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4일 목요일

◇ 젊은 층의 反中 정서

◇ 젊은 층의 反中 정서

◇ 젊은 층의 反中 정서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에게서 청년들 사이에 번지는 반중(反中) 감정을 전해 들었다. 수업 중에도 큰소리로 말하는 중국 학생들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다. 강의 들으며 구운 김을 뜯어 먹는 모습도 봤다고 한다. 새내기들은 선배가 전수한 ‘중국 학생들이 듣는 강좌 리스트’를 꿀팁이라며 공유한다. 피하려는 것이다. 학교 근처에 원룸을 구할 때도 중국인이 있으면 발길을 돌린다고 한다.

586세대가 대학 다니던 1980년대 캠퍼스엔 외국인이 드물었다. 반미·반일 정서가 대학가를 지배했지만 역사 인식에서 비롯됐을 뿐, 살면서 피해를 본 일은 없다. 그래선지 미국, 일본을 욕하다가도 두 나라 관광객을 보면 친절을 베풀었다. 반면 요즘 20대 청년들 사이에 번지는 반중 정서는 일상의 접촉을 통해 쌓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019년 기준 한국에 유학 중인 외국인 대학생·대학원생은 약 14만2000명이다. 이 중 중국인이 전체의 절반인 약 7만여명이다. 중국 유학생 1000명이 넘는 서울 소재 대학이 17곳이다. 중국인이 재학생 10명에 한 명꼴인 대학도 있다. 젊은이들의 일상 자체가 중국인과 부대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미세 먼지와 황사가 겹쳤다. 서해의 무법자인 중국 불법 어선 문제도 있다. 방탄소년단 등 한류 스타들을 괄시하고, 고구려만이 아니라 한복과 김치까지 자기들 것이라 우기며, 남자가 알몸으로 배추를 절이는 무개념 행태 등이 젊은 층의 반중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조선 태종과 왕자들이 악령과 맞서 싸우는 내용의 한 TV 드라마가 최근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충녕대군이 바티칸에서 온 가톨릭 사제에게 중국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에서 사달이 났다. “배경이 조선인데 왜 중국 음식을 쓰느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마귀를 쫓는 판타지 드라마일 뿐인데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방영 중단 요구가 빗발쳤다. 이 현상은 젊은 층의 반중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MZ세대로 불리는 한국 청년들은 집단보다 개인의 권리를 소중히 여기며, 인권·공정의 가치에 민감하다. 이런 청년들이 공산당 독재 체제에 세뇌된 중국 청년들과 일상 공간에서 얽히니 사사건건 부딪친다. 홍콩 민주화 시위 때 국내 대학 대자보 훼손 문제로 충돌한 게 대표적이다. 그래도 혐오로 증폭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민족 감정은 숙취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숙취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지만 술을 계속 마시면 악화한다. 이웃으로 지내는 것이 숙명이라면 공존의 지혜를 찾는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만물상-

◇ 관용차와 국민의 관용

◇ 관용차와 국민의 관용

◇ 관용차와 국민의 관용

관용차는 말 그대로 정부나 공공기관 같은 관(官)에서 운용하는 차량이다. 용도에 따라 승용·승합·화물·특수 차량 등으로 나뉜다. 승용차는 다시 특정인만 타는 전용 차량과 직원들이 함께 이용하는 업무 차량으로 나뉜다. 공용차량 관리 규정(제4조 제2항)은 차관급 이상 공무원의 경우 전용 차량을 두도록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자동차등록현황에 따르면 승용 관용차는 2015년 2만7004대에서 2020년 3만3619대로 5년 새 크게 늘었다. 승합이나 화물·특수차까지 합친 관용차 전체 숫자는 같은 기간 7만7557대에서 9만3957대로 증가했다. 증가율로 따지면 승용차가 24.5%로, 전체 증가율(21.1%)을 웃돈다.

