때 ‘오두방정을 떤다’고 한다. ‘방정’은 찬찬하지 못하고 몹시 경망스럽게 군다는 뜻의 우리말이다. 말이나 행동이 바르고 점잖다는 뜻으로 쓰는 ‘방정(方正)’과는 발음이 같지만 정반대의 뜻이 된다. ‘품행이 방정(方正)하여 이 상을 수여함’에서는 모범적인 행동을 한 사람을 뜻하지만 ‘방정맞은 사람’은 전혀 뜻이 다르다. 가볍게 행동하고 까부는 것을 ‘촐랑거린다’라고도 하는데, 이는 물이 잔물결을 이루며 흔들리는 모양에서 온 말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