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8일 금요일

김기범 교수의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 김기범 교수의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 김기범 교수의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현관 풍수인테리어 기법 ㉔

- 띠별 운을 좋게 하는 현관 풍수인테리어(말,양,원숭이,닭,돼지)

띠별로 운이 따르는 현관 방향은(보는 방법은 아파트에서는 아파트 실내 정중앙에서 주택은 주택 한 가운데서)

말띠 생의 좋은 방향의 현관 위치는 서쪽이나 동북 방향이고, 나쁜 방향은 북서이나 남동 방향이다.

양띠 생의 좋은 방향의 현관 위치는 남쪽이나 북서 방향이고, 나쁜 방향은 남서이나 동북 방향이다.

원숭이띠 생의 좋은 방향의 현관 위치는 동쪽이나 남서 방향이고, 나쁜 방향은 동남이나 북서 방향이다.

닭띠 생의 좋은 방향의 현관 위치는 북쪽이나 동남 방향이고, 나쁜 방향은 동북이나 남서 방향이다.

개띠 생의 좋은 방향의 현관 위치는 서쪽이나 동북 방향이고, 나쁜 방향은 북서이나 남동 방향이다.

돼지띠 생의 좋은 방향은 현관 위치는 남쪽이나 북서 방향이고, 나쁜 방향은 남서이나 동북 방향이다.

상기 방향에서 좋은 방향의 경우는, 좋은 기운(氣運)이 들어와서 가정의 행복과 건강, 재물 운(運) 등이 따르며, 나쁜 방향의 경우는, 공간이 있다면 식물화분(관엽식물) 등을 놓아두고, 공간이 없다면, 풍경화 그림이나 사진을 부착하고 현관 바닥 색상을 밝은 색이나 황토색으로 인테리어를 하면 좋은 운기(運氣)가 들어오는데 도움을 주는 아이템이다.

♣ IFSA 국제풍수협회 선정 2018 대한민국 최고 풍수인테리어 전문가

문의 : 010-2432-5522, http://cafe.daum.net/kkb2005

진백가녀秦伯嫁女 - 진나라 공주가 시집가다, 형식만 차린 잘못된 결혼

진백가녀秦伯嫁女 - 진나라 공주가 시집가다, 형식만 차린 잘못된 결혼

진백가녀(秦伯嫁女) - 진나라 공주가 시집가다, 형식만 차린 잘못된 결혼

성 진(禾/5) 맏 백(亻/5) 시집갈 가(女/10) 계집 녀(女/0)

신부가 시집갈 때에 친정에서 가지고 가는 돈인 持參金(지참금)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있었다고 한다. 신부 집 재산의 사전 상속이나 부양의 목적을 위한 관습이라는데 시집에 노동력과 대를 잇는 출산 등의 희생을 하는 면에서 부당한 면이 있다. 하지만 지참금이 적다며 일어나는 분쟁은 파혼에 이르고 계급제도가 철저한 아프리카나 인도에서는 신부 살해까지 일어난다. 그런데 분수에 넘치도록 재물을 싸가지고 갔더라도 신부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했다면 말짱 헛일이다. 이런 좋은 예가 秦(진)나라 공주가 시집간다는 이 성어다.

중국 法家(법가)의 확립자 韓非(한비)는 ‘韓非子(한비자)’는 外儲說(외저설) 左上(좌상)편에서 이야기한다. 쌓을 儲(저)는 비축하다, 준비하다는 뜻이고 說은 설명하기 위한 사례를 말한다. 내용을 보자. 옛날 秦(진)나라의 왕이 공주를 晉(진)나라의 공자에게 시집보내면서(昔秦伯嫁其女於晉公子/ 석진백가기녀어진공자) 시녀를 70명이나 딸려 시중들게 했다.

공주에게는 시집가서 꾸미도록 옷감을 가득 보내며 정작 차림새는 수수하게 했고 시녀들에겐 온갖 장식으로 치장했다. 진나라 공자는 공주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시녀 중에서 한 명을 골라 첩으로 삼았다. 큰 재산을 들여 딸을 시집보내고서도 시녀들에게 좋은 일만 시킨 꼴이 되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 買櫝還珠(매독환주, 櫝은 함 독)가 있다. 진주를 팔기 위해 화려한 상자에 주옥을 달고 비취 깃을 달았더니 그것을 산 사람이 상자만 사고 구슬은 돌려주었다. 귀한 것을 천하게 여긴다는 이 말은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실상은 지나치기 쉽다는 가르침이다. 앞의 진나라 공자가 많은 재물을 갖고 온 진백의 공주보다 치장을 요란하게 한 시녀를 좋아한 것과 마찬가지다.