회의와 현장 방문이 잦고 격무에 시달리는 공직자에게 이 정도 편의를 제공하는 것을 혈세 낭비라 반대할 국민은 없다. 그러나 진짜 관용차를 업무에 제대로 쓰고 있는지, 그래서 늘어난 관용차 숫자만큼 업무효율도 증가했는지는 의심쩍기만 하다. 잊을 만하면 관용차를 둘러싼 논란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2015년 군 지휘관급 간부에게 배정된 관용차 사용 실태를 전수 조사한 결과, 군 고위 관료 10여명이 골프를 치러 갈 때나 휴가 기간에도 관용차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에는 원주시의회 한 의원이 의정활동에 사용하라고 제공되는 관용차를 타고, 자신의 축사를 둘러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 불거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이성윤 중앙지검장 ‘황제조사’ 논란은 더 기가 찬다. 피의자 신분인 이 지검장에게 김진욱 공수처장은 자신의 1호 관용차를 제공, 은밀하게 청사로 들어오도록 했다. 보안상의 이유라고 해명했지만, 수사를 위한 것인지 이 지검장의 편의를 위한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공수처에서 부르면 차를 보내달라고 하자’는 우스개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말은 공직사회에 융통성 없이 무사안일만 추구하는 문화가 있다는 점을 꼬집는 것이다. 업무에 창조성과 상상력을 발휘해달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관용차를 골프 치고 장 보러 다니는 데 쓰거나, 피의자를 뒷골목에서 숨겨 태우는 데 활용하는 해괴한 상상력을 발휘해선 곤란하다. 그건 국민의 관용(寬容)을 넘는 일이다.

-중앙일보 분수대-

마전성경磨磚成鏡 -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다, 형식보다 실천을 중시하라는 의미

마전성경磨磚成鏡 -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다, 형식보다 실천을 중시하라는 의미

마전성경(磨磚成鏡) -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다, 형식보다 실천을 중시하라는 의미

갈 마(石/11) 벽돌 전(石/11) 이룰 성(戈/3) 거울 경(金/11)

아무리 어려운 일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난관을 뚫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면 되지 않을 일이 없다. 노력을 기울이면 성공이 눈앞에 온다는 교훈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한다. 관련 속담, 격언이나 성어도 부지기수로 많다. 90세 되는 노인이 마을 앞뒤에 있는 큰 산을 삽으로 파서 옮긴다는 愚公移山(우공이산)이나 자유분방한 시선 李白(이백)이 젊은 시절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磨斧爲針(마부위침) 이야기를 한 할머니에게서 듣고 대오각성 했다는 이야기는 특히 유명하다.

그런데 벽돌을 갈아(磨磚) 거울을 만든다고(成鏡) 하는 이 말은 더 쉬울 듯한데 나타내는 뜻이 전혀 달라 의외다. 禪宗(선종)의 통사인 불교서적 ‘五燈會元(오등회원)’에 실린 이야기를 먼저 보자.

唐(당)나라의 선승 南嶽懷讓(남악회양, 677~744)이 좌선을 하고 있는 사문 馬祖道一(마조도일, 709~788)에게 무엇 때문에 열심인지 물었다. 도일이 부처가 되기 위해서라고 하자 회양은 벽돌을 집어와 바위 위에 대고 갈기 시작했다. 무엇 하려 벽돌을 가느냐고 여쭈니 거울을 만든다고 했다. 벽돌이 어떻게 거울이 되느냐고 하자 좌선하여 부처가 어찌 되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소가 수레를 끌고 가다 멈춘다면 수레를 때려야 하는지 소를 때려야 하는지 비유하며 깨우쳤다. 몸은 수레와 같고 마음은 소와 같은데 일정한 형상이 아닌 부처가 되기 위해 좌선에만 집착한다면 이치를 통달하지 못한다는 가르침이었다. 형식보다는 실천을 중시하여 중생 곁으로 가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보람도 없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蒸沙成飯(증사성반),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 하는 것에 비유한 말도 있다. 唐代(당대)의 기승으로만 알려져 있고 생존 연대가 구구한 寒山(한산)의 시집에 문구가 나온다. ‘모래를 삶아 밥을 지으려 하고, 목이 마르자 비로소 샘을 파네(蒸砂擬作飯 臨渴始掘井/ 증사의작반 임갈시굴정),, 아무리 애써 기왓장을 갈아도, 어찌 거울을 만들 수 있겠는가(用力磨碌磚 那堪將作鏡/ 용력마록전 나감장작경)?’ 碌은 푸른 돌 록. 안으로 헤아려 생각하고 부질없이 밖으로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고 가르친다.

