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4일 월요일

노심초사勞心焦思 – 몹시 마음을 쓰며 애를 태우다.

노심초사勞心焦思 – 몹시 마음을 쓰며 애를 태우다.

노심초사(勞心焦思) – 몹시 마음을 쓰며 애를 태우다.

일할 로(力/10) 마음 심(心/0) 탈 초(灬/8) 생각 사(心/5)

매사에 천하태평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일에 비관적인 사람이 있다. ‘내일 일을 오늘 걱정하지 말라’고 성인이 깨우쳐도 소용이 없다. 杞(기)나라 사람들처럼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늘 조심했다는 것과 같이 ‘걱정도 팔자’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깊은 뜻이 없을 때는 근심도 없고, 큰일을 생각하고 보면 근심도 많다’(이광수)는 말처럼 앞날을 위해, 나라를 위해 걱정한다면 염려스러울 것도 없다. 마음으로 애를 쓰며(勞心) 속을 태운다(焦思)는 이 성어도 중대한 일을 앞두고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史記(사기)’의 夏本紀(하본기)에는 치수사업에 성공한 禹王(우왕)의 업무에 임하는 태도를 이 성어에 비유했다. 堯舜(요순)의 치세 때 20년 동안이나 홍수가 계속돼 禹(우)의 아버지 鯀(곤)이 물길을 잡는 일을 맡았지만 실패하자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치수를 이어받게 된 우는 아버지의 불행을 잊지 않으려 항상 마음을 다짐했다. 그 부분을 보자. ‘우는 아버지 곤이 공을 이루지 못하고 처형을 받은 것을 마음 아파하여 애를 태웠다(禹傷先人父鯀功之不成受誅 乃勞身焦思/ 우상선인부곤공지불성수주 내노신초사).’ 이어지는 부분이 밖에서 13년을 지내면서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過門不入(과문불입)의 고사다.

越(월)나라 句踐(구천)이 吳(오)의 夫差(부차)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한 뒤 곁에 쓸개를 두고 앉으나 서나 쓴맛을 보며 會稽(회계)의 치욕을 상기할 때도 이 말이 나온다. 월왕 구천은 포로로 있다가 돌아온 뒤 ‘몸을 수고롭게 하고 속을 태우면서, 자리 옆에 쓸개를 놓아두고 앉거나 누우면 쓸개를 바라보았고, 먹거나 마실 때 또한 쓸개를 맛보았다(乃苦身焦思, 置膽於坐, 坐臥卽仰膽, 飮食亦嘗膽也/ 내고신초사 치담어좌 좌와즉앙담 음식역상담야)’고 했다. 역시 ‘사기’의 월왕구천 세가에 실려 있다.

옛 사람의 시에 ‘인생은 백년을 못다 살면서, 늘 천세의 근심을 가슴에 품는다(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 생년불만백 상회천세우)’란 것이 있다. 나라를 생각하는 큰 지도자의 걱정이다. 시정인도 후세를 위한 걱정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주변인과 사소한 일에 애를 태우거나 마음을 쓴다면 건강에 좋을 리는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지강급미舐糠及米 - 겨를 핥다 쌀까지 먹는다.

지강급미舐糠及米 - 겨를 핥다 쌀까지 먹는다.

지강급미(舐糠及米) - 겨를 핥다 쌀까지 먹는다.

핥을 지(舌/4) 겨 강(米/11) 미칠 급(又/2) 쌀 미(米/0)

처음에는 겨를 핥다가 나중에는 쌀까지 먹는다는 뜻으로, 욕심이 점점 커짐을 이르는 말이다. 어려운 글자로 된 성어지만 舐糠(지강)은 송아지를 핥는 어미 소의 사랑 舐犢之情(지독지정)이나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을 때의 아내 糟糠之妻(조강지처)라 할 때 쓰는 그 글자다. ‘청을 빌려 방에 들어간다’란 우리 속담과 똑 같다. 대청을 빌려 쓴다는 구실로 시작해서 방에까지 들어간다는 뜻으로, 염치없이 처음에 한 약속을 어기고 야금야금 침범해 들어감을 비유적으로 이른다. 旬五志(순오지) 성어로 借廳入室(차청입실)이다.

