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일 월요일

춘당춘색 고금동春塘春色 古今同 - 춘당대의 봄빛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태평스런 세월

춘당춘색 고금동春塘春色 古今同 - 춘당대의 봄빛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태평스런 세월

춘당춘색 고금동(春塘春色 古今同) - 춘당대의 봄빛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태평스런 세월

봄 춘(日/5) 못 당(土/10) 봄 춘(日/5) 빛 색(色/0) 예 고(口/2) 이제 금(人/2) 한가지 동(口/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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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작자 미상 소설 ‘春香傳(춘향전)’만큼 널리 사랑받는 작품도 드물 것이다. 판소리로 불리다가 소설로 되어 이본이 120여 종이나 된다고 하고, 창극이나 신소설 등으로 개작되기도 했다. 현대에도 연극, 영화로 수없이 만들어졌으니 알 만하다. 주인공 成春香(성춘향)과 李夢龍(이몽룡)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와 학정을 일삼는 특권 계급을 통쾌하게 응징하는 이야기를 담아 서민들이 더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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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 있는 춘당대의 봄빛(春塘春色)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古今同)는 멋진 글귀는 이몽룡이 과거를 볼 때 나온 시제였다. 시절이 태평스럽고 무사함을 뜻하는 말로 太平煙月(태평연월)이나 萬里同風(만리동풍)과 같다. 이르는 곳마다 같은 바람이 분다는 말은 먼 곳까지 통일되어 풍속이 같아지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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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학동들이 익히던 五言(오언) 대구모음 推句(추구)에도 뜻이 통하는 구절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아침과 저녁으로 변하나, 산의 색깔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人心朝夕變 山色古今同/ 인심조석변 산색고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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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어떠하든 이몽룡의 응시모습을 보자. 글로는 李白(이백)이요, 글씨는 王羲之(왕희지)라 趙孟頫(조맹부, 頫는 구부릴 부)체를 받아 일필휘지하니 字字(자자)이 批點(비점)이요, 句句(구구)이 貫珠(관주) 받아 龍蛇飛騰(용사비등)하고 平沙落雁(평사낙안)이라 壯元及第(장원급제)는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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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암행어사로 가는 곳이 南原(남원)이라 춘향을 괴롭히는 변사또를 벌하는 부분이 하이라이트였다. 춘향과 사랑을 나누다 1년 만에 응시하여 수석을 하고, 그리고 연고지에 발령받는다는 것은 당시의 相避制(상피제)를 무시한 어림없는 일이었지만 소설의 극적효과를 위한 것이니 이해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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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치르는 춘당대의 시제는 태평세월을 노래하는 것이었어도 남원에 이몽룡 부친의 후임으로 왔던 卞學道(변학도)가 춘향에게 가한 횡포는 이와는 멀다. 이몽룡 어사가 와서 읊은 시는 당시의 학정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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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이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뭇사람의 피요(金樽美酒千人血/ 금준미주천인혈), 옥쟁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다(玉盤佳肴萬姓膏/ 옥반가효만성고),“ 피와 기름을 강제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없이 바치게 되는 사람이 많으면 좋은 세상이 아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2024년 3월 31일 일요일

