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일 금요일

원려근우遠慮近憂 - 멀리 생각해야 가까운 근심이 없다.

원려근우遠慮近憂 - 멀리 생각해야 가까운 근심이 없다.

원려근우(遠慮近憂) - 멀리 생각해야 가까운 근심이 없다.

멀 원(辶/10) 생각할 려(心/11) 가까울 근(辶/4) 근심 우(心/11)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거나 관계도 없는 남의 일에 끼어들며 오지랖을 떤다. 근심걱정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는 없지만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며 땅이 꺼질까 근심하는 杞憂(기우)처럼 쓸데없는 걱정을 할 땐 한심할 뿐이다. 큰 뜻을 펼치려는 사람도 ‘사는 해는 백년을 채우지 못하면서/ 항상 천년의 근심을 품는다(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 생년불만백 상회천세우)’는 말처럼 일반 사람은 그 걱정을 이해 못한다. 이런 ‘걱정도 팔자’인 사람을 제외한 보통 사람이라도 살아가는데 근심이 없을 수가 없다.

孔子(공자)님 말씀에 이런 것이 있다. ‘사람이 멀리 내다보며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게 된다(人無遠慮 必有近憂/ 인무원려 필유근우).’ 수신과 처세에 관해 좋은 말이 많이 실린 ‘論語(논어)’ 衛靈公(위령공) 편에서다. 목전의 안일에만 취해서 앞으로의 일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으면 바로 큰 우환이 닥친다고 경고한다. 장래의 일만 생각하고 목전의 작은 일을 소홀히 해선 물론 그것도 안 된다. 앞으로의 일을 중시한다고 주변의 일을 무시했다간 장래의 일을 숙고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慮(려)와 憂(우)는 같은 걱정근심이지만 중복을 피해 사용됐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비하고, 지금 주변의 작은 일을 점검한다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걱정을 모두 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하지만 목적에 맞는 일에 대비하는 것이지 쓸데없는 일에 정력을 낭비하라는 말이 아니다. 폭풍우를 대비해 둥지를 나무뿌리로 감는 새의 지혜 未雨綢繆(미우주무, 繆는 얽을 무)가 바로 有備無患(유비무환)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아는 것이 근심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아는 것이 근심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아는 것이 근심이다.

알 식(言/12) 글자 자(子/3) 근심 우(心/11) 근심 환(心/7)

‘아는 것이 병‘이란 속담대로 지식이 해가 될까? 이것은 정확하지 못하거나 분명하지 않은 지식은 오히려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 실제로 몰라도 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래서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격언을 남겼다. 모르는 편이 나을 때가 간혹 있겠지만 도리를 알고 있는 까닭으로 도리어 불리하게 되었을 때 한탄하는 것이 識字憂患이다.

이 성어는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北宋(북송)의 대표적 시인 東坡(동파) 蘇軾(소식)이 ‘石蒼舒醉墨堂(석창서취묵당)’이란 시의 첫 구절에 바로 시작한다. ‘인생은 글자를 알면서 우환이 시작되니, 성명이나 대강 적을 수 있으면 그만둠이 좋도다(人生識字憂患始 姓名麤記可以休/ 인생식자우환시 성명추기가이휴).’ 麤는 거칠 추.

삼국지연의)’에 설명하는 내용은 이렇다. 유비가 제갈량을 삼고초려로 맞이하기 전에 있었던 군사가 서서였다. 그는 조조가 탐을 내는 인물이었는데 휘하에 끌어들이려고 계략을 썼다.

그가 효자라는 사실을 알고 어머니 衛(위)부인이 위독하다는 가짜편지를 보냈다. 영문을 모른 위부인은 아들이 돌아오자 자기 필체를 위조한 계락인 것을 알고 통탄했다. 나중에 서서가 조조 진영으로 간 것을 알고 효심과 거짓편지 때문이라며 ‘여자가 글씨를 안다는 것이 걱정을 낳게 하는 근본 원인이라 했다. 위부인의 말을 인용해 후세 사람들은 여자가 글을 배우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지만 실제는 원본에 없는 내용이 번역소설에 재미로 삽입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제하분주濟河焚舟 – 강을 건넌 뒤 배를 불사르다.

제하분주濟河焚舟 – 강을 건넌 뒤 배를 불사르다.

제하분주(濟河焚舟) – 강을 건넌 뒤 배를 불사르다.

