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3일 수요일

◇ ‘위장 미혼’하는 신혼들... “혼인신고 안하는 게 청약 유리”

◇ ‘위장 미혼’하는 신혼들... “혼인신고 안하는 게 청약 유리”

◇ ‘위장 미혼’하는 신혼들... “혼인신고 안하는 게 청약 유리”

경기도 화성 동탄에 사는 직장인 최모(30)씨는 작년 12월 결혼식을 올렸지만 아직 법적으로는 ‘미혼’이다. 혼인신고를 계속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남편과 상의했는데 혼인신고의 장점은 없고 단점만 많더라”며 “부모님도 ‘딱히 필요하지 않으면 살아보고 하라’고 하셔서 애 낳으면 그때 신고할 계획”이라고 했다. 혼인신고를 해봤자 ‘신혼부부 주택 특별공급’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도 최씨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맞벌이인 최씨 부부의 연간 합산 소득은 1억2000만원으로, 신혼부부의 주택청약 우선공급 기준인 도시 근로자 평균소득의 120%(8100만원)를 훌쩍 넘는다. 최씨는 “혼인신고를 안 하면 나와 남편이 각자의 통장으로 청약을 넣을 수 있어 분양 기회가 2배”라고 했다.

신혼부부가 혼인 사실을 국가에 신고하는 엄숙한 절차인 ‘혼인신고’조차 최근엔 하나의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했다. 신혼부부에 대한 부동산 지원은 적고, 제약은 오히려 많다 보니 유불리를 꼼꼼히 따져 ‘위장 미혼(未婚)’을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며 신혼부부의 힘만으로는 전셋집 마련조차 어려워진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혼인신고 역대 최저…IMF 때보다도 혼인신고 감소세 가팔라

9일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혼인신고 잠정 집계 건수는 21만3513건으로, 통계가 집계된 1981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10.7% 폭락해, 역대 가장 감소 폭이 컸던 1997년 IMF 당시(10.6%)를 넘어섰다. 기존의 결혼 감소세에 더해, 결혼을 하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현상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다음 달 결혼 예정인 공무원 임모(28)씨는 설레는 마음에 작년 12월 혼인신고를 일찍 했다가 오히려 예비 신부의 구박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운 좋게 주택청약에 당첨됐는데 2023년 10월 입주 전까지 전셋집 자금 마련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임씨는 “청약에 당첨된 것만으로도 1주택자로 간주하는 데다, 부부 합산 소득도 1억원이 넘다 보니 아무리 싼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서울보증보험에서 받는 3.08%가 최선이더라”며 “만약 혼인신고를 안 했으면 무주택자인 아내가 2% 정도의 이율로 시중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혼인신고한 부부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사실상 독신보다 더 비싸게 전세 살게 만든 것 아니냐”며 “혼인신고한 장점이라곤 배우자 수당으로 월급에 4만원씩 더 나오는 것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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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 높은 ‘신혼부부 특공, 각자 통장으로 청약 땐 ‘기회 2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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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를 미루고 ‘위장 미혼’으로 사는 젊은 부부들은 “지금 부동산 시장에선 혼인신고를 하면 도저히 집을 살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제공하는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벽이 높고, 혼인신고를 하면 법적으로 ‘한 몸’이 되다 보니 각각 미혼 신분으로 청약을 넣을 때보다 기회가 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혼인신고를 하면 연말정산에서 배우자 공제를 받는 등 이점도 있지만, 부동산으로 얻는 이득만은 못하다는 게 젊은 부부들의 얘기다.

젊은 부부들에게 혼인신고 시점은 이제 ‘결혼’이 아니라, ‘부동산 사고팔기 유리할 때’가 됐다. 3년 전 결혼해 서울에 살고있는 임모(34)씨 부부도 아직 신고를 하지 않았다. 임씨 부부는 결혼 전 각각 재테크 수완을 발휘해 집을 한 채씩 샀다. 혼인신고를 하면 ‘1가구 2주택자’가 된다. 임씨는 “2017년 8·2 부동산 정책으로 다주택자에겐 양도세가 중과되는데, 신혼부부 양도세 면제는 혼인신고 후 5년까지”라며 “부동산 시장을 좀 지켜보다 집 팔기 좋은 시점에 신고하려고 한다”고 했다.

직장인 김모(29)씨 커플은 혼인신고 없이, 작년 10월 5억원을 주고 산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17평짜리 아파트에 함께 살고 있다. 김씨는 결혼해서 재산을 합하는 대신 여자친구에게 현금을 빌려주고 차용증을 받는 형태로 공동 재산을 꾸렸다. 김씨는 “정부가 신혼부부 특별공급 혜택을 주는 것은 혼인신고 후 7년까지”라며 “일단 더 나은 집으로 이사 갈 돈을 모아둔 다음에 신고할 생각”이라고 했다.

