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4일 월요일

휘하麾下 - 장군의 지휘 아래, 장군 지휘 아래에 딸린 군사

휘하麾下 - 장군의 지휘 아래, 장군 지휘 아래에 딸린 군사

휘하(麾下) - 장군의 지휘 아래, 장군 지휘 아래에 딸린 군사

기 휘(麻/4) 아래 하(一/2)

아래 또는 아래쪽이나 밑을 나타내는 下(하)를 붙여서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존칭으로 쓰는 말이 많다. 고리타분한 표현이지만 이전 대통령이나 장군에게 閣下(각하)라고 호칭한 것이나 더 오래된 것으로 황제에게 陛下(폐하), 왕에게 殿下(전하), 세자에게 邸下(저하) 등이다. 용상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陛(폐)이고 정승들이 정사를 논의하던 곳이 閣(각), 세자가 거처하던 높은 집이 邸(저)로 불렀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예스러운 것 말고도 부모의 보살핌을 말하는 膝下(슬하)나 상대방을 높인 대명사 貴下(귀하)도 있고, 교황을 높여 聖下(성하)라고도 칭한다.

황제나 왕에 대한 존칭 구별은 宋(송)나라의 高承(고승)이란 사람이 쓴 事物紀原(사물기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옛날 군대에서 장군이 가진 대장기 등 깃발을 麾(휘)라고 했다. 이것으로 병사를 지휘했기 때문에 장군에 직속된 모든 군사나 그 진영을 나타내는 말로 麾下(휘하)가 나왔다. 戲下(희하), 戱下(희하)라고 써도 같은 뜻이다.

여러 곳에서 용례를 볼 수 있는데 먼저 ‘史記(사기)’부터 보자. ‘오직 두 사람과 노복 십여 기만 오나라 군대에 치고 들어가 오의 장군기 아래에 이르러 수십 명을 살상했다(獨二人及從奴十數騎 馳入吳軍 至吳將麾下 所殺傷數十人/ 독이인급종노십수기 치입오군 지오장휘하 소살상수십인).’ 魏其武安侯(위기무안후) 열전에 나온다. 馳는 달릴 치.

‘漢書(한서)’ 李廣(이광)전에는 ‘이광은 청렴하여 상을 받으면 아래 병사들에게 나눠주고, 음식은 아래 군사들과 함께 나눴다(廣廉 得賞賜 輒分其戲下 飲食與士卒共之/ 광렴 득상사 첩분기희하 음식여사졸공지)’란 부분이 있다. 輒은 문득 첩.

우리 高麗(고려) 때의 명문장가 李奎報(이규보)의 시에 사용된 것을 보자. ‘학사의 붓 끝 난새와 봉황이 춤추듯 하고, 장군의 휘하엔 범과 곰 같은 군사 달리네(學士毫端鸞鳳舞 將軍麾下虎態趨/ 학사호단란봉무 장군휘하호태추).’ 李純祐(이순우)란 상장군을 높인 노래다. 鸞은 난새 란.

부하의 사기를 높이려면 북을 울리며 깃발을 높이 든다. 새로운 목표를 정하여 기세 좋게 앞으로 나아갈 때 旗幟(기치)를 내건다고 한다. 깃발을 걸어 높이 올리면 장병들이 적을 향해 출정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고 깃발부터 올리면 우왕좌왕 병사들이 갈피를 못 잡는다. 의욕만 앞세워서는 아랫사람만 죽을 맛이고 일은 일대로 성공할 수가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집중무권執中無權 - 가운데를 취해도 저울이 없다, 중용의 의미가 없다.

집중무권執中無權 - 가운데를 취해도 저울이 없다, 중용의 의미가 없다.

집중무권(執中無權) - 가운데를 취해도 저울이 없다, 중용의 의미가 없다.

