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4일 월요일

대간사충大姦似忠 – 크게 간사한 사람은 충신처럼 보인다.

대간사충大姦似忠 – 크게 간사한 사람은 충신처럼 보인다.

대간사충(大姦似忠) – 크게 간사한 사람은 충신처럼 보인다.

큰 대(大/0) 간음할 간(女/6) 닮을 사(亻/5) 충성 충(心/4)

큰 거짓말은 진실처럼 보인다. 그래서 대중 선동의 천재 히틀러는 이왕 거짓말을 하려면 큰 거짓말을 하라고 했다. 대중은 작은 거짓말을 믿기보다는 큰 거짓말을 믿는다고 봤다. 진실과 유사하게 포장한 허위는 일반 대중들이 파악하기엔 못 미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주 간사한 사람(大姦)의 언행은 그 아첨하는 모습이 매우 교묘하여 절세의 충신과 닮은 모습(似忠)을 보인다. 악명 높은 간신일수록 그가 떵떵거렸던 시대에는 최고의 충신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이와 같이 악한 속마음은 숨겨 놓고 남을 위하는 척, 충실한 척 하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

중국 元(원)나라 때 완성된 ‘宋史(송사)’에서 비롯된 이 성어는 이런 교훈적인 뜻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행위를 중상하기 위한 뜻에서 먼저 사용돼 빛이 바랬다. 뛰어난 산문시를 남겨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에 들어가는 宋(송)의 王安石(왕안석, 1021~1086)은 新法(신법)이란 개혁정책을 시행한 정치가이기도 했다. 송나라는 숭문정책으로 선비들을 우대했지만 이민족의 침략을 금전적으로 해결해왔기 때문에 재정적자에 시달렸다. 19세에 즉위한 6대 황제 神宗(신종)은 부왕 英宗(영종)을 도와 개혁을 진행해 온 왕안석을 크게 신임했다.

개혁에는 반발이 따르는 법이라 농민의 조세와 부담을 덜고 국방을 강화하며, 상인의 물품독점에 제재를 가하는 일련의 정책에 기득권을 가진 지주와 귀족관리들은 거세게 저항했다. 가진 자로부터 없는 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권력의 재편을 노린다는 구실이었다. 諫官(간관)으로 사람을 가리지 않고 탄핵해 일면 추앙도 받던 呂誨(여회, 1014~1071)라는 사람은 왕안석이 재상에 취임하는 것부터 못마땅했다. 신법이 계속 제출되자 마침내 탄핵 상소를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아주 간사한 사람은 충신과 비슷하고, 큰 속임수는 믿음직스럽게 보인다(大姦似忠 大詐似信/ 대간사충 대사사신)’고 하면서 왕안석을 간특한 사람이라고 맹공했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고 한다. 믿는다고 하더라도 거기엔 크나큰 허위나 속임수가 들어 있을 수가 있다. 크게 보이는 겉모습도 좋지만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정중지와井中之蛙 - 우물 속의 개구리, 식견이 좁아 세상을 모름

정중지와井中之蛙 - 우물 속의 개구리, 식견이 좁아 세상을 모름

정중지와(井中之蛙) - 우물 속의 개구리, 식견이 좁아 세상을 모름

우물 정(二/2) 가운데 중(丨/3) 갈 지(丿/3) 개구리 와(虫/6)

우리 속담 ‘우물 안 개구리’란 것이 있다. 우물 안에서 하늘을 쳐다보면 자그마한 원이 전부다. 그 속에 갇힌 개구리는 보이는 하늘이 당연히 전부라 생각한다. 널리 알지 못하는 좁은 식견을 비꼬거나 별로 깊지도 않은 지식을 제가 제일인양 우쭐대는 사람을 욕할 때 쓴다. 이것을 그대로 번역한 듯 똑같은 이 성어는 유사한 말이 많기로 유명하다. 먼저 우물이 붙는 埳井之蛙(감정지와, 埳은 구덩이 감), 井蛙之見(정와지견), 井底之蛙(정저지와) 외에 대롱 管(관)이 들어가는 管窺蠡測(관규려측, 蠡는 좀먹을 려), 管中窺天(관중규천), 관중규표(管中窺豹)가 있고, 맹인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群盲撫象(군맹무상)도 비슷한 말이 많다.

奇想天外(기상천외)한 비유로 우주만물을 흥미 있게 풀어내는 ‘莊子(장자)’에 이 말이 처음 나온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때 활약했던 제자백가 중에서 老子(노자)와 더불어 道家(도가)의 쌍벽으로 불리는 莊周(장주)의 저작이다. 外篇(외편)의 秋水(추수)편은 시간과 공간의 무한함과 인간의 미미함을 그려내고 있다. 첫 머리에 나오는 이야기에 비유가 실려 있다.

