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0일 일요일

도증주인盜憎主人 - 도둑이 주인을 미워하다, 간사한 사람이 바른 사람을 싫어하다.

도증주인盜憎主人 - 도둑이 주인을 미워하다, 간사한 사람이 바른 사람을 싫어하다.

도증주인(盜憎主人) - 도둑이 주인을 미워하다, 간사한 사람이 바른 사람을 싫어하다.

도둑 도(皿/7) 미울 증(心/12) 주인 주(丶/4) 사람 인(人/0)

남의 물건을 슬쩍 하는 도둑을 두둔하는 사람은 없다. 도둑을 梁上君子(양상군자)라 칭한 중국 後漢(후한)의 학자 陳寔(진식)은 칭찬보다 교화하기 위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이 자신은 떳떳하게 富(부)의 균등화에 힘쓰는 사람이라 고개 쳐든다. 孔子(공자)에 호통 쳤던 흉악한 두목 盜跖(도척, 跖은 발바닥 척)은 聖勇義知仁(성용의지인) 다섯 가지 도를 지닌 것이 도적이라 했다. 이러니 도둑이 미워하는 것(盜憎)은 당연히 재물을 얻지 못하게 하는 주인(主人)이다. 자기의 앞날에 걸리적거리는 자는 바른 사람이라도 미워하는 존재가 된다.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는 文公(문공)때 전성기를 누리다 세력이 많이 약화됐다. 厲公(여공)에 이르러선 군사력을 거머쥔 三郤(삼극, 郤은 틈 극)이 권력을 휘둘렀다. 이들은 郤錡(극기), 郤犨(극주, 犨는 흰소 주), 郤至(극지)의 삼형제로 조정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항상 伯宗(백종) 등 바른 말을 하는 충신들을 이간하기 바빴다. 백종은 선대부터 큰 공을 세운 대부였는데 사람됨이 강직하여 왕에 삼극의 권력을 억누르라고 간언했다. 하지만 주색에 빠진 여공이 듣지 않았고, 오히려 백종은 작은 허물을 뒤집어씌운 삼극의 모략에 의해 끔찍한 죽음을 당했다.

左丘明(좌구명)이 쓴 ‘左氏傳(좌씨전)’에는 백종이 조정에 들어갈 때마다 그의 처가 주의시킨 말에 성어가 나온다. ‘도적은 집 주인을 미워하고, 백성은 윗사람을 싫어하는 법입니다. 당신은 바른 말을 하기를 좋아하니 반드시 화를 당하고야 말 것입니다(盜憎主人 民惡其上 子好直言 必及於難/ 도증주인 민오기상 자호직언 필급어난).’ 부인의 이 말은 바른 말을 하여 화를 부른다는 直言賈禍(직언고화)의 유래도 된다. 백종은 부인의 당부에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됐지만 이전의 왕을 잘 보필한 말로 다른 성어도 남겼다. 鞭長莫及(편장막급), 채찍이 길어도 닿지 않으면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잘못을 저지른 자가 도리어 기세를 올리고 큰 소리를 친다고 ‘도둑이 매를 든다’고 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을 꾸미는데 부당하다고 나서는 반대파는 온갖 핑계를 덮어 씌워 제거한다. 작은 도둑은 잡혀도 큰 도둑은 풀려난다는 말대로 성공할 수도 있다. 간악한 사람이 바른 사람을 밀어내고 획책한대로 일을 처리한다고 해도 명심할 일이 있다. ‘하늘의 그물은 엉성해 보이지만, 결코 빠져나가지는 못한다(天網恢恢 疎而不漏/ 천망회회 소이불루),’ 道德經(도덕경)의 말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대지한한大知閑閑 - 큰 지혜는 여유롭고 한가롭다.

대지한한大知閑閑 - 큰 지혜는 여유롭고 한가롭다.

대지한한(大知閑閑) - 큰 지혜는 여유롭고 한가롭다.

