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1일 화요일

부이세어ㅣ附耳細語

부이세어ㅣ附耳細語

부이세어ㅣ附耳細語

○ 귀에 대고 조용히 말하다

○ 附(붙을 부) 耳(귀 이) 細(가늘 세) 語(말씀 어)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마음대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르는 말.

"

귀에다 대고 소곤거린다는 뜻으로, 남의 장단점을 생각없이 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1614년(광해군 )에 이수광이 편찬한 지봉유설(芝峰類說)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문신 황희(黃喜:1363∼1452)는 젊은 시절에 길을 가다가 잠깐 동안 쉬는데 들판에서 농부들이 소를 몰며 논을 갈고 있는 것을 보았다. 황희는 농부에게 소 두 마리 가운데 어느 소의 힘이 더 강한지 물었더니 쟁기질을 하던 농부가 황희에게 가까이 다가와 귀에다 대고 "이 소가 훨씬 더 힘이 셉니다"라고 말하였다. 황희가 "그곳에서 직접 말을 하지 내 귀에 대고 조용히 말합니까?"하고 물었다. 농부는 "짐승의 마음도 사람과 똑같습니다. 이 소가 더 힘세고 저 소가 힘이 없다고 하면 힘이 약한 소가 듣고 서운한 마음이 들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황희는 짐승에게도 꼼꼼하게 주의를 기울여 빈틈 없이 자상한 마음을 쓰는 농부에게 감동하였다. 그래서 정승(政丞)에 오른 뒤에도 다른 사람의 장점이나 단점을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유언비어ㅣ流言蜚語

유언비어ㅣ流言蜚語

유언비어ㅣ流言蜚語

○ 아무 근거도 없이 널리 퍼진 소문

○ 流(흐를 유) 言(말씀 언) 蜚(바퀴벌레 비) 語(말씀 어)

한(漢)나라 경제(景帝) 때 사람 두영(竇嬰)은 태후의 조카이자 대장군 지위에 있는 실력자로서 각지의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위기후(魏其侯)의 관작까지 받아 조정 대신들이 모두 그의 앞에서 굽신거렸다. 이때 전분(田粉)이란 간신은 미미한 출신으로서 처음에는 두영의 집에 들락거리며 아첨을 일삼았으나, 아름다운 누이가 황후가 되는 바람에 벼락출세를 하여 태중대부(太中大夫)라는 높은 벼슬을 얻었다. 더구나 경제가 죽고 무제(武帝)가 즉위한 후에는 무안후(武安侯)에 봉해져 그 권세는 오히려 두영을 능가하게 되었다. 따라서 예전에는 두영 앞에서 얼찐거리던 그 많은 고관대작들이 이번에는 전분한테 몽땅 달라붙어 갖은 아첨을 떨었다.

“이런 몹쓸 인간들 같으니!”

강직하고 호걸풍인 장군 관부(灌夫)는 그런 꼴을 보다못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영락한 두영과 여전히 친하게 지내며 같이 술잔을 나누고 세상 꼬락서니를 한탄하곤 했다. 어느 날 전분이 연(燕)나라 왕 유가(劉嘉)의 딸을 첩실로 들이게 되어 그의 집에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두영과 관부 역시 예의상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만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전분이 잔을 쳐들며 술을 권했을 때는 참석자들이 모두 엎드려 축하와 감사를 표하면서 각자 자기 잔을 들었으나, 두영이 손님의 입장에서 전분을 축하하는 의미로 건배를 제의했을 때는 대부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디 이놈들!’

평소부터 심사가 꼬여 있던 관부는 잔을 들고 전분 앞에 걸어가 직접 건배를 제의했다. 그러나 전분은 ‘이미 마셨다’는 핑계로 그 건배를 받지 않았다. 관부는 이번에는 전분의 추종자인 관현(灌賢)에게도 건배를 제의했으나, 관현은 옆사람과의 대화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드디어 화가 난 관부는 잔을 내동댕이치며 외쳤다.

