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7일 목요일

묵적지수墨翟之守 - 묵적의 지킴, 옛날 생각이나 습관을 굳게 지킴

묵적지수墨翟之守 - 묵적의 지킴, 옛날 생각이나 습관을 굳게 지킴

묵적지수(墨翟之守) - 묵적의 지킴, 옛날 생각이나 습관을 굳게 지킴

먹 묵(土/12) 꿩 적(羽/8) 갈 지(丿/3) 지킬 수(宀/3)

다른 사람과 한 약속은 잘 지켜야 믿음을 얻는다. 하지만 약속은 지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는 최상의 방법은 결코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란 옹고집도 있고 ‘고리 백정 낼 모레’라는 속담처럼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을 욕하기도 한다. 老子(노자)가 숭낙을 쉽게 하면 믿음성이 적다고 한 輕諾寡信(경낙과신)이다. 그렇다고 한 번 약속이라며 주위상황이 바뀐 것도 무시하고 우직하게 지키려 하는 것도 어리석다. 부친의 도둑질을 증언했던 直躬(직궁)이나 여인과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려다 물에 빠져 죽은 尾生(미생)의 행위는 본받을 일이 되지 못한다.

墨子(묵자)는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로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이롭게 하여야 한다는 兼愛說(겸애설)을 주장했다. 본명이 墨翟(묵적)인 그가 楚(초)나라의 공격을 잘 막아 宋(송)을 지켜냈다(之守)는 이 말은 옛날 습관이나 자기의 생각을 굳게 지킨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의미가 점차 넓어져 나라를 잘 지키는 훌륭한 수비를 일컫기도 하고, 낡은 관습과 태도를 끝내 견지하는 옹고집, 보수적인 태도를 가리키기도 한다. 옛 방식을 고집하는 膠柱鼓瑟(교주고슬)이나 守株待兎(수주대토), 抱柱之信(포주지신)과 통하는 셈이다. ‘묵자’ 公輸盤(공수반)편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魯班(노반)이라고도 불리는 공수반은 온갖 기계를 잘 만드는 명장이었다. 그가 초나라에 와서 송나라를 치기 위한 전차와 성을 넘나드는 구름사다리 雲梯(운제)를 만들었다. 묵자가 이 소식을 듣고 대국이 조그만 나라를 치지 말라고 초나라 왕과 공수반을 설득했다. 그러면서 공수반의 공격을 막아 보겠다고 했다. 초왕 앞에서 모형 공방전이 벌어졌다. ‘공수반은 모든 구름사다리와 기구를 총동원했지만 묵자는 모두 막아내고도 여유가 있었다(公輸盤之攻械盡 子墨子之守圉有餘/ 공수반지공계진 자묵자지수어유여).’ 圉는 마부, 옥이란 뜻 외에 막는다는 뜻이다. 이것으로 묵자는 송나라를 치지 않겠다는 초왕의 약속을 받아냈다.

墨守(묵수)라고 줄여서 말하기도 하는 이 성어는 온갖 방책을 써서 나라를 지킨다는 뜻도, 융통성 없이 약속을 지키려 한다는 뜻도 국방을 위해서는 모두 합당한 말이다. 온갖 미사여구와 속임수가 판치는 국가 간의 약속은 무력이 강한 나라에 의해 언제나 깨질 수가 있으므로 항상 대비하면서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불효자오不孝者五 – 다섯 가지 불효

불효자오不孝者五 – 다섯 가지 불효

불효자오(不孝者五) – 다섯 가지 불효

아닐 불(一/3) 효도 효(子/4) 놈 자(耂/5) 다섯 오(二/2)

