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0일 수요일

정미수

■ 정미수

■ 정미수

정미수는 문종의 외손(外孫)으로 아버지는 영양위(寧陽尉)에 봉해진 정종이고, 어머니는 문종의 적녀(嫡女)인 경혜공주이다. 정미수가 태어날 당시 아버지 정종이 세조에 대한 반기를 들었다가 광주(光州)로 유배를 가 있던 바람에 정미수는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나이 2살 때 외숙부 단종이 영월에서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으며, 곧이어 아버지 정종도 처형당했다. 7살 때인 1462년(세조 8년) 어명으로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들어왔다. 일반적으로 역신(逆臣)의 가족들은 대명률에 따라 연좌(緣坐)되어야 하나, 세조의 특명으로 경혜공주와 정미수는 연좌를 면하였고, 직위도 모두 회복하였다. 성종이 왕이 되기 전 아직 사저(私邸)에 있을 때 같은 유모인 백어리니의 손에서 자랐다. 그 인연으로 성종이 왕이 된 후, 그는 1473년(성종4년) 돈녕부직장을 거쳐 형조정랑이 되었다.

죄인의 자식이 관리가 되었다 하여 여러 차례 탄핵을 받았으나, 성종의 도움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 1476년 중부참봉을 거쳐 이듬해에는 선전관이 되었고, 그 뒤 사헌부장령·충청도관찰사·도승지·공조참판·한성부판윤 등을 지냈다. 어머니인 경혜공주가 병석에 누워 있을 때, 당시 16세이던 정미수는 항상 약물을 먼저 맛보고 옷도 벗지 않았으며, 경혜공주의 대변을 직접 맛보는 등 병간호를 극진히 했던 효성 깊은 아들이었다고 한다.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이 되어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올랐으며,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정미수에게는 외숙모가 되는 단종 비 정순왕후는 폐위 후 정업원에서 살다가 정미수의 집에서 승하하였다. 그래서 단종과 정순왕후의 제사도 정미수가 받들었다. 정순왕후는 정미수의 선산에 안장되었는데, 현재의 사릉(思陵)이다. 사릉은 왕비릉으로 복위되기 전까지 해주 정씨 집안에서 관리하였다. 2012년 7월 경혜공주가 정미수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내용을 담은 《경혜공주 분재기(分財記)》가 발견되었다. 해당 문서는 해주 정씨 종가(宗家)에서 소유하고 있던 문서로, 정미수가 정선방에 있는 집과 통진(지금의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집 등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는 내용이 담겨있다. 유자광에 의하면 정미수가 현덕왕후(경혜공주의 어머니)의 복권(復權)을 처음 주장했고, 남효온(南孝溫)과 김일손(金馹孫)을 사주하여 복권 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1512년(중종7년) 음력 4월 15일 향년 5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그는 이덕량의 딸과 혼인하였고 첩도 따로 두었으나, 자녀가 없어 7촌 조카인 정승휴로 하여금 후사를 이었다.

〈연산군 일기〉에는 정미수에 대해 "문종의 외손으로 궁중에서 자라나 호화와 사치가 습관이 되었으나, 선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며 청의(淸議)를 말하여, 갑자사화에서 사람들을 구하기에 힘썼다."라고 평하고 있다. 정미수의 신도비문(神道碑文)을 지은 강혼은 정미수에 대해 "외모가 수려하고 옥사(獄事)에 대해 논의할 때에는 매사에 깐깐하여 일의 경중을 꼼꼼히 따졌다. 형조에 있으면서 억울한 처지에 놓인 죄 없는 사람들을 살렸다." 등의 평이 남아 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시력보호에 좋은 식품 6가지

시력보호에 좋은 식품 6가지

시력보호에 좋은 식품 6가지

1. 당근

모든 오렌지 색깔의 과일이나 야채는 베타카로틴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이 성분은 눈을 관통하는 빛 에너지의 흡수를 돕고 밤에 시야의 적응력을 높여준다. 하루에 당근 1개를 먹으면 좋다. 올리브 오일과 함께 요리해 먹으면 베타카로틴의 흡수력을 높일 수 있다.

