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일 금요일

搬 bā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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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반하다 2. 이사하다 3. 그대로 답습하여 사용하다 4. 잡아당기다

영설지재詠雪之才 - 여자의 뛰어난 글재주

영설지재詠雪之才 - 여자의 뛰어난 글재주

영설지재(詠雪之才) - 여자의 뛰어난 글재주

읊을 영(言/5) 눈 설(雨/3) 갈 지(丿/3) 재주 재(手/0)

눈이 내리면 무딘 사람이라도 감성에 젖는다. 시인이야 말할 것도 없이 시상이 줄줄 떠오를 것이다. 몇 구절만 인용해 보자.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金東鳴 踏雪賦/ 김동명 답설부)’, ‘젊음의 개가와도 같고, 사랑의 축가와도 같다(田惠麟/ 전혜린)‘, ’그대는 내리면서, 만나는 사물마다 악보를 그려놓고, 나는 그 악보에 맞춰, 회한의 노래 부르고(이재무).‘ 첫눈에 대해 노래하는 표현은 고금이 따로 없다. 눈을 읊는(詠雪) 뛰어난 재주(之才)를 뜻하는 이 말은 어린 여아가 바람에 날리는 버들가지에 비유하여 유명해진 뒤 글재주가 뛰어난 여자를 가리키게 됐다.

어릴 때부터 지혜롭고 날카로운 표현력을 지닌 주인공은 중국 東晋(동진)의 謝道韞(사도온, 韞은 감출 온)이다. 그는 해서, 행서와 초서의 서체를 완성했다고 書聖(서성)으로 불리는 王羲之(왕희지)의 아들 王凝之(왕응지)의 부인이고, 또한 명망이 높고 강직한 재상 謝安(사안)의 질녀로 유명하다. 사안은 前秦(전진)의 苻堅(부견) 대군을 격파하고, 당시의 세력가 桓溫(환온)이 제위까지 탐하자 그 음모를 막았다. 이 사안이 어느 날 가족들을 불러 문장에 대해서 토론을 할 때 눈이 펄펄 내렸다. ‘

재주를 모두 가진 여인을 질투하기 때문인가. 이런 문재를 가진 사도온은 그러나 평탄하지 못했다. 남편 왕응지가 반란군을 막다 살해되고 자신은 적에게 끌려갔다. 적장과 담판하여 당당히 맞서는 그녀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서도 재주가 넘치는 여성 문사들은 불우한 인생을 살았다. 다만 근래에 들어 베스트셀러 작가가 다수 배출되는 등 실력을 꽃피우는 중이다. 세계를 향해 더욱 뻗어 나가길 기대한다.

문과식비文過飾非 - 허물도 꾸미고 잘못도 변명하다.

문과식비文過飾非 - 허물도 꾸미고 잘못도 변명하다.

문과식비(文過飾非) - 허물도 꾸미고 잘못도 변명하다.

글월 문(文/0) 지날 과(辶/9) 꾸밀 식(食/5) 아닐 비(非/0)

자기가 잘못을 저지르고도 대체로 사람들은 인정하는데 인색하다. 일이 안될 때 그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태도를 비꼬는 말은 숱하다. ‘잘 되면 제 복, 못되면 조상 탓’, ‘쟁기질 못하는 놈이 소 탓한다’, ‘글 잘 쓰는 사람은 필묵을 탓하지 않는다’ 등등이다. 孔子(공자)님도 점잖게 타이른다. ‘군자는 자기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잘못을 찾는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군자구저기 소인구저인).’ 諸는 모두 제, 어조사 저. 이렇게 경계하라는 말이 많아도 지키기는 어려운지 허물도 꾸미고(文過) 잘못도 꾸미는(飾非) 것은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뉘우침도 없이 숨길 뿐만 아니라 도리어 남 탓을 하고 잘난 체만 한다. 文(문)은 물론 꾸민다는 뜻이다.