‘史記(사기)’의 열전 중에 吳王(오왕) 濞(비, 濞는 물소리 비) 편에 나온다. 漢(한)을 세운 高祖(고조) 劉邦(유방)은 가문의 자제들에게 땅을 분할하여 제후국을 만들었는데 장조카 비에게는 오왕을 제수했다. 그러나 고조가 세상을 떠나자 중앙의 명령에 불복하는 제후들이 늘어났다. 景帝(경제) 때에 이르러 지혜 주머니 智囊(지낭)으로 불리던 鼂錯(조착, 鼂는 아침 조)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제후국의 영지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의 지지를 받은 강직한 조착의 개혁이 먹혀 들어가자 여러 곳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특히 소금과 구리가 많이 생산되어 부강한 오왕 비는 나라를 빼앗길까 두려워하여 차라리 모반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세력을 규합했다. 이웃 나라에 사신을 보내 설득했다. ‘지금 한왕은 간신들의 말만 믿고 하루하루 제후들의 영지를 뺏고 있습니다. 속담에 겨를 핥다 쌀까지 먹어 치운다(舐糠及米/ 지강급미)고 했으니 이대로 두면 땅만 뺏기는 것에 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침내 주변 세력을 결집하는데 성공하여 일으킨 것이 吳楚七國(오초칠국)의 난이다. 서기전 154년에 일어난 이 난은 그러나 周亞夫(주아부) 등에 의해 3개월 만에 평정되었고 왕권은 강화됐다.

쌀까지 먹히는 것을 막으려다 다 태운 꼴이다. 하지만 이 말의 교훈은 살아 사소한 잘못을 눈 감으면 나중 기필코 후회할 날이 오니 미리미리 잘 대비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등하불명燈下不明 - 등잔 밑이 어둡다, 제 일을 남보다 더 모르다.

등하불명燈下不明 - 등잔 밑이 어둡다, 제 일을 남보다 더 모르다.

등하불명(燈下不明) - 등잔 밑이 어둡다, 제 일을 남보다 더 모르다.

등 등(火/12) 아래 하(一/2) 아닐 불(一/3) 밝을 명(日/4)

가을을 글 읽기 좋다며 燈火可親(등화가친)의 계절이라 많이 불렀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야 계절이 따로 없고, 또 가을은 행락철이라 더 읽지 않는다는 조사도 있었다. 요즘은 밝은 등이 얼마나 많은데 짐승기름으로 심지를 태우는 등으로 독서를 했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될 것이다. 게다가 등잔받침에 의해 어둡기까지 하니 더 환경이 안 좋다. 그만큼 역경을 이기고 열심히 하라는 비유로 받아들이면 될듯하다. ‘등잔 밑(燈下)이 어둡다(不明)’는 속담을 그대로 번역한 이 성어는 가까이에 있는 물건이나 사람을 잘 찾지 못할 때 많이 쓴다. 편자 미상의 한문 속담집 ‘東言解(동언해)’에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고수끼리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데 하수가 옆에서 알 수 있는 수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직접 업무를 맡고 있는 당국자가 이해관계에 밀접한 사람보다 알지 못하는 경우는 當局者迷(당국자미)란 말을 쓴다. 가까이 있는 것을 오히려 더 모른다는 속담은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것이 ‘업은 아이 삼 년 찾는다’, ‘두메 앉은 이방이 조정 일 더 잘 안다’, ‘도회 소식 들으려면 시골로 가라’ 등이 그것이다. 촌사람이라 비웃다가 도회지나 서울 돌아가는 사정을 더 잘 알아 큰코다치는 경우다.

