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9일 토요일

◇ 원수와 은혜가 돌고 도는 세상

◇ 원수와 은혜가 돌고 도는 세상

◇ 원수와 은혜가 돌고 도는 세상

20대 시절에 도가의 경전에 나오는 ‘은생어해(恩生於害) 해생어은(害生於恩)’이라는 대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원수로부터 은혜가 나오고 은혜로부터 원수가 나온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삼십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요즘 신문을 보니까 비로소 이 말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경전 한 구절 이해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여기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여지는 단계이다.

진중권과 윤석열은 경전의 깊은 의미를 터득하게 만들어준 나의 선생님이다. 보수 논객 조갑제가 90년대 후반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박정희 전기를 쓴 적이 있다. 이때 진중권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비평서를 써서 되받아 쳤다. 박정희와 보수 진영에 침을 뱉었던 진중권이 요즘에는 태극기 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다. 진중권이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는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보수 진영 사람들이다.

정권을 비판하면 어디 가서 강연하기도 어렵다. 기업들은 정권 눈치를 보기 때문에 반정부 인사는 강연자로 부르지 않는다. 신문 연재 원고료야 얼마나 되겠는가. 강연료가 문제다. 평소에 알고 지냈던 진보 진영 어떤 교수는 진중권을 향해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저주를 퍼부어 댔다. 윤석열도 그렇다. 박근혜 시절 국정원 댓글 수사를 할 때는 진보의 찬사를 받았다. 이번 정권 초기에 적폐 청산한다고 칼에 피를 묻힐 때는 보수 인사들로부터 ‘인간 백정’이라는 욕을 먹었다. 윤석열의 칼을 맞고 보수 인사들의 목이 날아갈 때는 진보로부터 ‘우리 윤 총장’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윤석열은 어떻게 되었는가. 진보에게는 천하의 악당이 되었다. 은생어해가 되고 해생어은이 되는 상황을 매일 신문 지면에서 목격하고 있다. 이건 뭣인가? 삶이 코미디라는 말인가? 아니면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분별(分別)에서 내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살았다는 말인가. 은혜와 원수만이 아니라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더러움과 깨끗함, 위와 아래, 안과 밖, 어두움과 밝음의 관계도 이런 게 아닐까.

더 나아간다면 생과 사도 이런 관계일 수도 있겠다. 생에서 사가 나오고, 사에서 생이 나온다는 관계 말이다. 그렇다면 너무 한쪽만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한쪽만 죽어라 하고 붙잡고 있을 때 고통과 번뇌가 온다. 조중동에서 매일 어록을 받아 적고 있는 진중권은 1500원짜리 김밥 한 줄과 편의점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인생이다. 기한발도심(飢寒發道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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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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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거실 풍수인테리어 기법 ⑰

풍수인테리어에서 거실은 밝은 것이 좋으며, 바람이 잘 통해야 기(氣) 작용이 원활하다.

밝은 색의 벽지와 커튼을 하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한다면, 운기(運氣)의 흐름을 좋게 할 수 있다.

거실 천장의 조명은 직접 조명보다 간접 조명 방식으로 천장을 향하도록 밝게 설치한다.

또한, 가족이 모이는 저녁에는 거실의 조명등을 모두 켜 두고, 창가에 성인의 키 정도 되는 스텐드 조명을 켜서 운기(運氣)의 흐름이 원활하게 하면, 가장의 사회 활동이나 승진과 건강 등에 간접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아울러 거실에 사람이 모이는 시간에는 밝은 조명을 사용하지 않고, TV 불빛 및 간접 조명등을 켜고 생활 할 경우에는 가정에 근심 걱정이나 우울증 등을 유발 할 수 있다.

벽지는 단순하면서 온화한 색상으로 너무 화려한 무늬나 색상은 피하고, 연한 아이보리색 계통이 좋다. 혹, 가족 구성원 중에 뚜렷한 병증은 없으나 몸이 허약하고 기운이 없는 가족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벽지를 밝은 계통의 인테리어를 권한다.

