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9일 토요일

득과차과得過且過 - 그럭저럭 되어가는 대로 살다, 한가하게 세월을 보내다.

득과차과得過且過 - 그럭저럭 되어가는 대로 살다, 한가하게 세월을 보내다.

득과차과(得過且過) - 그럭저럭 되어가는 대로 살다, 한가하게 세월을 보내다.

얻을 득(彳/8) 지날 과(辶/9) 또 차(一/4) 지날 과(辶/9)

일이나 행동을 적당히 하는 모양을 대충, 또는 대충대충이라 하는데 원래 大總(대총)에서 나왔다고 한다. 대강으로라도 전체를 모으고 거느린다는 뜻이 얼렁뚱땅 해치운다는 편의주의로 변했다. 자신의 능력에 넘치는 일은 아예 손대지 말아야 하는데 대충 했다가는 더 그르치게 된다. 그런데 아예 도전하지도 못할 처지라면 바람이 불고 물결이 치는 대로 그저 따라가기만 할 수밖에 없는 風打浪打(풍타낭타)가 된다.

굳은 의지와 기력이 없이 그럭저럭 되어가는 대로 사는 것을 뜻하는 것이 이대로 보내고(得過) 저대로 보내자(且過)라는 성어다. 별로 하는 일 없이 한가하게 세월을 보내는 것을 이르기도 한다.

이 말의 출전은 중국 元(원)나라말 明(명)나라 초의 학자 陶宗儀(도종의)가 지은 ‘輟耕錄(철경록)’이란 책이다. 당시의 법령과 병란에 관해 쓴 책이라는데 전설에 관한 언급 중에 나온다. 산시성山西省/ 산서성 북동부에 있는 불교의 성산 五臺山(오대산)에 寒號鳥(한호조)라고 하는 다리가 넷이고 날개는 있지만 날지 못하는 새가 살았다. 여름에는 봉황보다 낫다는 울음을 울다가 겨울에는 털이 빠진 초라한 모습으로 ‘이 때의 울음소리는 그럭저럭 지내면서 되는대로 살아가자(遂自鳴曰 得過且過)’로 들렸다. 겨울이 오면 고생할 줄 모르고 여름 한철 우쭐대다 몰락하는 행태를 비유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李圭景(이규경, 1788~1856)의 ‘五洲衍文長箋散稿(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조선 후기 실학을 일으키는데 큰 공을 세운 李德懋(이덕무)의 손자답게 이규경의 이 책은 천문, 지리에서 조류와 어류까지 광범위하게 다룬 백과사전이다. 經史編(경사편) 禮記(예기)에 있는 氣候月令辨證說(기후월령변증설) 부분이다. 五靈山(오령산)에 발이 네 개인 닭과 같은 동물이 사는데 여름에는 깃털이 오색이라 ‘봉황도 나만 못해(鳳凰不如我/ 봉황불여아)’라며 울다가 동지가 되면 털이 빠져 ‘그럭저럭 지내자(得過且過/ 득과차과)’라 울며 괴로워한다고 했다.

이 새가 실제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교훈은 분명하다. 평소의 평온한 시절이 계속 이어질 줄 알고 위험 신호가 있어도 괜찮겠지 하다 사고가 나면 호들갑을 떤다. 어려움이 닥쳐도 얼렁뚱땅 수습을 하고선 또 잊는다. 풍자시의 천재 金笠(김립)이 꼬집은 대로다.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대로, 바람 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차죽피죽화거죽 풍타지죽랑타죽)’ 살아간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미래가 없다. 어려움이 닥쳐 희망이 없는 젊은이들에겐 더욱 이런 습성을 물려줘선 안 된다. 바람이 불면 가장 먼저 엎드리는 것이 풀이지만 지나가면 또 가장 먼저 일어나 원상을 회복시킨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귤화위지橘化爲枳 – 강남의 귤이 강북에선 탱자가 된다, 환경에 따라 바뀐다.

귤화위지橘化爲枳 – 강남의 귤이 강북에선 탱자가 된다, 환경에 따라 바뀐다.

귤화위지(橘化爲枳) – 강남의 귤이 강북에선 탱자가 된다, 환경에 따라 바뀐다.

