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일 화요일

사생유명死生有命 - 사람의 살고 죽음은 모두 천명에 달려 있다.

사생유명死生有命 - 사람의 살고 죽음은 모두 천명에 달려 있다.

사생유명(死生有命) - 사람의 살고 죽음은 모두 천명에 달려 있다.

죽을 사(歹/2) 날 생(生/0) 있을 유(月/2) 목숨 명(口/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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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부귀영화를 누리든, 훌륭한 업적을 남기든 누구나 목숨은 유한하다. 대의를 위해 생명을 초개같이 버리는 위인이 있는가하면 몹쓸 죄를 저지르고도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소인도 있다. 삶은 죽음의 시작이며 삶은 죽음 때문에 존재한다고 깊이 생각하는 철인이나 생사의 기로에서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라 한 햄릿(Hamlet)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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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중생들은 세상이 아무리 苦海(고해)라 해도 죽지 못해 산다며 삶에 대한 애착이 더 크다. 정곡을 찌르는 비유의 속담 ‘죽은 정승이 산 개만 못하다’, ‘죽은 석숭보다 산 돼지가 낫다’ 등이 잘 말해준다. 石崇(석숭)은 중국 晉(진)나라 갑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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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세상을 만나 오래 살고 싶어도, 하루하루 연명한다는 고된 삶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사람의 삶과 죽음(死生)은 모두 천명에 달려 있다(有命)는 성어가 그것을 말한다. ‘論語(논어)’ 顔淵(안연) 편에 孔子(공자)의 제자 司馬牛(사마우)가 난리를 일으키려는 형 때문에 근심하며 자신에게는 형제가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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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門十哲(공문십철)에 드는 제자 子夏(자하)가 위로한다. ‘죽음과 삶에는 정해진 운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死生有命 富貴在天/ 사생유명 부귀재천)’는 말이 있으니 모든 사람과 더불어 예를 지키면 모두가 형제라고 말한다. 여기서 四海兄弟(사해형제)란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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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는 諸葛亮(제갈량)이 침식을 잊을 정도로 나라를 위해 食少事煩(식소사번)하여 건강을 잃고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같은 말을 한 것으로 나온다. 장막 안에서 등을 켜 놓고 기도를 올릴 때 부하가 들어 와 보고하면서 등을 꺼뜨렸다. 孔明(공명)이 탄식하며 말한다.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렸는데 기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死生有命 不可得而禳也/ 사생유명 불가득이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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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전에서도 다수 검색되는데 조선 후기 李瀷(이익, 瀷은 강이름 익)의 樂府詩(악부시) ‘碓樂(대악, 碓는 방아 대)’ 하나만 보자. ‘대저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 있고 부유하고 귀해지는 것은 하늘에 달렸으니(夫死生有命 富貴在天/ 부사생유명 부귀재천), 그 오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그 가는 것을 좇아갈 수 없다(其來也不可拒 其往也不可追/ 기래야불가거 기왕야불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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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서산에 지고도 다음 날 떠오르고 가을에 시든 풀은 봄에 다시 나는데, 인생은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조선 문신 李鼎輔(이정보)는 시조로 탄식한다. 공자도 제자가 죽음에 대해 묻자 ‘아직 삶도 제대로 모르면서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 미지생 언지사)’고 말한다. 이처럼 성인도 알 수 없는 죽음은 하늘만이 알아서 人命在天(인명재천)이라 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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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믿음이 깊은 사람은 ‘죽기 살기는 시왕전에 매였다’는 말을 하니 그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매한 보통사람들이 人命在車(인명재차), 人命在妻(인명재처)라고 하는 것을 보면 현명하게 목숨을 잘 지켜야 함은 아는 모양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호손입포대猢猻入布袋 – 원숭이가 포대 안으로 들어가다, 행동이 구속돼 자유롭지 못하다.

호손입포대猢猻入布袋 – 원숭이가 포대 안으로 들어가다, 행동이 구속돼 자유롭지 못하다.

호손입포대(猢猻入布袋) – 원숭이가 포대 안으로 들어가다, 행동이 구속돼 자유롭지 못하다.

