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4일 월요일

구우일모九牛一毛 –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 하나의 털, 적은 수나 하찮은 물건

구우일모九牛一毛 –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 하나의 털, 적은 수나 하찮은 물건

구우일모(九牛一毛) –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 하나의 털, 적은 수나 하찮은 물건

아홉 구(乙/1) 소 우(牛/0) 한 일(一/0) 털 모(毛/0)

덩치가 큰 소의 털은 당연히 많다. 그래서 ‘쇠털같이 많다’는 속담은 수효가 셀 수 없이 많음을 비유한다. 소가 아홉 마리라면 더 셀 수가 없다. 아홉 마리의 소(九牛) 가운데 박힌 하나의 털(一毛)은 매우 많은 것 가운데 극히 적은 수를 말한다. 아울러 아주 큰 물건 속에 끼여 있는 하찮은 물건, 무시해도 좋은 것을 말할 때도 사용한다. 아득히 넓은 바다에 떠 있는 좁쌀 한 톨이란 뜻의 滄海一粟(창해일속)나 곡식창고 속의 사료 한 알이란 太倉稊米(태창제미) 등도 같은 의미를 가진 성어다.

중국 최고의 역사가 司馬遷(사마천, 기원전 145년~80년)이 쓴 글에서 이 성어가 유래했다. 본기와 열전 등으로 나눠 기술한 紀傳體(기전체)의 효시 史記(사기)는 역대 정사의 모범이 됐다. 불후의 역사서를 남긴 사마천은 그러나 최고의 악조건 속에서 이 책을 썼다. 漢(한)나라 武帝(무제)때 역사를 기록하는 太史令(태사령)으로 있었던 사마천이 친구를 변호하다 생식기를 잘리는 중죄를 받고 치욕 속에서 완성했기 때문이다. 李陵(이릉)이란 장군은 북방에서 날뛰던 흉노를 수차례 무찔러 큰 공을 세웠지만 5000의 적은 군사로 8만 대군과 싸우다 사로잡히고 말았다. 대로한 무제가 이릉의 가족을 목 베고 죄를 추궁하는 어전회의를 열었을 때 홀로 사마천이 변호에 나섰다. 이릉의 과거 전공과 인품을 이야기하며 무제의 처사가 심하다고 했다가 하옥된 뒤 宮刑(궁형)을 받았다.

사서를 완성하라는 부친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사마천은 이때의 심정을 친구에 보낸 ‘報任少卿書(보임소경서)’에서 밝히고 있다. ‘만약 제가 형벌에 복종하여 죽음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숱한 소들의 몸에서 털 하나를 잃어버리는 격이니 땅강아지나 개미의 죽음과 무엇이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假令僕伏法受誅 若九牛亡一毛 與螻蟻何以異/ 가령복복법수주 약구우망일모 여루의하이이)?’ 이렇게 해서 목숨을 이은 사마천이 저술에 착수한지 18년 만에 천고에 남을 사기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아주 하찮은 것이라 자신도 무시하고 남에게서 무시당하기도 한다. 또 치욕에 견디는 것은 힘들다. 사마천은 죽었다면 숱한 쇠털 중 하나였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여 대작을 남겼다. 자신의 앞에 닥친 불행이나 수치를 이겨내는 지혜를 발휘해야 더 큰 앞날이 기다린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칠삭위인七朔偉人 - 일곱 달 만에 태어난 큰 인물

칠삭위인七朔偉人 - 일곱 달 만에 태어난 큰 인물

칠삭위인(七朔偉人) - 일곱 달 만에 태어난 큰 인물

일곱 칠(一/1) 초하루 삭(月/6) 클 위(亻/9) 사람 인(人/0)

조금 모자라는 사람을 놀림조로 칠삭둥이라고 한다. 칠푼이와 같은 말이다. 매달 음력 초하루를 朔日(삭일)이라 하는데 삭이 지나야 한 달이 되기 때문에 개월을 나타내는 단위도 된다. 어머니 뱃속에 열 달을 채워야 정상인데 일곱 달 만에 세상에 나왔으니 모자란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산모나 뱃속 아이의 건강이 좋지 않은 미숙아였을 뿐 출생 후 관리를 잘 하면 정상아와 똑 같다. 일곱 달 만에(七朔) 태어나서 더 훌륭하게 자라난 사람(偉人)도 있으니 대표적인 인물이 韓明澮(한명회, 1415~1487, 澮는 봇도랑 회)다. 이후 태어날 때에는 부족했어도 나중에 잘 되는 경우를 의미하게 됐다.