귤 귤(木/12) 될 화(匕/2) 하 위(爪/8) 탱자 지(木/5)

孟子(맹자)의 어머니가 처음 공동묘지에서 장터 근처로, 서당 옆으로 이사를 한 것은 어린 맹자가 주변에서 본 것을 자꾸 흉내 내기 때문이었다. 아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찾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한 三遷之敎(삼천지교)는 사람에게 끼치는 환경의 중요성을 말할 때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성어다.

환경이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환경을 만든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주변의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다. 먹을 가까이 하면 자신도 검어진다는 近墨者黑(근묵자흑)이나 죽죽 곧은 삼밭에 있으면 원래 구불구불 자라는 쑥이 붙들어주지 않아도 곧게 된다는 蓬生麻中(봉생마중)은 나쁜 환경과 좋은 환경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강남에서 자라던 귤을 강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이 말도 주위 환경에 따라 결과가 바뀐다는 의미다. 江南種橘 江北爲枳(강남종귤 강북위지)를 줄여 南橘北枳(남귤북지)라고도 한다. 春秋時代(춘추시대) 齊(제)나라의 晏嬰(안영)은 관중과 함께 가장 뛰어난 명재상으로 꼽혀 晏子(안자)라고도 불린다.

근검절약을 실천하고 세 임금을 모시며 어떤 상황에서도 충간을 서슴지 않아 단신이었지만 거인으로 모두에게 우러름을 받았다. 어느 해 안영이 楚(초)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안영이 지모가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은 靈王(영왕)이 시험하기 위해 첫 만남에서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라고 비꼬았다. 작은 키를 놀리는 것을 알고 안영은 보잘것없는 나라에 사신을 보낼 때는 작은 사람을 보낸다고 받았다.

연회 자리에서 한 관리가 도둑을 끌고 와 제나라 사람이라 하자 영왕은 그 나라에는 모두 도둑질을 하는지 물었다. 안영이 대답한다. ‘귤이 회남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에서 자라면 탱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과실의 맛은 다릅니다(聞之 橘生淮南則爲橘 生於淮北爲枳 葉徒相似 其實味不同/ 문지 귤생회남즉위귤 생어회북위지 엽도상사 기실미부동).’ 제나라에선 바른 사람도 초나라로 오면 도둑질을 하게 된다는 일침이었다. ‘晏子春秋(안자춘추)’에 실린 이야기다.

오늘날의 孟母(맹모)는 자식을 위해서 좋은 환경으로 이사를 해주고 싶어도 높은 부동산 값으로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학군을 위한 환경을 찾아서이지만 이런 맹모는 칭송을 받기보다 지탄을 받는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전도유랑前度劉郞 - 지난번의 유랑, 세월이 지나 옛 고장에 다시 찾아옴

전도유랑前度劉郞 - 지난번의 유랑, 세월이 지나 옛 고장에 다시 찾아옴

전도유랑(前度劉郞) - 지난번의 유랑, 세월이 지나 옛 고장에 다시 찾아옴

앞 전(刂/7) 법도 도(广/6) 묘금도 류(刂/13) 사내 랑(阝/7)

언뜻 이 성어를 들으면 앞으로 잘 될 희망이 있다는 前途有望(전도유망)을 연상하기 쉽다. 지난번(前度)의 유랑(劉郞)이라 해도 뜻은 막막하다. 유랑이란 사람이 다시 왔다, 오랜 시일이 지나서 옛 고장에 돌아왔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유랑이란 이름이 가리키는 사람은 대체로 둘이 등장하는데 중국 後漢(후한) 2대 明帝(명제) 때의 劉晨(유신)과 中唐(중당) 때의 유명시인 劉禹錫(유우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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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유신은 친구와 함께 약초를 캐러간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두 미인을 만나 부부로 살았다. 반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변하고 낯선 사람들도 자신들의 7대손이었단다. 다시 산으로 들어가 보니 미인들은 찾을 수 없고 그들이 선녀들이었다는 전설에서 나왔다. 劉義慶(유의경)이 쓴 幽明錄(유명록)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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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석은 조정의 미움을 받아 10년이나 지방으로 떠돌다 長安(장안)의 도관인 玄都觀(현도관)을 찾았다. 복숭아꽃으로 이름난 이 곳을 보고 시를 지었다. ‘현도관에 심은 천 그루 복숭아나무는, 모두 유랑이 떠난 뒤에 심은 것이로구나(玄都觀裏桃千樹 盡是劉郞去後栽/ 현도관리도천수 진시유랑거후재).’ 이 시가 고관대작을 풍자한 것이라는 혐의를 받은 유우석은 다시 지방으로 좌천됐다가 10여년이 지나 올라왔다. 현도관의 복숭아나무는 없어져 감회가 없을 수 없었다. ‘복숭아 심던 도사는 어디로 갔는가, 지난 번의 유랑이 지금 다시 왔는데(種桃道士歸何處 前度劉郞今又來/ 종도도사귀하처 전도유랑금우래).’

