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6일 수요일

◇ 부자의 기운 충만한 의령 솥바위

◇ 부자의 기운 충만한 의령 솥바위

◇ 부자의 기운 충만한 의령 솥바위

의령읍 입구 정암철교 옆 남강에는 솥바위가 있다. 물 위에 뜬 솥은 재물을 뜻하며 물 아래 세 개의 기둥은 삼정승을 뜻한다. 솥바위를 중심으로 반경 20리(8㎞) 안에 삼정승이 나온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삼정승 급인 삼성그룹과 LG그룹, 효성그룹의 창시자가 나오면서 전설이 현실이 됐다. 이날도 한 가족이 지폐를 물고 있는 돼지머리와 과일 등을 차려놓고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정암철교와 정암루도 멋진 풍광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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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바위의 삼정승 중 한 명인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생가는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 있다.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은 진주 출신, 효성의 조홍제 회장은 함안 출신이다. 호암길 22-4의 이병철 선생 생가(사진 아래)는 풍수지리상 곡식을 쌓아놓은 것 같은 형상으로 주변 산의 기가 생가터에 맺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사랑채와 안채 앞에 각각 우물이 있고 기운 강한 바위가 내부에 있다. 생가에 있는 바위를 만져야 부자의 기를 받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생가 인근 호암길 카페 담안의 맞은편 호암길 11-1은 그의 신혼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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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 사파리 연상케 하는 거제관광모노레일

◇ 사파리 연상케 하는 거제관광모노레일

◇ 사파리 연상케 하는 거제관광모노레일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서 계룡산(570m) 정상을 오가는 거제관광모노레일을 탈 수 있다. 공원은 종일 ‘용사의 충정’ ‘우리는 육군’ 등의 비장한 군가를 들려준다. 군가를 들으며 철조망을 따라 걷자니 어쩐지 스산하다. 6·25전쟁 때 17만3000여 명의 포로가 수용됐던 곳을 보존해 전쟁역사의 교육장으로 조성했다. 공원은 전쟁·포로·복원·평화존으로 테마가 나뉘었다. 모노레일은 평화존 희망광장에서 탑승한다.

2018년 3월 개통한 모노레일은 왕복 3.6㎞로 전국 최장 길이를 자랑한다. 희망광장에서 출발해 계룡산 정상 가까이 레일을 타고 천천히 올라간다. 한 번에 최대 6명이 탑승할 수 있고 6분 간격으로 15대가 순환 운행한다. 상행 30분, 하행 20분이 걸린다. 모노레일 이용권과 공원의 입장료는 별도로 구매할 수 있다.

사람이 붐비지 않으면 6인승 모노레일을 혼자 차지할 수 있다. 모노레일의 속도는 ‘차라리 걷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느리다. 그런데 거북이처럼 꾸준히 느린 속도가 이따금 의외의 스릴로 재미를 줬다. 경사를 오를 땐 뒤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내리막에서는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게 미끄러지지 않아 차량째로 떨어질 것 같은 긴장감을 느꼈다.

모노레일 안에서는 우거진 숲길의 안내를 받는다. 따사로운 햇살이 산을 통째로 감싸 숲은 온통 초록 아니면 연두색이다. 간간이 설치된 스피커에서 야생동물이나 새 소리가 흘러나오고, 귀여운 곰과 사슴 모형이 레일 가운데서 나타날 때는 사파리 투어를 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하행 중인 모노레일을 상행 레일에서 지켜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모노레일에서 내려 전망대에 오르면 바둑판처럼 붙은 논밭과 목가적인 거제면이 다도해와 함께 펼쳐진다. 멀리 거제의 새 명물인 ‘정글돔’도 보인다. 여기서 500m 정도만 걸으면 계룡산 정상이다. 정상의 풍경은 전망대와 180도 달라진다.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가 마치 조금 전 봤던 거제면의 수십 년 후 풍경을 보여주는 듯하다.

