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일 일요일

수미이취ㅣ數米而炊

수미이취ㅣ數米而炊

수미이취ㅣ數米而炊

○ 쌀 낟알을 세어 밥을 짓다, 몹시 인색하다.

○ 數(셈 수) 米(쌀 미) 而(말 이을 이) 炊(불 땔 취)

쌀알을 세어서 밥을 지음. 곧 하는 짓이 번거롭고 잗달아서 보람이 적음.

낟알을 세어 밥을 짓는다는 성어는 곳곳에 나온다. 다른 비유와 함께 알기 쉽게 설명한 것에는 먼저 ‘淮南子(회남자)’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중국 前漢(전한)의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전국의 빈객과 방술가들을 모아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泰族訓(태족훈)에 나오는 구절을 보자. ‘땔나무를 재어가면서 부엌의 불을 지핀다든가, 쌀알을 헤아리면서 밥을 짓는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작은 것은 다스릴 수는 있어도, 큰 것은 다스릴 수가 없다.

詮言訓(전언훈)에도 등장한다. ‘좁쌀을 헤아려 방아를 찧고, 쌀을 되어 밥을 짓는 것은, 집안을 다스리는 데에는 좋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쓸모가 없다.’ 舂은 찧을 용. 결국 쩨쩨한 도량으로 큰일을 이룰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여기에서 稱薪而爨(칭신이찬)이나 量粟而舂(양속이용) 등 같은 뜻의 성어를 함께 썼다.

‘莊子(장자)’에는 老子(노자)의 제자 庚桑楚(경상초)라는 사람이 열변을 토하는 데에서 이 말이 나온다. 유능한 사람에게 관직을 주고, 선량한 사람을 높이고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堯舜(요순) 때부터 해온 것이라면서 크게 칭송할 것은 못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한다.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씩 빗질하거나, 쌀알을 한 알 한 알 세어서 밥을 짓는, 그런 쪼잔한 방식으로 어떻게 세상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도로무익ㅣ徒勞無益

도로무익ㅣ徒勞無益

도로무익ㅣ徒勞無益

○ 헛되이 애만 쓰고 이익이 없음.

○ 徒(무리 도) 勞(일할 로) 無(없을 무) 益(더할 익)

헛되이 애만 쓰고 이익이 없음. 도로(徒勞)란 ‘헛된 수고’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헛되이 수고만 하고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한 경우에 이 표현입니다.

인향만리ㅣ人香萬里

인향만리ㅣ人香萬里

인향만리ㅣ人香萬里

○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

○ 人(사람 인) 香(향기 향) 萬(일 만 만) 里(마을 리)

훌륭한 사람의 인품은 향기가 머나먼 천리까지 이른다는 좋은 말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알려지지 않은 채 많이 인용되고 있다. 이 말의 앞에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花香百里/ 화향백리), 술의 향기는 천리를 간다(酒香千里/ 주향천리)는 구절이 있다. 꽃 사랑하고 술 좋아하는 사람이 즐겨 읊을만한 명언인데 여기서 나아가 더 멋진 말도 따른다.

난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蘭香百里/ 난향백리), 묵의 향기는 천리를 가며(墨香千里/ 묵향천리), 덕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는다(德香萬里/ 덕향만리)고 한 것이 그것이다. 난을 사랑하고 사군자를 즐기는 사람이 더 고상하다고 치는 말이다. 하지만 이들 두 對句(대구)가 어느 것이 먼저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을 모방했는지 서로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모두 음미할수록 마음에 와 닿는 말이기 때문이다.

"

같은 성어는 아니라도 좋은 이웃, 좋은 사람을 가까이 하라는 말은 제법 있다. 덕은 외롭지 않아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德不孤 必有隣(덕불고)은 論語(논어)에 나오는 孔子(공자)님 말씀이다. 중국의 사서 南史(남사) 呂僧珍(여승진)전에 나오는 百萬買宅 千萬買隣(백만매택 천만매린)은 세 잎 주고 집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는 우리 속담과 같다.

"

당비당거ㅣ螳臂當車

당비당거ㅣ螳臂當車

당비당거ㅣ螳臂當車

○ 사마귀가 팔을 들고 수레를 막다.