이런 유래가 이채로웠던지 우리의 고전에도 다수 인용된 것을 볼 수 있다. 고려 말기의 문신 韓脩(한수, 1333~1384, 脩는 길 수)는 天壽寺(천수사)라는 절에서 연꽃을 구경하며 읊는다. ‘꽃이 피며 꽃이 지고 몇 번이나 새로웠나, 전에 왔던 유랑이 지금은 노인 됐네(花開花落幾回新 前度劉郞今老人/ 화개화락기회신 전도유랑금로인).‘ 조선 중기의 학자 崔岦(최립, 1539~1612, 岦은 산우뚝할 립)은 ’簡易集(간이집)‘에서 노래한다. ’선인은 옛날에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돌아왔고, 유랑도 한번 떠났다가 십 년 만에야 돌아왔네(仙人昔有去家千 前度劉郞亦十年/ 선인석유거가천 전도유랑역십년).‘

한 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 추억을 되새기며 예전에 왔던 곳을 다시 찾는 것을 비유하는 이 말을 달리 再度劉郞(재도유랑)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엔 별로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옛 시조에서 읊었듯이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고’, 가요에 등장하는 ‘고향에 찾아 와도 그리던 고향이 아닐‘ 경우가 대다수다. 뽕나무밭이 아파트촌으로 워낙 빨리 변하는 세태에다 삭막해진 사람들의 성정 탓도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 아닐까.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하로동선夏爐冬扇 -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 쓸모없는 물건

하로동선夏爐冬扇 -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 쓸모없는 물건

하로동선(夏爐冬扇) -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 쓸모없는 물건

여름 하(夊/7) 화로 로(火/16) 겨울 동(冫/3) 부채 선(戶/6)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이 가장 값지다. 겨울을 따스하게 보내는데 햇볕만큼 값진 것이 없다며 이것을 임금께 드리려는 농부의 獻曝之忱(헌폭지침, 忱은 정성 침) 선물이라도 어리석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성이 담겼더라도 격이나 때에 맞춘 것이 아니면 도무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농부의 햇볕 선물을 땀 흘리는 여름에 줬다면 주고도 벌 받을 일이다.

마찬가지로 여름철에 화로(夏爐)를 내놓거나 겨울철에 부채(冬扇)를 선물한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필요할 때는 환영받다가 불편해지면 천대받는 사물, 또는 아무 소용없는 말이나 재주를 비유하는 성어가 됐다. 冬扇夏爐(동선하로), 秋風團扇(추풍단선), 秋扇(추선)이라 해도 같은 뜻이다.

後漢(후한) 초기의 사상가이자 학자인 王充(왕충, 27~97)은 독창성이 넘치는 자유주의, 언론자유를 내세워 속된 신앙, 유교적 권위를 비판해 중국사상사에서 지위가 우뚝하다. 대표적 저서인 ‘論衡(논형)’은 당시의 전통적인 학문과 정치를 비판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逢遇(봉우)편의 내용을 보자. 벼슬길에 나아감에 있어서의 운명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어질고 총명한 사람은 중용되어야 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자신의 잘못이라 주장한다. ‘이로울 것 없는 재능을 바치고 보탬이 되지 않는 의견을 내는 것은 여름에 화로를 올리고 겨울에 부채를 바치는 것과 같다(作無益之能 納無補之說 以夏進爐 以冬秦扇/ 작무익지능 납무보지설 이하진로 이동진선).’