말을 번지르르하게 잘 하는 사람일수록 쓸 말은 적은 것과 마찬가지로 화려하게 꾸민 겉모습만 보고 실질적인 면은 잊기가 쉽다. 갈수록 과열되는 결혼 때의 신부 혼수는 일류 신랑감을 잡기 위한 형식이기 쉽다. 겉모습을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도 사랑으로 이루어진 酌水成禮(작수성례), 물만 떠놓은 예식보다 행복할 수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무계지언無稽之言 - 근거가 없는 말

무계지언無稽之言 - 근거가 없는 말

무계지언(無稽之言) - 근거가 없는 말

없을 무(灬-8) 머무를 계(禾-10) 갈 지(丿-3) 말씀 언(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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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말을 상대방에 믿게 하려면 참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보태더라도 그럴싸한 근거를 대야 한다. 하나의 거짓말을 하려면 남이 믿을 수 있도록 항상 다른 거짓말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들통이 나고 만다. 말이나 행동 따위가 참되지 않고 터무니없을 때는 莊子(장자)에 나오는 荒唐無稽(황당무계)란 말을 쓴다. 이처럼 유례를 찾을 수 없고 황당한 이야기를 할 때 이 성어를 쓴다. 그러나 제법 믿을 만하게 근거가 있고 진실에 가까운 허언은 가장 혐오스런 거짓말이라고 했으니 어쨌든 어떤 바보라도 할 수 있는 참말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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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의 기록 書經(서경)에 이 말이 등장한다. 항상 숭상해야 한다고 尙書(상서)라고도 하는 서경은 三經(삼경)이나 五經(오경)에 꼭 들어갈 정도로 중요시했다. 제일 먼저 나오는 虞書(우서)의 大禹謨(대우모) 편에 舜(순)임금이 禹(우)에게 임금을 맡기를 바라면서 대담하는 내용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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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禹(대우)는 우가 순의 신하로 있을 때 높여서 부른 말이라 한다. 순임금이 믿음을 이루고 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우가 홍수를 다스린 공적에 힘입은 것이라 치하했다. 그러면서 나라일은 부지런하고 집안에서는 검약하며 스스로 만족하거나 뽐내지 않았고 교만하지 않으니 천하에 공을 겨룰 자가 없어 왕을 맡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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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부한다.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기만 하고 도를 지키려는 마음은 극히 미약한 것이니 정신을 집중하여 그 중심을 진실하게 잡아야 하오. 근거 없는 말은 듣지 말며, 상의하지 않은 계책은 쓰지 말아야 하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無稽之言勿聽 弗詢之謀勿庸/ 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 무계지언물청 불순지모물용).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가 근거 없는 말을 믿고 그대로 따르면 큰 피해가 따른다는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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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지년破瓜之年 - 여자의 나이 16세, 남자의 나이 64세

파과지년破瓜之年 - 여자의 나이 16세, 남자의 나이 64세

파과지년(破瓜之年) - 여자의 나이 16세, 남자의 나이 64세

깨뜨릴 파(石/5) 외 과(瓜/0) 갈 지(丿/3) 해 년(干/3)

오이를 깨뜨렸다는 破瓜(파과)는 오이 瓜(과)글자를 破字(파자)했다는 말이다. 한자의 자획을 풀어 나누는 것이 파자인데 재미있는 글자 학습법으로 많이 사용됐다. 可笑(가소)로운 것을 풀어 丁口竹天(정구죽천)이라 하고, 쌀 米(미)는 八十八(팔십팔)이 되어 米壽(미수)가 88세가 된다는 식이다. 瓜(과)자는 한 가운데를 세로로 나누면 두 개의 八(팔)이 되어 이것도 나이를 나타내는 말이 됐다. 瓜字初分(과자초분)이라고도 하는데 두 개의 팔을 더하면 8 8=16이 되고, 곱하면 8*8=64로 각각 뜻하는 것이 달랐다.

먼저 16세는 여자의 나이를 말한다. 二八靑春(이팔청춘)이라 하듯이 春香(춘향)과 夢龍(몽룡)이 만난 때도 이 때다. 오이가 여성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어 오이를 깬다는 것은 처음 생리를 한다는 뜻이나 또는 처녀성을 잃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중국 東晋(동진)의 시인 孫綽(손작)이 ‘情人碧玉歌(정인벽옥가)’에서 이런 뜻으로 처음 썼다는데 앞부분만 보자. ‘푸른 구슬이 오이를 깨뜨릴 때, 님은 정으로 나를 덮었네(碧玉破瓜時 郎爲情顚倒/ 벽옥파과시 낭위정전도).’

