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7일 목요일

◇한 교수의 코로나 후유증 소회

◇한 교수의 코로나 후유증 소회

◇한 교수의 코로나 후유증 소회

‘부산 47번째 환자’로 통하는 박현 부산대 기계공학부 겸임교수는 지난 2월 코로나19에 감염돼 한 달여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퇴원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하고 집중하기 힘든 ‘브레인 포그(Brain Fog)’, 가슴과 위장의 통증, 피부 변색과 건조증, 만성 피로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생전 처음 보는 증상들이 나타나는데 이를 설명해 줄 사람도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미국 할리우드 여배우 얼리사 밀라노는 최근 인스타그램에 “코로나 완치 후에도 4개월 동안 현기증, 위통, 단기 기억력 상실 등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진다며 사진도 올렸다. 지난 3월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영국 찰스 왕세자는 치료를 받았지만 후각과 미각이 회복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이탈리아 코로나19 완치자를 추적·분석한 미국 의사협회지 논문에 따르면 회복자 중 87%가 크고 작은 후유증을 겪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가 정신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전례 없는 정신보건 위기’라고 우려했다.

5년 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완치 판정을 받은 후 후유증을 겪는 환자가 적지 않았다. 메르스 74번 환자로 최장기 입원했던 70대 남성은 폐섬유화·심부전증 등 후유증으로 2년 넘게 치료받다가 결국 사망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메르스 사태 당시 생존자의 정신건강을 추적한 결과 54%가 1년 후에도 한 가지 이상의 정신건강 문제를 겪었고 40%가량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경험했다.

코로나19는 무증상 감염, 전파력과 치사율이 동시에 높은 특징에 이어 치료 후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는 공포를 더하고 있다. ‘확진자’는 ‘환자’로, ‘완치자’는 ‘회복자’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당국은 새겨들어야 한다. 빌 게이츠는 “코로나 사태는 수백만명이 더 사망하고 내년 말에야 종식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코로나19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마스크도 안 쓴 채 광장에 모여 소리지르는 무리를 보면 섬뜩하다.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라도 자중해야 한다.

-세계일보-

被 bèi

被 bèi

被 bèi

1. 이불 2. 덮다 3. 받다 4. 입다

◇빌리 브란트 총리, 하토야마 총리 그리고 김종인의 무릎 사죄

◇빌리 브란트 총리, 하토야마 총리 그리고 김종인의 무릎 사죄

◇빌리 브란트 총리, 하토야마 총리 그리고 김종인의 무릎 사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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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2월 폴란드에 있는 유대인 추념비 앞에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섰다. 독일 정상으론 전후 첫 방문이었다. 겨울비가 내렸고, 몇몇 성직자와 사진기자가 주변을 에워쌌다. 그때 화환을 놓은 브란트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예정에 없던 갑작스러운 행동이었다. 57세 브란트는 머리를 숙이고 30초쯤 침묵 속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것이 뒷날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된 바르샤우어 크니팔(바르샤바 무릎 꿇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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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트는 "나는 역사의 무게 앞에 사람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하는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나치 수용소 생존자인 폴란드 총리가 감동을 받아 차 안에서 브란트를 끌어안고 울었다고 했다. 헝가리 방송은 "브란트가 무릎을 꿇었지만, 독일 민족이 일어섰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서독 언론은 비판적이었다. 여론조사 응답자 48%가 "브란트 행동이 과장됐다"고 비난했다.

세월과 함께 평가는 완전 달라졌다. 이젠 \20세기 독일 정치사에 힘과 용기와 아이콘을 보여준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브란트와 비슷한 \무릎 사죄\는 2015년 8월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가 옛 서대문형무소를 찾았을 때 있었다. 그는 추모비에 헌화한 뒤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그는 "진심으로 죄송하고 사죄한다"고 했다. 3년 뒤 하토야마는 경남 합천에도 찾아와 팔순 원폭 피해자들 앞을 일일이 무릎으로 옮겨 다니며 손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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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년 들어 무릎 사죄가 드문 풍경은 아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 때 여론이 급락하면 지역으로 달려가 단체로 무릎을 꿇는다. 뒤에는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현수막도 걸어놓는다. 노무현 정부 때는 탄핵 가결을 못 막았다며 열린우리당 의장이 무릎을 꿇었다. 물류 창고 화재 때도, 모 탤런트의 위안부 누드 파문 때도 책임자가 무릎을 꿇었다. 갑질 손님 앞에서 백화점 점원이 무릎 꿇고 사죄하는 영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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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이 5·18 묘역을 찾아 무릎을 꿇었다. 검은 옷 차림에 흰 장갑 손을 앞에 모았다. 인상적인 사진이었다. 그는 "부끄럽다" "죄송하다"를 거푸 말하다 목이 멨다. 일어설 때 잠깐 비틀거렸다. \5·18 무릎 사죄\는 지난 40년간 보수 정당 대표로는 처음이다. 민주당은 \화제 전환용 쇼\라고 했지만, 김 위원장은 "반성의 첫걸음을 뗀다"고 했다. 복잡한 일도 훗날 사진 한 장으로 요약될 때가 있다. \무릎 사죄\는 전제 조건이 없다는 뜻이다. 평가는 시간과 실천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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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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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かり怒り

