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6일 수요일

◇ 태양과 바람이 공짜라는 그 유혹의 이면에는....

◇ 태양과 바람이 공짜라는 그 유혹의 이면에는....

◇ 태양과 바람이 공짜라는 그 유혹의 이면에는....

사람들은 ‘착한 에너지’가 왜 우리 숲과 들판을 집어삼키고 있는지 궁금하다.

기후위기와 탄소의 셈법에서 우리는 중요한 진실 하나를 빼놓았다. 전기와 토지의 관계다.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려면 광대한 토지가 필요하다.

10년 전 사하라사막에 태양광발전 시설을 설치해서 유럽에 전기를 공급하려 했던 ‘데저텍(desertec) 프로젝트’처럼 그동안 대규모의 태양광 에너지 공급계획은 항상 사막이나 황무지를 대상으로 구상되었다. 문제는 그 토지가 누군가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다.

얼마 전 제주에선 해상풍력발전단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시위가 있었다. 해녀들의 손팻말에는 “아름다운 제주 바당 풍력발전 설러불라(집어치워라)”라고 쓰여 있었다. 그 바다는 물질로 자식 키우고 살아낸 해녀들의 텃밭이고, 돌고래의 집이며, 어선의 항로이고, 새들의 고향이었다.

하지만 탄소 발생을 줄이려면, 결국 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로의 전환은 필수적이지 않은가? 이런 생각은 오늘날 유일한 정답처럼 되어 있다. 다른 답은 없을까? 농촌의 노인들은 지구온난화를 ‘물이 줄어 땅이 뜨거워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강물이 마른 것, 논이 줄어든 것, 샘과 우물이 없어진 것, 수로를 사용하지 않아 공동의 수로관리가 없어진 것, 그런 것이 모두 땅을 마르게 하고 공기를 뜨겁게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직관적이고 상식적인 혜안은 과학적 분석보다 훨씬 더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답은 불을 줄이고 물을 늘리는 것. 자동차는 줄이고 논과 숲은 늘려야 한다. 에너지의 종류가 아니라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제러미 리프킨류의 시장주의적 그린뉴딜은 ‘태양과 바람은 공짜’라며 우리를 유혹한다. 저 말은 땅은 얼마든지 있다고 환호하던 신대륙의 침략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태양도 바람도 공짜는 없다. 전기는 누군가의 땅과 몫을 빼앗고 우리에게 온다. 중동의 석유 전쟁은 배터리 원료인 리튬 전쟁으로 옮겨갔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소농들은 대규모 바이오연료 생산지에 땅을 빼앗기고 있다.

현재와 같은 문명적 삶을 유지하면서 그 동력을 모두 친환경에너지로 바꾼들, 그것이 다른 지역의 생태계와 삶터를 파괴하고, 값싼 노동과 희귀자원을 착취해서 이뤄지는 것이라면, 과연 ‘정의로운 전환’인가? 이제 그걸 물어봐야 한다.

-경향신문 채효정(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저자) 칼럼-

◇ 해운대, 광안리서 야간에 '치맥' 먹으면 벌금 300만원

◇ 해운대, 광안리서 야간에 치맥 먹으면 벌금 3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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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대, 광안리서 야간에 치맥 먹으면 벌금 3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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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이 문을 닫은 밤에 백사장에서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으면 10일부터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 수 있다. 올여름 해수욕장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막으려는 정부의 추가 조치다.

해양수산부는 해수욕장에서 개장시간이 끝난 야간에 음주·취식 행위를 금지하는 집합제한 행정명령을 발령한다고 8일 발표했다. 대상은 지난해 이용객 30만 명 이상인 대형 해수욕장으로, 부산 해운대, 광안리, 송도, 송정, 다대포 해수욕장과 강원도 경포 해수욕장 등 전국 21곳이다. 앞서 지난 4일 충청남도는 대형 해수욕장인 대천·만리포 해수욕장을 비롯해 자체적으로 6개 해수욕장에 집합제한 명령을 내렸다. 이후 7일간의 계도 기간을 거친 뒤 오는 10일부터는 밤에 백사장에서 음식이나 술을 먹을 수 없다.