잡을 집(土/8) 가운데 중(丨/3) 없을 무(灬/8) 권세 권(木/18)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中庸(중용)을 예찬하고 따르려 한다. 옛날 서양에서도 ‘지나침과 모자람은 악의 특색이고, 중용은 덕의 특색이다’(아리스토텔레스)라고 말한 것이 있다. 四書(사서)의 하나인 子思(자사)의 저작 ‘중용’의 심오한 가르침을 몰라도 모두들 그 미덕을 말하는 것은 행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도리에 맞는 것이 中(중)이고, 떳떳하며 변함이 없어 도리에 맞는 것이 庸(용)이라 하니 맞추기가 어려울 듯하다. 그런데 중용을 취한다고 취했더라도(執中) 그것을 판단할 저울이 없다면(無權) 중용이 아니라 또 하나의 고집이 된다는 것이 이 성어다. 권세 權은 여기서 저울이란 뜻이다.

孔子(공자)의 손자인 자사에게 배운 孟子(맹자)는 王道(왕도)를 주창하며 유교를 굳건히 전한 사람인데 후세의 제자들이 행적을 엮어 만든 책 ‘맹자’에 이 말이 전한다. 盡心(진심) 상편에 이기적 쾌락설을 주장한 楊子(양자)와 무차별의 사랑 兼愛說(겸애설)을 주장한 墨子(묵자), 그리고 魯(노)나라의 현인 子莫(자막)을 비판하면서 말한다. ‘천하를 이롭게 하는데 도움 된다 해도 양자는 자신의 털 하나라도 뽑지 않았고, 묵자는 자신의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다 닳는다 해도 희생하고 행했다.

자막은 도에 가까운 양 극단의 중간을 잡았지만 저울추가 없었으니 한 가지를 고집하는 것과 같다(子莫執中 執中爲近之 執中無權 猶執一也/ 자막집중 집중위근지 집중무권 유집일야).’ 章句(장구)를 만들어 널리 읽히게 한 朱子(주자)는 이에 대해 양자는 仁(인)에 해롭고, 묵자는 義(의)에 해로우며 자막은 알맞은 時(시)에 해롭다고 해석한다. 그러니 중용을 취하는 데는 저울추와 같은 중심을 잡지 못하면 또 다른 고집이 된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은 어느 한쪽에 머물러 있지 않다. 어떤 입장인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지에 따라 옳게도 생각되고 그르게도 판단된다. 상대방 의견은 듣지도 않고 나의 고집만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해어화解語花 - 말을 이해하는 꽃, 미인을 가리키는 말

해어화解語花 - 말을 이해하는 꽃, 미인을 가리키는 말

해어화(解語花) - 말을 이해하는 꽃, 미인을 가리키는 말

풀 해(角/6) 말씀 어(言/7) 꽃 화(艹/4)

꽃이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다. 아주 예민한 식물 미모사(mimosa)라도 잎을 건드리면 닫혀져 늘어질 뿐, 그래서 수줍어 부끄러움을 탄다고 含羞草(함수초)라 한다 해도 말을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말을 이해하는 꽃이란 바로 미인을 가리킨다. 아주 아름다운 꽃으로 비유한다고 해도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은 이 말에 요즘은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더군다나 옛날 권세가들의 노리개가 흔히 되었던 妓生(기생)을 가리키는 말도 되니 미인도 반대할 말이다.

이 성어가 처음 나온 것은 중국 唐(당)나라 6대 玄宗(현종, 재위 712~756) 때이니 1300년도 더 전이다. 왕의 마음을 빼앗아 나라를 기울게 한다는 미인 傾國之色(경국지색)이라면 楊貴妃(양귀비)를 연상하는데 실은 훨씬 앞서 漢武帝(한무제)의 李夫人(이부인)을 가리켰다. 양귀비는 중국의 4대 미인을 나타내는 沈魚落雁(침어낙안)과 閉月羞花(폐월수화) 중 꽃도 부끄러워 한다는 羞花(수화)에 해당돼, 말을 알아듣는 꽃과 이 말과 함께 꽃과는 많이 비교된 셈이다.