이것은 군주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고,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는 것이니 화를 입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 했다. 그런데 군주와 신하가 연이 닿지 않으면 유익한 진언을 해도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반대로 부덕을 지적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복을 받는 경우도 있다. 비록 여름의 화로라도 축축한 것을 말릴 수 있고 겨울철 부채도 불씨를 일으킬 수 있으니, 빛을 받지 못해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각박하게 취급하지 말라는 이야기의 전제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단두장군斷頭將軍 - 죽음도 두려워 않는 용감한 장수

단두장군斷頭將軍 - 죽음도 두려워 않는 용감한 장수

단두장군(斷頭將軍) - 죽음도 두려워 않는 용감한 장수

끊을 단(斤/14) 머리 두(頁/7) 장수 장(寸/8) 군사 군(車/2)

목을 자른다는 섬찟한 단어 斷頭(단두)라 하면 대뜸 사형도구 斷頭臺(단두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때인 1789년 의사 출신의 국민의회 의원 기요탱(Guillotin)의 제안으로 만들어져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등 많은 사람을 처형했기에 공포정치의 상징이 됐다. 1814년 자연사한 기요탱 자신도 이것으로 목이 달아났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발명 초기엔 죄수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발명품이라 했다. 그런데 머리가 떨어진 장군이라면 적진에서 종횡무진 적군을 쓰러뜨리는 용맹스런 장군으로 알기 쉽다. 용감한 장군임은 틀림없어도 이 말은 죽음에 굴복하지 않고 군사를 지휘 통솔하는 장수를 가리켰다.

중국 後漢(후한) 말기 魏蜀吳(위촉오)가 정립한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 때 이야기다. 劉備(유비)는 孫權(손권)과 연합하여 赤壁大戰(적벽대전)에서 曹操(조조)를 대파하고 荊州(형주)지역을 확보했다. 험난한 형주에서 물산이 풍부한 西川(서천)지역으로 진격하기 위해 유비는 의형제 張飛(장비)와 함께 나섰다.

거칠 것 없이 나가던 장비의 대군은 노장 嚴顔(엄안)이 지키던 江州(강주)에 이르렀을 때 막혔다. 엄안이 싸움에 응하지 않고 성문을 굳게 지키며 장비군이 군량이 떨어져 물러나기를 기다리는 작전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몇 차례 싸움 끝에 계략을 써서 성을 점령하고 엄안을 겨우 생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안은 장비 앞에 끌려 와서도 꿇어앉으려 하지 않았다. ‘三國志(삼국지)’ 蜀書(촉서)나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 등에서 이 부분을 묘사하면서 성어가 나온다. 장비가 엄안을 향해 대장이 이 지경에 이르고도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느냐며 꾸짖었다. 엄안이 낯빛도 흐리지 않고 태연히 대답한다. ‘우리 고을에는 머리 잘릴 장수는 있을지언정 항복하는 장군은 없다(我州但有斷頭將軍 無有降將軍也/ 아주단유단두장군 무유항장군야).’ 머리를 자르라고 길길이 뛰던 장비도 엄안의 굳센 기상에 노여움을 풀고 단상에서 내려와 사죄한 뒤 예의로 그를 맞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옛날 우리의 死六臣(사육신)이나 영웅담에서 등장한다. 외적의 침입을 당하고서 百折不屈(백절불굴)의 정신을 보여줬던 조상들의 용기는 기리면서도 오늘날 현대인은 윗사람의 잘못을 보고서 침묵하는 것이 대다수다. 특히 바른 말, 쓴 소리 잘 한다고 큰소리치던 사람이 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위험 앞에서 불의를 보고도 물러서지 않는 기개를 가져야 뜻을 이루고 발전을 가져온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고식지계姑息之計 – 우선 편한 것만 찾는 꾀, 임시변통으로 일을 처리하다.

고식지계姑息之計 – 우선 편한 것만 찾는 꾀, 임시변통으로 일을 처리하다.

고식지계(姑息之計) – 우선 편한 것만 찾는 꾀, 임시변통으로 일을 처리하다.

