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0일 수요일

세종의 싱크탱크Think Tank, 집현전 1편

■세종의 싱크탱크Think Tank, 집현전 1편

■세종의 싱크탱크(Think Tank), 집현전 1편

세종대왕은 그 자신의 능력도 뛰어났지만 나라의 인재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한 군주였다. 능력을 우선하면서도 포용성과 객관성을 가진 세종의 인재등용은 오늘날의 정치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황희와 같은 명재상, 북방을 개척한 김종서, 집현전의 성삼문과 신숙주, 음악가 박연, 천민 출신의 과학자 장영실까지 세종대에 배출된 인재들은 우리 역사에서 가히 ‘드림팀’이라고 부를 만하다. 인재를 알아본 세종의 눈이 이들을 역사의 인물로 영원히 남게 한 것이다.

왕으로서, 정치가로서 세종의 위대함을 부인하는 한국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 백성들을 위한 ‘농사직설’ ‘향약집성방’ 등의 농서와 의서 간행,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발탁과 해시계·자격루·측우기 등의 각종 과학기구들의 발명, 박연으로 대표되는 궁중음악의 완성 등 세종대의 찬란한 민족문화의 성과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그런데 세종대왕의 면면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이 바로 역량 있는 국가 인재들을 폭넓게 활용했다는 점이다.

특히, 집현전의 설치는 세종의 인재활용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은 즉위와 함께 집현전을 국가기관으로 승격시켜 학문의 중심기구로 삼았고, 집현전에 재주와 행실이 뛰어난 젊은 인재들을 모았다. 신숙주, 성삼문, 정인지, 최항 등 세종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속속 집현전에 모여들었다.

집현전은 1420년(세종 2년)에 설치되어 세조 2년에 없어질 때까지 약 37년간을 존속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집현전이 우리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은 이곳에서 세종시대의 대표적인 학문과 문화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집현전은 세종대에서 단종대까지 총 96명의 학자가 거쳐 갔다. 조선시대 문과 합격자 명단을 기록한 ‘국조방목’의 기록을 보면 집현전 학자 전원이 문과 급제자 출신임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수석인 장원급제자가 정인지를 비롯한 16명, 2등이 6명, 3등이 신숙주 등 11명, 4등이 7명으로 전체 집현전 학자 중 절반에 가까운 46명이 5등 안에 합격한 그야말로 국가의 최고 인재들이 발탁되었다. 이들 우수한 인재에게 세종이 부여한 임무는 독서와 학문연구,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정책 결정과 편찬 사업이었다.

집현전은 현재의 경복궁 수정전 자리로, 국왕이 조회와 정사를 보는 근정전이나 사정전과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만큼 세종이 집현전에 대한 관심이 컸음을 의미한다. 세종은 학문이 매우 뛰어난 군주였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정책을 결정하지 않았다. 집현전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충분히 반영하려 했다는 점에서 인재를 활용하는 세종의 면모가 잘 나타나고 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