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4일 화요일

국수가 먹고 싶다

국수가 먹고 싶다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은 불행을 막아주는 마법의 열쇠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당신에게 행복한 순간을 선사하며

아름다운 순간을 늘려주기도 한다.

또한 감사하는 마음은 당신이 슬플 때

그 슬픔의 구명에서 빠져나가

다시 햇빛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므로 당신은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약을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샘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주머니 속에 든 약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간다.

사람들은 외부 상황에 빨리 익숙해져

자신의 인생에서 사소한 것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데 인색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영원히 잠들지 않고

다시 깨어나는 것을 기뻐하자

밖이 매섭게 추울 때 보일러를 틀어

금방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음에 감사하자

지금까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새삼 깨닫고 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낸

아름다운 순간들을 떠올리며 행복해 하자

그림 그리기 요리 춤 노래 악기연주 스포츠 등

당신이 노력하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하자

또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웃음을 선사해준 당신의 인생에도 감사하자

이와 같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을

목록으로 적어보면 끝도 없을 것이다.

사소한 일상의 고마움을 많이 느낄수록

그 만큼 더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마음이 바로 인생의 기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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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트 쿨하비, 내 인생에 Thank You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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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꽃길 위에서 / 이해인

사랑의 꽃길 위에서 / 이해인

사랑의 꽃길 위에서 / 이해인

당신 생각으로

해 아래 눈이 부셨지요

비 내리면 하루종일 비에 젖고

눈 내리면 하얗게 쌓여서

녹아 내린 그리움

기쁘면 기뻐서

슬프면 슬퍼서

아프면 아파서

당신을 부르는 동안 더 넓어진 하늘

더 높아진 산, 깊어진 마음

흐르는 세월속에 눈물도 잘 익혀서

마침내 담백하고 평화로운 사랑이

내게 왔네요

이 사랑으로 세상을 끌어안고

사람을 위해주니

갈수록 더 행복할 뿐 고마울 뿐

사랑의 길 위에서

이제는 내 이름도

새롭게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동산고와ㅣ東山高臥

동산고와ㅣ東山高臥

동산고와ㅣ東山高臥

○ 동산의 높은 곳에 누워 있다

○ 東(동녘 동) 山(산 산) 高(높을 고) 臥(누울 와)

동산에 은거하며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것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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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은 절강성 임안현 서쪽에 위치한 산 이름이며, 고와란 세상을 피해 산속에 숨어 평화롭게 사는 것을 말한다. 진나라의 사안이라는 자는 세속적인 권력이나 부귀를 등지고 동산으로 들어와 은둔지사가 되었다. 그의 이곳 생활은 자연 그대로의 삶이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사안의 인물 됨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다시 조정으로 돌아와 줄 것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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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안은 그때마다 자신이 있을 곳은 조정이 아니라 바로 이 동산이라며 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활하던 어느 날, 사안은 동산을 나와 환선무의 사마가 되었다.

사안이 다잇 진나라의 수도로 저명 인사들이 노닐던 신정을 출발하려고 하자, 조정의 관리들은 모두 나와 전송을 했다. 당시 중승의 직에 있던 고령이라는 자는 특별히 송별연을 열어 주었다. 그 자리에서 고령은 이러한 농담을 했다.

"당신은 자주 조정의 뜻을 어기고 동산에서 높이 누워 있었소. 이 때 사람들은 \안석이 세상으로 나올 수 없다면 장차 백성들의 고통은 어찌하리.\라고 했소. 오늘 백성들은 \장차 당신의 고통을 어찌하리.\하고 말할 것이오."

"

사안은 웃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안석이 세상으로 나올 수 없다면 장차 백성들의 고통은 어찌하리.라고 한 것은 이 나라에 훌륭한 정치가가 없다면 백성들의 생활이 서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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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화지문ㅣ口禍之門

구화지문ㅣ口禍之門

구화지문ㅣ口禍之門

○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

○ 口(입 구) 禍(재앙 화) 之(어조사 지) 門(문 문)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 된다는 뜻으로, 재앙이 입으로부터 나오고 입으로부터 들어간다 하여 옛부터 성현의 가르침에 입을 조심하라는 글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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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서(全唐書)〈설시(舌詩)〉편에 다음과 같은 풍도(馮道)의 글이 실려 있다. “입은 곧 재앙의 문이요, 혀는 곧 몸을 자르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처신하는 곳마다 몸이 편하다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 폐구심장설 안신처처뢰)”이라 하였으며 구화지문은 여기서 나온 말이다.