양귀비는 원래 현종의 18번째 아들인 壽王(수왕)의 妃(비)였으나 약간 통통했던 미모가 황제의 눈에 띄어 도교사원에 보내졌다가 貴妃(귀비)로 책봉됐다. 빼어난 용모뿐 아니라 가무, 음률에도 능통해 현종의 혼을 쏙 빼 놓았다. 하루는 왕이 비빈과 궁녀들을 데리고 長安(장안)의 太液池(태액지)란 연못에 핀 연꽃을 감상하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연꽃을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황제가 양귀비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꽃들과 나의 말을 알아듣는 꽃과 견줄 만한가(爭如我解語花/ 쟁여아해어화)?’ 아무리 연꽃이 아름다워도 양귀비에 빠진 현종의 눈엔 미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五代(오대) 때의 王仁裕(왕인유)가 엮은 ‘開元天寶遺事(개원천보유사)’에 실려 전하는 이야기다.

총애를 듬뿍 받았던 양귀비도 安祿山(안녹산)의 난으로 왕과 함께 쫓기다 성난 백성의 요구로 죽음을 당했다. 미인은 죄가 없겠지만 원인은 제공했기에 말을 알아듣는 꽃에서 나라를 망하게 한 亡國花(망국화)가 됐다. 예부터 三惑(삼혹)이라 하여 돈과 재물, 여색에 흔들리지 말라고 했고 잘못하면 패가망신한다고 깨우쳤다. 蓄妾(축첩)이나 探色(탐색)하는 한량들은 없어졌다고 해도 끊임없이 지도층들의 성희롱이 들춰지니 이런 교훈도 무색하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호구지책糊口之策 - 가난한 살림에서 겨우 먹고 살아가는 방책

호구지책糊口之策 - 가난한 살림에서 겨우 먹고 살아가는 방책

호구지책(糊口之策) - 가난한 살림에서 겨우 먹고 살아가는 방책

풀칠할 호(米/9) 입 구(口/0) 갈 지(丿/3) 꾀 책(竹/6)

사람이 먹지 않고서는 살아나갈 수가 없다. 인간 생활의 기본요소인 衣食住(의식주) 하나라도 없으면 기본적으로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없지만 그 중에서도 음식이 먼저다. 먹지 못하면 바로 생명을 잃기 때문이다. 관련된 성어로 가장 유명한 것이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는 以食爲天(이식위천)이다. 食爲民天(식위민천)이라 해도 같다. 孔子(공자)님은 믿음을 군사나 식량보다 믿음을 더 중시해야 한다고 無信不立(무신불립)이란 말을 남겼지만 이는 개인이 아닌 나라의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필수적인 먹는 음식이 없다면 생활을 영위하기가 어렵고 최소 식료를 구하는 것이 참으로 구차하다. 그래서 늘 굶고 살 정도로 살림이 매우 가난한 것을 가리켜 ‘사흘에 한 끼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눈 속담을 쓴다. 풀칠은 물론 종이 등에 풀을 칠하는 것인데 입에 풀칠한다면 최소의 음식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가난한 생활을 말한다. 굶지 않고 겨우 살아가는 것을 ‘입에 풀칠하다’, ‘목구멍에 풀칠하다’ 등으로 표현한다. 입에 풀칠하는 가난한 살림(糊口)을 꾸려 나가는 방책(之策)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

高麗(고려) 때의 승려 一然(일연)이 쓴 ‘三國遺事(삼국유사)’ 권3 洛山二大聖(낙산이대성) 편에 처음 용례가 보인다. 주인공이 꿈속에서 파란만장한 생활을 겪은 뒤 현실세계로 돌아 와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幻夢(환몽) 설화다. 新羅(신라) 때의 스님 調信(조신)이 농장 관리인으로 파견됐다가 태수의 딸에게 반했다. 꿈에서 만나 아들 딸 낳고 행복한 생활을 했지만 40년 지나면서 궁핍해졌다. ‘집은 네 벽만 있고 변변치 못한 곡식도 없어, 서로 잡고 끌며 걸식으로 겨우 풀칠했다(家徒四壁 藜藿不給 遂乃落魄扶携 糊其口於四方/ 가도사벽 여곽불급 수내낙백부휴 호기구어사방).’ 藜는 명아주 려, 藿은 콩잎 곽. 물론 꿈에서 깨어난 조신은 속인과의 사랑을 참회하고 믿음 깊은 승려가 되었다.

