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0일 수요일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2편

■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2편

■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2편

경혜공주가 혼인식을 올리고 아직 신혼집을 장만하기 전인 같은 해 2월 17일(1450년 3월 30일) 세종이 승하(昇遐)했다. 혼인한 직후에 할아버지가 사망했으니 살림집 준비는 일단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살림집을 마련한 것은 세종의 소상(小祥:사망 1주기 식)이 끝난 뒤였다. 아버지가 왕(문종)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경혜공주의 신분은 공주(公主)였다. 하지만, 공주의 불운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할아버지 세종의 삼년상을 끝내고 한 달 뒤에 아버지 문종마저 쓰러진 것이었다. 공주의 입장에서는 할아버지의 삼년상에 이어 아버지의 삼년상까지 치러야 했으니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겪었을 것이다. 이때 그녀의 나이 열일곱 살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의 삼년상이 채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훗날 세조)이 계유정난(癸酉靖難:1453년)을 일으켰다. 공주의 동생 단종은 허수아비 임금으로 전락했다. 이때 공주는 열여덟 살이었다. 2년 뒤인 스무 살 때, 공주는 숙부 수양대군이 임금이 되고 동생이 상왕으로 물러났을 뿐 아니라, 남편인 정종이 강원도 영월로 귀양 가는 슬픔을 연달아 맛봐야 했다. 남편 정종이 귀양을 간 것은, 그가 단종을 감싸고 도는 숙부 금성대군(錦城大君:수양대군의 동생)과 친했기 때문이었다. 정종은 영월에서 경기도 양근(지금의 양평군 일부), 한성, 수원 및 김포 등지로 유배지가 변경되었다. 유배지가 수원으로 바뀐 뒤부터는 공주도 남편과 동행했다. 세조는 경혜공주가 원한다면 정종를 따라 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경혜공주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다. 그리하여 경혜공주는 남편을 따라 수원, 통진에 이어 광주까지 가게 되었다.

경혜공주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초상과 단종의 강제 양위 등 연이은 불행으로 인해 계속 각방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없었는데, 이후 25살이던 경혜공주는 혼인 9년 만에 유배지에서 장남 정미수를 출산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공주의 신분이었고, 그녀 자신은 죄인이 아니기에 유배지에서도 종을 부리는 등 최소한의 품위유지는 한 듯하다. 비록 유배지이기는 했지만 경혜공주는 남편과 함께 비교적 편안하게 지냈다. 그러나 그 생활도 오래 가지 못했다.

세조 집권 뒤에 발생한 사육신사건(1456년)은 공주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다. 단종 복위를 꾀한 이 사건으로 그렇지 않아도 복위운동이 일어날까 긴장하고 있던 세조와 측근들은 이 사건을 빌미로 그 싹을 자르려 하였다. 상왕(上王) 단종은 삼엄한 감시를 받아야 했고, 정종 또한 가혹한 처벌을 피하지 못했다. 유배 중이던 정종을 시종하던 종들은 모두 지방의 관노로 쫓겨났다. 그 뿐만 아니라 정종의 모든 재산이 몰수되었다. 혹시라도 정종과 상왕 단종 사이에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인맥과 자금을 차단하려는 조치였다. 정종의 유배지도 경기도 통진에서 더 멀리 전라도 광주로 바뀌었다. 정종을 상왕(上王) 단종이 머무는 한양에서 멀리 떨어뜨려 서로 접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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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1편

■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1편

■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1편

경혜공주(敬惠公主)는 조선 제5대 왕인 문종의 적장녀(嫡長女)이다. 조선시대 임금 중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여운 단종의 친누이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왕위에 올라 삼촌에게 왕위도 빼앗기고 목숨도 빼앗긴 단종 못지않게 파란만장하고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여인이다. 10여 년 전 《공주의 남자》라는 드라마에서 그 삶이 다루어 진 적이 있다.