“어찌 이렇게 무례할 수가 있단 말이냐!”

그 바람에 잔치는 엉망이 되었고, 사람들은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영은 관부를 달래어 돌아가도록 했으나, 분노한 전분이 관부를 붙잡아 투옥해 버렸다. 두영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황제에게 상소를 올렸다. 관부는 나라를 위해 세운 공이 큰 장군입니다. 무안후의 집에서 있었던 소란은 예도에 크게 어긋난 사람들에게 발단의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도 무안후는 개인 감정으로 관부를 포박한 것입니다. 무제는 다음날 조회 자리에서 그 문제를 끄집어 내고 잘잘못을 가리려고 했다. 그러나 두영과 전분이 각각 자기 주장만 내세울 뿐 아니라 바른 증언을 해야 할 대소신료들도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으므로, 무제는 화를 버럭 내며 들어가고 말았다. 이 일이 왕태후의 귀에 들어가자, 그녀는 발끈해서 아들인 무제를 찾아가 따졌다.

“가당찮은 놈들이 이 어미와 내 집안을 욕보이려고 하는데, 성상께서는 뒷짐지고 구경만 하겠다는 것이오?”

처지가 곤란해진 무제는 하는 수 없이 형식적인 탄핵 절차를 밟아 두영을 ‘주군기망죄(主君欺罔罪)’로 투옥해버렸다. 다급해진 두영은 생전의 경제로부터 받아 두었던 ‘황제 친견(親見)의 특혜’를 써먹기로 했다. 그것은 비상시에 황제를 단독 대면할 수 있는 특권으로서, 무제를 직접 만나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용서를 빌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전분 일파로 꽉 찬 조정은 왕태후의 입김에 따라 두영에게 ‘유조위조죄(遺詔僞造罪)’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그것은 사형을 도저히 모면할 수 없는 중죄에 해당되었다.

“아하, 세상 이치가 어찌 이다지도 비정하단 말인가!”

두영은 자기 가슴을 쥐어뜯으면서 탄식해 마지않았다. 더구나 자기를 알아 주던 유일한 친구인 관부가 가족들 모두와 함께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두영은 일체의 식사를 거절한 채 죽기만을 기다렸는데, 어느 날 옥리가 가만히 귀띔해 주었다.

“내년 여름이 되면 특별사면이 실시된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만 참고 견디십시오.”

그 말을 들은 두영은 마음을 돌리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무렵 장안성 안에 이런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두영은 옥중에서도 반성은커녕 천자를 헐뜯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전분 일당이 꾸며낸 것이었지만, 소문을 들은 무제는 몹시 노하여 두영을 사형에 처하고 말았다.

역린ㅣ逆麟

역린ㅣ逆麟

역린ㅣ逆麟

○ 용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

○ 逆(거스릴 역) 鱗(비늘 린)

용의 가슴에 거꾸로 난 비늘이라는 뜻으로, ①건드리면 반드시 살해됨 ②임금님의 노여움을 비유(比喩ㆍ譬喩)함

기린, 봉황, 거북과 함께 四靈(사령)이라 칭하며 신령스런 동물 증의 으뜸가는 용은 왕을 비유하여 龍顔(용안), 龍袍(용포), 龍床(용상) 등으로 높여 부른다. 그런데 거꾸로 난 용의 비늘 逆麟은 모두 81개 중 목 아래에 단 1개 있다고 한다. 이것의 뜻이 임금의 노여움을 가리키게 된 것은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의 법가 韓非(한비)가 쓴 ‘韓非子(한비자)’ 이후부터다.