이 말이 먼저 나온 곳은 ‘論語(논어)’의 子張(자장)편이다. 공자의 제자 子夏(자하)가 말했다. ‘소인은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그럴듯하게 꾸며대려 한다(小人之過也必文/ 소인지과야필문).’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잘못이 아닌 듯이 꾸밈으로써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소인이란 뜻이다. 朱子(주자)의 ‘論語集註(논어집주)’에는 이렇게 설명한다. ‘문은 꾸미는 것이다. 소인은 허물을 고치는데 꺼리고, 스스로 속이는 데엔 꺼리지 않으므로, 반드시 꾸며서 그 허물을 거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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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맹자)’엔 옛날 周公(주공)도 잘못이 있었다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옛날의 군자는 잘못이 있으면 고쳤는데, 오늘날의 군자는 허물이 있어도 그대로 밀고 나간다 고 하며 덧붙인다. 옛 군자는 그 과오가 마치 일식이나 월식과 같아서 인민들이 모두 볼 수 있었고 그것을 고쳤을 때 모두 우러렀는데 오늘날 군자는 다만 과오를 따를 뿐 아니라 변명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公孫丑(공손추) 하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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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성인도 저지를 수 있다. 다만 변명과 거짓말로 둘러 대는가 아닌가에서 차이가 난다. 모든 국가 업무가 마비된듯한 이 위기상황에 책임이 있다는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다.

오곡불분五穀不分 - 오곡을 분간 못하다, 아주 어리석다.

오곡불분五穀不分 - 오곡을 분간 못하다, 아주 어리석다.

오곡불분(五穀不分) - 오곡을 분간 못하다, 아주 어리석다.

다섯 오(二/2) 곡식 곡(禾/10) 아닐 불(一/3) 나눌 분(刀/2)

五穀(오곡)은 온갖 곡식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쌀, 보리, 콩, 조, 기장을 가리킨다. 주식으로 많이 사용하는 중요한 곡식이기 때문이다. 이 다섯 가지 곡식을 모른다면 무식한 사람이 될까. 옛날 농경시대라면 몰라도 오늘날에는 오곡이 무엇인지, 그것을 구별 안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부문에서 생산에 종사하고 연구에 매진하여 전문가가 된 사람이 많다. 어떤 분야에 조금 안다고 다른 사람을 얕보고 우쭐거리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유식과 무식을 떠나 다섯 가지 곡식(五穀)을 구분하지 못한다(不分)는 말은 ‘論語(논어)’에서 孔子(공자)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한 隱者(은자)의 이야기가 출처다. 殷(은)나라 마지막 왕 紂王(주왕)의 학정을 피해 떠났던 배다른 형 微子(미자)편에 나온다. 공자의 제자 子路(자로)가 일행을 놓쳐 뒤에 쳐졌다가 지팡이로 삼태기를 메고 가는 노인을 만났다. 자로가 선생님을 보지 못했는지 묻자 노인이 답한다.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여 일하지 않고, 오곡도 분간하지 못하는데 누가 선생이란 말인가(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爲夫子/ 사체불근 오곡불분 숙위부자)?’ 자로가 핀잔을 받고도 두 손을 맞잡고 김 맬 동안 기다리자 노인은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닭을 잡고 잘 대접했다. 다음 날 자로가 스승에 아뢰니 그가 바로 은자라며 다시 만나보라고 했지만 갔을 땐 이미 떠나고 없었다. 노인이 손발도 놀리지 않고 오곡도 모른 사람이라고 낮춰 말해도 자로가 공손함을 잃지 않자 사람됨을 알았고 공자도 은자를 알아봤던 것이다.

농사에서 무식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은 이외에도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菽麥不辨(숙맥불변)이나 고무래를 두고도 丁(정) 자를 알지 못한다는 目不識丁(목불식정)이 있다. 不學無識(불학무식)이란 말도 있다. 배운 것이 없어 무식하다고 욕할 때 쓴다. 하지만 배운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볼 때는 유식이 무식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휘질기의諱疾忌醫 - 병을 숨기고 의사를 꺼리다, 충고에도 결점을 고치지 않다.

휘질기의諱疾忌醫 - 병을 숨기고 의사를 꺼리다, 충고에도 결점을 고치지 않다.

휘질기의(諱疾忌醫) - 병을 숨기고 의사를 꺼리다, 충고에도 결점을 고치지 않다.