2. 시금치

제아젠틴과 루테인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이 성분들은 황반변성과 백내장의 위험을 낮춰준다. 브로콜리와 케일 등 잎이 푸른 채소들도 비슷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 미국 국립 눈 연구소에 따르면 이들 성분은 노인들의 실명위험도 낮출 수 있다. 하루 100g의 시금치를 샐러드 형태로 섭취하거나 데쳐 먹을 수 있다.

3. 오렌지

비타민 C가 풍부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비타민C 보충제를 10년간 섭취한 여성들은 백내장 위험이 64%나 줄었다. 하루에 오렌지 1개씩 먹으면 좋다. 비타민 C가 풍부한 토마토와 붉은 피망을 먹어도 좋다.

4. 검은 색깔의 베리

밤눈을 좋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귤나무 속의 일종인 빌베리(Bilberries)는 2차 대전 중 전투기 조종사들이 밤에 출격할 때 시력을 보다 좋게 하기 위해 즐겨 먹었다. 지난 연구에 따르면 빌베리나 블랙베리와 같은 검은 색깔의 베리는 안토시아닌 성분이 풍부해 황반변성이나 백내장의 위험을 방지하거나 늦춘다. 매일 아침 시리얼에 베리를 한줌씩 뿌려 먹으면 도움이 된다.

5. 기름진 생선

신선한 참치와 멸치, 고등어, 연어, 송어 등의 눈에는 지방산인 도코사핵사엔산(DHA, docosahexaenoic acid)이 풍부하다. 오메가-3 지방산의 일종인 이 성분이 부족하면 눈이 건조해진다. 미국 국립 눈 연구소에 따르면 기름진 생선에 들어있는 오메가-3 지방산은 황반변성과 눈 건조 현상을 막아준다. 눈 건강을 위해 일주일에 두 번 생선을 먹는 것이 권장되고 있다.

6. 아몬드

비타민E가 풍부하다. 비타민E는 자외선 등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준다. 황반변성과 백내장의 진행을 더디게 만들 수 있다. 하루 한줌씩 먹으면 좋다.

우리 몸에 좋은 과일 7가지

우리 몸에 좋은 과일 7가지

우리 몸에 좋은 과일 7가지

1. 키위

포타시움 마그네시움 비타민E와 섬유질이 풍부합니다. 비타민C는 오렌지의 두배나 있습니다.

2. 사과

하루에 사과 한 알씩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지요. 비록 비타민C는 적지만 플라보노이드가 있어서 비타민C의 작용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직장암 심장마비 중풍의 위험을 낮추어 줍니다.

3. 딸기

몸을 보호하는 과일입니다. 과일가운데 항산화제가 높아서 암을 유발하고 혈액을 응고시키는 물질에서 몸을 보호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4. 오렌지

매우 귀한 과실이지요. 하루에 2-4개 먹으면 감기 안 걸리고 콜레스트롤을 내리고 신장결석을 녹여주고, 직장암 위험을 감소시킵니다.

5. 수박

갈증 해소에 최고입니다. 92%가 물이고 글루틴이 많아 면역을 높이고 암을 이기는 항산화제가 많습니다. 비타민C와 포타시움도 많습니다.

6. 구아바와 파파야

비타민C가 풍부하고 섬유가 많아서 변비에 좋습니다. 파파야는 카로틴이 많아서 눈에 좋습니다.

7. 보라색 과일

포도와 블루베리는 대표적인 보라색 과일입니다. 포도는 적포도주의 심장병 예방 효과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껍질에 들어있는 플라보노이드는 동물성 지방이 혈관에 달라붙는 것을 막고 좋은 콜레스테롤 수준을 높여줍니다.