조선 전기의 학자 徐居正(서거정, 1420~1488)이 지은 한문 수필집 ‘筆苑雜記(필원잡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고려 말의 유명한 학자 李穡(이색)의 아들인 李種善(이종선)과 역시 문장에 뛰어났던 權近(권근)의 아들 權踐(권천)은 처남남매 사이였다. 이 두 사람이 어느 때 술자리를 가졌다. 거나해진 권천이 서로가 牧隱(목은)의 아들인데 문장이 부족하고, 陽村(양촌)의 아들인데 문명이 또 미치지 못한다면서 말했다. ‘그대와 나는 마땅히 등하불명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君吾兄弟 當作燈下不明契/ 군오형제 당작등하불명계).’ 목은은 이색, 양촌은 권근의 아호다. 훌륭한 아버지를 가까이서 잇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는데 듣는 사람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이들은 아버지의 그늘이 너무 컸고 자신들의 재능이 따라가지 못함을 알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 자신을 알라’고 한 말을 잘 알면서도 실천은 못한다. 제일 잘 알아야 하는 자신의 일이 어두운데 제삼자가 더 잘 안다. ‘법 밑에 법 모른다’고 법 다루는 사람이 어기거나 무시하는 경우는 없을까. 가까이에 인재를 두고서도 실력은 뒷전인 채 마음에 맞는 사람을 고르다 망신을 당하는 경우가 한 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불학지인不學之人 - 배우지 못해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

불학지인不學之人 - 배우지 못해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

불학지인(不學之人) - 배우지 못해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

아닐 불(一/3) 배울 학(子/13) 갈 지(丿/3) 사람 인(人/0)

배운 것이 없어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을 不學無識(불학무식)하다고 한다. 배우지 않아 재주가 없고 사리에 어두우면 不學無術(불학무술)하다고 손가락질한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고 目不識丁(목불식정)이라 문자를 써가며 비아냥대기도 한다. 하지만 지식이 전부가 아니고 살아가는 데에는 경험에서 우러난 지혜가 필요하다. 농사짓는 데엔 고무래 丁(정)자를 몰라도 하등 지장이 없고, 또 다방면으로 전문가가 많아진 오늘날 조금 안다고 우쭐거릴 일은 더욱 아니다. 그래서 많이 배운 사람이 도리어 억지스런 행동이나 정의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것이 더 不學(불학)이다.

너무나 뜻이 단순해 고사가 없을 것 같은 不學이 春秋時代(춘추시대) 각국의 역사를 수록한 ‘國語(국어)’에 처음 나온다.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人不可以不學/ 인불가이불학)’면서 사람에게 배움이란 마치 나무에 가지와 잎이 있는 것과 같다(人之有學也 猶木之有枝葉也/ 인지유학야 유목지유지엽야)고 강조한다. 晉語(진어) 9편에 있다. 栗谷(율곡) 李珥(이이) 선생의 초학자들을 위한 책 ‘擊蒙要訣(격몽요결)’ 서문엔 성어대로 실려 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마음의 바탕이 좁아 답답하며 식견이 매우 어둡다(但不學之人 心地茅塞 識見茫昧/ 단불학지인 심지모색 식견망매).’ 茅는 띠 모, 茫은 아득할 망.

이보다 더욱 일목요연하게 말한 사람이 있다. 조선 후기 영조, 정조대의 문신 成大中(성대중)은 ‘醒言(성언)’이란 글에서 이렇게 일침을 놓는다. ‘귀하다고 교만해지고 젊다고 방자해지며, 늙었다고 나약해지고 가난하다고 초라해지는 자는 모두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貴而驕 壯而肆 老而衰 窮而悴 皆不學之人也/ 귀이교 장이사 노이쇠 궁이췌 개불학지인야).’ 肆는 방자할 사, 悴는 파리할 췌.

배움이 가방끈의 길이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인격과 품성, 삶에서 오는 지혜에 의해 나타난다. 최고의 학력을 지니고 큰 권한을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사회 지도층의 불법과 탈법을 보면 참으로 헛배웠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보다 더 큰 원인은 국회의 헌법과 법률을 예사로 무시하고 있는 데서 나온다. 이들을 국민의 매로 따끔히 가르칠 수 없을까./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법불아귀法不阿貴 - 법은 권력자에 아첨하지 말아야 한다.