신라의 元曉大師(원효대사)가 지은 불교입문서 發心修行章(발심수행장)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지혜있는 사람은 쌀을 쪄서 밥을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모래로 밥을 만드는 것과 같다(有智人所行 蒸米作飯 無智人所行 蒸沙作飯/ 유지인소행 증미작반 무지인소행 증사작반).’ 준비 없이 일에 부닥친 뒤에야 허둥지둥 대책을 세워봐야 성사되기 어렵다.

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뒷전인 채 겉보기만 화려하게 꾸며 일을 하려 해도 잘 될 리가 없다. 그러다가 배가 산으로 가는데 자꾸 변명만 늘어놓는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다난흥방多難興邦 -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난 뒤 나라가 흥하

다난흥방多難興邦 -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난 뒤 나라가 흥하

다난흥방(多難興邦) -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난 뒤 나라가 흥하

많을 다(夕/3) 어려울 난(隹/11) 일 흥(臼/9) 나라 방(阝/4)

개인이나 나라나 평안한 나날만 계속되면 좋으련만 그렇게 되지 않아 好事多魔(호사다마)나 禍不單行(화불단행)이란 말이 많이 나왔다. 일면 興盡悲來 苦盡甘來(흥진비래 고진감래)라 하여 나쁘고 어려운 일 다음에는 좋은 세상이 온다고 위안을 주는 교훈도 있다.

어려운 일을 많이 겪으면(多難) 오히려 내부를 결속시켜 나라가 더욱 일어난다는(興邦) 이 성어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나라 위기 때마다 뜻있는 사람들이 인용하여 용기를 고취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 魏(위)나라에서 세력을 떨치던 司馬氏(사마씨)가 왕위를 물려받아 세운 晉(진)나라는 결국 통일을 이뤘다. 하지만 건국 초기 황족 8명의 피비린내 나는 세력 다툼 팔왕지난(八王之亂)이 16년이나 끌어 나라는 혼란의 극에 달했다. 이 틈을 타 북방의 匈奴(흉노), 鮮卑(선비) 등 다섯 민족이 남진한 五胡亂華(오호난화)까지 일어나 2대의 왕이 연속 살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광대한 영토가 유린되는 이런 난리를 보고도 좌승상 司馬睿(사마예, 睿는 슬기 예)는 강남에서 관망만 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祖逖(조적, 逖은 멀 적), 劉琨(유곤, 琨은 옥돌 곤)과 같은 장수들은 북벌을 단행하는 한편, 180여 명의 이름으로 勸進表(권진표)를 올리고 제위 계승을 권했다.

그 내용 중 ‘많은 재난이나 어려움은 우리나라를 공고히 하게하며, 깊은 근심은 황제로 하여금 더욱 현명하게 해줍니다(或多難以固邦國 或殷憂以啓聖明/ 혹다난이고방국 혹은우이계성명)’에서 이 성어가 나왔다. 사마예가 계승한 나라가 東晋(동진)인데 그는 현명하게 대처를 못하고 북벌은커녕 두 장군을 의심해 죽게 만들었다. ‘晉書(진서)’ 元帝(원제)편에 실려 있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불로장생不老長生 - 늙지 아니하고 오래 살다.

불로장생不老長生 - 늙지 아니하고 오래 살다.

불로장생(不老長生) - 늙지 아니하고 오래 살다.