공원을 나오는 길에 PX라고 적힌 매점에서 ‘맛다시’를 2개 샀다. 군필자들이 한결같이 극찬한 음식인 데다 어느 설문조사에서 ‘다시 먹고 싶은 군대 음식’ 2위에 오른 게 기억나서다. 호기심에 먹어보니 고추장에 라면 스프 등을 섞은 맛이 났다. 군대를 다녀온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했는데 그는 추억의 음식을 무척 반기면서도 먹으려 하지는 않았다.

-국제신문-

돈제일주豚蹄一酒 - 돼지 발굽 하나와 한 잔의 술, 주는 것은 적고 바라는 것은 많음

돈제일주豚蹄一酒 - 돼지 발굽 하나와 한 잔의 술, 주는 것은 적고 바라는 것은 많음

돈제일주(豚蹄一酒) - 돼지 발굽 하나와 한 잔의 술, 주는 것은 적고 바라는 것은 많음

돼지 돈(豕/4) 굽 제(足/9) 한 일(一/0) 술 주(酉/3)

식용으로, 또 굿이나 고사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되어 우리에게 크게 기여하는 돼지를 가축으로 기른 것은 5000년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기여를 했으면서도 돼지는 몹시 미련하거나 탐욕스러운 사람의 대명사다. 뚱뚱한 몸집을 가진 사람은 영락없이 돼지라 놀림을 당한다. 돼지가 실제로는 배가 차면 절제를 알고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청결을 찾는다고 하는데 관련 성어도 좋지 않은 면만 강조되어 여러 가지로 억울할 듯하다.

돼지의 발굽(豚蹄)과 술 한 잔(一酒)이란 말도 보잘것없는 것을 비유했다. 豚蹄穰田(돈제양전), 豚蹄盂酒(돈제우주)라고 써도 같다. 작은 성의를 보여 놓고 많은 것을 구하려 할 때를 꼬집었다. ‘보리밥 알로 잉어 낚는다’는 속담이 뜻하는 대로다. 수확을 많이 거두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데 땀도 흘리지 않고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司馬遷(사마천)은 ‘史記(사기)’ 滑稽(골계) 열전에서 뛰어난 기지와 해학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쳤던 인물을 그리고 있다. 돼지 발굽 비유의 주인공 淳于髡(순우곤, 髡은 머리깎을 곤)도 그 중의 하나다.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 사람인 순우곤은 천한 신분에다 키도 7척이 안 되는 왜소한 몸집을 가졌지만 반어와 풍자에 뛰어났다. 威王(위왕)때 楚(초)나라의 침입을 받자 순우곤에게 금 백 근과 수레 열 대를 주면서 趙(조)나라의 구원병을 청하게 했다. 순우곤은 관의 끈이 끊어지도록 크게 웃으며 자신이 본 농민의 풍년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돼지 발굽 하나와 술 한 잔(操一豚蹄 酒一盂/ 조일돈제 주일우)을 차린 뒤 밭에서 광주리 가득, 들판에서 수레 가득 수확을 기원하더라고 했다. 볼품없이 차려 놓고 바라는 것이 거창했다는 이야기에 위왕이 예물을 크게 늘렸고 구원을 청하는데 성공하여 초나라를 물러나게 했다.

‘검은 돼지든 흰 돼지든 무게만 많이 나가면 된다‘며 문희상 국회의장이 黑豚白豚(흑돈백돈) 이론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물론 덩샤오핑鄧小平/ 등소평의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黑猫白猫(흑묘백묘)를 연상시켰다. 나라가 어렵지만 황금돼지의 해인 올해 경제발전이 우선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과 투자를 해야 한다. 규제 철폐 등 정책의 뒷받침은 물론 노사의 상생이 따르지 않고서는 돼지 발굽 놓고 경제 활성화를 비는 꼴이 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불원천 불우인不怨天 不尤人 - 하늘을 원망 않고 남을 허물하지 않다.

불원천 불우인不怨天 不尤人 - 하늘을 원망 않고 남을 허물하지 않다.

불원천 불우인(不怨天 不尤人) - 하늘을 원망 않고 남을 허물하지 않다.

