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4일 월요일

후생가외後生可畏 – 뒤에 오는 사람들은 두려워할 만하다.

후생가외後生可畏 – 뒤에 오는 사람들은 두려워할 만하다.

후생가외(後生可畏) – 뒤에 오는 사람들은 두려워할 만하다.

뒤 후(彳/6) 날 생(生/0) 옳을 가(口/2) 두려워할 외(田/4)

뒤에 태어나거나 뒤에 배운 사람이 後生(후생)이다. 이미 배운 사람들보다 후진들을 두려워할 만하다(可畏)는 말은 새롭게 치고 올라오는 젊은 사람들이 학문을 닦음에 따라 큰 인물이 될 수 있으므로 무서워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에서 나온 後生角高(후생각고)나, 뒤따라오던 사람이 윗자리를 차지한다는 後來居上(후래거상)도 같은 의미를 지녔다. 가장 많이 쓰는 靑出於藍(청출어람)도 있다.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가르친 제자가 학문이 우뚝하면 스승이 더 흐뭇해하기도 한다.

후진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한 말이 처음 나온 곳은 ‘論語(논어)’에서다. 孔子(공자)는 자신의 학문을 정책으로 펼치기 위해 각국을 周遊(주유)했으나 실패하고 낙향해 후진 양성에 힘썼다. 후생들은 비록 지금은 미숙하지만 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두려운 존재로 여겨야 한다고 공자는 생각했다. 子罕(자한, 罕은 드물 한)편에 실린 내용을 보자. ‘젊은이들을 두려워할 만하다. 어찌 뒤에 오는 사람이 지금의 우리들보다 못하리란 것을 알겠는가(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후생가외 언지래자지불여금야)?’ 젊은이들에겐 미래가 있고 가능성이 있어 노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발전한다는 뜻으로 썼다. 그러면서 공자는 뒤에 배우는 사람은 항상 배움에 정진해야 하고, 앞서 배운 사람은 학문에 겸손해야 한다고 일깨운다.

공자의 여러 제자 중에서 특히 재주와 덕을 지니고, 요절했지만 학문이 뛰어났던 顏回(안회)의 훌륭함을 가리켰다고 한다.

하지만 후생이라도 모두 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인다. ‘나이 40, 50세가 되어도 좋은 명성이 들리지 않으면 이런 사람은 두려워할 것 없다(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 사십오십이무문언 사역부족외야이).’ 외부에 흔들리지 않는 40이 不惑(불혹)이고, 하늘의 뜻을 아는 50을 知天命(지천명)이라 했으니 이 시기가 평가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 본 셈이다.

후진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무작정 두려워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가능성을 두고 발전을 기대해서이다. 처음부터 싹수가 노랗다고 기를 죽이지 않고 장점을 찾아 북돋우는 일이 먼저다. 또한 후배들도 무조건 나이 많은 선배를 배척만 해서는 그들의 지혜를 배울 수가 없다. 어디까지나 배움에 겸손이 앞서야 한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하마평下馬評 - 관직의 이동에 관해 떠도는 풍설

하마평下馬評 - 관직의 이동에 관해 떠도는 풍설

하마평(下馬評) - 관직의 이동에 관해 떠도는 풍설

아래 하(一/2) 말 마(馬/0) 평할 평(言/5)

下馬(하마)는 물론 물소 河馬(하마)가 아닌 말에서 내린다는 뜻이다. 가마와 함께 말은 옛날 벼슬아치나 부자 등 상류층들의 주요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렇더라도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야 하는 곳이 ‘모두 말에서 내리시오(大小人員皆下馬/ 대소인원개하마)’라고 표시된 下馬碑(하마비)였다. 조선 太宗(태종) 13년 (1413년) 宗廟(종묘)와 闕門(궐문) 앞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표목을 세웠던 것이 시초라는데 나중에는 왕이나 성현, 고관들의 출생지나 분묘 앞에도 세워져 모두들 내려서 예를 표했다고 했다.