인간의 도리라며 예부터 중시하고, 고금의 효자를 기리며 상찬해도 불효는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악독한 위인이라도 부모 앞에서는 말을 잘 따르는 순둥이가 된다. 그래서 남이 볼 때는 어버이를 효성스럽게 잘 섬기지 않아 손가락질 받는 불효자라도 부모는 감싸고 싶어 한다. 또 모두들 욕하는 부모님일지라도 자식이 정성스럽게 섬기면 효일 수 있다. 이처럼 상대적인 불효에 대해 명쾌하게 규정한 글이 있다. 세상에서 하지 않아야 할 다섯 가지 불효를 孟子(맹자)가 설명한다. ‘맹자’ 離婁(이루) 하편에 나온다.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에 匡章(광장)이란 장군이 있었다. 秦(진)나라가 공격해 왔을 때 양국의 깃발을 섞는 전술로 대승을 거두었고, 燕(연)나라에 내란이 일어난 틈을 타 수도를 함락시키는 등 공이 컸다. 그런데 그는 온 나라 사람들이 불효한 자라고 욕을 듣고 있었다. 광장의 어머니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데 그의 아버지가 살해한 뒤 마구간에 파묻었다. 광장은 여러 번 이장을 요구했으나 부친은 죽을 때까지 끝내 듣지 않았다. 그 후 부모에 죄를 지은 몸으로 처자의 봉양을 받을 수 없다며 처를 내보내고 자식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맹자는 이런 광장과 교유하고 예를 갖춰 대하므로 제자 公都子(공도자)가 어떤 연유인지 물었다. 세상에서 불효라고 말하는 것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世俗所謂不孝者五/ 세속소위불효자오)며 설명한다. 첫째 제 몸을 게을리 놀려 부모 봉양을 하지 않는 것(惰其四支/ 타기사지), 장기나 바둑 같은 노름에 빠지는 것(博奕好飮酒/ 박혁호음주),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식만 편애하는 것(好財貨 私妻子/ 호재화 사처자), 제 욕심만 차려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從耳目之欲 以爲父母戮/ 종이목지욕 이위부모륙), 만용을 일삼아 사납게 싸워 부모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好勇鬪很 以危父母/ 호용투흔 이위부모)이 그것이다. 광장은 한 가지도 해당되지 않으니 불효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很은 말다툼할 흔.

맹자는 舜(순)임금의 부친이 만약 살인을 했더라도 아버지를 업고 도망쳐 조용히 살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렇게 부모를 감싸는 것이 옳다고 말하지만 모두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임금에게도 잘못을 간해야 하는데 잘못을 법에 알리지는 못해도 자수 등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다섯 가지 불효를 않더라도 효도하기는 이처럼 어렵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동량지재棟樑之材 - 마룻대와 들보 같은 재목, 중요한 일을 맡을 인재

동량지재棟樑之材 - 마룻대와 들보 같은 재목, 중요한 일을 맡을 인재

동량지재(棟樑之材) - 마룻대와 들보 같은 재목, 중요한 일을 맡을 인재

마룻대 동(木/8) 들보 량(木/12) 갈 지(丿/3) 재목 재(木/3)

젊은이를 가리켜 나라의 기둥이라 한다. 지난 세대까지만 해도 맏아들은 집안의 기둥이라 했다. 기둥은 물론 집을 지을 때 주춧돌 위에 세운 나무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나타낸다. 지금은 주추로 변했지만 일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柱礎(주초)다. 기둥과 주춧돌을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柱石(주석)이라 한다. 하지만 이것만 있어서는 집을 이룰 수 없다. 기둥을 이어주는 대들보가 있어야 하고 지붕을 떠받쳐주는 마룻대가 있어야 한다. 요즈음이야 기둥을 모두 철근으로 대체하여 이러한 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모르더라도 기초가 튼튼해야 멋지고 훌륭한 집을 짓게 되는 것은 같다.

등성이를 이루는 지붕이나 산 따위의 꼭대기가 마루인데 서까래를 지탱하며 집의 중앙을 버티게 하니 마룻대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지붕 가운데 부분에 있는 가장 높은 수평 마루인 용마루를 웅장하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기둥과 기둥 사이의 들보가 없으면 상단부가 형체를 유지할 수가 없다. 마룻대와 들보(棟樑) 같은 재목(之材)이라 한 이 말은 한 집안이나 나라를 떠받치는 중요한 일을 맡을만한 인재를 가리킨다. 큰 집을 이루는 大廈棟樑(대하동량), 또는 줄여서 棟梁(동량)이라고도 한다.

이 성어는 ‘吳越春秋(오월춘추)’에서 용례가 보인다. 吳越同舟(오월동주)란 말이 있듯이 중국 남방의 두 나라가 서로 경쟁하며 패권을 차지하기까지 흥망성쇠를 그린 책이다. 前漢(전한)의 趙曄(조엽, 25-56)이 썼다. 越王(월왕) 句踐(구천)을 섬겨 吳王(오왕) 闔閭(합려)에 패한 뒤 臥薪嘗膽(와신상담)을 하게 한 대부 文種(문종)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대부 문종은 나라의 동량이요, 임금의 조아이다(大夫文種者 國之梁棟 君之爪牙/ 대부문종자 국지량동 군지조아).’ 손톱과 어금니를 말하는 爪牙(조아)는 적의 습격을 막고 임금을 호위하는 신하를 비유한다. 句踐入臣外傳(구천입신외전)에 실려 있다. 나무 木(목)이 없는 梁(량)도 역시 들보란 뜻이다.