잔나비 호(犭/9) 원숭이 손(犭/10) 들 입(入/0) 베 포(巾/2) 자루 대(衣/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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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는 사람과 가장 닮은 동물로 아주 영리하다. 여러 종류가 있지만 동물계에서 가장 진화의 정도가 높기 때문이라 한다. 원숭이를 나타내는 한자는 犬猿之間(견원지간)의 猿(원)이 대표한다. 沐猴而冠(목후이관)의 猴(후)는 제후 후(侯)가 붙어 높은 관직을 뜻했다. 여기에 더 어려운 猢猻(호손)은 후베이(湖北) 성에 사는 원숭이의 종류로 그 생김새가 胡人(호인)을 닮은 데서 나왔다고 한다. 나무가 쓰러지면 살던 원숭이들도 흩어진다는 樹倒猢猻散(수도호손산)의 성어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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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猢猻)가 포대 속에 들어갔다(入布袋)는 이 성어는 행동이 구속되거나 제약을 받아 자유롭지 못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줄여서 猢猻入袋(호손입대)라고도 한다. 宋(송)나라 시인 梅堯臣(매요신, 1002~1060)이 한 말로 교류가 깊었던 정치가 겸 문인 歐陽脩(구양수)가 지은 ‘歸田錄(귀전록)’에 실려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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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요신은 당시의 사회상을 시에 반영하여 구양수와 함께 송시의 혁신과 발전에 공헌했다는 평을 받는다. 杜甫(두보) 이후 최대의 시인이라는 상찬도 받는 재주를 가지고도 벼슬에 뜻이 없고 자유로운 생활을 지향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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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명으로 구양수가 唐書(당서)를 수찬할 때 만년의 매요신도 함께 참여하라는 명을 받았다. 책이 완성되기 전에 매요신이 죽자 대신들이 모두 탄식하며 애석해했다. 구양수는 당시의 일화를 기록에 남겼다. 당서 중수 사업을 맡자 도무지 내키지 않았던 매요신이 부인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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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편찬하는 일을 하는 것은 원숭이가 포대 속에 들어가는 격이오(吾之修書 可謂猢猻入布袋矣/ 오지수서 가위호손입포대의).’ 여기에 부인도 남편의 벼슬살이를 ‘메기가 대나무 장대를 타고 올라가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亦何異鮎魚上竹竿耶/ 역하이점어상죽간야)’라고 응대한다. 그만큼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鮎은 메기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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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을 맡게 됐을 때 사람들은 모든 각오를 하게 된다. 내키지 않더라도 맡은 기간만큼은 최선을 다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흔히 하는 말로 결혼하면 감옥에 갇히는 격이라 말한다. 자식을 낳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밀쳐놓는 까닭이다. 그런데 감옥이든 포대 속으로 들어가든 젊은 청춘들이 결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텐데 참으로 큰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횡거철피橫渠撤皮 - 장횡거가 모피 자리를 거두다, 후진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리를 내주다.

횡거철피橫渠撤皮 - 장횡거가 모피 자리를 거두다, 후진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리를 내주다.

횡거철피(橫渠撤皮) - 장횡거가 모피 자리를 거두다, 후진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리를 내주다.