관가에도 말을 탄 채 통과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하마비에 이르렀을 때 높은 사람들은 말에서 내려 관아에 들어가 일을 봐야 했다. 이때 주인을 태워 가지고 온 마부들이 기다리는 동안 서로 상전들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평하였다는 데서 下馬評(하마평)이 유래했다. 그들의 주인이 높은 사람이 많았으므로 이야기의 중심도 출세나 진급 등의 직위에 대한 것이 다수였다. 여기서 관직에 임명될 후보자에 관하여 세상에 떠도는 풍설이나 또는 정계 개편, 개각 등이 있을 때 그보다 앞서 나도는 소문을 가리키게 됐다.

하마비와 함께 연상되는 것이 下馬停(하마정)이란 곳이다. 하마라는 이름이 들어간 지명이 전국에 산재하지만 부산의 하마정이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부산진구 楊亭(양정) 1동에 위치한 하마정은 東萊(동래) 鄭(정)씨 시조인 高麗(고려) 때의 鄭文道(정문도) 묘소가 있는 鄭墓寺(정묘사) 인근이다. 花池山(화지산) 아래에 자리 잡은 정묘를 지날 때 경의를 표하고 가라는 의미에서 하마비를 세운 것이 지명으로 되었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로 왜장이 말을 타고 하마비 앞을 지나다가 말이 요동을 치는 바람에 낙마를 했다는 전설도 있다고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전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아도물阿堵物 - 이 물건, 돈을 가리키는 말

아도물阿堵物 - 이 물건, 돈을 가리키는 말

아도물(阿堵物) - 이 물건, 돈을 가리키는 말

언덕 아(阝-5) 담 도(土-9) 물건 물(牛-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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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텐데 멀리 하고 초연하게 살면 우러름을 받는다. 돈에 관한 격언을 보면 모든 악의 근원이라거나 비애와 번뇌의 시초라며 대부분 멀리 하라고 가르친다. 물론 돈은 사나운 주인이요, 훌륭한 종이다라고 하며 이중성을 말하거나 무거운 지갑은 마음을 가볍게 한다고 긍정적인 표현도 간혹 있기는 하다. 우리의 조상들도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錢可通神/ 전가통신)는 말로 돈의 위력을 알고 있었지만, 입으로 돈을 말하지 않는 것(口不言錢/ 구불언전)이 양반의 도리라고 했다. 돈에 얽매이지 말라는 교훈으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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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이칭으로 이 물건(阿堵物)이란 뜻의 이 성어도 돈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은 중국 王衍(왕연)이란 사람의 일화에서 비롯됐다. 魏晉(위진)시대 晉(진)나라 사람인 왕연은 자가 夷甫(이보)로 竹林七賢(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王戎(왕융)의 사촌이었다. 그도 당시 귀족사회에서 유행하던 淸談(청담)에 몰두했는데 이는 오랜 국정 혼란으로 유가 대신 老莊(노장)사상에 심취해 세속적 가치를 초월한 생활을 추구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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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뛰어났던 왕연은 속된 것을 싫어하는 고고한 사람이라 돈이라는 말을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의 부인 郭氏(곽씨)는 남편과 달리 이재에 밝은 사람이었다. 하루는 돈을 싫어하는 남편에게 돈이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기 위해 잠든 사이 여종을 시켜 침상 주위에 동전을 가득 쌓아두게 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난 왕연은 돈에 막혀 나갈 수가 없자 여종을 불러 말했다. 어서 이것들을 모두 치우도록 해라(擧卻阿堵物/ 거각아도물)! 卻은 물리칠 각. 阿堵는 六朝(육조)시대의 구어로 이, 또는 이것의 뜻이라는데 왕연의 이 일화 이후 돈의 별칭이 되었다. 世說新語(세설신어)의 規箴(규잠)편과 晉書(진서) 왕연전에 전하는 이야기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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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족괘치何足掛齒 - 어찌 말할 필요가 있을까, 말할 가치가 없는 사소한 일