나라의 동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百年大計(백년대계)인 교육이 우선이다. 우리나라를 단기간 발전시킨 원동력도 교육의 힘이 컸다는 것은 모두 인정한다. 하지만 앞날에 적합한 인재를 잘 기르고 있는가는 사교육에 찌들리고 입시제도가 자주 바뀌는 요즘은 모두 머리를 흔든다. 또 있다. 나라의 일꾼을 뽑고서 포부를 발휘하게 해주지 않고 정권 따라 몸을 사리게 해서는 성과를 기대하지 못한다. 동량을 잘 기르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타산지석他山之石 - 다른 산의 돌, 좋지 않은 돌로 도움 되는 일을 하다.

타산지석他山之石 - 다른 산의 돌, 좋지 않은 돌로 도움 되는 일을 하다.

타산지석(他山之石) - 다른 산의 돌, 좋지 않은 돌로 도움 되는 일을 하다.

다를 타(亻/3) 메 산(山/0) 갈 지(丿/3) 돌 석(石/0)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닥쳤을 때 흔히 선인들의 지혜를 구한다. 그들은 앞선 경험으로 해결책을 제시해 주므로 좋은 점을 본받을 수 있다. 반면 옳지 못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 나쁜 점을 보고 교훈을 삼는다는 말이 다른 산의 나쁜 돌이라도 나의 옥을 가는 데 도움 되는 돌이 될 수 있다는 이 성어다. 본이 되지 않은 남의 말이나 행동도 자신의 지식과 인격을 수양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말한다. 反面敎師(반면교사)와 똑 같은 말이다.

약 3000년 전부터 중국에서 전해지던 시를 수록한 ‘詩經(시경)’에 이 말이 처음 나온다. 小雅篇(소아편) 鶴鳴(학명)의 두 구절만 떼어보면 이렇다. ‘다른 산에 있는 돌이라도 여기 돌을 가는 숫돌이 된다네, 다른 산에 있는 돌이라도 여기 옥을 가는데 쓸 수 있다네(他山之石 可以爲錯, 他山之石 可以攻玉/ 타산지석 가이위착 타산지석 가이공옥).’ 錯은 섞일 착, 또는 맷돌 착. 여기서 돌은 소인에 비유하고 옥은 군자를 가리켰다. 군자도 소인에 의해 수양과 학덕을 쌓아 나갈 수 있음을 가르친다. 대수롭지 않은 물건도 중요한 일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으며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後漢(후한) 말기의 유학자 王符(왕부)도 이런 말을 남겼다. ‘돌로써 옥을 갈고 소금으로 금을 닦는데 물건에는 천한 것으로 귀중한 것을 다스리며 더러운 것으로써 좋은 것을 만들기도 한다(且攻玉以石 洗金以鹽 物固有以賤理貴 以醜化好者矣/ 차공옥이석 세금이염 물고유이천리귀 이추화호자의).’ 난세에 처하여 세속에 영합하지 않고 문란한 정치를 비판하여 쓴 책 ‘潛夫論(잠부론)’에서다.

이와 같이 他山之石 可以攻玉은 처음에는 옥을 잘라 갈고 다듬어 닦는다는 切磋琢磨(절차탁마)와 함께 예부터 수양을 위한 명구로 많이 사용돼왔지만 후세로 가면서 본받아선 안 되는 것으로 의미가 변했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MZ세대의 불매운동

◇ MZ세대의 불매운동

◇ MZ세대의 불매운동

X세대, 밀레니얼(Millennial)세대, Z세대…. 인위적으로 나누는 세대론이 허구라는 반박도 많지만 동시대를 살며 경험한 역사적 사건이 그 세대의 사고방식을 결정하기 마련이다. 요즘 세대론의 중심에는 MZ세대가 있다. 30대인 밀레니얼세대와 20대인 Z세대를 묶어 부르는 말로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시공간적 혁명을 태어나면서부터 경험한 세대다. 정보기술(IT) 및 모바일 기기에 익숙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MZ세대가 그들의 놀이터 중 하나였던 페이스북을 떠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대해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도 시작된다”고 쓴 글을 페이스북이 트위터와 달리 방치했다는 이유다. MZ세대의 눈치를 보던 코카콜라와 유니레버 등 대형 광고주들이 페이스북 유료 광고 중단을 발표했고 그 직후인 26일 페이스북 주가가 8.3% 하락해 하루 만에 시가총액 560억 달러(약 67조4000억 원)가 날아갔다. 결국 페이스북은 자사 규범을 위반한 정치적 게시물에 경고 딱지를 붙이겠다며 항복을 선언했다.

▶미국 스타벅스는 직원들의 ‘BLM’(Black lives matter·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티셔츠 착용을 금지했다가 불매운동의 역풍을 맞았다. 페이스북과 스타벅스는 SNS를 통해 순식간에 모였다가 흩어지며 행동에 나서는 MZ세대의 힘을 간과한 것 같다. 반면 정치사회적 이슈에 침묵했던 구찌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가 이번에는 인종차별 반대 의지를 분명히 했고, 나이키 아디다스 등은 이를 활용해 마케팅에 나섰다.