우리 고전에도 자주 사용됐다. 世宗(세종) 실록에는 흉년든 강원도에 파견된 皇甫仁(황보인)이 ‘환과고독들은 풍년에도 얻어먹고 사는데 금년에는 풀칠할 데가 없어(鰥寡孤獨在豐年寄食他家 今年無可糊口/ 환과고독재풍년기식타가 금년무가호구)’ 구제해야 한다고 왕에 건의했다. 예나 지금이나 늙고 병든 노인들은 고달프다. 노인빈곤지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하위로 미끄러진다. 기초연금 등 국가에서 신경을 쓰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겠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계전오엽 이추성階前梧葉 已秋聲 - 섬돌 앞 오동나무 잎은 벌써 가을소리

계전오엽 이추성階前梧葉 已秋聲 - 섬돌 앞 오동나무 잎은 벌써 가을소리

계전오엽 이추성(階前梧葉 已秋聲) - 섬돌 앞 오동나무 잎은 벌써 가을소리

섬돌 계(阝/9) 앞 전(刂/7) 오동나무 오(木/7) 잎 엽(艹/9) 이미 이(己/0) 가을 추(禾/4) 소리 성(耳/11)

무척 무더웠던 여름을 보낸 지 얼마 안 돼 무르익은 가을을 즐길 때쯤 벌써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축대에서 디디는 섬돌 앞의 오동나무 잎에서 벌써 가을소리가 난다는 이 구절은 朱子(주자)의 권학시 ‘偶成(우성)’의 마지막 부분이다. 첫 구가 바로 유명한 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로학난성)이다. 우연히 지었다는 이 시는 가을소리로 앞세웠을 뿐 계절을 말한 것은 아니다. 세월이 빨리 지나기 때문에 젊은이는 금방 늙는데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그때그때를 놓치지 말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勸學文(권학문)이다. 우리나라서도 지난 날 많은 학생이 암송했을 정도로 좋아했던 시이기도 하다.

중국 南宋(남송)의 대유학자 朱熹(주희)는 처음 불교와 도교에도 흥미를 가졌다가 20대 중반 유학에 복귀하여 주자로 불리며 주자학을 집대성했다. 주자의 이 시는 모두 4개의 구로 되어 간단하다. 하나하나가 독립된 명구로 세월의 덧없음과 젊은이에 시간을 아껴 학문에 힘쓸 것을 권장하고 있다. 전문을 보자. ‘소년은 금방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못가에 돋은 풀들이 봄꿈에서 깨기도 전에, 섬돌 앞 오동나무 잎 벌써 가을소리로구나(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소년이로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 미각지당춘초몽 계전오엽이추성).’ 塘은 못 당.

산문으로 된 주자의 권학문이 더 있다. 더 직설적으로 깨우친다.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이르지 말며, 금년에 배우지 않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세월은 흘러가기만 하고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아, 이미 늙었구나. 이 누구의 탓인가?(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日月逝矣 歲不我延 嗚呼老矣 是誰之愆/ 물위금일불학이유내일 물위금년불학이유내년 일월서의 세불아연 오호노의 시수지건).’ 愆은 허물 건./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혈기방강血氣方剛 - 기운이 넘쳐 왕성하다.

혈기방강血氣方剛 - 기운이 넘쳐 왕성하다.

혈기방강(血氣方剛) - 기운이 넘쳐 왕성하다.

피 혈(血/0) 기운 기(气/6) 모 방(方/0) 굳셀 강(刂/8)

‘건강한 몸은 정신의 사랑방이며 병든 몸은 감옥이다’,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신체에 머문다’. 건강에 대해서 잘 알려진 서양 격언이다.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병과는 무관할 것이라는 자만심을 갖기 쉽다. 하지만 건강의 고마움은 앓아보아야 절실히 느낀다. 성서에서도 말한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는가’(마태복음 16:26).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살갗에 보이는 핏기인 血色(혈색)이 좋으면 건강해 보인다. 얼굴의 혈색만으로 건강상태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하지만, 혈액 순환이 잘 되면 모든 장기도 잘 돌아갈 터이니 건강이 따를 수밖에 없다. 피의 기운(血氣)이 넘쳐 왕성하다(方剛)는 것은 힘을 쓰고 활동하는 원기가 넘쳐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血氣方壯(혈기방장), 血氣旺盛(혈기왕성)이라 써도 같다. 왕성한 기운이 일을 처리하는데 원동력이 되는 반면 그것이 지나치면 탈이 난다고 선인들은 가르쳤다. 孔子(공자)의 말씀부터 보자.