-”부동산 때문에 자식을 낳고도 미혼모로 남는 일 벌어져”

젊은이들이 모인 인터넷 결혼 준비 카페, 맘카페 등에는 ‘혼인신고의 유불리’와 ‘최적의 시점’을 묻는 글이 많다. “혼인신고 다들 언제쯤 하셨나요?” “청약 때문에 혼인신고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와 같은 글이다. 댓글에는 “요새 결혼 후 2년 정도는 안 하는 것 같다” “저도 안 했는데 10년 이상 안 할 예정”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등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혼인신고를 하지 말라고 부추기는 소위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도 많다. 지난달 28일 한 부동산 블로그에는 ‘1주택자 신혼부부 최고의 재테크는 혼인신고 늦게 하기’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지난 6일 한 유튜브 채널에도 ‘주택 여러 채를 가지면 세금이 많으니 자식을 낳고도 미혼모로 남는 사람들까지 생겨난다’는 내용의 영상이 올라왔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 당사자들이 원해서 혼인신고를 안 하는 것이 아닌 만큼 이렇게까지 해야 겨우 주택을 소유할 수 있는 세태가 문제”라며 “정부가 혼인신고 안 하는 결혼 생활의 실태를 파악하고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경청해 그에 맞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독조한강설獨釣寒江雪 - 눈 내리는 차가운 강에서 홀로 낚시질, 산수화 같은 풍경

독조한강설獨釣寒江雪 - 눈 내리는 차가운 강에서 홀로 낚시질, 산수화 같은 풍경

독조한강설(獨釣寒江雪) - 눈 내리는 차가운 강에서 홀로 낚시질, 산수화 같은 풍경

홀로 독(犭/13) 낚을 조(金/3) 찰 한(宀/9) 강 강(氵/3) 눈 설(雨/3)

자연을 묘사하여 마치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빼어난 시가 있다. 산수를 유람하며 자연 속의 아름다운 정경을 노래하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시인의 심경을 山水自然詩(산수자연시) 들이다. 중국 東晉(동진)의 전원시인 陶淵明(도연명) 때에 싹이 트고 唐(당)나라에서 꽃을 피운 자연시파는 王維(왕유)나 孟浩然(맹호연) 등에서 절정을 이뤘다.

무려 4만 8900 수의 全唐詩(전당시)를 남긴 시의 시대 당에선 물론 산수전원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고 다양한 주제가 있지만 그림을 그리는 듯한 자연시에서 더욱 이끄는 맛이 있다. 자연시의 전통을 잇는 王孟韋柳(왕맹위류)란 말도 있는데 뒤 세대의 韋應物(위응물)과 柳宗元(유종원, 773~819)을 포함한 것이다.

차고 시린 눈이 산이고 들이고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다. 눈 덮인 추운 강가에서 홀로 낚시를 하는 노인이 있다. 이 장면을 그린 잘 알려진 시가 유종원의 ‘江雪(강설)’이다. ’온 산엔 새들도 자취 끊겨 고요하고, 모든 길엔 사람의 행적도 사라졌네(千山鳥飛絶 萬徑人蹤滅/ 천산조비절 만경인종멸), 외로운 조각배에 도롱이 삿갓 쓴 늙은이, 눈 내리는 차가운 강에서 낚시질하는구나(孤舟簑笠翁 獨釣寒江雪/ 고주사립옹 독조한강설).‘ 千山(천산)은 물론 굽이진 산이고 逕은 지름길 경, 徑(경)과 같다. 蹤은 발자취 종, 簑는 도롱이 사, 짚이나 띠 따위로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옛날 농부의 비옷을 말한다.

오언절구의 제일 처음 구절 千山鳥飛絶(천산조비절)을 소개하면서 나왔듯 이렇게 이미지가 바로 뜨는 멋진 산수화의 작가 유종원은 韓愈(한유)와 함께 古文(고문)운동을 일으켜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에 함께 들어가며 韓柳(한류)로 불린다. 하지만 혁신정치 집단에 참여했다가 지방으로 좌천되어 오랫동안 변경생활을 하며 울분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욕망과 번뇌에 가득 찬 속세를 초월하여 대자연에 은거한 낚시꾼 늙은이는 외로운 배와 도롱이와 삿갓을 씌워 유종원 자신을 나타낸다. 차가운 눈을 맞으면서 무심히 강에 낚싯대를 드리운 늙은이의 모습에서 중앙에서 밀려난 정치적 실의와 고독감을 이겨내려는 정신력도 나타내고 있다.