응시호보鷹視虎步 - 매의 눈빛과 범의 걸음걸이, 흉악한 사람의 외모

응시호보鷹視虎步 - 매의 눈빛과 범의 걸음걸이, 흉악한 사람의 외모

응시호보(鷹視虎步) - 매의 눈빛과 범의 걸음걸이, 흉악한 사람의 외모

매 응(鳥/13) 볼 시(見/5) 범 호(虍/2) 걸음 보(止/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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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인관계다. 처음 만났을 때 느끼게 되는 얼굴의 생김새 人相(인상)은 3초 만에 인식이 완료돼 오랫동안 간다고 해서 콘크리트 법칙이라고도 불린다. 첫 印象(인상)을 결정짓는 중요 요인은 아무래도 외모가 첫손으로 꼽히고 목소리와 어휘 등이 뒤따른다고 한다. ‘사람은 얼굴보다 마음이 고와야 한다’고 말들 하지만 처음 만나면서 마음을 볼 수 없으니 아무래도 첫 인상은 먼저 보이는 용모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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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을 때 상대방이 용의 얼굴과 호랑이의 눈썹을 가진 龍顔虎眉(용안호미)로 느낀다면 엄숙함에 위압을 느낀다. 용처럼 날뛰고 범처럼 걷는다는 龍驤虎步(용양호보)의 인상을 주었다면 용맹스런 영웅의 모습을 연상한다. 그런데 상상의 용은 보지 못했으니 상상이겠고, 매와 같은 눈빛(鷹視)에 호랑이 같은 걸음걸이(虎步)라면 날카로운 매가 연상되니 흉악한 사람의 외모를 형용하는 말이 된다. 매 눈초리에 이리의 걸음 鷹視狼步(응시낭보)라 해도 같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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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時代(춘추시대) 楚(초)나라의 간신 費無忌(비무기)의 모함으로 부친을 잃은 伍子胥(오자서)는 吳(오)나라 闔閭(합려)의 휘하로 망명했다. 얼마 뒤 같은 처지의 伯嚭(백비, 嚭는 클 비)도 귀순해 오자 오자서는 연회를 베풀고 환대했다. 연회에 참석하고 있던 被離(피리)라는 대부가 오자서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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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비는 눈길이 매와 같고 범과 같이 걸으니, 필시 살인을 저지를 나쁜 상(鷹視虎步 專功擅殺之性/ 응시호보 전공천살지성)’이라며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다. 擅은 멋대로할 천. 오자서는 백비와 같은 원한을 지녔기 때문이라며 충고를 듣지 않았다. 결국 越(월)나라와 내통한 백비에 의해 오자서는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다. 後漢(후한)의 趙曄(조엽)이 쓴 ‘吳越春秋(오월춘추)’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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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가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첫 인상을 위해 들이는 노력은 눈물겹다. 처음 각인된 잘못된 인상을 바로 잡는 데는 200배의 정보량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취업을 할 때 남녀를 불문하고 성형을 한다고 하고, 정치인들이 출마를 할 때 유권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등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사람의 얼굴은 열두 번 변한다’고 하니 변하지 않게 마음을 닦는 것이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압승득길壓勝得吉 - 재앙을 없애고 해로운 기운을 제압해 눌러 길함을 얻다.

압승득길壓勝得吉 - 재앙을 없애고 해로운 기운을 제압해 눌러 길함을 얻다.

압승득길(壓勝得吉) - 재앙을 없애고 해로운 기운을 제압해 눌러 길함을 얻다.