♣ IFSA 국제풍수협회 선정 2018 대한민국 최고 풍수인테리어 전문가 / 문의 : 010-2432-5522

◇ 내년 부족한 필수의료 인력 어떻게 메우나

◇ 내년 부족한 필수의료 인력 어떻게 메우나

◇ 내년 부족한 필수의료 인력 어떻게 메우나

“대국민 사과도 하고 정부와 국회에 찾아가 부탁까지 했는데도 해결이 안 돼. 앞으로 벌어질 혼란을 누가 책임지려고….”

얼마 전 만난 국내 한 대학병원 원장의 하소연이다. 의사 2700명이 부족한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어서다. 그의 걱정대로 의대생들의 의사 국가시험 미응시로 인한 의료진 공백의 여파는 당장 내년 초부터 시작돼 5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의사면허 없는 의대 졸업생 모두를 환자 진료 업무에 조기에 투입한 이탈리아와 대조적이다. 이탈리아는 의사 면허시험을 아예 면제해주고 이전보다 8, 9개월 일찍 진료 업무를 시작해 코로나19에 대응하고 있다.

의료계 파업이 끝난 지 2개월이 넘었다. 의대생들이 당시 목소리를 높였다고 정부와 정치권에서 이렇게까지 철저히 외면하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의대생들은 희생양이나 다름없다. 선배들과 같이 거리로 나가 함께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런데 선배들은 사라지고, 정치권은 유독 의대생에게만 사과를 요구하는 모양새다.

한때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이제 현직에 있는 선배 의사들도 입을 다물고 있다. 내년에 공공의료, 지역의료 등에서 벌어질 의료 공백 상황에 대해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하는 것일까? 위로는 대통령부터 국무총리와 장관 등이 거론될 것이다. 국민 보건의 문제를 정치적 사안으로 돌려 해결책 마련을 외면한 국회의원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결국 상황이 진전되지 않는다면 내년에 이들이 없어도 모든 병원의 업무가 잘 돌아갈 수 있을까? 환자들에겐 아무런 피해가 없을까? 벌써 현장에선 2700명 부족으로 인한 부작용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 병원은 보통 내과 지원 경쟁률이 평균 3 대 1이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한 수치라며 걱정하고 있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과에 해당되는 전문의 지원이 전무한 데다 내년엔 더욱 심각해진다는 이야기다. 비보험 위주로 진료하는 분야와 피부과 성형외과 영상의학과 쪽으로 더욱 몰릴 기세다.

지방 병원에선 아예 인턴 뽑는 것을 포기할 정도다. 지원자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여파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바로 보건의료 취약 지역으로 가는 500여 명의 공중보건 의사의 수급도 문제다. 특히 2026년에 배출될 전문의 수 부족으로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수도 부족하게 돼 군의료, 지방의료원, 의료취약지 의료기관에서 의료서비스 제공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병원 내 필수과 전공의 사이에선 ‘이 기회에 그만두겠다’는 말이 종종 나온다고 한다. 내년에 후배 의사가 들어오지 않으면 일이 두 배로 늘어나서다. 반대로 다시 전공의를 시작하면 인기 진료과에 경쟁 없이 갈 수 있다는 셈법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코로나19 3차 유행 속에서 의사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다. 올해 3월 대구에 코로나19 환자가 폭증했을 때도 의사가 부족해 환자를 전북대병원 등으로 옮겼다. 그런 가운데 무려 2700명의 의사가 부족해지는 상황이 예정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비롯해 관련 정치인들이 상황의 심각성에 공감해야 한다. 그리고 2700명을 구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탈리아처럼 하지 못해도 서브 인턴제를 마련해 병원에서 의사 일을 하도록 하거나 면허가 없더라도 진료할 수 있는 진료의사제를 만들어 의사가 부족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해야 된다. 전례도 있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때도 국시 일정을 1월에서 2월로 한 달가량 미루고 추가로 응시 기회를 제공했다.

지금도 비수도권에는 의사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다. 코로나19 상황도 내년까지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의료대란이 눈앞에 닥쳤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며 걱정이 앞선다.