뱃살 퇴지법

뱃살 퇴지법

뱃살 퇴지법

★뱃살 감량에 도움이 되는 음식★

▶고단백 음식_콩류

신체 근육 발달을 도와 체지방 연소를 촉진해 주는 단백질은 다이어트 필수적인 영양소. 이때 지방이 섞인 육류보다는 섬유질과 단백질이 풍부한 콩을 섭취해주면 더욱 좋다. 콩은 열량이 낮아 저칼로리로 포만감을 주기 때문이다. 만일 육류를 섭취할 때에는 단백질 함량이 높은 돼지고기나 소고기 살코기 부위, 껍질을 벗긴 닭 가슴살을 이용하도록 하자.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와 과일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와 과일은 천천히 소화되면서 장시간 포만감을 준다. 또한 과도한 인슐린 분비를 억제해 배에 포도당이 지방세포로 저장되는 것을 방지해준다.

▶물

체내 수분이 부족해지면 체지방 연소를 방해하며 몸을 지치게 만들어 활동량이 감소하게 된다. 또한 물 속에는 체내 불필요한 지방을 연소시킬 때 필요한 산소도 함유되어 있어 평소 수시로 물을 마셔주면 뱃살 감량에 도움이 된다.

▶견과류

호두, 잣, 아몬드 등 견과류에는 체지방 분해를 돕는 불포화지방산과 혈액순환을 촉진해주는 비타민E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단, 견과류는 열량이 높은 식품으로 지나치게 많은 양을 섭취하면 오히려 다이어트에 방해가 될 수 있다.

▶해조류

김, 미역, 다시마에 들어 있는 요오드와 미네랄 성분은 혈액순환을 원활히 해주고 소화를 촉진해 변비를 완화해 준다. 또한 체내 독소 및 노폐물 배출을 도와 혈액을 맑게 해주고 신진대사 작용을 활발히 해 체지방 연소를 도와준다.

★뱃살 감량을 위해 피해야 할 음식★

▶정제된 탄수화물

과자/빵/케이크 등 가공된 탄수화물은 혈당을 급격히 상승시킨다. 이때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이 포도당을 글리코겐으로 변환해 지방세포로 저장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인슐린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면서 더 많은 인슐린을 분비. 결국 뱃살이 늘어나게 된다.

▶포화 지방·트랜스 지방

육류나 유제품에 풍부한 포화지방, 마가린과 같은 트랜스지방은 혈관 내 노폐물 축적을 부추겨 혈액순환을 방해하여 지방 대사를 방해한다. 단, 무작정 지방 섭취를 줄이다보면 상대적으로 탄수화물 섭취량이 많아서 중성지방 수치가 증가하면서 내장지방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포화지방은 전체 칼로리의 7% 이내로 섭취하도록 하자.

▶짠 음식

우리 몸은 하루 5g 이상 소금을 섭취하면 조직 내에 수분을 축적시켜 염분을 희석하려고 한다. 이는 뱃살 및 부종의 원인이 되며 셀룰라이트까지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스트레스 해소법 5가지

스트레스 해소법 5가지

스트레스 해소법 5가지

1. 사랑

사랑을 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을 억제하는 성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지고 도파민 분비도 늘어난다. 도파민은 사람이 즐겁고 유쾌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데, 사랑에 빠지면 분비량이 늘어난다. 사랑의 건강효과는 사랑한다는 말로도 나타난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김재엽 교수팀이 노인 남성을 대상으로 7주간 배우자에게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표현을 매일 하게 했더니 매일 이 말을 반복한 그룹은 혈액 내 산화 스트레스 지수가 50% 감소했고, 항산화 능력 지수는 30% 증가했다. 이 외에 우울증이 개선되고 심장 박동이 안정됐다.