▶보통 합리적 소비라면 가격 대비 성능이 좋아야 했다. 그런데 Z세대는 착한 기업에 지갑을 열고 나쁜 기업에 지갑을 닫는 ‘미닝 아웃’ 소비를 한다. 미닝(meaning)과 커밍아웃(coming out)의 합성어로 내 돈을 가치 있는 데 쓰겠다는 뜻이다.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로 반일 불매운동이 한창이던 지난해 7월 당시 Z세대는 ‘일본인에게 호감이 간다’는 응답이 51%로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많았음에도 불매운동 참여율은 76%에 달했다.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고착되면서 청년세대는 인종, 계급, 지역적 요인보다 그 세대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겪는 불평등이 더 심각한 세상을 경험해왔다. 이들은 물리적 거리나 인종적 차이에 상관없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처지를 공감하고 연대한다. 이번 ‘#BLM’ 운동으로 결집했고 소비를 통해 기업을 압박하는 영리함을 보였다. 다음 시대의 주인공, MZ세대가 움직이고 있다.

-동아일보-

◇ 디지털 노마드의 패시브 인컴

◇ 디지털 노마드의 패시브 인컴

◇ 디지털 노마드의 패시브 인컴

디지털 시대 ‘돈 없이 돈 버는’ 직업들이 늘고 있다. 전업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유투버, 블로거 등 예전엔 없던 직업들이다. 구글과 아마존이 전세계에 깔아놓은 ‘디지털 좌판’에서 개인도 상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파는 게 가능해진 덕분이다. 혼자서도 약간의 컴퓨터 장비와 기술을 갖추면 아이디어와 마케팅으로 승부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무엇보다 진출입 장벽이 무척 낮다. 초기에 돈이 거의 들지 않고 높은 임대료나 재고 부담이 없다. 무한 자유경쟁인데다, 잘 안되면 다른 아이템으로 갈아타기도 쉽다. 최근의 컴퓨터 코딩 배우기 열풍은 이런 트렌드의 반영일게다.

이들은 스스로를 ‘디지털 노마드’라 부른다. 안정적 직장을 때려치고 뛰어드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인생은 한 번 뿐이니 즐기며 살자는 ‘욜로족’과는 다르다. 자산가들처럼 ‘잠을 자는 동안에도 늘어나는’ 소득,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패시브 인컴’(수동적 소득) 수입 구조를 만들겠다는 게 이들의 목표다. 웬만한 자산가나 고연봉자가 아니라면, 더는 일해서 버는 돈만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기 힘든 시대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물질적 자유를 위한 기본소득 논의”를 제안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은 이런 젊은층의 현실과 욕구를 잘 짚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원래 패시브 인컴은 각종 세금의 부과 원칙을 규율하기 위한 용어다. 일해서 버는 돈, 즉 근로소득인 ‘액티브 인컴’(적극적 소득)과 구별해, 이자·배당·임대료·로열티 등 일하지 않고(혹은 일을 조금 하고도) 얻는 자본 및 사업 소득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디지털 노마드가 늘어나면서 과세 당국이 다소 난감해졌다. 이들이 얻는 소득의 분류, 즉 수동적 소득과 적극적 소득의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은 탓이다. 미국 국세청은 ‘물리적인 근로 참여 시간이 1년에 100시간 이상이며, 가장 주도적으로 참여한 경우’ 근로소득으로 본다는데, 워낙 디지털 소득을 얻는 방식이 다양하고 새로워서 논란은 진행형이다.

주요국들이 자본·사업 소득을 패시브 인컴으로 구분하는 건, 일하지 않고 얻은 소득에 대한 차별적 과세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특히 근로 행위가 전혀 없는 자본소득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장 높은 세율에 누진적 과세 방식을 적용한다. 종합과세는 기본이고 추가과세도 한다. 미국의 ‘순투자소득세’는 금융투자소득이 부부 납세자 기준 연 25만달러 이상이면, 고율의 세금을 다 낸 뒤에 3.8%의 추가 세금을 물린다. 이로부터 나온 세수는 저소득층 의료비 재원으로 활용한다. 정부가 집부자들의 보유세율을 올리겠다니 ‘징벌적 과세’라고 난리다. 잠자는 새 불어난 돈에 세금을 더 물리는 건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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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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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6일 수요일