번잡한 사회에서 은퇴하여 초야에 묻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꿈꿀만한 내용이다. 이런 풍광을 그리면서 도저히 재주가 못 미친다고 자탄하는 조선 중기의 명신 申欽(신흠)의 멋진 시도 함께 보자. ‘골 메우고 산을 덮어 눈 닿는 덴 모두 같아, 온 세계는 구슬이요 집들은 수정궁궐(塡壑埋山極目同 瓊瑤世界水晶宮/ 전학매산극목동 경요세계수정궁), 인간 세상 화가들이 무수히 많겠지만, 음양의 조화만은 그리기가 어렵다네(人間畵史知無數 難寫陰陽變化功/ 인간화사지무수 난사음양변화공).’ 백설이 덮인 천지는 감상만으로 족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앙급지어殃及池魚 - 연못 속 물고기에 재앙이 미치다, 억울하게 피해를 보다.

앙급지어殃及池魚 - 연못 속 물고기에 재앙이 미치다, 억울하게 피해를 보다.

앙급지어(殃及池魚) - 연못 속 물고기에 재앙이 미치다, 억울하게 피해를 보다.

재앙 앙(歹/5) 미칠 급(又/2) 못 지(氵/3) 고기 어(魚/0)

고약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 본의 아니게 그 화가 자신에게도 미친다.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속담대로다.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에 엉뚱하게 피해를 입을 경우가 있다. 강한 자들끼리의 싸움에 구경도 하지 않은 자가 피해를 입으면 더 억울하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뜻과 같이 鯨戰鰕死(경전하사)가 그것이다.

연못에 평화로이 사는 물고기들이 사람들에 의해 죽게 생겼다. 성문에 불이 나서 그것을 끄기 위해, 혹은 보석을 찾기 위해 물을 퍼내거나 하면 화가 미쳐(殃及) 상관없는 연못의 물고기(池魚)가 죽게 된다는 이 성어도 같은 뜻이다. 억울하게 터무니없는 재앙을 당할 때 비유한다.

내용이 완벽하다면서 한 자라도 고칠 수 있는 사람에게 천금을 준다는 一字千金(일자천금)이라 하면 바로 ‘呂氏春秋(여씨춘추)’를 떠올린다. 秦始皇(진시황)의 생부로 알려져 있는 呂不韋(여불위)가 3000명이나 되는 빈객들의 제자백가 지식을 집대성한 책이라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 책의 孝行覽(효행람) 必己(필기)편에 물고기의 재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宋(송)나라의 대부였던 桓魋(환퇴, 魋는 몽치머리 퇴)라는 사람이 진귀한 구슬을 얻게 됐다. 송왕이 탐을 냈지만 주지 않았다. 환퇴가 죄를 지어 구슬을 갖고 도망치자 사람을 시켜 소재를 묻게 했다. ‘환퇴가 연못에 던져 버렸다는 말을 듣자, 왕은 물을 모조리 퍼내게 했으나 구슬은 찾지 못했고 물고기만 떼죽음을 당했다(曰投之池中 於是竭池而求之 無得 魚死焉/ 왈투지지중 어시갈지이구지 무득 어사언).’

宋(송)나라 太宗(태종)의 명으로 李昉(이방, 昉은 밝을 방) 등의 학자가 엮은 설화집 ‘太平廣記(태평광기)’에는 약간 다른 설명이다. ‘성문에 불이 붙었는데 그 재앙이 연못의 물고기에 미쳤다(城門失火 禍及池魚/ 성문실화 화급지어).’ 성문에 불이 나 근처 연못의 물을 몽땅 퍼내 물고기가 죽었다고 하는 해석과, 그 불로 인해 근처에 살던 池中魚(지중어)라는 사람이 타 죽었다는 풀이도 있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가까이 하지 않으면 화도 입지 않겠지만 사람이 혼자 살 수 없으니 탈이다. 국민을 위한다며 내세우는 정치권의 각종 법률과 시책은 나중에 보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십상이다. 나중 잘못이 드러나도 하자세월이니 국민들에게 화가 고스란히 돌아온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일부중휴一傅衆咻 - 한 스승이 가르치는데 여러 사람이 떠들다, 학습 환경이 좋지 않고 간섭

일부중휴一傅衆咻 - 한 스승이 가르치는데 여러 사람이 떠들다, 학습 환경이 좋지 않고 간섭이 많다.

