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9일 토요일

겸청즉명兼聽則明 - 여러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진다.

겸청즉명兼聽則明 - 여러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진다.

겸청즉명(兼聽則明) - 여러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진다.

겸할 겸(八/8) 들을 청(耳/16) 곧 즉(卩/7) 밝을 명(日/4)

잘 되라고 충고해주는 말을 따르는 것은 어렵다. 분명 옳은 말인데도 귀에 그슬린다. 良藥苦口(양약고구)를 소개할 때 대구로 쓴 忠言逆耳(충언역이) 그대로다. 더군다나 여러 번 되풀이되면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며 외면한다. 보통 사람도 이러한데 지엄한 황제는 더욱 신하의 간언을 지겨워했을 것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兼聽) 자연스럽게 판단을 할 수 있어 현명해진다(則明)는 이 말은 魏徵(위징)의 충언이었다. 唐(당)나라 太宗(태종)은 지겹도록 들은 말을 저버리지 않고 잘 지켜 貞觀(정관)의 治(치)를 이룰 수 있었다. 이 말 바로 뒤에 따르는 偏信則暗(편신즉암)과 같이 쓰기도 한다. 일부에 치우쳐 믿으면 어리석어진다는 뜻이다.

위징(580∼643)이라 하면 당 초기의 공신이자 학자로 재상을 지냈지만 간의대부로서 왕에 직간을 한 것으로 더 유명하다. 처음 高祖(고조)의 맏아들인 李建成(이건성)의 측근이었다가 아우 世民(세민)이 세력다툼에서 이기자 부름을 받았다. 태종이 된 세민이 그의 능력을 눈여겨보고 사면한 뒤 발탁한 것이다. 위징은 이런 줄을 잘못 선 출신상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굴하지 않고 면전에서 강직하게 건의를 했다. 태종이 얼굴을 붉히거나 화를 내어도 위축되지 않고 쓴 소리를 쏟아내 주위의 신하들이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태종이 제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위징에게 왕이 어떻게 해야 밝아지고 어떻게 하면 어리석어지는지 물었다. ‘군주가 현명해지는 것은 여러 방면의 의견을 두루 듣기 때문이며, 아둔해지는 것은 한 쪽으로 치우쳐 몇 사람만의 의견을 믿기 때문입니다(兼聽則明 偏信則暗/ 겸청즉명 편신즉암).’ 위징은 이어서 옛날 堯舜(요순)이 훌륭하게 된 것은 귀가 밝았기에 간신을 구별했고, 秦(진)의 胡亥(호해)나 隋(수)나라 煬帝(양제, 煬은 녹일 양)는 각각 趙高(조고)와 虞世基(우세기)만 믿다가 나라를 그르쳤다고 덧붙였다. 司馬光(사마광)이 편찬한 ‘資治通鑑(자치통감)’에 실린 내용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주유열국周遊列國 - 두루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목적 없이 떠돌다.

주유열국周遊列國 - 두루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목적 없이 떠돌다.

주유열국(周遊列國) - 두루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목적 없이 떠돌다.

두루 주(口/5) 놀 유(辶/9) 벌릴 렬(刂/4) 나라 국(囗/8)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이 周遊(주유)다. 큰 부담 없이, 꼭 해야 한다는 목적 없이 놀러 다닌다면 늘어진 팔자겠다. 온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으면 周遊天下(주유천하)다. 동생인 世宗(세종)에 왕위를 물려주려 서민으로 가장하고 세상을 돌아다닌 讓寧大君(양녕대군)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됐다. 풍자시의 대가 김삿갓(金笠/ 김립)이 돈의 기능을 절묘하게 노래한 것에도 등장한다. ‘천하를 두루 돌아다녀도 누구나 너를 환영하고(周遊天下皆歡迎/ 주유천하개환영), 나라도 가문도 흥하게 하니 너의 힘이 가볍지 않도다(興國興家勢不輕/ 흥국흥가세불경).’