-동아일보-

◇ 코로나19 백신 이제 나오나

◇ 코로나19 백신 이제 나오나

◇ 코로나19 백신 이제 나오나

영국이 이르면 내일부터 전 국민 상대로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 영국 50개 병원에 1차 도착한 미국 화이자 백신 40만명 분량이 80세 이상 노인과 의료진부터 우선 접종된다고 한다. 코로나 백신 첫 접종국이다. 영국 정부는 “코로나 전투의 역사적 순간”이라며 들뜬 분위기다. 미국은 올 크리스마스 전에, 유럽연합·일본 등도 다음 달부터 국가 접종이 계획돼 있다. 숨가쁘게 치닫던 각국의 백신 개발 경쟁이 이제는 ‘접종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세계 각국이 개발 중인 코로나 백신 후보는 214개나 된다. 이 가운데 백신 효과가 검증된 제품은 95% 안팎 예방 효과를 보인 화이자, 모더나 백신 둘뿐이다. 그러나 최종 단계인 3상 시험에 진입한 제품도 11개나 돼 백신 개발이 속속 이뤄질 전망이다. 다른 감염병 백신 개발에는 통상 10년은 걸렸다. 코로나 백신은 이를 1년으로 단축시켰다. 인류 과학기술의 극적인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백신 접종이 코로나 시대의 종말로 바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수만 명 대상 임상 시험을 통과한 백신이라도 수십억 인구에게 맞히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2009년 신종플루 때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백신을 맞고선 갑자기 긴 잠에 빠져들거나 발작을 일으키는 ‘소아 기면증’ 환자가 각국에서 속출했다. 중국은 신종플루 백신을 자체 개발했지만 “중국인조차 안 믿는다”는 말이 나왔다. 이번 코로나 백신도 영국을 비롯한 대규모 예방접종에서 부작용이 경미하거나 없다고 판명 나야 코로나 종말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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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의 목적은 집단면역 형성이다. 전 국민의 60~70%가 백신 접종으로 면역력을 갖추면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다. 미국은 백신 접종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경우 내년 5월쯤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국, 독일, 일본 등도 차례로 집단면역 국가 명단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백신 접종국’ 대 ‘미접종국’으로 갈려 입국 제한 등 차별적 조치를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 ‘백신 디바이드(격차)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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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선구매를 서둘렀던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백신 확보 경쟁에서 한참 뒤져 있다. 어떤 백신을 얼마나 구매할지조차 여태 정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일러야 내년 하반기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부는 그동안 “효과, 부작용을 모르는데 미리 돈을 주고 사는 것은 리스크가 있다”고 했다. 국민 목숨보다 돈 아끼는 게 먼저냐는 비판이 일자 그제야 “적극 구매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러다 정말 백신 접종 후진국이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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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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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온 정미조의 '개여울'

◇ 돌아온 정미조의 개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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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온 정미조의 개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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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푸른 심연에서 막 건져 올린 듯한 목소리가, 녹음실의 긴장된 공기를 가르고 날아올랐다. 녹음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입에서 조용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긴 세월 봉인됐던 목소리가 비로소 해제되는 순간이었다. 삶의 회한을 어쩌면 저토록 담담하게 노래할 수 있을까. 가수의 몸을 거쳐 나온 음표마다 연민의 물기가 가득했다. 5년 전 정미조의 복귀 음반을 녹음할 때의 일이다. 먼 세월 저편의 목소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건너와 내 앞에서 울려 퍼지는 순간, 나는 어떤 성공도 부럽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음반 제작자였다. 이 오롯한 충만함을 위해서라면, 지난 시절 나의 분투도 견딜 만한 것이었으리라.