건널 제(氵/14) 물 하(氵/5) 불사를 분(火/8) 배 주(舟/0)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 한 곳을 뚫지 않으면 몰살한다. 죽을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럴 때 비장한 결심을 나타내는 성어는 여럿이다. 강을 등지고 적과 결전하는 韓信(한신)의 背水之陣(배수지진),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히는 項羽(항우)의 破釜沈舟(파부침주)가 가장 잘 알려졌다. 이외에도 背城借一(배성차일)이나 捨量沈船(사량침선)도 있다. 강을 건넌 다음에 다리를 부숴버린다는 過河折橋(과하절교)는 전혀 뜻이 다르니 주의해야 한다. 다리를 잘 건너고는 그 고마움을 잊고 부순 목재를 훔쳐가니 더 이상의 이기주의가 없다.

황하를 건넌 뒤(濟河) 배를 불사른다는(焚舟) 이 성어도 전장에서 살아 돌아가기를 기약하지 않는 굳은 의지를 나타낸다. 앞의 유사한 성어보다 훨씬 먼저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등장했다. 文公(문공) 3년 조에 秦穆公(진목공)이 晉(진)나라 정벌에 나선 기사에 나온다. ‘진백이 진나라를 쳤다. 황하를 건너자 타고 간 배를 불에 태우고 진나라 땅 王官(왕관)과 郊(교)를 빼앗았다. 그러나 진나라 군대는 성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지키기만 했다(秦伯伐晉 濟河焚舟 取王官及郊 晉人不出/ 진백벌진 제하분주 취왕관급교 진인불출).’

간단한 이 이야기를 ‘東周列國志(동주열국지)’에는 살을 붙인다. 진나라에 잇따라 패배한 秦(진)의 장군 孟明(맹명)은 문책하지 않는 목공을 위해 또 복수를 위해 군사를 조련했다. 길일을 잡아 군대를 일으킨 진군이 ‘황하를 건너자 맹명은 타고 온 배를 모두 불사르게 했다(既渡黃河 孟明出令 使盡焚其舟/ 기도황하 맹명출령 사진분기주)’. 필사의 각오로 나선 맹명의 군대에 진나라는 성을 굳게 지키기만 했다. 할 수 없이 이전 전투에서 패했을 때 전사한 유골을 수습해 귀국했다. 백성들은 목공이 소복을 입고 친히 지낸 위령제에 모두들 감동했다.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킨 鄭經世(정경세, 1563~1633)는 금주를 위해 이 말을 사용해 흥미롭다. 누룩이나 술잔을 집안에 두지 않기를 ‘솥단지를 깨고 막사를 불태우며, 강을 건넌 뒤 배를 불태우는 것과 같이 한다고 했다. 술을 끊는데도 이와 같이 선언을 하는데 인생을 살아가면서 큰일에 부딪칠 때는 비장한 각오를 않을 수 없다.

욕개미창欲蓋彌彰 - 덮으려 하다가 더욱 드러나다.

욕개미창欲蓋彌彰 - 덮으려 하다가 더욱 드러나다.

욕개미창(欲蓋彌彰) - 덮으려 하다가 더욱 드러나다.

하고자할 욕(欠/7) 덮을 개(艹/10) 미륵 미(弓/14) 드러날 창(彡/11)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서 하늘이 다 가려질 수 없다. 잘못을 알려지지 않게 덮으려고(欲蓋) 한 일이 도리어 더 드러나게 되는(彌彰) 것을 가리킬 때 이 말을 쓴다. 봄철 산란기 때 꿩이 숲속에 몰래 알을 낳으려다 스스로 울어 사냥꾼에 잡히는 어리석음이나 개구리가 시끄럽게 울어 뱀의 먹이가 되는 것과 같다. 欲蓋彌章(욕개미장)으로도 쓴다. 미륵 彌(미)는 더욱이란 뜻이 있다. 하나의 잎사귀가 눈을 가린다는 一葉蔽目(일엽폐목)이란 말과 비슷할 것 같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빠져 전체적인 것을 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차이가 있다.

孔子(공자)가 엮은 사서 春秋(춘추)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만을 전달하지 않고 명분에 따라 준엄하게 기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어떤 사실에 대해 평론하거나 힐책하거나 찬양하는 데에도 원칙에 의해 간결한 문체로 기록하여 春秋筆法(춘추필법)이란 말까지 생겼다.