◇ 하동 화개면 탐방

◇ 하동 화개면 탐방

◇ 하동 화개면 탐방

▶ 천년 차밭길 산책

화무십일홍이라 했다. 올봄은 꽃이 피는지 지는지 모르고 지나갔다. 꽃피는 고을, 하동 화개면의 ‘십리벚꽃길’도 축제 없이 잔인한 봄을 보냈다. 열흘 동안 피어 있는 꽃은 드물어도 화개의 푸르름은 사계절 지속된다. 화개는 공식적으로 국내에 차나무가 가장 먼저 전해진 곳이다. ‘벚꽃’보다 ‘십리’에 주목하면 한국 차의 시원, 화개의 진면목이 보인다. 섬진강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거리가 대략 6km이고, 도로가 끝나는 의신마을까지는 또 8km를 더 가야 한다. 화개천을 가운데 두고 이어진 골짜기가 깊고도 아늑하다. 그 계곡을 형성하는 가파른 산자락 곳곳이 야생 차밭이다.

▶ 차 시배지에서 정금차밭까지 ‘천년차밭길’ 산책

화개장터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건 가수 조영남의 영향이 컸다. ‘화개장터’ 노랫말만 보면 아랫말 하동 사람, 윗말 구례 사람에 삐걱삐걱 나룻배를 타고 섬진강을 건너온 광양 사람, 부릉부릉 버스를 타고 산을 넘은 산청 사람까지 어우러져 시끌벅적하고 정겨운 시골장터 분위기가 연상된다. 하지만 지금의 화개장은 오일장이 아니다. 오히려 그 명성 때문에 관광객을 위한 시장에 더 가깝다.

수해를 막기 위한 제방은 점점 높아져 장터는 섬진강에서 분리됐고, 하천 북측에 형성됐던 시장도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측으로 이전하고 말끔하게 단장했다. 시장 초입에 기타를 든 조영남 동상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옛날 풍경은 장터 담장을 따라 전시한 사진으로나 볼 수 있다.

화개를 여행하는 이들은 대개 화개장터에서 십리벚꽃길을 따라 계곡 상류에 위치한 쌍계사를 돌아보고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화개의 진짜 매력을 보기 어렵다. 화개의 자랑이자 보물인 차밭은 계곡 양측 산허리에 있기 때문이다. 녹차에 대한 지식은 없어도 된다. 차 시배지에서 정금차밭까지 이어지는 ‘천년차밭길’을 걸으면 하동의 색다른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약 2.7km로 1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마저 부담스러우면 출발지와 종착지만 둘러봐도 좋다.

쌍계사와 켄싱턴리조트 사이 차 시배지. 법향다원 이쌍용 차 명인은 이곳에서 생산하는 차를 죽로차라 부른다. 댓잎에 맺힌 이슬을 먹고 자란 차라는 의미다.

차 시배지는 이름대로 한국에서 차를 처음 재배한 곳이다. 쌍계사와 켄싱턴리조트 사이 얕은 언덕이다. 신라 흥덕왕 3년(828) 당나라 사신으로 간 대렴공이 차 씨앗을 가져와 왕명으로 처음 심은 곳으로 2008년 한국기록원에 공식 등록됐다. 초입에 이러한 내력을 알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고, 듬성듬성 바위가 섞인 차밭을 거닐 수 있도록 산책로가 나 있다. 차와 관련한 글귀 25수를 새긴 조형물이 설치돼 있어 그 뜻을 음미하며 걷는 것도 재미다. 쌍계사 방장 고산 스님이 남긴 글이다.

정금차밭은 정금마을과 신촌마을 사이 고갯길에 있어 전망이 시원하다. 아래로 굽어보면 화개천과 주변 마을 풍경이 이국적이고, 시선을 올리면 금방이라도 지리산의 우람한 능선에 닿을 듯하다. 하동군에서 내세우는 ‘한국의 알프스’라는 문구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이발하듯 가지런히 다듬은 차밭 고랑을 거닐면 어디서든 ‘인생사진’을 남겨도 좋을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산허리를 층층이 감싼 차밭 고랑은 자체로 조형미가 뛰어난 예술작품이다. 편안하게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는 핵심 포토존이다.

-한국일보-

◇ 해상케이블카 타고 본 목포

◇ 해상케이블카 타고 본 목포

◇ 해상케이블카 타고 본 목포

아기자기한 여행을 상상했다. 목포는 뜻밖에 작은 도시다. 전체 면적이 51.64㎢로, 서울 서초구(약 47㎢) 정도 크기다. 목포에 가면 유달산, 삼학도, 근대 건축물, 박물관, 전국적으로 유명한 맛집을 구석구석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거미줄 같은 목포 거리를 온종일 누빌 거란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대신 멀리서 천천히 오래도록 바라보는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지난해 9월 개통한 최첨단 케이블카(목포 해상케이블카)가 역설적으로 ‘느린 여행’을 이끌었다.

