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6일 수요일

모수자천毛遂自薦 – 모수라는 사람이 자신을 추천하다.

모수자천毛遂自薦 – 모수라는 사람이 자신을 추천하다.

모수자천(毛遂自薦) – 모수라는 사람이 자신을 추천하다.

털 모(毛/0) 드디어 수(辶/9) 스스로 자(自/0) 천거할 천(艹/13)

보통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나서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속이 찬 사람이라도 잘난 체 하면 ‘제 코도 못 씻는 게 남의 부뚜막 걱정한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꼭 나온다. 그래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싶더라도 뒤로 빠진 채 남에게 미루는 일이 많아 ‘제가 춤추고 싶어서 동서를 권한다’는 속담이 남았다. 하지만 아주 가끔 ‘제 팔 제가 흔들기’란 속언이 있듯 만류를 무릅쓰고 자기가 앞장서서 일 처리를 나서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람이 이룩한 일을 보고는 뒤늦게 평가하는 것이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주인에게 스스로 추천한 사람의 원조는 毛遂(모수)라 이런 성어가 전한다. 그는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趙(조)나라에 살았던 平原君(평원군)의 식객이었다. 각 제후국에서는 지혜와 술수를 갖춘 빈객들을 수천 명씩 거느렸는데 평원군도 戰國四公子(전국사공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다른 세 사람은 유명한 齊(제)나라의 孟嘗君(맹상군), 魏(위)의 信陵君(신릉군), 楚(초)의 春申君(춘신군)이다. 조나라 惠文王(혜문왕)의 동생이었던 평원군은 이름이 勝(승)으로 세 번이나 재상에 오를 만큼 빈객들의 지혜로 능력을 발휘했다.

당시의 강국 秦(진)나라가 조의 도읍 邯鄲(한단, 邯은 조나라서울 한, 鄲은 한단 단)을 포위하자 조왕은 평원군을 시켜 楚(초)나라에 합종하도록 명했다. 평원군은 식객들 중에서 문무에 정통한 20명을 골라 데리고 가려 했다. 19명을 쉽게 고르고서 적당한 1명을 찾지 못해 고심할 때 모수라는 사람이 자청했다. ‘한 사람이 부족하면 원컨대 저를 수행원으로 데려가 주십시오(今少一人 願君卽以遂備員而行矣/ 금소일인 원군즉이수비원이행의)’. 그는 문하에 온지 3년이나 되었어도 별다른 재주를 보이지 못한 터라 평원군은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모수는 송곳이라도 주머니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뛰어날 기회가 없었다며 합류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囊中之錐(낭중지추)라는 고사도 여기서 나왔다. ‘史記(사기)’ 평원군열전에 실려 있다.

후일담은 어떻게 됐을까. 모수는 다른 19명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 초왕과 직접 담판하여 합종을 성사시켰다. 평원군은 귀국한 뒤 상객으로 대접했다. 이처럼 모수는 자신을 천거하여 어려운 일을 스스로 맡아 나선 격이니 제 팔을 잘 흔들었다. 그러나 낄 때나 빠질 때나 일의 전후도 모르고 나서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차츰 의미가 변질되기도 했으니 조심해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부저소정저釜底笑鼎底 - 가마 밑이 솥 밑을 검다 한다.

부저소정저釜底笑鼎底 - 가마 밑이 솥 밑을 검다 한다.

부저소정저(釜底笑鼎底) - 가마 밑이 솥 밑을 검다 한다.

가마 부(金/2) 밑 저(广/5) 웃음 소(竹/4) 솥 정(鼎/0) 밑 저(广/5)

보통 사람이건 성인이건 잘못을 저지른다. 차이가 있다면 자기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잡아떼면 일반 사람이다. 그러면서 남의 잘못은 기막히게 들춰낸다. 제 눈에 있는 들보는 모르고 남의 눈에 있는 작은 티끌까지 훤히 보인다. 잘 보이지 않으면 불을 켜고 들춰낸다. 吹毛覓疵(취모멱자, 覓은 찾을 멱, 疵는 허물 자)가 그것이다. 인격을 갖춘 사람이면 과오를 저질렀을 때 곧 깨닫고 뉘우치며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잘못을 저지르고 이를 고치지 않는 것이 진짜 과오(過而不改 是謂過矣/ 과이불개 시위과의)’라고 孔子(공자)님은 깨우쳤다.