숨길 휘(言/9) 병 질(疒/5) 꺼릴 기(心/3) 의원 의(酉/11)

모든 일은 작은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큰 일이 터지면 허둥지둥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데서 이루어지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로부터 이루어진다(天下之難事必作於易 天下之大事必作於細/ 천하지난사필작어이 천하지대사필작어세).’ 韓非子(한비자)의 말이다. 자기 몸의 병도 마찬가지다.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이라지만 숨기지 않고 병자랑은 할수록 좋다는 말도 있다. 병의 증세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하면 좋은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병을 숨기고(諱疾) 고쳐줄 의원을 꺼린다면(忌醫) 나을 수가 없다. 잘못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고 고치지 않음을 비유하는 성어다. 護疾忌醫(호질기의)도 같은 말이다.

北宋(북송)때의 성리학자 周敦頤(주돈이, 頤는 턱 이, 1017~1073)의 ‘周子通書(주자통서)’에 이 표현이 먼저 등장한다. ‘요즘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로잡아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병을 숨기면서 의원에게 보이지 않아 몸을 망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 주돈이는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며 전설적인 扁鵲(편작)의 이야기에서 따와 예를 들었다. ‘史記(사기)’ 편작 倉公(창공) 열전에 자세히 나온다.

죽어가는 사람을 일으켰다는 起死回生(기사회생)에서 소개한 대로 편작은 인도의 장수의 신 耆婆(기파)나 조선의 許浚(허준)과 같이 중국을 대표하는 명의다. 虢(괵, 虢은 나라 이름, 범발톱자국 괵)나라의 태자를 살려 소문이 자자한 편작을 齊(제)나라의 桓侯(환후)가 초청했다. 편작은 처음 보고 환후가 병이 있음을 알아챘다. 지금 치료가 필요하다고 해도 환후가 의원들은 병이 없는 사람에게 재주를 자랑한다면서 거절했다. 두 번째, 세 번째 갔을 때는 더 위중해졌지만 역시 치료를 거부했고 마침내 환후는 죽고 말았다.

용양호보龍驤虎步 - 용처럼 날뛰고 범처럼 걷다, 용맹스런 영웅의 모습

용양호보龍驤虎步 - 용처럼 날뛰고 범처럼 걷다, 용맹스런 영웅의 모습

용양호보(龍驤虎步) - 용처럼 날뛰고 범처럼 걷다, 용맹스런 영웅의 모습

용 룡(龍/0) 말날뛸 양(馬/17) 범 호(虍/2) 걸음 보(止/3)

상상의 동물로 신성시되는 용은 무적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불이나 독을 내뿜으니 당할 자가 없다. 호랑이는 또 百獸(백수)의 왕이니 만만찮다. 이 들의 싸움은 한 쪽이 실체가 없으니 이뤄질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둘을 싸움 붙여 龍虎相搏(용호상박)이라면 라이벌끼리의 혈투가 된다. 둘을 대비시켜 된 말을 더 들어 보자. 맞붙어 싸우는 龍拏虎擲(용나호척)이나 대단한 기세를 말하는 龍盤虎踞(용반호거), 엄숙한 용모 龍顔虎眉(용안호미) 등이 있다.

용처럼 날뛰고(龍驤) 범처럼 걷는다(虎步)는 이 비유를 듣기만 해도 위풍이 당당하다. 龍行虎步(용행호보)라 해도 같은 말이고,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는 龍驤虎視(용양호시)도 기개가 높고 위엄에 찬 영웅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성어는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 때의 宋(송)나라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에 나온다. 후한은 4대 和帝(화제) 이후 외척과 환관들이 권력 다툼으로 조용할 때가 없었다. 선비 집단인 黨人(당인)들도 휩쓸려 黨錮(당고)의 禍(화) 이후 나라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원려근우遠慮近憂 - 멀리 생각해야 가까운 근심이 없다.

원려근우遠慮近憂 - 멀리 생각해야 가까운 근심이 없다.

원려근우(遠慮近憂) - 멀리 생각해야 가까운 근심이 없다.

멀 원(辶/10) 생각할 려(心/11) 가까울 근(辶/4) 근심 우(心/11)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거나 관계도 없는 남의 일에 끼어들며 오지랖을 떤다. 근심걱정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는 없지만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며 땅이 꺼질까 근심하는 杞憂(기우)처럼 쓸데없는 걱정을 할 땐 한심할 뿐이다. 큰 뜻을 펼치려는 사람도 ‘사는 해는 백년을 채우지 못하면서/ 항상 천년의 근심을 품는다(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 생년불만백 상회천세우)’는 말처럼 일반 사람은 그 걱정을 이해 못한다. 이런 ‘걱정도 팔자’인 사람을 제외한 보통 사람이라도 살아가는데 근심이 없을 수가 없다.

