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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9일 화요일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3편

■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3편

■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3편

전기수는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꽤 있었다고 하지만, 60년대 이후 라디오가 대중화되면서 다양한 들을 거리가 생겨났고, 전기수들은 설자리를 잃어갔다. 70년대 들어와서는 텔레비전까지 보급되자 완전히 소멸하게 되었다. 현재 활동하는 이로는 정규헌 옹뿐이다. 정규헌 옹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9호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문화재로 인정받은 것은 고소설 낭독 등 전통 문화의 계승 발전을 위해서이다. 부친인 정백섭을 따라 어릴 적부터 소설에 가락을 얹어 읽어 주는 활동을 했다 하니 2대째 전기수를 하는 셈이다. 그는 주로 《춘향전》, 《심청전》, 《신유복전》, 《조웅전》, 《장끼전》 등을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월북 작가 한설야(韓雪野:1900~1976)의 《나의 인간 수업, 작가 수업》에는 신소설을 읽고 있는 전기수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거기에는 허줄한 사나이가 가스등을 놓고 앉아 있으며, 그 사나이는 무슨 책을 펴 고래고래 소리 높여 읽고 있었다. 그 사나이 앞 가스등 아래에도 그런 책들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었다. 울긋불긋 악물스러운 빛깔로 그려진 서툰 그림을 그린 표지 위에 ‘신소설’이라고 박혀 있고 그 아래에 소설 제명이 보다 큰 글자로 박혀 있었다.

그 사나이는 이 소설을 팔러 나온 것이며 그리하여 밤마다 목청을 뽑아 가며 신소설을 낭송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나이의 주변에는 허줄하게 차린 사람들이 언제나 뺑 둘러앉아 있었다. 얼른 보아 내 눈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인력거꾼, 행랑어멈 같은 뒷골목 사람들이었다. 거기에는 젊은 여인의 얼굴도 띄엄띄엄 섞여 있었다.』

이 글을 보면 구경꾼들은 대부분 인력거꾼, 행랑어멈 등 어렵게 사는 이들이다. 그래서 전기수의 활동 시간도 그들이 일을 마친 밤이었다. 흥미로운 것이 전기수는 읽어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소개하면서 직접 팔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이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흥미롭고 실감나게 연기하면서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전기수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쉽게 찾기 어렵고, 문헌에 그 이름이 몇 명 보일 뿐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2편

■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2편

■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2편

유명한 전기수들은 양반가나 부유한 사람들에게 찾아가 낭독을 하게 되었다. 특히, 규방 여성들은 소설을 매우 좋아하여 전기수들은 직접 화장까지 하며 이야기를 펼치고 많은 돈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글공부를 해야 될 양반들이나 유생들이 엉뚱한 데에 빠지게 한다는 이유도 있었고, 일부 전기수들은 인기를 이용해서 여자들만의 공간인 규방에 드나들며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인 인식은 그리 좋지 못했다. 내외분별을 어기고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는 경우 말썽을 일으킨 전기수들은 활동을 못하게 벌을 주고 유배를 보냈다. 그래도, 여전히 전기수들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1790년(정조 14년) 8월 10일 《정조실록》의 기사를 보면 당시 유명한 전기수가 익명의 군중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기록돼 있다. 오늘날로 치면 종로에서 을지로 사이 약재상과 담배 가게가 밀집한 골목 공터에서 전기수 한 명이 대중들 앞에서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담배 가게 앞 전기수 주위로는 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었고, 모두들 전기수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살인 사건이 터진 것이다. 알고 보니 전기수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있던 청중 한 명이 나쁜 주인공을 응징한다며 들고 있던 낫으로 전기수를 죽인 것이다.

책 읽는 솜씨가 얼마나 뛰어나면 현실과 책 속 이야기를 혼동해 그만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살인을 저질렀을까? 당시 죽은 사람은 전기수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업복이었다. 그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서얼 출신이라고 전해지는 것을 보아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은 양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천민이었을 것이다.

