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3일 수요일

괄골요독刮骨療毒 - 뼈를 긁어 독을 치료하다, 비장한 각오로 문제를 해결하다.

괄골요독刮骨療毒 - 뼈를 긁어 독을 치료하다, 비장한 각오로 문제를 해결하다.

괄골요독(刮骨療毒) - 뼈를 긁어 독을 치료하다, 비장한 각오로 문제를 해결하다.

긁을 괄(刂/6) 뼈 골(骨/0) 병고칠 료(疒/12) 독 독(毋/5)

흔히 잘못을 저지른 단체의 지도자들이 뼈를 깎는 각오로 일하겠다고 곧잘 듣는다. 이런 비장한 각오를 수도 없이 들어와 깎을 뼈도 없을 것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나쁜 부분이나 요소들을 깨끗이 없애는 것이 剔抉(척결)이다. 剔은 뼈바를 척, 抉은 도려낼 결이니 여기에 들어맞는 말이다.

정치권에서 새로운 각오로 임한다며 肉斬骨斷(육참골단)이란 말을 많이 썼는데, 일본 사무라이의 성어라는 이 말도 살을 내주고 뼈를 끊는다는 무시무시한 뜻이 담겼다. 어느 것을 쓰더라도 남다른 각오로 임하겠다는 결의가 느껴진다.

살을 가르고 뼈를 깎아(刮骨) 독을 치료한다(療毒)는 이 말도 비장하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의 영웅 關羽(관우)가 팔에 독화살을 맞고 점점 악화될 때 태연히 의원에게 치료한 데서 나왔다. 관우가 曹操(조조)군을 공격하다 매복한 궁수에 독화살을 맞아 오른팔이 금세 부어올랐다.

부하 장수들이 사방으로 의원을 구할 때 홀연히 명의 華佗(화타)가 나타난다. 상처를 살펴보던 화타가 조용한 곳에 기둥을 박고 고리로 팔을 단단히 묶은 다음 ’뾰족한 칼로 살을 째고 뼈를 드러내 뼛속에 스며든 화살독을 긁어내고(尖刀割開皮肉 直至於骨 刮去骨上箭毒/ 첨도할개피육 직지어골 괄거골상전독)‘ 약을 바른 뒤 꿰매야 무사할 것이라 했다.

이 말을 들은 관우는 번거롭게 할 필요 없이 바로 수술해 달라고 청한다. 화타에게 주안상을 대접하고 관우는 태연히 장수 馬良(마량)과 바둑을 두며 치료를 받는다. 부하에게 떨어지는 피를 그릇에 받게 하고, 뼈를 긁어대는 소리가 나자 모두 외면하는데도 관우는 평소와 다름없이 꼿꼿한 자세로 술을 마시며 바둑을 뒀다. 수술을 마친 화타는 관우의 비범한 용기에 감탄했다.

陳壽(진수)의 정사 ‘三國志(삼국지)’에는 이 부분을 刮骨去毒(괄골거독)이라 표현하며 의원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데 화타의 사후에 일어난 일을 연의에서 재미있게 꾸몄다고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xa0

인재시교因材施敎 - 자질에 맞춰 가르침을 베풀다, 능력과 상황에 따라 교육하다.

인재시교因材施敎 - 자질에 맞춰 가르침을 베풀다, 능력과 상황에 따라 교육하다.

인재시교(因材施敎) - 자질에 맞춰 가르침을 베풀다, 능력과 상황에 따라 교육하다.

인할 인(囗/3) 재목 재(木/3) 베풀 시(方/5) 가르칠 교(攵/7)

사람마다 능력이 제각각이고 잘 하는 분야가 다르다. 장차 하고 싶은 일도 모두 다르다. 이런 사람들을 모아놓고 일률적으로 가르친다면 효과가 있을 수 없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적성을 알아내어 그에 알맞은 방향을 정해주고 그에 맞춰 능력을 길러주는 일이다. 학자들은 어떤 교육법이 좋을지 꾸준히 연구하지만 적성이 천차만별이라 뚜렷한 길이 있을 수 없다. 장점이 쉽게 드러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 교육이다.