누를 압(土/14) 이길 승(力/10) 얻을 득(彳/8) 길할 길(口/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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壓勝(압승)은 글자대로 경쟁하는 상대에 크게 이기는 것을 말하는데 다른 의외의 뜻이 있다.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것을 누르고 채우는 裨補(비보)의 한 방법이다. 인간에 부닥치는 여러 문제들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신령의 힘을 빌거나 呪術(주술)에 의존하게 된다. 주술에 의하는 것은 글자가 비슷한 厭勝(염승)과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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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강한 힘을 억누르기 위해 갖가지 符籍(부적)이나 인형을 사용한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옛날부터 있어 왔다. 재앙을 없애고 해로운 기운을 제압해 자신의 운이 좋고 상서로움을 꾀하는(得吉) 행위가 상대방의 숨통을 누르는 咀呪(저주)의 목적으로도 악용돼 더 의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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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지만 3000년도 더 이상의 姜太公(강태공)이 먼저 등장하여 흥미롭다. 周(주)나라 武王(무왕)이 殷(은)의 폭군 紂王(주왕)을 내쫓을 때 천하가 귀순했는데 丁侯(정후)만 승복하지 않았다. 무왕을 돕던 강태공이 정후의 상을 그린 뒤 화살을 쏘자 병이 났고 그것을 뽑으니 나아 복속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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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신)을 세웠던 王莽(왕망)은 구리 다섯 섬으로 만든 威斗(위두)를 염승으로 썼다는 ‘漢書(한서)’의 기록이 있다. 서양에선 중미 카리브해의 나라 아이티(Haïti)에서 서아프리카 토착 신앙이 변형된 부두(Voodoo)가 대표한다. 누더기로 대충 꿰매 만든 조잡한 인형을 바늘로 찔러 저주 대상을 괴롭히고, 주술에 의해 움직이는 시체 좀비(Zombie)도 부두교 전설에서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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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염승의 역사가 다양하고 깊다. 전통 건물의 용마루 양쪽 끝머리 장식 기와인 鴟尾(치미, 鴟는 올빼미 치)는 화재 방지를 위한 것이었다. 宋(송)나라 徐兢(서긍)이 사신으로 왔을 때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高麗圖經(고려도경)’에는 당시 사람들의 압승 의식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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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이라도 병이 들면 저주와 염승을 할 따름이라 하고, 뱃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나무로 깎은 작은 배를 만들어 불경과 말린 양식을 싣고 배에 탄 사람의 성명을 써서 넣은 뒤 바다에 던졌다고 했다. 민간에선 짚으로 만든 사람 모양의 제웅은 안에 돈이나 쌀을 넣어 길가에 버림으로써 액막이를 하거나 병을 낫게 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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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에 하늘이나 민간신앙에 의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이기적으로 행해진 범죄도 많았다. 특히 조선의 궁중에서는 임금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비빈 궁녀들의 염승 암투가 사극의 단골소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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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로 成宗(성종)의 계비 尹氏(윤씨)는 다른 비빈들이 염승한다고 모함하다 되레 폐비가 됐고 처절한 甲子士禍(갑자사화)의 원인이 됐다. 乾坤一擲(건곤일척)의 일전에서 상대방을 정당한 방법으로 이겨 압승하면 두고두고 기림을 받는다. 온갖 승부조작을 하고 나쁜 모략을 써서 이긴다면 아무리 압승을 해도 언제든지 드러나 영원히 지탄을 받는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자고영웅진해시自古英雄盡解詩 - 예로부터 영웅은 모두 시를 알았다.

자고영웅진해시自古英雄盡解詩 - 예로부터 영웅은 모두 시를 알았다.

자고영웅진해시(自古英雄盡解詩) - 예로부터 영웅은 모두 시를 알았다.

스스로 자(自/0) 예 고(口/2) 꽃부리 영(艹/5) 수컷 웅(隹/4) 다할 진(皿/9) 풀 해(角/6) 시 시(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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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漢(한)나라를 세운 高祖(고조) 劉邦(유방)은 처음 별 볼 일없는 사람이었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가업을 돌보지도 않고 시시껄렁한 불량배와 어울려 다녔다. 그래도 의협심은 남달라 陳勝(진승)의 난 때 호응해 기반을 닦고, 힘이 산을 뽑는 項羽(항우)와 겨뤄 마침내 천하를 손아귀에 넣었다. 유방이 예상외의 통일을 이루게 된 것은 그가 밝힌 대로 漢興三傑(한흥삼걸)로 불리는 張良(장량), 蕭何(소하), 韓信(한신) 등 명신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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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당)나라의 시인 林寬(임관)은 유방과 관계 깊은 시 ‘歌風臺(가풍대)’에서 그를 높이 치하했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고 말하지 말라(莫言馬上得天下/ 막언마상득천하), 예부터 영웅들은 모두 시를 알았다네(自古英雄盡解詩/ 자고영웅진해시).’ 가풍대와 馬上天下(마상천하)의 유래를 간단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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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은 항우를 물리칠 때 큰 도움을 줬던 英布(영포)가 통일 후 반란을 일으키자 친히 군사를 이끌고 나가 진압했다. 돌아가는 길에 고향인 沛縣(패현)에 들러 주연을 베풀고 그 자리에서 大風歌(대풍가)를 읊었다. 후세 사람들이 이 곳에 누대를 짓고 가풍대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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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은 자신의 배움이 짧은데다 장광설만 늘어놓는다며 선비들을 무척 싫어했다. 지모가 뛰어난 酈食其(역이기, 酈은 땅이름 역)를 처음 만날 때 두 여인에게 발을 씻기는 무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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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설에 능한 陸賈(육가)가 자신에게 진언을 할 때 옛 고전을 들먹이는 것을 보고 아니꼬워 자신은 말의 등을 타고 천하를 얻었다고 했다. 그래도 잘 참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후일 임관은 가풍대를 지나면서 시를 지어 유방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시도 이해하는 문무의 겸비라고 높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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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으로서 문학에도 큰 족적을 남긴 사람으로는 魏(위)나라의 曹操(조조), 曹丕(조비) 부자가 있고 南唐(남당)의 後主(후주) 李煜(이욱)이 있다. 영웅으로 치면 우리의 忠武公(충무공) 李舜臣(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섬멸하면서 남긴 亂中日記(난중일기)가 첫 손에 꼽힐 만하다. 예로부터 영웅은 모두 시를 알았다는 것은 무력뿐만이 아닌 문장에도 뛰어났다는 이야기다. 文(문)은 어디서나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벌부당죄罰不當罪 - 형벌이 지은 죄에 비해 합당하지 않다.