전기수는 구한말과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많은 직업들이 소멸한 것과는 다르게 1910~1930년대까지도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고, 60년대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때 영화와 레코드, 라디오가 들어오기는 했지만, 영화를 보려면 상당히 부담이 가서 아무 때나 볼 수 없었고, 라디오는 구입은 물론이고 비싼 청취료로 인해 큰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유층이 아니고서는 레코드를 구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고, 다방 같은 데 가서 들어야 되니 돈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기수들은 시장판에 가기만 하면 볼 수 있었고 듣는 가격도 비교적 쌌으며, 문맹률이 70%-80%대를 넘나들 정도이니 전기수에 대한 인기가 여전했던 것이다.

이는 광복 이후로도 이어져서 라디오의 보급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대중화한 것은 아니었고, 텔레비전이 등장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던 사치품이라서 부자들이나 가질 수 있던 물건이었으니 전기수들은 값싸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전문적인 전기수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책을 팔려고 나온 책장수들이 책의 내용을 읽어주며 손님을 끄는 경우도 있었다. 어차피 당시에는 책을 살 수 있는 소비자층이 한정되어있었기 때문이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1편

■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1편

■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1편

조선 후기 한글소설은 필사(筆寫), 낭독(朗讀), 세책(貰冊:빌림)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통되면서 수적으로 증가하고 점차 대중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때맞춰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소설책을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읽어 주고 일정한 보수를 받아 생활하는 직업적인 낭독가가 등장하였는데, 이들을 ‘전기수(傳奇叟)’라 한다. ‘듣는 소설’인 ‘오디오북’의 시대가 이미 조선시대 전기수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한글소설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와 역사이야기, 삼국지나 수호지 같은 중국 고전소설을 읽어주는 경우도 있었다. 전기수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낭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의 역할에 맞춰 억양과 몸짓, 인물의 행동과 표정 등을 생동감 있게 바꿔가며 청중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우리의 국문(國文) 고소설(古小說)이 대개 4·4조의 운율을 형성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기수는 18세기에서 20세기 중반 사이에 주로 활동하였다. 17세기 이후 한글문학이 발전하고 책의 인쇄량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책값은 상당히 비싸서 빌려 읽는 것이 보통이었다. 또한, 원하는 책을 마음껏 빌려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문맹자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전기수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로 각 마을이나 시장판, 양반집을 돌아다니며 책을 읽어주었다.

전기수는 뒷골목 상권을 형성하는 주역들이었다. 그들은 종로 뒷골목이나 청계천 주변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당시 유행하던 소설을 읽어줬다. 조수삼이 지은 《전기수(傳奇叟)》라는 글을 보면 당시 운종가 혹은 청계천 아래 여러 상점 주인이 책 읽어주는 사람을 고용해 손님을 모으는 광경이 묘사돼 있다.

전기수들은 한양 서쪽에서 광화문까지 올라갔다가 다음 초이렛날(매달 초하룻날부터 헤아려 일곱째 되는 날)부터는 동대문 방향으로 내려온다. 그렇게 한양 도심을 오르내리면서 청중을 몰고 다녔다. 그들은 군중의 심리를 잘 파악해 책을 읽다가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부분에 이르면 갑자기 읽는 것을 멈추기도 했다. 그러면 청중들은 다음 대목이 궁금해 앞을 다투어 돈을 던졌다. 이때가 전기수에게 공식적인 수입이 생기는 순간이다.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전기수들이 돈을 버는 절묘한 기술이라 하여 요전법(邀錢法)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이처럼 전기수의 인기가 치솟았고, 인기 있는 여러 명의 전기수가 생겨났다. 이야기 중에는 재미는 물론이고 세상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의미도 있었기에 사람들이 좋아했다. 《삼국지》나 《수호지》 등 긴박감이 감도는 인기 소설을 읽을 때면 많은 독자가 몰렸고, 연암이 지은 《양반전》과 같은 풍자소설도 인기를 끌었다.