큰 대(大/0) 알 지(矢/3) 한가할 한(門/4) 한가할 한(門/4)

사람은 누구나 귀한 존재다. 그렇다고 어디에나 제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거짓으로 꾸며서 그럴듯하게 보이려는 병을 쳇병이라 할 정도로 ‘아는 체, 있는 체, 잘난 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한 분야에서 크게 잘 하는 것도 아니면서 앞에 나서는 이런 사람이 各者以爲大將(각자이위대장)이다. 반면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잔재주를 보이지 않으므로 어리숙하게 보인다고 大智若愚(대지약우)라 했다. 이것은 최고로 치는 싸움닭이 마치 나무로 만든 닭과 같다고 木鷄養到(목계양도)라 한 것과 통한다. 겉으로 어리석게 보여도 감춰진 위세에 근접하지 못하는 경지가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木鷄(목계)는 ‘莊子(장자)’의 達生(달생)편에서 유래했다.

앞서 나오는 齊物論(제물론)편에서는 지식이나 진리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뤄 난해한 구절이 많기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 절에 있는 ‘큰 지혜는 여유롭고 한가롭다(大知閑閑/ 대지한한)’는 말은 특히 많이 인용된다. 큰 지혜를 지닌 사람은 혼자 있을 때나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나 여유롭고 담담한데 남의 약점을 캐거나 이기려고 파고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반면 바로 뒤의 ‘작은 지혜는 꼼꼼하고 자세하다(小知間間/ 소지간간)’는 말은 조금 아는 것으로 시시콜콜 따지기 좋아하지만 조금만 막혀도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바로 이어지는 것이 ‘큰 말은 기세가 대단하고 보잘것없는 말은 공연히 수다스럽다(大言炎炎 小言詹詹/ 대언염염 소언첨첨)’이다. 짧은 구절이라도 큰 말은 감동을 주고 되씹게 하는데 구구절절 수다스런 말은 남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詹은 이를 첨, 수다스럽다는 뜻도 있다. 늘 경계하는 말을 남긴 조선 중기 학자 許穆(허목)의 ‘記言序(기언서)‘에도 말을 줄이라는 것이 나온다.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일을 많이 벌이지 말라(毋多言 毋多事/ 무다언 무다사),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고 일이 많으면 손해가 많다(多言多敗 多事多害/ 다언다패 다사다해).‘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속담 위에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고 했다. 한자 표현은 言甘家 醬不甘(언감가 장불감)이다. 필요한 말은 一語値千金(일어치천금)이라고도 했다. 말뿐이 아니고 겉으로 드러내려 노력하는 대신 속으로 재주와 실력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실제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은 저절로 드러나게 마련이라 어리숙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難得糊塗(난득호도)란 성어도 있는 판이다. 말로써 말이 많은 동네에서 쓸 말만 할 수 있게 다시 한 번 생각했으면 좋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월진승선越津乘船 - 나루를 건너서 배를 타다, 순서를 건너뛰어서는 일을 실패한다.

월진승선越津乘船 - 나루를 건너서 배를 타다, 순서를 건너뛰어서는 일을 실패한다.

월진승선(越津乘船) - 나루를 건너서 배를 타다, 순서를 건너뛰어서는 일을 실패한다.

넘을 월(走/5) 나루 진(氵/6) 탈 승(丿/9) 배 선(舟/5)

세상 모든 일에는 무엇이나 다 일정한 순서가 있는 법이다. 일을 아무리 급하게 끝내야 할 일이라도 순서를 빼 먹거나 무시한다면 마무리할 수가 없다.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속담 중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어 쓰지는 못한다’가 잘 알려져 있다.

한자로는 雖有忙心 線不繫鍼(수유망심 선불계침)으로 번역했다. 질서를 무시하고 성급하게 결과를 찾을 때는 ‘우물에 가 숭늉 찾는다’고 핀잔을 듣는다. 일을 급하게 하려고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한다고 孔子(공자)는 欲速不達(욕속부달)이라 경계했다. 모를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해 뽑아 올린다면 오히려 벼를 죽게 한다는 揠苗助長(알묘조장, 揠은 뽑을 알)은 孟子(맹자)의 교훈이다.