아닐 불(一/3) 늙을 로(老/0) 긴 장(長/0) 날 생(生/0)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바라는 것은 재산보다도 명예보다도 건강일 것이다. 아프지 않고 오래 살고(長生) 그것도 늙지 않은 채(不老) 살아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그래서 예로부터 영원히 죽지 않거나 오래 산다고 믿어왔던 열 가지 十長生圖(십장생도)를 옆에 두고 기원하거나 仙藥(선약)과 不死藥(불사약)을 구하려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노력을 기울였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聖書(성서)에서 므두셀라(Methuselah)는 969세, 노아(Noah)는 950세를 살았다고 하고, 중국 黃帝(황제)의 자손이라 하는 彭祖(팽조)라는 도인은 자취를 감출 때 770세였지만 그 때까지 피부가 동안이었다 한다. 훨씬 능가하는 사람이 있다. 前漢(전한)시대 해학이 넘치는 문인 東方朔(동방삭)은 신들의 어머니 西王母(서왕모)의 복숭아 蟠桃(반도, 蟠은 두를 반)를 훔쳐 먹고는 三千甲子(삼천갑자)를 살게 됐다. 1갑자가 60년이니 무려 18만년, 어딘가에 아직 생존하는 셈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 말고 절대 권한이 있던 황제는 오래 살기 위한 불로초와 선약을 구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역시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 秦始皇(진시황)이다. ‘史記(사기)’ 진시황 본기에는 齊(제)나라 方士(방사)인 徐市(서불)이 저 멀리 바다 건너 三神山(삼신산)에 신선이 산다고 했다. 市은 치마 불, 徐福(서복)이라고도 한다.

진시황이 동남동녀 수천 명을 데리고 가서 모셔오라고 보냈다(是遣徐市發童男女數千人 入海求僊人/ 시견서불발동남녀수천인 입해구선인). 僊은 신선 선. 서불은 부산, 남해를 거쳐 제주도에 도착하여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西歸浦(서귀포)에는 축제로 기념하고 일본에도 곳곳 유적이 있는데, 뒤의 기록은 남지 않아 진위는 분분하다.

장수의 욕심을 부렸던 진시황은 그러나 49세의 나이로 순행 중 죽었다. 漢高祖(한고조)부터 200여 명의 중국 황제 중 80세를 넘긴 사람은 5명에 불과하다고 한 조사도 있다. 조선 왕조는 더해 환갑을 넘긴 왕이 5명뿐이었다고 한다. 유교에서 말하는 五福(오복) 중에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考終命(고종명)이라 한다. 억지를 부리지 말고 편안히 살다 제 명에 죽는 것 이상은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호유기미狐濡其尾 - 여우 꼬리가 물에 젖다, 시작은 쉬우나 마무리가 허술하다.

호유기미狐濡其尾 - 여우 꼬리가 물에 젖다, 시작은 쉬우나 마무리가 허술하다.

호유기미(狐濡其尾) - 여우 꼬리가 물에 젖다, 시작은 쉬우나 마무리가 허술하다.

여우 호(犭/5) 젖을 유(氵/14) 그 기(八/6) 꼬리 미(尸/4)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거들먹거리는 狐假虎威(호가호위)에서 보듯 여우는 교활의 대명사다. 교활한 사람을 비유하는 대명사이기도 한데 九尾狐(구미호)는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여우로 살살거리는 여성을 지칭했다. 꼬리에 관한 성어는 龍頭蛇尾(용두사미)나 狗尾續貂(구미속초)처럼 보잘것없는 마무리를 뜻한다. 다른 동물의 속담도 보자. ‘개 꼬리 삼년 묵어도 황모 되지 않는다(三年狗尾 不爲黃毛/ 삼년구미 불위황모)’, ‘노루 꼬리가 길면 얼마나 길까(獐尾曰長 幾許其長/ 장미왈장 기허기장).’ 그런데 몸매가 날씬한 여우는 주둥이가 길고 뾰족한데 비해 꼬리는 굵고 길어 그럴 듯해 보인다.

