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요일

조선인의 한, 귀 무덤코 무덤

■ 조선인의 한, 귀 무덤코 무덤

■ 조선인의 한, 귀 무덤(코 무덤)

일본 교토교토시 히가시야마구 차야마치(京都市 東山区 茶屋町)에 가면 높이 약 9m에 이르는 귀 무덤이 있다. 이름은 귀 무덤이지만 실제로는 코 무덤이기도 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모시는 도요쿠니신사(豊國神社)와 가까운 곳이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죄 없는 백성들의 피해는 날로 심해졌다.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일본의 무장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전리품으로 사람의 머리를 베어 가져갔는데, 나중에는 부피가 크고 무거우니까 귀를 베어서 소금에 절여 보내게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숫자를 센 뒤 무장들에게 감사장을 써 보내는 식으로 전공을 치하했다. 몇 명을 죽였는지 수량을 적은 확인서까지 보내 주며 그 공을 인정해 주니, 일본 장수들은 서로 더 많은 공을 세우기 위해 조선의 백성들을 마구 죽이기 시작했다. 얼마 후에는 귀는 두 개여서 숫자가 늘어날 수 있으므로 코를 베어 보내라는 명령이 내려지게 되었다. 원칙적으로 일본 장수들은 전쟁터에서 상대했던 조선 군인의 코를 잘라 보내야 했지만, 더 많은 공을 인정받고 싶어서 일반 백성들의 코까지도 마구 베어 일본으로 보냈다. 심지어 죽은 사람 뿐 아니라 산 사람의 코를 베어가는 일까지 발생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길에서 코나 귀가 없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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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일본으로 건너간 수많은 귀와 코들은 아무데나 버려졌는데, 길에서 썩는 악취를 견딜 수가 없게 되자 한데 모아서 귀 무덤, 코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이라고 해서 피해자를 추모하자는 의미는 아니고, 버려지고 더러우니 파묻어서 생긴 무덤인 것이다. 사실 처음의 이름은 ‘코무덤’이었고, 그들 스스로 너무 잔인하다는 이유로 이름을 ‘귀무덤’이라고 바꿨다고 한다. 현재 교토시가 세운 코 무덤 설명 팻말에는 귀무덤이라 쓰고 괄호 안에 코무덤을 덧붙여 놓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코와 귀가 묻혔는지는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지만,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12만 6천 명 분, 일본어 위키백과에는 2만 명분이라고 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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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무덤은 일본 전역에 있는데,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교토에 있는 것이다. 민가 한가운데 길 옆에 초라하게 놓여져 있는 귀 무덤(코 무덤)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역사임에 틀림없다. 1915년에 정비가 실시되었으며, 1968년에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무덤 일부는 경상남도 사천시로 옮겨졌으나 아직 완전한 이장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관리 예산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아 현재 개인이 관리하고 있다고 하니, 책임감 있는 대책이 필요한 것 같다.

요즘은 잘 쓰지 않지만 나이가 좀 지긋하신 분들은 아이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려 할 때 “에비야!” 하고 제지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때 ‘에비’는 귀와 코를 뜻하는 한자어인 이비(耳鼻)에서 나온 말이다. 그 시절, 왜군이 우리 백성들의 귀와 코를 마구 베어가니 아주 무섭고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여 졌던 것 같다.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며 변형이 일어나, 이비가 에비, 어비, 에비야 등으로 변형된 것이다. 어쨌든 귀 무덤, 코 무덤의 실질적인 피해자인 백성들에게는 매우 공포스러운 단어였을 것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