孔子(공자)님 말씀에 이런 것이 있다. ‘사람이 멀리 내다보며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게 된다(人無遠慮 必有近憂/ 인무원려 필유근우).’ 수신과 처세에 관해 좋은 말이 많이 실린 ‘論語(논어)’ 衛靈公(위령공) 편에서다. 목전의 안일에만 취해서 앞으로의 일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으면 바로 큰 우환이 닥친다고 경고한다. 장래의 일만 생각하고 목전의 작은 일을 소홀히 해선 물론 그것도 안 된다. 앞으로의 일을 중시한다고 주변의 일을 무시했다간 장래의 일을 숙고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慮(려)와 憂(우)는 같은 걱정근심이지만 중복을 피해 사용됐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비하고, 지금 주변의 작은 일을 점검한다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걱정을 모두 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하지만 목적에 맞는 일에 대비하는 것이지 쓸데없는 일에 정력을 낭비하라는 말이 아니다. 폭풍우를 대비해 둥지를 나무뿌리로 감는 새의 지혜 未雨綢繆(미우주무, 繆는 얽을 무)가 바로 有備無患(유비무환)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아는 것이 근심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아는 것이 근심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아는 것이 근심이다.

알 식(言/12) 글자 자(子/3) 근심 우(心/11) 근심 환(心/7)

‘아는 것이 병‘이란 속담대로 지식이 해가 될까? 이것은 정확하지 못하거나 분명하지 않은 지식은 오히려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 실제로 몰라도 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래서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격언을 남겼다. 모르는 편이 나을 때가 간혹 있겠지만 도리를 알고 있는 까닭으로 도리어 불리하게 되었을 때 한탄하는 것이 識字憂患이다.

이 성어는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北宋(북송)의 대표적 시인 東坡(동파) 蘇軾(소식)이 ‘石蒼舒醉墨堂(석창서취묵당)’이란 시의 첫 구절에 바로 시작한다. ‘인생은 글자를 알면서 우환이 시작되니, 성명이나 대강 적을 수 있으면 그만둠이 좋도다(人生識字憂患始 姓名麤記可以休/ 인생식자우환시 성명추기가이휴).’ 麤는 거칠 추.

삼국지연의)’에 설명하는 내용은 이렇다. 유비가 제갈량을 삼고초려로 맞이하기 전에 있었던 군사가 서서였다. 그는 조조가 탐을 내는 인물이었는데 휘하에 끌어들이려고 계략을 썼다.

그가 효자라는 사실을 알고 어머니 衛(위)부인이 위독하다는 가짜편지를 보냈다. 영문을 모른 위부인은 아들이 돌아오자 자기 필체를 위조한 계락인 것을 알고 통탄했다. 나중에 서서가 조조 진영으로 간 것을 알고 효심과 거짓편지 때문이라며 ‘여자가 글씨를 안다는 것이 걱정을 낳게 하는 근본 원인이라 했다. 위부인의 말을 인용해 후세 사람들은 여자가 글을 배우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지만 실제는 원본에 없는 내용이 번역소설에 재미로 삽입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제하분주濟河焚舟 – 강을 건넌 뒤 배를 불사르다.

제하분주濟河焚舟 – 강을 건넌 뒤 배를 불사르다.

제하분주(濟河焚舟) – 강을 건넌 뒤 배를 불사르다.

건널 제(氵/14) 물 하(氵/5) 불사를 분(火/8) 배 주(舟/0)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 한 곳을 뚫지 않으면 몰살한다. 죽을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럴 때 비장한 결심을 나타내는 성어는 여럿이다. 강을 등지고 적과 결전하는 韓信(한신)의 背水之陣(배수지진),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히는 項羽(항우)의 破釜沈舟(파부침주)가 가장 잘 알려졌다. 이외에도 背城借一(배성차일)이나 捨量沈船(사량침선)도 있다. 강을 건넌 다음에 다리를 부숴버린다는 過河折橋(과하절교)는 전혀 뜻이 다르니 주의해야 한다. 다리를 잘 건너고는 그 고마움을 잊고 부순 목재를 훔쳐가니 더 이상의 이기주의가 없다.