가로 횡(木/12) 개천 거(氵/9) 거둘 철(扌/12) 가죽 피(皮/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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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직위나 어떤 분야에서 권위를 누리는 사람은 저마다 각고의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올랐다. 누구나 우러러보고 존경하니 오래 그곳에 머물려하는 것은 모두 원할 것이다. 그러나 강물이 흘러가듯 세월이 흐르면 후진들이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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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의 후학이 더 훌륭하다고 靑出於藍(청출어람)이라 했는데 권위만 앞세우고 자리를 차지한다면 後生可畏(후생가외)를 모르는 老醜(노추)로 욕먹는다. 영예로운 자리에서 물러날 때를 현명하게 알고 실천한 사람으로 중국 北宋(북송)의 張載(장재, 1020~1077)를 먼저 꼽는다. 그의 자인 橫渠(횡거)가 스승의 자리에서 물러났다(撤皮)는 성어까지 남겼으니 그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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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는 유가와 도가의 사상을 조화시켜 우주의 일원적 해석을 설파함으로써 당대 최고의 학자로 이름 높았다. 그가 스승의 자리인 호피 방석에 앉아 유교 경전을 논하면 명성을 듣고 제자들이 모여 들었다. 어느 때 程顥(정호, 顥는 클 호)와 程頤(정이, 頤는 턱 이) 형제가 찾아 와 가르침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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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가 二程(이정)과 易經(역경)을 논하다 학문이 깊이를 알아보고 놀랐다. 다음 날 장재는 호피를 거두고(次日 横渠撤去虎皮/ 차일 횡거철거호피)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지난 날 강의한 것은 도를 혼란하게 한 것이니라(吾平日 與諸公說者 皆亂道/ 오평일 여제공설자 개란도).’ 朱熹(주희)의 ‘二程語錄(이정어록)’이나 托克托(탁극탁)의 ‘宋史(송사)’ 등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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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호, 정이 형제를 스승으로 삼아 가르침을 받으라며 자신은 고향으로 떠났다. 후진의 능력을 한눈에 알아보고 스승의 자리를 선뜻 물려준 장재의 용퇴는 중국뿐 아니라 조선에서도 학자들의 귀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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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가죽이나 표범 가죽 등 짐승 가죽으로 만든 자리는 명신이나 대학자들에 내리는 임금의 귀한 선물이었다. 특히 虎皮(호피)는 학문을 강론하는 스승의 자리를 뜻하는 상징적인 물건이었고 달리 皐比(고비, 皐는 언덕 고)라고도 불렸다. 조선 후기 실학자 李德懋(이덕무, 懋는 힘쓸 무)는 장재를 본받아야 한다며 후진들에 수시로 강조했다. ‘허물을 알면 아낌없이 자리를 걷어야지(省尤莫吝掇皐比/ 성우막린철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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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의 능력을 알고 적극적으로 길을 터준 장재와 같이 큰 공을 이룬 뒤 용퇴하라는 것은 이미 老子(노자)의 가르침에서도 나왔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만 둘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知足不辱 知止不殆(지족불욕 지지불태)와 같이 공을 이루고 명성을 얻었으면 물러나라고 功成身退(공성신퇴)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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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갈 것 없이 이형기 시인은 더 와 닿게 노래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낙화). 숱한 좋은 말이 있어도 좀처럼 실행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영광의 자리에 오래 머물고도 더 좋은 낙하산 자리는 없을까 두리번거리는 사람만 우글거리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새옹지마塞翁之馬 - 새옹이 기르던 말, 길흉화복이 바뀜

새옹지마塞翁之馬 - 새옹이 기르던 말, 길흉화복이 바뀜

새옹지마(塞翁之馬) - 새옹이 기르던 말, 길흉화복이 바뀜

변방 새, 막힐 색(土-10) 늙은이 옹(羽-4) 갈 지(丿-3) 말 마(馬-0)

세상사는 늘 돌고 돈다.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는 말이 있다. 운이 나쁜 사람이 좋은 수를 만날 수 있고, 운이 좋은 사람도 어려운 시기가 닥친다. 轉禍爲福(전화위복)에서 말한 대로 이런 뜻을 가진 가장 잘 알려진 성어는 "인간만사는 새옹지마라" 할 때 쓰는 이 말이다. 塞翁(새옹)이란 노인이 기르던 말이 주인에게 화도 가져 오고 그것이 또 복으로 바뀐다. 이것을 통해 吉凶禍福(길흉화복)은 항상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려우니 한 때의 일로 一喜一悲(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은 다양한 주제의 "淮南子(회남자)"란 책을 남겼다. 처세훈을 담은 人生訓(인생훈)에 나오는 유명한 얘기를 요약해 보자. 옛날 만리장성 변경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인이 살았다. 사람들은 그를 塞上老人(새상노인) 또는 塞翁(새옹)이라 불렀다. 어느 날 새옹이 기르던 말 한 마리가 오랑캐 땅으로 도망쳤다.