일부중휴(一傅衆咻) - 한 스승이 가르치는데 여러 사람이 떠들다, 학습 환경이 좋지 않고 간섭이 많다.

한 일(一/0) 스승 부(亻/10) 무리 중(血/6) 떠들 휴(口/6)

사람에게 지식과 기술을 넘어 인격을 닦게 하는 교육은 그 환경이 중요하다고 숱한 말로 강조해왔다. 자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어머니의 가르침 賢母之敎(현모지교)는 孟母(맹모)의 三遷之敎(삼천지교), 斷機之敎(단기지교)가 대표한다. 검은 먹을 가까이 하면 近墨者黑(근묵자흑)으로 악에 물든다.

귤이 탱자가 되는 橘化爲枳(귤화위지)도 순식간이다. 蓬生麻中(봉생마중)으로 좋은 환경에 있으면 쑥도 쑥쑥 자란다. 이처럼 주변 환경에 따라 희고 검게 물드는 만큼 가르치는 사람에 의한 영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교육자의 열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교육을 잘 받게 하는 분위기 조성이 빠질 수 없다. 한 사람의 스승이 가르치는데(一傅) 옆에서 뭇사람들이 떠들면서(衆咻) 방해를 한다면 교육이 잘 될 수가 없다. 아무리 가르치더라도 성과가 없다는 뜻의 이 말은 ‘孟子(맹자)’에서 나왔다.

戰國時代(전국시대) 초기 宋(송)나라 임금은 仁政(인정)을 펼친다며 주변국에서 현자를 초빙하여 조언을 청했다. 맹자도 송나라를 방문하여 겪어보고 곧 실망했다. 대부 戴不勝(대불승)에게 송왕이 정치를 잘 하기를 원하는지 물어보고 그 방법을 일러준다. 滕文公(등문공, 滕은 물솟을 등) 하편에 있다.

먼저 맹자가 대불승에게 질문한다. 만약 楚(초)나라 대부가 그 아들에게 齊(제)나라 말을 배우고 싶은데 초나라 스승이 낫겠는지 제나라 사람이 낫겠는지 묻는다. 물론 제나라 스승을 청하겠다고 답하자 이어진다. ‘제나라 스승을 청해 가르침을 받더라도 주변의 사람이 모두 초나라 말로 지껄이면(一齊人傅之 衆楚人咻之/ 일제인부지 중초인휴지)’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제나라에 아이를 보내서 배우게 한다면 저절로 배울 것이라며 둘러싼 주변 사람이 문제라고 했다. 아무리 왕이 정치를 잘 하려 해도 현명한 신하가 한둘뿐이고 나머지가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백지와 같은 초학자의 머리에는 가르치는 대로 길이 그려진다. 이전에는 능력도 안 되면서 ‘나는 바담 풍(風)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하는 사람도 있었다지만 요즘은 교육계에 우수한 사람이 모여들어 열성적으로 가르친다. 가르치는데 차별이 없고 자질에 맞춰 교육을 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런데 입시 위주의 교육은 수시로 정책이 바뀌고 또 우수 학생을 가르치는데도 길을 막는다. 자질이 높고 열의가 높은데도 여기저기서 간섭만 하는 등 학습 환경이 좋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될 수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약육강식弱肉强食 - 약한 자는 강자에게 먹힌다.

약육강식弱肉强食 - 약한 자는 강자에게 먹힌다.

약육강식(弱肉强食) - 약한 자는 강자에게 먹힌다.

약할 약(弓/7) 고기 육(肉/0) 강할 강(弓/9) 밥 식(食/0)

약한 자의 고기(弱肉)는 강한 자의 먹이(强食)다. 약자가 강자에게 먹힌다는 살벌한 말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희생시켜서 번영하거나, 강자에 의해 약자가 끝내는 멸망함을 이른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셌던 공룡이 살아남고 미물들은 멸종되었어야 하는데 이치가 꼭 그렇지는 않다.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잘 적응한 생물이 생명을 유지했다. 진화론의 다윈(Charles Darwin)이 아닌 스펜서(Herbert Spencer)가 명명했다고 하는 適者生存(적자생존)이다. 약자가 자기를 지켜 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진화시켜 개체를 보존하는 것이다. 작은 나라나 민족의 興亡盛衰(흥망성쇠)도 마찬가지다.

약자와 강자의 아주 쉬운 글자로 된 이 성어는 ‘莊子(장자)’에서 같은 글자는 아니지만 비슷한 의미로 먼저 등장한다. 천하의 도적 盜跖(도척, 跖은 발바닥 척)이 설득하러 온 孔子(공자)에게 호통 치는 대목에서다. 黃帝(황제) 이후 堯舜(요순) 때는 많은 신하를 기용하여 평화로웠지만 그 이후가 문제라면서 말한다.