목적 없이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 말고 여러 나라(列國)를 돌아다니게 되면 별 소득 없이 떠돈 것은 맞지만 孔子(공자)에게서 나온 성어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대학자이자 사상가인 공자는 자신이 이상으로 하는 도덕주의를 현실정치에 접목하기 갖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모국 魯(노)나라에서 미관말직을 지내다 56세가 되어 형벌을 관장하는 大司寇(대사구)가 되었다. 상인들은 폭리를 취하지 않고 남의 물건이 땅에 떨어져도 줍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나라가 안정됐다. 노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이웃 나라에서 군주에게 뇌물을 주고 공자를 퇴진시켰다.

실망한 공자는 제자들을 이끌고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펼칠 수 있는 나라를 찾기 위해 13년 동안이나 헤맸다. 공자의 주유는 순탄하지 못했다. 공자가 楚(초)나라에 초빙되어 갈 때 陳(진)과 蔡(채)나라의 대부들이 길목을 막고 사람들을 풀어 포위했다. 자신들이 행했던 병폐들이 드러나 위험해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식량이 떨어지고 따르는 사람이 병에 들기도 한 陳蔡之厄(진채지액)의 봉변이다. 鄭(정)나라에선 제자들과 길이 어긋나 모두 공자를 찾아 나섰는데 한 사람이 추췌한 모습을 보고 ‘상가의 개(喪家之狗)’라고 표현하는 수모도 당했다.

공자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노나라로 다시 돌아와 후진 교육에 힘쓰게 됐다. 원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주유는 공자도 실패할 정도로 어렵다. 단지 구경만을 위한, 머리를 식히기 위한 여행은 즐겁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어묵찬금語嘿囋噤 – 말하기와 입 다물기, 잘 분간하여 말하다.

어묵찬금語嘿囋噤 – 말하기와 입 다물기, 잘 분간하여 말하다.

어묵찬금(語嘿囋噤) – 말하기와 입 다물기, 잘 분간하여 말하다.

말씀 어(言/7) 고요할 묵(口/12) 기릴 찬(口/19) 입다물 금(口/13)

잘 쓰이지 않는 어려운 한자로 모은 이 성어는 모두 말과 관계가 있다. 語(어)는 말하다, 嘿(묵)은 입을 다물어 고요하다, 囋(찬)은 기리다 외에 시끄럽게 떠들다, 噤(금)은 입 다물다, 닫다란 뜻이다. 말하는 것과 입 다문 것을 나란히 세워 말하는 것도 중요하고, 침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니 자리를 잘 분간하여 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입은 모든 재앙의 문이라며 口禍之門(구화지문), 禍生於口(화생어구) 등을 비롯한 많은 성어가 말을 조심하라고 가르쳤다. 반면 침묵이 아무리 금이라 하여 입 무거운 것을 훌륭하다고 떠받들어도 말을 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는 성어도 적지만 있다. 말을 해야 할 자리에 입을 꾹 닫고 있는 모습을 비꼬아 찬바람 맞은 매미처럼 다물고 있다고 한 噤若寒蟬(금약한선)이 그것이다.

孔子(공자)가 仁(인)에 대하여 제자 顔淵(안연)이 묻자 답한 내용에는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행동하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는 것이 있다.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는 것은 무턱대고 입 다물지 말고, 말하는 것에 신중을 기하여 이치를 따져 보고 말하라는 것이다.

정민 교수의 ‘一針(일침)’에는 말하기와 침묵하기에 대해 여러 조선 문인들의 가르침을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먼저 조선 중기의 문신 申欽(신흠, 1566~1628)이 象村稿(상촌고)에서 말한다. ‘말해야 할 때 침묵을 지키는 것도 그르고, 침묵해야 할 때 말하는 것도 그르다. 반드시 말해야 할 때 말을 하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해야만 군자라 할 수 있다(當語而嘿者 非也 當嘿而語者 非也 必也當語而語 當嘿而嘿 其唯君子乎/ 당어이묵자 비야 당묵이어자 비야 필야당어이어 당묵이묵 기유군자호).’