○ 螳(사마귀 당) 臂(팔 비) 當(마땅 당) 車(수레 거)

사마귀의 팔뚝이 수레를 당(當)하다라는 뜻으로,용감(勇敢) 무쌍(無雙)한 것을 뜻함. 사마귀가 팔을 치켜들고(螳臂) 수레에 당당히 맞서는 것(當車)도 마찬가지다. 자기 능력도 생각하지 않고 강적에게 덤비는 모양새다. 자신이 대단한 능력이 있는 듯이 행세하거나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사태에 대항하려는 무모한 행동을 비유한다. 戰國時代(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道家(도가)를 대표하는 莊周(장주)는 ‘莊子(장자)’를 통해 寓言寓話(우언우화)로 우주 본체를 설명한다. 혼란한 세상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펼친 人間世(인간세) 편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魯(노)나라의 현인인 顔闔(안합, 闔은 문짝 합)이 衛(위)나라 태자의 스승으로 가게 되었을 때 위나라 대부 蘧伯玉(거백옥, 蘧는 패랭이꽃 거)을 찾아갔다. 한 사람이 있는데 아주 덕이 없어 그대로 두면 나라가 위태롭고, 막아서 규범을 지키게 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물음에 거백옥이 사마귀에 비유하여 충고한다. ‘사마귀는 팔뚝을 치켜세워 수레바퀴를 막으면서 자기가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지. 이는 자기의 재주가 뛰어나다고 믿기 때문이야.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네(怒其臂以當車轍 不知其不勝任也 是其才之美者也 戒之 愼之/ 노기비이당거철 부지기불승임야 시기재지미자야 계지 신지).’ 안합은 거백옥의 충고대로 자신의 재능도 모르고 마구잡이인 위나라 태자의 스승 되기를 포기했다. 후일 태자는 분규 중에 죽고 말았다.

득롱망촉ㅣ得籠望蜀

득롱망촉ㅣ得籠望蜀

득롱망촉ㅣ得籠望蜀

○ 농을 얻고 나니 촉을 갖고 싶다

○ 得(얻을 득) 籠(땅 이름 롱) 望(바랄 망) 蜀(나라 이름 촉)

농을 얻고 나니 촉을 갖고 싶다. 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음을 이르는 말. ② 한 가지 소원을 이룬 다음 또다시 다른 소원을 이루고자 함을 비유. ③ 만족할 줄 모름의 비유.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秀)가 처음으로 낙양에 입성하여 이를 도읍으로 삼았을 무렵(A.D. 26)의 일이다.당시 전한의 도읍 장안을 점거한 적미지적(赤眉之賊)의 유분자(盆子)를 비롯하여 농서( 書:감숙성)에 외효( ), 촉(蜀:사천성)에 공손술(公孫述), 수양( 陽:하남성)에 유영(永), 노강(江:안휘성)에 이헌(憲), 임치(淄:산동성)에 장보(張步) 등이 할거하고 있었는데 그중 유분자 유양 이헌 공손술 등은 저마다 황제를 일컫는 세력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외효와 공손술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무제에게 토벌되었다. 외효는 광무제와 수호(修好)하고 서주 상장군(西州上將軍)이란 칭호까지 받았으나 광무제의 세력이 커지자 촉 땅의 공손술과 손잡고 대항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성(成)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참칭(僭稱)하는 공손술은 외효의 사신을 냉대하여 그냥 돌려보냈다. 이에 실망한 외효는 생각을 바꾸어 광무제와 수호를 강화하려 했으나 광무제가 신하가 될 것을 강요하므로 외효의 양다리 외교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건무(建武) 9년(32), 광무제외 대립 상태에 있던 외효가 병으로 죽자 이듬해 그의 아들 외구순( 寇恂)이 항복했다. 따라서 농서 역시 광무제의 손에 들어왔다. 이때 광무제는 이렇게 말했다."인간은 만족할 줄 모른다더니 이미 \농을 얻고도 다시 촉을 바라는구나得 望蜀.\"그로부터 4년 후인 건무 13년(37), 광무제는 대군을 이끌고 촉을 쳐 격파하고 천하 평정의 숙원을 이루었다.

광무제 때로부터 약 200년 후인 후한 헌제(獻帝:189∼226)말, 즉 삼국 시대가 개막되기 직전의 일이다. 헌제 20년(220), 촉을 차지한 유비(備)가 강남의 손권(孫權)과 천하 대사를 논하고 있을 때 조조(曹操)는 단숨에 한중(漢中:섬서성 서남쪽 한강 북안의 땅)을 석권하고 농땅을 수중에 넣었다.

이때 조조의 명장(名將) 사마의司馬懿:자(字)는 중달(仲達), 진(晉)나라를 세운 사마염(司馬炎)의 할아버지가 진언했다."여기서 조금만 더 진격하면 유비의 촉도 쉽게 얻으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그러자 조조는 이렇게 말했다."인간이란 만족할 줄 모른다고 하지만, 이미 농을 얻었으니 촉까지 바라지 않소."이리하여 거기서 진격을 멈춘 조조는 헌제 23년(223), 한중으로 진격해 온 유비의 촉군(蜀軍)과 수개월에 걸친 공방전을 벌이다가 결국 \계륵(鷄肋)\이란 말을 남기고 철수하고 말았다.