자신의 허물이 큰 것은 모르고 남의 작은 결점을 들춰내어 비웃는 사람이 세상사에 널렸다. 그래서인지 속담이나 성어가 숱하다. 먼저 가마 밑(釜底)이 솥 밑을 검다고 비웃는다(笑鼎底)는 이 말이다. 속담 표현은 ‘가마 밑이 노구솥 밑을 검다 한다’이다. 큰 가마솥은 한 군데 있으면서 쉴 새 없이 불을 때므로 밑이 새까맣다. 놋쇠나 구리쇠로 만든 노구솥은 작아서 자유롭게 옮겨 걸고 자주 닦는다. 우리 속담을 한자로 번역한 ‘旬五志(순오지)’에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기 자신의 허물은 열이나 되는데도 하나밖에 없는 남의 흠을 꼬집어 내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以比己有十訾而指人一訾/ 이비기유십자이지인일자).’

같은 말을 달리 표현한 것도 다수다. 釜底咎鼎底(부저구정저), 鼎底黑 釜底噱(정저흑 부저갹), 釜底鐺底 煤不胥詆(부저당저 매불서저) 등이다. 噱은 크게웃을 갹, 鐺은 솥 당, 詆는 꾸짖을 저. 같은 뜻의 다른 속담을 몇 개만 보자.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 ‘겨울바람이 봄바람보고 춥다 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숯이 검정 나무란다’, ‘ 뒷간 기둥이 물방앗간 기둥을 더럽다 한다’ 등이다.

성어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孟子(맹자)의 五十步百步(오십보백보)이고 박쥐가 스스로를 보지 못하고 들보 위에 있는 제비를 비웃는다는 蝙蝠不自見 笑他梁上燕(편복부자견 소타량상연)이란 말도 있다. 蝙蝠(편복)은 박쥐를 말한다.

옥에도 티가 있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 남의 말 할 동안에 자신의 잘못을 찾아 반성하면 좋으련만 남의 흠을 들추는 재미를 포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남을 탓하는 것이 일상사이긴 하지만 남이 잘못해야 자기가 돋보이는 정치권에선 남 탓이 본업처럼 되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홍일점紅一點 – 푸른 잎사귀 사이의 한 송이 붉은 꽃, 많은 남자 사이에 있는 한 여자

홍일점紅一點 – 푸른 잎사귀 사이의 한 송이 붉은 꽃, 많은 남자 사이에 있는 한 여자

홍일점(紅一點) – 푸른 잎사귀 사이의 한 송이 붉은 꽃, 많은 남자 사이에 있는 한 여자

붉을 홍(糸/3) 한 일(一/0) 점 점(黑/5)

여자를 꽃에 비유하는 것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는 여성도 많지만 많은 남자들 속에 끼여 있는 한 사람의 여성은 꽃처럼 단연 돋보인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한 송이 붉은 점(紅一點)이 바로 붉은 꽃인 여성이다. 푸른 가지나 잎 사이에 단 한 송이의 꽃이 피었으니 더욱 눈에 잘 띈다. 처음엔 단지 붉은 한 송이 꽃을 가리킨 말이 많은 남자들 틈에 오직 하나뿐인 여자를 말하게 됐고, 나아가 여러 하찮은 것 가운데 이채를 띠는 우수한 것을 나타내게 됐다. 순서를 바꿔 一點紅(일점홍)이라 해도 같고 반대로 많은 여자 사이에 끼어있는 한 사람의 남자는 靑一點(청일점)으로 불리기까지 발전했다.