전국에서 가장 높고 긴 케이블카가 목포에 있다. 길이 3.23㎞, 높이(주탑) 155m다. 여수, 부산, 통영 케이블카보다 높고 길다. 북항에서 유달산을 거쳐 바다 건너 고하도로 간다. 몸은 편하고 마음은 가볍다. 눈은 쉴 틈이 없다. 목포 시가지, 삼학도, 목포항, 고하도, 다도해가 선명하다. 천천히 봐도 된다. 목포 해상케이블카는 북항~고하도를 40분 동안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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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가 유달산(228.3m)에 다가갔다. ‘작은 금강산’, ‘영달산’(영혼이 거쳐 가는 산)이라고도 불리는 유달산은 바위가 돋보인다. 일등바위, 이등바위, 마당바위 등 이름 있는 바위만 20여개다. 예로부터 목포 시민들과 여행객들은 유달산 정상에서 다도해를 배경으로 해돋이와 해넘이, 야경을 즐겼다. 맨얼굴 드러낸 유달산 봉우리들을 지나자 목포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늘에서도 목포 구도심을 구경하는 방법이 있다. 요즘은 동쪽 하당, 남악 신도시와 구분해 서쪽 일대를 구도심이라 부르지만, 과거 일제강점기엔 구도심도 둘로 나눴다. 목포역 오거리가 분기점이다. 위쪽은 조선인 마을, 아래쪽은 일본인 거류지였다고 한다. 고도의 숨은그림찾기를 시작했다. 목포역은 어디 있을까. 색색이 빼곡한 지붕들 너머 파란 지붕이 연이어 붙은 곳이 보인다. 목포역이다. 옛 조선인 마을은 현 목원동 구역이다. 그곳에 ‘옥단이 길’이 있다. 옥단이는 목포 출신 극작가 차범석의 <옥단어!> 주인공 이름이다. 실존인물 옥단이가 물통을 이고 물장사를 하며 누빈 길을 ‘근대 역사 예술 거리’로 꾸몄다. 목포역을 출발해 노라노미술관, 목포청년회관, 벽화골목, 중앙식료시장 등을 지난다.

목포 근대역사 문화공간이라 널리 알려진 곳은 옛 일본인 거류지다. 현 유달동 구역이다. 노적봉 아래 옛 일본영사관(현 근대역사관 1관)은 상징적이다. 1900년에 지었다. 목포에 남아있는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근대역사관 2관은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으로 썼던 건물이다. 1921년 지었다.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농장 17곳을 관리하며 식민지 수탈 창구 역할을 했던 곳이다. 근대역사관 건물 주변으로 일본식 가옥과 상가 주택들이 여럿 남아있다.

어느덧 편도 종착지인 고하도다. 높은 산(유달산) 아래 있는 섬이란 뜻이다. 목포 해안 건너 약 2㎞ 지점에 길게 누워 있다. 고하도엔 공상과학(SF) 영화에 나올 법한 주황색 5층 건물이 우뚝 서 있다. 고하도 전망대다. 13척의 판옥선(조선 수군 전투선) 모형을 격자로 쌓아 올린 모양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1597년 명량대첩에서 13척 배로 일본 수군을 무찌른 뒤 106일간 고하도에 머물며 전열을 정비했다고 한다.

고하도 전망대 아래 바다 위를 걷는 길이 있다. ‘고하도 해안 데크’다. 총 거리는 1080m다. 섬 해안을 끼고 걷는다. 난대림 숲이 유난히 반짝인다. ‘갓바위’(목포 용해동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500호)만큼이나 기괴한 형상의 해식애들도 보인다. 파도는 쉼 없이 출렁거리며 미래의 해식애를 만드는 중이다. 바다 건너편엔 목포항과 유달산, 목포 시가지가 길게 펼쳐진다. 해안 데크가 끝나는 곳이 ‘용머리’다. 그 위로 목포대교(북항~고하도)가 거침없이 뻗어 나간다.