부산·강원도 등 나머지 지역의 대형 해수욕장에는 18일 행정명령을 내리고 24일부터 본격적으로 야간 음주·취식을 금지할 계획이다. 이로써 전국 총 25곳의 해수욕장에서 폐장일까지 야간 음주·취식이 금지된다. 해수부 관계자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경찰 등과 함께 합동 단속을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간 이용객 30만 명 이상 대형 해수욕장(21개)

부산 해운대·광안리·송도·다대포·송정, 충남 대천·만리포, 강원도 경포·낙산·속초·삼척·망상·맹방·추암·하조대, 전남 신지명사십리, 울산 일산·진하, 제주도 함덕·협재, 경북 고래불

※충남 자체 조치 해수욕장

몽산포·왜목마을·무창포·춘장대

-중앙일보-

맹인직문盲人直門 - 장님이 문 바로 들다, 재주 없이 우연히 성취하다.

맹인직문盲人直門 - 장님이 문 바로 들다, 재주 없이 우연히 성취하다.

맹인직문(盲人直門) - 장님이 문 바로 들다, 재주 없이 우연히 성취하다.

소경 맹(目/3) 사람 인(人/0) 곧을 직(目/3) 문 문(門/0)

앞이 보이지 않거나 잘 듣지 못하는 사람, 말을 더듬고 걷기를 잘 못하는 등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이 유달리 많다. 요즘은 단지 어느 한 부분이 불편할 뿐이라는 인식이 많아졌지만 지난 사회에서는 놀리는 것도 모자라 사람 취급도 않았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눈이 어두운 시각장애인을 盲人(맹인), 瞽者(고자) 외에 낮춰 부르는 말만 해도 장님, 소경, 봉사 등 숱하다. 심지어 세상 물정에 어둡거나 글을 모르는 사람을 비유하기도 했다. ‘장님에게 눈으로 가리키고 벙어리에게 속삭인다’는 말로 어리석게 행동하여 번번이 실패하는 것을 말하는 식이다.

속담은 더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있는 장님, 소경, 봉사로 시작되는 속담이 90건이 넘는다. 우리 속담 130종을 조선 仁祖(인조) 때의 학자 洪萬宗(홍만종)이 한자로 번역한 ‘旬五志(순오지)’에서 몇 개만 보자. ‘소경의 안질’이란 말은 盲人眼疾(맹인안질)로, 있으나 마나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장님이 문 바로 들어갔다’는 말은 盲人直門(맹인직문)으로 번역되어 재주가 없는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잘했을 경우와, 무턱대고 한 일에 뜻밖의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때 사용됐다. ‘맹인이 문을 바로 찾아 다행히 일을 성사시킨 것을 비유했다(盲人直門 以喩成事幸/ 맹인직문 이유성사행)’고 설명하고 있다.

전체의 뜻은 같으나 약간 뉘앙스가 다른 속담도 보자. ‘소 뒷걸음치다 쥐잡기’는 물론 재주는 없지만 우연히 공을 세운 것을 뜻한다. 별로 애쓰지 않고도 능히 잘 이루어낼 때는 ‘공중을 쏘아도 알과녁만 맞춘다’고 한다. 알과녁은 과녁의 한복판이다. 射空中鵠(사공중곡)으로 번역됐다. 눈 먼 거북이가 물에 뜬 나무를 만났다는 盲龜遇木(맹귀우목)은 어려운 지경에서 뜻밖의 행운을 맞이하는 것을 뜻했다.

한 가지가 불편할 뿐인 장애인을 두고 자신은 그보다 못하면서 무턱대고 낮춰보는 사람이 아직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心眼(심안)이 발달한다고 한다. 장애를 딛고 훌륭한 업적을 이룬 위인들은 얼마 전 세상을 뜬 스티븐 호킹 박사나 聾盲啞(농맹아) 3중장애를 이겨냈던 헬렌 켈러 등이 먼저 꼽힌다. 겉으로만 보지 말고 내면의 장기를 먼저 알아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소력탈국消力奪國 – 힘을 빠지게 한 뒤 나라를 빼앗다.

소력탈국消力奪國 – 힘을 빠지게 한 뒤 나라를 빼앗다.

소력탈국(消力奪國) – 힘을 빠지게 한 뒤 나라를 빼앗다.