중국 北宋(북송)때 新法(신법)의 개혁정책을 밀어붙인 王安石(왕안석, 1021~1068)은 정치가로 잘 알려져 있다. 6대 황제인 神宗(신종)의 신임을 받고 시행한 개혁은 부국강병을 위한 것이었음에도 급진적인 것이 많아 歐陽修(구양수)나 司馬光(사마광) 등의 구법당 문신들과 대지주 등의 대대적인 반발을 샀고 심한 기근까지 겹쳐 좌절되고 말았다. 정치가로 뜻을 펴지는 못했던 왕안석은 그러나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에 들어갈 정도의 문필가로 뛰어난 서정시와 산문을 많이 남겼다.

그가 석류를 노래한 ‘詠石榴詩(영석류시)’의 구절에 이 성어가 나온다. ‘무성한 푸른 잎들 가운데 한 점 붉은 석류꽃, 사람 마음 움직이는 봄 경치엔 많은 것이 필요치 않네(萬綠叢中紅一點 動人春色不須多/ 만록총중홍일점 동인춘색불수다).’ 봄이 되어 여러 꽃들이 다투어 피어있는 것보다는 무성한 푸른 잎 사이에 어쩌다 한 송이 피어있는 빨간 석류가 훨씬 사람의 눈과 마음을 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가 왕안석의 창작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송나라 陳正敏(진정민)이 遯齋閑覽(둔재한람)에는 왕안석의 부채에 唐(당)나라 사람의 시 ‘온통 푸른 무성한 가지들 속에 붉은 점 하나(濃綠萬紅枝一點/ 농록만홍지일점)’ 구절을 썼을 뿐이라 했다. 또 다른 곳에는 맞다고 하는 주장도 있으니 분분해도 많은 무리들 속에 우뚝한 존재를 나타내는 의미는 다를 바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불공대천不共戴天 - 함께 하늘을 이지 못함, 부모를 죽인 원수

불공대천不共戴天 - 함께 하늘을 이지 못함, 부모를 죽인 원수

불공대천(不共戴天) - 함께 하늘을 이지 못함, 부모를 죽인 원수

아닐 불(一/3) 한 가지 공(八/4) 일 대(戈/13) 하늘 천(大/1)

怨讐(원수)는 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나 집단이다. 원수를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 유명한 구절들은 많지만 방법은 대조적이다. 기원전 17세기 메소포타미아의 함무라비(Hammurabi)왕 때 제정된 법전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해를 입은 그대로 갚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른 뺨을 치면 다른 뺨도 대주라고 하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당한 그 이상 갚아야 시원하겠지만 성인들은 악을 악으로 갚으면 그 악은 영원히 계속된다고 본 것이다.

우리의 속담도 마찬가지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보복을 하면 보복을 당하고 ‘오랜 원수를 갚으려다가 새 원수가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밤 잔 원수 없고 날 샌 은혜 없다’며 ‘원수는 순(順)으로 풀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중국에는 원수에 대해 살벌하다. 五經(오경)의 하나인 유가의 경전 ‘禮記(예기)’ 曲禮(곡례) 상편에 하늘을 함께 머리에 일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으니 상대를 죽이거나 자신이 죽든가 해야 한다니 말이다.

내용을 보자. ‘아버지의 원수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지 못하며(父之讐 弗與共戴天/ 부지수 불여공대천), 형제의 원수는 죽이려는 병기를 도로 거두지 않으며(兄弟之讐 不反兵/ 형제지수 불반병), 친구의 원수는 나라를 같이 하여 살지 않는다(交遊之讐 不同國/ 교유지수 부동국).’ 아버지의 원수와 함께 형제의 원수도 부닥치면 집으로 무기를 가지러 갈 여유가 없으니 항상 휴대해야 한다는 의미다. 친구의 원수는 나라를 함께 하지 않으니 다른 나라로 쫓거나 자기가 떠나거나 한다. 고대 씨족사회에서 혈족이 중시되었을 당시의 규정이지만 오늘날에도 무협지 등에서 이는 예찬되었다.