가을비가 때맞게 내려 온갖 냇물이 黃河(황하)로 흘러들자 강을 관장하는 신 河伯(하백)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이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흡족해했다. 그러다가 강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北海(북해)에 이르러 동쪽을 보았더니 물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비로소 하백은 자기의 식견이 좁음을 한탄하며 북해의 신 若(약)에게 하마터면 후세의 웃음거리가 될 뻔 했다고 말했다. 약은 하백에게 일러준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해 설명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좁은 장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井蛙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정와불가이어어해자 구어허야), 여름벌레에게 얼음에 대해 말해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여름만 고집하기 때문이다(夏蟲不可以語於氷者 篤於時也/ 하충불가이어어빙자 독어시야).’ 이렇게 말하고 북해약은 하백 자신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大道(대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따와 우물 속 개구리는 바다를 말해도 알지 못한다(井中之蛙 不知大海/ 정중지와 부지대해)라고 쓰기도 한다.

일을 맡아 처리할 때는 주변에 미칠 영향까지 면밀히 분석해야 옳다. 좌우할 권한이 있다고 하여 자신이 제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독불장군으로 밀고 나가다가는 나중에 돌아오지 못할 정도로 망칠 때가 많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단사표음簞食瓢飮 - 대나무 그릇의 밥과 표주박의 물

단사표음簞食瓢飮 - 대나무 그릇의 밥과 표주박의 물

단사표음(簞食瓢飮) - 대나무 그릇의 밥과 표주박의 물

소쿠리 단(竹/12) 먹을 식, 밥 사(食/0) 표주박 표(瓜/11) 마실 음(食/4)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속담처럼 가난을 모두 두려워한다. 하지만 즐기는 것은 아니라도 최소한 가난에 굴하지 않고 더불어 생활한 安貧樂道(안빈낙도)의 삶도 예부터 많이 전해진다. 그 중에서 가난하면서 의연히 학문을 닦아 이 성어를 낳은 孔子(공자)의 수제자 顔回(안회)의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허술한 대 밥그릇에 담은 밥(簞食)과 표주박에 든 물(瓢飮)만으로 지냈다 하여 청빈하고 소박한 생활을 이르기도 한다. 여기서 본뜬 것은 아닐지라도 ‘가난하다는 말은 너무 적게 가진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로마 세네카는 명언을 남겼다.

공자의 3000명 제자 중에서 뛰어난 70인을 七十子(칠십자)나 七十二賢(칠십이현)라고도 부른다. 그중 고락을 함께한 10명을 孔門十哲(공문십철)로 압축하는데 언제나 첫손에 꼽히는 제자가 顔淵(안연, 안회의 자)이다. 학문과 재능이 뛰어나 후세에 顔子(안자)나 亞聖(아성)으로까지 불렸다. 안연은 평생 지게미조차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찢어지게 빈한하여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 했지만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학문에 힘썼다. 공자는 어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 대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 물만 마시면서 누추한 곳에 산다면 다른 사람은 견디지 못하거늘 안회는 즐거움을 잃지 않는구나(一簞食一瓢飮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일단사일표음재누항 인불감기우 회야불개기락).’ 論語(논어) 雍也(옹야, 雍은 화할 옹)편에 나온다. 하지만 안연이 스승의 기대를 살리지 못하고 31세에 요절하자 공자는 대성통곡하며 하늘을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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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를 위한 홀로족과 경제 불안으로 인한 결혼 기피 등으로 1인 가구가 급속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오늘날은 옛날보다 풍요로워 안연처럼 청빈의 생활을 요구하지도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지표상으로는 이전보다 경제가 발전하고 소득이 높아졌어도 여전히 가난을 느끼는 사람은 많다. 동반성장이 되지 않아 부가 부자에게만 몰리고 가난한 사람은 자꾸 오그라드는 빈부격차 때문이다. 앞날도 희망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라 획기적인 성장정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원하지 않는 단사표음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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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 - 아는 것을 안다고 하다.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 - 아는 것을 안다고 하다.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 - 아는 것을 안다고 하다.