경혜공주는 세종이 왕위에 있을 때인 1436년에 세자 이향(李珦 :문종)과 권씨(현덕왕후)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왕이 아닌 세자인 데다가 어머니가 세자의 첩이었기 때문에, 출생 당시의 경혜공주는 공주가 아니라 옹주였다. 세자의 정실부인, 즉 세자빈이 낳은 딸에게는 정2품 군주(郡主), 세자의 첩이 낳은 딸에게는 정3품 현주(縣主)라는 작위를 수여했다. 그것도 출생 직후 곧바로 작위를 주는 게 아니라, 보통은 일곱 살 이후에 작위를 수여했다. 아마도 유아 사망율이 높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경혜공주는 처음에는 ‘현주’였던 것이다.

비록 첩의 딸이기는 했지만, 어린 공주의 삶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두 살 때, 어머니가 세자빈으로 승격되면서, 동궁전 즉 세자의 처소인 경복궁의 자선당(資善堂)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어린 소녀는 아버지가 왕이 되면 공주가 될것이라는 꿈을 안고 살았으리라. 하지만, 여섯 살 때 어머니가 동생(훗날의 단종)을 낳자마자 죽는 바람에 궁을 떠나야만 했다. 당시의 관습대로 재액(災厄)을 피하기 위해 궁(宮)이 아닌 조유례의 집에서 그 부인 및 외가의 여종인 유모 백씨의 손에 컸다. 그녀는 미모가 한양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로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때까지도 그녀의 삶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이 무렵부터는 정2품 평창군주(平昌郡主)라는 작위를 받고 그에 따른 특권과 대우를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 세종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 열네 살 때부터 경혜공주의 삶에는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열다섯 살이 되어도 세종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왕실에서는 그녀의 혼인을 서둘렀다. 만약 세종이 사망한다면 삼년상(三年喪) 동안은 혼인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삼년상의 기간은 36개월이 아니라 윤달을 제외한 25개월이었다(윤달이 있으면 25개월보다 길어졌다). 왕실 식구들은 보통 10대 초반에 결혼했기 때문에, 삼년상을 치를 경우 경혜공주는 혼기를 놓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왕실에서 급히 얻은 배우자는 전(前) 한성부윤 정충경(鄭忠敬)의 아들인 정종(鄭悰)이었다. 한성부윤은 오늘날로 치면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공주와 정종은 세종 32년 1월 24일(1450년 2월 6일) 혼인하였다. 이때 공주는 열다섯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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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약 안 먹고 혈당 낮추는 생활습관

약 안 먹고 혈당 낮추는 생활습관

약 안 먹고 혈당 낮추는 생활습관

1. 탄수화물 섭취 줄이기

탄수화물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바로 당이다. 탄수화물 섭취량이 늘어나면 혈당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저탄수화물 식이요법을 유지하는 것은 혈당량을 안정 수치로 떨어뜨리는데 큰 도움이 된다. 탄수화물은 쌀을 비롯한 곡물, 콩류, 뿌리채소 등에 함유돼 있는데, 이를 재료로 이용해 만든 빵, 파스타, 감자튀김 등에 많이 들어있다. 혈당이 높은 사람들은 이런 음식의 섭취를 제한하고 잎이 많은 채소, 어두운 색깔의 과일, 견과류, 지방이 없는 살코기 등을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탄수화물 음식을 꼭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한꺼번에 먹기보다 매끼 조금씩 나눠먹는 편이 낫다. 피자 한판을 한 번에 먹기보다 점심에 한 조각 먹고 저녁에 또 한 조각을 먹는 식으로 나눠 먹으면 혈당 수치가 급격히 높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2. 단시간 운동이라도 꾸준히

짧은 시간 가볍게라도 운동하면 올라갔던 혈당수치가 내려가게 된다. 물론 장기적으로 꾸준히 운동하면 보다 효율적이다. 가볍게 20분 정도 산책을 한다거나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몸을 움직여주면 된다. 또 근력운동은 일시적으로 혈당을 높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근육량을 늘려 포도당을 보다 효과적으로 소모시키게 하므로 규칙적인 근육운동도 병행하는 편이 좋다.