사라질 소(氵/7) 힘 력(力/0) 빼앗을 탈(大/11) 나라 국(囗/8)

생사가 오가는 전쟁에서는 속임수가 판쳐도 비난할 수가 없다. 싸움터에서는 계책을 써야 할 뿐만 아니라 속임수를 쓰는 것도 부끄러워하거나 싫증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兵不厭詐(병불염사)란 말이 가르친다. 대표적인 병법서 孫子兵法(손자병법)에서도 전쟁이란 속이는 것이라며 강한 전투력이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가까운 곳을 노리면서도 적에게는 먼 곳을 노리는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한다고 했다. 混水摸魚(혼수모어)란 것이 있다. 三十六計(삼십육계)의 하나인데 물을 흐리게 하여 고기를 잡는다는 계책이다. 적의 내부에 잠입하여 적진을 교란하고 지휘본부를 혼란에 빠뜨린다.

교묘한 수로 적국의 힘을 빠지게 한(消力) 다음 그 나라를 침공하여 빼앗는다(奪國)는 이 성어도 속임수를 이용한 것에서 마찬가지다. 三國史記(삼국사기)와 古今淸談(고금청담) 등에서 우리나라 고사성어를 수집, 정리한 임종대의 ‘韓國故事成語(한국고사성어)’에 百濟(백제)의 蓋鹵王(개로왕, 455〜475)을 예로 들고 있다. 21대 왕인 개로왕은 즉위 초에는 나라를 정비하고 부국강병을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高句麗(고구려)와의 사이가 좋지 않을 때라 남쪽 변경을 수시로 공략하여 피해를 줬다. 그런데 개로왕에게 약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둑을 무척 즐긴다는 것이다. 수가 높은 사람을 보면 누구든 궁중으로 불러들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국에 빠졌다.

어느 날 道琳(도림)이라는 스님이 개로왕을 찾아왔다. 자신은 고구려의 승려로 죄를 지어 백제로 도망 왔는데 왕의 바둑이 높다는 소문을 듣고 한 수 배우러 왔다고 했다. 도림은 長壽王(장수왕)이 백제의 국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첩자로 보낸 사람이었다. 그것을 알 수 없는 개로왕은 도림의 높은 바둑 수에 매료되고 말았다.

빈객으로 대접을 받던 도림이 왕에게 백제는 산이 험준하여 적국이 잘 넘보지 못하므로 궁궐을 크게 지어 위엄을 나타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옳다고 생각한 왕은 나라의 장정을 동원하여 큰 궁궐을 완성했고, 국고를 채우기 위해 가혹하게 세금을 거뒀다. 노역에 찌든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자 도림이 살짝 고구려로 빠져나간 뒤 공격하게 했다. 뒤늦게 속은 것을 안 개로왕은 도망쳤으나 阿且城(아차성)에서 살해됐다. 漢城百濟(한성백제)도 막을 내리게 된다.

초기의 영명한 군주가 바둑에 빠져 나라를 파국에 이르게 한 것은 개로왕을 탓할 일이다. 그것을 이용해 고구려는 첩자 도림을 보내는 등 전쟁만으로 보면 속임수를 탓하기보다 전략을 잘 수행한 것이 된다. 큰일을 수행하려면 빈틈이 없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본립도생本立道生 - 기본이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

본립도생本立道生 - 기본이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

본립도생(本立道生) - 기본이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

근본 본(木/1) 설 립(立/0) 길 도(辶/9) 날 생(生/0)

모든 일에 기초와 근본이 중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큰 건물이 무너지고, 튼튼한 다리가 끊어지는 것은 처음 시작할 때 기초가 부실한 데서 온다. 지금 훌륭한 인물이 처음부터 우뚝했을 리 없고, 오랫동안 찬탄을 받는 기념물도 탄생 때는 미약했다. ‘낙락장송도 근본은 종자’라는 말처럼 처음엔 보잘 것 없던 것이 쉼 없이 아끼고 가꾸는데서 자라났다. 老子(노자)도 道德經(도덕경)에서 기초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작은 싹에서 자라나고, 아홉 층 높은 다락도 한 삼태기 흙에서 세워진다(合抱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합포지목 생어호말 구층지대 기어루토).’