‘탕왕은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내쫓았고 무왕은 주를 죽였다. 이때부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 다수자가 소수자를 괴롭혔다(湯放其主 武王殺紂 自是之後 以強陵弱 以衆暴寡/ 탕방기주 무왕살주 자시지후 이강릉약 이중포과).’ 湯王(탕왕)과 武王(무왕)이 폭군 桀紂(걸주)를 내쫓은 것도 잘못이라고 억지 부린다. 暴은 사나울 폭, 모질 포.

唐(당)나라 때의 문장가 韓愈(한유, 768~824)의 시문집 ‘韓昌黎集(한창려집)’에는 글자대로 나온다. 친구 柳宗元(유종원)의 요청으로 유명한 스님 文暢(문창)에게 쓴 글이라 한다. 새들이 모이를 쪼다가 사방을 둘러보고 짐승들이 숨어 있다가 가끔씩 나오는 것은 자기를 해칠까 두렵기 때문이라면서 이어진다. ‘그런데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약한 자의 고기를 강한 자가 먹고 있는 것이다(猶且不脫焉 弱之肉 強之食/ 유차불탈언 약지육 강지식).’ 불교를 배척하는 한유는 승려가 유교를 흠모하면서도 불법에 얽매여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강한 자들이 살아남는다고 해서 약자들은 그냥 죽을 수만은 없다. 天敵(천적)이란 것이 있고 ‘약질이 살인낸다’는 속담도 있다. 약자가 엄청나게 큰일을 이룰 수도 있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더욱 권력이 있다고, 재력이 넘친다고 횡포를 부리다간 언젠가는 뒤집어진다. 약자를 위해 조화롭게 잘 적응하는 것이 오래 생존하는 길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할지구화割地求和 - 땅을 떼어주고 평화를 구하다,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다.

할지구화割地求和 - 땅을 떼어주고 평화를 구하다,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다.

할지구화(割地求和) - 땅을 떼어주고 평화를 구하다,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다.

벨 할(刂/10) 따 지(土/3) 구할 구(氺/2) 화할 화(口/5)

팽팽한 두 세력이 대립했을 때 대화를 통하여 협상하거나 힘이 밀릴 때는 양보한다.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땐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또는 더 잃지 않기 위해 다툼을 벌이게 된다. 오늘날 국제관계서도 보이지 않게 신경전을 펼치는데 옛날 제후국끼리 으르렁거렸던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처음 140여 개나 됐다고 하는 제후국이 이합집산으로 20여국으로 줄고, 그 중 힘을 떨쳤던 7개국이 秦楚燕齊韓魏趙(진초연제한위조)의 七雄(칠웅)이다. 이들끼리도 국력은 차이가 나 전투는 끊이지 않았고, 약소국은 땅을 떼어주고(割地) 평화를 구한(求和) 치욕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史記(사기)’에 처음 나오는 이 말은 趙(조)나라와 秦(진)나라의 다툼에서였다. 平原君(평원군)열전에 실려 있다. 신하를 자처하는 割地稱臣(할지칭신)도 부끄러움을 감수하는 것은 같다.

조나라는 春秋時代(춘추시대) 강력한 晉(진)나라에서 삼분됐을 때 남이 넘보지 못할 정도의 세력을 떨쳤다. 하지만 惠文王(혜문왕) 이후 진나라가 수시로 침공하여 힘이 약해졌고 급기야 수도 邯鄲(한단, 邯은 조나라서울 한, 鄲은 한단 단)까지 포위되자 6개현을 떼어주고 화친을 맺으려 했다.

진의 군대가 물러난 후 유세객 虞卿(우경)의 떼어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왕이 질질 끌자 진에서 사신 樓緩(누원)을 보내 독촉했다. 두 나라가 전쟁을 하면 이웃이 기뻐할 텐데 ‘빨리 땅을 떼어주고 화친하여 진나라를 달래는 것이 낫습니다(故不如亟割地爲和 以疑天下而慰秦之心/ 고불여극할지위화 이의천하이위진지심)’고 했다. 이후 작은 魏(위)나라와 합종하여 버티다 멸망하고 말았다.