꾀주머니 여우라도 꼬리는 거추장스럽다. 여우의 꼬리가 물에 젖는다는 이 성어는 크고 탐스러운 모양으로 거창하게 일을 벌였다가 낭패를 당하는 것을 말한다. 여우는 머리가 가볍고 꼬리가 무겁기 때문에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꼬리를 얹고 건너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건너는 도중에 힘에 부쳐 꼬리가 젖게 되면 몸 전체가 가라앉게 된다. 모양 좋게 일을 떠벌여 시작하기는 쉬워도 끝까지 마무리를 잘 하기는 어렵다. 재주가 별로 없으면서 감당하지 못할 일을 맡아 끙끙거리다가 중도 포기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 ‘史記(사기)’의 春申君(춘신군) 열전에서 인용하는 말이 나온다.

戰國四公子(전국사공자)의 한 사람인 楚(초)나라의 춘신군은 본명이 黃歇(황헐)로 유일하게 왕족 출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박학하고 담력이 있으며 변설에도 능해 초왕은 그를 중용했고 주변국에 위력을 떨치는 秦(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초나라를 침공할 계획을 알아챈 춘신군은 진왕에게 글을 올렸다. 위력을 믿고 주변국을 차지하려는 마음을 억제한다면 仁王(인왕)이 되고 그렇지 않다면 후환이 두렵다며 이어진다.

‘시경에 시작하는 자는 적지 않으나 끝이 좋은 자는 드물다고 했고(詩曰 靡不有初 鮮克有終/ 시왈 미불유초 선극유종), 주역에는 여우가 물을 건너려면 그 꼬리를 적신다(易曰 狐涉水 濡其尾/ 역왈 호섭수 유기미)고 했습니다.’ 靡는 쓰러질 미.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맺음은 어렵다는 비유였다. 옳다고 여긴 진왕은 출병을 중지시켰다.

여우가 물에 들어가기는 쉬워도 빠져나올 때는 큰 꼬리에 물이 많이 묻어 힘이 든다. 큰일을 시작하려면 자신의 능력을 먼저 알고, 주변에 미치는 영향까지 세밀히 분석한 다음 착수해야 실패하지 않는다. 인기만 믿고 그럴 듯한 명분으로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나중에는 오도 가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앞에 나온 용의 무서운 머리가 뱀의 가느다란 꼬리로 변한다는 것이나, 태산이 울리더니 쥐 한 마리 나온다는 泰山鳴動鼠一匹(태산명동서일필)이나 모두 시작을 잘못하여 생겨난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봉두구면蓬頭垢面 - 흐트러진 머리칼에 때 낀 얼굴, 빈곤한 모습, 외모에 무관심

봉두구면蓬頭垢面 - 흐트러진 머리칼에 때 낀 얼굴, 빈곤한 모습, 외모에 무관심

봉두구면(蓬頭垢面) - 흐트러진 머리칼에 때 낀 얼굴, 빈곤한 모습, 외모에 무관심

쑥 봉(艹/11) 머리 두(頁/7) 때 구(口/6) 낯 면(面/0)

쑥대머리라 하면 판소리 春香歌(춘향가)에 나오는 獄中歌(옥중가)를 먼저 떠올린다. 춘향이 옥중에서 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며 ‘쑥대머리에 鬼神形容(귀신형용)’이라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귀신의 모양이라 했듯이 머리털이 헙수룩하게 마구 흐트러진 머리가 쑥대머리다. 蓬頭亂髮(봉두난발)이라 흔히 말한다.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부녀자에 해를 끼치는 처녀귀신의 모습과 닮았다. 머리털을 풀어헤쳐 쑥 모양(蓬頭)인 데다 얼굴에 때가 덕지덕지 끼여 있으면(垢面) 더욱 으스스한 모습이다. 용모가 단정하지 못하고 생활이 빈곤한 모습을 나타내거나 외모에 무관심한 태도를 말한다.