조선 후기의 유학자 李恒老(이항로, 1792~1868)는 그의 문집 華西集(화서집)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말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은 진실로 굳센 자만이 능히 한다.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대단히 굳센 자가 아니면 능히 하지 못한다(當言而言 固强者能之 當默而默 非至强不能也/ 당언이언 고강자능지 당묵이묵 비지강불능야).’

조선 후기 덕행과 문장으로 유명했던 학자 金邁淳(김매순, 1776~1840)은 결론짓는다. ‘물었는데 대답을 다하지 않는 것을 함구라 하고, 묻지 않았는데도 내 말을 다해주는 것은 수다라 한다(問而不盡吾辭 其名曰噤 不問而惟吾辭之盡 其名曰囋/ 문이부진오사 기명왈금 불문이유오사지진 기명왈찬).’

속에 온갖 계획이 들어있다고 해도 말 안하면 귀신도 모른다. 말 잘 하는 사람이 나서 온갖 주장을 늘어놓을 때 아니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용자다. 침묵이 무조건 미덕인 것만은 아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척구폐요跖狗吠堯 - 도척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다,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다.

척구폐요跖狗吠堯 - 도척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다,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다.

척구폐요(跖狗吠堯) - 도척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다,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다.

발바닥 척(足/5) 개 구(犬/5) 짖을 폐(口/4) 요임금 요(土/9)

중국에서 악독한 사람을 한 사람 들라면 盜跖(도척, 跖은 발바닥 척)이 꼽힌다. 春秋時代(춘추시대) 무리 9000명을 이끌고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며 살인과 노략질을 일삼은 불한당이었다. 그의 형 柳下惠(유하혜)는 孔子(공자)의 친구이면서 인격자로 망나니 동생을 둔 셈이다. 싫어하는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통쾌히 여긴다는 ‘도척의 개 범 물어 간 것 같다’는 속담까지 생겼다. 전설상이긴 하지만 중국의 堯(요)임금은 백성들을 덕으로 다스려 성군으로 알려져 있다. 이 극단적인 두 사람을 대비하면서 중간에 개를 등장시켜 재미있는 성어가 나왔다.

천하의 도둑 도척이 기르는 개(跖狗)가 성천자인 요임금을 보고 짖는다(吠堯)는 뜻이다. 개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가축에서 伴侶(반려)로 승격했지만 어진 사람이라도 처음 보면 짖을 수밖에 없다. 개를 나무랄 수 없듯이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모시는 주인에게 충실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악한 자의 무리에 섞여서 어진 사람을 미워한다거나 자칫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착한 자를 도리어 해치게 된다는 것도 뜻하게 됐다. 포악한 桀王(걸왕)의 개가 요임금을 향해 짖는다는 桀犬吠堯(걸견폐요)와 똑 같은 말이다.

漢高祖(한고조)는 項羽(항우)를 물리치고 천하통일 했으나 자신을 도왔던 공신들을 끝까지 믿지 못했다. 대장군 韓信(한신)이 반란을 일으킨다고 잡아들이고 그를 부추긴 모사 蒯通(괴통, 蒯는 기름새 괴)을 문초했다. 한신에게 천하를 삼분하라고 했다며 삶아 죽이려 했다. 괴통이 억울하다며 변호에 나선다. ‘도척의 개라도 요임금을 보고 짖는 것은 나쁜 사람이라 짖는 것이 아닙니다. 개는 주인 아닌 사람을 만나면 짖기 때문입니다(跖之狗吠堯 堯非不仁 狗因吠非其主/ 척지구폐요 요비불인 구인폐비기주).’ 괴통에게는 한고조가 아니라 한신이 주인이었기 때문이라 했다. 한고조는 그의 입장을 이해하고 풀어 주었다. ‘史記(사기)’ 淮陰侯(회음후) 열전에 실려 있다.