알 지(矢/3), 갈 지(丿/3), 하 위(爪/8), 알 지(矢/3), 갈 지(丿/3)

처마 끝의 제비가 지저귀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던 선비가 論語(논어)에 나오는 글과 같이 운다고 글 읽기를 좋아하는 새로 일컬었다는 우스개가 있다. 연속되는 음이 많은 知之爲知之(지지위지지)에 또 비슷하게 不知爲不知(부지위부지)가 이어지니 그럴 만도 하다. 뜻도 좋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도 문제지만 모르면서 아는 척하면 보아주기 어렵다. 문맹이 많았던 시기에 제비가 孔子(공자)를 읽으니 더욱 귀여움 받는 새가 된 셈이다.

덕으로 정치를 한다는 뜻의 爲政以德(위정이덕)에서 나온 爲政(위정)편에 실려 있다. 공자가 여러 제자와 함께 문답으로 가르치고 있는 논어 두 번째 편이다. 가장 나이 많지만 젊은 시절 거리에서 주먹을 자랑하여 배움이 늦었던 仲由(중유)에게 가르침에 대해 말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중유는 자인 子路(자로)로 더 알려져 있고 직선적인 무골의 의리로 공자의 주유천하 때 끝까지 수행한 사람이다. 조금 아는 것이 뒤떨어지더라도 솔직하게 모르는 것을 인정하면 그것이 앞서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소크라테스가 남과 다른 것은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 한 것과 통한다.

老子(노자)도 ‘道德經(도덕경)’ 제71장 知病章(지병장)에서 비슷하게 깨우친다. ‘자기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知不知上 不知知病/ 지부지상 부지지병),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에 병이 되지 않는다(夫唯病病 是以不病/ 부유병병 시이불병).’ 그러면서 성인에게 병이 없는 것은 병을 병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

세상만사 돌아가는 이치를 모두 알 수는 없다. 분야가 많은 만큼 전문가도 곳곳에 있다. 서뿔리 아는 체를 했다가 곧잘 망신사기 십상이다. 모르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 손아랫사람이나 지위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孔子穿珠(공자천주), 不恥下問(불치하문), 역시 공자말씀이다./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백면서생白面書生 – 글만 읽어 세상일에는 경험이 없는 사람

백면서생白面書生 – 글만 읽어 세상일에는 경험이 없는 사람

백면서생(白面書生) – 글만 읽어 세상일에는 경험이 없는 사람

흰 백(白/0) 낯 면(面/0) 글 서(曰/6) 날 생(生/0)

들에 나가 땀 흘려 일을 해 본 적이 없어 얼굴이 하얗다(白面). 그러면서 집 안에서 글만 읽어(書生) 모르는 것이 없다. 하지만 세상일에는 경험이 전혀 없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모든 일에 잔소리나 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선비를 가리킨다. 이럴 때 먼저 떠오르는 ‘남산골 딸깍발이’란 말이 있다. 옛날 서울 남산 밑에 모여 살던 몰락한 선비들이 가난하여 맑은 날에도 나막신을 신고 다닌 데서 유래했다. 비록 딸깍거리며 가난하게 살아도 고집스럽게 줏대를 지키며 세상 이치는 꿰고 있는데서 허풍선이 서생과는 차이가 난다.

이 말은 처음 말을 타고 전장에 나가 싸우는 검붉은 얼굴의 무관에 비해 집에서 책만 읽어 창백한 문관을 대비한 데서 나왔다. 서기 420~589년 시기는 중국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이다. 이때는 남북으로 분열되어 한족의 宋(송)나라가 남쪽을, 五胡十六國(오호십륙국)의 혼란을 수습한 北魏(북위)가 북쪽을 차지하여 대치했다. 송나라에 沈慶之(심경지)라는 책략이 뛰어난 무관이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무예를 연마하여 뛰어난 기량으로 수없이 반란을 진압하는 공로를 세운 장군이었다.

북위에서 군사를 일으켜 한 지역을 공격해오자 송의 文帝(문제)는 반격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문신들과 더불어 방법을 논의했다. 그때 심경지가 북벌 실패의 전례를 들어 출병을 반대했다. 국가를 다스리는 일은 집안일에 비유할 수 있다며 말한다. ‘밭가는 일을 알려면 종들에게 물어보고, 베 짜는 일은 하녀에게 물어보아야 하는 법입니다. 지금 폐하께서 적국을 치려고 하면서 어찌 얼굴이 허연 샌님들과 일을 도모하십니까(田事可問奴 織事可問婢 今陛下將欲攻敵國 與白面書生謀之/ 전사가문노 직사가문비 금폐하장욕공적국 여백면서생모지)?’ 문제는 그러나 심경지의 간언을 듣지 않고 출병시켰다가 대패했다. 沈約(심약)이 편찬한 ‘宋書(송서)’ 심경지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론과 실제를 다 갖춘 인재가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귀할 수밖에 없다. 이론에 정통한 학자들이 실천하는 정책에 나섰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자기 이론만 고집 말고 현장에선 어떤 다른 흐름이 있는지 잘 받아들여야 서생소리를 듣지 않고 실패도 막는다./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2024년 3월 3일 일요일

きゅうか休暇

きゅうか休暇

きゅうか休暇

=> 휴가

かんじ感じ

かんじ感じ

かんじ感じ

=> 느낌, 감각, 인상

かんかく感覚

かんかく感覚

かんかく感覚

=> 감각.