いかり怒り

いかり怒り

=> 분노, 노여움

활구자 승어사정승活狗子 勝於死政丞 - 살아있는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

활구자 승어사정승活狗子 勝於死政丞 - 살아있는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

활구자 승어사정승(活狗子 勝於死政丞) - 살아있는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

살 활(氵/6) 개 구(犭/5) 아들 자(子/0)

이길 승(力/10) 어조사 어(方/4) 죽을 사(歹/2) 정사 정(攵/5) 정승 승(一/5)

우리가 사는 세상을 고통이 가득 찼다 하여 苦海(고해)로 자주 비유한다. 괴로움이 끝이 없는 인간세상이 파도가 휘몰아치는 거친 바다와 같다고 봤다. 그곳에 빠진 채 살아가는 사람은 苦海衆生(고해중생)이다. 고해에 빠져 허우적대다 삶을 포기하는 소수도 있겠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은 역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 여기에 적합한 적나라한 속담이 있다. 아무리 천하고 고생스럽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낫다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이다. 유사한 속담도 많아 ‘땡감을 따 먹어도 이승이 좋다’, ‘거꾸로 매달아도 사는 세상이 낫다’ 등이 그것이다.

훨씬 더 와 닿는 비유로 살아있는 개새끼(活狗子)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勝於死政丞)란 말이 있다. 우리 속담을 한역한 조선 후기의 학자 趙在三(조재삼)의 ‘松南雜識(송남잡지)’에 나온다. 아무리 천하고 고생스럽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가르친다. 세상을 비관하지 말고 살아가라는 뜻과 함께, 대감 죽었을 때는 문상가지 않는다는 말대로 존귀했던 몸이라도 한번 죽으면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 세상인심이라는 것도 함께 깨우쳐준다. 조선 중기의 문신 盧守愼(노수신, 1515~1590)의 문집 ‘蘇齋集(소재집)’에 고위직과 귀양살이를 거듭하며 나중에 사직을 청하는 상소에 이 말이 사용됐다고도 한다.

우리 속담을 한자 8자로 표현하고 그 아래 뜻을 풀이한 丁若鏞(정약용)의 ‘耳談續纂(이담속찬, 纂은 모을 찬)’에는 약간 달리 비유했다.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은 비록 아무리 고생스럽고 욕되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뜻이다(雖臥馬糞 此生可願 言雖苦辱 猶善於死也/ 수와마분 차생가원 언수고욕 유선어사야)’라고 설명하고 있다. 거북이가 죽어서 점치는데 귀하게 쓰이는 것보다 살아서 꼬리를 진흙에 끌고 다니기를 더 좋아한다고 한 莊子(장자)의 曳尾塗中(예미도중)도 같은 의미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겐 아무리 고생스럽더라도 사는 것이 소중하다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갈수록 계급에 따른 빈부격차가 커지는 세상에선 노력해서 상위 계층에 이동하는 ‘개천의 용’은 사라졌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번 생애는 망했다고 ‘이생망’이라며 희망을 놓는다. 목구멍에 풀칠하는 것으로 살아갔던 옛날과는 달리 목숨만 부지하는 삶이 아니고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한 이들을 힘차게 이끄는 정책은 없을까.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통심질수痛心疾首 - 마음이 상하고 골치가 아픔

통심질수痛心疾首 - 마음이 상하고 골치가 아픔

통심질수(痛心疾首) - 마음이 상하고 골치가 아픔

아플 통(疒/7) 마음 심(心/0) 병 질(疒/5) 머리 수(首/0)

몹시 분하거나 억울하여 한스러운 것은 痛恨(통한)이다. 몹시 마음이 상하여 사무치면 痛心(통심)이 된다. 마음이 아프면 명의가 와도 고칠 수가 없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 속병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스려 편안하게 해 줄 수련법에 맡길 일이다. 또 무엇이나 중도에 그만 두어 피상적인 반거충이보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면 마음이 되레 편하다. 이럴 때 말하는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이란 속담은 쓸데없는 곳에 마음을 두지 말라는 교훈이다. ‘모르는 것이 부처’란 말도 같다.