요임금을 보고 주인이 아니라고 짖어댄 개를 나무랄 수 없다. 조직을 위해 몸을 바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은 의리 있다고 칭찬 받는다. 다만 주인이 도척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계속 선한 사람들을 보고 짖는다면 짐승은 용서받을지 몰라도 사람은 판단력 부족이다. 조직적인 범죄가 적발됐을 때 우두머리는 물론 중벌을 받지만 도왔던 부하들의 죄도 작지 않음은 물론이다. 잘못 가는 리더를 바로잡는 것도 조직원의 임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앙인비식仰人鼻息 - 남이 숨 쉬는 것만 바라보다.

앙인비식仰人鼻息 - 남이 숨 쉬는 것만 바라보다.

앙인비식(仰人鼻息) - 남이 숨 쉬는 것만 바라보다.

우러를 앙(亻/4) 사람 인(人/0) 코 비(鼻/0) 쉴 식(心/6)

일을 시키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지시를 잘 따르는 사람이 마음에 들 것이다. 그보다 더 훌륭한 부하는 말하기 전에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상관이 하는 일에 건건이 비위나 맞추는 嘗糞之徒(상분지도)의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보다는 낫지만 자율적으로 하지는 못하고 윗사람의 하명만 기다리는 부하도 답답하다.

모두 상관이 대하는 태도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윗사람이 숨 쉬는 대로(鼻息) 바라본다(仰人)는 이 성어도 伏地不動(복지부동)의 태도를 가리킨다.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여 살아가거나 주체성이 전혀 없이 남의 눈치를 살피고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는 것을 비유하게 됐다.

이 말은 後漢(후한)을 세운 光武帝(광무제)부터 13대 196년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後漢書(후한서)’에 나온다. 말년 獻帝(헌제)에 이르러 각 주군의 장관들이 세력을 결집하는 바람에 나라는 四分五裂(사분오열) 상태였다. 渤海(발해) 태수 袁紹(원소)가 무도한 董卓(동탁) 정벌에 나서자 많은 고을의 태수들이 호응했다. 맹주로 추대된 원소는 冀州(기주) 땅을 빼앗아 근거지로 삼으면 성공할 것이라는 부하 말을 듣고 자사 韓馥(한복, 馥은 향기 복)에게 귀순을 설득했다.

성격이 나약한 한복은 겁을 먹고 땅을 내주려고 했으나 측근인 耿武(경무, 耿은 빛날 경)와 閔純(민순) 등이 나서 간언했다. ‘기주가 보잘것없지만 군대가 아직 강하고 식량도 넉넉합니다. 원소는 먼 곳에서 와 기진맥진한데다 궁지에 빠진 군대라서 우리의 콧김만 바라보고 있습니다(孤客窮軍 仰我鼻息/ 고객궁군 앙아비식).’ 하지만 한복은 상대의 덕을 헤아려 양보하는 것은 귀히 여겨야 할 일이라며 항복했고 이후 유명무실한 장군으로 몰락하고 말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거실 풍수인테리어 기법 ⑧

거실에서 발코니 및 외부로 통하는 문은 거실 크기에 따라 적당한 크기로 하여야 하며, 거실에서 보아 전망이 좋으면 운(運)이 상승한다.

너무 좁은 문은 기(氣)의 흐름을 억제하여 거주하는 사람의 운(運)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거실의 문은 양쪽 벽에서 중앙에 설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거실의 천장은 높은 것이 좋으나, 아파트의 경우 높이가 제한되어 있어, 높이 조절이 불가능하나 주택의 경우 높은 천장은 운(運) 상승에 도움을 준다.