당시에는 지혜로운 자들이 너도나도 군주를 설득하여 벼슬을 얻으려 했는데 등용되기란 그야말로 登龍門(등용문) 넘기였다. 군주라 해서 모두 성인이 아닌 만큼 보통 사람과 같이 약점이 있었다. 유세 중에 잘못 왕의 치명적 잘못을 건드리게 되면 목이 달아날 판이고, 좋은 점만 주워섬기면 벼슬 얻기 위해 아부한다고 여긴다. 여러 가지 그 어려움을 모은 것이 ‘說難(세난)’편이다. 說는 물론 ‘말씀 설’이지만 遊說(유세) 때와 같이 이 때는 ‘달랠 세’. 그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용이라는 동물은 유순하여 길들이면 타고 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목 밑에 한 자쯤 되는 거꾸로 난 비늘, 바로 역린이 있는데 만약 사람이 그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其喉下有逆鱗徑尺 若人有嬰之者 則必殺人/ 기후하유역린경척 야인유영지자 즉필살인). 군주에게도 이 역린이 있으므로 유세하려는 자는 그것을 건드리지 않아야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발본색원ㅣ拔本塞源

발본색원ㅣ拔本塞源

발본색원ㅣ拔本塞源

○ 근본을 빼내고 원천을 막아 버린다

○ 拔(뽑을 발) 本(근본 본) 塞(막힐 색) 源(근원 원)

근본(根本)을 빼내고 원천(源泉)을 막아 버린다는 뜻으로,사물(事物)의 폐단(弊端)을 없애기 위(爲)해서 그 뿌리째 뽑아 버림을 이르는 말. 잡초를 벨 때 뿌리까지 없애라는 斬草除根(참초제근)과 닮았다. 이와 같이 좋지 않은 일의 근본 원인이 되는 요소를 완전히 없애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의지를 보일 때 이 비유를 쓴다. 그런데 春秋時代(춘추시대) 魯(노)나라의 학자 左丘明(좌구명)이 쓴 ‘左氏傳(좌씨전)’과 ‘國語(국어)’에 이 말을 사용할 때는 약간씩 다른 의미였다.

晉(진)나라 獻公(헌공)은 이민족에 승리를 거두고 驪姬(여희, 驪는 검은말 려)라는 미녀를 데려왔다. 절색에다 수단도 간교한 여희에 혹해 왕후를 폐하려는 헌공에게 史蘇(사소)라는 산대 점쟁이가 간했다. 이런 미색은 나라를 망친 妺喜(말희)나 妲己(달기), 褒姒(포사)와 같다며 ‘나무를 벨 때 뿌리까지 베지 않으면 반드시 다시 살아나고(伐木不自其本 必復生/ 벌목부자기본 필복생), 물을 막으면서 그 근원을 막지 않으면 반드시 다시 흐르는 법이며(塞水不自其源 必復流/ 색수부자기원 필복류), 재앙을 없앨 때 그 바탕을 없애지 않으면 반드시 다시 난리가 난다(滅禍不自其基 必復亂/ 멸화부자기기 필복란)’고 말렸다. 그러나 헌공은 듣지 않아 진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국어의 晉語(진어) 1편에 실려 있다.

좌씨전 昭公(소공) 9년조에는 이렇게 나온다. ‘의복에 갓과 면류관이 있는 것은 나무와 물에 뿌리와 근원이 있는 것과 같다. 갓을 찢고 면류관을 부수며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으면(若裂冠毁冕 拔本塞原/ 약열관훼면 발본색원) 오랑캐라도 업신여길 것이다‘. 周(주)나라 景王(경왕)이 국경을 침범한 진나라를 꾸짖으며 한 말이다. 여기선 하늘의 이치를 알고 욕심을 버리라는 것으로 근본을 망치는 행위를 뜻했다.