춘추시대부터 그린 馮夢龍(풍몽룡, 1574~1646)의 ‘東周列國志(동주열국지)‘에는 晉(진) 惠公(혜공)이 큰소리친다. ’우리는 당당한 천승지국인데 땅을 떼어주고 강화를 청하고서야(以堂堂千乘之國 而割地求和/ 이당당천승지국 이할지구화) 어찌 임금노릇을 하겠는가?‘ 왕위에 오르도록 도움을 준 秦(진) 穆公(목공)에 배은망덕한 혜공은 그러나 사로잡히는 치욕을 당했다. 淸(청)나라와 영국이 1840년 아편 밀수를 두고 벌인 阿片戰爭(아편전쟁)에서 청국이 패배하고 난징南京/ 남경조약으로 홍콩을 할양한 것도 근대의 치욕이었다.

이권을 두고 다투는 조직이나 개인이나 모든 경우에 대비하여 지략을 짠다. 국가와 국가 사이라면 더욱 땅을 떼어주고 평화를 구걸하는 곤욕을 치르기 전에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요즘은 나라 간의 무역도 전쟁이니 주고받는데 손해가 가지 않도록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상대가 무리하게 도발을 하는데도 자꾸 뒤로 물러서 양보를 하면 점점 얕보고 더 이상의 요구를 한다. 그러다간 어느새 쪽박을 차게 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영설지재詠雪之才 - 여자의 뛰어난 글재주

영설지재詠雪之才 - 여자의 뛰어난 글재주

영설지재(詠雪之才) - 여자의 뛰어난 글재주

읊을 영(言/5) 눈 설(雨/3) 갈 지(丿/3) 재주 재(手/0)

눈이 내리면 무딘 사람이라도 감성에 젖는다. 시인이야 말할 것도 없이 시상이 줄줄 떠오를 것이다. 몇 구절만 인용해 보자.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金東鳴 踏雪賦/ 김동명 답설부)’, ‘젊음의 개가와도 같고, 사랑의 축가와도 같다(田惠麟/ 전혜린)‘, ’그대는 내리면서, 만나는 사물마다 악보를 그려놓고, 나는 그 악보에 맞춰, 회한의 노래 부르고(이재무).‘ 첫눈에 대해 노래하는 표현은 고금이 따로 없다. 눈을 읊는(詠雪) 뛰어난 재주(之才)를 뜻하는 이 말은 어린 여아가 바람에 날리는 버들가지에 비유하여 유명해진 뒤 글재주가 뛰어난 여자를 가리키게 됐다.

어릴 때부터 지혜롭고 날카로운 표현력을 지닌 주인공은 중국 東晋(동진)의 謝道韞(사도온, 韞은 감출 온)이다. 그는 해서, 행서와 초서의 서체를 완성했다고 書聖(서성)으로 불리는 王羲之(왕희지)의 아들 王凝之(왕응지)의 부인이고, 또한 명망이 높고 강직한 재상 謝安(사안)의 질녀로 유명하다.

사안은 前秦(전진)의 苻堅(부견) 대군을 격파하고, 당시의 세력가 桓溫(환온)이 제위까지 탐하자 그 음모를 막았다. 이 사안이 어느 날 가족들을 불러 문장에 대해서 토론을 할 때 눈이 펄펄 내렸다. ‘흰 눈이 분분하니 무엇과 같은가(白雪紛紛何所似/ 백설분분하소사)?’

사안의 형 謝奕(사혁)의 자제들이 대답했다. 조카 謝朗(사랑)은 ‘소금을 공중에 흩뿌리는 것과 비슷합니다(散鹽空中差可擬/ 산염공중차가의)’라고 말했다. 질녀 사도온이 말하기를 ‘그것보다는 버드나무가지가 바람에 불려 춤을 추며 나는 듯합니다(未若柳絮因風起/ 미약유서인풍기)’라고 했다. 絮는 솜 서. 사안이 그 자리에서 금방 멋진 비유를 하는 사도온을 크게 칭찬했다.

‘晉書(진서)’ 열전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여성의 뛰어난 문재를 詠絮之才(영서지재), 柳絮之才(유서지재), 輕瓊冷絮(경경냉서) 등으로 부르게 됐다.