‘나루 건너(越津) 배 타기(乘船)’라는 우리 속담이 더 있다. 나루는 강이나 내, 또는 좁은 바닷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곳이다. 배를 타기도 전에 나루 건너 날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건너고 나서는 배를 탈 필요는 더욱 없다. 무슨 일에나 순서가 있는데 건너뛰어서는 할 수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조선 인조 때의 학자 洪萬宗(홍만종)이 우리 속담을 한역한 ‘旬五志(순오지)’에 ‘나루를 건넌 다음에야 배를 탄다는 것은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취한다는 말(越津乘船 言捨近取遠/ 월진승선 언사근취원)’이라고 설명했다. 뒤의 풀이에 나오는 捨近取遠(사근취원)이라는 성어는 일의 순서나 차례를 바꾸어서 할 때 함께 쓴다.

丁若鏞(정약용)이 엮은 ‘耳談續纂(이담속찬, 纂은 모을 찬)’의 이 속담 해석도 비슷하다. ‘내를 건넌 후에는 배를 탈 수 없다는 것은 모든 일에 순서가 있으니 이를 뛰어넘을 수 없다(未有涉川而後乘船 言事有次序 不可踰奧/ 미유섭천이후승선 언사유차서 불가유오)’는 의미라고 했다. 가까운 데 있는 것을 무조건 버리라는 의미와는 약간 다른 捨近圖遠(사근도원)이란 말도 있다. 이것은 孫子兵法(손자병법)에서 장군이 마땅히 가져야 할 도리로 계획을 새롭게 하여 알지 못하게 하고, 가는 길을 우회하여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원대한 깊은 뜻을 실현하는 일이 아니고서는 순서대로 진행해야 실패할 염려가 없다. 뛰어난 천재들에겐 越班(월반)이 가능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듯이 차근차근 가는 것이 믿음직스럽다. ‘망건 쓰고 세수한다(先網巾 後洗水/ 선망건 후세수)’는 말처럼 순서를 건너뛰어서는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법이다. 나라의 정책도 앞서 최저임금제 등과 같이 좋은 목표를 실천한다며 무조건 밀어 붙이다 보면 목표에 도달하기도 전에 혼란만 가져왔던 것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하갈동구夏葛冬裘 – 여름의 베옷과 겨울의 가죽옷, 격에 잘 어울리는 일이나 행동

하갈동구夏葛冬裘 – 여름의 베옷과 겨울의 가죽옷, 격에 잘 어울리는 일이나 행동

하갈동구(夏葛冬裘) – 여름의 베옷과 겨울의 가죽옷, 격에 잘 어울리는 일이나 행동

여름 하(夊/7) 칡 갈(艹/9) 겨울 동(冫/3) 갖옷 구(衣/7)

만약 여름에 화로를 갖다 주거나 겨울에 부채를 선물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값진 물품이라 해도 고마워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정성이 담긴 선물이라 하더라도 시기에 맞지 않거나 격에 어울리지 않으면 주고도 욕을 먹기 마련이다. 바로 夏爐冬扇(하로동선)이 말하는 것으로 쓸모없는 물건이 된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는데 둥글부채를 준다는 秋風團扇(추풍단선)도 마찬가지다. 반면 여름철에 부채를, 겨울철에 다음 해의 책력을 선물한다면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받는 사람을 흡족하게 여기도록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마찬가지로 여름에 서늘한 베옷(夏葛)이나 겨울철에 따뜻한 가죽옷(冬裘)을 말하는 이 성어도 철에 맞고 격에도 잘 어울리는 일이나 행동을 뜻한다.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에서도 우뚝한 唐(당)나라의 문장가 韓愈(한유, 68~824)는 친구 사이인 柳宗元(유종원)과 함께 古文(고문) 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문운동은 도교와 불교를 배척하고 유가 성인의 도를 담은 글을 사용해야 하나다는 것으로 산문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고문운동의 정수를 담았다는 글이 한유의 ‘原道(원도)’인데 여기에 이 성어가 등장한다.