한명회라 하면 조선 端宗(단종)때 首陽大君(수양대군)을 도와 1453년 癸酉靖難(계유정난)을 일으키고 世祖(세조) 즉위에 앞장선 공신으로 알려져 있다. 또 死六臣(사육신)의 복위운동도 좌절시켜 그들을 주살하는데 주도적으로 가담한 악명으로 이름났다. 生六臣(생육신)의 한 사람인 南孝溫(남효온)의 ‘秋江冷話(추강냉화)’ 등 여러 곳에 한명회의 일화가 기록되어 전한다. 몇 가지만 알아보자.

한명회는 일곱 달 만에 칠삭둥이로 태어났는데 사지가 갖추어지지 못해 안을 수도 없었다. 부모까지 일찍 여의어 늙은 여종이 흰 솜옷에 길렀는데 뜻밖에도 잘 자랐다. 등과 배에 검은 사마귀가 있어 사람들이 특이하게 여겼다. 자라서 靈通寺(영통사)라는 절에 들어가 공부할 때 한 노승도 머리 위에 광채가 난다며 귀한 징조라 일러줬다. 그 곳에서 權擥(권람, 擥은 가질 람)과 사귀며 막역지우로 지냈다. 권람이 먼저 벼슬을 하고 세조에게 한명회를 추천한 이후 거사를 계획하고 앞장서 행동하여 승승장구, 영의정까지 올랐다.

서울 鴨鷗亭洞(압구정동)의 이름은 그 곳에 있었던 한명회의 호를 딴 정자 이름이 있다. 한강 남쪽에 터를 잡고 벼슬에는 뜻이 없이 갈매기와 벗할 것이라며 이름 지었는데 실제로는 그것과 멀었다. 일등공신 네 번, 두 임금의 장인 등 영화와 권세를 누리고 살았던 한명회는 사후 燕山君(연산군)의 甲子士禍(갑자사화)때 尹妃(윤비) 폐위에 가담했다 하여 剖棺斬屍(부관참시 됐다가 후일 복원되는 등 파란이 이어졌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일엽장목一葉障目 – 잎사귀 하나로 눈을 가리다, 부분만 보다 본질을 놓치다.

일엽장목一葉障目 – 잎사귀 하나로 눈을 가리다, 부분만 보다 본질을 놓치다.

일엽장목(一葉障目) – 잎사귀 하나로 눈을 가리다, 부분만 보다 본질을 놓치다.

한 일(一/0) 잎 엽(艹/9) 막을 장(阝/11) 눈 목(目/0)

나뭇잎 하나(一葉)가 눈을 가리면(障目) 당연히 앞을 보지 못한다. 자질구레하고 지엽적인 일에 눈이 어두워 문제의 본질이나 전모를 보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성어다. 또 이 말은 ‘가랑잎으로 눈 가리기’라는 속담이 말하는 대로 자기의 존재나 허물을 덮기 위해 미련하게 애쓰는 경우를 가리키기도 한다. 어느 것이나 ‘잎사귀로 눈이 가려져 태산을 보지 못한다(一葉蔽目 不見泰山/ 일엽폐목 불견태산)’는 말과 같고, 줄여서 一葉蔽目(일엽폐목)이라 쓰기도 한다.

鶡冠子(갈관자, 鶡은 관이름 갈)라는 사람이 썼다고 하는 ‘갈관자’ 天則(천칙) 편에 처음 나오는 말이다. 갈관자는 老子(노자)와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은거하면서 멧닭의 깃으로 만든 갈관을 쓰고 다녀 이름을 얻게 됐다고 한다. 그의 저작도 후대의 사람이 덧붙인 위작이라 보는 견해가 많다. 어떻든 이 성어가 등장하는 부분을 보자. ‘무릇 귀는 듣는 것을 주관하고 눈은 보는 것을 주관한다. 그러나 나무 잎사귀 하나가 눈을 가리면 태산이 보이지 않고, 콩 두 알이 귀를 막으면 우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夫耳之主聽 目之主明 一葉蔽目 不見泰山 兩豆塞耳 不聞雷霆/ 부이지주청 목지주명 일엽폐목 불견태산 양두색이 불문뇌정).’ 霆은 벼락 정.