시어미 고(女/5) 쉴 식(心/6) 갈 지(丿/3) 셀 계(言/2)

일을 처리할 때는 뒷마무리까지 철저히 해야 한다. 그러나 일이 까다롭거나 남이 보지 않는다고 대충대충 넘기려는 경우가 많다. 한 때의 편안함을 얻기 위해 임시로 둘러맞추거나 이리저리 돌리다가 효과를 볼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는 큰 탈이 나기 쉽다. 속담을 한역한 凍足放尿(동족방뇨)했다간 언 발이 더욱 동상까지 걸리고, 下石上臺(하석상대) 했다간 주춧돌이 빠져 집이 무너질 판이다. 점잖은 말로 彌縫(미봉)이나 因循姑息(인순고식), 目前之計(목전지계)를 사용해도 뜻은 그대로다.

시어미 姑(고)는 여자를 통칭하기도 하고, 숨쉴 息(식)은 어린 자녀를 가리키기도 한다. ‘尸子(시자)’라는 책에 ‘은나라 주왕은 노련한 사람의 말은 버리고 아녀자나 어린애들의 말만 썼다(紂棄老之言 而用故息之語/ 주기노지언 이용고식지어)’라는 구절에서 나왔다고 한다. 부녀자와 어린 아이가 꾸미는 계책이라 하여 일시적인 방법으로 편안한 것을 찾는 말이 됐다. 엄하게 원칙을 따져 해결하려는 부녀자가 없을 리 없는데도 정으로 감싸는 면이 많아 이런 말이 나왔겠다.

먼저 五經(오경)의 하나인 유가의 경전 ‘禮記(예기)’에 曾子(증자)가 병으로 자리에 누웠을 때 자녀에게 가르치는 말로 등장한다. ‘군자는 사람을 사랑하기를 덕으로 하고, 소인은 사람을 사랑할 때는 임시변통으로 한다(君子之愛人也以德 細人之愛人也以姑息/ 군자지애인야이덕 세인지애인야이고식).’ 여기에서 일시적인 계책으로 姑息(고식)이 유래했다. 군자의 사랑은 덕으로 하기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가 있고, 소인의 사랑은 눈앞의 이익을 보고 하기 때문에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檀弓上(단궁상)에 실려 있다.

後漢(후한) 揚雄(양웅)의 ‘揚子法言(양자법언)’에도 같은 뜻의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눈앞의 이익밖에 모르는 계책은 덕을 해친다. 군자는 언동을 삼가고 즐김을 조심하며 때가 오면 서둘러야 한다(姑息敗德 君子謹於言 慎於好 亟於時/ 고식패덕 군자근어언 신어호 극어시).’

얕은 수로 남을 속이려는 ‘눈 가리고 아웅’의 방법으로는 일이 잘 되기도 어려울뿐더러 들통이 나기 쉽다. 가는 길이 멀어도 차근차근 정도를 밟아 나가야 튼튼히 마무리할 수 있다. 어떤 자리에 올랐을 때 실적에 급한 나머지 무리하게 보여주기 식 업무를 처리하려다 일도 안 되고 신망도 잃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거실 풍수인테리어 기법 ⑪

거실을 풍수 원리에 맞추어 인테리어를 하면, 화목한 가정, 돈이 들어오는 집안, 미소가 끊기지 않는 가정을 이룰 수 있다.

거실이란 사람이 생활하고 쉬는 공간인데, 인테리어를 대충대충 살기 편한대로 어질러 놓는다면 기운(氣運)이 거주하는 사람의 일상생활에도 나쁜 영향을 받는다.

가정환경에서 만족스러운 생활을 위해서는 거실의 인테리어가 매우 중요하다.

거실의 방향에 따라서 색상의 조화도 달라진다.

동향인 경우는 하늘색이나 푸른 계열의 벽지에 천으로 된 소파가 좋다.

서향인 거실에는 관엽 식물을 배치하고, 브라운 계열의 벽지에 고급스러운 소파와 테이블을 놓아두면 좋다.

남향인 거실인 경우 미색 계열의 벽지에 보라색이나 흰색 위주의 꽃, 액자, 쿠션 등의 소품을 배치하면 좋다.