두주불사ㅣ斗酒不辭

두주불사ㅣ斗酒不辭

두주불사ㅣ斗酒不辭

○ 말술도 사양하지 아니한다.

○ 斗(말 두) 酒(술 주) 不(아니 불) 辭(말씀 사)

유방(劉邦)이 秦(진)나라 수도 함양을 함락시키고 진나라 왕 자영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항우(項羽)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유방을 칠 각오를 다졌다.

유방 또한 항우가 이를 갈고 있다는 걸 알고 항우의 진중에 나아가 해명했다. 이를 역사책에서는 홍문의 만남(鴻門之會)이라고 한다. 유방의 변명에 항우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항우의 모신(謀臣) 范增(범증)은 이를 호기(好機)로 항우의 사촌동생으로 하여금 칼춤을 추게 하여 유방의 목숨을 노렸다.

유방이 위급한 처지에 있는 걸 알게 된 심복 번쾌가 방패와 칼을 들고 연회장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위병이 가로 막았다. 일개 위병이 어찌 번쾌를 막을 수 있으랴. 위병을 쓰러뜨린 번쾌가 연회장에 뛰어들어 항우를 쏘아보았다. 항우는 저도 모르게 칼자루를 만지며 소리쳤다. "누군가" "패공 유방의 수행부하 번쾌입니다." 유방의 측근 張良(장량)이 대답해 주었다. "장사로군. 이 자에게 술을 주도록 하라"

한말들이 술잔이 그에게 주어졌다. 번쾌는 선 채로 단숨에 들이켰다. "이 자에게 생 돼지 다리를 하나 갖다 주어라" 번쾌는 방패 위에다 생 돼지고기를 놓고 썰어 먹었다. 이를 본 천하의 항우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굉장한 장사로군. 한잔 더 하겠나"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 제가 어찌 술 몇말을 사양하겠습니까(斗酒不辭)"항우는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리하여 번쾌는 유방을 구해낼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검

세계 최고의 검

세계 최고의 검

세계 최고의 검중의 하나가 니뽄도 라고 합니다. 원래 일본도는 우리의 우수한 무기를 만드는 기술이 전해져서 이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역사학에 있어서 세계 최초로 철기를 발견하고 철기문화를 창조하였던 민족은 바로 우리민족이라고 합니다. 당시의 철기 기술은 지금으로 치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만든거와 진배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우리의 기술을 익힌 이들은 단순한 철기를 제련하는 기술이 고작이었으나 우수한 검을 만드는 과정에서 엄청난 정성을 기우려 비로소 명검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른 새벽의 수많은 이슬을 모아 만든 물로 단금질용 냉수를 만들었고 철을 불에 달구어 접기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없이 하여 하나의 검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검으로 꼽으라면 당연히 다마스커스의 검을 꼽습니다. 이 검의 우수성은 당시 칼끼리 부딪히면 상대의 일반칼이 부러졌고 바위를 내리쳐도 부러지지 않았으며 십자군 전쟁 당시 방패와 갑옷을 단번에 찢어버려 수많은 희생자를 내기도 한 칼입니다.

이 다마스커스의 칼로 한 사람이 대군을 물리치기도 한 전설의 칼이었습니다. 이러한 칼을 만드는 비법은 정확히는 전수되지 않고 있지만 당시 중동 지역의 다마스커스 지역에 나는 철로 강철과 연철을 접철하는 방법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칼은 너무 강하면 부러지고 연하면 휘어지거나 벨 수가 없어서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야 명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몇가닥의 달구어진 철끼리 두드려서 서로를 합철하는 과정을 수없이 하게됩니다.

10번을 접으면 10의 9승이 되므로 엄청난 수의 합철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나서 다시 달구어진 쇠를 꽈배기 처럼 꼬아서 또다시 혼철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엄청나게 반복하게 되면 수 많은 철들이 종이장 처럼 얇게 서로 서로가 엉겨 붙어서 비로소 하나의 진검이 되는것입니다.

칼은 상처를 내거나 때에 따라서는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곪은 상처를 도려내거나 수술을 할 때는 유용한 도구 이기도 합니다.

"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

바로 이 날선 검은 사용하는 사람에따라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사람에게서의 칼은 바로 언어입니다.

다마스커스의 칼처럼 수없는 인내와 내공의 단금질이 된 마음이 단련된 언어는 사람을 살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많은 마음의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흉기입니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사람은 다마스커스의 칼처럼 담금질이 끝나면 접철과 혼철이 된 표시의 수많은 철의 물결 무늬가 나타나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과 언어를 참으로 잘 조절하여 좋은 말로 상대에게 강력한 선을 전하는 자입니다.