‘論語(논어)’ 季氏(계씨) 편에 나오는 군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를 君子三戒(군자삼계)로 강조한다. ‘젊어서는 혈기가 안정되지 않아 여색을 조심해야 한다. 장년이 되어 혈기가 왕성해지면 싸움을 조심한다. 늙게 되어 혈기가 쇠하면 물욕을 경계해야 한다(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壯也 血氣方剛 戒之在鬪 及其老也 血氣旣衰 戒之在得/ 소지시 혈기미정 계지재색 급기장야 혈기방강 계지재투 급기로야 혈기기쇠 계지재득).’ 똑 같은 구절을 ‘明心寶鑑(명심보감)’의 正己(정기)편에서도 인용하여 가르치고 있다.

부질없는 여색과 턱없는 다툼을 멀리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많다. 문제는 늙어서까지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려는 老貪(노탐)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제법 많은 것을 이뤘을 어르신들이 조그만 이익을 갖고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 老醜(노추)다. 더 큰 재산을 일군 재벌급 회장들도 상속 문제로 꼼수를 부린다. 늙어서 많이 열수록 환영받는다고 하는 것이 지갑과 마음이라고 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독선기신獨善其身 - 홀로 자기 한 몸의 선만을 꾀하다.

독선기신獨善其身 - 홀로 자기 한 몸의 선만을 꾀하다.

독선기신(獨善其身) - 홀로 자기 한 몸의 선만을 꾀하다.

홀로 독(犭/13) 착할 선(口/9) 그 기(八/6) 몸 신(身/0)

사람이 홀로 처지가 딱하고 외롭게 되었을 때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군자는 혼자 있을 때 삼가고, 소인배는 한가할 때 착하지 못한 일을 저지른다(小人閒居爲不善/ 소인한거위불선)고 했다. 大學(대학)에 나오는 글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삼가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두려워해야 군자라고 中庸(중용)에서도 가르친다. 홀로 있을 때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간다는 愼獨(신독)이란 말도 있다. 완전한 인격체라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문 오늘날 일반 사람들은 그저 마음을 닦는 좋은 말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孟子(맹자)는 같은 맥락으로 홀로 어렵게 되었을 때 의를 지켜야 한다는 이 성어를 남겼다. 盡心上(진심상)에 나오는 내용을 간단히 보자. 宋句踐(송구천)이란 사람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남이 자신을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자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어떻게 만족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맹자가 답한다. 덕을 존중하고 의리를 즐겁게 여기면 초연할 수 있다며 선비는 곤궁한 상황에 처해도 의를 잃지 않고, 출세해서도 도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홀로 자신의 몸을 선하게 하고, 영달하게 되면 함께 천하 사람들을 이롭게 했다(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 궁즉독선기신 달즉겸선천하)’고 덧붙인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곤궁할 때 홀로 자신을 수양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녔다. 그런데 살아가는데 좌절과 실패, 일이 잘 안 풀릴 때와 맞닥치면 성인처럼 몸을 닦기가 어려워서인지 이 말의 앞 글자 窮則(궁즉)을 빼고서 완전히 다른 뜻으로 쓰이게 됐다. 남이야 형편이 궁하든 말든 돌보지 않고 자기 한 몸의 편안함만을 꾀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변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홍주우심紅珠牛心 - 붉은 구슬과 소의 심장, 홍시의 다른 이름