하족괘치何足掛齒 - 어찌 말할 필요가 있을까, 말할 가치가 없는 사소한 일

하족괘치(何足掛齒) - 어찌 말할 필요가 있을까, 말할 가치가 없는 사소한 일

어찌 하(亻/5) 발 족(足/0) 걸 괘(扌/8) 이 치(齒/0)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순식간에 번지니 말을 조심하라는 서양 격언이다. 바위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듯이 말을 잘 하면 口若懸河(구약현하)라고 칭찬하면서도, 모든 화는 입에서 나온다며 口禍之門(구화지문)을 경계했다. 그런데 말해야 할 때 가만 있고, 가만히 있어야 할 때 말한다면 그것 또한 눈총 받는다. 입이 무겁다는 것이 칭찬일 수 있어도 진실을 두고 침묵을 지킨다면 萬馬齊瘖(만마제음, 瘖은 벙어리 음), 만 마리 말이 벙어리가 된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말을 할 자리가 아닌데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있다. 역시 이럴 때는 침묵이 제일인데 꼭 말해야 한다면 어찌 족히(何足) 말을 할 필요(掛齒)가 있겠는가 하며 물러서는 것도 방법이다. 말을 꺼낼 가치가 없는 사소한 일이라는 뜻도 된다. 이 성어가 처음 유래한 것은 중국 秦(진)나라의 始皇帝(시황제)를 이어 받은 2세 황제 胡亥(호해)의 어전회의에서다. 아무리 어리석고 통일왕국을 망하게 했더라도 막강 권력의 황제 앞이니 바른 말이 나오기 어렵다. 언변과 문학에 뛰어난 박사 叔孫通(숙손통)이라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호해가 왕위에 오르고부터 나라가 어지러워져 각지에서 군웅들이 궐기했다. 농민들을 이끌던 陳勝(진승)이 반란을 일으켜 張楚(장초)를 세웠다. 학정에 시달리던 여러 지역에서 호응하여 조정을 위협할 정도로 세력을 떨쳤다. 다급해진 호해가 박사들과 여러 유생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구동성 반역이라며 토벌해야 한다고 했다. 황제가 크게 노한 얼굴이 되자 숙손통이 나섰다. 나라가 통일되고 법령이 갖춰져 있으니 모반이 아니라며 말한다. ‘이들은 쥐나 개와 같은 좀도둑일 뿐 그것을 입에 담아 거론할 가치도 없습니다(此特群盜鼠竊狗盜耳 何足置之齒牙閒/ 차특군도서절구도이 하족치지치아한).’ 치아 사이에 넣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은 의논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鼠竊狗偸(서절구투)란 성어도 여기에서 나왔다. ‘史記(사기)’ 劉敬叔孫通(유경숙손통)에 실려 있다.

숙손통은 위기를 넘겼지만 황제의 심기만 살피고 바른 간언을 못해 진나라는 망했다. ‘말이란 탁 해 다르고 툭 해 다르다’는 말이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하는데 따라 아주 다르게 들린다. 잘못을 보고도 바로잡지 않고 침묵을 지키면 그 때는 금이 아니다. 조직의 장에 맞서는 것이 어려울 때는 우회를 하더라도 바로잡을 지혜를 발휘해야 발전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노마십가駑馬十駕 – 둔한 말이 열흘 동안 수레를 끌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노마십가駑馬十駕 – 둔한 말이 열흘 동안 수레를 끌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노마십가(駑馬十駕) – 둔한 말이 열흘 동안 수레를 끌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둔한말 노(馬/5) 말 마(馬/0) 열 십(十/0) 멍에 가(馬/5)