3. 수면 시간 늘리기

충분한 수면은 인슐린 저항성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인슐린 저항성은 포도당을 연소시키는 인슐린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면부족과 고혈당은 악순환 관계에 있다. 혈당이 너무 높으면 숙면을 취하기 어렵고, 잠을 제대로 못자면 혈당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급적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카페인 섭취량을 줄이고 쾌적한 침실 환경을 유지해야 한다.

4. 레드와인 가볍게 한 잔

맥주는 탄수화물 함량이 높기 때문에 혈당이 높은 사람들에게 좋지 않다. 하지만 레드와인은 포도당이 흡수되는 것을 막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혈당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 단 술을 과도하게 마시면 간에 지방이 쌓여 오히려 혈당 조절이 어려워질 수 있으므로 가볍게 한 잔 정도 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뇌졸중에 좋은 음식 4가지

뇌졸중에 좋은 음식 4가지

뇌졸중에 좋은 음식 4가지

1. 꽁치

뇌졸중에 좋은 음식으로 먼저 꽁치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꽁치에 들어있는 오메가-3 지방산이 심근경색을 비롯해 고혈압과 같은 심각한 성인병을 예방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또한 혈액의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늘려주기 때문에 동맥경화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비타민A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시력 발달에도 좋으며 빈혈을 예방하고 뼈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데요~ 이로인해 꽁치를 섭취하면 뇌졸중 전조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2. 당근

당근은 여러가지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이 영양분들이 골고루 균형을 이루고 있어 뇌졸중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비타민A가 부족해서 생길 수 있는 안구건조, 만성피로 등에 매우 효과적이며 혈압을 내려주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어 뇌졸중에 좋은 음식입니다. 당근 100g을 생즙으로 만들어 하루 3번씩 섭취해주면 고혈압에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우유나 주스와 함께 섭취하면 변비에 도움을 줍니다. 시중에 파는 당근주스 또한 류마티즘, 노안 백내장, 뇌경색에 효능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3. 샐러리 생즙

샐러리는 여성들의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유명한데요~샐러리 특유의 향과 맛때문에 생즙으로 먹기 거북할 수 있지만, 섭취할 경우 뇌졸중 예방에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 많이 사용되는 식품으로 비타민B의 함량이 높아 강장제로 인기가 좋습니다. 또한 비타민C와 철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경련을 진정시키며 혈압을 내리고 정혈, 이뇨작용으로 뇌졸중 전조증상을 완화시켜줍니다. 고혈압과 생리불순을 치료하는 데 매우 좋은 음식이기도 하죠!

4. 다시마

다시마는 바닷물속에 90여종이나 있는 미네랄을 흡수해 자라왔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철 건강 관리에도 좋은 음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혈중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어 뇌졸중에 좋은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합니다. 염분이 적고 미끌미끌한 다시마의 섬유질이 혈액의 나쁜 콜레스테롤을 내보내 탄력성을 유지시켜줍니다. 또한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 칼륨이 나트륨의 배설을 촉진하여 고혈압, 심장병, 동맥경화와 같은 성인병을 치료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암 예방을 위해 지켜야 할 것들

암 예방을 위해 지켜야 할 것들

암 예방을 위해 지켜야 할 것들

1. 소금기가 많은 음식을 피한다.

2. 소식(小食)으로 총 칼로리 섭취량을 줄이며 지방을 적게 먹는다.

3. 야채류 특히 녹황색야채(당근, 호박 등)나 생야채, 감귤류 등 카로틴이나 비타민 C가 풍부한 것을 많이 먹는다.

4. 알코올 음료를 과다하게 마시지 않는다.

5. 도정(搗精)을 보다 적게 한 곡류(현미 등), 야채류, 콩류, 버섯류, 해조류 등 식이 섬유가 풍부한 식품을 많이 먹는다.

6. 열량이 많은 음료와 음식물을 피한다.

7. 검게 타버린 고기나 생선은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

8. 편식 및 같은 음식을 반복해서 먹는 것을 피하고 여러 가지 음식을 균형있게 먹는다.

9.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잘 씹어 먹는다.

10. 편식하지 말고 영양분을 골고루 균형있게 섭취한다.

11. 황록색 야채를 주로, 과일 및 곡물 등 섬유질을 많이 섭취한다.