꼭 사람을 죽인 경우가 아니라도 더불어 같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미우면 이 말을 쓴다. 피해를 끼친 사람에 대응하는데 개개인이 나서면 보복의 악순환이 되니 현대에선 법으로 대신한다. 법이 무결할 수만은 없어 범죄의 피해자는 항상 억울함을 느낀다. 입법 때는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세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그보다 배려하고 양보하고 함께 사는 사회가 더 중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반근착절盤根錯節 – 구부러진 나무뿌리와 얼크러진 마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

반근착절盤根錯節 – 구부러진 나무뿌리와 얼크러진 마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

반근착절(盤根錯節) – 구부러진 나무뿌리와 얼크러진 마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

소반 반(皿/10) 뿌리 근(木/6) 어긋날 착(金/8) 마디 절(竹/9)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혀 있는 것이 葛藤(갈등)이다.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다르면 서로 으르렁거린다. 이와 비슷하게 둥그렇게 서린 나무뿌리(盤根)와 얼크러진 마디(錯節)란 뜻의 성어도 있다. 소반 盤(반)에는 굽다, 둥그렇게 감긴 모양 서리다란 뜻도 있다. 줄여서 盤錯(반착) 또는 槃根錯節(반근착절, 槃은 쟁반 반)이라 쓰기도 한다. 갈등이 적대시하거나 충돌할 정도로 악화된 상태라면 이 말은 일이 복잡하게 얽혀 처리가 곤란한 사건이나 그로 인한 고통을 의미한다. 거기에서 세력이 깊이 뿌리박고 있어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중국 後漢(후한, 서기 25~220)의 6대 安帝(안제) 때 虞詡(우후, 詡는 자랑할 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강직한 성품으로 어릴 때부터 학업에 힘썼고 효행도 지극해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를 위해 관직을 사양할 정도였다. 할머니의 사후 주위의 천거로 郎中(낭중)의 벼슬에 나가게 됐다. 앞서 5대 殤帝(상제)는 출생 후 100여 일만에 즉위하였다가 8개월 만에 죽고 안제도 13세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외척인 鄧騭(등즐, 騭은 수말 즐)이 정사를 좌우했다.

그 무렵 이민족이 국경지대에 있는 幷州(병주)와 涼州(양주)를 침입해 오자 국비부족을 이유로 등질이 양주를 포기하려고 했다. 이에 우후가 나서 장군이 나오고, 재상이 나오는 땅을 버리면 안 된다고 주장하여 맞서자 등즐의 미움을 샀다. 얼마 뒤 朝歌(조가)라는 지역에서 민란이 일어나 태수가 살해되는 일이 생겨 등즐이 보복으로 우후를 그곳 군수로 파견했다.

사지로 가는 우후를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이 모였다. 우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태평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구부러진 뿌리와 뒤틀린 옹이마디를 만나지 않고서야 어찌 날카로운 칼날의 진가를 알 수 있겠는가(不遇槃根錯節 何以別利器乎/ 불우반근착절 하이별리기호)?’ 험지에 가서야 진가를 발휘한다는 이야기였다. 과연 우후는 민란을 깨끗이 수습하고 역량을 인정받았다. ‘後漢書(후한서)’ 우후전에 나온다.

세상사에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는 곳이 없겠지만 항상 시끄러운 곳이 정치판이다. 정권을 잡는 것이 존재 이유인 정당이라 이해할 만하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산적한 민생을 두고 싸움만 한다고 여긴다. 협상과 양보는 얽힌 뿌리와 가지를 헤치는데 도움이 되련만 그것이 좀처럼 어렵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비례물언 비례물동非禮勿言 非禮勿動 - 예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은 하지 말라.

비례물언 비례물동非禮勿言 非禮勿動 - 예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은 하지 말라.

비례물언 비례물동(非禮勿言 非禮勿動) - 예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은 하지 말라.

