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1일 금요일

멀리서 빈다 / 나태주

멀리서 빈다 / 나태주

멀리서 빈다 /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나는 모자라고 못났습니다

나는 모자라고 못났습니다

나는 모자라고 못났습니다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던 배삼룡이라는 코미디언이 있었다. 그가 입은 옷차림부터 웃음이 나왔다. 헐렁한 통바지에 낡은 넥타이로 허리를 질끈 묶고 바지 한쪽은 삐죽이 올라와 있었다.

그는 당황하면 남의 책상 위에 있는 전화기 를 들어 헛말을 지껄이기도 하고 문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바보 같은 그

모습에 사람들은 악의 없이 웃었었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새 그는 구시대의 희극인 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개그맨 시대가 왔다. 어느날 그가 칠십대 중반의 노인이 되어 병원 에서 산소 마스크를 끼고 있는 모습이 나왔다.

그 무렵 한 기자가 삶의 불꽃이 꺼져가는 그와 인터뷰한 기사가 나온 걸 봤다. 늙고 병들어 있으면서도 그는 아직도 그를 찾는 무대가 있으면 나가서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기자에게 “세상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냥 나는 당신 보다 좀 모자라고 생긴 것도 못났 습니다 라는 마음으로 살아

왔어요. 바보 연기의 요체도 그것이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 한 마디를 읽는 순간 나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삶의 비결은 상대보다 한 계단 내려가 무릎을 꿇는 자세였다.

칠십년대 말 나는 군 법무관 시험을 보고 훈련을 받기 위해 광주 보병 학교에 입소 했었다. 그곳에는 두 종류의 그룹이 합류해 함께 훈련을 받았다.

한 부류는 나같이 고시에 도전하다가 실패하고 차선책으로 법무장교 시험을 보고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십 년이라는 기나긴 복무기간이 앞에 있었다.

다른 한 부류는 고시에 합격하고 짧은 군 복무를 위해 입대한 사람이었다. 제대를 하면 전원 판사나 검사로 임관이 되고 시간 만 흐르면 앞날이 보장되는 사람들이었다.

고시에 합격하지 못한 나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잘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시기심이 있었다. 그런 시기심은 실속 없는 건방짐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중에 독특한 겸손을 지닌 사람이 있었다.

지방대를 나온 그는 얼굴도 미남이 아니고 덩치도 작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는 누구에게나 먼저 다가가 자신을 낮추면서 공손하게 상대방의 훌륭한 점을 인정했다.

그와 같이 전방으로 명령이 나서 이웃 부대에 근무했다. 나는 건방졌다. 계급이 높은 사람을 만나도 ‘나는 나다, 너는 누구냐’라는 식으로 대해 적을 늘여갔다. 그 친구는 달랐다.

사병에게까지 겸손하게 그리고 살갑게 대해 줬다. 그는 항상 대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당신보다 못난 사람입니다’ 라고 생각 하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흘렀다. 동기생 중에서 그가 제일 먼저 장군이 됐다. 그 얼마 후 그의 장군 계급장에는 별 하나가 더 붙었다. 장군이 되어도 그의 태도는 예전과 다름이 없는것 같았다.

별판이 달린 검은 장군차를 타고 어깨에 번쩍거리는 계급장을 달고 으쓱거릴만 한데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실패한 동기생들을 보아도 항상 온유 하고 겸손하게 대했다. 그가 군 복무를 마치고 국제 형사 재판관이 됐다.

세계 각국에서 유능한 판사들이 차출 되어 근무하는 곳이다. 십여 년이 흐르고 그는 육십대 중반이 되어 임기를 마치고 귀국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다시 그는 국제형사 재판관으로 추천되어 유럽으로 향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재판관들이 그를 좋아해서 다시 재판관으로 모신 것 같았다. 칠십 고개에 다다른 그는 아직도 열성적 으로 일을 하고 있다. 사십여 년 전 함께 군부대에서 훈련을 받던 사람들은 전부 일선에서 물러나 뒷방 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한번 그의 입에서 “나같은 놈이 성공한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모두 당신의 덕입니다”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그의 성공의 비결인 것이다. 그는 철저히 겸손했다. 위선적 겸손이 아니고 처세의 겸손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성공을 보면서 세상을 이기는 가장 무서운 힘이 겸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동기생인 그의 앞에 마음의 무릎을 꿇는다.

-글, 엄상익 변호사-

남겨 둘 줄 아는 사랑

남겨 둘 줄 아는 사랑

남겨 둘 줄 아는 사랑

내가 가진것을 다 써 버리지 않고 여분의 것을 끝까지 남겨둘 줄 아는 사람,

말을 남겨두고 그리움을 남겨두고 사랑도

남겨두고 정도 남겨두고 물질도 남겨두고 건강도 남겨두면서 다음을 기약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말을 다 해버리면 다음에는 공허가 찾아 오고 마음을 모두 주어 버리면 뒤를 따라 허탈감이 밀려 옵니다.