벌부당죄罰不當罪 - 형벌이 지은 죄에 비해 합당하지 않다.

벌부당죄(罰不當罪) - 형벌이 지은 죄에 비해 합당하지 않다.

벌할 벌(网/9) 아닐 불, 부(一/3) 마땅 당(田/8) 허물 죄(网/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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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을 저지르거나 죄를 지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죄인에게 벌을 주는 罰(벌)이란 글자를 분해하면 얼굴을 그물살 罒(망)처럼 찌푸리고 말로 꾸짖는 詈(리) 옆에 위엄을 보이는 칼 刀(도)가 있다. 그만큼 죄의 경중에 따라 공정하게 벌이 시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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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지은 데로 가고 덕은 닦은 데로 간다’는 말을 누구나 믿으면 좋으련만 같은 죄를 저지르면서 자신은 별 것 아니고 남의 행위는 용서 못할 중죄라 여긴다. 하지만 ‘죄는 막둥이가 짓고 벼락은 샌님이 맞는다’는 말대로 나쁜 짓을 하고 이익을 차지하는 사람과 벌을 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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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罰)이 지은 죄에 비해 합당하지 않다(不當罪)면 승복할 사람이 없이 불만만 쌓인다. 예의로써 사람의 성질을 교정해야 한다며 性惡說(성악설)을 주창한 荀况(순황)은 그의 사상을 모은 ‘荀子(순자)’에서 이에 관해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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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을 가하는 본래의 뜻은 ‘난폭한 것을 금하고 악을 미워하며, 앞날을 경계하자는 것(禁暴惡惡 且懲其未/ 금폭오악 차징기미)‘인데 살인 등 중죄를 저지른 범인을 가볍게 처벌한다면 나라는 혼란에 빠질 것이라 주장한다. 正論(정론)편에 모든 작위와 상벌 등은 모두 선악에 대한 보수이며 응분의 결과인데 그것이 합당하지 않으면 국가 혼란의 발단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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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성어의 부분이 이어진다. ‘무릇 덕행이 작위에 맞지 않고, 능력이 관직에 맞지 않으며(夫德不稱位 能不稱官/ 부덕불칭위 능불칭관), 포상이 공적에 적당하지 않고, 형벌이 범죄에 합당하지 않으면(賞不當功 罰不當罪/ 상부당공 벌부당죄)’ 이보다 더 큰 불상사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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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淸(청)에 대해 대표적 척화신이었던 金尙憲(김상헌, 1570~1652)은 이 말을 넣어 명언을 남겼다. ‘벌이 죄에 합당하지 않은 일치고 잘못 아닌 것이 없습니다(罰不當罪 何事非尤/ 벌부당죄 하사비우)’라며 임금께 바른 말을 올렸다가 귀양 간 언관을 변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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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의 가르침이 아니라도 일반 사람들은 지은 죄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죽을죄라도 저지르기 전에 무섭지 저지른 후에는 겁이 없어져 배짱인 사람은 대체로 배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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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법 불평등의 대표적 성어가 된 無錢有罪(무전유죄)는 말할 것도 없고 거기서 파생된 有權無罪(유권무죄)도 부당의 대표적인 것으로 본다. 하지만 선량한 국민들은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錢可通神(전가통신)보다 天網恢恢 疎而不失(천망회회 소이불실, 恢는 넓을 회)란 말을 기대한다.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 보이지만 그 무엇도 놓치는 일이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파과지년破瓜之年 - 여자의 나이 16세, 남자의 나이 64세