마음이 편하지 않고(痛心) 골치가 아프다(疾首)는 몹시 심할 정도로 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처음 나오는 ‘左氏傳(좌씨전)’에서는 구체적인 비유가 아닌 지나가는 말로 사용됐다. 중국 魯(노)나라의 左丘明(좌구명)이 孔子(공자)의 저작 ‘春秋(춘추)’를 해석한 春秋三傳(춘추삼전) 중에서도 역사적 실증적 해석을 중심으로 했다는 평가를 받는 책이다. 成公(성공) 13년 조에 실려 있는 내용을 간단히 보자.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 周(주) 왕실 계통의 정통 제후국 晉(진)나라의 獻公(헌공)과 서방의 신흥강국 秦(진)나라의 穆公(목공) 때는 화친도 맺고 혼인도 하는 사이좋은 나라였다. 그러던 것이 이후 장례문제로 사이가 틀어져 秦(진)나라 康公(강공) 때는 楚(초)나라 등 주변국과 연합하고 晉(진)을 침입하도록 부추겼다. 그러자 晉(진)의 명신 呂相(여상)은 강공에 파견되어 조목조목 따졌다. 초나라 사람들도 맹약을 깨고 무도한 秦(진)과는 단지 이익을 위해 왕래할 뿐이라 했다. 다른 제후들도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 때문에 마음도 아프고 머리가 괴롭다면서 자신의 편이 됐다(斯是用痛心疾首 暱就寡人/ 사시용통심질수 닐취과인)’고 말했다. 暱은 친할 닐.

병은 육체의 병이지 마음의 병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마음에 없는 일에 너무 머리를 쓰고 괴로워한다. 지도자가 바르지 못한 일을 할 때는 부하들이 몸도 아프고 골도 쑤실 것이다. 그래서는 몸도 마음도 떠날 수밖에 없다. 공직사회를 내내 괴롭혔던 적폐수사가 좋은 예다. 자기 욕심만으로 부당한 지시를 내렸을 때 조직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먼저 생각할 수 없다면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우각괘서牛角掛書 – 쇠뿔에 책을 걸다, 열심히 공부하다.

우각괘서牛角掛書 – 쇠뿔에 책을 걸다, 열심히 공부하다.

우각괘서(牛角掛書) – 쇠뿔에 책을 걸다, 열심히 공부하다.

소 우(牛/0) 뿔 각(角/0) 걸 괘(扌/8) 글 서(曰/6)

오늘날 독서 인구가 점차 줄어든다고 걱정들이 많다. 하지만 도서관이나 서점마다 독서하는 사람들로 꽉 차고, 출판사마다 불황이라 해도 계속 책이 나온다. 지하철에서 신문이나 책 읽는 모습은 자취를 감췄어도 여전히 책을 사랑하고 책으로 지혜를 얻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나 독서에 관한 선인들의 좋은 경구는 차고 넘친다. 고사가 따르는 성어도 많은데 반딧불과 눈빛으로 책을 읽었다는 螢窓雪案(형창설안)이나 잠을 쫓기 위해 머리카락을 매달고 넓적다리를 찌르는 懸頭刺股(현두자고), 마당에 널어놓은 보리가 소나기에 떠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었다는 高鳳流麥(고봉유맥)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성어에 못지않게 쇠뿔(牛角)에 책을 건다(掛書)는 이 말은 길을 가면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李密(이밀, 582~618)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이밀은 隋(수)나라 때의 명문가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포부가 커 천하를 구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처음 음덕으로 煬帝(양제, 煬은 녹일 양)의 하급관리로 있다가 병으로 사직하고 고향에서 독서에 전념했다. 어느 때 평소 존경하던 학자 包愷(포개)가 살고 있는 곳을 알아내고 먼 길을 가면서도 책을 읽을 방법을 찾다가 묘안을 떠올렸다.

먼저 갯버들을 뜯어 안장을 엮은 뒤 소의 등에 얹고, 양 뿔에 읽던 한서 책을 걸고서는 가면서 책을 읽었다(以蒲韉乘牛 掛漢書一帙角上 行且讀/ 이포천승우 괘한서일질각상 행차독). 蒲는 부들 포, 韉은 언치 천. 한 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책을 읽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 때 길을 지나던 재상 楊素(양소)가 보고 기이하게 여겨 무슨 책을 보고 있느냐고 물은 뒤 자신의 아들과 교유하도록 했다. 歐陽修(구양수) 등이 엮은 ‘新唐書(신당서)’의 이밀전에 실려 전한다.