중국 華北(화북) 지역에 세운 北朝(북조) 최초의 北魏(북위, 386∼534)에 封軌(봉궤)라는 유학자겸 관료가 있었다. 그는 학문을 좋아해 五經(오경)과 春秋三傳(춘추삼전)에 능했다. 사람이 정직하고 원세에 아부할 줄 몰랐을 뿐 아니라 훤칠한 키에 인물도 수려했다. 거기에 평소에도 신경을 써서 몸단장을 하는 편이었다. 한 선비가 와서 학문을 하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용모에 대해 신경을 쓰는지 물었다. 봉궤가 웃으며 말했다. 군자란 의관을 단정히 해야 하는 법인데 ‘어째서 흐트러진 머리에 때가 낀 얼굴을 해야만 어질다고 하는가(何必蓬頭垢面 然後爲賢/ 하필봉두구면 연후위현)?’하고 답하니 대꾸도 못했다. ‘魏書(위서)’에 전하는 이야기다.

혼란의 南北朝(남북조) 시대 나라를 옮겨 다니며 파란의 생활을 영위했던 顔之推(안지추, 531∼591)라는 문필가는 자손을 위한 교훈서 ‘顔氏家訓(안씨가훈)’을 남겼다. 가족과 대인관계를 비롯하여 풍속, 학문 등 다양한 내용을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기술한 중요자료가 되는 책이다. 風操(풍조) 편에도 이 성어가 사용됐다.

관직에 있는 부친이 잘못하여 탄핵을 받으면 아들은 ‘짚신에 거친 옷을 입고 쑥대머리에 더러운 얼굴로 거리를 헤매며(草屩粗衣 蓬頭垢面 周章道路/ 초교조의 봉두구면 주장도로)’ 억울함을 호소한다고 했다. 屩는 짚신 교.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에게 위화감을 줄 정도로 차림을 가꾸지 않아도 문제이지만 겉모습에 너무 신경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털털한 모습에도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만의 연구에 빠진 사람은 외모는 뒷전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겉모습보다 속마음이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백아절현伯牙絶絃 -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다, 참다운 벗의 죽음을 슬퍼하다.

백아절현伯牙絶絃 -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다, 참다운 벗의 죽음을 슬퍼하다.

백아절현(伯牙絶絃) -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다, 참다운 벗의 죽음을 슬퍼하다.

맏 백(亻/5) 어금니 아(牙/0) 끊을 절(糸/6) 줄 현(糸/5)

우정을 기리는 명언은 동서에 걸쳐 숱하다. 어려서부터의 우정을 대표하는 竹馬故友(죽마고우)나 管鮑之交(관포지교),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肝膽相照(간담상조)나 刎頸之交(문경지교)는 실제 과장된 면이 있고 이해관계 앞에서는 아슬아슬하다. 이에 반해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은 친구의 능력을 알아주고 끊임없이 발전하게 하는 伯牙(백아)와 鍾子期(종자기) 사이를 뛰어넘을 것이 없을 정도다.

고관의 자리에 있었던 백아는 나무꾼 종자기와 의형제를 맺기까지 했다. 백아는 자신이 연주하는 거문고 가락을 이해해 주는 知音(지음)의 종자기가 세상에서 더없이 고마웠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더 이상 의미 없다며 손을 놓았다. 伯牙(백아)가 악기의 줄을 끊어버리기까지(絶絃) 했던 것이다.

‘列子(열자)’를 비롯한 여러 고전에서 언급된 만큼 많이 알려지고 인용되었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서 높은 벼슬을 하던 兪伯牙(유백아)는 거문고의 명수였다. 어느 때 백아는 연주하는 뜻을 기막히게 이해하는 종자기라는 나무꾼을 만났다. 그가 높은 산과 큰 강의 분위기를 시도하면 종자기는 태산이 우뚝하고 황하가 넘실댄다고 탄성을 연발한다. 高山流水(고산유수)는 여기서 비롯됐다.

그러나 불행히도 종자기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백아는 거문고의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이 부분을 ‘呂氏春秋(여씨춘추)’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죽을 때까지 연주하지 않았다(伯牙破琴絕絃 終身不復鼓琴/ 백아파금절현 종신불부고금).’ 孝行覽(효행람)편에 있다.