파과지년破瓜之年 - 여자의 나이 16세, 남자의 나이 64세

파과지년(破瓜之年) - 여자의 나이 16세, 남자의 나이 64세

깨뜨릴 파(石/5) 외 과(瓜/0) 갈 지(丿/3) 해 년(干/3)

오이를 깨뜨렸다는 破瓜(파과)는 오이 瓜(과)글자를 破字(파자)했다는 말이다. 한자의 자획을 풀어 나누는 것이 파자인데 재미있는 글자 학습법으로 많이 사용됐다. 可笑(가소)로운 것을 풀어 丁口竹天(정구죽천)이라 하고, 쌀 米(미)는 八十八(팔십팔)이 되어 米壽(미수)가 88세가 된다는 식이다. 瓜(과)자는 한 가운데를 세로로 나누면 두 개의 八(팔)이 되어 이것도 나이를 나타내는 말이 됐다. 瓜字初分(과자초분)이라고도 하는데 두 개의 팔을 더하면 8 8=16이 되고, 곱하면 8*8=64로 각각 뜻하는 것이 달랐다.\xa0

먼저 16세는 여자의 나이를 말한다. 二八靑春(이팔청춘)이라 하듯이 春香(춘향)과 夢龍(몽룡)이 만난 때도 이 때다. 오이가 여성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어 오이를 깬다는 것은 처음 생리를 한다는 뜻이나 또는 처녀성을 잃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중국 東晋(동진)의 시인 孫綽(손작)이 ‘情人碧玉歌(정인벽옥가)’에서 이런 뜻으로 처음 썼다는데 앞부분만 보자. ‘푸른 구슬이 오이를 깨뜨릴 때, 님은 정으로 나를 덮었네(碧玉破瓜時 郎爲情顚倒/ 벽옥파과시 낭위정전도).’

淸(청)나라 학자 翟灝(적호, 翟은 꿩 적)는 백과사전격인 ‘通俗編(통속편)’에서 점잖게 바로잡는다. ‘풍속에서는 여자가 몸을 망치는 것을 파과라고 하는데 잘못된 것이다(俗以女子破身爲破瓜 非也/ 속이여자파신위파과 비야).’ 瓜(과)자를 깨면 두 개의 八(팔)자가 되어 이는 이팔 십육 세를 말할 뿐이라 했다. 청나라 문인 袁枚(원매)도 시론 隨園詩話(수원시화)에서 같은 주장을 폈다고 한다.

역시 ‘통속편’에 呂巖(여암)이 張泊(장박)에 준 시라고 하면서 ‘공을 이룬 것은 파과년으로 바로 팔팔 64세를 말한다(功成當在破瓜年 則八八六十四歲/ 공성당재파과년 즉팔팔륙십사세)’고 실려 있다. 남자의 경우는 64세를 말한다며 宋(송)나라 祝穆(축목)의 事文類聚(사문유취)에도 기록돼 있다.

남자의 64세보다 여자의 16세에 더 많이 쓴 이 말이 한창 때의 청춘이라 하지만 지금이야 미성년자이다. 중고생이 동급생을 끔찍이 폭행한 사건이 종종 드러났는데 다 자랐다고 어른 행세를 하기 전에 \xa0좀 더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것이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망언망청妄言妄聽 - 되는대로 말하고 아무렇게나 듣는다.

망언망청妄言妄聽 - 되는대로 말하고 아무렇게나 듣는다.

망언망청(妄言妄聽) - 되는대로 말하고 아무렇게나 듣는다.