魯(노)나라 昭公(소공) 때의 일이다. 周(주)나라의 대부 黑肱(흑굉, 肱은 팔뚝 굉)이란 사람이 항복해오자 다스리던 영지 濫(남)도 노나라 땅이 되었다. 공자는 ‘겨울, 흑굉이 남 지역을 갖고 들어옴’이라고 간단히 기록했다. 춘추의 원칙에서 본다면 신분이 높지 않은 흑굉은 굳이 밝힐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한 까닭을 左丘明(좌구명)이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서 해석한다.

‘흑굉은 낮은 자이지만 땅을 갖고 적국에 항복했기 때문에 영토의 변경을 가져왔다. 이름을 기록한 것은 불의한 일을 없어지지 않게 하려는 의미다. 군자는 행동에 예의와 의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름나기를 바라지만 얻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악명을 감추려 해도 안 되는 법이다

회벽유죄懷璧有罪 - 옥을 품고 있는 것이 죄,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하면 재앙이 옴

회벽유죄懷璧有罪 - 옥을 품고 있는 것이 죄,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하면 재앙이 옴

회벽유죄(懷璧有罪) - 옥을 품고 있는 것이 죄,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하면 재앙이 옴

품을 회(⺖/16) 구슬 벽(玉/13) 있을 유(月/2) 허물 죄(罒/8)

사물을 분별하는 지혜가 分數(분수)다. 사람으로서 자기의 신분이나 능력을 잘 알고서 처신하면 탈이 없다. 분수에 맞게 행동하라고 선조들은 속담에서 잘 가르쳤다. ‘송충이가 갈잎을 먹으면 떨어진다’거나 ‘사주에 없는 관을 쓰면 이마가 벗겨진다’ 등이 그것이다. 같은 내용의 성어는 중국 고전에도 자주 나온다. 현재의 것으로 만족함을 안다면 욕되지 않는다는 知足不辱(지족불욕)은 道德經(도덕경)에서, 지나치게 높이 올라 간 용은 뉘우치게 된다는 亢龍有悔(항룡유회, 亢은 높을 항)는 易經(역경)에서 유래했다.

옥을 품고 있으면(懷璧) 그것만으로도 잘못(有罪)이라는 이 성어도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가지면 재앙을 부르기 쉽다는 것을 뜻했다. 左丘明(좌구명)이 쓴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실려 있는 내용을 보자. 춘추시대 虞(우)나라 임금의 동생인 虞叔(우숙)에게는 아주 값진 옥이 하나 있었다. 흠집이 없고 아름다워 누구나 탐내던 중 형인 임금도 욕심이 나서 옥을 달라고 했다. 처음 거절했던 우숙이 얼마 후에 周(주)나라 속담을 생각하고 후회했다.

‘필부는 죄가 없어도 좋은 옥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죄가 된다(匹夫無罪 懷璧其罪/ 필부무죄 회벽기죄).’ 공연히 이런 것을 가지고 있다가 재앙을 당할 필요가 없다며 사람을 시켜 왕에게 구슬을 바쳤다. 얼마 뒤 갖고 있는 보검을 형이 또 달라고 하자 우숙은 고민했다. 왕의 욕심이 끝이 없는 것을 보니 나중에는 나의 목숨까지 달라할지 모른다며 군사를 일으켜 형을 공격했다. 桓公(환공) 10년 조에 나오는 이야기다.

인간의 욕심이 혈연마저 등지는 재앙이 될 수도 있고, 지위나 재능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시샘을 받아 화를 입는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하지만 역시 분수에 맞지 않으면 필부도 유죄가 되고 화를 자초하게 된다는 뜻이 와 닿는다.

百 bǎi

百 bǎi

百 bǎi

1. 백 2. 많은 수 3. 전혀 4. 성

봉생마중蓬生麻中 - 삼밭의 쑥은 바르게 자란다.

봉생마중蓬生麻中 - 삼밭의 쑥은 바르게 자란다.

봉생마중(蓬生麻中) - 삼밭의 쑥은 바르게 자란다.