중국인의 영원한 스승 孔子(공자)가 훌륭한 제자를 많이 길러낸 것에는 그의 교육법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제자를 일률적으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타고난 자질에 따라 달리, 상황에 따라 맞춤교육을 했다는 내용이 ‘論語(논어)’ 先進(선진)편에 실려 있다.

공자와 함께 생사의 기로에서 고락을 함께 한 10명의 孔門十哲(공문십철)이라 해도 덕행과 언어, 정사와 문학에 뛰어난 제자를 엄격히 구분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過猶不及/ 과유불급)’는 말도 子張(자장)의 극단적인 성격과 子夏(자하)의 소극적인 성향을 파악하여 중용을 가르친 데서 나왔다.

이어지는 문답을 보자. 제자 子路(자로)가 ‘옳은 것을 들으면 곧장 실행해야 합니까(聞斯行諸/ 문사행저)?’하고 물었을 때 부형이 계시는데 어찌 바로 실천하느냐고 말했다. 冉有(염유)가 같은 질문을 했을 때 공자는 ‘들으면 곧 실행해야지(聞斯行之/ 문사행지)’라 답했다.

한 제자가 정반대의 답을 하는 스승에게 연유를 여쭈었다. 염유는 뒤로 물러나는 성품이기 때문에 과감해질 필요가 있고, 자로는 남을 이기려하기 때문에 물러날 줄 알게 한 것이라고 공자는 설명했다. 성격을 파악하여 행동하도록 가르친 것이다.

자질에 맞춰(因材) 가르침을 베푼다(施敎)는 말은 이처럼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아도 내용으로 이뤄진 典故(전고)가 논어인 성어다. 오늘날 교육은 소질과 적성을 파악하려는 공자식의 노력은 드물고 경쟁을 부추겨 결과로 나오는 점수로 좋은 학교로 진학하고 일류회사에 취업한다. 그리하여 어릴 때부터 천재교육이니 선행학습이니 하여 적성은 무시하고 몰아붙인다.

머리가 뛰어나거나 앞서가는 자질을 북돋는 수월교육도 한사코 평등주의에 파묻힌다. 한 분야의 미래인재는 드물 수밖에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교외별전敎外別傳 -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마음으로 전하는 진리

교외별전敎外別傳 -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마음으로 전하는 진리

교외별전(敎外別傳) -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마음으로 전하는 진리

가르칠 교(攵/7) 바깥 외(夕/2) 다를 별(刂/5) 전할 전(亻/11)

배움과 깨달음을 얻는 데는 三知(삼지)라 하여 세 단계를 든다. 태어날 때부터 알고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生而知之(생이지지)다. 성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은 배워서 깨달음을 아는 學而知之(학이지지)를 하고, 막다른 곳에 이르러 어쩔 수없이 배워야 하는 困而知之(곤이지지)라도 해야 한다. 孔子(공자)는 곤경에 처해서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困而不學(곤이불학)이라 하여 하급으로 쳤다. 날 때부터 알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움을 멀리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와 통하는 이야기로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마음으로 알아듣는다는 말이 많다. 불교도들에게 친숙한 不立文字(불립문자)나 以心傳心(이심전심) 등이다. 말이나 글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된다는 뜻이다.

불자의 집에서 흔히 접하는 直指人心(직지인심) 見性成佛(견성성불)도 사람의 마음을 직관하여 본래의 성품을 깨닫고 釋迦(석가)의 비법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부처님이 연꽃송이를 집어 올렸을 때 迦葉(가섭, 葉은 잎 엽 또는 고을이름 섭)만이 알아듣고 활짝 웃은 拈華微笑(염화미소)가 흥미를 끈다. 직접적인 가르침 외(敎外)의 방법으로 깨달음을 이어받는(別傳) 이 성어도 여기서 나왔다.

이 재미있는 고사는 의외로 초기 불교관련 서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11세기 宋(송)나라 이후 등장한다고 한다. 達磨(달마)대사에게서 전해진 불교 禪宗(선종)은 어떤 경전의 문구에도 의지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수가 전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로만 전해지던 가섭의 미소가 송의 悟明(오명)이 1183년 편찬한 ‘聯燈會要(연등회요)’ 이후부터 자주 사용되었다고 전한다.