백문불여일견ㅣ百聞不如一見

백문불여일견ㅣ百聞不如一見

백문불여일견ㅣ百聞不如一見

○ 백번 듣기보다 한 번 봄이 낫다

○ 百(일백 백) 聞(들을 문) 不(아닐 불) 如(같을 여) 一(하나 일) 見(볼 견)

한서(漢書)의 조충국전(趙充國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전한(前漢)의 제9대 황제 선제(宣帝:BC 74~BC 49) 때 서북 변방에 사는 티베트 계통의 강족(羌族)이 반란을 일으켰다. 전한의 군사는 필사적으로 반란을 진압하고자 하였으나 대패하였다. 고민 끝에 선제는 어사대부(御史大夫:검찰총장) 병길(丙吉)에게 토벌군의 적임자를 누구로 하였으면 좋겠는지 후장군(後將軍) 조충국에게 물어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때 조충국은 이미 76세의 백전노장이었지만 아직도 실전을 치를 수 있을 정도로 원기가 왕성하였다. 그는 일찍이 제7대 황제 무제(武帝:BC 141~BC 87) 때 흉노 토벌에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의 직속 부하로 출전하였다가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과감하게 진격하여 전한의 군사를 무사히 구해내는 전공을 세웠다. 이러한 혁혁한 전공으로 거기장군(車騎將軍)에 임명된 명장이었다. 병길이 조충국을 찾아가 선제의 뜻을 전하니 바로 자신이 적임자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선제는 조충국이 명장임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그를 불러들여 강족의 토벌 방책에 대해서 고견을 물었다.

조충국은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합니다. 무릇 군사란 작전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전술을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므로 바라건대 신을 금성군(金城郡:지금의 간쑤성 난주 부근)으로 보내 주시면 현지를 살펴본 다음 방책을 아뢰겠습니다百聞不如一見 兵難險度 臣願馳至金城 圖上方略"라고 대답하였다. 조충국은 선제의 윤허를 받고 현지로 달려가 지세와 적의 동태를 면밀히 살펴보고, 또한 포로로 잡힌 전한 군사로부터 정보를 캐낸 뒤 선제에게 "기병보다는 둔전병(屯田兵)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방책을 제시하였다. 이 방책이 채택된 이후 강족의 반란도 차차 수그러졌다고 한다.

이처럼 백문불여일견은 조충국의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 번 보는 것이 백 번 듣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뜻이다.

거안제미ㅣ擧案齊眉

거안제미ㅣ擧案齊眉

거안제미ㅣ擧案齊眉

○ 밥상을 눈 위로 받들어 올린다

○ 擧(들 거) 案(밥상 안) 齊(가지런할 제) 眉(눈썹 미)

밥상을 눈 위로 받들어 올린다. 즉 아내가 남편을 지극히 공경하여 받들어 올림을 일컫는 말.

부풍군 평릉현에 비록 집은 가난하지만 절개가 곧은 자(字)는 백란(伯鸞)으로 양홍(梁鴻)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현의 맹가(孟家)에 몸이 뚱뚱하고 얼굴도 못난 맹광(孟光)이라는 딸이 있었다. 나이가 서른이 넘어 혼기가 훨씬 지났는데도 좀처럼 시집을 가려고 하지 않자 부모는 근심이 되어 그 연유를 묻자,

"양백란(梁伯鸞)같은 훌륭한 분이라면 기꺼이 시집을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양홍은 이 처녀에게 청혼을 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7일이 지나도 양홍은 색시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느날 색시가 하도 궁금하여 자신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 연유를 캐묻자 양홍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바랬던 여자는 비단옷을 입고 분을 바르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 함께 누더기 옷을 입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살 수 있는 그런 여자였소!" 이 말을 듣자 양홍의 색시는 말했다. "이제야 당신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당신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누더기 옷을 입고 당신의 뜻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양홍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그녀에게 덕요(德曜)라는 별명을 지어주고 둘이서 산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면서 생활했다. 그러나 왕실을 비방하는 양홍이 지은 시로 인해 장제(章帝)에게 쫓기게 되자 오(吳)나라로 건너가 고백통(皐伯通)이란 명문가의 방앗간에서 날품팔이를 하며 지냈다. 그러나 양홍이 일을 마치고 돌아 오면 그의 아내는 밥상을 차리고 기다렸다가 눈을 아래로 깔고 밥상을 눈썹 위로 들어 올려(擧案齊眉) 남편 에게 공손히 바쳤다고 한다.