섬에는 숲길도 있다. 용머리에서 나무 계단을 오르면 바로 이어진다. 고하도 전망대까지 되돌아가는 약 1㎞ 숲길을 걸었다. ‘고하도 용오름 둘레숲길’(총 6㎞) 일부 구간이다. 해발 최대 80m가량, 능선 길이다. 완만한 오솔길 산책하듯 쉬엄쉬엄 걸었다. 섬 아래 해안 데크가 내려다보였다. 해안 데크를 걷는 이들은 모두 바다 건너 육지를 바라본다. 길가에 낯선 생명체가 자주 바스락거렸다. 우람한 집게발을 치켜든 붉은 게다. ‘도둑게’처럼 보였다. 도둑게는 해안 주변에 살며 여름엔 산까지 올라온다고 한다. 도둑게를 찾다가 나뭇가지 사이로 바다를 바라보다가 고하도 전망대로 내려왔다. 왕복 도보 시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육지로 돌아갈 시간이다. 케이블카는 바다 건너 온금동(현재 유달동으로 통합됨)을 지난다. ‘다순구미’라고 불리는 동네다. ‘따뜻한(다순) 후미(구미)진 동네’라는 뜻이다. 유달산 기슭에 남향으로 자리한 온금동은 집들이 촘촘하다. 집들은 골목길에서 서로 현관문을 마주한다. 과거 진도와 신안 섬에서 목포로 유학 온 학생들이 자취하던 동네로도 알려져 있다. 온금동과 바로 옆 서산동(유달동으로 통합)은 예로부터 어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어촌을 상징하는 ‘조금 새끼’라는 말이 있다. 조석 간만의 차가 가장 적은 조금엔 물고기가 잘 안 잡혀서 어민들은 보통 집에 있었다고 한다. 그때 생겨 태어난 아이들을 ‘조금 새끼’라 불렀다.

서산동은 영화 <1987> 촬영지 ‘연희네 슈퍼’로 널리 알려졌다. 연희네 슈퍼를 기점으로 서산동 ‘시화골목’이 시작된다. 크게 세 개의 골목길이 있다. 골목마다 서산동과 온금동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표현한 시와 그림이 빼곡하다. ‘긴 그림자를 끌고 애타게 달려온 골목과/순하게 기울어진 담장을 흔들어 깨우며/세상, 뭐 별것 있냐고/생의 쓴맛 뒤돌아보다 달더라도/곤한 비탈을 다독이며 내려앉는/저 맑은 볕처럼/다순구미는 따뜻하다’(‘다순구미는 따뜻하다’(조기호) 중) 요즘도 서산동 사람들은 골목 위 보리마당에 올라 볕을 즐긴다고 한다. 일등바위, 마당바위, 유선각, 대학루 등 유달산 자락 풍경이 길게 펼쳐지는 곳이다.

멀어지는 목포항을 바라봤다. 과거 제주도와 신안군 외딴 섬으로 가는 조선 유배객들이 뒤돌아보고, 개항 이후 외국인들이 낯설게 쳐다보고, 섬 유학생과 어민들이 설렘과 안도감에 벅차 바라봤을 곳. 유달산 넘어 돌아가는 길, 목포가 더 궁금하다면 시간은 충분하다. 목포는 충분히 작으니까.

목포 해상케이블카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운영한다.(3~10월 주말 기준) 일반 캐빈 2만2000원,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 캐빈 2만7000원.(성인, 왕복 기준) 고하도 전망대는 내부 수리 중이다. 빨라야 오는 29일 이후 문 열 예정이다. 북항 승강장 주소는 해양대학로 240.(문의 061-244-2600)

-한겨레-

◇ 복날 보양식엔 민어탕

◇ 복날 보양식엔 민어탕

◇ 복날 보양식엔 민어탕

"아따 이 실한 놈들 보시오, 최상품이어라." 전남 목포시 해안로 연안부두에 정박한 6t급 연안통발 어선 미성호 선장 장춘석씨가 "무게가 10, 11㎏ 나가는 자연산 민어 두 마리를 산 채로 잡아왔다"고 말했다. 연락을 받고 부두에서 기다리던 부두수산 대표 이상만씨가 민어 상태를 살피더니 "스트레스를 안 받아 빛깔이 곱다"며 "최고여"라고 엄지를 내밀었다. 이날 장씨는 목포에서 가까운 신안 임자도 바다에서 새우 미끼를 쓴 주낙(여러 낚싯줄을 매단 어구)으로 민어를 잡아올렸다. 성질이 급한 민어는 잡히면 펄떡이지도 않고 죽는데, 20년 민어잡이 경력의 장씨는 최상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민어를 살려서 왔다.

\수산물의 귀족\ 민어(民魚) 계절이 돌아왔다.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겨울을 난 민어는 초여름 서해로 올라와 여름내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다. 6~8월 산란 전 잡은 민어를 최상급으로 친다. 수명이 13년쯤 되는 민어는 자라면 길이가 1m가 훨씬 넘고, 무게는 20㎏에 달하는 팔척장신 바다 물고기다. 삼복더위에 몸값이 폭등하며 귀한 대접을 받는 고급 생선이다. "보양식으로 민어탕이 일품이요, 도미탕이 이품이며, 보신탕은 삼품이다." 조선시대부터 전해져오는 말이다. 더위를 물리치는 \복달임 음식\으로 민어탕은 예부터 으뜸이었다.