세존은 가섭에게 지혜의 눈과 깨달음의 불심, 불변의 진리와 깨치는 마음을 ‘언어와 경전에 따르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과 함께 전한다(不立文字 教外別傳 付囑摩訶迦葉/ 불립문자 교외별전 부촉마가가엽)’고 했다.

오묘한 불교의 진리를 배우지 못한 일반 사람들이 알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경전을 경시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자 없이 마음으로 구도를 통해서 전한다고 해서 올바른 진리가 오롯이 전해질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반 사회에서도 가르침을 받지 않고서 깨우칠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을 수는 없다. 그러하지 못하니 일상에서 부딪치는 여러 문제들을 푸는 해법들이 내려온다. 실패한 것에서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록한 매뉴얼이다. 큰소리치다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 이전의 가르침이 더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언청계용言聽計用 - 모든 말을 듣고 계책을 받아들이다.

언청계용言聽計用 - 모든 말을 듣고 계책을 받아들이다.

언청계용(言聽計用) - 모든 말을 듣고 계책을 받아들이다.

말씀 언(言/0) 들을 청(耳/16) 셀 계(言/2) 쓸 용(用/0)

모든 인간관계에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신뢰는 강제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다. 孔子(공자)도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라 했다. 개인 뿐 아니라 조직의 상하관계에서 신뢰가 있으면 능력이 배가된다. 위에서 아래로 믿을 뿐만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올린 계획도 믿고 처리한다면 의욕이 충만할 것이다. 어떤 일을 처리할 때 한 사람이 내놓은 의견을 받아들이고(言聽) 그대로 실행한다(計用)는 이 성어가 이러한 경우를 가리킨다. 言聽計從(언청계종)이라 해도 같다.

이 말은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에서 韓信(한신)이 한 말로 淮陰侯(회음후) 열전에 나온다. 그는 처음 천하통일한 秦(진)나라가 쇠약해졌을 때 項羽(항우)에 맞선 劉邦(유방)을 도와 漢(한)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한신은 어렸을 때 매우 가난하여 빨래하는 아낙에게서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漂母飯信/ 표모반신), 그 은혜를 갚은(一飯之恩/ 일반지은) 고사가 따른다. 항상 칼을 차고 다니다 불량배 가랑이 밑을 기어간 跨下之辱(과하지욕)도 한신의 인내심에서 비롯됐다.

이런 한신이 처음에는 항우의 밑에 말단으로 있었다. 유방의 책사 蕭何(소하)가 한신의 능력을 알아보고 유방에게 천거해 대장군이 되었다. 이후 유방의 부하를 이끌고 연승을 거두자 그 능력에 감탄한 항우가 사람을 보내 독립하라고 회유했다. 한신은 漢王(한왕)이 자신에게 대장군 직위를 주고 수만 병력을 통솔하도록 해 주었다면서 거절한다. 그러면서 유방의 은혜를 나열한다.

‘자기의 옷을 벗어 나에게 입히고, 자신의 음식을 대접했으며 나의 건의를 듣고 나의 계책을 써 주기까지 했소(解衣衣我 推食食我 言聽計用/ 해의의아 추식식아 언청계용).’ 여기서 은혜를 베풀고 사람을 중용한다는 解衣推食(해의추식)이 나왔다.

이렇게 의리를 지킨 한신도 나중에는 兎死狗烹(토사구팽) 당하고 만다. 유방에게 배신당한 것이다. 통일을 이루고 황제에 오른 뒤 배신하는 것도 믿음이 부족해서다. 사람을 한 번 믿으면 열린 마음으로 끝까지 흔들리지 않아야 위대한 리더가 될 수 있다. 아랫사람이 지도자를 선택할 때도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한다면 그 조직이 업적을 낼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왕후장상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 -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왕후장상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 -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왕후장상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 -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임금 왕(玉/0) 제후 후(亻/7) 장수 장(寸/8) 서로 상(目/4)\xa0편안 녕(宀/11) 있을 유(月/2) 씨 종(禾/9) 어조사 호(丿/4)