또한, 간혹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 발코니 확장 공사로 인해서 발코니 부분과 거실 천장의 높이가 다른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기(氣)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서, 가정에 금전적인 고통이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며, 가족의 화목이나 부부불화 등을 유발 할 수 있다.

풍수인테리어를 적용하여 인테리어를 하면, 사람의 선천 운(運)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날 수 있으나 재물, 건강, 명예, 가정에 화목을 이끌어 내는데 있어 좋은 기(氣)가 상승하여 많은 도움이 된다.

♣ IFSA 국제풍수협회 선정 2018 대한민국 최고 풍수인테리어 전문가

문의 : 010-2432-5522, http://cafe.daum.net/kkb2005

안불망위安不忘危 - 편안한 중에서도 위험을 잊지 않는다.

안불망위安不忘危 - 편안한 중에서도 위험을 잊지 않는다.

안불망위(安不忘危) - 편안한 중에서도 위험을 잊지 않는다.

편안 안(宀/3) 아닐 불(一/3) 잊을 망(心/3) 위태할 위(卩/4)

편안한 가운데서도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위태로움을 잊지 않는다는 좋은 뜻의 성어다. 똑 같은 의미의 居安思危(거안사위)는 태평성대가 계속될 때 장차 있을 수 있는 위험을 생각하라는 有備無患(유비무환)의 첫 단계라 했다. 이 말로 연상되는 것이 安重根(안중근)의사의 유묵이다. 見利思義(견리사의), 見危授命(견위수명)이다. 의미는 약간 달라 이익을 보면 의리를 먼저 생각하고, 위급함을 보면 목숨을 던진다는 孔子(공자) 말씀이다.

위기의식은 위험이 닥쳐서 알면 이미 늦고 항상 안락할 때 미리 대비해야 한다. 이처럼 간단한 말이

중국 고대 夏殷周(하은주) 때부터의 ‘周易(주역)’에서 유래했다니 의외다. 유학 五經(오경)의 하나로 처세상의 지혜이며 우주론적 철학이라는 평가를 받아 易經(역경)이라고도 한다. 또한 孔子(공자)가 얼마나 탐독했던지 가죽으로 엮은 끈이 여러 번 끊어졌을 정도라는 韋編三絶(위편삼절)의 고사가 나온 책으로도 유명하다. 공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주역을 체계적으로 해석하여 十翼(십익)도 남겼다고 한다.

彖傳(단전, 彖은 판단할 단), 象傳(상전) 등 7종 10편으로 이루어진 십익 중에서 가장 핵심사상이라는

繫辭傳(계사전) 하편에 이 말이 나온다. 공자가 한 말로 지금 위태한 자는 경계하는 마음이 없었던 자이고, 멸망한 자는 항상 존속할 것으로만 생각했다며 이어진다. ‘군자는 태평할 때에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순탄할 때에도 멸망을 잊지 않으며, 잘 다스려질 때에도 혼란을 잊지 않는다(君子安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 군자안이불망위 존이불망망 치이불망란).’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과 가정,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고 했다.

개인이나 단체나 위기에 대비하여 스스로 경계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나라를 수호하는 국군장병들이 자나 깨나 새겨야 할 말이다. 남북이 지금은 많이 호전되어 이전과 같은 대치상태가 없어졌다고 해도 언제 다시 상황이 바뀔지 모른다. 만약을 대비하는 것이 안보이고 그것은 통일이 되어서도 나쁠 것이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여리박빙如履薄氷 - 살얼음 밟듯이 아슬아슬하다.

여리박빙如履薄氷 - 살얼음 밟듯이 아슬아슬하다.

여리박빙(如履薄氷) - 살얼음 밟듯이 아슬아슬하다.

같을 여(女/3) 밟을 리(尸/11) 엷을 박(艹/13) 얼음 빙(水/1)

사람은 살아가면서 원하지 않아도 위험과 맞닥뜨린다. 미리 알고 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선조들은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숱한 금언을 남겼다. 바람 앞으로 등잔을 갖다놓지 않아야겠고(風前燈火/ 풍전등화), 한 가닥의 머리칼로 무거운 물건을 매달아서는(一髮千鈞/ 일발천균) 단번에 떨어지니 피해야 한다.