사랑을 다해 버리고 나면 다음에는

아픔이 많아 울게 되고 가진 것을

다 써버리면 불안해지고,

그리움이 너무 깊으면 몸져 눕게 되고 젊음과 건강을 유혹속에 다 써 버리면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불타는 사랑이 아름답다고 말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서로를 알아 가고 날마다 더욱 사랑해 가는 모습이

더 아름답습니다.

마음의 정도 다음 사람을 위하여 남겨두는 것이 좋고 기쁨도 슬픔도 다 내보이지 말고 다음에 얼마라도 감추어 두면 더 아름다울 것입니다.

사랑 중에 가장 값진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오래 참고 인내하는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으로 만나는 사랑이 참으로 반가운 사람이고 오래 가는 사랑이 귀한 사랑인 것입니다.

"

-좋은 생각 중에서-

"

혼자 사랑

혼자 사랑

혼자 사랑

그대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그대와 조금 더 오래 있고 싶어요

크고 작은 일들을 바쁘게 섞어 가며

그대의 손을 잡아보고 싶어요

여럿 속에 섞여서 아무렇지도 않은듯

그러다 슬그머니 생각을 거두며

나는 이것이 사랑임을 알아요

꽃이 피기 전 단내로 뻗어오르는 찔레순 같은 오월 아침 첫 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 보는 마음 같은 이것이 사랑임을 알아요

그러나 나의 사랑이 그대에게 상처 될까봐 오늘도 말 안하고 달빛 아래 돌아 와요

어쩌면 두고두고 한번도 말 안하고 이렇게 살게 되지 생각하며 혼자서 돌아 와요.

\xa0

-도종환-

겸손한 행복

겸손한 행복

겸손한 행복

겸손의 씨를 뿌리는 사람은

우정의 꽃을 피우고,

친절의 나무를 심는 사람은

사랑의 열매를 거둡니다.

사랑없는 속박은 야만 행위이며

속박 없는 사랑은 자멸 행위이니

사랑에 낭비란 없는 것임을...

우정이란 온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접합제이며

겸손은 타인의 호의와 애정에

보답하는 조그마한 대가입니다.

세상의 어두움은

그림자에 불과하며

바로 그 뒤 손 닿는 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사람이란 바빠야 행복한 법.

몸은 일을 하고 머릿속은 꽉 차

있어야 마음이 만족스럽습니다.

기쁨과 휴식과 절제만 갖춘다면

의사와는 담을 쌓아도 좋은 세상.....

삶이란 가시에 꿀을

빨아 먹는것과도 같은 것.

행복한 삶의 비결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데 있습니다.

더불어 남을 행복하게 해 주는데에

행복한 삶의 비결이 있습니다.

행복이란,

자기 몸에 뿌려서 남에게 향기를

선사하는 향수 와도 같은 것 입니다.\xa0

"

-사랑의 말 중에서-

"

길은 늘 그 자리에서

길은 늘 그 자리에서

길은 늘 그 자리에서

길은 늘 머물러 있다.

길은 떠나지 않고

떠나는 자들을 위해서

늘 그렇게 놓여 있다.

길은 늘 그 자리에서

추억을 쌓아 놓는다.

물든 가을 낙엽도

많은 이들의 발걸음도

모두 그 자리에 두고

스쳐 간 이들을 이야기 한다.

길은 멀리 가지 않고

늘 그 자리에서 웃고 있다.

걸음을 걷는 이들은

멀리 저 멀리 떠나 가지만

길은 늘 머물러

또 다른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다.

-바람시, 낙서중에서-

어떤 이력서

어떤 이력서

어떤 이력서

나이는 31세, 경력은 트럭 운전수, 학력은 대학교 중퇴, 학창 시절 왕따, 사람들은 그를 ‘찌질이 인생’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력서에는 적혀있지 않은 그의 또 다른 모습, 영화광, 놀라운 상상력, 풍부한

예술적 감각, 이력서에는 적을 수 없는 그의 잠재력.

그런 그가 가지고 있던 꿈, 영화 감독.

온갖 잡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던 그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작은 영화제작소에 취직한다.

일을 하며 그가 틈틈이 완성한 시나리오가 팔린 가격은 단돈 1달러, 그리고 그가 요구한 단 하나의 조건.\xa0 “내가 이 영화의 감독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오.”\xa0

그렇게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 ‘터미네이터’\xa0

"터미네이터 감독이 도대체 누구야?"

그에게 주목하기 시작한 사람들.

그리고 찌질이가 계속해서 만들어 낸 작품들.에일리언, 타이타닉, 아바타.

지구 최고의 감독칭호를 받은 사람.