12. 우유와 된장의 섭취를 권장한다.

13. 비타민 A, C, E를 적당량 섭취한다.

14. 이상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과식하지 말고 지방분을 적게 먹는다.

15. 너무 짜고 매운 음식과 너무 뜨거운 음식은 피한다.

16. 불에 직접 태우거나 훈제한 생선이나 고기는 피한다.

17. 곰팡이가 생기거나 부패한 음식을 피한다.

18. 술은 과음하거나 자주 마시지 않는다.

19. 담배는 금한다.

20. 태양광선, 특히 자외선에 과다히 노출하지 않는다.

21. 땀이 날 정도의 적당한 운동을 하되 과로는 피한다.

22. 스트레스를 피하고 기쁜 마음으로 생활한다.

23. 목욕이나 샤워를 자주하여 몸을 청결하게 한다.

건강유지와 스트레스 방지법

건강유지와 스트레스 방지법

건강유지와 스트레스 방지법

⊙ 건강을 유지하는 5대 요소

1. 좋은 영양상태

2. 운동

3. 좋은 정신적 성향

4. 유머감각

5.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것

⊙ 스트레스를 줄이는 5가지 방법

1. 어떤일이 일어나도 최선을 다한다.

2. 날마다 자연과 만나고 발밑의 땅을 느낀다.

3. 일 또는 산책을 하면서 몸을 움직인다.

4. 날마다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 나눈다. 혼자이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

5. 삶과 세계에 대해 생각해보고, 생활에서 유머를 찾는다.

⊙건강을 누리게 해주는 7가지 비결

1. 건강에 좋은 것을 먹고 마시라.

2.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라.

3. 담배를 피우지 말라.

4.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

5. 스트레스에 대처하라.

6. 긴밀한 사회적 유대 관계를 유지하라.

7. 질병과 사고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신중한 예방 조처를 취하라

꾸준히 운동하는 5가지 방법

꾸준히 운동하는 5가지 방법

꾸준히 운동하는 5가지 방법

1. 일상생활 속에서 신체활동량을 늘린다.

운동을 하라고 하면 거부감을 갖는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요즘 미국에서는 당뇨병 환자들에게 ‘엑서사이즈(exercise, 운동)’라는 말 대신 ‘신체활동(physical activity)’이란 말을 즐겨 쓴다. 운동이라고 하면 운동화를 질끈 동여 매고,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고행이나 자기학대에 가깝게 몸을 혹사시키는 것을 떠올리는 등 부정적인 생각부터 든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평소 신체활동량을 늘려주는 것만으로도 운동화를 신고 짐(gym)에서 운동하는 것 못지 않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를테면, 목적지 한 정류장 전에 차에서 내려 걷기, 입구에서 멀리 주차하기,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하기 등이 그것이다.

2. 운동 파트너를 만들자.

당뇨병 클리닉이나 당뇨병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도 좋고, 이웃 사람도 좋다. 혼자 운동하면 의지가 약해져서 다녔다 쉬었다를 반복하기 쉬운데, 운동 파트너가 있으면 보다 지속성을 높일 수 있다. 이처럼 운동 파트너가 생기면 당뇨병 때문에 생기기 쉬운 우울증을 극복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3.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고른다.

아무리 좋은 운동도 재미가 없으면 오래 가기가 어렵다. 등산, 수영, 걷기, 자전거 타기 등 다양한 운동들을 해 보고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운동을 고르자. 평생 동반자인 당뇨병인만큼 운동 또한 평생 지속할 수 있으려면 나와 궁합이 맞아야 한다. 일례로 수영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예전에 물에 빠져서 죽을 뻔 했던 사람은 커서 수영을 배워서 하는 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물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수영을 지속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대신 운동을 선택하기에 앞서 나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운동을 계획하도록 하자.

