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4일 일요일

마경장磨鏡匠

■ 마경장磨鏡匠

■ 마경장(磨鏡匠)

《연산군일기》 1504년(연산군10년) 1월 14일 기록에 의하면, 『마경장(磨鏡匠) 15명을 대령하라 했는데, 하지 않았다. 공조와 상의원 해당 관원을 국문하라.』는 내용이 있다. 마경장이 뭐하는 사람이기에 연산군은 15명이나 필요했을까?

조선 후기까지 거울은 우리가 지금 흔히 보는 유리 거울이 아닌, 청동이나 백동으로 만든 금속 거울이었다. 금속 거울은 쉽게 녹이 슬어 거울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녹을 벗기고 갈고 닦아 맑고 선명한 빛을 다시 살리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이를 담당했던 사람이 거울 가는 전문가 ‘마경장’이다. 낡고 녹슨 거울도 마경장의 손을 거치면 새것처럼 거듭났다.

마경장이 거울을 닦는 데 썼던 도구는 강려석, 중려석, 연일려석과 법유이다. 강려석은 거친 숫돌, 중려석은 중간 거칠기 숫돌, 연일려석은 포항 연일 특산의 고운 숫돌을 말한다. 법유는 들기름이다. 도구가 단출한 편이라 공정도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무조건 열심히 간다고 잘하는 게 아니다. 숫돌 세 종류를 고루 잘 써야 한다. 또 청동이나 백동 등 거울 재질에 맞춰 연마 강도도 잘 조절해야 한다. 여기에 들기름을 적당량 발라야 광택도 얻고 녹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작업 과정에 숙련도와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문성의 필요에 의해서 거울을 만드는 ‘경장(鏡匠)’에서 또 하나의 전문적 직업인 ‘마경장(磨鏡匠)’이 생기게 되었다. 연산군은 왜 많은 ‘마경장’이 필요했을까? ‘흥청망청’이라 불리울 정도로 많은 기녀들을 궁 안에 두었기 때문이다. 연산군을 모시는 기녀들이 치장하는데 그만큼 많은 거울이 필요했고, 그만큼 마경장도 많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경장의 수가 부족했다. 마경장이 부족해 거울이 불량했고, 기녀들이 제대로 꾸미지 못하자, 흥이 깨진 연산군은 마경장을 대령하지 않았다고 불호령을 내렸던 것이다.

마경장이 필요했던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조선 후기 문인이며 화가인 유명한 윤두서(1668년∼1715년)다. 윤두서의 자화상은 붓, 물감, 종이로 그렸지만,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재료가 하나 더 있다. 깨끗한 거울이다. 천재 화가는 자신의 머리카락 한 올과 수염 한 올까지도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질 좋은 거울이 필요했고, 솜씨 좋은 마경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경장의 덕분인지, 윤두서의 자화상은 보는 사람이 정시(正視)할 수조차 없으리만큼 화면 위에 박진감이 넘쳐흐르고 있어, 우리나라 초상화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수작(秀作)으로 꼽힌다. 윗부분이 생략된 탕건,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는 눈, 꼬리 부분이 치켜 올라간 눈썹, 잘 다듬어진 턱수염, 살찐 볼, 두툼한 입술에서 윤두서라는 인물의 성격과 옹골찬 기개를 읽을 수 있다.

마경장과 비슷한 직업으로 마광장(磨光匠)이 있다. 마광장은 옥새부터 악기까지 온갖 물건을 빛나게 하는 광택 전문가였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