재주를 모두 가진 여인을 질투하기 때문인가. 이런 문재를 가진 사도온은 그러나 평탄하지 못했다. 남편 왕응지가 반란군을 막다 살해되고 자신은 적에게 끌려갔다. 적장과 담판하여 당당히 맞서는 그녀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서도 재주가 넘치는 여성 문사들은 불우한 인생을 살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아사리판阿闍梨判 - 질서 없이 어지러운 상태

아사리판阿闍梨判 - 질서 없이 어지러운 상태

아사리판(阿闍梨判) - 질서 없이 어지러운 상태

언덕 아(阝/5) 사리 사(門/9) 배 리(木/7) 판단할 판(刂/5)

질서가 없고 제 주장만 난무하는 어지러운 상태를 가리키는 말은 많다. 먼저 속된 표현으로 개판을 가장 많이 쓴다. 상태,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 온당치 못하거나 무질서하고 난잡한 것을 이른다.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몰골사납게 싸우는 泥田鬪狗(이전투구)는 처음 강인한 함경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옛날 과거를 보는 마당에서 선비들이 질서 없이 들끓어 뒤죽박죽이 된 亂場(난장)에서 온 난장판도 있다. 이렇게 드러난 말뜻도 알 수 있고 유래도 뚜렷한 말과 달리 아사리판은 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은 말이면서도 일상에서 흔히 쓰인다.

어원이라며 주장하는 몇 가지 중에서 우리말에서 왔다는 것을 먼저 보자. 빼앗거나 가로채다는 ‘앗다’의 줄기 ‘앗-‘에서 매김꼴씨긑 ‘을’이 붙고 그 아래 사람을 나타내는 ‘이’가 붙어 ‘앗을이’가 변해서 됐다는데 빼앗을 사람과 빼앗길 사람이 한데 어울려 무법천지가 된 것을 비유했단다. 일본말 아사리(あさり, 浅蜊/ 천리)라는 조개에서 어원을 찾는 것은 담긴 그릇이 흔들릴 때 ‘사그락 사그락’ 소리가 난다는 데서 나왔다는 것이다. 蜊는 참조개 리.

이런 주장보다 더 솔깃해지는 것이 불교에서 왔다는 이야기다. 수행을 중시하는 小乘佛敎(소승불교) 종단에서 교육을 담당할 만큼 덕이 높은 스승, 또는 도가 높은 승려를 말하는 阿闍梨(아사리)에서 유래했다고 밝힌다. 아사리를 한역할 때 阿牀利(아상리), 혹은 阿遮利夜(아차리야)라고도 한단다. 사리 闍(사)는 ‘담 도’로도 읽힌다.

불교에서 나온 말 중에서 원 뜻과는 많이 변한 말이 상당히 많다. 학승과 사무를 맡은 승려 理判事判(이판사판)이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을 말하거나 싸우기를 좋아하는 악신의 이름인 阿修羅(아수라)가 난장판인 아수라장이 된 것 등이다.

덕이 높은 스승 아사리가 많으면 다양하고 깊은 의견들이 개진되고 토론하는 시간도 길어질 것이다. 이 모습이 소란스럽고 무질서해 보인 데서 질서 없이 어지러운 현장을 말하게 된 것으로 변했다고 보는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남산현표南山玄豹 - 남산의 검은 표범, 빛나는 시기를 위해 실력을 닦다.

남산현표南山玄豹 - 남산의 검은 표범, 빛나는 시기를 위해 실력을 닦다.

남산현표(南山玄豹) - 남산의 검은 표범, 빛나는 시기를 위해 실력을 닦다.

남녘 남(十/7) 메 산(山/0) 검을 현(玄/0) 표범 표(豸/3)

호랑이보다 조금 작은 표범은 민첩한데다 사납지만 온 몸의 검고 둥근 무늬로 성어에서 이미지가 좋다. 표범은 죽어서도 가죽을 남긴다는 豹死留皮(표사유피)에, 무늬가 가을에 더 아름다워진다는 豹變(표변)이 있다. 갑작스레 행동을 바꿔 나쁜 의미가 많게 되었어도 처음 君子豹變(군자표변)은 허물을 재빨리 고쳐 바른 길로 간다는 의미였다.

성의 앞쪽 南山(남산)에 사는 검은 표범(玄豹)은 더하다. 검은 무늬를 더욱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해 먹는 것도 잊고 햇빛을 피해 은거한다는 이야기다. 학문을 위해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는 학자들이 즐겨 사용한 말이기도 하다.

은일거사들이 본받으려 했던 이 말은 처음 정숙한 부인이 인용한 데서 나왔다. 중국 前漢(전한) 시대 왕족 출신의 학자 劉向(유향)이 현명한 여인에서 악녀까지 104명의 이야기를 모아 귀감을 삼게 한 ‘列女傳(열녀전)’에서다. 2권 賢明傳(현명전)에 실려 있는 陶荅子妻(도답자처)가 주인공이다.

荅은 좀콩 답, 答과 통한다. 陶(도)지역의 대부 답자는 별로 한 일도 없이 3년 만에 재산이 세 배나 불어났다. 5년 만에 고향에 돌아올 때 어마어마한 행차로 모두 소를 잡고 환영했지만 그 부인은 아이를 안고 울었다. 시어머니가 화가 나서 연유를 물었다. 부인은 답한다.