‘씨도둑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아비와 자식은 용모나 성질이 비슷하여 속일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선조가 떵떵거리는 집안이라도 대대로 후손들이 높은 자리에 오를 수는 없다. 능력까지 물려받을 수는 없어 ‘씨가 따로 있나’라는 속담을 낳았다. 똑 같은 말로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王侯將相)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寧有種乎)라는 명구가 있다. 능력은 뛰어나고 포부도 큰데 주위의 여건이 따라주지 못해 뜻을 펴지 못하면서 울분을 토하는 표현이다. 王侯將相 何有種(왕후장상 하유종)으로 쓰기도 한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품팔이꾼으로 지내던 陳勝(진승)과 빈농 출신의 吳廣(오광)이었으니 더욱 와 닿는 표현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秦(진)나라도 始皇帝(시황제)가 죽고 胡亥(호해)가 즉위한 뒤로는 간신 趙高(조고)가 권력을 좌우해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

빈민들을 국경으로 징집할 때 통솔하던 진승과 오광은 도중 大澤鄕(대택향)이란 곳에 이르렀을 때 큰 비를 만나 길이 끊기고 도저히 나아갈 수가 없었다. 정해진 기한 내에 가지 못하면 목이 달아나고 도망치더라도 잡힐 것이 뻔했다. 900여 명을 이끌던 두 사람은 죽는 게 마찬가지라면 차라리 난을 일으켜 나라를 세우다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무리들을 소집했다.

진승이 앞으로 나서 나라의 명을 어기게 되어 꼼짝없이 모두 죽게 됐는데 앉아서 당할 수 없다며 일장 연설을 했다. ‘목숨을 건다면 이름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따로 있다더냐(死即擧大名耳 王侯将相寧有種乎/ 사즉거대명이 왕후장상영유종호)!’ 이렇게 해서 반란의 기치를 높이 들자 주위에서 크게 호응했고 지나는 지역마다 연전연승했다.

이들은 국호를 張楚(장초)로 명명하고 세력을 떨치다 진나라 장수 章邯(장한)의 조직적인 반격에 몰락하고 말았다. 반란군 우두머리 진승이 제국을 망하게 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司馬遷(사마천)은 ‘史記(사기)’에서 陳涉(진섭)세가에 기록했다. 涉(섭)은 진승의 자, 世家(세가)는 제후나 왕의 기록이다.

진승은 잘 알려진 또 다른 명언을 남겼다. 바로 ‘참새나 제비가 어찌 고니의 뜻을 알리요(燕雀安知 鴻鵠之志)’란 말이다. 평범한 사람이 영웅의 큰 뜻을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진승도 세력을 잡았을 때 가까운 사람을 내쳐 마부에게 죽음을 당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오늘날 더 답답해할 사람들이 온갖 자격증을 갖춘 젊은이들일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은 갈수록 줄어들고 빈부의 차는 더 커진다. 재력가와 권력층이 자신들만의 더 탄탄한 성을 구축한다면 큰 뜻을 펴 볼 도리가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여위열기자용女爲悅己者容 - 여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치장한다.

여위열기자용女爲悅己者容 - 여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치장한다.

여위열기자용(女爲悅己者容) - 여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치장한다.

계집 녀(女/0) 하 위(爪/8) 기쁠 열(心/7) 몸 기(己/0) 놈 자(耂/5) 얼굴 용(宀/7)

기쁠 悅(열)은 ‘순종하다’, ‘사랑하다’란 뜻이 있다. 얼굴 容(용)은 ‘용량’, ‘받아들이다’, ‘치장하다’, ‘맵시내다’란 뜻도 있다. ‘여인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한다‘란 뜻의 이 성어는 남녀 성 평등이 강조되는 요즘 세상에 무슨 엉뚱한 말인가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이 구절의 앞에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란 뜻의 士爲知己者死(사위지기자사)와 함께이면 달라진다.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고, 진심을 알고서 항상 감싸주는 사람에게 나쁜 감정을 가질 수는 없다. 더군다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라 한 사람도 있다.