부분을 보자. 널리 사랑하는 것을 인이라 하고 이치에 맞는 것을 의라 하며 따라야만 하는 것을 도라 한다면서 이어진다. ‘황제와 왕은 그 호칭은 다르지만 그들이 성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帝之與王 其號名殊 其所以爲聖一也/ 제지여왕 기호명수 기소이위성일야). 여름엔 칡베 옷을 입고 겨울엔 털가죽 옷을 입으며 목마르면 물마시고 배고프면 먹는 것이 그 일은 다르다 해도 지혜로움은 똑 같다(夏葛而冬裘 渴飮而飢食 其事雖殊 其所以爲智一也/ 하갈이동구 갈음이기식 기사수수 기소이위지일야).’ 이 글은 道(도)가 도교나 불교의 도에 의하여 어지럽혀져 있으므로 인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도의의 본원을 논한 것이라 해석한다.

아무리 귀중품을 선물로 준다고 해도 격에 맞지 않거나 사용할 데가 없는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왕이나 백성이나 베옷과 가죽옷은 필요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음식은 필요하다. 때에 맞춰 합당한 곳을 찾아 국민들의 가려움을 긁어주는 것은 위정자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거실 풍수인테리어 기법 ㉑

거실 풍수인테리어 기법에서 소품이나 물건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큰 그림이나 사진액자는 소파를 놓아둔 벽면에 거는 것이 무난하다. 그러나 너무 현란하거나 선과 각이 뾰족한 추상화는 피하고, 밝고 차분하며 온화한 느낌의 풍경화 같은 것이 좋다.

인물화는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

거실에 탁자를 둘 경우에는 나무의 결이 살아있는 탁자가 좋으며, 유리 재료의 탁자는 피한다.

거실에 관엽식물을 둘 경우 사람의 허리보다,\xa0낮은 키에 잎이 무성한 식물이\xa0좋으며, 너무 큰 키의 식물은 오히려 기(氣)의 흐름을 흐트린다.

전자제품 주위에는 나무색, 회색, 베이지 계열의 패브릭을 사용하거나 곡선의 흐름에 좋은 난 등의 화분을 놓아두면, 흉한 기(氣)를 제압시키는 방법이다.

거울은 거실에 피해야 할 소품이다. 거실을 비추는 거울은 가족의 단란한 분위기를 해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IFSA 국제풍수협회 선정 2018 대한민국 최고 풍수인테리어 전문가 / 문의 : 010-2432-5522

요산요수樂山樂水 - 산수의 자연을 즐기고 좋아하다.

요산요수樂山樂水 - 산수의 자연을 즐기고 좋아하다.

요산요수(樂山樂水) - 산수의 자연을 즐기고 좋아하다.

즐길 락, 좋아할 요(木/11) 메 산(山/0) 즐길 락, 좋아할 요(木/11) 물 수(水/0)

산과 물의 경치와 자연을 좋아하는 것이 樂山(요산)이고 樂水(요수)다. 요산은 부산에서 활약한 소설가 金廷漢(김정한, 1908~1996)의 아호로 친숙한 말이기도 하다. 즐길 樂(락) 글자는 악기 북을 나타내는 白(백)을 작고 작은(幺/ 요) 실로 나무(木/ 목) 받침대에 묶은 것을 형상화하여 풍류 樂(악)을 뜻하고, 누구나 즐기고 좋아하니 좋아할 樂(요)가 되었다고 한다.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는 이 말은 ‘슬기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지자요수 인자요산)’라고 한 孔子(공자) 말씀에서 나왔다.