2. 스킨십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옥시토신이 분비되는데, 옥시토신은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에 모두 좋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특히 키스나 포옹을 하면 옥시토신이 많이 분비돼 연인의 애정을 높여 주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키스를 하면 스트레스를 자극하는 글루코 코르티코이드의 생성을 억제해 스트레스를 줄여 주며, 뇌를 자극해 엔도르핀이 나오게 해 아픈 통증을 줄여 준다. 엔도르핀은 모르핀보다 200배 강한 천연 진통제다. 키스를 하면 교감신경이 침샘을 자극해 침 분비가 늘어난다. 침에는 항균물질이 있어 면역기능을 높인다. 키스할 때 뇌에선 코르티솔의 분비를 막아 준다. 키스를 즐기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평균 5년 정도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3. 웃음

"15초 동안 크게 웃기만 해도 엔도르핀과 면역세포가 활성돼 수명이 이틀 연장된다"는 미국 인디애나주 메모리얼 병원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있다. 18년 동안 웃음을 연구한 리버트 박사는 웃는 사람의 혈액을 분석한 결과, 바이러스나 암세포를 공격하는 NK세포가 활성화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웃음이 보약"이라는 말이 사실인 셈이다. 웃음은 혈류량을 증가시켜 산소 공급을 늘려 준다. 웃을 땐 진통제 역할을 하는 엔도르핀, 엔케팔린, 옥시토신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특히 한바탕 크게 웃고 나면 온몸 근육에서 수축과 이완이 자연스럽게 일어나 체내 대사율이 증가하며, 관절 범위의 유연성이 10% 증가한다.

4. 명상과 심호흡

명상은 뇌에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뇌파(알파파)를 활성화한다. 조용하고 쾌적한 장소에 앉아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배로 천천히 깊게 숨을 쉬는 복식호흡을 5분 동안 하면 긴장을 푸는 데 효과적이다. 명상할 때는 한 가지 단어를 생각하거나, 해변 같은 평화로운 광경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부드러운 음악은 평온한 마음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심호흡과 함께 점진적으로 근육을 이완하면 효과가 배가된다. 심호흡을 하면 팽창된 허파가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 위해 부교감 신경계가 작동되면서 몸이 이완되고 답답함이 진정된다. 긴장 상황일 때 3~5분간 천천히 심호흡하는 것만으로 맥박과 호흡이 감소하고 긴장이 풀어져 심신이 편안해진다.

5. 일광욕·산림욕

일광욕은 정신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하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의 분비를 늘려 준다.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겨울에 우울증이 많은 것은 세로토닌 부족과 관계가 있다. 하루 30분 이상 햇볕을 쬔다. 산림욕을 하는 것도 행복에 도움이 되는데, 산림이나 폭포 주변 공기에 많이 포함돼 있는 음이온은 부교감 신경을 일깨워 기분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감기 걸렸을때 약대신 먹으면 좋은 음식

감기 걸렸을때 약대신 먹으면 좋은 음식

감기 걸렸을때 약대신 먹으면 좋은 음식

1. 마늘 된장 덩이

껍질을 벗겨 통째로 구운 마늘을 강판에 갈아 같은 분량의 된장과 섞은 다음 10원짜리 동전 크기로 빚어 다시 한 번 굽는다. 이 구운 마늘 된장 덩이 한 개를 잠자기 전에 찻잔에 넣어 뜨거운 물을 부어 녹여서 복용하면 가벼운 초기 증상의 감기가 달아나 버린다. 목에 통증이 있는 경우에도 효과적이다. 또는 강판에 간 마늘과 된장을 각각 약간씩 찻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젓가락으로 잘 휘저어 뜨거울 때 복용하면 몸이 따뜻해지고 초기 감기에 좋다.(역시 잠들기 전에 복용)

2. 마늘을 넣은 무즙

강판에 간 무를 즙과 함께 끓여 여기에 마늘 한 조각을 찧어 넣어서 먹으면 재채기와 콧물 감기에 잘 듣는다. 혹은 무즙에 물엿을 넣어 먹어도 좋다. 먼저 무를 얇고 둥글게 썰어 병에 넣고 여기에 물엿을 넣어 섞는다. 이렇게 하여 잠시 두면 무에서 무즙이 나오는데 이 무즙과 물엿이 섞인 것을 스푼으로 한 스푼씩 복용한다.