이밀의 후일은 그러나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양소의 아들 밑에 모사로 들어갔다가 계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반란 집단에 가담하게 되었고, 唐(당)나라에 귀순한 뒤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가 결국 36세 되는 해 살해되고 말았다. 시간을 아껴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한 결과가 허무하다. 학문 외의 세상 흐름에 너무 무심하고 자기 길만 옳다고 여긴 결과가 아니었을까. 열심히 공부하는 태도만은 본받을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피장봉호避獐逢虎 - 노루를 피하다 범을 만나다, 작은 화를 벗어나려다 큰 화를 당하다

피장봉호避獐逢虎 - 노루를 피하다 범을 만나다, 작은 화를 벗어나려다 큰 화를 당하다

피장봉호(避獐逢虎) - 노루를 피하다 범을 만나다, 작은 화를 벗어나려다 큰 화를 당하다

피할 피(辶/13) 노루 장(犭/11) 만날 봉(辶/7) 범 호(虍/2)

노루는 성격이 온순하고 겁이 많다. 작은 무리를 지어 잡초나 나무의 어릴 싹, 잎을 주식으로 한다. 중국이나 만주 아무르 지역에 두루 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 노루에 관련된 속담이 많다. 한자로 번역한 것도 제법 된다. 재미있는 몇 가지만 보자. 打獐之杖(타장지장)은 글자대로 ‘노루 때린 막대기’다. 어쩌다 노루를 잡은 막대기로 늘 잡을 수 있다며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음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노루 꼬리가 길면 얼마나 길까(獐毛曰長 幾許其長/ 장모왈장 기허기장)’는 보잘 것 없는 재주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것을 비웃는다.

덩치가 1m가 넘게 제법 크고 빠른 질주력을 가져 엉겁결에 만나면 깜짝 놀랄 수가 있다. 이런 경우에 노루를 피하면(避獐) 이번에는 호랑이를 만난다(逢虎)를 쓴다. ‘노루 피하니 범이 온다’는 속담을 한역한 것으로 일이 점점 더 어렵고 힘들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풀어서는 避獐而去 乃反遇虎(피장이거 내반우호)가 된다. 避麞逢虎(피장봉호, 麞은 노루 장)도 마찬가지다. 같은 뜻의 속담으로 어려운 느낌은 덜하지만 ‘조약돌을 피하니까 수마석을 만난다’가 있다. 水磨石(수마석)은 물결에 씻겨 닳아서 반들반들한 돌을 말한다.

나쁜 일이 연이어 일어날 때 더 알려진 말로 ‘여우 피해서 호랑이를 만났다’거나 ‘귀신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다’라는 말도 있다. 한 가지 위험을 피하려 전력으로 질주하는데 더 큰 위험이 버티면 진퇴양난이다. 이 경우가 前虎後狼(전호후랑)이다. 元(원)나라 문인 趙雪航(조설항)이 ‘評史(평사)’에서 後漢(후한) 초기 정치의 난맥상을 묘사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외척의 발호를 겨우 막으니 환관이 설친다는 것을 前門拒虎 後門進狼(전문거호 후문진랑)으로 표현했다.

부단한 노력으로 어떠한 일을 성취했을 때 모든 것이 자기 것인 양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럴 때 노루를 빗댄 교훈이 있다. 獐睡犬夢(장수견몽), ‘노루잠에 개꿈이라’는 말은 아니꼽고 같잖은 꿈 이야기나 격에 맞지 않는 말을 할 때다. ‘달아나는 노루 보고 얻은 토끼를 놓았다‘의 奔獐顧 放獲兎(분장고 방획토)란 말대로 욕심을 내다가 모든 것을 잃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십년수목十年樹木 - 십년 뒤를 내다보며 나무를 심다.

십년수목十年樹木 - 십년 뒤를 내다보며 나무를 심다.

십년수목(十年樹木) - 십년 뒤를 내다보며 나무를 심다.