자연을 좋아하는데 무슨 구별이 있을까 싶은데 처음 뜻을 살펴보자. ‘論語(논어)’ 雍也(옹야)편에서 지자가 물을 좋아하고 인자가 산을 좋아한다면서 앞의 말 뒤로 이렇게 이어진다. ‘슬기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知者動 仁者靜/ 지자동 인자정)’. 대체적인 풀이는 슬기로운 사람은 지혜롭기 때문에 항상 변화를 추구하고 그래서 쉬지 않고 흐르는 물을 좋아하는데, 어진 사람은 심지를 한 곳에 굳히고 쉽게 움직이지 않아 제자리에 굳건히 서 있는 산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또 그 다음은 이렇다. ‘슬기로운 사람은 즐거워하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知者樂 仁者壽/ 지자락 인자수).’ 슬기로운 사람은 지혜를 좇고자 항상 움직이므로 여러 가지 지식과 견문이 넓어지니 자연히 세상만물을 즐기게 되고, 어진 사람은 남과 맞서 싸우지 않고 화합하려 하기 때문에 위험에 빠질 염려가 없이 오래 살 수 있다는 풀이다. 물론 지자의 즐거움은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서 다스리는 데서 찾는다거나 아니면 자신을 완성하는데서 오는 즐거움이라고도 한다. 또 어진 사람의 장수는 오래 산다기보다 안정되었기에 떳떳함이 있어 오래 갈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슬기로운 사람, 어진 사람 어떻게 풀이하든 다 좋은 말이다. 우스개로 낚시하러 바다로 가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등산을 취미로 여기는 사람들은 슬기롭기 때문이라고 서로 자랑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내세울 뿐 다른 취미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지혜로움과 어짊이 모두 중요한 덕목이지만 단지 어느 쪽이 더 두드러지는 것인가에 따라 성질이 달라질 뿐이다. 그렇더라도 지혜가 지나쳐 속셈만 차리고, 인자함이 넘쳐 매사에 맺고 끊음이 없이 물러터진다면 이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임현물이任賢勿貳 - 어진 이에게 일을 맡겼으면 두 마음을 먹지 말라.

임현물이任賢勿貳 - 어진 이에게 일을 맡겼으면 두 마음을 먹지 말라.

임현물이(任賢勿貳) - 어진 이에게 일을 맡겼으면 두 마음을 먹지 말라.

맡길 임(亻/4) 어질 현(貝/8) 말 물(勹/2) 두 이(貝/5)

기업이나 나라나 일을 해 나갈 때는 지도자가 적합한 사람을 찾아 적합한 곳에서 일하게 하는 適材適所(적재적소)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다음으로 훌륭한 인재를 찾아 일을 맡겼으면(任賢) 다른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한다(勿貳)는 성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임자에게 주위에서 어떤 소리가 나오든 그를 신임해서 끝까지 밀어주라는 뜻도 담겨 있다. 貳는 二(이)의 갖은 자로 두 마음, 의심하다는 의미다.

尙書(상서)라고도 하는 書經(서경) 대우모(大禹謨) 편에 나오는 益(익)의 말에 처음 보인다. ‘조심이 없을 때 경계하여 법도를 잃지 마시고 안일함에 빠져 놀지 마시고 즐겁다 해서 지나치면 안됩니다. 어진 사람을 임명했으면 두 마음을 갖지 마시고 사악한 사람을 내치되 의심하지 마십시오(儆戒無虞 罔失法度 罔游于逸 罔淫于樂 任賢勿貳 去邪勿疑).’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 강력한 覇者(패자)인 齊桓公(제환공)이 힘을 완전히 기르지 못했을 때 하루는 신임하는 管仲(관중)에게 걱정거리를 털어놓았다. “내가 사냥을 좋아하고 여자와 술도 놓지 못하는데 이렇게 해서 패자가 될 수 있겠소?” 관중은 그런 것은 하등의 문제가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대업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오?” 그 말에도 관중은 즉각 답했다. “어진 사람을 쓰지 않으면 패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어진 줄을 알면서도 그를 쓰지 않는다면 霸業(패업)을 이루지 못합니다. 또 임무를 맡기지 않거나 맡긴 후에 다시 소인들로 하여금 입을 대게 하면 패자가 되는 길에 해롭습니다(不用賢害覇 知賢而不用害覇 用而不任害覇 任而復以小人參之害覇).” 자기를 죽이려 했던 관중을 발탁하고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있는 환공이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다. 더욱 강력한 힘을 주고 간섭도 없이 나라를 통치해 변방국이 가장 강력한 패자가 될 수 있었다.