이것은 부분에 얽매이지 말고 전체를 보라는 교훈이지만 어리석은 자의 행위를 풍자한 내용은 삼국시대 魏(위)날 邯鄲淳(한단순)이 쓴 ‘笑林(소림)’에 실려 전한다. 옛날 楚(초)나라 어떤 서생이 고서에서 매미가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면 사마귀가 보지 못한다는 내용을 읽고 흥미를 느꼈다. 자기도 투명인간이 되기 위해 매미가 숨어있던 나무를 한 아름 따와서 눈을 가린 채 부인에게 자기가 보이는지 물었다. 자꾸 묻는 말에 부인이 귀찮아 안 보인다고 하자 선비는 한쪽 눈만 가리면 안 보이는 줄 알고 시장에 나가 물건을 훔쳤다가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부부가 오랫동안 해로하기 위해선 단점을 덮기 위해 한쪽 눈을 가릴 필요는 있다. 하지만 장점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단점을 보이지 않으려 눈을 가린다면 들통이 나기 마련이다. 어떠한 일에도 보고 싶은 것만 보아서는 전체를 파악할 수 없어 목표한 일을 그르치고 만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피형참극披荊斬棘 - 가시나무를 헤치고 쪼개다, 어려움을 이기고 나아가다.

피형참극披荊斬棘 - 가시나무를 헤치고 쪼개다, 어려움을 이기고 나아가다.

피형참극(披荊斬棘) - 가시나무를 헤치고 쪼개다, 어려움을 이기고 나아가다.

헤칠 피(扌/5) 가시 형(艹/6) 벨 참(斤/7) 가시 극(木/8)

나무의 온갖 가시가 荊棘(형극)이다. 가시처럼 생긴 풀(艹)이 형벌에 쓰인 가시나무를 나타낸다고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가시덤불이 우거져 있으면 힘들어 고생길이란 의미가 담겼다. 어려운 말이라도 쓰임새는 제법 된다. 남을 해치는 말이 口中荊棘(구중형극)이고 安重根(안중근)의사의 유묵으로 알려진 口中生荊棘(구중생형극)은 글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가르침이었다. 예수님이 못 박힐 때 荊冠(형관)을 썼고, 요즘은 덜하지만 시집살이 고된 아내는 荊妻(형처)라고 불렀다.

가시나무를 헤쳐내고(披荊) 쪼개어 베어낸다(斬棘)는 이 성어는 앞길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없애고 나아간다는 뜻이다. 앞서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장애를 제거하는 것을 이른다. 중국 宋(송)나라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의 馮異傳(풍이전)에서 유래했다. 前漢(전한)을 멸망시키고 新(신)나라를 세운 王莽(왕망, 莽은 풀 망)의 군대는 다시 後漢(후한)의 光武帝(광무제) 劉秀(유수)에게 격파 당한다. 유수도 군사를 일으켰던 초기에는 세력이 미약하여 생활에 큰 고통이 따랐다. 대원들의 이탈이 잦았지만 主簿(주부)라는 벼슬을 맡고 있던 풍이는 흔들리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

유수가 군사를 이끌고 한 지역을 지나갈 때 추위와 배고픔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풍이는 그런 상황에서도 콩죽을 구해와 바쳤다. 다시 길을 가다 폭우를 만나 옷이 다 젖어버렸다. 풍이는 땔감을 구해 불을 피운 뒤 유수 일행의 옷을 말려주었다. 크게 고마움을 느낀 유수는 황제에 오른 뒤 풍이에게 關中(관중)을 평정하는 임무를 맡겼다. 가는 곳마다 민심을 얻자 풍이가 모반하려 한다는 글이 유수에게 올라왔다. 황제는 문무백관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풍이가 나의 대업을 위해 많은 어려움을 헤치고 장애를 극복했기에 관중 땅을 평정할 수 있었소(爲吾披荊斬棘 定關中/ 위오피형참극 정관중).’ 황제는 더 큰 신임과 함께 풍이에게 많은 금은보화를 내렸다.

살아가다 보면 많은 어려움에 부닥치게 된다. 난관에 주저앉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당당히 맞서 극복하는 사람도 있다. 고난에 닥쳤을 때 주저앉으면 앞날의 영광은 더욱 멀어진다. 슬기롭게 헤쳐나갈 길을 찾아야 한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오월동주吳越同舟 - 적대시하는 오월 사람이 한 배를 타다.