열 십(十-0) 해 년(干-3) 나무 수(木-12) 나무 목(木-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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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인간에게 주기만 한다. 맑은 공기를 공급하고 푸르름을 준다. 열매는 식량으로, 잎과 뿌리는 식용과 약용으로, 줄기는 건축 자재를 제공한다. 그러면서 사람에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깊은 교훈도 준다. 수필가 李敭河(이양하, 敭은 날릴 양) 선생은 노래했다.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한다. 나무는 고독의 철인이요, 安分知足(안분지족)의 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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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을 내다보고 나무를 심으라고 한 이 말은 나무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것이긴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百年樹人(백년수인)과 합쳐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더 막중한 일이라고 중점을 뒀다. 春秋時代(춘추시대) 齊(제)나라의 재상으로 桓公(환공)을 보필하여 春秋五霸(춘추오패)에 오르게 한 管仲(관중)이 한 말로 나온다. 관중은 평생을 도운 鮑叔牙(포숙아, 鮑는 절인물고기 포)와 함께 깊은 우정을 말하는 管鮑之交(관포지교)로도 유명하다. 실제 후세 사람들이 썼지만 관중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는 管子(관자)의 權修(권수)편을 옮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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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의 계획으로는 곡식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고, 십년의 계획으로는 나무를 심는 일만한 것이 없으며, 평생의 계획으로는 사람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다. 한 번 심어 한 번 거두는 것이 곡식이고, 한 번 심어 열 번 거두는 것이 나무이며, 한 번 심어 백 번 거둘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 一樹一獲者穀也 一樹十獲者木也 一樹百獲者人也/ 일년지계 막여수곡 십년지계 막여수목 종신지계 막여수인. 일수일획자곡야 일수십획자목야 일수백획자인야). 나무를 소중히 기르듯이 사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일이니 교육을 百年大計(백년대계)라 하며 국가의 근본사업이라 하는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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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이항이興伊恒伊 - 누가 흥이야 항이야 하랴,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다.

흥이항이興伊恒伊 - 누가 흥이야 항이야 하랴,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다.

흥이항이(興伊恒伊) - 누가 흥이야 항이야 하랴,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다.

일 흥(臼/9) 저 이(亻/4) 항상 항(⺖/6) 저 이(亻/4)

음률이 비슷한 이 성어를 보면 먼저 興淸亡淸(흥청망청)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듯하나 거리가 멀다. 흥청망청은 황음에 빠진 조선 燕山君(연산군)이 採紅使(채홍사)를 두고 전국에서 뽑아 올린 미인을 가리켜 흥청이라 했고 그로 인해 망했다고 망청이라 했다. 여기에서 앞을 생각하지 않고 멋대로 즐기거나 돈과 물건을 마구 낭비하는 것을 뜻하게 됐다. 興伊(흥이)와 恒伊(항이)는 형제의 이름으로 누가 흥이야, 항이야 할까 라는 말이다. 자신과 전혀 관계가 없는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사돈집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는 曰梨曰柿(왈리왈시)와 상통한다.

흥이 항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형제가 상이한 뜻으로 이 성어가 유래했다고 전한다. 먼저 조선 후기의 학자 趙在三(조재삼)의 ‘松南雜識(송남잡지)’에 실린 내용을 보자. 天文(천문)에서 동식물까지 33개 부문을 기술한 백과사전인 이 책의 方言(방언) 편에 속담을 한역한 부분이 나온다. 肅宗(숙종)대 조선 후기 驪興(여흥) 閔氏(민씨) 가문에 閔百興(민백흥)과 閔百恒(민백항)이란 형제 문신이 있었다. ‘이들이 나란히 강원감사를 지냈는데 모두 선정을 베풀어 형인 흥이 낫다, 동생인 항이 낫다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론이 분분했다(兄弟相繼爲江原監司 有善政 至今稱 興伊恒伊/ 형제상계위강원감사 유선정 지금칭 흥이항이).’

다른 이야기는 중기의 문신이자 모두 영의정을 지낸 金壽興(김수흥), 金壽恒(김수항) 형제가 등장한다. 이들은 높은 자리에서 국사를 처리하면서 독단이 심했는지 세간의 평판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러자 이들 형제가 ‘우리들이 힘써서 잡은 권세를 행하는데 누가 감히 흥이야 항이야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민씨 흥이 항이 형제와 김씨 흥이 항이 형제가 각각 다른 의미로 쓰이게 된 연유다.

자신이 맡은 바를 묵묵히 잘 처리하는 사람은 남이 뭐라 해도 갈 길을 간다. 자신의 임무도 신통찮게 하는 사람이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은 잘한다. ‘사람마다 저 잘난 맛에 산다’는 말대로 설사 잘못 처리한 일이라도 남이 지적하면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남의 흉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먼저 자기 자신을 먼저 살펴볼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