아닐 불(一/3) 원망할 원(心/5) 하늘 천(大/1) 아닐 불(一/3) 더욱 우(尢/1) 사람 인(人/0)

완전한 사람이 있을 수 없으니 살아가다 보면 잘못을 저지른다. 이럴 때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전혀 잘못이 없다고 버티는 鐵面皮(철면피)도 흔하다. 반성하는 사람은 드물고 남 탓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속담이나 명구도 후자가 많을 밖에 없다. 소경이 개천 나무라고, 서투른 무당이 장구 나무라는 것이 그것이다.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은 떠넘기기의 대표 격인 말이다. 남 탓하는 정도가 아니라 없는 결점까지 샅샅이 뒤지는 洗垢求瘢(세구구반, 瘢은 흉터 반), 吹毛索疵(취모색자, 疵는 허물 자), 爬羅剔抉(파라척결) 같은 어려운 성어도 많이 있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不怨天)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不尤人)는 이 말은 孔子(공자)가 ‘論語(논어)’ 憲問(헌문)편에서 자신이 그렇다고 한 부분에 실려 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 것(不怨天 不尤人/ 불원천 불우인)’은 일상적인 일들을 배워서 심오한 이치에까지 도달했으니 ‘나를 알아주는 이는 저 하늘이 아닐까(知我者 其天乎/ 지아자 기천호)’라고 생각한다는 데서 나왔다.

‘孟子(맹자)’에도 公孫丑(공손추) 하편에 그대로 인용됐다. 맹자가 齊(제)나라에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다 왕이 받아들이지 않자 떠나려 했다. 제자 充虞(충우)가 스승의 안색이 좋지 않다며 물었다. 이전에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허물하지 않는다(군자불원천 불우인)’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다. 이전의 말과는 다르다는 뜻이었다. 맹자는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리려 한다면 자신밖에 없는데 어찌 그것으로 불유쾌하게 생각 하겠는가라고 대답했다.

이전에는 孔孟(공맹)과 같은 성인들이라야 잘못됐을 때 하늘이나 다른 사람에게 탓을 돌리지 않았겠지만 차이는 있더라도 가르침을 실천할 수는 있다. 주위의 유혹에도 아랑곳없이 자신의 길만 걷는 보통 사람들이다. 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욕심 없이 산다. 다만 이런 사람이라도 지도층에서 온갖 불법과 부패, 갑질의 행태가 자주 드러나면 자신과는 관계없더라도 원망하지 않을까. 분노가 쌓이면 뒤집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분붕이석分崩離析 - 집단이 나눠져 무너지고 쪼개지다.

분붕이석分崩離析 - 집단이 나눠져 무너지고 쪼개지다.

분붕이석(分崩離析) - 집단이 나눠져 무너지고 쪼개지다.

나눌 분(刀/2) 무너질 붕(山/8) 떠날 리(隹/11) 쪼갤 석(木/4)

한 조직에서 발전을 위해서는 일관된 의견도 중요하겠지만 다양한 방법을 표출하여 장점을 통합하는 데서 더 큰 진전을 할 수 있다. 모두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부리면 배가 산으로 간다. 양보하고 절충하는 것은 한 부모에서 난 형제들도 어려운 일인데 공동 이익을 꾀하는 조직일수록 자신의 이익이 줄어들까봐 으르렁거린다. 예부터 그런 일이 많았던지 이를 나타내는 말도 많아 이 난에서도 자기 편 끼리의 싸움 嚙韉之馬(교천지마, 嚙는 깨물 교, 韉은 언치 천)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 禍起蕭墻(화기소장, 蕭는 쓸쓸할 소)을 소개한 적이 있다.

똑 같은 뜻으로 집단이 나눠져 무너지고(分崩) 헤어져 쪼개진다(離析)는 이 성어는 공자님 말씀에서 나왔다. ‘論語(논어)’의 季氏(계씨)편에 실려 유래된 내용을 간단히 보자.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 말기 魯(노)나라에서는 귀족들이 왕권을 농락하며 정권을 좌지우지했다. 그 중에서도 桓公(환공)의 후손이면서 三桓(삼환)의 대부로 불린 孟孫(맹손)씨, 叔孫(숙손)씨, 季孫(계손)씨 대에 이르러서는 말 그대로 무소불위였다.