‘사람이 의심스럽거든 쓰지를 말고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疑人莫用 用人勿疑)’ 明心寶鑑(명심보감)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구십춘광九十春光 - 봄의 석 달, 화창한 봄 날씨, 노인의 마음이 젊음을 이르는 말

구십춘광九十春光 - 봄의 석 달, 화창한 봄 날씨, 노인의 마음이 젊음을 이르는 말

구십춘광(九十春光) - 봄의 석 달, 화창한 봄 날씨, 노인의 마음이 젊음을 이르는 말

아홉 구(乙/1) 열 십(十/0) 봄 춘(日/5) 빛 광(儿/4)

요즈음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봄과 가을은 점점 짧아져 언제 온듯하면 바로 여름이나 겨울 날씨로 이어지곤 한다. 그렇다고 해도 말까지는 바꾸지 못해 일 년 열두 달을 四季(사계)로 나누면 석 달씩이 된다. 이렇게 보면 봄은 3, 4, 5월인 孟春(맹춘), 仲春(중춘), 季春(계춘)의 석 달이다.

날수로 구십 일이 되어(九十) 이 동안의 봄철의 볕. 또는 봄철의 경치(春光)를 화창한 봄 날씨를 나타낸다. 九春(구춘)이라 해도 같다. 여기서 뜻이 확장되어 노인의 마음이 의욕이나 기력은 청년처럼 젊음을 나타내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쇠잔해지는 것을 서러워하는 뜻이 깊다.

이 성어가 처음 사용된 곳은 중국 唐(당)나라 시인 陳陶(진도, 812~888)의 시 ‘봄이 가네(春歸去/ 춘귀거)’를 꼽는다. 처음 두 행을 보자. 덧없이 흐르는 세월을 한탄한다. ‘구십춘광은 이제 어디 있느뇨, 옛 사람 지금 사람 모두 머물지 못하네(九十春光在何處 古人今人留不住/ 구십춘광재하처 고인금인류부주).’ 이후 淸(청)나라의 吳錫麒(오석기, 1746~1814) 시인의 ‘봄을 보내며(送春/ 송춘)’란 시는 자주 인용되는데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인생의 무상함이 더 또렷하다.

전문을 보자. ‘낙화 떨어지고 솜 날리며 안개 물 속에 가득한데, 구십 일 봄빛은 베틀 북처럼 지나는구나(落花飛絮滿煙波 九十春光去如梭 / 낙화비서만연파 구십춘광거여사), 그 자취 해마다 어디서 찾을지, 해마다 흰 머리만 늘어나는구나(蹤跡年年何處覓 一回白髮一回多/ 종적연년하처멱 일회백발일회다).’ 絮는 솜 서, 梭는 베틀북 사, 蹤은 발자취 종.

우리나라의 가사나 가요에도 자주 등장한다. 황해도 지방의 민요 ‘사설난봉가’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만산홍록 요염한데 벌 나비는 춤을 추고, 황금 같은 꾀꼬리는 구십춘광 자아내고, 버들 새로 왕래하며 벗을 불러 노래할 제, 만단 시름 다 버리고 삼춘흥을 풀어 볼거나.’ 1940년대에 활약했던 가수 옥잠화(본명 김복남)가 부른 제목이 ‘九十春光(구십춘광)’이란 노래도 전한다. ‘도화강변 배를 띄워 흘러를 갈 때, 끝없이 들리는 갈대피리 그 소리, 듣고 나면 열아홉의 웃음 품은 아가씨, 가슴에 꽃이 핀다 구비 구비 구십리.’

한 송이 꽃이 피었다고 호들갑떨지 말고 ‘온갖 꽃이 만발해야 봄이 왔다(百花齊放春滿園/ 백화제방춘만원)’며 느긋이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봄꿈을 깨기도 전에 잎을 떨어뜨리는 가을이 온다. 세월을 느긋하게 즐기면 뜻을 이루기 전에 후딱 지나가는 법이니 시간을 아껴 쓸 줄도 알아야 한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기구지업箕裘之業 - 선대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업

기구지업箕裘之業 - 선대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업

기구지업(箕裘之業) - 선대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업

키 기(竹/8) 갖옷 구(衣/7) 갈 지(丿/3) 업 업(木/9)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기간 종사하는 일이 직업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이 오랫동안 전해 왔다.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에 맞고, 또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으면 귀하고 천함이 없이 보람을 찾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덴마크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14년간 접시를 닦았던 사람을 공동 소유자로 영입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좋은 보기다. 일본에는 몇 대째 내려오는 음식점이 수두룩하다고 하고, 세계 명품을 제작하는 서구의 집안도 장인정신의 자부심으로 무장돼 있다. 할아버지 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업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전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도 바람직하다.