망령될 망(女/3) 말씀 언(言/0) 망령될 망(女/3) 들을 청(耳/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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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亡(망)이란 글자는 부러진 칼을 뜻했다고 한다. 전장에서 칼이 부러지면 도망가거나 죽을 수밖에 없어 ‘망하다‘는 의미가 생겼다. 여기서 마음이 도망가면 잊을 忘(망)이 되고 시력이 도망가면 눈멀 盲(맹)이 된다. 그런데 망령될 妄(망)에 여자(女/ 녀)가 들어 평등시대에 불만이 많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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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權(부권)이 강했던 고대 중국에서 여자가 그릇된 생각이나 행동을 한다고 생각한 데서 만들어졌단다. 늙거나 정신이 희미해져 사리에 맞지 않게 말하는 妄靈(망령)은 말이 도망간 ’노둔할 吂(망)‘이 따로 있는데 억울할 만하다. 어떻든 사리에 맞지 않고 제멋대로 주저리주저리 하는 妄言(망언)에 진지한 말이라도 진지하게 듣지 않는 妄聽(망청)이면 격에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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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家(도가)의 대표 저작인 莊周(장주)의 ‘莊子(장자)’에서 유래한 성어다. 난해한 구절이 많기로 이름난 齊物論(제물론)편에서 한 측면만을 본 진리는 있을 수 없다며 지식과 논쟁을 부정한다. 孔子(공자)의 제자라고도 하는 가공인물 瞿鵲子(구작자)와 長梧子(장오자)의 문답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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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게서 들었다며 구작자가 묻는다. 성인은 세상의 일에 종사하지 않고, 이해관계도 초월하며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한 것으로 여겨 세속 밖에서 노닌다고 하는데 선생님은 허튼소리라 하고 자신은 도를 실행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장오자의 의견이 어떠한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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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오자는 道敎(도교)의 시조 黃帝(황제)도 이해하지 못할 일인데 어찌 알겠느냐며 탄환을 보고서 새 구이를 바라는(見彈求炙/ 견탄구자) 만큼 서두르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말한다. ‘내가 생각나는 대로 말해볼 테니(予嘗爲汝妄言之/ 여상위여망언지), 그대도 되는대로 들으시오(汝以妄聽之奚/ 여이망청지해).’ 이어지는 설명은 되는 대로가 아닌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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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사람은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잘잘못을 가리는데 성인은 우둔하여 만년의 세월을 한순간으로 생각한다며 공자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도 儒家(유가)에 대해 꼬집는데 임금이니 신하니 하는 생각으로 굳어져 있어 꿈을 꾸는 것조차 모를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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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安(유안)의 ‘淮南子(회남자)’엔 입과 귀만 대충 말하고 듣는 것이 아니고 눈도 조심하라고 더 좋은 말이 나온다. ‘눈으로 아무 것이나 본다면 음심이 생기고(目妄視則淫/ 목망시즉음), 귀로 아무 것이나 들으면 미혹에 빠지며(耳妄聽則惑/ 이망청즉혹), 입으로 마구 지껄이면 화를 입는다(口妄言則亂/ 구망언즉난).’ 主術訓(주술훈)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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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할 때나 들을 때는 진의가 전달되도록 진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없는 사실을 억지 주장하여 상대방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은 오래도록 상처가 된다. 개인 간에도 그러한데 특히 정치권에선 조심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하동사후河東獅吼 - 하동 땅의 사자가 울부짖다, 성질이 사나운 부인