십년수목ㅣ十年樹木

십년수목ㅣ十年樹木

십년수목ㅣ十年樹木

○ 십년 뒤를 내다보며 나무를 심다.

○ 十(열 십) 年(해 년) 樹(나무 수) 木(나무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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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李敭河(이양하, 敭은 날릴 양) 선생은 노래했다.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한다. 나무는 고독의 철인이요, 安分知足(안분지족)의 현인이다.

",

"

십년을 내다보고 나무를 심으라고 한 이 말은 나무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것이긴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百年樹人(백년수인)과 합쳐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더 막중한 일이라고 중점을 뒀다. 春秋時代(춘추시대) 齊(제)나라의 재상으로 桓公(환공)을 보필하여 春秋五霸(춘추오패)에 오르게 한 管仲(관중)이 한 말로 나온다. 관중은 평생을 도운 鮑叔牙(포숙아, 鮑는 절인물고기 포)와 함께 깊은 우정을 말하는 管鮑之交(관포지교)로도 유명하다. 실제 후세 사람들이 썼지만 관중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는 管子(관자)의 權修(권수)편을 옮겨 보자.

",

"

일 년의 계획으로는 곡식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고, 십년의 계획으로는 나무를 심는 일만한 것이 없으며, 평생의 계획으로는 사람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다. 한 번 심어 한 번 거두는 것이 곡식이고, 한 번 심어 열 번 거두는 것이 나무이며, 한 번 심어 백 번 거둘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

일벌백계ㅣ一罰百戒

일벌백계ㅣ一罰百戒

일벌백계ㅣ一罰百戒

○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에 경계하다.

○ 一(한 일) 罰(벌줄 벌) 百(일백 백) 戒(경계할 계)

전국시대의 병법가 손자(孫子)는 이름이 무(武)로, 제(齊)나라 사람이다. 그가 병법(兵法)이라는 특기를 가지고 오왕(吳王) 합려를 만났다. 합려가 말했다. “그대의 병서는 나도 모두 읽었다. 실제로 군을 지휘해 보여주겠는가?” “좋습니다.” “여인들이라도 좋은가?” “좋습니다.” 합려는 궁녀 180명을 모았다. 손자는 이것을 2대(隊)로 나눈 뒤, 왕의 총희(寵姬) 두 사람을 각각 대장으로 삼았다. 그런 다음 나머지 궁녀들에게는 갈래진 창戟을 들게 하고 명령하였다. “앞으로 하면 가슴을 보고, 좌로 하면 왼손을 보고 우로 하면 오른손을 보고, 뒤로 하면 등을 보라.” 이렇게 군령을 선포하고 군고(軍鼓)를 쳐서 명령하자 궁녀들은 크게 웃을 뿐이었다. 손자가 말했다. “군령이 분명하지 않아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은 주장(主將)의 책임이다.” 다시 큰소리로 세 번 되풀이 하고 다섯 차례 설명하고 나서 군고를 쳐서 호령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크게 웃을 뿐이었다. 손자가 말했다. “군령이 분명하지 않아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은 주장의 책임이다. 그러나 이미 군령이 분명한 데도 따르지 않는 것은 대장의 책임이다.” 하고는 칼을 뽑아 두 총희를 베려고 하였다. 대 위에서 이것을 보고 있던 합려가 전령을 보내왔다. “장군의 용병술(用兵術)을 잘 알았다. 그들을 용서해 줄 수 없을까.” 손자가 말했다. “신이 이미 명령을 받아 장군이 되었습니다. 장군은 진중에 있는 한 임금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들을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침내 두 총희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리고는 차석의 시녀를 대장으로 삼았다. 다시 군고를 울리자 궁녀들은 수족처럼 움직이고 동작이 모두 규칙에 들어맞아 감히 소리지르는 사람 하나 없었다. 손자는 전령을 보내 왕에게 보고했다. “군병은 이미 정돈되었습니다. 몸소 열병하심이 어떠하올지. 왕의 명령이라면 물이면 물, 불이면 불 가운데라 할지라도 뛰어들 것입니다.” 합려가 말했다. “장군은 피로할테니 휴식을 위하여 숙사로 가라. 내려가서 볼 생각은 없다.” 손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한갓 용병의 이론을 좋아하실 뿐, 실제로 응용하시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합려는 손자를 장군에 기용했다.