기본을 세우면(本立) 나아갈 길이 생긴다(道生)는 당연하고도 중요한 말은 ‘論語(논어)’에 나온다. 기본 없이 시작할 수는 있지만 일을 계속하고 성취할 수는 없다. 빨리 이루려고 건너뛰어서는 부실만 남으니 기초를 다질 수밖에 없다. 논어의 學而(학이)편 제2장에서 有子(유자)가 한 말로 등장한다. 유자는 顔子(안자, 顔回)나 曾子(증자, 曾參)와 같이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존칭을 붙여 거명되는데 본명은 有若(유약)이다. 孔門十哲(공문십철)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공자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은 제자로 후인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유자가 말한 내용을 보자.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공손하면서 윗사람을 거스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면서 이어진다. ‘윗사람을 거스르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불호범상 이호작란자 미지유야). 군자는 근본에 힘쓰는 것이니 근본이 확립되면 사람의 도리도 생겨난다(君子務本 本立而道生/ 군자무본 본립이도생).’ 그러면서 사람의 도리가 생겨나는 근본은 孝弟(효제)에 있다고 했다. 부모를 섬기는 도리, 형과 어른을 섬기는 도리가 효제인데 孝悌(효제)와 같이 쓰인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라도 기본이 다져져 있으면 크게 염려할 것이 없다. 한 해가 시작될 때 정치나 경제계 지도층 인사들이 잘 인용하는 말도 이 성어다. 광범위한 방면에 기초가 각각 다를 수 있지만 끔찍한 사고가 잇따르고, 법과 질서를 예사로 어기며, 아랫사람을 하찮게 여기는 인성 부재도 기본적인 도리를 소홀히 한 데서 비롯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자광藉光 – 남의 남는 빛을 사용하다, 남의 덕을 보다.

자광藉光 – 남의 남는 빛을 사용하다, 남의 덕을 보다.

자광(藉光) – 남의 남는 빛을 사용하다, 남의 덕을 보다.

깔 자(艹/14) 빛 광(儿/4)

깔 藉(자)란 혼동하기 쉬운 글자는 깐다는 뜻 외에 자리란 의미로는 독음이 ‘자’이지만 짓밟다, 업신여기다란 뜻일 땐 ‘적’, 빌리다, 의지하다란 뜻일 땐 ‘척’으로도 읽는다. 머리부수가 대 竹(죽) 아래 글자 문서 籍(적)과도 자주 헷갈린다. 남의 남는 빛을 쓴다는 이 성어는 의미가 바로 떠올리기 쉽지 않아도 남의 덕택에 거저 이익을 보게 된다는 ‘남의 떡에 설 쇤다’는 속담과 딱 어울린다. 비슷한 뜻의 속담이 ‘남의 떡으로 조상 제 지낸다’, ‘남 켠 횃불에 조개 잡듯’, ‘남의 팔매에 밤 줍는다’ 등등 많다. 어떻게 보면 옛날이나 오늘이나 전혀 피해를 주지 않아도 노력도 없이 남들 덕으로 편리를 본 얌체를 미워했던 듯한 말이다.

戰國時代(전국시대) 楚(초)나라 甘茂(감무)라는 사람이 있었다. 秦(진)나라 惠王(혜왕)을 섬겨 좌승상으로 있다가 昭王(소왕) 때 참언에 몰려 齊(제)나라로 달아났다. 국경지대인 函谷關(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진나라로 사신을 오던 제나라의 蘇代(소대)를 만났다. 소대는 유명한 종횡가 蘇秦(소진)의 동생 그 사람이다. 감무는 소대에게 이야기를 주고받다 ‘강변처녀(江上之處女/ 강상지처녀)’를 들려주었다.

처녀들이 모여 촛불을 밝히고 일을 하는데 형편이 구차한 한 처녀는 초를 살 돈이 없어 밤마다 남의 불빛 아래 일을 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다른 처녀들이 아니꼽게 여겨 쫓으려 하자 하소연했다. 자신은 대신 일찍 와서 자리를 정돈하고 청소를 한다며 어차피 남아도는 불빛을 빌려 쓴다고 해서 손해가 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여러 처녀들이 들어보니 일리가 있어 그 뒤로는 같이 일하게 했다. ‘史記(사기)’의 감무 열전과 ‘戰國策(전국책)’ 秦策(진책)에 실려 있다.