정미조는 가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있던 1979년, 돌연 가요계 은퇴를 선언하고 파리로 떠났다. 원래 전공이었던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나이 서른이었다. 그 젊은 나이에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스스로 내려와, 새롭고 낯선 곳을 향해 바람처럼 떠나갔다. 세상은 잠시 술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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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TBC TV 쇼쇼쇼는 그의 고별쇼를 위해 프로그램을 통째 내줬다. 그때 나는 그 프로그램을 지켜보던 지방의 중학생이었다. 그 고별쇼에서 주인공이 하염없이 흘리던 눈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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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정미조의 팬이었다. 동네 단골 LP바에 가면 늘 개여울을 신청했다. 아름다운 소월의 시에 기품 넘치는 정미조의 목소리가 입혀진 이 곡은, 내게 노래의 어떤 이상(理想)이었다. 개여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노래의 주인공을 상상 속으로 불러들였다. 혹시라도 이 목소리를 빌려서 음반을 만든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인생을 오래 걸어온 사람만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고 희미한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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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선생이 내 앞에 나타났다. 음반 제작 인연이 있던 최백호의 소개로 만났다. 다시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먼 길을 돌아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려는 순간이었다. 이 극적인 컴백을 어떤 서사와 음악으로 맞이해야 할 것인가?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컴백 앨범 37년을 세상에 선보였다. 평단의 호평이 이어졌고, 특히 아무런 친분도 없던 젊은 후배 여가수들의 열렬한 지지가 있었다. 우아한 어른이 주는 어떤 음악적 영감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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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전설적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나 아르헨티나 여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처럼, 한국에도 멋진 어른의 음악이 있다는 것을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음악에 어떤 진실이 있다면, 그 진실은 시간의 가장 뒤쪽에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을 충분히 견디고 걸어온 사람에겐 시간의 온축(蘊蓄)이 있다. 그 온축의 향기를 세대를 넘어 모두의 가슴에 전하고 싶었다. 몸과 마음의 열기에 취하는 젊은 음악과는 다른 것일 터다. 근본적인 것은 늘 새롭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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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 또 한 장의 정미조 앨범을 발표했다. 가요계 복귀 후 세 번째 작품이다. 12곡의 노래 중 10곡의 가사를 내(작사자 이주엽, JNH뮤직대표)가 썼다. 긴 오디세이 끝에 다시 음악의 항구로 돌아온 정미조의 이야기 제3장을 쓰며, 삶의 짧고 덧없음을 생각했다. 그 덧없음을 견디기 위해 사람은 노래한다. 아득한 시간 속으로 정미조의 새 노래들을 흘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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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삶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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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산업 빅딜, 한진해운 전철 밟지 말아야

◇ 항공산업 빅딜, 한진해운 전철 밟지 말아야

◇ 항공산업 빅딜, 한진해운 전철 밟지 말아야

해운 운임이 급등하며 국내 수출기업들이 선박 부족과 해상운임 급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3년 전 한진해운 처리의 패착이 이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

2017년 기준 세계 7위, 국내 1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은 당시 정부의 금융논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현대해상과의 빅딜을 포기한 채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한번 무너지면 복구가 불가능한 네트워크산업 특성에 대한 몰이해가 사태를 이 지경으로 내몰았다.

반면에 외국 정부는 자국 해운기업을 살리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지원했다. 정부의 집중 지원을 받은 글로벌 해운사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우며 경쟁력을 강화했고, 2016년 59% 수준이었던 글로벌 상위 7개 선사들의 시장 점유율은 2018년 77.8%까지 급증하며 과점체제가 고착화됐다.

홀로 살아남은 HMM(구 현대상선)은 한진해운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했다. 2016년 12%였던 국적선사의 미주항로 점유율은 한진해운 파산 직후인 2017년 3월에는 3.8%로 내려앉았다. 한때 글로벌 5위까지 올랐던 한국 해운의 위상은 10위권 밖으로 추락했다.