과거 그는 서른이 넘도록 변변한 일자리 하나 갖지 못했고 사람들은 그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

왜냐하면 그의 이력서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xa0

",

우리는 종종 미래의 가능성을 단순히 지금 내 이력에서 적을 수 있는 것들로 판단하곤 한다. 하지만 당신의 이력서가 지금 비어 있다고 해서\xa0 당신의 미래까지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xa0

모두가 찌질이라 불렀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xa0훗날 오스카상 수상대에서 이렇게 외쳤다.\xa0

“I\m the king of the world"

(나는 세상의 왕이다)

"I\m the king of the world"

(나는 세상의 왕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옮긴 글-

아름다운 동반자

아름다운 동반자

아름다운 동반자

새로운 부부가 태어나는 결혼식 날,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아름다운 신부가 입장하는데 신부가 한쪽 다리를 절면서 들어왔습니다.

다른 쪽보다 짧은 다리를 이끌고 힘겹게 신랑 앞에 거의 다 왔을무렵 갑자기 신부가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하객들과 신부 아버지는 당황해 했고 신부는 그 자리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신랑이 달려 나오더니 신부의 손을 힘차게 잡아 일으켜 팔짱을 켰습니다. 그리고 늠름하게 신부와 같이 걸어가서는 주례자 앞에 섰습니다.

주례가 시작되고 몇 분 지나자 신랑은 자신의 한쪽 발을 웨딩드레스 밑으로 살며시 들이밀어 신부의 짧은 발을 자기 발등 위에 올려놓고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본 하객들은 두 사람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친구 중의 한 명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결혼식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신혼여행을 다녀왔을 때 그 친구가 그 가정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혼 앨범을 보고 있었습니다.

결혼 앨범에서 메모지 한 장이 떨어졌는데 그 친구는 그 메모지에 적힌 메모를 보고 또 한 번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제가 늘 기쁨으로 당신의 한쪽 다리가 되겠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당신과 내가 진실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내 한쪽 다리를 절개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이철환 작가의 책 ‘연탄 길’ 중 한 이야기를 요약한 내용-

난 단지..

난 단지..

난 단지..

오래 전 존스 홉킨스 대학의 한 교수가 몇명의 대학원생들을 빈민굴에 보냈다. 빈민굴에 살고 있는 12세에서 16세까지의 어린 소년 200여 명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환경과 경력을 살펴 그들이 앞으로 건전한 삶을 살 확률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학생들은 더럽고 열악하고 가난하고 범죄자가 들끊는 이곳에서 자라는 아이들 중 90% 이상이 교도소 생활을 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교수에게 제출하였다.

25년 후, 또 다른 대학원생들이 빈민굴에 나갔다. 이들의 임무는 25년 전의 조사결과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예전의 어린 소년을 한 명씩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학생들이 만날 수 있었던 180명의 소년 중에서 교도소에 한 번이라도 들어간 사람은 단 4명 뿐이었다.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던 것이다.

학생들은 범죄의 온상에서 소년들이 무사하게 자랐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학생들이 빈민굴에 조사를 나갔을 때 소년들이 한결같이 한 말은 "빈민굴에 한 선생님이 있었다."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기억해 낸 한 학생에 의해 자세한 조사가 시작되었는데, 소년들은 하나같이 그 당시 한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찾아 나섰다. 그 선생님은 반백의 할머니가 되어 허름한 건물에 살고 있었다. 학생들은 노부인에게 빈민굴 소년들의 이야기를 꺼내며 그동안 벌여왔던 조사결과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어떻게 소년들을 지도하고 가르쳤기에 소년들이 바르게 자랐고 어른이 된 뒤에도 선생님을 잊지 못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노부인은 소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오, 사실 저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어요. 노부인이 여러번 같은 말을 반복하자 학생들은 낙심하고 일어섰다. 문을 나서는 학생들을 배웅하며 노부인이 중얼거렸다.

"난 단지,,, 그 소년들을 사랑했었지요."

"

-월간 좋은생각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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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상경ㅣ錦衣尙褧

금의상경ㅣ錦衣尙褧

금의상경ㅣ錦衣尙褧

○ 비단옷을 입고 기운 옷을 덧입는다

○ 錦(비단 금) 衣(옷 의) 尙(오히려 상) 褧(홑옷 경)

비단옷을 입고 기운 옷을 덧입는다는 뜻으로,군자(君子)는 미덕(美德)이 있어도 이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음을 비유적(比喩的)으로 이르는 말

비단옷이 너무 화려하여 비단옷을 입을 때는 그 위에 褧衣(경의)를 걸쳐 입어 지나치게 화려한 느낌이 들지 않게 함. 선비가 내면에 높은 학식과 덕망을 갖추었더라도 남 앞에서 가볍게 이를 뽐내거나 드러내서는 안 됨을 비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