‘세 살 난 아이 물가에 놓은 것 같다’는 속담은 바라보는 부모가 속이 타니 안전한 곳으로 데려갈 일이다. 마찬가지로 초겨울 살짝 언 살얼음(薄氷)을 겁 없이 밟는 것(如履)과 같다는 이 성어도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일을 피하라고 비유적으로 말할 때 많이 사용된다. 줄여서 履氷(이빙)이라고도 한다.

앞서 매사가 두려워 겁을 먹고 벌벌 떨며 조심한다는 戰戰兢兢(전전긍긍)을 소개했는데 이 말도 함께 동양 최고의 시집이라 하는 ‘詩經(시경)’에서 유래한다. 小雅(소아)편 小旻(소민)의 마지막 6연에 나오는 내용을 다시 보자. ‘두려워 벌벌 떨며 삼가는데, 마치 깊은 연못을 건너는 듯하네, 마치 엷은 얼음 위를 걷는 듯하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전전긍긍 여림심연 여리박빙).’ 周(주)나라 말기의 학정에 살아가려면 깊은 연못가에 있는 것처럼,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불안에 떨며 조심한다는 이야기다.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여 피해야 한다는 말이 한꺼번에 3개가 연결되어 특이하다.

‘論語(논어)’ 泰伯(태백)편에는 공자의 문인 가운데 효행으로 으뜸가는 曾子(증자)가 병이 깊어지자 제자들을 불러 한 말에 그대로 인용했다. 자신의 손과 발이 손상된 곳이 없는지 펴 보이게 하면서 말한다. ‘시경에 두려워하고 삼가기를 못가에 서 있듯 하고, 얇은 얼음을 밟듯 하라 했는데 이제야 그런 걱정을 면하게 되었구나(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시운 전전긍긍 여림심연 여리박빙 이금이후 오지면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신체를 훼손할까 두려워하던 근심에서 벗어났다고 그제야 안심하는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故송재호, '반세기 연기인생' 남기고 떠난 '국민 아버지'..애도 물결

◇ 故송재호, 반세기 연기인생 남기고 떠난 국민 아버지..애도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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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송재호, 반세기 연기인생 남기고 떠난 국민 아버지..애도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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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아버지’ 고(故) 송재호가 반세기 연기 인생을 남기고 별세했다. 향년 83세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따르면 고 송재호는 지병으로 1년 이상 투병하다 지난 7일 오후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중에게는 친근한 이미지의 배우로 ‘국민 아버지’라 불리며 꾸준히 사랑받았던 고 송재호. 그의 별세 소식에 대중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평안남도 출신으로 1959년 KBS 부산방송총국 성우로 데뷔한 한 고 송재호는 1964년 영화 ‘학사주점’을 통해 배우로 데뷔, 반세기를 대중과 함께한 배우다.

1968년 KBS 특채 탤런트로 선발된 고 송재호는 200편 넘는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쳤다. 대표작으로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드라마 ‘보통사람들’, ‘열풍’, ‘부모님 전상서’ 등이 있다.

특히 고 송재호는 지난해 영화 ‘질투의 역사’, ‘자전차왕 엄복동’에도 출연하는 등 병세가 깊어지기 전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갈 정도로 연기에 대한 열정을 보여줬다.

고 송재호는 오랜 연기 생활을 하며 반항아 역할부터 인자한 아버지 역까지 다양한 색깔의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고인은 연기자로 활동한 것 뿐 아니라 979년 서울용호구락부 소속 사격연맹에 선수로 등록됐고, 국제사격연맹 심판 자격등도 갖춰 1986년 아시안게임 사격종목 국제심판, 1988년 서울 올림픽 사격종목 보조심판으로도 활동했다.