淸(청)나라 학자 翟灝(적호, 翟은 꿩 적)는 백과사전격인 ‘通俗編(통속편)’에서 점잖게 바로잡는다. ‘풍속에서는 여자가 몸을 망치는 것을 파과라고 하는데 잘못된 것이다(俗以女子破身爲破瓜 非也/ 속이여자파신위파과 비야).’ 瓜(과)자를 깨면 두 개의 八(팔)자가 되어 이는 이팔 십육 세를 말할 뿐이라 했다. 청나라 문인 袁枚(원매)도 시론 隨園詩話(수원시화)에서 같은 주장을 폈다고 한다.

역시 ‘통속편’에 呂巖(여암)이 張泊(장박)에 준 시라고 하면서 ‘공을 이룬 것은 파과년으로 바로 팔팔 64세를 말한다(功成當在破瓜年 則八八六十四歲/ 공성당재파과년 즉팔팔륙십사세)’고 실려 있다. 남자의 경우는 64세를 말한다며 宋(송)나라 祝穆(축목)의 事文類聚(사문유취)에도 기록돼 있다.

남자의 64세보다 여자의 16세에 더 많이 쓴 이 말이 한창 때의 청춘이라 하지만 지금이야 미성년자이다. 중고생이 동급생을 끔찍이 폭행한 사건이 종종 드러났는데 다 자랐다고 어른 행세를 하기 전에 좀 더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것이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견원지간犬猿之間 -개와 원숭이의 사이. 사이가 매우 나쁜 두 관계를 비유.

견원지간犬猿之間 -개와 원숭이의 사이. 사이가 매우 나쁜 두 관계를 비유.

견원지간(犬猿之間) -개와 원숭이의 사이. 사이가 매우 나쁜 두 관계를 비유.

개 견, 원숭이 원, 갈지, 사이 간

사이가 아주 나쁜 두 사람 사이를 말하는 犬猿之間의 개와 원숭이는 실제로 사이가 나쁜가. 개와 원숭이 모두 야생이었을 때 후각이 예민한 개가 몸집이 작은 원숭이를 먹이로 만만해 잡아먹으려 하니 서로 으르렁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미뤄 짐작한다.

원숭이는 복종심이 강한 동물이라 강한 상대엔 등을 보이며 달아나는데 개는 등을 보이면 자기보다 약하다고 바로 공격한다고 한다. 이들이 불화하는 이유를 동물학자들이 밝힌 바로는 신호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라 했다. 즉 기분이 좋을 때 원숭이는 꼬리를 내리는데 개는 올리고, 기분이 상하면 반대로 원숭이가 올리고 개는 내리니 오해에서 오는 대적관계로 숙명이란다.

중국에 이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런가 하지만 실제 쓰인 곳은 많지 않다. 중국 明(명)나라 때 吳承恩(오승은)이 쓴 장편 神怪(신괴) 소설 ‘西遊記(서유기)’에 개와 원숭이 싸움이 그려져 있다. 돌에서 태어난 원숭이 孫悟空(손오공)은 도술을 써서 천제의 궁전이 발칵 뒤집히는 소동을 벌인 죄로 500년 동안 五行山(오행산)에 갇혀 있었는데, 三藏法師(삼장법사)가 지나가는 길에 구출해 준 뒤 수행하며 벌이는 이야기다. 손오공이 도술을 부려 난리를 피우자 관세음보살이 막기 위해 제자를 보냈으나 날뛰는 원숭이의 비법엔 속수무책.

천계에서 할 수 없이 회의 끝에 옥황상제의 조카로 무술이 천하제일이라는 二郞眞君(이랑진군)에게 도움을 청했다. 개로 비유된 이랑신과 변신술을 써가며 300여 합의 결투를 벌이는데 원숭이 진영에 개를 풀어 치명상을 입혔다.