심청전을 들려주면 효심에 감복했고, 춘향전을 낭독하면 시련을 이겨낸 절절한 사랑 이야기에 환호했다. 그들만의 낭독 법도 있었다. 읊조리듯 노래하듯 낭독하고, 눈길과 표정은 청중에게 맞추면서 끊어 읽기를 하는 등 화려한 기술로 생생하고 긴장감 넘치게 이야기를 전한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2024년 3월 18일 월요일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3편

■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3편

■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3편

전기수는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꽤 있었다고 하지만, 60년대 이후 라디오가 대중화되면서 다양한 들을 거리가 생겨났고, 전기수들은 설자리를 잃어갔다. 70년대 들어와서는 텔레비전까지 보급되자 완전히 소멸하게 되었다. 현재 활동하는 이로는 정규헌 옹뿐이다. 정규헌 옹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9호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문화재로 인정받은 것은 고소설 낭독 등 전통 문화의 계승 발전을 위해서이다. 부친인 정백섭을 따라 어릴 적부터 소설에 가락을 얹어 읽어 주는 활동을 했다 하니 2대째 전기수를 하는 셈이다. 그는 주로 《춘향전》, 《심청전》, 《신유복전》, 《조웅전》, 《장끼전》 등을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월북 작가 한설야(韓雪野:1900~1976)의 《나의 인간 수업, 작가 수업》에는 신소설을 읽고 있는 전기수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거기에는 허줄한 사나이가 가스등을 놓고 앉아 있으며, 그 사나이는 무슨 책을 펴 고래고래 소리 높여 읽고 있었다. 그 사나이 앞 가스등 아래에도 그런 책들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었다. 울긋불긋 악물스러운 빛깔로 그려진 서툰 그림을 그린 표지 위에 ‘신소설’이라고 박혀 있고 그 아래에 소설 제명이 보다 큰 글자로 박혀 있었다.

그 사나이는 이 소설을 팔러 나온 것이며 그리하여 밤마다 목청을 뽑아 가며 신소설을 낭송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나이의 주변에는 허줄하게 차린 사람들이 언제나 뺑 둘러앉아 있었다. 얼른 보아 내 눈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인력거꾼, 행랑어멈 같은 뒷골목 사람들이었다. 거기에는 젊은 여인의 얼굴도 띄엄띄엄 섞여 있었다.』

이 글을 보면 구경꾼들은 대부분 인력거꾼, 행랑어멈 등 어렵게 사는 이들이다. 그래서 전기수의 활동 시간도 그들이 일을 마친 밤이었다. 흥미로운 것이 전기수는 읽어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소개하면서 직접 팔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이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흥미롭고 실감나게 연기하면서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전기수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쉽게 찾기 어렵고, 문헌에 그 이름이 몇 명 보일 뿐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2편

■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2편

■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2편

유명한 전기수들은 양반가나 부유한 사람들에게 찾아가 낭독을 하게 되었다. 특히, 규방 여성들은 소설을 매우 좋아하여 전기수들은 직접 화장까지 하며 이야기를 펼치고 많은 돈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글공부를 해야 될 양반들이나 유생들이 엉뚱한 데에 빠지게 한다는 이유도 있었고, 일부 전기수들은 인기를 이용해서 여자들만의 공간인 규방에 드나들며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인 인식은 그리 좋지 못했다. 내외분별을 어기고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는 경우 말썽을 일으킨 전기수들은 활동을 못하게 벌을 주고 유배를 보냈다. 그래도, 여전히 전기수들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1790년(정조 14년) 8월 10일 《정조실록》의 기사를 보면 당시 유명한 전기수가 익명의 군중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기록돼 있다. 오늘날로 치면 종로에서 을지로 사이 약재상과 담배 가게가 밀집한 골목 공터에서 전기수 한 명이 대중들 앞에서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담배 가게 앞 전기수 주위로는 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었고, 모두들 전기수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살인 사건이 터진 것이다. 알고 보니 전기수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있던 청중 한 명이 나쁜 주인공을 응징한다며 들고 있던 낫으로 전기수를 죽인 것이다.

책 읽는 솜씨가 얼마나 뛰어나면 현실과 책 속 이야기를 혼동해 그만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살인을 저질렀을까? 당시 죽은 사람은 전기수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업복이었다. 그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서얼 출신이라고 전해지는 것을 보아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은 양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천민이었을 것이다.