성어에 나오는 가업을 계승한다고 해서 떵떵거리는 재벌이 아니다. 이들의 선대는 요즘엔 보기에도 힘든 직업을 가졌다. 곡식 등에 섞여있는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키(箕)를 만드는 직업과 짐승의 털가죽을 안에 댄 갖옷(裘)을 만드는 기술자다. 중국 유가의 五經(오경) 중에 포함되는 ‘禮記(예기)’에 실려 있다. 예기는 예의 이론과 실제를 논하는 내용으로 曲禮(곡례), 檀弓(단궁) 등 49편이 전하고, 大學(대학)과 中庸(중용)도 처음 이곳에 포함됐다.

學記(학기) 편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솜씨 좋은 대장장이의 아들은 가죽옷 만드는 일을 배우고, 활을 만드는 사람의 아들은 키 만드는 일을 배운다(良冶之子必學爲裘 良弓之子必學爲箕/ 양야지자필학위구 양궁지자필학위기).’ 실제 대장장이의 아들이나 활을 만드는 사람의 아들이 바로 그 아버지의 일을 배운 것은 아니다.

대장장이는 쇠를 녹여 그릇을 만드니 그것으로 그 아들은 짐승의 털가죽을 깁는 것을 배우고, 뿔을 휘어 활을 만드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버들가지를 휘어 키 만드는 일을 배운다. 비슷한 일이어서 어려서부터 보고 배워 따라 하기가 쉽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배우기 쉬운 일부터 하다 보면 나중에는 훌륭한 대장장이나 활장이가 되어 가업을 잇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선 士農工商(사농공상)의 구별이 뚜렷했고 그것이 이어져 ’사(師士事)‘자가 붙는 직업을 갖기 위해 경쟁해 왔다. 오늘날에는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일은커녕 당장 취업하려 해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허둥댄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취업 걱정이 줄겠지만 조상대대로 이어오던 가업을 계승하려는 젊은이가 늘어난다면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을 터이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인간삼락人間三樂 - 인간이 누리는 세 가지 즐거움

 인간삼락人間三樂 - 인간이 누리는 세 가지 즐거움

\xa0인간삼락(人間三樂)\xa0-\xa0인간이\xa0누리는\xa0세\xa0가지\xa0즐거움

사람\xa0인(人/0)\xa0사이\xa0간(門/4)\xa0석\xa0삼(一/2)\xa0즐길\xa0락(木/11)

사람은\xa0저마다의\xa0재주가\xa0있고,\xa0목적하는\xa0바가\xa0달라서\xa0각기\xa0느끼는\xa0행복도\xa0다를\xa0수밖에\xa0없다.\xa0그러니\xa0인간의\xa0즐거움을\xa0세\xa0가지로\xa0나타내보라\xa0할\xa0때\xa0내세우는\xa0것이\xa0다르다.\xa0욕심이\xa0덕지덕지\xa0엉겨\xa0붙은\xa0대부분의\xa0인간은\xa0부귀와\xa0명예를\xa0갖고서도\xa0만족을\xa0못한다.\xa0그런데\xa0다른\xa0행복,\xa0다른\xa0즐거움을\xa0드는\xa0선현들이\xa0말하는\xa0행복은\xa0의외로\xa0단순하다.