중국 사람들은 개와 원숭이가 만나면 늘 다투는 것으로 보았지만 우리는 아옹다옹이란 말이 있듯이 고양이와 개가 사이가 안 좋다고 보았다. 야옹은 고양이 소리고 다옹은 개의 소리를 나타냈다고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하동사후河東獅吼 - 하동 땅의 사자가 울부짖다, 성질이 사나운 부인

하동사후河東獅吼 - 하동 땅의 사자가 울부짖다, 성질이 사나운 부인

하동사후(河東獅吼) - 하동 땅의 사자가 울부짖다, 성질이 사나운 부인

물 하(氵/5) 동녘 동(木/4) 사자 사(犭/10) 울부짖을 후(口/4)

쓸 말은 필요하고 꼭 해야 할 경우에는 말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속담처럼 경계하는 말이 많다. 말이 많으면 자주 어려움에 처한다는 多言數窮(다언삭궁, 이 때의 數는 ‘자주 삭‘)에서 입이 온갖 분란을 일으키는 재앙의 문이란 口禍之門(구화지문) 까지 섬뜩할 정도다. 여기에 옛날의 男尊女卑(남존여비) 영향으로 여자가 말 많은 것을 더 욕했다. ’계집 입 싼 것‘이라며 입이 가볍고 헤픈 여자는 아무 짝에도 쓸데없다고 했고, 부녀자가 떠들썩하게 지껄이는 것을 ’사나운 암캐같이 앙앙하지 마라‘고 욕했다.

사자의 울부짖음이란 獅子吼(사자후)는 부처님의 위엄 있는 설법을 가리켰다.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듯 부처님의 위엄을 비유한 것이 열변을 토하는 연설을 가리키게 됐고, 나아가 질투심이 강한 부인이 남편에게 앙칼지게 대드는 악처를 비유하기도 했다. 악다구니하는 여인의 유래로 특별히 河東(하동) 땅의 사자가 운다(獅吼)고 하여 중국 宋(송)나라의 문인 蘇軾(소식, 1037~1101)의 재미있는 시가 따른다.

소식의 친구로 陳慥(진조, 慥는 착실할 조)라는 사람이 있었다. 禪學(선학)을 공부하며 空(공)과 有(유)에 대해 친구들과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진조의 자가 공처가의 대명사가 된 季常(계상)인 것처럼 그의 부인 하동 柳氏(유씨)는 표독스럽고 투기가 심했다. 밤새 술자리에서 토론하는 남편에게 옆방에서 욕을 퍼부어 손님들은 좌불안석하다 자리를 피했다. 소식이 시를 지어 진조를 놀렸다. ‘갑자기 하동의 사자 울음소리를 들으니, 지팡이도 손에서 떨어지고 넋은 완전히 나갔네(忽聞河東獅子吼 拄杖落手心茫然/ 홀문하동사자후 주장락수심망연).’

진조의 처가 처음부터 막무가내였기 보다 남편과 세파에 시달리다 변했을 것이다. 우리의 가요도 있다. 수줍던 아내가 첫 아이 낳더니만 고양이로, 그 다음엔 무서운 호랑이로 변해버렸다는 최희준 원로가수의 ‘엄처시하‘다. 술자리에서 남정네끼리 우스개이기 쉽지만 실제로 사회 전체의 대우가 점차 개선된다고 해도 여성의 차별이 여전하다. 오죽하면 미투(metoo, 나도 당했다)나 몰카 편파수사 규탄하는 여성시위가 늘어만 갈까.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삼배구고三拜九叩 - 세 번 절하고 아홉 차례 머리를 땅에 닿게 하다.

삼배구고三拜九叩 - 세 번 절하고 아홉 차례 머리를 땅에 닿게 하다.

삼배구고(三拜九叩) - 세 번 절하고 아홉 차례 머리를 땅에 닿게 하다.

석 삼(一-2)절 배(手-5)아홉 구(乙-1)두드릴 고(口-2)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라도 그 과오를 인정하고 또 사과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그래서 지난 번 자기가 맞을 회초리를 등에 지고 가 죄를 청한다는 負荊請罪(부형청죄)란 말이 소중하다고 말한 적 있다. 잘못은 인정하고 사과를 하려는데 받는 쪽에서 부당하게 심한 요구를 할 때엔 어떻게 될까. 명백한 잘못이라도 자신의 과오는 뒷전이고 반발만 불러 올 게 뻔하다.