법불아귀法不阿貴 - 법은 권력자에 아첨하지 말아야 한다.

법불아귀(法不阿貴) - 법은 권력자에 아첨하지 말아야 한다.

법 법(氵/5) 아닐 불(一/3) 언덕 아(阝/5) 귀할 귀(貝/5)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이 법이다. 그 강제력이 힘 있는 권력자나 돈 있는 부자를 피해 가면 법이 아니다. 作法自斃(작법자폐)에서 나왔듯이 法 집행은 물 흐르듯이 해야 하고, 옛 글자 灋(법)에 유무죄를 아는 상상의 동물 해태 廌(치)가 들어 있는 것이 그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정의의 여신이 한 손에는 칼, 다른 한 손에는 죄의 무게를 다는 저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저울 없는 칼은 물리적인 폭력에 지나지 않고 칼 없는 저울은 무력한 것이 될 뿐이므로 저울과 칼이 함께 갖추어질 때에만 법은 지켜진다’고 독일의 법학자 예링은 말했다.

중국 法家(법가)의 확립자 韓非(한비)는 원칙에 의해서 통솔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지름길이라 강조하여 秦(진)의 시황제에게 발탁됐다. 나라를 다스리는데 法度(법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은 ‘韓非子(한비자)’의 有度(유도)편에 법은 만인에게 공평해야 한다는 法不阿貴의 성어가 실려 있다. ‘

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고 먹줄은 굽은 모양에 따라 구부려 사용하지 않는다. 법률의 제재를 가하면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논쟁할 수 없으며 용맹스런 사람이라도 감히 저항할 수 없다. 대신이라고 해서 잘못을 저지르고도 형벌을 피할 수 없으며 착한 행동을 칭찬하고 상주는 일에는 평범한 백성이라 해서 제외되지 않는다(法不阿貴 繩不撓曲 法之所加 智者弗能辭 勇者弗敢爭 刑過不避大臣 賞善不遺匹夫/ 법불아귀 승불요곡 법지소가 지자불능사 용자불감쟁 형과불피대신 상선불유필부).’ 繩은 노끈 먹줄 승, 撓는 휠 요, 弗은 아닐 불. 그러면서 군주가 법도를 버리고 자신의 의사만으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면 군주와 신하의 구별이 없어질 뿐이라고 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산자수명山紫水明 - 산빛이 곱고 강물이 맑다, 산수가 아름다움

산자수명山紫水明 - 산빛이 곱고 강물이 맑다, 산수가 아름다움

산자수명(山紫水明) - 산빛이 곱고 강물이 맑다, 산수가 아름다움

메 산(山/0) 자줏빛 자(糸/6) 물 수(水/0) 밝을 명(日/4)

산속의 초목이 선명(山紫)하여 아름답고 강물이 맑다(水明). 그만큼 그윽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찾기 드물다. 농경을 주로 하여 살아온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 자연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절대적이고 소중한 존재였다. 그래서 자연을 벗 삼아 초야에 묻혀 살기를 원하는 선비가 많았고, 또 그런 전원생활을 그린 그림 산수화나 시가도 많았다. 산의 풍경이 아름답고 물이 깨끗한 모습을 나타낸 성어도 山明水麗(산명수려), 山明水紫(산명수자), 山明水淸(산명수청), 山紫水麗(산자수려) 등 다수다.

여러 표현이 있는 것과 달리 山紫水明(산자수명)이라 함께 쓴 말의 딱 떨어지는 출처는 찾기 어렵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李重煥(이중환, 1690~1752)은 전국을 다니면서 지리, 사회를 연구하여 ‘擇里志(택리지)’란 역저를 남겼다. 그는 吉地(길지)의 산수는 멀리서 보면 맑고, 가까이서 보면 밝다(遠則淸秀 近則明淨/ 원즉청수 근즉명정)고 하면서 산자수명을 두운으로 하는 글을 남겼다.