먼저\xa0모든\xa0유학자의\xa0영원한\xa0스승\xa0孔子(공자)의\xa0三樂(삼락)을\xa0보자.\xa0배우고\xa0때에\xa0맞게\xa0익힘(學而時習/\xa0학이시습),\xa0벗이\xa0먼\xa0곳에서\xa0찾아오는\xa0일(有朋自遠方來/\xa0유붕자원방래),\xa0남이\xa0알아주지\xa0않아도\xa0성내지\xa0않음(人不知而不慍/\xa0인부지이불온)을\xa0꼽았다.\xa0論語(논어)\xa0첫머리\xa0學而(학이)편에서다.\xa0공자\xa0다음의\xa0亞聖(아성)인\xa0孟子(맹자)는\xa0부모\xa0살아\xa0계시고\xa0형제가\xa0탈이\xa0없는\xa0것(父母俱存\xa0兄弟無故/\xa0부모구존\xa0형제무고),\xa0하늘\xa0우러러\xa0부끄럼이\xa0없고\xa0굽어\xa0봐\xa0사람에\xa0부끄러울\xa0일이\xa0없는\xa0것(仰不愧於天\xa0俯不怍於人/\xa0앙불괴어천\xa0부부작어인),\xa0영재들을\xa0가르치는\xa0것(得天下英才而教育/\xa0득천하영재이교육)을\xa0들었다.\xa0모두\xa0남이\xa0주는\xa0것보다\xa0자기가\xa0닦는\xa0데서\xa0오는\xa0것이다.\xa0怍은\xa0부끄러워할\xa0작.

우리의\xa0茶山(다산)선생은\xa0젊은\xa0시절\xa0‘수종사에서\xa0노닐던\xa0기록(游水鐘寺記\xa0/유수종사기)‘에서\xa0세\xa0가지\xa0즐거움을\xa0나타냈다.\xa0’어렸을\xa0때\xa0뛰놀던\xa0곳에\xa0어른이\xa0되어\xa0오는\xa0것(幼年之所游歷\xa0壯而至/\xa0유년지소유력\xa0장이지),\xa0곤궁했을\xa0때\xa0지냈던\xa0곳을\xa0출세한\xa0뒤\xa0오는\xa0것(窮約之所經過\xa0得意而至/\xa0궁약지소경과\xa0득의이지),\xa0홀로\xa0외롭게\xa0찾던\xa0곳을\xa0마음\xa0맞는\xa0벗들과\xa0오는\xa0것(孤行獨往之地\xa0携嘉賓挈好友而至/\xa0고행독왕지지\xa0휴가빈설호우이지)‘이다.\xa0挈은\xa0거느릴\xa0설.\xa0仁祖(인조)때\xa0학자\xa0申欽(신흠)의\xa0삼락은\xa0이렇다.\xa0’문\xa0닫고\xa0마음에\xa0드는\xa0책을\xa0읽는\xa0것(閉門閱會心書/\xa0폐문열회심서),\xa0문\xa0열고\xa0마음에\xa0맞는\xa0손님을\xa0맞는\xa0것(開門迎會心客/\xa0개문영회심객),\xa0문을\xa0나서\xa0마음에\xa0드는\xa0경치를\xa0찾아가는\xa0것(出門尋會心境/\xa0출문심회심경).‘

선인들은\xa0주변에서\xa0누릴\xa0수\xa0있는\xa0작은\xa0행복을\xa0찾고,\xa0조그만\xa0성취에도\xa0자족할\xa0수\xa0있는\xa0것을\xa0가장\xa0크게\xa0쳤다.\xa0끊임없이\xa0행복을\xa0추구하기만\xa0하면\xa0행복해질\xa0수\xa0없다.\xa0자기\xa0스스로를\xa0행복하다고\xa0생각하는\xa0사람이\xa0행복하다는\xa0서양\xa0격언처럼\xa0자기의\xa0분수를\xa0알고\xa0그것을\xa0사랑해야\xa0한다.\xa0철학자\xa0安秉煜(안병욱)의\xa0말도\xa0기억하자.\xa0‘행복과\xa0불행은\xa0같은\xa0지붕\xa0밑에\xa0살고\xa0있으며,\xa0번영의\xa0바로\xa0옆방에\xa0파멸이\xa0살고\xa0있고,\xa0성공의\xa0옆방에\xa0실패가\xa0살고\xa0있다.’\xa0/\xa0제공\xa0:\xa0안병화(前언론인,\xa0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