刺客(자객)은 사람을 찔러 죽이는 전문적인 킬러를 말한다. 司馬遷(사마천)은 ‘史記(사기)’에 5명의 자객들을 등장시켜 박진감 있게 그린다. 자객열전에서 살인자인 이들을 협객으로 높인 것은 개인적인 은원이 아닌 자신의 가치를 인정한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렸기 때문이다.

晉(진)나라 사람인 豫讓(예양)은 유력 씨족이었던 智伯(지백)에게 발탁되어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지백은 별 볼일 없던 그의 사람됨을 높이 평가하고 신임했다. 하지만 세력다툼에서 趙襄子(조양자)에게 패배하고 지백은 두개골이 요강으로 사용되는 수모를 입었다. 예양은 산속으로 도망치면서 복수를 다짐했다.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꾸민다고 했다. 목숨을 바쳐 지백의 원수를 갚아야만 내 영혼이 그에게 부끄럽지 않으리라(士爲知己者死 女爲說己者容 以報智伯 則吾魂魄不愧矣/ 사위지기자사 여위설기자용 이보지백 즉오혼백불괴의).’ 예양은 변장을 하고 몇 번이나 조양자를 습격했으나 실패했다.

의리 있는 선비라며 풀어주자 몸에 옻칠을 하고 문둥병을 가장하여 또 암살을 기도했지만 또 실패하자 조양자의 옷을 달라고 하여 옷을 찌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漆身呑炭(칠신탄탄)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

인재를 등용할 때 무엇인가를 바라지 않고 진심으로 그의 능력만을 산다면 배신당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오랫동안 상관의 덕으로 권력을 휘둘렀더라도 성심이 느껴지지 않을 경우 자신이 불리할 때면 등을 돌린다. 하급자의 배신을 욕하기 전에 상급자가 성심껏 자신을 대해 주었는지 알아 볼 일이다. 모든 일에는 신뢰가 가장 앞서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편언절옥片言折獄 - 한마디 말로 송사의 시비를 가리다.

편언절옥片言折獄 - 한마디 말로 송사의 시비를 가리다.

편언절옥(片言折獄) - 한마디 말로 송사의 시비를 가리다.

조각 편(片/0) 말씀 언(言/0) 꺾을 절(扌/4) 옥 옥(犬/11)

재판은 어렵다. 서로 옳다고 대립하는 양자의 주장이 모두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도 같고 저런 것도 같고 해서 한 쪽을 편들 수 없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속담이 나왔겠다. 더하여 자기의 잘못을 발뺌하고 악의로 남을 덮어씌운다면 잘잘못을 가리기가 더 어려워진다. 이럴 때 ‘송사는 졌어도 판결은 잘 하더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솔로몬 왕의 현명한 판단이 절실하다.

한 마디 말(片言)만 듣고서 송사의 대립된 의견을 명쾌히 풀어준다(折獄)는 이 성어는 간혹 명판관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보통 사람은 실행하기 어려운 난제를 이끄는 자가 앞장서 한두 마디 말로써 시원하게 해결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片言可決(편언가결), 片言決獄(편언결옥)이라 써도 같은 뜻이다.

孔子(공자)의 제자 子路(자로)는 魯(노)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仲由(중유)이고 季路(계로)로도 불렸다. 성격이 강직하고 용맹했기에 스승으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자로가 성격이 거친 무뢰배 출신이었지만 공자의 훈계로 입문한 뒤 충성스럽고 신용이 있는 인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공자가 자로를 가리켜 몇 마디 말로써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라 평한 것이 ‘論語(논어)’ 顔淵(안연)편에 실려 있다. 부분을 보자. ‘한 두 마디 말로 송사를 판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유일 것이다. 자로는 승낙한 것을 묵혀두는 일이 없다(片言可以折獄者 其由也與 子路無宿諾/ 편언가이절옥자 기유야여 자로무숙낙).’