50년째 수산물 도소매업을 하는 이상만씨는 작업장에서 민어의 피를 빼고 한 마리씩 비닐에 감쌌다. 피가 살에 번지면 회 맛이 떨어진다. 이후 얼음이 깔린 스티로폼 상자에 민어 두 마리를 담아 빙장(氷藏)을 했다. 그다음 코스는 0도 온도의 냉장고 안이었다. 이씨는 "15시간 정도 시원한 상태로 보관하면 회 맛이 풍부해진다"고 말했다.

다음 날 민어 두 마리는 \목포 민어의 거리\ 한 민어 요리 전문점에 90만원에 거래됐다. 한 마리는 ㎏당 4만5000원인 45만원. 요즘 산란을 앞둔 민어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맛이 뛰어나 가격이 치솟는다. 지난달 29일 이씨는 "엿새 만에 민어가 ㎏당 6만원까지 올랐다"고 했다. 한여름에는 15㎏짜리 대물 민어 한 마리가 100만원(㎏당 6만6000원쯤)에 육박하기도 한다.

신안산 민어는 목포로 위판돼 대부분 소비된다. 서남해 수산물이 \물산의 집산지\ 목포로 집결한다. 목포가 민어의 고장이 된 이유다. 여름철, 산지 자연산 민어를 맛보려고 전국에서 식도락가들이 성지처럼 목포를 찾는다. 목포가 들썩인다. 해안가에 자리를 잡은 목포 근대역사 거리에 1969년부터 민어 요리 식당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처음엔 막걸리에 민어·병어·홍어·농어회를 파는 선술집 수준이었다. "민어는 역시 산지 목포에서"라는 인식이 깔리면서 1980년대 초 민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 3곳이 등장했다. 1990년대 지금의 만호동 \민어의 거리\ 일대에 민어 전문점은 16곳으로 늘었다.

2000년대, 민어의 거리는 재편됐다. 40~50년 전통을 자랑하는 3곳을 비롯해 민어 코스요리 전문 횟집 7곳만이 \목포 민어\의 맛을 선보인다. 맛집 중의 맛집이 \100년 목포 민어\의 전통을 살리는 것이다. 1975년 영업을 시작한 중앙횟집 사장 김상복씨는 8년 전 전국에서 처음 민어 정식 코스 요리를 선보였다. 4인 한상(15만원)에 민어회, 초무침, 찜, 탕 등을 내놨다. 2016년 목포시 민어찜 명인으로 지정된 김씨는 "올해는 목포 민어를 맛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조선일보-

◇ 링컨, 루즈벨트 대통령까지…동상 수산 시대

◇ 링컨, 루즈벨트 대통령까지…동상 수산 시대

◇ 링컨, 루즈벨트 대통령까지…동상 수산 시대

동상(銅像) 수난 시대다. 지난 5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미국에선 동상 철거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19일 워싱턴DC에선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 장군을 지낸 앨버트 파이크의 동상이 시위대에 의해 철거됐다. 이날은 노예 해방 기념일 155주년이었다.

대통령의 동상도 예외가 아니다. 뉴욕 자연사박물관 입구에 있는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의 동상도 철거될 예정이다. 지난 1940년 설치된 동상은 아메리카 원주민과 흑인을 양옆에 세워 둔 채 말에 올라탄 모습이 문제가 됐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증손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4세는 언론 인터뷰에서 “전 세계는 구시대의 동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박물관 앞 승마 조각상도 루스벨트 대통령의 유산으로 보기 힘들다. 이제는 동상을 없애고 앞으로 나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미국인이 가장 존경한다는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의 동상에 대한 철거 요구도 커지고 있다. 위스콘신 주립대 흑인 학생단체 블랙 스튜던트 유니언 등은 캠퍼스 본관 앞에 114년째 서 있는 링컨 동상의 철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단체는 “링컨이 노예제에는 반대했으나 인종주의자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링컨은 1854년 일리노이주 연설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됐다. 다른 사람을 노예로 만들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1858년 상원의원 선거 운동 기간에 열린 토론에선 “백인과 흑인 간에는 육체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회·정치적 평등을 유지하면서 함께 사는 걸 영원히 금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사우스다코타주 키스톤의 러시모어 산에 새겨진 전직 대통령의 ‘큰 바위 얼굴’도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플로이드의 사망이 이런 운동에 불을 붙인 셈이다.

한국 등도 예외가 아니다.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에 있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동상은 철거를 앞두고 있다. 한 차례 화형식을 겪은 인천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도 철거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직후 시작된 레닌 동상 철거는 3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단단한 얼음을 깎아내는 고된 작업에 비유된다. 세계적인 폭염이 찾아 왔지만, 몸을 떨고 있는 동상이 적지 않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