3. 마늘과 벌꿀

1kg의 마늘을 껍질을 벗기고 깨끗이 씻어 소쿠리에 담는다. 다음, 찜통에 행주를 깔고 거기에 마늘을 넣어 3분간 뚜껑을 덮고 찐 다음 다시 2분간, 이번엔 뚜껑을 열고 찐다. 이렇게 하면 마늘 냄새가 완전히 없어지는데 찐마늘을 다른 냄비에 옮겨서 여기에 벌꿀을 430g 넣고 다시 한 번 불에 올려놓고 조린다. 이렇게 완성이 되면 이것을 하루에 1∼3회 한스푼씩 먹으면 초기 감기에 좋다.

4. 생강탕

생강을 강판에 갈아 설탕이나 벌꿀을 소량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두었다가 이것을 자기 전에 마시면 잘 낫는다. 또는 묵은 생강과 무를 강판에 갈아 섞은 다음, 여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 자기 전에 먹어도 잘 듣는다.

5. 표고버섯 술

35도의 소주에 표고버섯을 넣고 4일쯤 지나면 표고를 새로 바꿔 넣는다. 이것을 4~5회 반복한 후 그 술을 한 스푼 정도 마시면 놀랄 만큼 효과가 있다. 이것은 표고의 포자에 함유된 항체물질이 작용해서 감기 등 바이러스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6. 계란술

정종을 한 잔 정도 부글부글 끓을 정도로 뜨겁게 해서 그 속에 계란을 두 세개 넣고 잘 뒤섞어 자기 전에 단숨에 들이마시면 가벼운 감기에 효과적이다. 이런 방법은 비위가 약해 먹기 어렵다면 다음과 같이 해도 좋다. 먼저 정종에 계란을 넣은 다음, 벌꿀을 적당량 넣고 불에 올려 놓는다. 거기에다 귤껍질(바깥쪽의 두꺼운 껍질)즙과 강판에 간 묵은 생강, 잘게 썬 파를 한줌 넣는다. 이것을 잘 섞어서 마신 다음 곧장 잠자리에 들면 효과가 있다.

7. 마른 표고버섯 달인 물

시중에서 판매되는 마른 표고버섯 15g에 물 3컵을 넣어 물의 분량이 반이 될 때까지 느긋하게 끓인다. 열이 날 때 이 액체를 하루 2회 복용하면 열이 씻은 듯이 가라 앉는다. 표고버섯엔 단백질, 지방, 비타민, 탄수화물, 미네랄 등이 풍부하고 감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8. 무즙과 벌꿀의 혼합액

먼저 무를 1cm 정도 크기로 썰어 주둥이가 넓은 병에 넣고, 그 무가 잠길 때까지 듬뿍 벌꿀을 얹는다. 이것을 밀봉해서 어둡고 시원한 곳에 3일쯤 두면 무에서 수분이 배어나와 벌꿀과 섞인다. 이 혼합된 액체를 한 스푼쯤 찻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면 기침이 멎고 목의 통증도 가라앉는다. 이것이 번거로우면, 무즙을 내서 거기에 3분의 1 정도 분량의 벌꿀을 넣은 후 하루에 수차례 한 스푼씩 계속해서 복용한다. 3일 정도 먹으면 열이나 목의 통증이 없어진다. 벌꿀과 무즙만을 섞은 것이 먹기 힘들게 느껴지는 사람은 벌꿀과 강판에 간 무를 혼합, 복용해도 좋다. 혼합비율은 반반으로한다. 더욱더 효과를 올리기 위해선 마늘을 함께 담근 벌꿀(무즙 포함)을 이용하면 된다.

백어리니白於里尼

■ 백어리니白於里尼

■ 백어리니(白於里尼)

백어리니는 문종이 세자이던 시절 세자빈 권씨가 친정에서 데리고 온 여종이었다. 그녀는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총명했다. 세자빈 권씨는 경혜공주를 출산한 후 총명한 백씨를 경혜공주의 유모(乳母)로 들였다. 하지만 계유정난 이후 경혜공주의 남편 정종이 역모로 몰려 죽자, 백어리니는 수양대군에게로 넘겨졌다.