동네 사람들이 위로하자 복이 될지 모른다고 태연했다. 과연 몇 달 뒤 말이 준마를 데리고 돌아오니 이번에는 사람들이 축하했다. 하지만 화가 될지 모른다며 기뻐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의 아들이 준마를 타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고 사람들이 위로하니 또 모르는 일이라 했다. 얼마 지나 오랑캐들이 쳐들어 왔다.

마을 장정들이 전장으로 소집돼 열에 아홉은 죽었지만 다리 다친 노인 아들은 면제돼 무사했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등 변화는 끝이 없고 그 깊이는 예측할 수가 없다(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 복지위화 화지위복 화불가극 심불가측야).""禍福如糾纆(화복여규묵, 纆은 노끈 묵)이란 약간 어려운 말도 같은 뜻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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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몽득화買夢得華 - 꿈을 사서 영화를 얻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큰 이득을 보다.

매몽득화買夢得華 - 꿈을 사서 영화를 얻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큰 이득을 보다.

매몽득화(買夢得華) - 꿈을 사서 영화를 얻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큰 이득을 보다.

살 매(貝/5) 꿈 몽(夕/11) 얻을 득(彳/8) 빛날 화(艹/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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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면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꿈이 실현하고 싶은 희망일 수도 있으나 대체로 가능성이 없는 헛된 기대를 말할 때가 많다. 삶이란, 인생이란 한낱 꿈에 지나지 않았다고 허망함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꿈 夢(몽)이 들어가는 성어는 특히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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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柯一夢(남가일몽), 浮生如夢(부생여몽), 役夫之夢(역부지몽), 盧生之夢(노생지몽) 등이 모두 부귀영화가 한때의 꿈이라 말한다. 그러나 꿈이 덧없고 믿을 수 없는 내용이라도 서까래 세 개를 지고 나오는 꿈으로 왕이 된 李成桂(이성계)처럼 해몽에 달린 경우도 있다. 남의 꿈을 사서(買夢) 영화를 얻은(得華) 文姬(문희)는 이보다 더한 예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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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는 소국이었던 新羅(신라)를 삼국통일로 이끈 명장 金庾信(김유신)의 누이동생이다. 김유신이 영웅으로 굳히기 전에는 복잡한 배경이 담겨 있다. 金官伽倻(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仇衡王(구형왕)의 증손으로 신라에 항복한 집안이라 한계가 있었다. 부친 舒玄(서현)이 전장에서 공을 세웠어도 모친 萬明(만명) 과의 혼인을 인정받지 못해 사랑의 도피 끝에 유신을 낳았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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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진골인 외조부의 인정을 받고 서라벌로 돌아온 유신은 화랑이 되어 전공을 세우는 한편 귀족 자제 金春秋(김춘추) 등과 교유하며 꿈을 키웠다. 뒤에 武烈王(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와 문희를 중간에서 맺어준 이야기가 ‘三國史記(삼국사기)’, ‘三國遺事(삼국유사)’ 등에 상세히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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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의 언니 寶姬(보희)가 꿈 얘기를 했다. 西岳(서악)에서 소변을 보는데 서라벌에 가득 찼다는 것이다. 문희가 ‘내가 언니의 꿈을 사겠다(我買此夢/ 아매차몽)’며 비단치마와 바꿨다. 며칠 뒤 유신이 집 앞에서 김춘추와 축구蹴鞠/ 축국를 하다 춘추의 옷고름을 찢게 됐다. 보희 더러 꿰매게 했더니 문희가 대신 달아 주고 춘추와 가까워져 임신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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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이 짐짓 부모 모르게 애를 뱄으니 동생을 불태워 죽인다고 소문냈다. 왕이 거둥할 때에 장작불 연기가 피어올라 무슨 연유인지 누구 소행인지 알아보도록 했다. 유신이 임신한 동생을 태우려 한다고 아뢰자 춘추가 한 짓임을 알고 문희와 정식 혼례를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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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팔고 산 자매는 천양지차로 신분이 바뀌었다. 춘추가 삼국을 통일하는 기반을 닦고 29대로 무열왕에 오르자 문희는 文明(문명)왕후가 되어 모두가 우러르는 영화를 누렸다. 처음 낳은 아들은 文武王(문무왕)으로 통일 완수라는 위업을 남겼다. 꿈을 팔았던 언니 보희는 후회하며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않고 무명의 여성으로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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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보다 해몽이 좋다’란 속담이 있다. 하찮거나 언짢은 일에 모두들 외면할 때 본질을 잘 파악하여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하는 결단력은 문희가 언니보다 한 발 앞섰음을 알 수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적빈여세赤貧如洗 - 맨몸뚱이에 씻은 듯이 아무 것도 없는 가난