감무는 소대에게 제나라에서 자신이 가난한 처녀와 같이 피해를 끼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으니 남는 빛으로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간청했다. 사신을 마치고 온 소대는 감무를 추천하여 上卿(상경)의 자리를 앉게 했다.

조그만 도움이라도 받은 사람은 감지덕지한다. 자신이 크게 힘을 쓰지도 않았으면서 남이 조금 잘 됐다 싶으면 온갖 생색을 내는 사람이 있다. 언제 도움을 받을 처지가 될지 모르는데 낯 간지러운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작사도방作舍道傍 - 길옆에 집짓기, 의견이 많아 얼른 결정하지 못함

작사도방作舍道傍 - 길옆에 집짓기, 의견이 많아 얼른 결정하지 못함

작사도방(作舍道傍) - 길옆에 집짓기, 의견이 많아 얼른 결정하지 못함

지을 작(亻/5) 집 사(舌/2) 길 도(辶/9) 곁 방(亻/10)

어떤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때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한다.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막상 결정이 늦으면 갈피를 못 잡는다. 이 사람 말도 옳은 것 같고, 저 사람 말도 맞는 것 같다. 이럴 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우리 속담이 정확히 나타낸다. 주관하는 사람이 없이 사람마다 자기주장만 내세우면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집을 짓는데(作舍)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길 옆 터에서 공사(道傍)를 한다는 이 말은 지나가는 이 사람이 한 마디, 저 사람이 한 마디 하는 바람에 결정하지 못하고 부지하세월이 된다는 뜻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趙在三(조재삼, 1808~1866)의 백과사전 ‘松南雜識(송남잡지)’ 중에서 방언류에 ‘길가에 집을 지으면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다 듣다 보니 삼년이 걸려도 이루지 못한다(作舍道傍 三年不成/ 작사도방 삼년불성)’는 말이 나온다. 실제 훨씬 그 이전부터 비슷한 뜻으로 사용된 예가 나온다. 서양 동화 중에서 잘 알려진 ‘팔려가는 당나귀’도 같은 가르침이다. 부자가 당나귀를 팔러 가는데 길가 사람들의 말을 듣고 끌고 가다, 타고 가다, 메고 가다 나중에는 개울에 빠뜨리고 만다.

가장 오래된 중국의 시집 ‘詩經(시경)’에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나온다. ‘마치 길가는 사람에게 집 지을 일 의논함과 같으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리로다(如彼築室于道謀 是用不潰于成/ 여피축실우도모 시용불궤우성)’라고 했다. 潰는 무너질 궤. 小雅(소아)편에 실려 있는 小旻(소민)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여기서 築室道謀(축실도모)는 똑 같은 뜻으로 사용됐다. 거의 비슷한 표현은 宋(송)의 역사가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에 나온다.

후한 3대 章帝(장제) 때의 학자 曹褒(조포, ?~102)가 왕명을 받고 禮制(예제)를 정리하고 冠婚凶吉(관혼흉길)의 제도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생들마다 자기주장을 펼쳐 그들에 너무 휘둘리지 말라며 장제가 힘을 실어준다. ‘속담에 이르길 길가에 집을 지으면 삼년가도 못짓는다(諺言作舍道邊 三年不成/ 언언작사도변 삼년불성)’고 했으니 밀고 가라는 의미였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빈천자교인貧賤者驕人 - 빈천한 사람이 업신여긴다, 잃을 것이 없어 떳떳하다.

빈천자교인貧賤者驕人 - 빈천한 사람이 업신여긴다, 잃을 것이 없어 떳떳하다.

빈천자교인(貧賤者驕人) - 빈천한 사람이 업신여긴다, 잃을 것이 없어 떳떳하다.

가난할 빈(貝/4) 천할 천(貝/8) 놈 자(耂/5) 교만할 교(馬/12) 사람 인(人/0)

별 갖춘 것도 없는 사람이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지다면 驕慢(교만)하다고 모두들 멀리 한다. ‘대신댁 송아지 백정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잘 말해준다. 교만은 패망의 시초라고 말한 사람도 있고, 인간이 자기를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견해에서 오는 기쁨이 倨慢(거만)이라고 한 격언도 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라고 예수님은 가르쳤다. 孔子(공자)님도 ‘교만한 것보다는 차라리 빈천한 것이 낫다’고 述而(술이)편에서 경계했다.

