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요일

박사매려博士買驢 - 박사가 나귀를 사다, 겉만 화려하고 핵심이 없다.

박사매려博士買驢 - 박사가 나귀를 사다, 겉만 화려하고 핵심이 없다.

박사매려(博士買驢) - 박사가 나귀를 사다, 겉만 화려하고 핵심이 없다.

넓을 박(十/10) 선비 사(士/0) 살 매(貝/5) 나귀 려(馬/16)

어떤 분야에 깊이 알거나 솜씨가 숙달된 사람이 博士(박사)다. 실제는 대학원의 과정을 마치고 각종 시험에 통과해야 받을 수 있는 학위 이름이다. 그러니 특정 분야의 최고 전문가일 수는 있어도 여러 분야에 통달하기는 어렵다. 전문가란 아주 조금밖에 알려지지 않은 것을 보다 많이 알고 있는 서양 격언대로다. 孔子(공자)에게 ‘박학하면서도 명성을 이룬 바 없다(博學而無所成名/ 박학이무소성명)’라 말한 사람도 여러 분야를 알지만 한 가지도 능통한 것이 없다고 지적한 것이다. 뽕따는 아낙에게 구슬에 실 꿰는 법을 물었다는 孔子穿珠(공자천주)의 고사가 있는 만큼 공자도 인정했다.

박사가 옛날에는 五經博士((오경박사) 등과 같이 학문을 맡은 벼슬 이름이었다. 지식수준이 높아 모르는 것이 없는 박사선비라도 역시 분야가 넓으니 막히는 데가 있었던 모양이다. 박사가 나귀를 사기 위해 계약서를 쓰는데 종이 석 장을 다 채우도록 나귀 驢(려)자가 없었다는 이 성어는 핵심도 모르고 겉보기만 번지르르할 때를 비유한다. 三紙無驢(삼지무려)라고 해도 똑 같다. 6세기 중국 六朝(육조) 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문인이자 학자 顏之推(안지추, 531~591)는 자녀들을 위해 ‘顔氏家訓(안씨가훈)’을 남겨 수신과 학문, 처세 등을 익히도록 했다.\xa0

勉學(면학)에 관한 글에서 학문의 관건은 본질과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라면서 박사 이야기를 들고 있다. 이전의 학자들은 위로는 천시에 통하고 아래로는 인사에 밝았지만 후세로 내려오면서 공론만 외워 출세했다고 했다. 이런 사람에게 한 마디를 물으면 수백 마디를 쏟아내지만 요점은 알지 못한다며 鄴下(업하, 鄴은 땅이름 업) 지역의 속담을 소개한다. ‘박사가 나귀를 사는데 계약서를 석 장이나 쓰면서도 정작 나귀라는 글자가 없다(博士買驢 書券三紙 未有驢字/ 박사매려 서권삼지 미유려자).’ 글재주가 많은 박사가 정작 필요한 생활문서에는 어두웠다는 말이다.\xa0

모든 일이 이론으로 배운 대로만 풀어나갈 수 있다면 어려움이 있을 수 없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분야가 다양해지고 기술도 세분화된다. 어느 분야에 최고의 권위자라도 고위직을 맡아 일을 처리할 때는 여러 가지 난관에 부닥친다. 이럴 때 어떤 이유로 안 풀린다며 배운 이론을 장황히 늘어놓기 보다는 실천하는 전문가를 찾는 것이 옳다. 하위직이라 안중에 없다면 일이 더 꼬인다. 밭가는 일은 하인에게 耕當問奴(경당문노), 베 짜는 일은 하녀에게 織當問婢(직당문비)라는 말도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