적빈여세赤貧如洗 - 맨몸뚱이에 씻은 듯이 아무 것도 없는 가난

적빈여세(赤貧如洗) - 맨몸뚱이에 씻은 듯이 아무 것도 없는 가난

붉을 적(赤/0) 가난할 빈(貝/4) 같을 여(女/3) 씻을 세(氵/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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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란 속담은 남이 도운다고 모두 면할 길은 없다는 말이다. 貧室救助 國亦難能(빈실구조 국역난능)으로 한역된 말대로다. 입에 풀칠한다는 말이 뜻하듯 겨우 연명하는 사람이 많았던 옛날은 더욱 어려웠을 터다. 가난한 생활을 나타내는 성어가 그래서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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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의 빈한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많은 중에 맨몸뿐이라는 赤貧(적빈)은 정도가 더한 표현이 된다. 붉을 赤(적) 글자가 색깔만이 아니고 ‘비다, 없다’의 뜻과 ‘벌거벗다’의 의미도 있다. 赤手(적수)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맨손, 赤手空拳(적수공권)이 맨손과 맨주먹이니 이때는 ‘없다’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의 숨김이 없을 때 赤裸裸(적나라)하다는 것은 ‘벌거벗다‘의 의미다. 몸뚱어리뿐인 진짜 가난, 알가난이 적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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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씻은 듯하다(如洗)면 아주 깨끗하다는 뜻 외에도 큰물 뒤끝엔 남는 것이 없다는 말과 같이 씻겨간 듯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다. 맨몸뚱이에 가진 것이 물에 씻긴듯하다는 이 두 말이 합쳐진 성어는 뜻으로 나타내서인지 사용이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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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전에서는 한 단어씩 각각 사용된 경우는 제법 보이지만 합친 성어로는 db에서 전혀 검색되지 않는다. 중국에서도 淸(청)나라 때의 ‘儒林外史(유림외사)’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이라 하니 18세기 중반이다. 일본에선 에도江戶/ 강호 후기에 原善(원선)이 쓴 72명의 유학자 전기 ‘先哲叢談(선철총담)’ 이후로 자주 쓰게 됐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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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제도를 둘러싼 비리를 통렬히 비판한 풍자소설 ‘儒林外史(유림외사)’는 청나라 문학자 吳敬梓(오경재, 1701~1754)의 작품이다. 성어가 사용된 부분은 ‘노인에게는 두 아들과 네 손자가 있고, 그 집은 여전히 매우 가난하다(老人家兩個兒子 四個孫子 家裏仍然赤貧如洗/ 노인가량개아자 사개손자 가리잉연적빈여세)’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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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貧如洗(가빈여세)는 조금 앞선 元(원)나라서 사용됐다고 나타난다. 뜻을 바로 알 수 있는 이 말의 출전보다 의식주 별로 어떻게 가난을 나타냈는지 대표적인 것을 알아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겠다. 먼저 남루한 집은 家徒四壁(가도사벽), 窺如七星(규여칠성), 不蔽風雨(불폐풍우) 등으로 벽이 없고 천장에서 하늘이 보일 정도다. 옷과 신발이 너덜너덜함은 裘弊金盡(구폐금진), 衣結屨穿(의결구천) 등이 잘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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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부지할 양식이 떨어져 바닥인 말은 簞食瓢飮(단사표음), 釜中生魚(부중생어), 三旬九食(삼순구식), 朝虀暮鹽(조제모염) 등이 있다. 이러한 모든 부족함을 딛고 淸貧(청빈)하게 살아간 顔貧一瓢(안빈일표)의 제자 顔淵(안연)을 孔子(공자)가 극찬한 이후 安貧樂道(안빈낙도)를 이상으로 한 군자들은 있어 왔다. 하지만 이들이 나물 먹고 물마시며 팔베개 베고 잔다고 해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지 최소한의 의식주는 필요하다. 먹고 살기에 급급하고 팔다리 누일 데 없는 곳이 없어 하루하루를 쩔쩔 매는 오늘날의 신 하층민들에겐 사치일 뿐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종선여등 종악여붕從善如登 從惡如崩 – 선을 좇는 것은 어렵고 악을 따르는 것은 쉽다.