아닐 비(非/0) 예도 례(示/13) 말 물(勹/2) 말씀 언(言/0)

아닐 비(非/0) 예도 례(示/13) 말 물(勹/2) 움직일 동(力/9)

예의, 예절, 예법이라 하면 공연히 복잡하고 머리 아프다며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이 많다. 유교에서 예를 중시하여 사회의 질서를 위해 만들어진 방대한 윤리규범이니 다 지키기는 어려울 법하다. 보통 알려진 것만 冠婚喪祭(관혼상제)에 관한 四禮(사례)이지만 더 오래된 五禮(오례), 九禮(구례)까지 있다고 하니 당연하다. 예도 禮(례)의 글자에서 보일 示(시)는 ‘땅귀신 기’, 풍년 豊(풍)은 ‘높은그릇 예’의 음도 있어 인간이 신에게 제사 드릴 때 행하던 의식에서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것 말고 사람이 마땅하게 지켜야 할 도리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예를 중시한 유가에서 孔子(공자)는 ‘論語(논어)’를 통해 이를 강조한다. 예의에 어긋나면 말하지 말고(非禮勿言) 예의에 어긋나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動)고 한 것이다.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신중히 하라는 謹言愼行(근언신행)이다. 이 말이 나온 계기가 顔淵(안연)편에 실려 있다. 공자의 수제자인 안연이 仁(인)에 대해서 여쭙자 자기를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라 말했다. 자신의 사적인 욕구를 버리고 도리에 따른 예를 실천한다는 克己復禮(극기복례)가 여기서 나왔다. 안연이 다시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네 가지 조심할 것이 제시된다. ‘예가 아니면 보지를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 안연은 이 말을 명심하고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北宋(북송) 중기의 유학자 程頤(정이, 1033~1107, 頤는 턱 이)는 여기에서 視聽言動(시청언동) 네 가지의 四箴(사잠)을 지었다.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네 가지는 몸의 작용에 속하는 것인데 내면의 마음을 길러서 외면을 제어할 수 있다고 했다.

번거로운 예를 모르고서 사람답게 사는 사람이 대다수다. 법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 말이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張三李四(장삼이사)다. 그런데도 예와 법을 교묘히 어기고 속이고 빼앗는 사람들이 수시로 나타난다. 예법이 짐승과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라 했는데 이 기준을 지키지 못하면 어찌 되겠는지 반성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인종차별’ 우드로 윌슨·존 웨인도 퇴출

◇ ‘인종차별’ 우드로 윌슨·존 웨인도 퇴출

◇ ‘인종차별’ 우드로 윌슨·존 웨인도 퇴출

미국의 가치를 고양했다는 평가를 받던 위인들이 인종차별 전력으로 잇따라 퇴출되고 있다.

미 프린스턴대학교 이사회는 최근 국제관계대학원과 기숙형대학 명칭에 있는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의 이름을 학교 명칭에서 삭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국제관계 분야 명문 대학원인 ‘우드로 윌슨 공공국제문제 스쿨’은 ‘프린스턴 공공국제문제 스쿨’로, 기숙형 대학인 ‘윌슨 칼리지’는 ‘퍼스트 칼리지’로 바뀌게 된다.

윌슨 전 대통령은 1913~1921년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1차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끌고 국제연맹을 창설하는 등 미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약소민족의 민족자결주의를 세계에 전파한 인물로 평가된다.

프린스턴대는 1902~1910년 이 대학 총장을 지낸 그의 공적을 기려 학교 명칭 등에 그의 이름을 붙여왔다. 하지만 총장 재직 시절 흑인 학생들의 입학을 금지하는 한편 백인우월주의 단체 ‘큐클럭스클랜’(KKK)에 찬성하는 발언을 하고, 대통령 재임 때도 흑백 분리 방침을 지지한 사실이 부각되면서 학교 쪽이 그의 이름을 지우기로 한 것이다.

같은 날,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선 민주당 당원들이 미국 서부영화의 대부 격인 배우 존 웨인의 이름을 딴 ‘존 웨인 공항’의 이름을 ‘오렌지카운티 공항’으로 변경하라는 내용이 담긴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들은 존 웨인이 생전에 “흑인이 노예였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등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을 문제 삼아, 시 당국에 공항 명칭 변경과 함께 공항에 세워진 그의 동상 철거를 요구했다.