‘산은 높은 봉우리를 지녀 오르락내리락, 감돌아 에워싸니 명당을 이루네(山有高峰能起伏 又廻布鎭作名堂/ 산유고봉능기복 우회포진작명당), 아름다운 구름과 달은 영원한 그림이요, 기묘한 풍광은 만물상이로다(紫然雲月千年畵 奇妙風光萬物相/ 자연운월천년화 기묘풍광만물상), 물이 절벽에서 떨어지니 은하수의 낙하요, 기러기 고향하늘 향하니 편지 사연 길어지네(水飛絶壁銀河落 雁去鄕天客信長/ 수비절벽은하락 안거향천객신장), 맑은 모래 어디에서 물결소리 들리던가, 한가로운 물새들과 어울려 즐기고 싶구나(明沙何處波聲振 欲與閑鷗共樂場/ 명사하처파성진 욕여한구공락장).’

江戸(강호, 에도)시대의 한학자이자 사상가인 頼山陽(뇌산양, 라이 산요, 1780~1832)이 京都(경도, 교토)의 풍광을 노래한 시구에 함께 사용했다고 하며 일본에서는 성어로 많이 인용된다.

다른 표현을 썼지만 산수를 노래한 시인은 陶淵明(도연명)이나 李白(이백), 王維(왕유) 등을 비롯하여 셀 수 없이 많다. 詩佛(시불)로도 불렸던 왕유의 시 한 편 ‘山居秋暝(산거추명)’ 부분을 보자. ‘적막한 산에 내리던 비 개니, 더욱 더 쌀쌀해진 늦가을 날씨(空山新雨後 天氣晩來秋/ 공산신우후 천기만래추), 밝은 달빛 솔밭 사이로 밝게 비치고, 맑은 샘물은 바위 위로 흐르네(明月松間照 淸泉石上流/ 명월송간조 청천석상류)’ 늦가을 비온 후의 청명함을 노래한 한 폭의 산수화다. / 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이령지혼利令智昏 - 이익은 지혜를 어둡게 만든다.

이령지혼利令智昏 - 이익은 지혜를 어둡게 만든다.

이령지혼(利令智昏) - 이익은 지혜를 어둡게 만든다.

이할 리(刂/5) 하여금 령(人/3) 슬기 지(日/8) 어두울 혼(日/4)

눈앞에 이익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는 완전히 초월한 도인이 아니고선 없을 것이다. 그 이익이 합당한 것이 아니면 취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많다. 孔子(공자)는 ‘이익에 끌려 행동하면 원망이 많아진다(放於利而行 多怨/ 방어리이행 다원)’라 했고 孟子(맹자)는 梁惠王(양혜왕)에게 인과 의를 말씀하지 않고 어찌 이익을 찾느냐고 면박 준다(何必曰利/ 하필왈리). 그러나 이런 성인이 꾸짖더라도 인간은 날 때부터 이기적이니 누구나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아 이익에 눈이 어둡게 되면 사리분별을 제대로 못하게 되니 탈이다.

利令智昏이 바로 이익은 지혜를 혼미하게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성어다. 이익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라는 見利思義(견리사의)나 이름을 돌아보며 의를 생각하라는 顧名思義(고명사의)와 대조적이다.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韓(한)나라가 秦(진)의 침략을 받았을 때 이웃 성의 성주 馮亭(풍정, 馮은 성 풍)이 망하기 직전 趙(조)나라에 성을 넘겨줄 테니 보호해 달라고 했다. 왕이 대신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한 사람은 명분 없는 이익을 추구하면 재앙을 초래한다며 반대했고 平原君(평원군)은 대가없이 주는데 안 받으면 어리석은 일이라며 접수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왕이 평원군을 따라 趙括(조괄)을 대장군으로 하여 출병시키자 분노한 진나라는 白起(백기) 장군에 대군을 주어 잔인한 살육전을 펼쳤다. 조괄은 전사하고 40만 조나라 군사는 생매장을 당했다. 이것이 유명한 長平(장평)전투다.