홍주우심紅珠牛心 - 붉은 구슬과 소의 심장, 홍시의 다른 이름

홍주우심(紅珠牛心) - 붉은 구슬과 소의 심장, 홍시의 다른 이름

붉을 홍(糸/3) 구슬 주(玉/6) 소 우(牛/0) 마음 심(心/0)

물렁하게 잘 익은 감 紅柿(홍시)는 부드럽다고 軟柿(연시), 연감이라고도 부른다. 빨갛게 익어 떫은맛이 가고 말랑말랑하니 노인들이 좋아하는 과일이 됐다. 소화 기능을 좋아지게 하고 심장과 폐에 좋다고 하니 더 그렇다. 붉은 구슬(紅珠) 같고 소의 심장(牛心) 같다는 이 성어는 홍시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홍주만 따로 떼어 석류나 수박을 표현하기도 한다.

소의 심장까지 함께 나타내 홍시를 말한 곳은 조선 宣祖(선조) 때의 許浚(허준, 1539~1615)이 쓴 ‘東醫寶鑑(동의보감)’에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기도 한 동양 최고의 의서인 이 책 湯液編(탕액편)에 감에 대해서 설명한다. 감은 일곱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나무가 오래 살고 그늘이 많으며 새가 둥지를 틀지 않고 벌레가 없다. 또 단풍이 좋고 과실이 아름다우며 낙엽도 풍부하다. 그러면서 이어진다. ‘감은 붉은 과실이라 우심홍주라 부른다. 볕에 말리면 백시, 불에 말리면 오시라 한다(柿朱果也 故有牛心紅珠之稱 日乾者名白柿 火乾者名烏柿/ 시주과야 고유우심홍주지칭 일건자명백시 화건자명오시).’

우리의 문장가들이 홍시를 표현한 두 가지만 더 보자. 高麗(고려) 때의 李奎報(이규보)는 ‘맛이 꿀이나 엿 또는 젖과 같아, 우는 아이도 웃길 수 있네(味如飴蜜還如乳 解止兒啼作笑媒/ 미여이밀환여유 해지아제작소매)’라고 했다. 조선 徐居正(서거정)은 ‘맛은 벌꿀 위에 오를 만하고, 향기는 감귤의 중간 쯤이라, 폐의 갈증 사라짐을 문득 깨닫고, 따라서 두풍이 치유됨을 알겠네(味居蜂蜜上 香到盧橘中 頓覺肺消渴 從知頭愈風/ 미거봉밀상 향도로귤중 돈각폐소갈 종지두유풍)’라 예찬했다.

맛을 읊은 것 외에 홍시를 보면 효심을 불러일으키는 듯 부모님을 생각하는 시가가 많다. 유명한 선조때의 朴仁老(박인로)는 ‘반중 조홍 감이 고와도 보이는데/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하노라’라는 시조 早紅柿歌(조홍시가)가 대표적이다. 컴백한 풍운의 가수 나훈아도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고 절절히 노래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노즉색쇠老則色衰 - 늙으면 사람의 빛이 다해 소멸하다.

노즉색쇠老則色衰 - 늙으면 사람의 빛이 다해 소멸하다.

노즉색쇠(老則色衰) - 늙으면 사람의 빛이 다해 소멸하다.

늙을 로(老/0) 곧 즉(刂/7) 빛 색(色/0) 쇠할 쇠(衣/4)

사람의 삶이 중요한 만큼 죽음도 숭고하다. 최상의 죽음은 예기치 않은 죽음이란 말이 있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천명을 누리지 못한 것이기 쉽다. 가수 이애란이 뒤늦게 히트시킨 가요 ‘백세인생’ 가사에서는 나이가 점차 늘어 150까지 나온다.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 남자 78세, 여자 84세라 해도 평균 건강수명은 67.8세라 했다. 10여년은 앓다가 가는 셈이다.