千里馬(천리마)는 북한에서 노동력을 착취한 ‘천리마 운동‘ 명명으로 빛을 바랬지만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말이다. 여기에 늙은 老馬(노마)나 우둔하고 비루먹은 駑馬(노마)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래도 늙은 말에게는 길을 찾아주는 老馬之智(노마지지)가 있고, 둔한 말에는 그만큼 꾸준함이 있다.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속담이 말하는 대로 속도는 느릴지라도 오히려 믿음직스럽고 알찬 면이 있다. 날랜 말이 빨리 달려 하루에 닿은 길을 둔한 말은(駑馬) 뚜벅뚜벅 수레를 끌고 열흘을 소요하며(十駕) 이른다. 아무리 둔하고 재능이 모자라는 사람이라도 노력하면 앞선 사람을 따라잡고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荀子(순자)는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말기 趙(조)나라 사람으로 性惡說(성악설)을 주창해 孟子(맹자)를 비판했다. 그의 사상을 모은 ‘순자’는 여러 번 정리를 거쳐 32편으로 되어 있다. 둔한 말의 사례는 몇 곳에 나오는데 먼저 가장 처음의 勸學(권학)편의 내용을 보자. ‘흙이 쌓여 산이 이루어지면 바람과 비가 일어나고,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루게 되면 교룡이 생겨난다(積土成山 風雨興焉 積水成淵 蛟龍生焉/ 적토성산 풍우흥언 적수성연 교룡생언)’고 하면서 이어진다. ‘천리마라도 한 번에 열 걸음을 뛸 수는 없으며, 야위고 둔한 말이라도 열흘 동안 달릴 수 있는 것은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騏驥一躍 不能十步 駑馬十駕 功在不舍/ 기기일약 불능십보 노마십가 공재불사).’ 騏는 기린 기, 驥는 천리마 기.

다음에 나오는 修身(수신)편의 부분도 비슷하다. ‘무릇 천리마는 하루에 천 리를 거뜬히 달리지만, 비루먹은 말일지라도 열흘 동안 달려간다면 역시 이에 미칠 수 있다(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則亦及之矣/ 부기일일이천리 노마십가즉역급지의).’ 배움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된 의지와 실천이라고 순자는 강조했다.

자기의 재주가 남보다 뒤떨어졌다고, 또는 부모의 재산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일찍부터 기죽는 젊은이들이 주변에 흔하다. 아무리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 해도 꾸준히 노력한 뒤에 ‘헬조선’이라며 원망도 할 수 있다. 열흘 동안 수레를 끌어 천리마가 달린 거리를 돌파하듯이 말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한천작우旱天作雨 - 가뭄이 들면 하늘이 비를 내린다,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받다.

한천작우旱天作雨 - 가뭄이 들면 하늘이 비를 내린다,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받다.

한천작우(旱天作雨) - 가뭄이 들면 하늘이 비를 내린다,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받다.

가물 한(曰/3) 하늘 천(大/1) 지을 작(亻/5) 비 우(雨/0)

오래 가물다가 내리는 비는 慈雨(자우)다. ‘가뭄에 단비’다. 하지만 ‘넉 달 가뭄에도 하루만 더 개었으면 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 일에 지장이 있으면 고마워하지 않는다. 사람은 날씨에 대해 항상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개개인은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그럴 수 없다. 가뭄을 말하는 旱魃(한발, 魃은 가물 발)로 인해 백성이 굶주리게 되면 왕은 자신의 잘못이라며 주위를 살펴보고 몸을 청결히 하여 祈雨祭(기우제)를 올린다. 이런 정성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얼마 뒤에는 실제 비가 내렸다.

가뭄이 들어 백성이 도탄에 빠지면 하늘이 비를 내린다는 것이 이 성어다. 여기에서 가뭄 때 내리는 단비처럼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받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孔子(공자)를 학문을 이어 亞聖(아성)으로 추앙받는 孟子(맹자)가 한 말에서 비롯됐다. 그의 가르침을 정리한 ‘맹자’의 첫머리 梁惠王(양혜왕)에 나온다. 梁(양)나라는 戰國時代(전국시대) 초기 강국이었던 魏(위)나라가 도읍을 安邑(안읍)에서 大梁(대량)으로 옮긴 후부터 불린 이름이다. 맹자가 양혜왕을 접견하고서 강조한 何必曰利(하필왈리), 五十步百步(오십보백보) 등의 성어가 앞부분에 나온다.