季康子(계강자)가 권력자로 있을 때 계씨 가문의 봉지인 費邑(비읍) 근처의 노나라 속국 顓臾(전유, 顓은 오로지 전, 臾는 잠깐 유)를 정벌하려 했다. 국력이 상당했던 전유가 계씨 후손들의 근심거리가 될 것을 우려하여 미리 후환을 없애려 한 것이다. 그 무렵 공자의 제자인 冉求(염구, 冉은 늘어질 염)와 子路(자로)가 계강자의 가신으로 있었다. 스승을 찾아뵙고 계강자의 침략을 말씀드리자 공자는 말리지 못한 것에 대해 꾸짖는다. ‘지금 너희들이 계씨를 돕는다고 하면서 먼 곳의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는데 따라오게 하지도 못하고, 나라가 갈라져 떨어져 나가는데도 지키지 못하며(邦分崩離析而不能守也/ 방분붕리석이불능수야), 나라 안에서 군사를 동원하려고 꾀하고 있구나.’/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사상누각砂上樓閣 - 모래 위에 지은 높은 다락

사상누각砂上樓閣 - 모래 위에 지은 높은 다락

사상누각(砂上樓閣) - 모래 위에 지은 높은 다락

모래 사(石/4) 윗 상(一/2) 다락 루(木/11) 집 각(門/6)

아주 튼튼하게 높이 지은 성벽이나 高樓巨閣(고루거각)은 처음 그 기초를 튼튼히 한다. 만들고 난 뒤 관리를 세심하게 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조그만 개미구멍에 큰 둑이 무너진다는 堤潰蟻穴(제궤의혈)이 그것이다. 그래도 더 앞서야 하는 것이 기초다. 아무리 최신 공법으로 앞서가는 기술을 총동원했더라도 밑받침이 허술하면 도로 아미타불이다. 뿌리 깊지 않은 나무는 아름드리라도 비바람에 허망하게 무너진다. ‘모래 위에 쌓은 성’이란 속담은 기초가 튼튼하지 못해 곧 허물어질 수 있는 물건이나 일을 비유적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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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을 번역한 듯이 뜻이 똑 같은 모래 위(砂上)에 지은 높은 다락(樓閣)이란 이 성어는 쉬운 말로 비유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래는 찾기 어렵다. 樓는 문이 없는 다락집을, 閣은 사면에 문이 달린 다락집을 가리킨다고 한다. 같은 뜻으로 空中樓閣(공중누각)이 있다. 공중에 떠 있는 누각이라면 기초가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宋(송)나라의 夢溪筆談(몽계필담) 등 근거가 뚜렷하고 우리의 고전에서도 많이 사용됐다. 이 말은 송나라 학자 邵雍(소옹)이 거처하던 누각을 일컬으며 그의 학문이 명철하고 통달함을 가리키기도 했다지만 아무런 근거나 토대가 없는 사물이나 생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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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이 쓰이지는 않아도 속이 꽉 찬 사람이라야 남을 이끄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비유는 곳곳에 있다. 論語(논어)에는 근본이 바로 서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이 열린다는 本立道生(본립도생)이 나온다. 大學(대학)에는 ‘근본이 부실한데 최종 목표가 이뤄지는 경우는 없다(其本亂而末治者否矣/ 기본란이말치자부의)’고 했다.

예수님은 반석에 집을 지을 일이지 불법을 일삼는 자들이 지은 집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꾸짖었다. 모래 위든, 공중에 세워졌든 화려한 누각이 기초가 허술할 때 얼마 못가 가라앉거나 스러진다. 각광을 받고 등장한 지도자나 상사가 기본이 되는 실력도 갖추지 못했다면 아랫사람에게 단번에 들통 난다. 이런 사람은 어리석을 정도가 아니라 제 무덤을 파는 자들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배궁사영杯弓蛇影 – 술잔에 비친 활을 뱀으로 알다.

