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갈해지飢渴害之 - 굶주림과 목마름이 마음을 해친다.
기갈해지(飢渴害之) - 굶주림과 목마름이 마음을 해친다.
주릴 기(食/2) 목마를 갈(氵/9) 해할 해(宀/7) 갈 지(丿/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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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것과 목마른 것을 아울러 말한 것이 飢渴(기갈)이다. 이렇게 되면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다. 굶주리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도 저지른다며 ‘기갈 든 놈은 돌담조차도 부순다’고 했다.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반찬이 없어도 밥이 맛있다고 ‘시장이 팥죽’이라거나 ‘시장이 반찬’이란 속담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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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허겁지겁 밥을 먹은 사람이 맛을 알기나 하며 다음 기회가 와도 음미할 수 있을까. 무슨 일이든지 늘 하던 사람이 능숙하게 잘 한다는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란 말대로 굶주렸던 사람은 맛과는 거리가 멀다. 孟子(맹자)는 이것을 굶주림과 목마름(飢渴)이 입과 배를 해쳤기(害之) 때문이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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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亞聖(아성)인 맹자가 사람의 본성과 천명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性善說(성선설)의 근거를 제시하는 ‘맹자’ 盡心(진심) 上篇(상편)에 이와 관련 문장이 나온다. 부분을 보자. ‘굶주린 사람은 무엇이든 맛있게 먹고, 목마른 사람은 무엇이든 달게 마신다(飢者甘食 渴者甘飮/ 기자감식 갈자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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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음식의 제 맛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굶주림과 목마름이 그를 해쳤기 때문이다(是未得飮食之正也 飢渴害之也/ 시미득음식지정야 기갈해지야).’ 입과 배에만 그러한 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도 해칠 수 있다면서 덧붙인다. 그러한 마음의 폐해를 이긴다면 부귀나 지위가 ‘남보다 못하더라도 근심하지 않는 경지가 된다(不及人不爲憂/ 불급인불위우)’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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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당)나라 승려 眞覺(진각)이 禪宗(선종)의 진리를 칠언시로 노래했다는 ‘證道歌(증도가)’에 이와 관련된 비유가 있다. ‘계속 굶어서는 임금님 수라상을 만나도 먹을 수가 없고(飢逢王膳不能飡/ 기봉왕선불능손), 병들어 죽어갈 땐 의왕을 만난들 나을 수 있으랴(病遇醫王爭得差/ 병우의왕쟁득차).’ 飡은 밥 손. 116구에 나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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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에만 몰입했던 性徹(성철) 스님이 이에 관해 강설한 것이 있는데 부분을 요약하여 인용하면 이렇다. 굶는다는 것은 중생이 진리에 배가 고파서 오랜 기간 未來劫(미래겁)이 다하도록 고생하는 것이다. 법을 믿고 불성을 깨쳐 해탈하지 못한다면 수라상 앞에서도 굶어 죽고, 의왕을 믿지 못하면 그 앞에서도 살 수 없다. 진리를 믿고 실천하라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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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굶으면 포도청의 담도 뛰어넘는다’고 하는데 굶주려 죽게 되는 생존의 문제에선 앞뒤 가릴 여유가 없다. 이럴 때는 눈앞에 닥친 고통부터 해결한다. 여기에는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름이 통하지 않는다. 극단 상황에 몰리면 우선 살고 봐야 하기 때문에 사람의 본성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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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마음까지 해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의식주는 갖춰야 한다는 것이 맹자가 말하는 恒産(항산)이다. 백성들이 먹고 살 수 있게 재산과 생업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좋은 정치다. 굶주림을 방치하는데 恒心(항심)이 있을 수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