오월동주吳越同舟 - 적대시하는 오월 사람이 한 배를 타다.

오월동주(吳越同舟) - 적대시하는 오월 사람이 한 배를 타다.

성 오(口/4) 넘을 월(走/5) 한가지 동(口/3) 배 주(舟/0)

원수같이 서로 미워하는 사람이 우연히 같은 곳에서 절체절명의 위험에 닥쳤을 때는 서로 돕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같이 죽으니 이전의 적대감은 잠시 미뤄두는 것이다. 일상에서 많이 인용되는 吳越同舟란 말은 서로 적대시하는 吳(오)나라 사람과 越(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탔는데 풍랑을 만나서 서로 단합해야 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에 이웃한 두 나라는 臥薪嘗膽(와신상담/ 가시가 많은 나무에 누워 자고 쓰디쓴 곰쓸개를 핥으며 패전의 굴욕을 되새겼다는 뜻)의 고사에서도 나오는 숙적이었다.

출전은 중국의 유명한 병법서인 ‘孫子(손자)’다. 이 책은 孫武(손무)가 쓴 것으로 되어 있다. 후대의 孫臏(손빈)이 저자라는 설도 있었지만 ‘손빈병법’이란 딴 책이 발견됐다. 손무는 오왕 闔閭(합려)를 섬겨 서쪽으로는 楚(초)나라의 도읍을 공략하고, 북방 齊(제)와 晉(진)을 격파했다는 명장이다. 이 책은 전투에 필요한 전략 외에도 삶에 교훈이 되는 이야기들이 비유적으로 많이 수록되어 지금까지 널리 읽히는 고전으로 되어 있다.

이 책 제11편 ‘九地(구지)’편에는 군사를 쓸 수 있는 아홉 가지 땅을 열거하고 마지막 死地(사지)에선 사생결단으로 싸워 이겨야 하는 상황이라며 바로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대저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미워한다. 그러나 그들이 같은 배를 타고 가다가 바람을 만나게 되면 서로 돕기를 좌우의 손이 함께 협력하듯이 한다(夫吳人與越人相惡也 當其同舟而濟遇風 其相救也 如左右手/ 부오인여월인상오야 당기동주이제우풍 기상구야 여좌우수).’/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탐소실대貪小失大 -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다.

탐소실대貪小失大 -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다.

탐소실대(貪小失大) -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다.

탐낼 탐(貝/4) 작을 소(小/0) 잃을 실(大/2) 큰 대(大/0)

작은 것을 욕심(貪小)내다가 큰 것을 잃는(失大) 경우는 많다. 소의 뿔을 바로 잡으려다 죽게 만드는 矯角殺牛(교각살우)나 참새 한 마리 잡는다고 구슬 탄환을 쓴다는 明珠彈雀(명주탄작)의 행위는 어리석기 짝이 없다.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다 지나쳐 망치게 한다는 矯枉過直(교왕과직)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흔히 쓰는 것이 小貪大失(소탐대실)인데 어법에 맞지 않지만 우리식 표현법으로 굳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순서가 바뀌어 어느 것이 앞에 오든 중국에서는 잘 쓰지 않고 ‘작게 탐내면 작게 잃고, 크게 탐내면 크게 잃는다’는 뜻의 小貪小失 大貪大失(소탐소실 대탐대실)을 많이 쓴다고 한다.

잘못을 찾으면 상을 준다는 一字千金(일자천금)의 책이 ‘呂氏春秋(여씨춘추)’다. 秦始皇(진시황)의 생부로 알려진 呂不韋(여불위)가 3000명의 현사들에게 만들게 했다. 15권 愼大覽(신대람)편의 權勳(권훈)에 성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戰國時代(전국시대) 燕(연)나라의 현자이면서 명장인 樂毅(낙의)가 秦(진)과 趙(조), 韓(한), 魏(위) 등 4개국 연합군을 이끌고 齊(제)나라를 공격했다. 강대국이라 자부하던 제나라 愍王(민왕)은 장군 觸子(촉자)를 보내 막게 했으나 계속 밀렸다.