가난하고 천한 사람(貧賤者)이 남을 업신여긴다(驕人)는 이 말은 빈천이 교만보다 낫다고 했지만 의외다. 재산도 권력도 없는 무지렁이가 남을 깔보고 교만하다면 상대할 사람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달리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으니 남에게 굽실거릴 것이 없다고 보면 이해할 만하다. 가진 사람은 잘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욱 남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이 말은 ‘史記(사기)’나 ‘十八史略(십팔사략)’, ‘說苑(설원)’ 등 여러 곳에서 같은 이야기로 나온다.

戰國時代(전국시대) 魏(위)나라의 文侯(문후)는 이름난 학자 田子方(전자방) 등을 중용하면서 강국으로 이끌었다. 위문후의 아들 擊(격)이 中山君(중산군)으로 봉해져 부임하는 길에 낡은 수레를 타고 가는 전자방을 만났다. 격은 공손히 예를 표했으나 전자방이 그냥 지나치자 달려가 물었다. ‘부귀한 자가 사람에게 교만합니까, 빈천한 자가 교만합니까(富貴者驕人乎 且貧賤者驕人乎/ 부귀자교인호 차빈천자교인호)?’ 전자방은 빈천한 자가 교만하다며 설명한다. ‘군주가 교만하면 사직을 보전할 수 없고, 대부가 교만하면 가문을 보존할 수 없습니다(夫諸侯而驕人則失其國 大夫而驕人則失其家/ 부제후이교인즉실기국 대부이교인즉실기가).’ 사기의 魏世家(위세가)에 실린 부분이다.

권세에 굴하지 않은 전자방은 위문후에 더욱 존경을 받았다. 잃을 것이 없다고 하지만 요즘의 직장인들은 업주나 상사들이 갑질하는 데도 떠날 형편이 못 되면 속으로만 앓는다. 그렇다고 높은 자리에서 교만을 부리는 재벌 3, 4세나 권력자들은 오래 갈까. 사원이나 부하들의 마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파멸만이 기다린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마중지봉麻中之蓬 - 삼밭 가운데서 자라는 쑥, 주위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음

마중지봉麻中之蓬 - 삼밭 가운데서 자라는 쑥, 주위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음

마중지봉(麻中之蓬) - 삼밭 가운데서 자라는 쑥, 주위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음

삼 마(麻/0) 가운데 중(丨/3) 갈 지(丿/3) 쑥 봉(艹/11)

교육에 관한 성어가 많은 만큼 가르치는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도 많다. 검은 먹을 가까이하면 자신도 검어진다. 近墨者黑(근묵자흑)이다. 孟子(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이나 이사를 하며 교육환경 좋은 곳을 골랐다. 孟母三遷(맹모삼천)이다. 남쪽의 귤이 북방에 가면 탱자로 되는 南橘北枳(남귤북지, 枳는 탱자 지)도 알려져 있다. 삼밭 가운데서(麻中) 자라는 쑥(之蓬)이라는 이 성어도 죽죽 곧게 자라는 삼밭에서는 아무렇게나 커가는 쑥도 영향을 받아 바르게 클 수밖에 없다. 환경이 좋거나 선량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자연스레 주변에 따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荀子(순자)’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性惡說(성악설)을 주장해 맹자에 맞섰던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 荀況(순황)의 저작이다. 첫 부분 勸學(권학)에 실려 있는 ‘옆으로 벋으며 자라는 쑥도 곧게 자라는 삼밭에서 자라나면 붙잡아주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蓬生麻中 不扶而直/ 봉생마중 불부이직)’에서 나왔다. 蓬生麻中(봉생마중)이란 성어도 출처가 같다. 바로 이어지는 부분이 ‘하얀 모래도 검은 진흙 속에 있으면 모두 검어진다(白沙在涅 與之俱黑/ 백사재열 여지구흑)’이다. 涅은 개흙, 열반 열.