전기수는 구한말과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많은 직업들이 소멸한 것과는 다르게 1910~1930년대까지도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고, 60년대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때 영화와 레코드, 라디오가 들어오기는 했지만, 영화를 보려면 상당히 부담이 가서 아무 때나 볼 수 없었고, 라디오는 구입은 물론이고 비싼 청취료로 인해 큰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유층이 아니고서는 레코드를 구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고, 다방 같은 데 가서 들어야 되니 돈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기수들은 시장판에 가기만 하면 볼 수 있었고 듣는 가격도 비교적 쌌으며, 문맹률이 70%-80%대를 넘나들 정도이니 전기수에 대한 인기가 여전했던 것이다.

이는 광복 이후로도 이어져서 라디오의 보급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대중화한 것은 아니었고, 텔레비전이 등장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던 사치품이라서 부자들이나 가질 수 있던 물건이었으니 전기수들은 값싸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전문적인 전기수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책을 팔려고 나온 책장수들이 책의 내용을 읽어주며 손님을 끄는 경우도 있었다. 어차피 당시에는 책을 살 수 있는 소비자층이 한정되어있었기 때문이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1편

■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1편

■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1편

조선 후기 한글소설은 필사(筆寫), 낭독(朗讀), 세책(貰冊:빌림)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통되면서 수적으로 증가하고 점차 대중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때맞춰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소설책을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읽어 주고 일정한 보수를 받아 생활하는 직업적인 낭독가가 등장하였는데, 이들을 ‘전기수(傳奇叟)’라 한다. ‘듣는 소설’인 ‘오디오북’의 시대가 이미 조선시대 전기수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한글소설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와 역사이야기, 삼국지나 수호지 같은 중국 고전소설을 읽어주는 경우도 있었다. 전기수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낭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의 역할에 맞춰 억양과 몸짓, 인물의 행동과 표정 등을 생동감 있게 바꿔가며 청중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우리의 국문(國文) 고소설(古小說)이 대개 4·4조의 운율을 형성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기수는 18세기에서 20세기 중반 사이에 주로 활동하였다. 17세기 이후 한글문학이 발전하고 책의 인쇄량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책값은 상당히 비싸서 빌려 읽는 것이 보통이었다. 또한, 원하는 책을 마음껏 빌려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문맹자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전기수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로 각 마을이나 시장판, 양반집을 돌아다니며 책을 읽어주었다.

전기수는 뒷골목 상권을 형성하는 주역들이었다. 그들은 종로 뒷골목이나 청계천 주변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당시 유행하던 소설을 읽어줬다. 조수삼이 지은 《전기수(傳奇叟)》라는 글을 보면 당시 운종가 혹은 청계천 아래 여러 상점 주인이 책 읽어주는 사람을 고용해 손님을 모으는 광경이 묘사돼 있다.

전기수들은 한양 서쪽에서 광화문까지 올라갔다가 다음 초이렛날(매달 초하룻날부터 헤아려 일곱째 되는 날)부터는 동대문 방향으로 내려온다. 그렇게 한양 도심을 오르내리면서 청중을 몰고 다녔다. 그들은 군중의 심리를 잘 파악해 책을 읽다가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부분에 이르면 갑자기 읽는 것을 멈추기도 했다. 그러면 청중들은 다음 대목이 궁금해 앞을 다투어 돈을 던졌다. 이때가 전기수에게 공식적인 수입이 생기는 순간이다.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전기수들이 돈을 버는 절묘한 기술이라 하여 요전법(邀錢法)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이처럼 전기수의 인기가 치솟았고, 인기 있는 여러 명의 전기수가 생겨났다. 이야기 중에는 재미는 물론이고 세상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의미도 있었기에 사람들이 좋아했다. 《삼국지》나 《수호지》 등 긴박감이 감도는 인기 소설을 읽을 때면 많은 독자가 몰렸고, 연암이 지은 《양반전》과 같은 풍자소설도 인기를 끌었다.

심청전을 들려주면 효심에 감복했고, 춘향전을 낭독하면 시련을 이겨낸 절절한 사랑 이야기에 환호했다. 그들만의 낭독 법도 있었다. 읊조리듯 노래하듯 낭독하고, 눈길과 표정은 청중에게 맞추면서 끊어 읽기를 하는 등 화려한 기술로 생생하고 긴장감 넘치게 이야기를 전한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