",

풍도는 당(唐)나라 말기에 태어났으나 당나라가 망한 뒤의 후당(後唐) 때에 재상을 지냈다. 후당 이래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 등 여러 왕조에서 벼슬을 한 사람으로, 그 동란의 시기에 73세의 장수를 누리는 동안 처신(處身)에 많은 경륜(經綸)을 쌓은 사람으로 위와 같은 처세관(處世觀)을 남겼다.

주희(朱熹) 경재잠(敬齋箴)에도 독에서 물이 새지 않는 것과 같이 입을 다물고 발언에 신중을 기하라守口如甁(수구여병)고 했다. 우리 말에도 "화는 입으로부터 나오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간다." "모든 중생은 화가 입 때문에 생긴다"고 했다.

직언고화ㅣ直言賈禍

직언고화ㅣ直言賈禍

직언고화ㅣ直言賈禍

○ 바른 말을 하여 화를 부르다.

○ 直(곧을 직) 言(말씀 언) 賈(장사 고) 禍(재앙 화)

바른 말을 하여(直言) 화를 초래한다(賈禍)는 성어는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서 유래했다.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에 伯宗(백종)이라는 대부가 있었다. 그는 현명하고 직언을 잘한 명신으로 이름났다. 당시의 景公(경공)이 백종에게 이웃 宋(송)나라가 楚(초)나라의 침입을 받고 원군을 요청해오자 어떻게 할지를 물었다. 그는 채찍이 길다고 해도 말의 배에까지 이르지 않는다는 鞭長莫及(편장막급)이라는 말로 대국에 맞서는 것을 만류했다. 이처럼 어질고 바른 말을 잘 하는 백종이지만 그의 아내는 조정에 들어갈 때마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신신당부했다.

‘도둑은 집 주인을 미워하고, 백성들은 윗사람을 미워하는 법입니다. 당신은 바른 말 하기를 좋아하니 반드시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盜憎主人 民惡其上 子好直言 必及於難/ 도증주인 민오기상 자호직언 필급어난).’ 현명한 백종도 아내의 말은 흘려들었다. 그때 三郤(삼극, 郤은 틈 극)이라 불리던 극씨 삼형제가 조정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항상 바른 말 하는 백종을 눈엣가시로 여기며 왕에게 항상 나쁜 말로 사이를 벌어지게 했다. 신임을 하던 경공도 차츰 의심이 들면서 백종의 작은 실수를 죄로 뒤집어씌워 결국 처형하고 말았다.

단기지계ㅣ斷機之戒

단기지계ㅣ斷機之戒

단기지계ㅣ斷機之戒

○ 베틀 위의 베를 끊어 경계함. 학문 포기에 대한 훈계

○ 斷(끊을 단) 機(틀 기) 之(갈 지) 戒(경계할 계)

베를 끊는 훈계(訓戒)란 뜻으로,학업(學業)을 중도(中途)에 폐(廢)함은 짜던 피륙의 날을 끊는 것과 같아 아무런 이익(利益)이 없다는 훈계(訓戒)

맹자는 후에 학문을 연마하기 위해 길을 떠나 공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맹자가 집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반가워하기는커녕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 공부는 다 했느냐?” 맹자는 “열심히 하다가 왔습니다.” 하고 대답했지요. 그러자 베틀에 앉아 짜고 있던 베를 가위로 싹둑 잘라버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그만둠은 짜던 베의 중간을 잘라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맹자(孟子)는 이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다시 돌아가 열심히 공부하여 훗날 훌륭한 유학자(儒學者)가 되었다.

난군인승ㅣ亂軍引勝

난군인승ㅣ亂軍引勝

난군인승ㅣ亂軍引勝

○ 군을 어지럽혀 승리로 이끌다.