오나라가 서쪽으로는 초(楚)나라를 꺾고 북으로는 제나라, 진(晉)나라를 위협하여 명성을 제후 사이에 떨쳤는데, 손자의 힘이 컸다. 사기(史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중 손자의 일화이다. 여기서 ‘일벌백계’는 ‘하나에게 본을 보임으로써 전체에게 경종을 울리는 방법’으로 쓰였다. 그리고 이런 방법은 고래로 무리를 통솔할 때 자주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것이 능력 없는 지휘자에게는 자칫 무리하게 이용되는 수도 있어,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뜻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과거에 아무리 오랜 기간

과거에 아무리 오랜 기간

과거에 아무리 오랜 기간

우정과 추억을 나눴던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내게 현재 기쁨을 주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관계는 현재 진행형이다.

늘 처음 만나는 사람들처럼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관계를 다져가는 성의를 보여주는 사람만이

시간이 흘러 현재의 관계에서도 살아남는다.

그러니 과거에 친분을 맺은 기간이

아무리 길었어도

지금 점차 멀어져 가는 사람들에 대해

무리한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내 인생속으로 들어왔다가 또 나간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아끼고 좋아하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이라고는

나와 마음이 맞을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데려다 놓는 것 정도다.

번지수 틀린 곳에서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면서까지

인간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다.

"

-임경선 자유로울 것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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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미배요ㅣ五斗米拜腰

오두미배요ㅣ五斗米拜腰

오두미배요ㅣ五斗米拜腰

○ 다섯 말의 쌀, 얼마 안 되는 봉급

○ 五(다섯 오) 斗(말 두) 米(쌀 미) 拜(절 배) 腰(허리 요)

다섯 말의 쌀(五斗米)이라 하면 五斗米教(오두미교)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중국 後漢(후한) 말기에 나타난 道敎(도교)의 일파로 처음 들어갈 때 다섯 말의 쌀을 바치게 했기 때문에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陶淵明(도연명)이 그까짓 다섯 말의 녹봉 때문에 지방관을 허리 굽혀 맞이할 수 없다고 내팽개친 일을 더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여기에서 다섯 말의 쌀이라 하면 얼마 안 되는 봉급을 이르는 말이 됐다.

字(자)인 도연명으로 더 잘 알려진 陶潛(도잠, 365~427)은 東晋(동진) 말기에 태어난 六朝(육조) 최고의 시인으로 일컬어진다. 40여 년간 고위직을 지낸 陶侃(도간, 侃은 강직할 간)의 증손으로 떵떵거릴 집안이었지만 도연명은 하위직을 전전했다. 항상 가난한 생활을 하며 술을 좋아했고, 집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놓아 五柳先生(오류선생)이라 불렸다. 벼슬을 하면서도 항상 전원생활을 꿈꾸며 녹봉 때문에 상관에게 허리 굽히는 일을 괴로워했다.

彭澤(팽택)이란 고을에서 현령을 하고 있을 때 상급기관인 주지사가 순찰관을 보냈다. 고을 아전들이 의관을 갖추고 정중히 맞이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러자 도연명은 ‘내 어찌 다섯 말의 쌀 때문에 허리를 꺾고 시골의 어린 아이에게 절을 할 수 있겠는가(我不能爲五斗米 折腰向鄕里小兒/ 아불능위오두미 절요향향리소아)’하며 거절했다. 그러면서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사임한 뒤 다시는 관계에 나가지 않았다. 李延壽(이연수)가 편찬한 ‘南史(남사)’를 비롯하여 ‘宋書(송서)’, ‘晉書(진서)’의 열전에 두루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