지난달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전국적인 인종차별 반대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위인으로 추앙받았던 인물들이 청산 대상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시카고에선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동상이 ‘노예 소유주’란 낙서로 훼손되는 일이 벌어졌고, 수도 워싱턴에선 ‘20달러 지폐의 주인공’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의 철거 시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의 동상 훼손 행위가 이어지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법이 허용하는 최대치로” 처벌받게 하겠다며, 공공 기물인 동상에 피해를 입히는 시위대를 체포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한겨레-

◇ 냉면이 뭔 잘못인가?

◇ 냉면이 뭔 잘못인가?

◇ 냉면이 뭔 잘못인가?

남북한 민족 화해의 상징이었던 평양냉면이 수난을 겪고 있다. 최근 평양 옥류관 주방장이 “국수 처먹을 땐 요사 떨더니…”라며 우리 정부를 향해 막말을 내뱉었다. 남한 측에 대한 음식 타박이 슬프기만 하다. 평양 옥류관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다. 옥류관은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구상하고 완성한 북한의 ‘민족 료리의 원종장(原種場)’이다.

북한에서 냉면은 전통과 선전의 상징적인 음식이다. 19세기 후반의 평양 일대를 그린 회화식 지도인 ‘기성전도’(箕城全圖)에는 대동문 옆 동포루(東砲樓) 앞에 ‘냉면가(冷麵家)’가 표시돼 있다. 지금 옥류관과 그리 멀지 않은 대동강변 성 안쪽이다.

조선 후기부터 평양은 냉면의 본향이었다. 일제강점기 ‘평양상업조사’(1939년)에는 냉면 식당이 전체 음식점 578개 가운데 127개로 단일 업종으로는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전통에 더해 1960년대 이후 냉면은 북한 정권의 강력한 상징이 된다.

북한의 냉면 기사에는 김일성 주석이 자주 등장한다. 냉면은 직접 조리법을 지도한 수령이 사랑한 음식이자 ‘로동당 시대에 와서 더욱 빛을 내며 유명해진’(로동신문, 1995년 9월 21일), 북한의 식량 정치(food politics)의 중심에 있는 ‘민족의 대표 음식’이다. 평양냉면은 김치 담그기, 신선로와 함께 북한의 비물질문화 유산에 정식으로 등록돼 있다. 남북 정상회담 때 옥류관 냉면이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유는 이런 전략적 위치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18년 4월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있었던 3차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옥류관 기계를 가져와 냉면을 먹은 것은 음식 정치의 전술적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음식이 지닌 정치적 함의로도 그렇지만 전 세계가 지켜보는 최고의 기회에 대한민국의 음식을 알릴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서울을 대표하는 설렁탕이나 좀 더 세련된 곰탕이 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다.

분단 이전에 평양에선 냉면이, 서울에선 설렁탕이 대표 외식이었다. 물론 당시 서울에도 냉면 가게가 많았다. 겨울이면 설렁탕집이 성업했는데 냉면집에서도 설렁탕을 팔았다. 여름에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남북관계는 냉탕과 온탕을 오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냉면이든 설렁탕이든 국물을 기본으로 하는 것은 한민족이 즐겨온 음식의 대표적 특징이다.

한민족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면 같은 차가운 국을 먹는다. 중국 옌지(延吉)에도, 일본 모리오카(盛岡)에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도, 한민족이 사는 곳에 차가운 냉면이 있고 뜨거운 고깃국이 있다.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을 우리는 식구(食口)라 부른다. 그런 음식을 가지고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은 식구의 도리가 아니다. 여름철 한복판에 들어선 지금,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이 더욱 소중할 뿐이다.

-중앙일보-

◇ '악마의 기술' 안면인식 기술

◇ 악마의 기술 안면인식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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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의 기술 안면인식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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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얼굴 신분증’ 국가다. 중국 정부가 전국 2억대의 폐쇄회로(CC)TV를 통해 전 국민 14억여명의 얼굴 사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공항·역에서 비행기·기차 탈 때 얼굴만 카메라에 비치면 1초 안에 신분 확인이 끝난다. 승차권도 사지 않고 얼굴만으로 지하철을 탈 수도 있다. 쇼핑할 때 본인 인증뿐 아니라 결제까지도 얼굴로 가능하다.