종선여등 종악여붕從善如登 從惡如崩 – 선을 좇는 것은 어렵고 악을 따르는 것은 쉽다.

종선여등 종악여붕(從善如登 從惡如崩) – 선을 좇는 것은 어렵고 악을 따르는 것은 쉽다.

좇을 종(彳/8) 착할 선(口/9) 같을 여(女/3) 오를 등(癶/7) 좇을 종(彳/8) 악할 악(心/8) 같을 여(女/3) 무너질 붕(山/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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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르고 착한 善(선)은 동서양 구별 없이 많이 기렸다. ‘악을 선으로 갚는 자는 항상 승리를 얻는다‘는 영국 격언이다. ’선인 악인을 막론하고 선을 베푸는 사람이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마호메트도 말했다. 우리 속담엔 ’마음을 잘 가지면 죽어도 옳은 귀신이 된다‘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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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을 많이 쌓은 집안은 그 자손들에게 필히 경사로운 일이 넘쳐난다는 積善之家 必有餘慶(적선지가 필유여경)의 좋은 말도 있다. 見善如不及(견선여불급)이라며 선한 것을 보고선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라고 孔子(공자)님도 가르쳤다.\xa0이처럼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명언이 넘쳐나지만 실제로 행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선을 좇는 일(從善)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如登)는 말이 따른다. 대구로 악을 좇는 것(從惡)은 무너지는 것과 같다(如崩)고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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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길로 나아가 발전하기는 산을 오르는 것처럼 어렵지만, 나쁜 길로 나아가 타락하기는 눈사태가 무너지듯 순식간이라는 뜻이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8국의 역사를 모은 책 ‘國語(국어)’의 周語(주어)편에 나온다. 이 책은 左氏傳(좌씨전)을 쓰기 위해 左丘明(좌구명)이 편찬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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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주)나라 敬王(경왕)은 아들 朝(조)의 반란으로 洛邑(낙읍)이 점령당하자 晉(진)나라의 도움으로 간신히 진압했다. 아들은 도주했지만 잔당이 남아있어 외곽 成周(성주)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경왕의 중신들은 그곳에 성을 쌓아 도읍을 정하기로 하고 먼저 萇弘(장홍, 萇은 나라이름 장)을 보내 진나라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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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는 도와줄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이곳에 와 있던 衛(위)나라의 대부 彪傒(표혜, 傒는 가둘 혜)가 이 소식을 듣고 반대했다. ‘속담에 말하기를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고, 나쁜 길을 따르는 것은 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諺曰 從善如登 從惡如崩/ 언왈 종선여등 종악여붕).’ 주나라는 혼군 幽王(유왕) 이래로 날로 쇠퇴하고 있어 도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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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행하는 것이 쉽다고 했지만 당사자들은 악인 줄도 모르고 저지르거나 아니면 짐짓 악이 아닌 것처럼 포장한다. 그래서 세력을 쥔 자들은 나쁜 짓에 넌더리를 내다가도 쉽게 악을 재탕한다. 선을 좇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안다면 겉모습만 선인 것도 행하지 않을 텐데 악순환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유능제강柔能制剛 –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