배궁사영杯弓蛇影 – 술잔에 비친 활을 뱀으로 알다.

배궁사영(杯弓蛇影) – 술잔에 비친 활을 뱀으로 알다.

잔 배(木/4) 활 궁(弓/0) 긴뱀 사(虫/5) 그림자 영(彡/12)

남을 무턱대고 믿는 일도 안 될 일이지만 의심부터 앞세우는 것도 못할 일이다. ‘지나친 의심은 과오를 낳는다’거나 ‘지혜 없는 자 의심 끊일 날이 없다’고 불경에서 가르쳤지만 중생들은 따르지 못한다. ‘만일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좋을 것인가?’ 하고 침식을 잊으며 걱정했다는 옛날 중국 杞(기)나라 사람의 걱정은 옛날만의 어리석음이 아니다. 의심의 결정판이 속담에 있다. 물건을 잃게 되면 누구나 다 의심스럽게 여겨진다며 ‘도둑맞으면 어미 품도 들춰 본다’고 까지 했다.

술잔 속에 비친 활 그림자를 뱀으로 잘못 알았다는 이 성어는 쓸데없이 의심을 품고 지나치게 걱정한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魏(위)나라에 뒤이어 건국된 南北朝(남북조) 시대의 晉(진)나라 때 樂廣(악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독학을 했지만 영리하고 신중해서 주위의 신망을 받았다. 뒷날 벼슬길에 천거되어 河南(하남)의 태수로 있을 때 일이다. 그의 친한 친구가 찾아 와 술상을 차리고 대접했다. 하지만 그는 무슨 근심이라도 있는 듯 말수도 적고 술도 얼마 마시지 않고 돌아갔다. 자주 오던 친구는 그 뒤로 웬일인지 발을 딱 끊고 찾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여긴 악광이 찾아가 보니 자기에게 찾아온 이후 병이 들어 앓아 누웠다고 했다.

온갖 약을 써도 차도가 없다는 친구에게 원인을 물어보니 전번 술 마신 잔에서 뱀이 보였다고 했다. 언뜻 생각이 미친 악광은 다시 친구를 초청하여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잔을 보게 했다. 다시 뱀이 어른거리자 뒷벽에 있는 활을 벗겨 낸 뒤에 보라고 하니 없어졌다고 했다. 술잔에 비친 활 그림자를 뱀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물론 친구는 의심이 사라지고 병도 깨끗이 나았다. ‘晉書(진서)’ 악광전에 실린 이야기다.

杯中蛇影(배중사영) 또는 蛇影杯弓(사영배궁)이라 해도 같은 말인데 사람은 달리 비슷한 이야기가 後漢(후한) 應劭(응소, 劭는 아름다울 소)라는 사람이 엮은 風俗通義(풍속통의)에도 전한다. 列子(열자)가 말한 의심하면 이치에 어긋나는 망령된 생각이 난다는 疑心暗鬼(의심암귀)라는 말과도 통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사공명 주생중달死孔明 走生仲達 -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다.

사공명 주생중달死孔明 走生仲達 -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다.

사공명 주생중달(死孔明 走生仲達) -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다.

죽을 사(歹/2) 구멍 공(子/1) 밝을 명(日/4) 달릴 주(走/0)

날 생(生/0) 버금 중(亻/4) 통달할 달(辶/9)