‘남산의 검은 표범은 안개가 끼고 비 오는 날이 이레나 계속되어도 먹이 구하러 내려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무슨 까닭이겠습니까(南山有玄豹 霧雨七日而不下食者 何也/ 남산유현표 무칠일이불하식자 하야)?’ 좋은 무늬를 유지하고 몸을 숨겨 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인데 하는 노력도 없이 부유한 것은 재앙의 시작일 뿐이라 한 것이다. 노여움을 사 부인이 쫓겨난 지 1년도 안 돼 과연 답자는 도둑으로 몰려 죽음을 당했다. 부인은 어린 아이를 데리고 돌아와 시어머니를 잘 봉양했다.

부인의 표범 이야기는 豹隱(표은) 또는 南山霧豹(남산무표)라고도 하여 은거선비들에 더 잘 맞았다. 조선 肅宗(숙종)때의 학자 尹拯(윤증, 拯은 건질 증)의 시에도 나온다. ‘열심히 공부하려면 조용해야 하는 법(多少工夫靜裏宜/ 다소공부정리의), 남산의 안개 속 표범 보면 알 수 있네(南山霧豹可能知/ 남산무표가능지).’

사람의 능력이 단번에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는 없다. 차근차근 실력을 축적하여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우러름을 받는 자리에 오른다. 표범처럼 고충도 감내하지 않고 양지만 바라다가는 실패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xa0

괄골요독刮骨療毒 - 뼈를 긁어 독을 치료하다, 비장한 각오로 문제를 해결하다.

괄골요독刮骨療毒 - 뼈를 긁어 독을 치료하다, 비장한 각오로 문제를 해결하다.

괄골요독(刮骨療毒) - 뼈를 긁어 독을 치료하다, 비장한 각오로 문제를 해결하다.

긁을 괄(刂/6) 뼈 골(骨/0) 병고칠 료(疒/12) 독 독(毋/5)

흔히 잘못을 저지른 단체의 지도자들이 뼈를 깎는 각오로 일하겠다고 곧잘 듣는다. 이런 비장한 각오를 수도 없이 들어와 깎을 뼈도 없을 것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나쁜 부분이나 요소들을 깨끗이 없애는 것이 剔抉(척결)이다. 剔은 뼈바를 척, 抉은 도려낼 결이니 여기에 들어맞는 말이다.

정치권에서 새로운 각오로 임한다며 肉斬骨斷(육참골단)이란 말을 많이 썼는데, 일본 사무라이의 성어라는 이 말도 살을 내주고 뼈를 끊는다는 무시무시한 뜻이 담겼다. 어느 것을 쓰더라도 남다른 각오로 임하겠다는 결의가 느껴진다.

살을 가르고 뼈를 깎아(刮骨) 독을 치료한다(療毒)는 이 말도 비장하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의 영웅 關羽(관우)가 팔에 독화살을 맞고 점점 악화될 때 태연히 의원에게 치료한 데서 나왔다. 관우가 曹操(조조)군을 공격하다 매복한 궁수에 독화살을 맞아 오른팔이 금세 부어올랐다.

부하 장수들이 사방으로 의원을 구할 때 홀연히 명의 華佗(화타)가 나타난다. 상처를 살펴보던 화타가 조용한 곳에 기둥을 박고 고리로 팔을 단단히 묶은 다음 ’뾰족한 칼로 살을 째고 뼈를 드러내 뼛속에 스며든 화살독을 긁어내고(尖刀割開皮肉 直至於骨 刮去骨上箭毒/ 첨도할개피육 직지어골 괄거골상전독)‘ 약을 바른 뒤 꿰매야 무사할 것이라 했다.

이 말을 들은 관우는 번거롭게 할 필요 없이 바로 수술해 달라고 청한다. 화타에게 주안상을 대접하고 관우는 태연히 장수 馬良(마량)과 바둑을 두며 치료를 받는다. 부하에게 떨어지는 피를 그릇에 받게 하고, 뼈를 긁어대는 소리가 나자 모두 외면하는데도 관우는 평소와 다름없이 꼿꼿한 자세로 술을 마시며 바둑을 뒀다. 수술을 마친 화타는 관우의 비범한 용기에 감탄했다.

陳壽(진수)의 정사 ‘三國志(삼국지)’에는 이 부분을 刮骨去毒(괄골거독)이라 표현하며 의원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데 화타의 사후에 일어난 일을 연의에서 재미있게 꾸몄다고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xa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