고정비 비중이 높고 대외변수에 취약한 항공산업은 테러ㆍ감염병ㆍ경기 침체 등 위기상황에서 대형 M&A를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 미국, 유럽 등 세계 주요 항공시장의 역사를 살펴보면 시장 재편 과정을 거치면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 대형 항공사들이 생존과 성장을 거듭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항공산업은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고, 세계 각국 정부는 자국 항공사 지원에 엄청난 규모의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우리나라 항공시장은 코로나19 이전부터 공급 과잉에 따른 과열경쟁에 시달려 왔다. 단위 인구 및 면적당 기준으로 미국은 물론 중국, 일본보다도 항공사가 많은 상황이다. 차제에 양대 국적항공사의 합병 및 대형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에서 이보다 효과적인 경쟁력 제고 방안은 아직 발견된 바 없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항공산업 빅딜과 관련하여 과거 한진해운·현대상선 구조조정 사례와 같이 통합에 실패할 경우 항공업에 투입해야 하는 비용이 대폭 늘어나고 정상화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항공산업은 해운산업과 마찬가지로 핵심 자산인 네트워크가 붕괴되면 복원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국내 항공산업의 중·장기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미국, 유럽 항공업계처럼 통합을 바탕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2016년 당시 한진해운 회생에 4,000억원이면 되었을 것을 8조원이 넘는 재정을 쏟아붓고도 한국 해운업 재건은 난망하다. 국가 기간산업에 두 번의 실책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도 그대로 따라가지 않도록 복거지계(覆車之戒)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일보-

◇ 허락받지 못한 일본 공주의 사랑, 3년 만의 결실

◇ 허락받지 못한 일본 공주의 사랑, 3년 만의 결실

◇ 허락받지 못한 일본 공주의 사랑, 3년 만의 결실

3년 전 동갑내기 대학 동기와 결혼을 발표해 놓고 왕실 안팎의 반대에 부딪혔던 일본 마코(眞子·29) 공주가 아버지인 후미히토(文仁·54) 왕세제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았다.

30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후미히토 왕세제는 55번째 생일 기념 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부모로서 본인들의 심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며 “결혼을 허용한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그는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친동생으로 왕위 계승 1순위다. 후미히토는 “결코 많은 사람이 납득하고 기뻐하는 상황은 아니다. 결혼할 단계가 되면 제대로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단서를 달았다. 이는 약혼자 고무로 게이(小室圭)의 어머니 고무로 가요(小室佳代)의 금전 문제 등 논란이 여전해서다. 2017년 9월 마코가 결혼을 발표했을 때 이 결혼에 따른 경제효과가 1000억 엔에 이를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등 여론은 축복 일색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사별한 가요가 교제 남성에게서 빌린 400만엔을 갚으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며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당시 일왕 아키히토(明仁·87)의 맏손녀를 이런 가문과 결혼시켜선 안 된다는 말도 나왔다.

설상가상 고무로의 아버지가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고, 가요가 신흥 종교 신자란 보도까지 나오며 여론은 더 나빠졌다. 2018년 11월 예정된 결혼은 2020년으로 연기됐고, 고무로는 그해 8월 미국 로스쿨로 유학을 떠났다. 그 이후에도 마코의 마음이 변치 않자 왕세제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13일 마코는 “우리는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나 의지한다. 결혼은 우리 마음을 소중하게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후미히토 왕세제가 만족하지 못 하는 듯하다. 마코가 전례 없는 방식으로 왕실을 떠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궁내청 직원 출신 저널리스트 야마시타 신지)는 전망처럼 결혼이 실제 성사될지에 회의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중앙일보-

◇ 정장에 발목양말 신으면 안 되나요?

◇ 정장에 발목양말 신으면 안 되나요?

◇ 정장에 발목양말 신으면 안 되나요?

-남자 양말 길이 선택법

직장인 김모(37)씨는 최근 정장 바지에 발목이 드러나는 양말을 신었다가 직장 상사에게 “예의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김씨는 “평상시 TPO(시간·장소·상황)에 맞게 옷을 입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당황했다”며 “양말 길이도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줄 몰랐다”고 했다.

과거엔 남자 양말의 종류가 단조로웠다. 최근엔 남자 양말도 긴 양말부터 발목, 페이크 삭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남자의 양말, 어떤 장소에서 어떤 길이가 적당할까.

패션 칼럼니스트 이헌씨는 “남자가 구두를 신을 때는 어떤 구두인지에 관계없이 살이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게 신사 패션의 불문율”이라고 했다. 이씨는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약간의 변칙이 생겨서 아예 양말 없이 구두를 신는 스타일링도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했다.