죽은 공명(死孔明)이 살아있는 중달을 쫓았다(走生仲達)는 유명한 성어다. 공명은 물론 諸葛孔明(제갈공명)이고 중달은 司馬仲達(사마중달)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덧붙이면 공명은 諸葛亮(제갈량), 중달은 司馬懿(사마의, 懿는 아름다울 의)의 자를 가리킨다. 死諸葛 走生仲達(사제갈 주생중달)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앞서 소개했다. 走와 生의 글자를 잘못 해석하여 ‘죽은 제갈이 달려가 중달을 낳았다’고 한 훈장을 놀리는 이야기도 많이 알려졌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蜀(촉)나라의 승상이었던 제갈량(181~234)은 劉備(유비)가 三顧草廬(삼고초려)로 모셔온 만큼 최고의 전략가, 만고의 충신으로 추앙받는다. 臥龍(와룡)선생으로 불리며 천문 지리에 능통하여 신출귀몰한 계략을 썼다고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는 흥미진진하게 기록한다. 여기 비해 사마의(179~251)는 여러 차례 촉나라의 침공을 저지한 魏(위)나라의 군략가였지만 성어가 남아있는 만큼 겁쟁이로 오명을 덮어쓰고 있다. 이런 전통적인 해석보다 달리 보는 견해가 있다.

10만 대군을 이끌고 五丈原(오장원)에 진을 친 공명은 속도전을 노렸고 이를 간파한 중달이 지구전을 펼쳤다. 격무에 시달린 공명이 죽고 촉군이 후퇴할 때 중달이 급습했다가 반격에 놀라 허둥댔다. 여기서 공명의 인형을 보고 중달이 혼비백산했다는 이야기로 되었다. 실제는 추격을 하다 물러났지만 공명 때문이 아니고 세심하고 신중한 중달의 성격 때문이라 한다. 대군을 이끌며 지구전을 펼친 중달은 결국 최후의 승리를 거두고 권력의 기반을 탄탄히 잡게 됐다. 뿐만 아니라 중달은 손자 司馬炎(사마염)이 晉(진)나라를 세우게 되자 高祖(고조)로 불리기까지 했다.

해석을 달리 해서 또 다른 흥미를 느낄 수는 있어도 성어만큼은 뜻이 그대로다. 제갈량을 비유해 죽은 뒤에도 적이 두려워 할 정도로 뛰어난 장수를 일컫는다. 죽은 뒤의 촉군을 쫓았다가 수레에 세운 좌상을 보고 말머리를 돌려 도주한 사마의는 비겁의 대명사로 남았다. 한 때의 오명을 극복하고 뒤에 큰 업적을 이룬다면 또 다른 해석이 나올 수도 있는데 이는 나름대로의 몫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봉공여법奉公如法 - 공적인 일을 법대로 처리하다.

봉공여법奉公如法 - 공적인 일을 법대로 처리하다.

봉공여법(奉公如法) - 공적인 일을 법대로 처리하다.

받들 봉(大/5) 공평할 공(八/2) 같을 여(女/3) 법 법(氵/5)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다. 만인은 법 앞에서 공평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이제는 유명한 성어가 된 지강헌표 有錢無罪 無錢有罪(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계속 오르내리고 있는 것은 그만큼 공정하게 법이 집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法(법)의 옛 글자 灋(법)은 집행이 물 흐르듯(氵 去) 공평해야 하고, 유무죄를 아는 동물 해태 廌(치)가 들어있는 이유가 된다고 법 관련 성어를 말할 때마다 얘기했다. 作法自斃(작법자폐), 法不阿貴(법불아귀) 舞文弄法(무문농법) 등이다. 하지만 권력에 막히고 재력에 막혀 잘 흘러가지 못한 적이 없지 않았기에 유사한 말이 많이 전해졌다.

모든 사람에게 두루 관계되는 공적인 일(奉公)은 법에 의해 처리해야 한다(如法)는 이 말은 ‘史記(사기)’에서 나왔다. 廉頗藺相如(염파인상여, 頗는 자못 파, 藺은 골풀 린) 열전에 실렸다. 戰國時代(전국시대) 趙(조)나라의 두 명신은 刎頸之交(문경지교, 刎은 목자를 문, 頸은 목 경)란 말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성어의 주인공은 趙奢(조사)라는 명장이다. 그가 젊을 때 전답에 대한 조세 업무를 담당하던 하급관리로 있었다. 전국시대 말기 각 제후국에서 빈객을 거느리고 있던 귀족이 있었는데 조나라에선 平原君(평원군)이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자신의 지위를 믿고 평원군이 세금을 내지 않으려 했다. 강직한 조사는 법에 따라 집사 아홉 명을 붙잡아 처단했다. 크게 화가 난 평원군이 해치려 하자 조사가 설득했다. 나라의 공자인 집에서 세금을 내지 않으면 국법은 무너지고 나라가 쇠약해지면 공자도 부를 누리지 못한다고 했다. ‘공과 같은 고귀한 분이 공적인 일을 법과 같이 받들면, 온 나라가 한 마음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라가 부강해집니다(以君之貴 奉公如法則上下平 上下平則國彊/ 이군지귀 봉공여법즉상하평 상하평즉국강).’ 평원군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조사를 현인이라며 왕에게 천거해 국방을 튼튼히 하는 장수를 맡겼다.