유능제강柔能制剛 –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

유능제강(柔能制剛) –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

부드러울 유(木/5) 능할 능(肉/6) 절제할 제(刂/6) 굳셀 강(刂/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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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가 세상에 태어나서는 똑 같을 수가 없다. 弱肉强食(약육강식)이라고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밥이다. 약자가 항상 당하기만 할까. 약한 자가 강한 자에 빌붙어 생명을 유지하거나, 약자끼리 연합하여 강자에 대항하는 수도 있다. 이런 인위적인 것을 제외하고도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결국은 강한 것을 이겨내고 살아남는다고 선인들은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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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해결할 때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 이기는 듯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부드러움으로 감싸는 것보다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덕으로 감싸 안아 마음으로 복종하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기는 길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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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센 것을 물리치는 것이 부드러운 것이라고 老子(노자)는 ‘道德經(도덕경)’ 곳곳에서 강조한다. 약간 변형시킨 노자에 앞서 이 성어가 그대로 나온 곳은 ‘六韜三略(육도삼략)’에서다. 周(주)나라 姜太公(강태공)의 저서라고 전하는 고대 병법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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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출 韜(도)는 화살을 넣는 주머니, 비결을 말한다고 한다. 부분을 보자. ‘군참에서 이르기를 부드러움은 강함을 제어하고, 약한 것은 능히 강함을 이긴다. 부드러움은 덕이고 굳셈은 적이다(軍讖曰 柔能制剛 弱能制强 柔者德也 剛者賊也/ 군참왈 유능제강 약능제강 유자덕야 강자적야).’ 군참은 전쟁의 승패를 예언적으로 서술한 병법서라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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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78장 任信章(임신장)에 잘 알려진 구절이 나온다. ‘이 세상에서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단단하고 강한 것을 치는 데는 물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 莫之能勝/ 천하막유약어수 이공견강자 막지능승).’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기는 이치를 세상사람 모두가 알지만 능히 행하는 이가 없다(弱之勝强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 약지승강 유지승강 천하막부지 막능행).’노자가 스승에게서 부드러운 혀는 남아있고 단단한 치아는 빠진데서 가르침을 받는 齒亡舌存(치망설존)의 이야기는 劉向(유향)의 ‘說苑(설원)’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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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가졌을 때는 모든 일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난다. 그러나 그것이 자칫 오만함으로 비쳐 약자의 사정을 무시하는 것에서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힘은 오래 가지 않으니 부드러움으로 감싸 차근차근 일을 처리하는 것이 결국은 이기는 길이다. 노자의 말대로 세상 모든 사람이 알지만 당사자가 아는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구화양비救火揚沸 - 불로 불을 끄고 끓는 물로 뜨거운 물을 식히다, 방법이 잘못돼 어리석은

구화양비救火揚沸 - 불로 불을 끄고 끓는 물로 뜨거운 물을 식히다, 방법이 잘못돼 어리석은 일

구화양비(救火揚沸) - 불로 불을 끄고 끓는 물로 뜨거운 물을 식히다, 방법이 잘못돼 어리석은 일

구할 구(攵/7) 불 화(火/0) 날릴 양(扌/9) 끓을 비(氵/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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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는 消火(소화)와 같은 말이 救火(구화)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어가 救火投薪(구화투신)이다. 불을 끄는데 물이 필요하지 섶을 던져 넣는다면 더 활활 타게 키울 뿐이다. 섶은 長斫(장작)이나 마른 나무를 통틀어 부르는 말인데 이처럼 분별없는 짓을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려 한다’는 속담으로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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섶 위에서 자고 곰쓸개를 씹으며 복수를 다짐하는 臥薪嘗膽(와신상담) 등 사자성어가 다수 사용되고 있어도 섶은 땔감으로 쓰지 않아 구경하기 힘들다. 어리석은 행동을 말하는 말이 더 있다. 펄펄 끓는 물을 식히려고 그 위에 끓는 물을 붓는 揚湯止沸(양탕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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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말을 각각 줄여 불로 불을 끄고(救火) 물로 물을 식히려 한다(揚沸)고 한 성어는 司馬遷(사마천)이 ‘史記(사기)’ 열전에서 처음 사용했다. 방법이 잘못되어 급한 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어리석음의 결정판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官(관)이 법만을 앞세워 도로 괴롭히는 酷吏(혹리)를 지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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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치를 추구했던 循吏(순리)에 비해 정리에 좌우되지 않고 혹독하게 법을 이행한 혹리는 그러나 적을 만들고 부패에 연루돼 끝이 좋지 못했다. 열전의 서두에 孔子(공자)와 老子(노자)의 말을 인용한다. ‘정치로 인도하고 형벌로 다스리면 그것을 피할 뿐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導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법령이 정비되면 될수록 도둑이 많아진다(法令滋章 盜賊多有/ 법령자장 도적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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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이 정치의 도구이긴 하나 청탁을 다스리는 도구는 아니라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옛날 秦(진)나라 때 천하의 법망은 치밀했지만 올바르지 못하고 거짓된 일이 끊임없이 생겼다. 위아래 가릴 것 없이 법령을 교묘히 피해(上下相遁/ 상하상둔) 나라가 휘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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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자 ‘관리들의 다스림은 마치 불로 불을 끄려 하고 물로 끓는 물을 식히려 하는 것과 같았다(吏治若救火揚沸/ 이치약구화양비)’고 표현했다. 중국을 처음 통일했던 진나라가 가혹한 법 집행으로 질서는 일사불란했더라도 백성들의 마음은 얻지 못해 단명으로 끝난 원인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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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만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겉으로 승복할 뿐 백성들은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고만 하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법이 없었을 때는 양심적으로 가책되던 일도 세세하게 제정된 후엔 범법자가 된다. 살짝 피하기만 하면 오히려 떳떳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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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의 편익을 위해 소수의 권리를 규제하는 것은 모두 수긍한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소소한 규제는 갈수록 늘어난다. 뿐만 아니라 법을 제정하는 민의의 전당에서도 숫자만 믿고 지지자만 의식한 법령을 제정하는 일이 잦다. 옛날 혹리와 같이 불을 끄지 않고 키우는 짓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우사생풍遇事生風 - 일을 앞두고 바람이 일다.