왕이 싸우지 않으면 일가족을 몰살한다고 하자 장군은 잠적했다. 부장군 達子(달자)가 사기를 올리기 위한 상금을 요청하자 왕은 패잔병이 염치없다고 일축했다. 이런 왕의 군대가 패하는 것은 당연했다. 낙의가 이끄는 연합군은 제나라 서울을 함락시키고 美唐(미당)이라는 창고를 헐어 수많은 금은보화를 약탈했다. 제나라 왕은 나라까지 잃고 莒(거) 지역으로 달아났다. ‘이것이 바로 작은 이익을 탐내다가 커다란 이익을 잃게 된 예이다(此貪於小利以失大利者也/ 차탐어소리이실대리자야).’

평소 안전에 소홀하다가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작은 뇌물을 대수롭지 않게 받다가 쇠고랑 찬다. 한 정책이 잘못 되어 부작용이 나타나는데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수정한다. 주변에 너무나 자주 보는 작은 것을 욕심내다 큰 것을 잃는 예다. 숱하게 보아 왔지만 교훈은커녕 욕심만 늘어난다. 안타까운 일이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격탁양청激濁揚清 – 탁류를 흘려보내고 맑은 흐름을 받아들이다.

격탁양청激濁揚清 – 탁류를 흘려보내고 맑은 흐름을 받아들이다.

격탁양청(激濁揚清) – 탁류를 흘려보내고 맑은 흐름을 받아들이다.

격할 격(氵/13) 흐릴 탁(氵/13) 날릴 양(扌/9) 맑을 청(氵/8)

탁한 흐름을 부딪쳐 흘려보내고(激濁) 맑은 흐름을 받아들인다(揚清)는 뜻의 성어로 새 정부가 들어선 뒤 많이 거론되고 소개되었다. 격할 激(격)은 激動(격동), 激怒(격노) 등에서 보듯 심하다, 격렬하다는 뜻 외에 물이 부딪쳐 흐른다는 의미로 씌었다. 탁류는 구악이고 맑은 물결인 새로운 인물들이 악을 제거하고 선을 권장한다는 자부심이 들어있다. 이전의 積弊(적폐)를 대대적으로 淸算(청산)한다면서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시작하는 기치이기도 하다.

가장 많이 알려진 출전으로 중국 唐(당)나라의 정사 ‘舊唐書(구당서)’를 꼽는다. 唐(당)나라 2대 太宗(태종)이 貞觀(정관)의 정치를 펼 때 보필했던 명신 중 王珪(왕규, 571~639)의 열전에서 나왔다. 왕규는 魏徵(위징)과 마찬가지로 처음 태자 李建成(이건성)을 따랐다가 형을 제거하고 왕위를 차지한 李世民(이세민) 즉 태종의 부름을 받아 諫議大夫(간의대부)를 맡았다. 왕규는 항상 정성을 다해 충언을 올렸고, 특히 인물의 그릇을 분별하는 능력이 뛰어나 신임을 받았다. 당시 국정을 주도하던 명신 중에는 위징, 왕규 말고도 房玄齡(방현령), 李靖(이정), 溫彥博(온언박) 등 쟁쟁했다. 하루는 태종이 이들을 함께 주연에 초대한 뒤 왕규에게 이들의 인물이 어떠한지 자신과 비교해 품평해 보라고 명했다. 난감해진 왕규는 그러나 슬기롭게 대처했다. 이들 뛰어난 명신들은 충성심, 전문성, 청렴함 등에서 자신이 한참 뒤떨어진다고 답하면서 이어진다. ‘세상의 혼탁함을 물리치고 청렴함을 받아들이며, 사악한 것을 증오하고 선량한 것을 좋아하는 점에서 자신이 약간 앞섭니다(至如激濁揚清 嫉惡好善 臣於數子 亦有一日之長/ 지여격탁양청 질악호선 신어수자 역유일일지장).’