다른 예도 재미있는 것이 많다. 서쪽 지방의 길이 네 치의 작은 射干(사간)이란 나무는 높은 꼭대기에 자라서 먼 곳을 볼 수 있다. 이런 자리를 잘 잡은 것과 반대로 남쪽 지방의 蒙鳩(몽구)라는 새는 둥지를 튼튼히 지어도 갈대에 매달았기 때문에 부러져 새끼를 죽게 한다. 향기가 좋은 蘭槐(난괴)의 뿌리 芷(지)가 흙탕물에 잠기면 그 향초에 군자든 일반 사람이든 가까이 하지 않는다. 蘭芷漸滫(난지점수)란 성어는 여기서 나왔다. 滫는 뜨물 수.

악한 사람을 가까이하면 반드시 자신도 화를 입게 된다고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고 했다. 공익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공직자가 이권을 노리고 접근하는 무리들에 의해 뇌물을 받고 쌓아온 명예를 먹칠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약자를 위해, 정의를 위해 주어진 권한을 브로커의 유혹에 빠져 향응을 받는 다거나 정권 수호를 위한 방패가 되는 법조인들은 더욱 검은 무리들과 멀리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모수자천毛遂自薦 – 모수라는 사람이 자신을 추천하다.

모수자천毛遂自薦 – 모수라는 사람이 자신을 추천하다.

모수자천(毛遂自薦) – 모수라는 사람이 자신을 추천하다.

털 모(毛/0) 드디어 수(辶/9) 스스로 자(自/0) 천거할 천(艹/13)

보통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나서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속이 찬 사람이라도 잘난 체 하면 ‘제 코도 못 씻는 게 남의 부뚜막 걱정한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꼭 나온다. 그래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싶더라도 뒤로 빠진 채 남에게 미루는 일이 많아 ‘제가 춤추고 싶어서 동서를 권한다’는 속담이 남았다. 하지만 아주 가끔 ‘제 팔 제가 흔들기’란 속언이 있듯 만류를 무릅쓰고 자기가 앞장서서 일 처리를 나서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람이 이룩한 일을 보고는 뒤늦게 평가하는 것이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주인에게 스스로 추천한 사람의 원조는 毛遂(모수)라 이런 성어가 전한다. 그는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趙(조)나라에 살았던 平原君(평원군)의 식객이었다. 각 제후국에서는 지혜와 술수를 갖춘 빈객들을 수천 명씩 거느렸는데 평원군도 戰國四公子(전국사공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다른 세 사람은 유명한 齊(제)나라의 孟嘗君(맹상군), 魏(위)의 信陵君(신릉군), 楚(초)의 春申君(춘신군)이다. 조나라 惠文王(혜문왕)의 동생이었던 평원군은 이름이 勝(승)으로 세 번이나 재상에 오를 만큼 빈객들의 지혜로 능력을 발휘했다.

당시의 강국 秦(진)나라가 조의 도읍 邯鄲(한단, 邯은 조나라서울 한, 鄲은 한단 단)을 포위하자 조왕은 평원군을 시켜 楚(초)나라에 합종하도록 명했다. 평원군은 식객들 중에서 문무에 정통한 20명을 골라 데리고 가려 했다. 19명을 쉽게 고르고서 적당한 1명을 찾지 못해 고심할 때 모수라는 사람이 자청했다. ‘한 사람이 부족하면 원컨대 저를 수행원으로 데려가 주십시오(今少一人 願君卽以遂備員而行矣/ 금소일인 원군즉이수비원이행의)’. 그는 문하에 온지 3년이나 되었어도 별다른 재주를 보이지 못한 터라 평원군은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모수는 송곳이라도 주머니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뛰어날 기회가 없었다며 합류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囊中之錐(낭중지추)라는 고사도 여기서 나왔다. ‘史記(사기)’ 평원군열전에 실려 있다.

후일담은 어떻게 됐을까. 모수는 다른 19명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 초왕과 직접 담판하여 합종을 성사시켰다. 평원군은 귀국한 뒤 상객으로 대접했다. 이처럼 모수는 자신을 천거하여 어려운 일을 스스로 맡아 나선 격이니 제 팔을 잘 흔들었다. 그러나 낄 때나 빠질 때나 일의 전후도 모르고 나서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차츰 의미가 변질되기도 했으니 조심해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