4. 운동을 몰아서 할 시간이 없다면 쪼개서 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루 30분~1시간 가량 운동을 하라고 의사로부터 권유받아도 꼭 이를 몰아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매일 45분씩 운동할 것을 처방받았다면 아침, 점심, 저녁 식후 15분씩 나눠서 하는 것도 방법이다. 바쁜 직장인이나, 운동을 몰아서 하기 어려운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다면 이와 같은 방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조지워싱턴대 연구팀은 공복혈당이 105~125mg/dL인 60세 이상 비만인 남녀 1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 매 식사 후 15분간 3회 운동하는 것도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5. 운동은 이틀 이상 거르지 않는다.

운동은 가능한 한 이틀 연속 쉬는 것은 삼간다. 하루 운동하고 하루 쉬고 해야 운동을 지속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지, 두 번을 연속으로 빠지게 되면 운동 생각이 멀어지면서 그만큼 중간에 포기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운동 효과 역시 매일 하거나 격일로 하는 것이 며칠 쉬었다가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절대로 운동은 이틀 연속으로 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빈 속에 먹으면 안되는 음식 9가지

빈 속에 먹으면 안되는 음식 9가지

빈 속에 먹으면 안되는 음식 9가지

1. 고구마

고구마에는 타닌과 아교질이 함유되어 있기에 위벽을 자극하여 더욱 많은 위산을 분비하여 속이 쓰리는 등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2. 감

감에는 비교적 많은 펙틴과 타닌산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 두 가지 물질이 위산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위결석을 형성할 수 있다.

3. 우유

우유에는 대량의 단백질이 함유되었다. 때문에 빈속에 마시면 단백질이 열량으로 전화하여 소모되기에 영양·보양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우유는 응당 과자, 빵과 같이 밀가루를 함유한 식품과 함께 먹거나 식후 2시간 혹은 잠자기 전에 먹어도 된다.

4. 사탕

사탕은 쉽게 소화되고 흡수되는 식품으로서 빈속에 많은 사탕을 먹으면 인체는 단시간에 충분한 인슐린을 분비하여 혈당의 정상치를 유지할 수 없기에 혈액 중 혈당이 갑자기 상승하여 눈병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사탕은 산성식품이기에 빈속에 먹으면 유기체내의 산성·알칼리성의 평형과 여러 가지 미생물의 평형을 파괴하여 건강에 해롭다.

5. 귤

귤은 대량의 유기산, 주석산, 구연산 등을 함유하고 있어 빈속에 먹으면 위산이 급증하여 위점막에 해로운 자극을 조성하게 된다.

6. 토마토

토마토에는 비교적 많은 펙틴과 타닌산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 두 가지 물질이 위산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용해되기 어려운 겔덩어리를 산생하여 위결석을 형성할 수 있다.

7. 요구르트

빈속에 요구르트를 먹으면 요구르트의 보건작용이 감소된다. 식후 2시간 혹은 잠자기 전에 먹으면 보양·보건, 소화촉진 작용뿐만 아니라 배기·변통작용도 일으킬 수 있다.

8. 바나나

바나나에는 비교적 많은 마그네슘원소가 함유되어 있기에 빈속에 먹으면 인체 내의 마그네슘이 급증하여 인체 혈액 중 마그네슘·칼슘 평형을 파괴하는바 심혈관에 억제작용을 일으켜 신체건강에 해롭다.

9. 두유

두유에는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다. 때문에 빈속에 마시면 단백질이 열량으로 전화하여 소모되기에 영양·보양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조선시대 국정농단 사건 6편

■ 조선시대 국정농단 사건 6편

■ 조선시대 국정농단 사건 6편

사헌부를 비롯한 삼사에서는 변처녕은 물론 고귀지와 조복중도 엄히 조사해 처벌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의금부에서는 고귀지와 조복중을 체포해 조사했다. 그런데 당시 백성들 사이에는 조복중은 분명 죄를 받지 않을 것이고 엉뚱한 사람만 화를 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배후인 조두대를 처벌하지 않는 한 조복중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여론이었다. 이에 따라 삼사에서는 조두대도 엄히 조사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여론의 예상대로 조두대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진하부사 변처녕은 교체되었을 뿐만 아니라 패가망신했다. 하지만 조복중은 멀쩡했다. 재상급인 변처녕도 패가망신하는 마당에 천민인 조복중이 멀쩡했다는 것은 결국 조두대의 영향력이 그 정도로 막강했다는 반증이었다.