파란만장 기구한 삶을 살았던 경혜공주가 원수같은 세조가 왕으로 있는 궁궐에 자식들을 맡기고 홀로 떠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인 현덕왕후의 친정노비이자 유모였던 백어리니의 도움이 컸다. 백어리니는 당시에 세조의 손자인 자을산군(성종)의 유모였는데, 정희왕후 윤씨(세조 비)와 함께 "자식들을 위해서 왕(세조)을 용서해야한다" 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수양대군은 총명한 백씨를 자신의 큰아들(의경세자)에게 주었고, 그 인연으로 백씨는 훗날 성종이 되는 자을산군의 유모가 되었다. 자을산군은 백씨를 마치 생모처럼 존중했으며, 훗날 인수대비(성종 비)가 되는 수빈 한씨 역시 백씨를 극진히 신임했다. 이 같은 인연으로 백씨는 성종이 즉위한 후 봉보부인(奉保夫人)의 자격으로 입궁(入宮)했다. 이처럼 인수대비와 백씨의 인연은 정희대비와 조두대의 인연 못지않게 돈독하여, 정희대비가 조두대를 측근으로 중용했듯이 인수대비 역시 백씨를 측근으로 중용하여 제2의 비선실세로 국정농단을 또 다시 자행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정희대비 사후(死後)에는 궁중의 비선실세가 조두대 한명에서 백씨까지 더하여 두 명으로 늘었난 셈이다. 당연히 권력실세에 빌붙으려는 자들은 조두대와 백어리니에게 줄을 댔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공(李拱)이라는 인물이다. 이공은 세종 대의 유명한 역법학자 이순지의 아들인데, 실록에는 이들의 국정농단 실태가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 이공(李拱)이 봉보부인 백씨의 조카딸을 첩으로 삼고 백씨 부부를 부모처럼 섬겼다. 순천부사가 되어서는 몰래 뇌물을 들여 백씨와 깊이 사귀었다. 임기가 만료되어 곧 승지가 되었다가 불상사(不祥事)로 파직되었는데 또 얼마 안 되어 특별히 가선대부에 올라 호조판서가 되었다. 백씨가 아들을 장가 보내던 날, 이공이 백씨의 집안일을 마치 늙은 종처럼 맡아 보았으므로 보는 사람들이 다 비웃었다. 하지만 이공은 권세와 이익을 달게 여겨 스스로 좋은 계책이라고 생각하였다. 안주목사가 되어서는 더욱 부지런히 섬겨 뇌물을 땅으로 나르고 바다로 날라 바쳤다.” 《성종실록: 성종 18년(1487년) 9월 28일》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경자년庚子年 쥐 이야기 3편

■ 경자년庚子年 쥐 이야기 3편

■ 경자년(庚子年) 쥐 이야기 3편

농사의 풍흉(豐凶)과 인간의 화복(禍福)뿐만 아니라, 뱃길 사고를 예시하거나 꿈으로 알려주는 영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지진이나 화산, 산불이 나기 전에 그것을 미리 알고 떼를 지어 그곳에서 도망치는 예를 들어 쥐에게는 초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쥐의 예지력 때문에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선원들에게는 ‘쥐떼가 배에서 내리면 난파한다’ 거나 ‘쥐가 없는 배에는 타지 않는다’ 는 속신(俗信)이 있다. 항해의 안전을 위해 쥐신을 모시기도 했다.

12지의 하나로서 쥐를 활용하는 전통은 신라 시대 때부터 나타난다. 김유신 묘나 흥덕왕릉 등지에서는 쥐를 형상화한 띠 동물상을 무덤 주위에 두르거나, 쥐 조각상을 무덤에 넣기도 했다. 이후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쥐의 생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쥐 그림이 많아졌다. 그 중 신사임당의 ‘수박과 쥐 그림’은 쥐 두 마리가 수박을 훔쳐 먹는 장면이 나온다. 겸재 정선의 서투서과 그림에서도 쥐가 수박을 갉아먹는 모습이 나오는데, 쥐의 생태와 습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옛날 궁중에서는 쥐날에 풍년을 비는 뜻으로 곡식의 씨를 태워 비단주머니에 넣어서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하는데, 이 주머니를 자낭(子囊)이라고 하였다.