양혜왕의 아들인 襄王(양왕)과 맹자의 대화에서 단비 부분이 들어있다. 천하는 어떻게 해야 안정되며 누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에 맹자가 답한다. ‘왕께서는 벼의 싹에 대해 아시는지요? 7, 8월 사이에 가뭄이 들면 말랐다가 하늘이 뭉게뭉게 먹구름을 만들어 시원하게 비를 뿌리면 다시 싱싱하게 자라납니다(王知夫苗乎 七八月之間 旱則苗槁矣 天油然作雲 沛然下雨 則苗浡然與之矣/ 왕지부묘호 칠팔월지간 한즉묘고의 천유연작운 패연하우 즉묘발연여지의).’ 油然(유연)은 구름이 무성하게 일어나는 모양, 沛는 비쏟아질 패, 일어날 浡(발)은 싹이 부쩍 자란 모습을 형용했다. 자비롭게 백성을 대하면 저절로 모여든다는 설명이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적반하장賊反荷杖 -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들다.

적반하장賊反荷杖 -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들다.

적반하장(賊反荷杖) -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들다.

도둑 적(貝/6) 돌이킬 반(又/2) 멜 하(艹/7) 지팡이 장(木/3)

물건을 훔치러 몰래 들어온 도둑이 주인에게 들키자 도리어(賊反) 지팡이를 휘두른다면(荷杖)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이와 같이 잘못한 사람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나무람을 이를 때 흔히 ‘賊反荷杖도 유분수지’라며 혀를 찬다. 도둑이 매를 든다는 주객이 바뀐 일이 예부터 많았는지 관련속담이 숱하다. ‘도둑놈이 몽둥이 들고 길 위에 오른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 ‘소경 개천 나무란다’,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망건값 달라 한다’ 등이다.

賊反荷杖도 ‘旬五志(순오지)’에 있는 속담성어다. 전번 嚙韉之馬(교천지마)나 宿虎衝鼻(숙호충비)에서 소개한 적이 있지만 조선 인조 때의 洪萬宗(홍만종)이 보름 만(旬五)에 완성했다는 그 책이다. 거기엔 이렇게 해설한다. ‘賊反荷杖 以比理屈者反自陵轢(적반하장 입리굴자반자릉력/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것은 잘못한 자가 오히려 상대를 업신여기고 성내는 것을 빗댄 것이다).’ 轢은 차에치일 력, 삐걱거릴 력.

옛날 민초들은 갓 쓴 도적에게 피해를 많이 당했다. ‘도둑질을 하더라도 사모 바람에 거드럭거린다’란 말이 있듯이 고약한 벼슬아치들은 수탈을 하고도 권세만을 믿고 큰소리친다. 관리라는 허명아래 이뤄지는 도둑질이야 말로 가장 파렴치하고 질 나쁜 나라의 도둑질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흰제비꽃white Violet

◈ 흰제비꽃white Violet

◈ 흰제비꽃(white Violet)

•학 명 : Viola mandshurica

•과 명 : 제비꽃과

•분 포 : 한국, 중국, 일본, 시베리아 동부

•서 식 : 들

•크 기 : 높이 약 10cm

•개 화 : 4∼5월

•꽃 말 : 순진무구한 사랑(innocent love)

•특 징 :

장수꽃·병아리꽃·오랑캐꽃·씨름꽃·앉은뱅이꽃이라고도 한다. 들에서 흔히 자란다. 높이 10cm 내외이다. 원줄기가 없고 뿌리에서 긴 자루가 있는 잎이 자라서 옆으로 비스듬히 퍼진다. 잎은 긴 타원형 바소꼴이며 끝이 둔하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이 진 다음 잎은 넓은 삼각형 바소꼴로 되고 잎자루의 윗부분에 날개가 자란다.