또한 99하남국제환경박람회조직위원회 홍보위원으로 활동했고 최근까지 야생생물관리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홀트아동복지회 홍보대사, 문화재사랑 어린이 창작동요제 홍보대사 지냈다.

대중과 오랜 시간 친숙한 배우였던 고 송재호. 그의 별세 소식에 대중은 “작은 거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익숙한 대한민국의 아버지, 이웃 아저씨 같은 송재호 편히 쉬길”, “좋은 연기 감사했다”, “좋은 곳으로 가시길” 등 추모를 이어가고 있다.

-OSEN-

◇ 코로나 청정 강원도 인구가 는다?

◇ 코로나 청정 강원도 인구가 는다?

◇ 코로나 청정 강원도 인구가 는다?

민원홍씨 가족은 2015년 경기도 용인시에서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으로 이사했다. 경기도에 있는 중소기업에서 기계 설계 엔지니어로 한창 일하던 시절이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초등학생 아들은 모르는 사이에 훌쩍 커버렸다. 더 늦기 전에 가족과 여유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강원도로 이주한 것이다. 현재 민씨는 ‘토종 다래’ 농사를 짓는다. 민씨는 “수입은 과거의 10분의 1 수준이지만, 가족이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정말 만족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지역도 있다. 이 가운데 하나가 남한 최북단에 있는 강원도다. 통계청 월별 인구 동향에 따르면 강원도 인구는 2016년 155만1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감소했다. 올해 4월에는 153만8000여 명이었다. 하지만 5월부터 넉 달 연속 인구가 소폭 늘어나면서 8월에는 154만1000명을 기록했다. 강원도 18시군별로 보면 춘천·태백·철원·양구를 제외한 14시군이 올해 5월부터 7월 사이 인구가 조금이라도 늘어났다.

이 현상은 외지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 인구가 늘어나려면 자연 증가(출생자가 사망자보다 많음)나 사회 증가(전출자가 전입자보다 많음)가 일어나야 한다. 강원도는 사회 증가 덕분이다. 올해 들어 7월까지 강원도로 전입한 인구는 4만9192명이지만, 강원도를 빠져나간 인구는 4만8264명이다. 928명이 순유입해 인구 증가를 이끌었다.

외지인들이 강원도로 이주하는 이유로는 자연환경이 꼽힌다. 강원도 인구 담당 황삼 사무관은 “미세 먼지 걱정과 코로나19 감염 우려 등이 커지는 터라 피곤했던 도시 삶에서 벗어나겠다는 중장년층이 강원도로 이주하는 추세”라고 했다. 평창올림픽을 거치면서 원주, 강릉을 비롯해 횡성, 평창 등 강원도 주요 시군으로 KTX가 운행하는 등 교통 사정이 나아진 것도 강원도 인구 증가에 한몫했다.

이와 함께 인구 감소로 지역이 쇠락하는 것을 막으려는 지자체들의 노력도 어느 정도 빛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부터 강원도는 인구 증가 정책의 하나로 강원도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에게 부모 소득과는 관계없이 4년 동안 월 30만원씩 총 1440만원을 지급한다. 속초시 인구 담당 김연설 주무관은 “속초뿐만 아니라 고성·양양·인제에 사는 군인들은 이전에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고 돌아갔지만, 수당을 주다 보니 ‘전입신고를 해서 강원도민이 될 수 있느냐’는 문의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내 18시군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이 증가한 원주시는 공공 기관과 기업들이 옮겨 간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2018년 9월 인구가 34만6000여 명이었는데, 2020년 9월에는 35만3000여 명으로 7000여 명 늘었다. 2013년 서울에서 원주로 옮겨 간 산림항공본부 천우성(35) 주무관은 “교통이 발달하면서 서울에서 1~2시간이면 갈 수 있고, 집값도 싸기 때문에 원주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