하동사후河東獅吼 - 하동 땅의 사자가 울부짖다, 성질이 사나운 부인

하동사후(河東獅吼) - 하동 땅의 사자가 울부짖다, 성질이 사나운 부인

물 하(氵/5) 동녘 동(木/4) 사자 사(犭/10) 울부짖을 후(口/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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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말은 필요하고 꼭 해야 할 경우에는 말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속담처럼 경계하는 말이 많다. 말이 많으면 자주 어려움에 처한다는 多言數窮(다언삭궁, 이 때의 數는 ‘자주 삭‘)에서 입이 온갖 분란을 일으키는 재앙의 문이란 口禍之門(구화지문) 까지 섬뜩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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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옛날의 男尊女卑(남존여비) 영향으로 여자가 말 많은 것을 더 욕했다. ’계집 입 싼 것‘이라며 입이 가볍고 헤픈 여자는 아무 짝에도 쓸데없다고 했고, 부녀자가 떠들썩하게 지껄이는 것을 ’사나운 암캐같이 앙앙하지 마라‘고 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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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울부짖음이란 獅子吼(사자후)는 부처님의 위엄 있는 설법을 가리켰다.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듯 부처님의 위엄을 비유한 것이 열변을 토하는 연설을 가리키게 됐고, 나아가 질투심이 강한 부인이 남편에게 앙칼지게 대드는 악처를 비유하기도 했다. 악다구니하는 여인의 유래로 특별히 河東(하동) 땅의 사자가 운다(獅吼)고 하여 중국 宋(송)나라의 문인 蘇軾(소식, 1037~1101)의 재미있는 시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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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의 친구로 陳慥(진조, 慥는 착실할 조)라는 사람이 있었다. 禪學(선학)을 공부하며 空(공)과 有(유)에 대해 친구들과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진조의 자가 공처가의 대명사가 된 季常(계상)인 것처럼 그의 부인 하동 柳氏(유씨)는 표독스럽고 투기가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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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술자리에서 토론하는 남편에게 옆방에서 욕을 퍼부어 손님들은 좌불안석하다 자리를 피했다. 소식이 시를 지어 진조를 놀렸다. ‘갑자기 하동의 사자 울음소리를 들으니, 지팡이도 손에서 떨어지고 넋은 완전히 나갔네(忽聞河東獅子吼 拄杖落手心茫然/ 홀문하동사자후 주장락수심망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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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조의 처가 처음부터 막무가내였기 보다 남편과 세파에 시달리다 변했을 것이다. 우리의 가요도 있다. 수줍던 아내가 첫 아이 낳더니만 고양이로, 그 다음엔 무서운 호랑이로 변해버렸다는 최희준 원로가수의 ‘엄처시하‘다. 술자리에서 남정네끼리 우스개이기 쉽지만 실제로 사회 전체의 대우가 점차 개선된다고 해도 아직 여성의 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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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정항례分庭抗禮 - 손님을 마주 보고 대등하게 예의를 갖춰 대하다.

분정항례分庭抗禮 - 손님을 마주 보고 대등하게 예의를 갖춰 대하다.

분정항례(分庭抗禮) - 손님을 마주 보고 대등하게 예의를 갖춰 대하다.

나눌 분(刀/2) 뜰 정(广/7) 겨룰 항(扌/4) 예도 례(示/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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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손님이 방문했을 때 불청객이 아닌 한 격식을 갖춰 공손히 접대하는 것은 기본이다. 신발을 거꾸로 신고 반갑게 맞이했다는 倒屣迎客(도사영객)이나 식사 중에도 열 번이나 일어났다는 一饋十起(일궤십기, 饋는 먹일 궤) 등의 환대는 자기를 도와 줄 귀한 손님이 왔을 때다. 그렇지 않다고 해서 자신은 높은 자리서 맞으며 손님을 아래에 앉게 한다면 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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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맞으며 대등하게 예의를 지킨다는 성어로 뜰에 마련한 자리를 나눠(分庭) 대등하게 예의를 갖춘다(抗禮)는 것이 있다. 남북으로 나뉜 집안 정원에서 주인은 동쪽, 손님은 서쪽을 이용하는 데서 나왔다고 한다. 分庭伉禮(분정항례, 伉은 짝 항)로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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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공자)의 제자 子路(자로)와 子貢(자공)이 성어와 관련, 대조적으로 나와 흥미롭다. 먼저 무뢰한 출신으로 성격이 강직한 자로가 스승을 하대한 어부에게 분개하는 장면이 ‘莊子(장자)’에 나온다. 공자가 식견이 매우 높은 한 어부를 만나 공손하게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노를 저어 떠나자 자로가 불만에 찬 소리로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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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승의 군주나 천승의 제후라도 스승님을 만날 때에는(萬乘之主 千乘之君 見夫子/ 만승지주 천승지군 견부자), 뜰의 반쪽을 차지하고 대등한 예를 갖췄는데(未嘗不分庭抗禮/ 미상불분정항례)’ 보잘것없는 어부에겐 지나쳤다고 했다. 공자는 자로가 현자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꾸짖었다. 漁夫(어부)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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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門十哲(공문십철) 중 언어의 자공은 그만큼 말재간이 좋은데다 이재에도 밝았다. ‘史記(사기)’의 貨食(화식) 열전과 ‘漢書(한서)’의 貨殖傳(화식전)에 같이 등장할 만큼 공자의 유교가 후세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물심양면으로 자공의 기여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자공은 재력을 바탕으로 사두마차에 비단 선물을 가득 싣고 제후들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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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의 부분을 보자. ‘그가 이르는 곳마다 군주제후를 불문하고, 뜰 양쪽으로 내려서서 예를 표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所至 國君無不分庭與之抗禮/ 소지 국군무불분정여지항례).’ 공자의 이름이 천하에 알려지게 된 것은 자공의 이러한 재력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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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주는 중요한 손님은 물론, 장사나 공연에 온 고객 등도 귀하게 대접해야 마땅하다. 손님을 환영하는 집은 망하지 않는다거나 손님을 후대하는 사람은 신을 잘 섬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떠난 뒤에 뉘우친다(不接賓客去後悔/ 부접빈객거후회)’고 朱子(주자)는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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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인의 대접을 잘 받았으면 손님도 체면을 잘 차려야 한다. 客反爲主(객반위주)라 하여 나그네가 도리어 주인 노릇한다면 꼴불견을 넘어 쫓겨나도 할 말 없다. 조그만 도움을 준다고 이것저것 요구하는 갑질 손님은 대등한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팔두지재八斗之才 – 여덟 말을 차지한 재주, 뛰어난 조식의 글재주