‘법의 날’은 1964년 처음 제정되었을 때는 노동절을 법의 날로 정한 세계추세에 따라 5월1일로 했다가 2003년부터 바뀌었다. 이 날은 근대적 사법제도를 도입하는 계기가 된 재판소구성법이 시행된 날로 국민의 준법정신을 높이고 법의 존엄성을 진작시키는 것이 목적이라 한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법을 집행함에 있어 조금도 사사로움이 개입되지 않는 만인 앞에 공평하다는 것을 체감하도록 하는 것이 앞서야 할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사인여천事人如天 -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겨라.

사인여천事人如天 -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겨라.

사인여천(事人如天) -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겨라.

일 사(亅/7) 사람 인(人/0) 같을 여(女/3) 하늘 천(大/1)

사람은 태어날 때 선과 악, 어느 쪽에 가까울까. 예부터 性善(성선), 性惡(성악)으로 대립했지만 오늘날도 주장은 여전하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고 하는가 하면, 이성은 고귀하고 능력은 무한하고 행동은 천사와 같다며 인간은 위대한 걸작이라 하기도 한다. 그래서 파스칼은 신과 동물의 중간적 존재에 사람을 위치시켰다. 철학자들의 결론 없는 주장은 뒤로 하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란 말은 모두 수긍한다. 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인권선언도 모두 옳다.

평등할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섬기기(事人)를 하늘과 같이 하라(如天)는 이 말 이상으로 사람을 중시한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민족종교 天道敎(천도교)의 기본 사상인 이 말은 조선 말엽 水雲(수운) 崔濟愚(최제우) 선생이 東學(동학)을 창시할 때부터 사람을 하늘처럼 모신다는 侍天主(시천주) 가르침에서 나왔다. 여기서 하늘은 사람인 한울님을 가리키고, 사람의 신분이나 성별에 따라 차별하는 바 없이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2대 海月(해월) 崔時亨(최시형), 3대 義菴(의암) 孫秉熙(손병희) 교주로 체계화되면서 사람이 곧 하늘이란 人乃天(인내천)으로 굳어졌다.

해월 선생이 한 유명한 말을 보자. ‘도인의 집에 사람이 오거든 사람이 왔다고 하지 말고 하느님이 강림하셨다고 말하라(道家人來 勿人來言 天主降臨爲言/ 도가인래 물인래언 천주강림위언)’. 이러한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사람을 하늘같이 여기는 삶인데 그 방식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자신의 내면에서 길러나가는 수행을 통해서만이 한울님을 모실 수 있다는 養天主(양천주), 타인을 신분과 성별에 의해 차별하지 않는 待人(대인), 나아가 사람만이 아닌 우주만물이 모두 한울님이 기화되어 이뤄졌다는 接物(접물)이 그것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교리는 모르더라도 사람이 곧 하늘이면 세상 민심이 하늘의 뜻인 것은 누구나 안다. 사람을 하늘처럼 잘 섬겨야 하는 사람은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멋들어진 구호나 공약으로 이 말을 내세워 놓고 정작 실천할 자리가 주어지면 제몫 챙기는 사람이 더 많다. 또 남을 미워하면 내 안의 한울님을 상하게 한다고 여겼던 동학은 농민혁명이 비폭력 평화시위의 근원이 됐다는 평가도 받는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