이보다 앞서 戰國時代(전국시대) 尸校(시교)가 지은 제자백가서 ‘尸子(시자)’에도 나온다고 한다. 물의 덕을 칭송하면서 ‘맑은 것을 들어 올리고 흐린 것을 쓸어서 모든 찌꺼기가 휩쓸려 내려가게 하는 것(揚淸激濁 蕩去滓穢/ 양청격탁 탕거재예)’이라 했다. 穢는 더러울 예.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포청천包靑天 - 중국의 판관, 청렴 강직한 관리의 대명사

포청천包靑天 - 중국의 판관, 청렴 강직한 관리의 대명사

포청천(包靑天) - 중국의 판관, 청렴 강직한 관리의 대명사

쌀 포(勹/3) 푸를 청(靑/0) 하늘 천(大/1)

재물 욕심 없이 깨끗하고 법을 바로 집행한 관리가 淸白吏(청백리)다. 조선시대 議政府(의정부)에서 추천한 청렴한 관리로 孟思誠(맹사성), 黃喜(황희) 등 모두 217명이 배출됐다고 한다. 중국에서 강직한 관리의 대명사로는 包拯(포증, 999~1062, 拯은 건질 증)을 꼽는다. 北宋(북송) 때의 정치가인 포증은 우리에게는 ‘개작두를 대령하라’며 죄인들에게 서슬 퍼런 명령을 내리던 드라마 속의 包靑天(포청천)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푸른 하늘(靑天)은 청백리를 의미한다. 包公(포공)이라고도 불린 그는 지방관으로서 부당한 세금을 없앴고, 판관이 되어서는 부패한 정치가들을 가차 없이 처벌하여 가장 정의로운 관리로 칭송받는다.

포증은 형과의 나이가 20세나 되는 늦둥이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했다. 진사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으나 먼 지역에 근무하게 되자 부모를 모셔야한다며 사양했다. 양친 모두 돌아가신 38세가 되어서야 그는 안후이(安徽)성 天長(천장)이라는 곳의 현령으로 부임했다. 포증은 이 곳에서 유명한 ‘소 혀 절단 사건’을 해결한다.

농사에 필수적인 소는 당시 도축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한 농민이 자신의 소 혀를 절단해 갔다고 고발해 왔다. 포증은 농민에게 소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팔라고 했다. 얼마 안 있어 한 사람이 소 밀도살한 농민을 밀고해 왔다. 포증은 고발한 작자를 엄격히 문초하여 소 혀를 절단한 범인임을 자백 받았다. 고발한 자가 소 혀를 절단한 범인임을 알았던 것이다. 현명한 일 처리로 사람들은 귀신같은 일 처리라며 칭송했다.

이후 가는 지역마다 공사를 이용해 사욕을 채우는 아전들을 내몰고 백성들의 민원을 직접 받았다. 관리들의 상업 활동을 금지하고, 재해지역의 수습에 만전을 기하며 가혹한 세금을 면제해주는 등 청렴 강직한 행정을 폈다. 그의 선정이 알려지자 중앙으로 중용돼 감찰어사가 됐다. 장수를 선발하고 병사를 키워 변방을 지킬 것을 건의하고 유능하고 지혜로운 인재를 선발토록 했다. 이렇게 들어온 사람 중엔 유명한 王安石(왕안석), 司馬光(사마광) 등이 포함돼 있다. 수도 開封(개봉)의 부사로 있을 때는 권문세가의 비리를 추상같이 처리하고 청탁은 통하지 않아 ‘포증은 閻羅大王(염라대왕)과 함께 있다’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

이런 포증이 있던 중국이나 청백리를 우러렀던 우리나라나 부패는 끊이지 않는다. 국제투명성기구의 우리나라 부패순위는 해마다 뒷걸음질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 10위권 나라에서 부끄러운 노릇이다. 포청천 까지는 아니라도 청백리가 많아져야 할 텐데 아득하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감정선갈甘井先竭 - 물맛이 좋은 우물은 빨리 마른다.

감정선갈甘井先竭 - 물맛이 좋은 우물은 빨리 마른다.

감정선갈(甘井先竭) - 물맛이 좋은 우물은 빨리 마른다.