구두에 양말을 신을 때는 앉았을 때도 살이 보이지 않도록 목이 긴 양말을 고르는 게 좋다. 색깔은 구두나 양복바지와 맞추거나 그보다 조금 진한 색을 추천한다. 양말을 안 신기로 한 경우에도 비장의 무기는 있다. 발에 땀이 많다면 발바닥만 감싸고 구두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덧신 모양의 ‘페이크 삭스’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반바지를 입을 때는 발목 정도까지 오는 양말이 보기에 안정적이다. 이씨는 “반바지를 입었는데 짧은 양말을 신으면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이라며 “나 같은 사람은 지하철을 타고 가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안절부절못한다”고 했다.

두툼한 스포츠 양말은 푹신한 착용감과 땀 흡수를 잘하도록 설계돼 있다. 운동이나 야외 활동을 위해 양보하자. 운동할 때 열이 많이 나는 사람의 경우 이때 발목 양말을 신으면 좋다. 샌들이나 슬리퍼에는 양말을 안 신는 게 보기에 자연스럽다.

이씨는 “최근 연예인 봉태규씨가 치마를 입고 나왔듯 자신이 패션으로 잘 소화하기만 한다면 뭐든지 불가능은 없다”면서도 “일반인의 경우 오랜 규칙을 거스르면서도 촌스럽거나 어색해 보이지 않으려면 상당한 ‘멋 내공’이 필요하기에 규칙을 지키는 편이 안전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 日 온천 ‘공짜’로 내놔도 살 사람이 없는 이유

◇ 日 온천 ‘공짜’로 내놔도 살 사람이 없는 이유

◇ 日 온천 ‘공짜’로 내놔도 살 사람이 없는 이유

‘온천 시설 후쿠주소(福壽莊)를 공짜로 팝니다.’

최근 일본 인터넷을 검색하다 이 같은 내용을 봤다. 이와테현 와가군에 위치한 후쿠주소는 남탕과 여탕, 휴게실, 매점, 로비,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욕탕이 깨끗하다’ ‘유황 냄새가 엄청나다’ 등 방문객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정말 공짜일지 반신반의하며 매물로 내놓은 니시와가마치(기초지자체)에 확인 전화를 해봤다. “매매가 0엔 맞습니다. 다만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5년 동안 온천 시설로 유지해야 하고, 법인이어야 합니다.” 동네 주민들의 존속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조건을 붙였다고 했다. 법인을 원하는 것도 개인이 운영하다가 조기에 그만두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니시와가마치가 극단적 제안을 한 이유는 관리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300엔 이용료(65세 이상 주민 180엔)로는 운영비, 인건비, 시설 교체비 등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특히 주된 이용객은 마을 주민인데, 주민 수가 2005년 약 7400명에서 현재 약 5400명으로 줄었다. 갈수록 수입이 줄어들 게 뻔했다.

더 깊게는 일본 온천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88, 1989년 ‘고향 살리기 사업’이란 이름으로 각종 지자체 사업에 1억 엔씩을 교부하는 정책을 펼쳤다. 교부금을 타기 위해 지자체가 가장 많이 시도한 게 온천 건설이었다.

온천법에 따르면 △25도 이상의 뜨거운 물이 솟아나거나 △19가지 온천 성분 중 1개라도 기준을 충족시키면 온천 시설로 분류된다. 땅을 100m 파면 지하 온도는 2, 3도씩 올라가기 때문에 1000m 정도 파기만 하면 대부분 온천 시설을 만들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일본 전역에서 온천 시설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초저가’를 무기로 내세운 기업형 온천도 나왔다. 전국 체인에서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뷔페를 운용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온천 시설은 2006년 약 2만3000개에 이를 정도로 꾸준히 늘었다(일본온천종합연구소 자료).