위 사건이 일어난 성종 23년은 이미 정희대비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비선실세로서의 조두대의 내알이 여전히 강력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두대의 내알을 받아준 사람은 인수대비였다. 정희대비와 비교할 때 인수대비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우선 정희대비는 문자를 몰랐지만 인수대비는 문자를 알았다. 또 정희대비는 수렴청정을 했지만 인수대비는 그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대비 사이에는 같은 점도 많았다. 가장 현저하게 드러나는 같은 점은 내알을 조장했다는 사실이었다.

수렴청정을 하지도 않은 인수대비는 왜 조두대를 측근에 두어 내알을 조장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조두대를 시부모인 세조와 정희대비가 아꼈기 때문이었다. 시부모가 쓰던 사람을 며느리 입장에서 매정하게 내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수대비는 정희대비와 마찬가지로 조두대에게 매우 자비로웠다. 인수대비는 아들인 성종이나 월산대군 그리고 손자인 연산군에게는 매정한 어머니 또는 할머니로 알려져 있지만 측근에게는 매우 자비로웠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볼 때 그 자비심이 공식적인 행정조직을 무력화하고 내알을 조장했으며, 성종의 치세를 불명예스럽게 만들고 말았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조선시대 국정농단 사건 5편

■ 조선시대 국정농단 사건 5편

■ 조선시대 국정농단 사건 5편

돌이켜보면 정희대비의 불명예 퇴진은 사소하다면 사소한 익명서 사건이 발단이었다. 그리고 익명서의 발단은 정희대비의 친정과 측근 조두대의 국정농단으로 최개지가 억울하게 패소했다고 하는 소송사건이었다. 그런데 실제 최개지의 패소가 국정농단 때문인지 아니면 최개지 본인의 잘못 때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최개지 사건은 흐지부지되었고, 정희대비의 친정과 조두대에 대한 조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종 14년(1483) 정희대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조두대의 영향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비록 정희대비의 수렴청정은 끝났지만 왕실 최고 어른으로서의 영향력은 여전했고, 조두대에 대한 신임 역시 여전했기 때문이다. 정희대비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조두대는 연이어 인수대비의 강력한 신임을 확보함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았다.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이른바 변처녕(邊處寧) 사건이었다.

성종 22년(1491년) 겨울, 명나라 황태자가 조만간 책봉되리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성종은 이를 축하하기 위해 진하사(進賀使:축하사절)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성종 23년 봄에 진하 정사에 정괄, 부사에 변처녕이 임명되었다. 당시 조선의 거상(巨商) 재벌들은 북경무역을 통해 큰 이익을 남겼다. 조선에서 북경으로 갈 때는 인삼을 가져다가 팔아 이익을 남겼고, 올 때는 또 비단이나 고급 약재를 가져와서 이익을 남겼다. 하지만 북경무역을 위해서는 사신 행렬에 합류해야만 가능했다. 이에 따라 명나라 사행(使行)이 결정되면 조선을 대표하는 거상(巨商)들 사이에 격렬한 경쟁이 벌어졌다.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거상(巨商) 재벌은 고귀지(高貴枝)와 조복중이었다. 고귀지는 정희대비의 친정인 파평 윤씨에 줄을 대고 있었고, 조복중은 조두대의 조카였다.

진하부사에 임명된 변처녕은 처음에 고귀지의 아버지 고윤량(高允良)을 수행군관 명목으로 사신 행렬에 합류시켰다. 본래 수행군관은 사신을 호위하기 위한 무관이기에 장사꾼이 할 수 없는 임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귀지의 아버지는 돈과 인맥을 동원해 그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가 갑자기 조복중으로 교체되었다. 당연히 고귀지는 조복중이 자신보다 더 많은 뇌물을 썼거나, 아니면 조두대를 이용했을 것이라 짐작했다. 분개한 고귀지는 조복중을 찾아가 크게 따졌다. 싸움이 커져 결국 사헌부에 적발되었고 정치문제로 비화되었다.

- 6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