달 감(甘-0) 우물 정(二-2) 먼저 선(儿-4) 다할 갈(立-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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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무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남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모두 쪼아대 우뚝한 모서리가 없어지고 평평하게 평준화된다. 물맛이 달콤한 우물(甘井)의 물이 빨리 마른다(先竭)는 말도 마찬가지다. 모두 퍼 마시므로 빨리 바닥을 드러낸다. 莊子(장자)에 이 성어가 실렸다. 大公任(태공임, 大자가 태, 다의 음도 있음)이란 사람이 孔子(공자)에게 태도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조언이 들어있어 실제라기보다 우화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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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陳(진)과 蔡(채)나라 다툼 사이에서 꼼짝 못하고 갇혀 이레간 식사도 옳게 못했을 때 태공임이 찾아와 이야기한다. 동해에 意怠(의태)라는 새가 있는데 본성이 느려 능력이 없는 듯 보이지만, 날 때는 다른 새를 이끌고 앞서지 않으며 먹이를 먼저 맛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무리에서 배척당하지 않고 사람들도 해치지 않는다며 곧은 나무가 먼저 베어지고 맛있는 샘물은 먼저 마른다(直木先伐 甘井先竭/ 직목선벌 감정선갈)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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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공자에게 지혜를 자랑하여 어리석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몸을 닦아 그로써 남의 잘못을 드러내며, 마치 해와 달을 들고 다니듯 세상에 알려졌으니 화를 면치 못한다고 충고했다. 너무 잘난 체 한다고 공자에게 일침을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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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란 말도 있다. 곧은 나무는 집을 짓는데 유용하다. 때문에 목수들이 먼저 찾는다. 따라서 타고난 수명을 누리지 못하고 베어지게 마련이다. 사람 사는 세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의 재주만을 믿고 뽐내다가 다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너도 나도 질시하며 깎아 내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재주가 있는데 적소에 나가 펼칠 기회가 막히면 전체가 손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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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도보리投桃報李 - 복숭아를 선물로 받고 자두로 답례하다, 격에 맞아 친밀하게 지내다

투도보리投桃報李 - 복숭아를 선물로 받고 자두로 답례하다, 격에 맞아 친밀하게 지내다

투도보리(投桃報李) - 복숭아를 선물로 받고 자두로 답례하다, 격에 맞아 친밀하게 지내다

던질 투(扌/4) 복숭아 도(木/6) 갚을 보(土/9) 오얏 리(木/3)

남에게 존경과 애정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주는 것이 膳物(선물)이다. 서양 격언에 ‘선물은 그 사람을 나타낸다’, ‘선물을 주고받으면 많은 친구를 얻게 된다’는 것이 있다. 이처럼 좋은 선물이라도 보낸 사람의 정성이 깃들어 있지 않으면 하잘 것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예를 갖춰 서로 오가야 깊은 관계가 유지된다고 한 것이 禮尙往來(예상왕래)다. 그런데 선물을 보내면서 더 큰 반대급부를 바란다면 賂物(뇌물)이 되고 만다. 엇비슷하게 마음을 다한 선물이 오래 간다.

복숭아로 선물을 받고서(投桃) 오얏, 즉 자두로 보답을 한다(報李)면 어떨까. 복숭아와 자두는 기호에 따라 경중이 다르겠지만 대체로 비슷하다고 본다. 격에 맞는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친밀하게 지낸다는 뜻에서 내가 은혜와 덕을 베풀면 남도 이를 본보기로 한다는 뜻도 포함하게 됐다. 모과를 선물했는데 구슬을 보내줬다면 분에 넘치는 답례가 되는 投瓜得瓊(투과득경)과는 반대의 뜻이다. 모두 가장 오래된 시집 ‘詩經(시경)’에서 유래했다.

열다섯 나라들의 민요를 실은 國風(국풍)이 유명하지만 이 성어는 궁중 잔치나 조회 때 쓰이던 음악을 모은 大雅(대아) 편에 나온다. 蕩之什(탕지십)의 抑(억)편은 제후들에게 날마다 익혀 자신을 경계하도록 했던 시로 알려져 있다. 모두 12장으로 된 시 중에서 여덟 번째 장에 실려 있다. 그대의 덕을 본으로 하여 백성을 교화하고, 행동을 삼가 허물없게 하고, 어그러지고 해치지l 않으면 모든 것이 법이 된다며 이어진다. ‘복숭아를 던져주면 오얏으로 보답한다네, 새끼 양에 뿔났다면 그대를 속이려 함이네(投我以桃 報之以李 彼童而角 實虹小子/ 투아이도 보지이리 피동이각 실홍소자).’

격에 맞는 선물이 오가는 풍경은 아름답다. 복숭아에 자두로 보답하는 것을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자리를 바라고, 이권을 바라고 그 선물에 큰 보답을 바라니까 말썽이 된다. 한때 세력가나 인사권자의 집이 명절 때마다 門前成市(문전성시)가 된 것도 그런 연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