쑥 봉(艹/11) 날 생(生/0) 삼 마(麻/0) 가운데 중(丨/3)

친구를 사귈 때나 이웃의 중요성을 말 할 때 환경을 강조한 말은 많다. 요즘의 이웃이야 아파트 생활이 많아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게 되었지만 공자의 가르침부터 보자. 마을의 풍속이 질서를 지키며 화목하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며(里仁爲美/ 리인위미) 이러한 마을을 잘 골라서 거처하지 않는다면 지혜롭지 못하다고 했다. 중국 宋季雅(송계아)라는 사람이 집값의 열배나 주고 이웃을 산 百萬買宅 千萬買隣(백만매택 천만매린)과 똑 같다. 앞서 소개한 近墨者黑(근묵자흑)은 사귀는 친구에 의해 바른 길로도, 나쁜 길로도 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삼밭 가운데(麻中) 자라는 쑥(蓬生)이라는 이 성어는 따라붙는 대구 不扶自直(불부자직)과 같이 쓰면 뜻이 명확해진다. 죽죽 곧은 삼밭에 있으면 원래 구불구불 자라는 쑥이 붙들어주지 않아도 곧게 된다는 의미로 역시 환경이 미치는 영향을 뜻한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로 性惡說(성악설)을 주창한 荀子(순자)의 저작 ‘순자’에 처음 실렸다.

첫 부분 勸學(권학) 편의 내용을 요약해보자. 남쪽 지방에 사는 蒙鳩(몽구)라는 새가 깃털로 둥지를 만들어 갈대 잎에 매달아 두었는데 바람에 가지가 부러져 알이 깨지고 말았다. 또 서쪽 지방에 자라는 射干(사간)이란 나무는 길이가 겨우 네 치밖에 되지 않지만 산꼭대기에 있다 보니 산 아래 백 길의 연못을 내려다본다. 몽구 새는 둥지가 튼튼해도 매어놓은 갈대가 흔들리기 때문에 알을 깨뜨렸고, 사간 나무는 줄기가 짧아도 서 있는 자리가 높기 때문에 멀리 볼 수 있다. 이런 예를 들고 말한다. ‘쑥이 삼밭에서 자라게 되면 떠받쳐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며, 흰 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모두 검게 된다(蓬生麻中 不扶而直 白沙在涅 與之俱黑/ 봉생마중 불부이직 백사재열 여지구흑)’. 涅은 개흙, 열반 열.

朱子(주자)의 小學(소학)과 기타 경전 중에서 알기 쉬운 내용들을 추린 아동용 四字小學(사자소학)에서는 朋友(붕우)편에 약간 다른 표현으로 나온다. ‘쑥이 삼 가운데서 자라나면 붙들어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지고, 흰 모래가 진흙에 있으면 물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더러워진다

방약무인傍若無人 -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다.

방약무인傍若無人 -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다.

방약무인(傍若無人) -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다.

곁 방(亻/10) 같을 약(艹/5) 없을 무(灬/8) 사람 인(人/0)

마치 옆에(傍若) 사람이 아무도 없다(無人)고 여기며 거리낌 없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자신은 속이 후련할지 몰라도 주변서 모두 손가락질할 것이다. 돈을 좀 벌었거나 지위가 높아진 사람이 그러한 경우가 많다. 또한 술자리에서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 자기주장만 펼치는 사람도 종종 볼 수 있다. 이 모두 傍若無人의 행동이다. 자기 눈 아래에 사람이 없는 듯이 날뛰는 眼下無人(안하무인)도 똑 같은 뜻이다. 지난번 국민들의 분통을 터뜨렸던 대한항공 부사장의 행위나 모녀가 백화점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주차요원들을 무릎 꿇린 일 등 사회 곳곳에 도사린 갑질의 사례가 여기에 꼭 들어맞는 성어다.

傍若無人은 이처럼 오만불손하여 미움을 사는 행동이지만 처음 이 말이 사용될 때는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성격이 활달하여 남의 이목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눈살 찌푸릴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중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에서 많이 읽히는 列傳(열전) 중에 다섯 명의 자객을 다룬 刺客列傳(자객열전)은 흥미진진하다. 마지막에 나오는 荊軻(형가, 荊은 가시 형, 軻는 수레 가) 이야기 속에 傍若無人의 성어가 나온다. 衛(위)나라 사람인 형가는 술과 글을 좋아하고 검술에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못 알아본 왕에 등용되지 못하자 주유하며 현인과 협객을 두루 사귀었다.