司馬遷(사마천)이 ‘史記(사기)’에서 평원군을 평하면서 이 말을 썼다. ‘그는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능력과 지혜가 빛났던 공자였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에는 어두웠다. 이익은 지혜를 어둡게 한다(利令智昏)고 했는데 잘못 판단하여 40만 군사를 잃고 도읍인 邯鄲(한단, 邯은 조나라서울 한, 鄲은 한단 단)마저도 잃을 뻔했다.’ /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해란초

◈ 해란초

◈ 해란초

• 학명 : Linaria japonica Miq.

• 과명 : 현삼과

• 크기 : 15~40cm

• 용도 : 관상용

• 개화시기 : 7월~8월

• 분포지역 : 한국, 일본, 사할린섬, 쿠릴열도, 중국 동북부

• 서식장소/자생지 : 바닷가 모래땅

• 특징 :

해란초는 우리나라 동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해변의 모래땅에 나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물 빠짐이 좋고 햇볕이 많이 들어오는 곳에서 자란다. 키는 15~40㎝이고, 잎은 길이 1.5~3㎝, 폭 0.5~1.5㎝로 약간 뾰족하고 줄기 밑 부분에 있는 잎은 3~4개가 돌아가며 달리며 윗부분에서 나는 것은 일반적으로 어긋난다.

꽃은 연한 황색이고 줄기 끝에 길이 약 1.5㎝ 정도로 달리며, 꽃잎 뒷부분에서 달리는 작은 꽃줄기는 길이 0.5~1㎝로 굵고 아래로 향한다. 열매는 9~10월경에 둥글게 달리고 안에는 길이 약 0.3㎝의 종자가 들어 있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꽃을 포함한 지상부 전체를 약용으로 사용한다.

번식법 : 10월에 받은 종자를 바로 뿌리거나 종이에 물을 묻혀 냉장고에 보관 후 이른 봄에 뿌린다. 종자 발아율은 높은 편이다.

관리법 : 특정한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이어서 재배하기 쉽지 않다.

◈ 흑삼릉

◈ 흑삼릉

◈ 흑삼릉

•학명 : Sparganium erectum L.

• 과명 :흑삼릉과

•크기 : 70~100cm

•용도 : 관상용

•개화시기 : 6월~7월

•분포지역 : 아시아·유럽 및 북아프리카

•서식장소/자생지 : 연못가와 도랑

•크기 : 뿌리잎 나비 12mm, 꽃줄기 70∼100cm

•특징

흑삼릉은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연못이나 도랑가에 나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햇볕이 잘 들고 유속이 빠르지 않는 물가에서 자란다. 키는 70~100㎝이고, 잎은 서로 감싸면서 자라 원줄기보다 길어지고 폭이 0.7~1.2㎝로 뒷면에 1개의 능선이 있으며 여름철에 잎 사이에서 꽃줄기가 자라 윗부분이 갈라지고 선형이며 녹색으로 끝이 뭉뚝하다.

뿌리줄기는 짧게 옆가지를 내며 줄기는 거칠고 강하며 곧게 서는데 이 뿌리줄기를 흑삼릉(黑三稜)이라 한다. 꽃은 백색으로 길이가 30~50㎝이며 밑부분에는 암꽃, 윗부분에는 수꽃만 달린다. 열매는 9월경에 달리고 달걀 모양을 하고 있으며 길이가 0.6~1㎝, 폭이 0.4~0.8㎝이다. 관상용으로 쓰인다.

캄보디아 왓트마이 사원 정원에 있는 나무입니다.

캄보디아 왓트마이 사원 정원에 있는 나무입니다.

캄보디아 왓트마이 사원 정원에 있는 나무입니다.

열매가 많지도 않고 달랑한개만 달렸어요.먹는나무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