현금자동인출기도 사람을 알아본다. 베이징대와 칭화대는 얼굴 출입 시스템을 도입해 무단 방문자를 막고 있다. 범죄 단속과 범인 검거에도 쓰인다. 2018년 5만여명이 모인 유명 가수 콘서트장 입장 때 얼굴 확인으로 지명수배자 수십명이 체포됐고, 2019년 상하이 고속도로 검문소에서는 17년 전 살인범이 붙잡혔다.

이런 중국이 안면인식 기술의 세계 최강국인 것은 당연하다. 중국 스타트업들이 개발한 알고리즘이 세계 1~5위를 휩쓸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카메라에 비친 인물을 특정하는 이 기술은 거대 권력이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통제하는 ‘빅브러더’의 공포도 키우고 있다. 선전·상하이에서 무단횡단하면 길 건너 전광판에 얼굴과 신원이 뜨고 인터넷에 공개된다고 한다. 섬뜩한 일이다. 베이징·충칭의 일부 공공 화장실에서는 얼굴 스캔을 마쳐야 40~80㎝의 휴지를 뽑을 수 있고, 더 받으려면 9분을 기다려야 한다. 휴지 도둑을 막기 위한 당국의 조치라 하는데,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미국도 안면인식 기술의 선두에 있다.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앞장선다. 공공 영역에서는 출입국자 관리, 범죄 수사에 주로 쓰인다. 그런데 안면인식 기술 오류 탓에 ‘생사람 잡는 일’이 처음 발생했다.

최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42세 흑인 남성 로버트 윌리엄스가 이 기술 때문에 좀도둑으로 몰려 불법 체포됐다 30시간 만에 풀려났다면서 시 당국을 고소했다. 해상도 낮은 가게 CCTV 화면 속 범인과 윌리엄스의 면허증 사진이 일치한다고 분석한 안면인식 기술이 문제였다. 경찰은 이제서야 윌리엄스의 사진 데이터를 삭제했다고 한다. 편견이 들어있고, 부정확하며, 오·남용될 우려가 큰 안면인식 기술은 ‘악마의 기술’일 뿐이다. 그것은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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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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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의 아름다운 찻집 6대가 지켜온 한옥 구례 쌍산재

◇ 남도의 아름다운 찻집 6대가 지켜온 한옥 구례 쌍산재

◇ 남도의 아름다운 찻집 6대가 지켜온 한옥 구례 쌍산재

차(茶)는 맛만큼 분위기가 중요하다. 차를 마시는 사소한 일도, 고즈넉한 고택에서 하면 낭만이 된다. 햇볕 잘 드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바람 맞으며 목을 축이는 것만으로도 평온이 찾아오는 법이다. 오랜 삶의 흔적, 느긋한 풍경이 있는 찻집을 찾아 남도로 다녀왔다.

전남 구례 상사마을은 예부터 명당으로 통했다. 지리산(1915m) 남쪽 자락에 걸터앉아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농촌이다. 마을 안쪽에 약 200년 역사의 고택 쌍산재가 있다. 안채·사랑채·건너채 등 여러 살림채가 대숲 언덕을 따라 적당히 거리를 두고 들어앉아 있다.

해주 오씨 가문이 6대에 걸쳐 살아온 집인데, 2004년 일반에 개방했다. “오래된 집은 사람이 많이 드나들어야 윤기가 생기고 더 단단해진다”고 6대 오경영씨는 말한다. 고택 6채를 한옥 체험 시설로 꾸렸는데, 하룻밤에 8만~20만원을 받는다. 관람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입장료(5000원)를 내면 매실차 같은 전통차를 내어준다.

차를 한 잔 받아들고 고택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숲 언덕 너머에 너른 정원과 연못이 있는데, 요즘은 연꽃과 화초가 한창 멋을 부린다. 기념사진 명당으로 통하는 서당채 만큼은 숙박을 받지 않는다.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고택과 정원이 알아서 그림을 만들어준다. 덕분에 손님 대부분이 20대 연인이다. 당몰샘도 명물이다.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 우물로, 쌍산재 바깥마당에 있다. 쌍산재에서도 이 물로 차를 낸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