자로처럼 소송 당사자중 양 쪽의 한두 마디 말로 해결을 내릴 수 있으면 명판관이다. 하지만 예부터 형을 집행하려면 여러 고관들의 의견을 듣고 뭇 신하와 뭇 백성에게까지 묻는다고 했으니 잘못 판결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茶山(다산)은 ‘牧民心書(목민심서)’에서 ‘몇 마디 말로써 송사의 시비를 가려 마치 귀신처럼 판결을 내리는 자는 별다른 천재이니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흉내 낼 바 못 된다(片言折獄 剖決如神者 別有天才 非凡人之所傚也/ 편언절옥 부결여신자 별유천재 비범인지소효야)’고 충고한다. 刑典(형전) 聽訟(청송)조에 나온다. 剖는 쪼갤 부, 傚는 본받을 효.

공자가 자로처럼 잘 판결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앞서야 할 것은 송사가 없게 하는 일이라 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법정에서 거짓진술을 하는 위증이나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상대를 옭아 넣는 誣告(무고) 범죄가 계속 늘어난다고 한다. 이처럼 거짓범죄가 늘어나면 사회정의는 까마득하다. 한두 마디로 거짓 송사를 일소하는 방법은 없을까.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오금이 저리다… '오금'은 어디일까?

◇ 오금이 저리다… 오금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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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금이 저리다… 오금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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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비견, 슬하, 오금, 부아, 초미, 구설수, 미주알을 위에서 아래 순서대로 나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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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한 의과대학 시험에 나온 문제입니다. 순서는 둘째 치고 각 단어가 무슨 뜻인지 이해되시나요? 눈치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위 단어들은 신체를 나타내는 말인데요. 애가 타다 오금이 저리다처럼 관용 표현으로 쓰이죠. 이처럼 우리말에는 신체에 비유한 관용 표현이 많은데도 뜻을 잘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요. 어떤 표현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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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애타는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처럼 쓰는 \애가 탄다\는 창자·쓸개가 탄다는 의미인데요. 속이 매우 타들어가 안타깝고 초조함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한국 제품 수준이 선진국과 비견할 만큼 높아졌다"에서 \비견\(比肩)은 실력이 비슷하다는 뜻으로 \견\은 어깨를 말하죠. 따라서 \비견하다\는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의미입니다.

애가 둘이라는 표현을 "슬하에 두 자녀를 두었다"고 하는데요. 슬하(膝下)는 \무릎 아래\를 가리키는 말로 주로 \부모의 보호를 받는 테두리\를 의미합니다.

긴장되고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오금이 저리다"는 말 많이 하시죠? 오금을 사타구니나 허벅지로 잘못 알고 계신 분들도 많은데요. 오금은 무릎의 구부러지는 오목한 안쪽 부분으로 "오금이 저리다"는 저지른 잘못이 들통나거나 그 때문에 나쁜 결과가 있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는 것을 일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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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신체를 나타내는 말로는 △허파를 뜻하는 부아(부아가 나다- 노엽거나 분한 마음이 생기다) △눈썹에 불이 붙는다는 뜻의 초미(초미의 관심사- 현재 가장 뜨거운 관심을 불러모으는 일) △창자의 끝 부분을 가리키는 미주알(미주알고주알- 아주 사소한 일까지 속속들이) △입과 혀를 말하는 구설(구설수- 남과 시비하거나 남에게서 헐뜯는 말을 듣게 될 운수) 등이 있습니다.

",

이처럼 평소 자주 쓰는 관용 표현이 어떤 낱말로 이뤄졌는지 뜻을 안다면 이해하기 훨씬 더 쉽겠죠?

"

오늘의 문제입니다. 마음놓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심복이라고 하는데요. 심복은 신체 중 어디를 말할까요.(힌트를 드리면 심복의 한자는 心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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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파

2. 눈썹

3. 심장·배

4. 무릎

정답은 3번 심장·배입니다.