꽃은 4∼5월에 잎 사이에서 꽃줄기가 자라서 끝에 1개씩 옆을 향하여 달린다. 꽃빛깔은 짙은 붉은빛을 띤 자주색이고 꽃받침잎은 바소꼴이나 끝이 뾰족하며 부속체는 반원형으로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잎은 옆갈래조각에 털이 있으며 커다란 꿀주머니가 있다. 열매는 삭과로서 6월에 익는다.

◈ 스노드롭갈란투스, 설강화, Snow Drop

◈ 스노드롭갈란투스, 설강화, Snow Drop

◈ 스노드롭(갈란투스, 설강화, Snow Drop)

•학 명 : Galanthus

•과 명 : 수선화과

•분 포 : 유럽 원산

•서 식 : 겨울에 햇볕이 잘 들고 여름에 그늘지는 곳

•크 기 : 잎길이 10cm

•개 화 : 1∼3월

•꽃 말 : 희망(hope)

•특 징 :

알뿌리 식물이며 남유럽·캅카스 지방 원산으로 15종 정도가 자란다. 원예종으로 가장 널리 재배되고 있는 종은 남유럽이 원산인 갈란투스 니발리스(G. Nivalis)이고 이는 높이 10cm 정도이고 겨울에서 이른 봄에 걸쳐 꽃이 핀다. 추위에 잘 견디며, 가을에 심는 알뿌리 식물중에서 가장 빨리 꽃이 핀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2월에 길이 10cm 정도의 잎을 2∼3개씩 내고 잎보다 좀 긴 꽃자루 끝에 은백색 꽃이 아래를 향하여 달린다. 수술은 6개, 암술은 1개이고 씨방은 하위이다. 서남아시아 원산인 엘웨시(G. Elwesii)는 니발리스 보다 대형이고 재배하기 쉬우며 개화가 빠르다.

길란투스는 씨로도 번식이 되나 보통 10월에 유기질이 풍부하고 보수력이 큰 토양에 알뿌리를 심는데 겨울에 햇볕이 잘 들고 여름에 그늘지는 곳이 적당하다. 한 번 심으면 2∼3년간은 옮겨 심지 않아도 된다.

무신불립無信不立 -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

무신불립無信不立 -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

무신불립(無信不立) -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

없을 무(灬/8) 믿을 신(亻/7) 아닐 불(一/3) 설 립(立/0)

한 조직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구성원끼리의 신뢰, 대인 관계에서의 신뢰, 신용이 있어야 믿고 상대를 해 주기 때문이다. 한 군데라도 부실하면 조직이 삐걱거리고 종래에는 와해된다. 작은 조직도 그런데 국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이 쉬운 글자로 된 성어가 孔子(공자)님 말씀 ‘論語(논어)’에 실려 일찍부터 중요성을 알고 지키기 위해 애써왔다.

공자의 제자인 子貢(자공)이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足兵(족병), 足食(족식), 民信(민신)이라 답했다. 안보, 경제, 신뢰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버려야 한다면 먼저 족병이라 했고 다음에 족식, 최후까지 지켜야 하는 것이 민신이라 했다. 예로부터 모두 죽음이 있지만 백성과의 신의가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설 수 없기 때문(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이라고 설명했다.<顔淵(안연) 편> 오늘날 사람들은 경제와 안보가 중요하리라 생각되겠지만 이 모두 국민들의 믿음에서 바탕이 되는 것이고 믿음이 없으면 존립 자체가 안 된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도 劉備(유비)가 논어의 이 말을 인용하여 신의를 강조하는 대목이 있다. 북해태수로 있던 孔融(공융)이 曹操(조조)의 공격을 받는 陶謙(도겸)을 구하기 위해 유비에 군사를 주며 신의를 잃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자 성인의 말을 인용,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爲政(위정)편에는 ‘사람이 되어 믿음이 없다면 그를 어디 쓸지 모르겠구나.

큰 수레에 멍에가 없고 작은 수레에 끌채가 없다면 어떻게 앞으로 가겠는가’며 人而無信(인이무신)이라는 말을 썼다. 수레도 연결될 것이 있어야 앞으로 가는데 사람도 타인과의 믿음이 이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