◈ 털머위

◈ 털머위

◈ 털머위

• 학명 : Farfugium japonicum

• 과명 : 국화과

• 종류 : 초본(풀)

• 이명 : 탁오, 말곰취

• 꽃색 : 황색

• 계절 : 가을

• 분포-지리 : 제주도, 울릉도, 남부지방, 다도해 섬지방

• 분포-지형 : 길가 빈터 양지

• 생육상 : 다년생초본(여러해살이풀)

• 높이 : 30~80cm

• 개화기 : 9월 ~ 10월

• 결실기 : 10~11월

• 열매의 형태 : 수과(여윈열매)

• 용도 : 관상용, 식용(어린잎), 약용(뿌리, 식물체)

•특징

바닷가 근처에서 자란다. 높이 35∼75cm이다. 뿌리줄기는 굵고 끝에서 잎자루가 긴 잎이 무더기로 나와서 비스듬히 선다. 잎은 머위같이 생기고 두꺼우며 신장 모양으로서 길이 4∼15cm, 나비 6∼30cm이고 윤기가 있다. 가장자리에 이 모양의 톱니가 있거나 밋밋하며, 뒷면에 잿빛을 띤 흰색 털이 난다. 잎자루는 길이 10∼38cm이다.

꽃은 9∼10월에 노란색으로 피는데, 지름 5cm 정도로서 산방꽃차례로 달린다. 설상화는 암꽃이고 관상화는 양성화이며 모두 열매를 맺는다. 총포조각은 1줄로 늘어선다. 열매는 수과(瘦果)로서 털이 빽빽이 나고 갈색의 관모가 있다.

관상용으로 뜰에 심기도 하고 어린 잎자루를 식용한다. 민간에서는 잎을 상처와 습진에 바르고, 생선 중독에 삶은 물이나 생즙을 마시며, 해독제로 쓰기도 한다. 한국(경남·전남·울릉도)·일본·타이완·중국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 털진득찰

◈ 털진득찰

◈ 털진득찰

• 학명 : Siegesbeckia pubescens

• 과명 : 국화과

• 종류 : 초본(풀)

• 이명 : 모회렴, 회렴, 점창자, 회렴초, 희첨

• 꽃색 : 황색

• 계절 : 여름

• 분포-지리 : 전국 각지

• 분포-지형 : 낮은 곳 텃밭이나 길가 둑 메마른 양지

• 생육상 : 1년생초본(한해살이풀)

• 높이 : 60~120cm

• 개화기 : 8월 ~ 9월

• 결실기 : 9~10월

• 열매의 형태 : 수과(여윈열매)

• 용도 : 식용(어린잎), 약용(전초)

• 특징 :

들판이나 바닷가에서 많이 자란다. 높이 50∼100cm이다. 줄기는 곧게 서고 윗부분에 수평으로 퍼지는 털이 빽빽이 난다. 잎은 마주달리고 세모진 달걀 모양이며 잎자루가 있고 길이 7.5∼19cm, 나비 6.5∼18cm이다.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는 잔톱니가 있으며 3개의 커다란 맥이 있다.

꽃은 9∼10월에 노란색으로 피는데, 두화는 길이 3mm 정도이며 가지와 줄기 끝에 산방꽃차례로 달린다. 꽃자루는 길이 15∼35mm로서 선모(腺毛)가 빽빽이 난다. 총포조각은 주걱 모양으로서 길이 10∼12mm이고 5개이며 선모가 난다. 꽃차례의 가장자리에 설상화가 있고 가운데에는 관상화가 있다. 열매는 수과(瘦果)로서 달걀 모양 긴 타원형이고 털이 없으며 10∼11월에 익는다.

중국에서는 포기 전체를 신경통·류머티즘·중풍, 수족이 마비되고 허리에 힘이 없는 데 사용한다. 한국(남부지방)·일본·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비슷한 종으로서 포기 전체에 털이 적고 꽃줄기에 선모가 나는 것을 진득찰(S. glabrescens)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