팔두지재八斗之才 – 여덟 말을 차지한 재주, 뛰어난 조식의 글재주

팔두지재(八斗之才) – 여덟 말을 차지한 재주, 뛰어난 조식의 글재주

여덟 팔(八/0) 말 두(斗/0) 갈 지(丿/3) 재주 재(手/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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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잘 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이 재주다. 어떤 일에 잘 대처하려면 재주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씩의 재주는 가지고 있어서 그것으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재주는 장에 가도 못 산다’는 속담대로 남보다 뛰어난 재주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배우고 익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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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잘 하기는 어렵다. 맑은 날에는 신발로, 궂은 날에는 나막신으로 쓸 수 있는 온갖 재주를 가진 사람을 履屐俱當(이극구당, 屐은 나막신 극)이라 한다. 이같이 여러 방면에 능통한 사람 八方美人(팔방미인)이란 말이 또한 온갖 일에 조금씩 아는 얼치기라는 뜻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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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를 계량화하거나 등위를 매길 수 있을까. 손재주는 일하는 속도나 완성도를 보고 부분적으로 잴 수는 있겠다. 그래도 머리로 창작하는 예술이나 문학 등은 순위를 매길 수 없다고 상을 거부하는 사례까지 종종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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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어도 비유적으로 재능이 많고 뛰어남을 말한 것이 여덟 말을 차지하는 뛰어난 재주라는 이 성어다. 중국 南北朝(남북조)시대의 이름난 산수시인 謝靈運(사령운, 385~433)이 曹操(조조)의 아들인 曹植(조식)을 극찬하면서 한 말이다. 唐(당)나라 李延壽(이연수)가 남조 네 왕조를 기술한 ‘南史(남사)’에 기록돼 있다. 부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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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글재주를 모두 한 섬이라 한다면, 조식 혼자서 여덟 말을 차지한다(天下才共一石 曹子建獨得八斗/ 천하재공일석 조자건독득팔두).’ 자가 子建(자건)인 조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조조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았으나 아버지 사후 즉위한 형 曹丕(조비)가 사사건건 트집하여 큰 고통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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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아 고통을 안기는 煮豆燃萁(자두연기, 萁는 콩대 기)는 형제끼리의 다툼을 말한다. 이 말이 조비가 일곱 발자국을 옮기는 동안 시를 지으라고 하여 탄생한 조식의 七步詩(칠보시)에서 유래한 구절인 것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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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을 높이 평가한 사령운도 자부심이 대단했다. 남은 두 말의 재주 중 자신이 한 말을 차지하고, 예부터 그 때까지의 사람들이 남은 한 말을 쓰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재주를 믿는 자부심은 좋으나 너무 아무 데나 앞세우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먼저 다치거나 타인의 질시를 받아 일찍 쇠퇴한다는 甘井先竭(감정선갈)이란 말도 있으니 마음을 먼저 닦아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