"

-세상의 모든 이야기 중에서-

"

순간 / 소산

순간 / 소산

순간 / 소산

흔히

사람들은

아픈 기억은

다 잊어 버리고

좋았던

순간만을

생각 하라고

합니다

누가 그걸

모르나요?

행복했던

순간에

가슴

설레다가도

막상 ᆢ

외면하고

돌이선 님이 떠오르면

서운한

마음에

가슴이

시려 오는걸

내가

어쩌라고요?

하지만

이제 괜찮아요

서운함이

커다랗다는 건

그만큼 ᆢ

지난날의

사랑이

하냥

아름답고

깊었기

때문이잖아요

♨ 좋은 글 더보기 : iusan.com

과유불급ㅣ過猶不及

과유불급ㅣ過猶不及

과유불급ㅣ過猶不及

○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 過(지날 과) 猶(같을 유) 不(아니 불) 及(미칠 급)

"

공자의 제자 중에 고생도 함께 하고 각 분야에 뛰어난 10명을 孔門十哲(공문십철)이라 한다. 이들을 덕행, 언어, 정사, 문학의 四科(사과)로 나누어 평가를 한 내용이 ‘선진편(先進篇)’에 나온다. 바로 ‘德行 顔淵 閔子騫 冉伯牛 仲弓, 言語 宰我 子貢, 政事 冉有 季路, 文學 子游 子夏(덕행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 언어 재아 자공, 정사 염유 계로, 문학 자유 자하)이다.

",

어느 날 제자인 자공(子貢:B.C. 520∼456)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자장(子張)과 자하(子夏) 중 어느 쪽이 더 현명합니까?"공자는 두 제자를 비교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자장은 아무래도 매사에 지나친 면이 있고, 자하는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자장이 낫겠군요?"

자공이 다시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過猶不及." 공자는 중용中庸: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중정(中正)함의 도(道)를 말했던 것이다.

남전생옥ㅣ藍田生玉

남전생옥ㅣ藍田生玉

남전생옥ㅣ藍田生玉

○ 남전에서 명옥이 나듯 훌륭한 인물이 나온다

○ 藍(쪽 람) 田(밭 전) 生(날 생) 玉(구슬 옥)

"

남전은 중국 산시성陜西省 남전현(藍田縣)의 동남에 있는 산으로, 예로부터 미옥(美玉)의 산지로 유명하다. 남전이 명옥(名玉)을 산출하듯이 명문에서 현자(賢者)가 태어난다라는 뜻으로 부자(父子)를 함께 칭송할 때 쓰는 말이다. 《삼국지(三國志)》〈오서(吳書) 제갈각전(諸葛恪傳)〉에 나오는 고사이다.

",

제갈공명(諸葛孔明:제갈량)의 형 제갈근(諸葛瑾)은 오(吳)나라의 관원이 되어 오나라 왕 손권(孫權)의 신임을 얻었다. 제갈각(諸葛恪)은 자(字)가 원손(元遜)이라 하고 제갈근의 맏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있어 명성을 떨쳐 태자의 빈우(賓友)가 되기도 하였다. 그는 재지(才智)가 남달랐고 기발한 발상과 임기응변(臨機應變)에 뛰어나 그와 더불어 상대할 자가 없었다.

"

제갈각의 아버지 제갈근은 얼굴이 마치 당나귀처럼 생겼는데, 각(恪)이 여섯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조정 연회에 참석하였을 때의 일이었다. 제갈근의 얼굴이 당나귀를 닮아 손권이 일부러 당나귀를 끌어오게 하여, 그 얼굴에 제갈자유(諸葛子瑜:자유는 제갈근의 자(字)임)라고 썼다. 모두가 한바탕 크게 웃었다. 각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손권에게 붓을 청하여 지려(之驪) 두 글자를 써 넣었다. 제갈근의 당나귀가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의 기지(機智)에 감탄하였다. 손권도 감명을 받아 그 자리에서 당나귀를 각에게 주었다.

",

또 하루는 손권이 각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다. "너의 아버지와 숙부 공명 중 어느 쪽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고?" 각이 대답하였다. "명군을 얻은 아버지 쪽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손권이야말로 섬기기에 족한 명군이며, 그에 비하여 숙부가 섬기는 유비(劉備)는 평범하여 섬기기에 흡족하지 못한 군주라는 찬사였다. 손권은 몹시 기뻐하였다. 손권은 제갈각이 기이(奇異)한 인물임을 알고는 제갈근에게 말하기를, "남전에서 옥이 난다고 하더니, 정말 헛된 말이 아니군요."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