황하를 건넌 뒤(濟河) 배를 불사른다는(焚舟) 이 성어도 전장에서 살아 돌아가기를 기약하지 않는 굳은 의지를 나타낸다. 앞의 유사한 성어보다 훨씬 먼저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등장했다. 文公(문공) 3년 조에 秦穆公(진목공)이 晉(진)나라 정벌에 나선 기사에 나온다. ‘진백이 진나라를 쳤다. 황하를 건너자 타고 간 배를 불에 태우고 진나라 땅 王官(왕관)과 郊(교)를 빼앗았다. 그러나 진나라 군대는 성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지키기만 했다(秦伯伐晉 濟河焚舟 取王官及郊 晉人不出/ 진백벌진 제하분주 취왕관급교 진인불출).’

간단한 이 이야기를 ‘東周列國志(동주열국지)’에는 살을 붙인다. 진나라에 잇따라 패배한 秦(진)의 장군 孟明(맹명)은 문책하지 않는 목공을 위해 또 복수를 위해 군사를 조련했다. 길일을 잡아 군대를 일으킨 진군이 ‘황하를 건너자 맹명은 타고 온 배를 모두 불사르게 했다(既渡黃河 孟明出令 使盡焚其舟/ 기도황하 맹명출령 사진분기주)’. 필사의 각오로 나선 맹명의 군대에 진나라는 성을 굳게 지키기만 했다. 할 수 없이 이전 전투에서 패했을 때 전사한 유골을 수습해 귀국했다. 백성들은 목공이 소복을 입고 친히 지낸 위령제에 모두들 감동했다.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킨 鄭經世(정경세, 1563~1633)는 금주를 위해 이 말을 사용해 흥미롭다. 누룩이나 술잔을 집안에 두지 않기를 ‘솥단지를 깨고 막사를 불태우며, 강을 건넌 뒤 배를 불태우는 것과 같이 한다고 했다. 술을 끊는데도 이와 같이 선언을 하는데 인생을 살아가면서 큰일에 부딪칠 때는 비장한 각오를 않을 수 없다.

욕개미창欲蓋彌彰 - 덮으려 하다가 더욱 드러나다.

욕개미창欲蓋彌彰 - 덮으려 하다가 더욱 드러나다.

욕개미창(欲蓋彌彰) - 덮으려 하다가 더욱 드러나다.

하고자할 욕(欠/7) 덮을 개(艹/10) 미륵 미(弓/14) 드러날 창(彡/11)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서 하늘이 다 가려질 수 없다. 잘못을 알려지지 않게 덮으려고(欲蓋) 한 일이 도리어 더 드러나게 되는(彌彰) 것을 가리킬 때 이 말을 쓴다. 봄철 산란기 때 꿩이 숲속에 몰래 알을 낳으려다 스스로 울어 사냥꾼에 잡히는 어리석음이나 개구리가 시끄럽게 울어 뱀의 먹이가 되는 것과 같다. 欲蓋彌章(욕개미장)으로도 쓴다. 미륵 彌(미)는 더욱이란 뜻이 있다. 하나의 잎사귀가 눈을 가린다는 一葉蔽目(일엽폐목)이란 말과 비슷할 것 같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빠져 전체적인 것을 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차이가 있다.

孔子(공자)가 엮은 사서 春秋(춘추)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만을 전달하지 않고 명분에 따라 준엄하게 기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어떤 사실에 대해 평론하거나 힐책하거나 찬양하는 데에도 원칙에 의해 간결한 문체로 기록하여 春秋筆法(춘추필법)이란 말까지 생겼다.

魯(노)나라 昭公(소공) 때의 일이다. 周(주)나라의 대부 黑肱(흑굉, 肱은 팔뚝 굉)이란 사람이 항복해오자 다스리던 영지 濫(남)도 노나라 땅이 되었다. 공자는 ‘겨울, 흑굉이 남 지역을 갖고 들어옴’이라고 간단히 기록했다. 춘추의 원칙에서 본다면 신분이 높지 않은 흑굉은 굳이 밝힐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한 까닭을 左丘明(좌구명)이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서 해석한다.

‘흑굉은 낮은 자이지만 땅을 갖고 적국에 항복했기 때문에 영토의 변경을 가져왔다. 이름을 기록한 것은 불의한 일을 없어지지 않게 하려는 의미다. 군자는 행동에 예의와 의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름나기를 바라지만 얻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악명을 감추려 해도 안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