사람이 늙으면(老則) 얼굴빛도 쇠하고 결국 소멸하고 만다(色衰)는 이 성어는 불교의 法句經(법구경)에서 처음 사용됐다고 한다. 인도의 승려 法救(법구)가 釋迦牟尼(석가모니)의 금언을 간명하게 정리하여 널리 애송되는 경전이란다. 젊어서 마음 닦기를 게을리 하면 늙어서 비참해진다는 시구를 모은 11장의 老耗品(노모품)에 나온다. 그 부분을 간추려 본다.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웃으랴, 목숨은 언제나 불타고 있나니. 그윽하고 어두움에 덮여 있으면서, 등불을 찾을 줄을 모르는구나(何喜何笑 念常熾然 深蔽幽冥 不如求定/ 하희하소 염상치연 심폐유명 불여구정).’ 건너 뛰어 이어진다. ‘몸이 늙으면 얼굴빛도 쇠하고, 몸이 병들면 그 빛도 없어진다. 가죽은 늘어지고 살은 쪼그라들어, 죽음의 모습이 가까이 와 재촉한다(老則色衰 病無光澤 皮緩肌縮 死命近促/ 노즉색쇠 병무광택 피완기축 사명근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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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하는 웰다잉법(Well-Dying). 사망 시기만 지연하는 연명 치료의 중단을 18년 만에 허용되는 것이라 한다. 수명의 숫자만 늘어나서 말년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앓다가 간다면 100세라도 장수의 의미가 없다.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는지도 모르는 환자의 사람다운 죽음을 위해 시행되기까지 법이 세심하게 갖춰져야겠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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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제충신孝悌忠信 - 효도와 우애, 충성과 믿음

효제충신孝悌忠信 - 효도와 우애, 충성과 믿음

효제충신(孝悌忠信) - 효도와 우애, 충성과 믿음

효도 효(子/4) 공손할 제(心/7) 충성 충(心/4) 믿을 신(亻/7)

어버이에 효도하고(孝), 형제끼리 우애 있고(悌), 임금에 대한 충성(忠)과 벗 사이의 믿음(信)이란 좋은 말만 모은 것이 이 성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조들은 이 말을 달고 살았고, 가훈으로 이어져 온 집도 많았다. 오늘날에도 케케묵은 것으로 치부되는 충성만 제외하고 나라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면 여전히 빛을 발할 수 있는 말이다. 가정의 화목에서 친구와의 의리,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위한 것이 포함되었으니 권장할 지침이다. 공손할 悌(제)는 형제간에 차례를 잘 지키는 마음에서 우애가 우러난다는 뜻을 가졌다.

좋은 말이니만큼 여러 곳에서 비슷한 의미로 사용됐다. 먼저 ‘論語(논어)’ 學而(학이)편에 나온다. ‘근본이 확립되면 따라야 할 올바른 도리가 생긴다. 효도와 공경이라는 것은 바로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본립이도생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 아우 弟(제)에는 공경한다는 뜻도 있다.

管仲(관중)은 명재상답게 나라를 다스리는 네 가지 덕목인 예의염치(禮義廉恥, 예절, 옳음, 청렴, 부끄러움)를 四維(사유)라 했고 여기에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덕목인 효제충신(孝悌忠信) 네 가지를 더해 八德(팔덕)이라 했다.

孟子(맹자)에게 한 제자가 군자는 왜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 밥을 먹느냐고 물었다. ‘나라에서 군자를 기용하면 나라가 편안하고 부유해지며, 청년들이 그를 따르면 효성스럽고 공경스러우며 믿음성이 있게 된다(其君用之 則安富尊榮 其子弟從之 則孝弟忠信/ 기군용지 즉안부존영 기자제종지 즉효제충신).’ 이런 중요한 일을 하는데 군자가 무위도식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盡心(진심) 上(상)편에 실려 있다.

우리 고전에서도 용례는 무수히 많다. 龍飛御天歌(용비어천가)부터 ‘익조 도조 환조 세 성인께서 서로 이어받아 오면서 효제충신으로 가법을 삼았다(翼祖度祖桓祖 三聖相承 以孝弟忠信爲家法/ 익조도조환조 삼성상승 이효제충신위가법)’로 나오고, 退溪(퇴계) 선생은 ‘효제충신은 인간이 가야 할 도리 중에 가장 중요하다(孝悌忠信 人道之大本/ 효제충신 인도지대본)’고 가르쳤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