조선 中宗(중종)때 개혁정치를 펼치다 己卯士禍(기묘사화)로 목숨을 잃은 趙光祖(조광조, 1482~1519)는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는 ‘詠琴(영금)’이란 시를 남겼다. 내용을 살펴보자. ‘옥 거문고로 천년의 곡조를 타지만, 속된 사람들 멍하니 귓전으로만 듣고 마네(瑤琴一彈千年調 聾俗紛紛但聽音/ 요금일탄천년조 농속분분단청음), 슬프다 종자기는 죽은 지 이미 오래, 세상에 뉘 있어 백아의 마음 알아주리(怊悵鐘期沒已久 世間誰知伯牙心/ 초창종기몰이구 세간수지백아심).’ 怊는 슬퍼할 초, 悵은 원망할 창.

성경 말씀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한복음)고 했는데 그러한 고귀한 우정은 점차 옅어지고 있다. 간을 내어줄 듯 친밀하게 굴다가도 이해관계가 걸리면 언제 보았느냐는 듯 등을 돌리고 심지어 원수가 된다.

극심한 경쟁시대라 어릴 때부터 모두들 학원으로 다닌다고 동네에서 같이 놀아줄 친구가 없다고 한다. 중고등학교로 올라가서는 친구가 잘 되면 자기에게 손해가 온다고 기를 쓰고 깎아내리기 일쑤다. 이렇게 삭막한 환경에서 자란다면 그 누가 친구에게 이웃에게 양보하겠는가.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백천귀해百川歸海 - 모든 하천은 바다로 돌아간다.

백천귀해百川歸海 - 모든 하천은 바다로 돌아간다.

백천귀해(百川歸海) - 모든 하천은 바다로 돌아간다.

일백 백(白/1) 내 천(巛/0) 돌아갈 귀(止/14) 바다 해(氵/7)

조그만 냇물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 바다가 될 수 있는 것은 모든 강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모든 강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든 강보다 낮은 쪽에 위치하여 차별을 하지 않고 강물을 받는다. 같은 의미의 李斯(이사)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秦(진)나라에 모여든 각국 인재를 축출하려 하자 諫逐客書(간축객서)로 부당함을 절절이 상소한다. 태산이 작은 흙도 사양 않고 받아들여 이뤄졌다는 泰山不辭土壤(태산불사토양)의 대구로, 강과 바다는 개울물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이루어졌다는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가 그것이다.

모든 하천(百川)은 바다로 돌아간다(歸海)는 이 성어도 물론 같은 뜻을 가졌다. 여기서의 百(백)은 숫자 100을 의미한다기보다 ‘많다’, ‘모든’의 뜻을 갖는다. 百川入海(백천입해), 海納百川(해납백천)라 해도 뜻이 같고, 처음에 가는 길은 서로 다르지만 나중에 도달하는 곳은 같다는 殊途同歸(수도동귀)도 의미가 통한다. 강물이 수도 없이 꺾여 흐르더라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는 萬折必東(만절필동)이란 말을 대사가 사용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원래의 뜻은 그렇더라도 충신의 절개를 비유했고 특히 조선시대 중국황제를 위한 충절을 가리켰기에 같이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百川(백천)의 성어는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저술한 ‘淮南子(회남자)’에 처음 사용됐다. 이 책은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의 손자인 유안이 전국의 빈객과 방술가의 지혜를 빌려 제자백가를 아우른 방대한 백과사전이다. 氾論訓(범론훈)에 나오는 부분을 보자.