중국 淸(청)나라 때 세 번 절하고(三拜) 세 번 땅에 머리를 닿게 한다(九叩)는 황제에 대한 경례법은 사과에 대한 예식이 아니라도 행하는 사람은 심한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드릴 叩(고)에는 머리를 조아린다는 뜻이 있다. 꿇어앉다, 무릎 꿇고 절하다는 뜻의 跪(궤)를 써서 三跪九叩(삼궤구고)로 써도 같은 뜻이다. 叩頭禮(고두례)는 본래 신불이나 친족 어른에 존경을 표시하던 것이라는데 明(명)나라에 이르러 이웃 나라 조공사가 황제를 알현할 때의 의식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명나라의 오배삼고두례는 청나라가 지배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삼궤구고두례로 대체되어 외국사절에게도 강요했다. 실제 제7대 嘉慶帝(가경제) 때인 1816년 영국의 대사 애머스트(William Amherst)가 이를 거부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일화도 남아 있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은 훨씬 더한 치욕의 역사가 있다. 光海君(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에 성공하여 왕위에 오른 仁祖(인조)에게 시련을 안긴 後金(후금)의 太宗(태종)이 바로 그다.

1627년 처음 침입한 丁卯胡亂(정묘호란) 때엔 형제의 맹약을 맺고 잘 수습했다. 청으로 국호를 고친 뒤 군신의 예를 강요하는 것을 조선이 거부했다가 1636년 丙子胡亂(병자호란)을 맞아 온 국토가 유린되고 왕은 南漢山城(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강화도까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 해 1월 인조는 세자 등 500명이 한강 상류의 나루 三田渡(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신하의 예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BTS 병역특례 단상

◇ BTS 병역특례 단상

◇ BTS 병역특례 단상

우리나라에서 병역특례제도가 시작된 것은 1973년부터다. 특혜가 주어지는 만큼 말도 많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국가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자 이들에게 병역면제 혜택을 줘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이탈리아와의 8강전이 열리기 전날 병역특례 결정이 내려졌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챔피언십(WBC) 때도 한국이 3위에 오르자 기준을 바꿔 이들에게 병역특례를 줬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는 야구대표팀 선수 24명 중 13명을 군 미필자로 꾸려 병역면제를 노린 꼼수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바둑기사 이창호 9단은 정부가 바둑을 체육특기자 종목에 넣는 묘수를 내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다.

현행 병역법 시행령 68조 11항은 병역특례 대상을 ‘예술·체육 분야 특기자’로서 ‘병무청장이 정하는 국내외 예술경연대회나 올림픽·아시안게임 등에서 1~3위로 입상한 사람’으로 규정했다. 이들은 예술·체육요원(보충역)으로 편입돼 4주간 기초 군사훈련을 이수하고 544시간의 봉사활동을 해야 하지만, 복무 기간에 자신의 특기 분야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BTS) 병역면제 논란이 뜨겁다. 지난달 신곡 ‘다이너마이트’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면서다. K팝의 주역인 BTS에 병역특례를 적용해야 한다는 게 찬성론자들 주장이다. 형평과 공정에 어긋난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6일 BTS의 병역특례 공론화를 주장하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논란이 격화되자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국민이 보기에 편치 못하고 본인도 원하는 일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답변해 논란이 재점화됐다.

이 문제에 대해 쉽사리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이유는 예체능 분야 병역특례의 명분인 ‘국위선양 및 문화창달’이란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BTS처럼 새로운 대상자가 거론될 때마다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병역법에 따르면 대중가수가 병역특례를 받을 방법은 없다. 차제에 정부와 정치권은 공론화 과정을 통해 병역특례 대상에 대한 합리적 개선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세계일보-

◇ 지리산 천왕봉 정상석 방향 돌려놔 주세요

◇ 지리산 천왕봉 정상석 방향 돌려놔 주세요

◇ 지리산 천왕봉 정상석 방향 돌려놔 주세요

예외가 없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면 반드시 기념 촬영을 한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 힘들게 오른 만큼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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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천왕봉에서 찍은 기념 사진은 누구나 예외없이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지리산 천왕봉 1915m이라 적힌 정상석 앞에서는 독사진 내지는 두세 사람, 많게는 네뎃 사람이 전부다. 10명 이상의 단체 사진은 찾아볼 수가 없다. 혹 있다고 하더라도 뒷면, 다시말해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힌 뒷면이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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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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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 1915m라고 적힌 정상석이 서 있는 정상부의 전체 면적이 30㎡에 불과한 데다 정상석 앞면에서 볼 때 사진을 찍는 사람이 뒤로 물러날 수 있는 공간이 최대 3m 남짓 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물러나면 그야말로 벼랑이다. 이 때문에 정상에 오른 뒤 약간 상기된 채 사진을 찍을 경우 항상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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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관리공단 지리산사무소에 문의를 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이 정상석은 지난 1982년 6월 2일 경남도에서 세웠다. 지금이야 지리산을 비롯한 모든 국립공원은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관할하지만 당시에는 경남도가 맡았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그보다 한참 뒤인 1987년 설립됐다.