북향으로 된 거실에는 미색 계열의 벽지에 밝고 화려한 가구와 텔레비전 오디오 등 크기 큰 가전제품을 놓아두면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

♣ IFSA 국제풍수협회 선정 2018 대한민국 최고 풍수인테리어 전문가 / 문의 : 010-2432-5522

당돌서시唐突西施 - 다부진 미인 서시, 함부로 비교하지 말라는 겸손의 말

당돌서시唐突西施 - 다부진 미인 서시, 함부로 비교하지 말라는 겸손의 말

당돌서시(唐突西施) - 다부진 미인 서시, 함부로 비교하지 말라는 겸손의 말

당나라 당(口/7) 갑자기 돌(穴/4) 서녘 서(襾/0) 베풀 시(方/5)

중국의 四大美人(사대미인) 중에서도 가장 첫 손에 꼽히는 사람이 西施(서시)다. 春秋時代(춘추시대) 말기 나무꾼의 딸로 태어난 서시는 절색으로 소문나자 越(월)나라 왕 句踐(구천)에 간택돼 총애를 받았다. 구천이 吳(오)나라 夫差(부차)에게 당한 치욕을 씻기 위해 미인계로 보낸 뒤 국사를 팽개치게 하고 복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모로 알려진 만큼 서시와 관련된 재미있는 성어도 많다. 서시가 가슴앓이를 하여 아프다고 가슴에 손을 대고 눈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것을 보고 東施(동시)에 살고 있던 추녀가 흉내를 냈다.

사람들이 어떻게 봤을까. 못난 얼굴이 더욱 추해 보였을 뿐이다. 함부로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西施捧心(서시봉심), 西施矉目(서시빈목), 西施效顰(서시효빈), 東施效顰(동시효빈) 등으로 쓰고 줄여서 效嚬(효빈)이다. 어려운 글자 矉, 顰, 嚬 모두 ‘찡그릴 빈’으로 통용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꺼리거나 어려워함이 없이 다부진(唐突) 서시라는 이 성어는 훌륭한 것과 함부로 비교하지 말라는 뜻으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말이다. 唐太宗(당태종)때 房玄齡(방현령) 등이 편찬한 ‘晉書(진서)’의 周顗(주의, 顗는 즐길 의)전에서 유래했다. 宋(송)나라 劉義慶(유의경)의 ‘世說新語(세설신어)’에도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東晉(동진)의 주의(269~322)라는 사람은 매사에 겸손을 미덕으로 삼아 젊어서부터 명성이 있었다. 하루는 庾亮(유량)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말했다. ‘사람들이 모두들 당신을 낙광에 비유합디다(諸人咸以君方樂廣/ 제인함이군방악광).’ 악광으로도 읽는 樂廣(낙광)은 사람들을 논할 때 항상 장점부터 말하여 죽어서까지 추앙을 받는 진나라의 현인이었다. 이런 인물과 자신을 견준다는 말에 주의는 펄쩍 뛰었다. ‘어찌 추녀 무염을 그리고서 당돌하게 천하절색 서시와 비교한단 말인가(何乃刻畫無鹽 唐突西施也/ 하내각화무염 당돌서시야)?’

無鹽(무염)은 齊(제)나라의 고을 이름인데 그곳에 살던 鐘離春(종리춘)이란 사람이 박색이었던 모양이다. 지혜가 뛰어나 宣王(선왕)의 왕후로 오른 여인이었지만 인물은 어쩔 수 없었던지 刻畵無鹽(각화무염)이란 말로 남았다. 아무리 애써도 소용없는 일,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미모가 뛰어난 서시가 부차의 노리개가 된 것을 부러워할 수 없듯이 西施有所醜(서시유소추)라 하여 결점은 따르게 마련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각자 잘 하는 장점은 있다. 서시와 비교하는 것도 사양하는 겸손이 있으면 더욱 좋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구화지문口禍之門 - 입은 재앙의 문

구화지문口禍之門 - 입은 재앙의 문

구화지문(口禍之門) - 입은 재앙의 문

입 구(口/0) 재앙 화(示/9) 갈 지(丿/3) 문 문(門/0)