우사생풍遇事生風 - 일을 앞두고 바람이 일다.

우사생풍(遇事生風) - 일을 앞두고 바람이 일다.

만날 우(辶/9) 일 사(亅/7) 날 생(生/0) 바람 풍(風/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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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을 맞닥뜨렸을 때 헤쳐 나가는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진척의 속도가 달라질 것은 빤한 일이다. 적극적인 사람은 신바람을 내며 맞서 해결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주눅 들어 자꾸만 피하려 한다. 특히 상급자의 불법적인 일 처리를 보고서 의욕에 찬 부하가 많으면 용기 있게 바로잡으려 할 것이고, 이를 어쩔 수 없다거나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간다면 결국 조직은 붕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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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만나면(遇事) 바람을 일으킨다는(生風) 이 성어는 이처럼 긍정적인 의미를 가졌다. 그러던 것이 넘치는 것은 어디서나 탈이 나게 마련인지 바람을 너무 일으켜 사사건건 시비를 일으킨다는 부정적인 의미도 포함하게 됐다. 見事生風(견사생풍), 遇事風生(우사풍생)이라고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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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사기)와 함께 대표적 역사서로 꼽히는 班固(반고)의 ‘漢書(한서)’ 趙廣漢(조광한)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漢(한)나라 때 그는 涿郡(탁군, 涿은 칠 탁)에서 말단 관리로 근무했다. 매사에 성실하고 청렴한 조광한은 상관의 인정을 받아 수도를 관리하는 행정장관인 京兆尹(경조윤)까지 승진하게 되었다. 도성 근처의 경조관 杜建(두건)이라는 사람이 사리사욕에 어두워 많은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조광한이 몇 차례 그만두라고 주의를 줬어도 배경을 믿고 듣지 않자 그를 투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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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건을 옹호하는 세도가들이 석방하라고 윽박질렀지만 아랑곳 않고 참수형에 처했다. 이후 도성의 벼슬아치들은 조광한을 두려워하여 부정을 저지르려는 꿈도 못 꿨다. 조광한은 벼슬을 하는 집안의 젊은 자녀들을 즐겨 등용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투지가 있고 강건하며 예기를 드러내기 좋아하고, 어떤 일이든 맞닥뜨리면 바람이 일듯 신속하게 처리하며 피하지 않기(專厲彊壯蜂氣 見事風生 無所回避/ 전려강장봉기 견사풍생 무소회피)’ 때문이었다. 厲는 갈 려, 엄할 려. 이후 조광한은 너무 모가 났는지 간신들의 모함을 받고 죽게 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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