○ 亂(어지러울 난) 軍(군사 군) 引(당길 인) 勝(이길 승)

아군의 군심을 어지럽혀 적군의 승리를 초래한다는 뜻으로, 군주와 장수 간의 신뢰가 없으면 병사들의 단합이 이루어지지 않아 오히려 적군에게 승리를 안겨주게 된다는 말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 모공(謀攻)편에 나오는 말이다. 손자는 군주와 장수, 삼군(三軍, 전체 군대를 뜻함) 이 삼자 간의 관계에서 신뢰를 강조하였다. 특히 군주가 장수를 신뢰하지 못함으로써 저지르는 실수 즉, 군주가 군 전체에 해를 끼치는 경우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진격해야 할지 퇴각해야 할지 전시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장수를 무시하고 군주의 명으로 군대를 통제하는 것, 둘째는 군사 행정에 간섭하는 것, 셋째는 시시각각 변하는 전시상황에 임기응변을 할 능력이 안 되면서 군을 지휘하려 드는 것이다. 이런 경우 군사들은 장수의 지도력에 의심을 품게 되고 군주와 장수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게 된다. 결국 군주가 본인이 전장의 통솔권을 부여한 장수를 믿지 못해 아군의 군심을 어지럽히고 마침내 적군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난군인승(亂軍引勝)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궁궐의 군주와 전장의 장수 간의 불협화음이 군대 전체에 가장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됨을 의미하는 난군인승은 내부의 단결이 기본적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 외부의 변화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부서져야 산다

부서져야 산다

부서져야 산다

한 수도원에서 나이 많은 수도사가 정원에서 흙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수도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수도사가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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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수도사들로부터거만 하다는 평을 받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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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많은 수도사가 후배 수도사에게 말했습니다. "이 단단한 흙 위에 물을 좀 부어주겠나?"

젊은 수도사가 물을 부었습니다.

그러나 물은 옆으로 다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나이 많은 수도사는 옆에 있는 망치를 들어 흙덩어리를 깨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부서진 흙을 모아 놓고 젊은 수도사에게 다시 한 번 물을 부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물은 잘 스며들었고 부서진 흙이 뭉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나이 든 수도사가 젊은 수도사에게 말했습니다. "이제야 흙 속에 물이 잘 스며드는구먼.

여기에 씨가 뿌려지면 싹이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거야.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우리 역시 부서져야 씨가 뿌려지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거지."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음의 토양이 어떠한지에 따라 좋은 사람들이 모여들 수도, 남김없이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좋은 땅이 되십시오.

"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각을 세우는 굳어진 토양이 아닌 상대를 위해 자신을 부스러뜨리는 겸손한 부드러운 토양이 되십시오.

",

"

-따뜻한 마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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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형참극ㅣ披荊斬棘

피형참극ㅣ披荊斬棘

피형참극ㅣ披荊斬棘

○ 가시나무를 헤치고 쪼개다, 어려움을 이기고 나아가다.

○ 披(헤칠 피) 荊(가시나무 형) 斬(벨 참) 棘(가시 극)

나무의 온갖 가시가 荊棘(형극)이다. 가시처럼 생긴 풀(艹)이 형벌에 쓰인 가시나무를 나타낸다고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가시덤불이 우거져 있으면 힘들어 고생길이란 의미가 담겼다.

가시나무를 헤쳐내고(披荊) 쪼개어 베어낸다(斬棘)는 이 성어는 앞길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없애고 나아간다는 뜻이다. 앞서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장애를 제거하는 것을 이른다. 중국 宋(송)나라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의 馮異傳(풍이전)에서 유래했다. 前漢(전한)을 멸망시키고 新(신)나라를 세운 王莽(왕망, 莽은 풀 망)의 군대는 다시 後漢(후한)의 光武帝(광무제) 劉秀(유수)에게 격파 당한다. 유수도 군사를 일으켰던 초기에는 세력이 미약하여 생활에 큰 고통이 따랐다. 대원들의 이탈이 잦았지만 主簿(주부)라는 벼슬을 맡고 있던 풍이는 흔들리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

유수가 군사를 이끌고 한 지역을 지나갈 때 추위와 배고픔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풍이는 그런 상황에서도 콩죽을 구해와 바쳤다. 다시 길을 가다 폭우를 만나 옷이 다 젖어버렸다. 풍이는 땔감을 구해 불을 피운 뒤 유수 일행의 옷을 말려주었다. 크게 고마움을 느낀 유수는 황제에 오른 뒤 풍이에게 關中(관중)을 평정하는 임무를 맡겼다. 가는 곳마다 민심을 얻자 풍이가 모반하려 한다는 글이 유수에게 올라왔다. 황제는 문무백관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풍이가 나의 대업을 위해 많은 어려움을 헤치고 장애를 극복했기에 관중 땅을 평정할 수 있었소.’ 황제는 더 큰 신임과 함께 풍이에게 많은 금은보화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