‘혀 아래 도끼 들었다’고 한다. 말을 잘못하면 재앙을 받게 되니 말조심을 하라는 말이다. ‘입이 개차반이다’라는 속담도 있다. 입이 똥개가 먹은 차반과 같이 너절하다는 뜻이다. 아무 말이나 가리지 않고 되는대로 상스럽게 마구 하는 경우를 비유했다. 이와 같이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口禍之門)이라며 재앙이 입에서부터 나오고 입으로 먼저 들어간다 하여 예로부터 경계하는 말이 많았다. 조심해야 하는 줄은 알지만 아차 하는 순간 튀어 나오기에 설화도 끊이지 않는다.

口禍之門이라 하면 바로 떠올릴 만큼 馮道(풍도)의 ‘舌詩(설시)’가 있다. 풍도는 唐(당)나라 말기에 태어나 혼란한 시기 73세까지 장수를 누린 인물이었다. 당 이후 宋(송)나라가 세워질 때까지 五代(오대) 시대가 이어졌다. 다섯 나라 중 後唐(후당)에서 입신하고 뛰어난 처세술로 이어진 왕조의 재상을 지냈다. 항상 행동과 언사를 조심하며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문학적 재능이 출중했지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거나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고 전한다.

그가 남긴 ‘설시’처럼 ‘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 폐구심장설 안신처처뢰/ 입은 재앙의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을 편히 할 수 있네)’를 좌우명으로 했을 것이다. 별달리 남긴 다른 시도 없이 이 시도 淸代(청대)에 편찬된 당시전집인 ‘全唐書(전당서)’에 실려 있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인원상국人怨傷國 - 백성이 원망을 하면 나라가 상한다.

인원상국人怨傷國 - 백성이 원망을 하면 나라가 상한다.

인원상국(人怨傷國) - 백성이 원망을 하면 나라가 상한다.

사람 인(人/0) 원망할 원(心/5) 다칠 상(亻/11) 나라 국(囗/8)

억울한 일을 당하여 응어리진 마음은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에서 원한보다 더욱 빨리 인간을 소멸시키는 것은 없다며 덕으로 갚으라는 以德報怨(이덕보원)이란 말이 있어도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따를 리 없다. 오죽했으면 원한이 뼛속까지 사무친다고 怨入骨髓(원입골수)란 말이 나왔을까. 여인의 원한이 사무치면 하늘도 노하는지 오월인데도 서리가 내렸다는 一婦含怨 五月飛霜(일부함원 오월비상)이란 말도 옛 이야기에 자주 나왔다. 그러니 백성의 원한을 사면(人怨) 나라가 온전하지 못하여 망한다(傷國)는 이 성어는 어쩌면 당연하다.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게 한 최고의 공신 張良(장량)은 그 계책의 원천이 黃石公(황석공)에게서 나왔다. 韓(한)나라의 명문 출신인 장량은 고국을 멸망시킨 秦始皇(진시황)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숨어 살았다. 어느 때 장량이 황석공이란 기인을 흙다리 위에서 만났다. 노인이 무례하게 몇 번이나 다리 아래로 신발을 떨어뜨린 뒤 신기라고 했다. 장량이 명령을 잘 따랐더니 귀한 책을 건네주었다. 이 책이 바로 太公兵法(태공병법)과 黃石公素書(황석공소서)이다.

장량은 이 책을 늘 지니고 익혀 묘리를 깨닫고 한고조가 위급할 때마다 계책을 일러 큰 공을 세웠다. 제6장 安禮(안례)편에 나오는 내용을 일부 보자. 구슬을 버리고 돌을 취하는 자는 눈 먼 자이고, 양의 몸에 호랑이 가죽을 쓴 자는 욕을 당한다며 이어진다. ‘기둥이 약하면 집이 무너지고, 보좌하는 신하가 약하면 나라가 기울어진다.

발이 차가우면 심장을 상하고, 백성들이 원망하면 나라가 상하게 된다(柱弱者屋壞 輔弱者國傾 足寒傷心 人怨傷國/ 주약자옥괴 보약자국경 족한상심 인원상국).’ 모두가 기반이 튼튼해야 큰일을 이룰 수 있다고 쉬운 예로 비유했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