-머니투데이-

◇ 미얀마 시위와 밀크티 동맹

◇ 미얀마 시위와 밀크티 동맹

◇ 미얀마 시위와 밀크티 동맹

19세기 영국과 청나라 간 아편전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차(茶)였다. 당시 영국에서는 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청으로부터 차를 사들일 결제대금 은이 절대 부족했다. 그래서 영국이 고안한 것이 인도를 끼워넣은 ‘삼각무역’이었다. 대중국 무역 독점권을 가진 동인도회사가 영국의 모직물을 인도에 수출하면, 인도는 중국에 아편을 수출하고, 그 대가로 영국이 차를 가져오는 식이다. ‘차의 정치경제학’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차가 다시 국제정치의 중심에 섰다. 태국과 중국 간 소셜미디어(SNS) 전쟁이 계기였다. 태국의 한 유명인이 트위터에 홍콩을 국가로 묘사한 이미지를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중국 누리꾼들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한 처사라며 강력 반발했다. 급기야 두 나라 간 갈등에 홍콩과 대만 누리꾼들이 태국 편에 가세하면서 반중국 운동으로 번졌다. 이를 계기로 태국과 홍콩, 대만 등 세 나라 누리꾼들이 결성한 것이 ‘밀크티 동맹’이다. 차를 즐겨 마시는 중국과 달리 세 나라가 밀크티를 마신다는 공통점에 착안해 만든 이름이다. 밀크티 동맹은 지난해 인도와 중국 간 국경분쟁으로 인도 누리꾼까지 가세하면서 세력을 확장했다.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2월 마지막 날, 미얀마에서 군경의 총격으로 시위대 최소 18명이 숨졌다. 쿠데타 발발 한 달 만의 최악의 유혈사태다. 그러자 홍콩과 태국 방콕, 대만 타이베이에서 청년들이 미얀마 시민 지지 거리시위를 벌였다. SNS상에서만 연대의 뜻을 표출하던 밀크티 동맹이 오프라인으로 활동무대를 넓힌 것이다. 반군부 시위에 나선 미얀마 시민들은 국제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절감하던 터였다. 특히 쿠데타 세력을 강력 비난한 서방국가들과 달리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중국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시민의 안위는 도외시한 채 미얀마의 전략적 가치만 따지고 있다는 것이다.

밀크티 동맹이 미얀마 사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외롭게 투쟁하는 미얀마 시민에게 최대 지원군인 것은 틀림없다. 밀크티 동맹이 만약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켜내고, 나아가 반중 연대라는 한계까지 넘어선다면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 운동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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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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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얀마의 세 손가락 경례

◇ 미얀마의 세 손가락 경례

◇ 미얀마의 세 손가락 경례

미국 작가 수잔 콜린스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헝거게임:판엠의 불꽃’은 독재 정권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다룬 2012년 영화다. 미래 가상국가 판엠은 12개 구역에서 2명씩 추첨해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고 이를 24시간 생중계하면서 주민들을 통제한다. 동생이 뽑히자 자원자로 나선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을 향해 주민들은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세 손가락 경례(Three-finger salute)를 한다. 주인공이 게임 중 동료가 숨진 뒤 주민들을 향해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면서 혁명은 시작된다. 전 세계 스카우트 회원끼리 우정과 예의를 표하는 스카우트 삼지례에서 원형을 찾기도 한다.

영화의 장면이 현실이 된 건 2014년 5월이다. 태국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시위대는 저항의 표시로 세 손가락 경례를 택했다. 태국 시위대는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를 표방했다. 세 손가락 경례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도 등장했다. 지난달부터는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세 손가락 경례를 저항의 상징으로 쓰고 있다.

초 모 툰 유엔 주재 미얀마 대사가 유엔총회에서 미얀마 군부를 향해 쿠데타를 즉각 종식하고 무고한 시민에 대한 억압도 당장 멈출 것을 촉구했다. 그는 “국가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줘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도 필요한 조치를 해달라"며 세 손가락 경례를 했다. 군사 정권의 서슬에도 굴하지 않은 외교관의 울림은 컸다. 일격을 당한 군정은 곧바로 그를 해임했지만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맞서 싸울 것"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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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일요일을 보낸 미얀마에서 희생자가 크게 늘고 있다. 군부는 시민들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며 유혈 진압을 서슴지 않고 있다. 미얀마의 세 손가락 경례는 비폭력 민주주의 운동이란 점에서 가깝게는 촛불 시위, 멀게는 3·1운동과도 연결점이 있다. 군부 쿠데타에 대한 저항이란 점에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미얀마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도 울려 퍼진다고 한다. 엄혹한 시절, 국제 사회의 관심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됐다. 이젠 우리가 미얀마에 힘이 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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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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