예로부터 내려오는 관습이더라도 시의에 맞지 않으면 따르기가 어려우므로, 성인은 법을 때에 따라 변화시키고 풍속이나 법도도 적당함을 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어진다. ‘모든 개울은 근원을 달리 했으나 바다로 모이게 되고, 모든 사람은 직업이 다르지만 한결같이 잘 하도록 힘쓴다(百川異源 而皆歸於海 百家殊業 而皆務於治/ 백천이원 이개귀어해 백가수업 이개무어치).’ 모든 일에 원칙만 찾고 순리로 받아들일 융통성이 없다면 일을 원만하게 이룰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한 조직을 이끌려면 지도자가 어떠해야 인재가 모이는 바다가 되는지 이 성어는 알려준다. 개성이 각각 다른, 재주가 모두 천차만별인 조직원들을 이끌려면 포용이 우선이다. 가장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처신하면 모두들 재주를 발휘하며 내일같이 정성을 다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조고각하照顧脚下 - 자신의 다리 밑을 살펴보라, 남 탓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라.

조고각하照顧脚下 - 자신의 다리 밑을 살펴보라, 남 탓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라.

조고각하(照顧脚下) - 자신의 다리 밑을 살펴보라, 남 탓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라.

비칠 조(灬/9) 돌아볼 고(頁/12) 다리 각(肉/7) 아래 하(一/2)

하늘의 별을 연구한다며 위만 보고 걷다가 개울에 빠졌다. 원대한 꿈을 꾸는데 웬 개울이 가로놓여 방해를 한다고 꾸짖을 일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모르고 남 탓을 한다. 그래서 자기 결함은 생각지 않고 애꿎은 사람이나 조건만 탓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속담이 유난히 많다. 비하하는 말이나 낮춤말이 썼지만 ‘소경이 개천 나무란다’,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등이고 ‘가마 밑이 노구솥 밑을 검다 한다’는 한역어 釜底笑鼎底(부저소정저)에서 소개한 바 있다.

수신을 잘 한 선비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어도 보통 사람들과 달리 고칠 줄 안다. 그래서 孔子(공자)는 허물을 남 탓하지 않고 자신에게서 찾는다고 反求諸己(반구저기)라 했고, 잘못을 알면 반드시 고친다고 知過必改(지과필개)라 했다. 더하여 曾子(증자)는 매일 세 번을 반성한다고 三省吾身(삼성오신)이란 말을 남겼다.

불교에서도 쉬운 비유로 큰 깨달음을 주는 좋은 말이 있다. 항상 자신을 비추어 반성하되(照顧) 자기 발밑부터(脚下) 먼저 하라는 이 성어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의 과거 언행을 돌이켜보고 가까운 데를 더 조심하고 신경 써야 한다는 뜻이다. 신발을 가지런히 놓으라는 가르침도 있다. 脚下照顧(각하조고)도 같다.

중국 宋(송)나라 때 발간된 禪宗(선종)의 통사 ‘五燈會元(오등회원)’의 三佛夜話(삼불야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선승 普濟(보제)가 慧明(혜명) 등 여러 제자에 명하여 편찬되어 禪(선)의 대의를 밝힌 입문서로 여겨진다는 책이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선승 五祖法演(오조법연)이 자신을 잇는 제자 三佛(삼불)과 함께 밤길을 걷다가 세찬 바람에 등불이 꺼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승이 묻자 佛眼淸遠(불안청원)과 佛鑑慧懃(불감혜근)은 심오한 답을 한 반면 佛果克勤(불과극근)은 ‘발밑을 살펴보십시오(看脚下/ 간각하)’라고 말했다. 스승은 자신을 이을 사람은 克勤(극근)이라 했다. 살피는 看(간)이 照顧(조고)로 바뀌어 사용된다.

이 대답을 한 圓梧克勤(원오극근)은 碧巖錄(벽암록)에 가르침이 남아 있다. 수행과정에서 어떻게 해 볼 방도가 전혀 없는 경지에서는 자신과 가까운 곳부터 해결해야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험한 말로 싸우고 욕심이 이글거리는 사회에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과오를 찾는 것은 천주교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펼쳤던 ‘내 탓이오’ 운동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남의 잘못을 신랄히 지적하다가 자신의 똑 같은 잘못이 드러나도 발뺌하는 ‘내로남불’이 더 기승을 부리는 사회에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