당시 지리산 철쭉제 행사를 겸해 시민등반대회가 열려 전국의 많은 산꾼들이 정상석 제막식에 참여했다. 높은 분들로는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익현 민정당 사무총장과 이규효 도지사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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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 선생의 하늘이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라는 명문이 적힌 기존의 조그만 정상석 대신 헬기로 공수돼 온 1.5m 높이의 정상석의 제막식이 진행되면서 한쪽에선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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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석 뒷면에 경남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천왕봉은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와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의 경계에 위치해 있지만, 지리산은 함양 산청 이외에 하동 남원 구례 등 5개 시군에 걸쳐 있기 때문에 그 문구는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천왕봉이 한라산(1950m)에 이어 남한 땅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여서 당연히 전 국민의 산으로 인식돼야 하기 때문에 경남 대신 한국이란 표현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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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가을쯤 어느날 정상석에는 누군지만 모르지만 경남 대신 한국으로 바꿔 놓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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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기자는 정상석이 어느 방향을 봐야 한다는 원칙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공단측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미 나왔다. 안전사고 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단체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상석을 돌려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좋은 생각이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민족의 영산, 남한땅 최고봉 지리산 천왕봉이라서 머뭇거리는 점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이제는 만인을 위해 정상석 방향을 되돌려도 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자만의 생각일까.

-고니의 방랑기-

◇ 중년 남자와 빵

◇ 중년 남자와 빵

◇ 중년 남자와 빵

밥이냐, 빵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중년 남자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게 되는 실존적 위기는 밥 문제이다. 혼자서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김치도 장만하고 찌개도 끓일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느냐가 큰 문제이다. 이 능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자유로운 영혼은 없다. 종속과 눈치 보기를 감수해야 한다.

필자도 전남 장성 축령산 자락의 황토집인 휴휴산방에서 새소리 듣고 편백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코로 맡으면서 사흘까지는 즐겁게 지낸다. 그러다가 사흘 넘어가면 아파트에서 준비해온 밥과 반찬이 떨어진다. 이때부터는 배가 고프면서 자유가 사라진다. 빵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장성 읍내 마트에 가면 60~70대 남자들이 무엇을 사가는지 유심히 관찰해 본다. 빵⋅막걸리⋅우유가 그것이다. 나이 든 홀아비의 3대 먹거리이다. 혼자 사는 나이 든 남자는 빵을 사갈 수밖에 없구나! 전기밥솥도 필요 없고 설거지도 필요 없고 반찬도 필요 없고 5~6일을 두고도 먹을 수 있는 게 빵이다. 어쩔 수 없이 빵을 공부해야겠다.

2019년 한국인 1인당 쌀 소비는 59㎏, 밀 소비는 33㎏이다. 쌀의 나라에서 밀 소비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육천년 빵의 역사’(하인리히 E. 야콥)를 읽어보니까 빵의 재료인 밀은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나왔다. 기원전 4000년 밀을 가지고 발효를 시켜서 빵으로 만든 것은 이집트이다. 양귀비씨, 참깨, 장뇌를 첨가하여 빵을 만들었다. 이집트 노동자는 하루에 빵 3개 맥주 2병을 파라오로부터 배급받았다. 구걸하는 사람에게 빵을 주지 않는 것은 가장 추악한 범죄였다. 람세스 왕의 고분벽화를 보면 제빵소에서 밀가루를 반죽하고 화덕에 굽고 이를 머리에 이고 나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로마 시대로 넘어가면 빵의 표준화가 이루어진다. 빈민 1인당 하루 2개씩 빵을 배급하였고, 제빵소 앞에는 실업자 30만명이 빵을 지급받으려고 모였다고 한다.

로마는 제국을 빵으로 통치하였다. 빵으로 세계를 정복한 셈이다. 고대 예루살렘에는 제빵사의 거리가 있었고,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은 ‘빵의 집’이란 뜻이라고 한다. 중년 남자가 속이 편한 빵을 찾다 보니까 광주에 사는 이영환(60)이라는 빵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빵 도사이다. 빵의 재료에서부터 어떻게 발효를 하는지, 어떤 오븐이 좋은지, 그리고 담백한 맛의 빵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수시로 물어본다. 풍수도참과 주역, 집안 족보를 연구하던 사람이 빵 문제로 들어가니까 다시 신입생이 되었다. 인생은 참 배울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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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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