燕(연)나라로 건너갔을 때 田光(전광)이란 처사가 그를 비범한 사람으로 알아보고 후원했다. 또한 그곳서 筑(축/ 대나무로 만든 비파 비슷한 악기)의 명수 高漸離(고점리)란 사람과 의기투합하여 날마다 장마당에 나가 술을 마시며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즐기면서 함께 울기도 하여 마치 옆에 사람이 없는 듯이 행동했다(高漸離擊筑 荊軻和而歌於市中 相樂也 已而相泣 旁若無人者). 旁과 傍은 똑같이 곁 방. 음주에 高聲放歌(고성방가) 했지만 큰 피해를 주지 않아 뜻을 펼치지 못한 인재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상인들이 좋게 봐준 모양이다. 형가는 뒤에 秦始皇(진시황)을 암살하러 떠났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

과유불급過猶不及 -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과유불급過猶不及 -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과유불급(過猶不及) -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지날 과(辶/9) 오히려 유(犬/9) 아닐 불(一/3) 미칠 급(又/2)

무슨 일이거나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어른들이 집안 자녀들을 훈계하는 말씀 중에 꼭 들어 있다. 공자님 말씀이라며 두고두고 가르쳤다. 그런데 일을 처리하거나 수행할 때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이 모자란 것과 같다는 말인데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반 회사에서의 실적을 두고 보면 목표를 넘겼을 때 표창할 텐데 모자란 것과 같다니. 물론 이 말은 물질적 성과만 가지고 성패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것도 모자라는 것도 경계한 중용의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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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제자 중에 고생도 함께 하고 각 분야에 뛰어난 10명을 공문십철( 孔門十哲)이라 한다. 이들을 덕행, 언어, 정사, 문학의 사과로 나누어 평가를 한 내용이 ‘선진편(先進篇)’에 나온다. 바로 ‘德行 顔淵 閔子騫 冉伯牛 仲弓, 言語 宰我 子貢, 政事 冉有 季路, 文學 子游 子夏(덕행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 언어 재아 자공, 정사 염유 계로, 문학 자유 자하)이다. 騫은 이지러질 건, 冉은 늘어질 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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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유불급에 거론되는 자하와 십철에는 빠져있는 자장을 비교해 자공이 묻는 것에 대해 공자가 답한다.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 師也過 商也不及(사야과 상야불급)’고 말하면서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고 설명한다. 師는 자장, 商은 자하의 이름이다. 공자는 자장의 극단적인 경향과 자하의 소극적인 면을 의식하고 그들에게 중용의 깨우침을 주기 위해 평가한 것이다.

작정산밀斫正刪密 – 똑바로 베고 빽빽하면 솎아내다.

작정산밀斫正刪密 – 똑바로 베고 빽빽하면 솎아내다.

작정산밀(斫正刪密) – 똑바로 베고 빽빽하면 솎아내다.

쪼갤 작(斤/5) 바를 정(止/1) 깎을 산(刂/5) 빽빽할 밀(宀/8)

쪼개다, 베다, 자르다는 뜻의 작(斫)은 장작(長斫)이라는 쓰임 외에 ‘아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성어 지부작족의 그 글자다. 깎다, 삭제하다는 뜻인 산(刪)은 필요 없는 글자를 지우는 산삭(刪削), 편지에서 인사는 생략한다는 뜻의 산만(刪蔓)에 쓰는 글자다. 깎고 자른다고 하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를 먼저 연상할 수 있다. 나그네를 집에 초대해 침대 길이에 맞춰 사람을 늘이거나 늘려 죽였다는 강도다. 하지만 바르게 베고 빽빽한 것을 덜어내는 것은 매화의 가지치기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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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학자 겸 시인 공자진의 유명한 산문 병매관기’의 구절에서 유래했다. 공자진은 외조부인 고증학자 단옥재(段玉裁)로 부터 배워 당시 정치의 혼란상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시문을 많이 남겼다. 불의에 모든 사람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만 마리의 말이 일제히 벙어리가 된다고 만마제음 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공자진은 이 산문에서 문인화가들이 건강한 것 보다는 기울어지고 구부러진 병든 모습의 매화를 더 귀하게 여기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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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진은 그래서 매화가 모두 병이 들었다면서 압제에서 해방시킨다고 병매관을 지어 돌봤다. 그는 매화만을 위해서였을까. 그랬다면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 더 잘 자라게 한다는 분재 애호가들에게 반발을 살 일이다. 그는 일정한 틀 속에서 인재를 구속하는 과거제를 비판하고 나아가 전제주의를 반대하며 인격의 해방을 갈망했다고 평가 받는다. 제도를 바꾼다면서 함부로 없애고 붙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