하지만 특색 없는 온천은 이용객을 붙잡을 수 없었다. 온천 이용객은 1992년 1억4325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그 이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자연 속에 여유롭게 온천욕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은 물건 찍어내듯 공산품화돼 있는 온천 시설을 외면했다. 경영자 입장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온천 시설을 만들기는 쉬운데 유지 관리가 힘들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1년 내내 일해야 해 사람 구하기가 힘들었고, 시설을 이어받을 후계자도 잘 없었다. 그러자 ‘온천의 나라’ 일본에서 온천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홋카이도 이와나이군의 라이덴온천 지역은 지난해 9월 마지막 남은 온천 시설이 폐관하면서 온천마을 자체가 소멸해버리기도 했다.

다시 공짜 온천 후쿠주소 이야기다. 니시와가마치에 ‘인수하겠다는 법인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10월 31일이 마감이었는데 개인이 몇 명 연락 왔지만, 법인은 아무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공짜라고 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에 늦어 천덕꾸러기 신세가 돼 버리는 것은 비단 일본 온천 시설에만 국한된 게 아닐 것이다.

-동아일보-

홍의장군 곽재우 7편

■ 홍의장군 곽재우 7편

■ 홍의장군 곽재우 7편

광해군은 즉위하자마자 그를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로 임명하고 상경을 재촉했다. 그때 곽재우의 삶은 청빈함을 넘어 곤궁한 지경에 이르렀던 것 같다. 교지를 갖고 찾아갔던 금군(禁軍)은 “인적이 아주 끊어진 영산의 산골에 두어 칸의 초가를 짓고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생계가 아주 초라했고, 병들어 누워서 나오지도 못했다”고 보고했다. 곽재우의 아들은 아버지가 상경하려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타고 갈 말과 종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단벌옷도 다 해져 날씨가 추우면 길을 떠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국왕은 즉시 의복을 지급하라고 하명했다(1608년(광해군 원년) 9월 14일).

1610년(광해군 2년) 곽재우는 오위도총부 도총관(정2품)ㆍ한성부 좌윤(종2품)으로 임명되어 잠깐 상경했지만, 역관(譯官)과 원접사(遠接使)가 왕명을 무시했다고 비판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시 낙향했다. 그 뒤 별세할 때까지 곽재우는 계속 망우정에 머물렀다. 빈곤한 경제사정은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타협하지 않는 곽재우의 직선적인 성품은 별세하기 전에 한 번 더 표출되었다. 그때 조정의 가장 큰 논란이었던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사사하는 문제와 관련해 곽재우는 그를 옹호하는 상소를 올린 것이었다(1613년:광해군 5년). 이 때문에 그는 대북(大北)의 탄핵을 받아 사사될 뻔했지만, 장령 배대유(裵大維)의 변호로 목숨은 구했다.

낙향한 곽재우는 현풍 비슬산에 살면서 영산의 창암진(滄巖津)에 망우정(忘憂亭)을 짓고 도인처럼 살다가 1617년(광해 9년)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1617년 3월 병이 깊어지자 그는 “생사에는 천명이 있는 것”이라면서 치료를 중단했고, 4월 10일 망우정에서 별세했다. 그의 나이 65세였다. 그 뒤 지금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신당리에 안장되었고, 그를 모신 사우(祠宇)에는 ‘예연서원(禮淵書院)’이라는 현판이 내려졌으며, 1709년(숙종 35)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로 추증되었다. 훗날 충익(忠翼)이란 시호를 받았다. 전쟁에서 스스로 떨쳐 일어나 적을 물리쳤으나 살아생전에 공을 마다한 곽재우에게는 그것도 다 헛된 이름이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활약이 컸다. 관군들이 개전 후 한 달이 안 되어 한양을 내 주는 등 일본군에게 맥없이 당할 때 곽재우와 같은 사람들이 가족과 고향, 더 나아가 나라를 지키겠다는 충정 하나로 일어난 것이다. 패해서 도망치기 바쁜 관군을 대신해 지방의 사림들을 중심으로 의병의 뜻을 모으고, 각 지역의 농민과 양민, 노비들을 모아 거병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빈곤한 삶 속에 쓸쓸히 삶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그 시대의 모순에 답답함을 느낌과 동시에 안타깝고 착잡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