쥐는 지저분하다고 오해를 많이 받는데 새끼들을 일일이 깨끗한 곳으로 수시로 옮겨줄 만큼 깔끔하고 모성애 또한 무척 강하며 땅속에 식량창고와 화장실을 따로 만들 정도로 위생관념이 뛰어나다고 한다. 역술인들은 쥐의 해를 풍요와 희망이 깃드는 해라고 분석을 하고 있으며, 쥐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쥐처럼 부지런해서 돈을 잘 모으며 다산의 상징인 쥐처럼 자식도 많이 낳는다고 한다.

쥐는 먹이가 아무리 많아도 자신의 정량을 넘기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하는데, 쥐는 욕심을 자제할 줄 아는 습성 때문에 먹이를 놓고 조직 내부에 분란이 별로 없다고 한다. 쥐는 가만히 있는 법이 없이 항상 움직이고 있으며, 먹이를 대량으로 저장해 놓는 습성이 있다. 그러기에 쥐띠인 사람들은 근면하고 저축을 많이 하여 재물이 많고, 영리함과 집념을 함께 가지고 있어 인생에서의 성취도가 높다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생각하게 된다. 쥐띠이기 때문에 부지런한 것이 아니라 쥐띠는 원래 부지런하다고 믿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지런해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 올 한해 쥐처럼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풍요와 희망으로 가득한 행복한 나날이 되었으면 한다.

♣ 제공 : KIMSEM과 함께 역사 다시보기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3편

■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3편

■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3편

광주 유배지는 통진에 비해 감시가 훨씬 심했다. 집 주변으로 담장과 난간이 높직하게 둘러 처져 있었으며, 감시병들도 많았다. 게다가 남자 종은 부릴 수 없었고, 여종 세 명만 부릴 수 있었다. 남자 종들을 시켜 무슨 음모를 꾸밀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공주의 동생인 단종은 상왕(上王)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 갔다가 이듬해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세조 3년(1457년) 10월 이후에는 정종에 대한 감시가 더더욱 강화되었다. 정종은 공공연히 세조에게 반감을 품은 발언을 하고 다녔고, 결국 세조 7년(1461년) 반역을 도모하였다는 죄로 단종이 죽은 지 4년 뒤에 능지처참(陵遲處斬)에 처해져 죽었다. 그의 시신마저도 팔도로 흩어져 흔적조차 없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부모도, 동생도, 남편도 모두 잃은 공주의 나이는 겨우 스물여섯이었다. 남편이 사형당할 때 그녀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임산부에 애까지 딸린 공주에게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일자, 이를 의식한 수양대군(세조)은 공주를 사면(赦免)하고 한성으로 불러들였다. 실록에서는 공주가 무척 가난하여 세조가 노비를 보내주고 내수사(內需司:궁중 물품관리 기관)로 하여금 집을 지어주게 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야사(野史)인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사육신 사건 이후 경혜공주는 전라도 순천부의 노비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순천부사가 그녀를 노비로 부리려 하자, 공주가 수령 집무실인 동헌에 들어가 의자에 앉으면서 “나는 왕의 딸이다. 비록 죄가 있어 귀양을 왔지만, 수령이 어찌 감히 내게 노비의 일을 시킨단 말이냐?”며 호통을 친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주의 신분을 끝까지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편이 역모죄로 죽었으니 원래대로라면 연좌제로 경혜공주와 두 자녀는 노비가 되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실록에도 정종이 죽고 반년만인 1462년 5월에 세조가 경혜공주에게 노비를 내려줄 것을 지시한 기록이 있고, 2012년에 발견된 경혜공주 사망 3일 전에 외아들 정미수에게 남긴 재산 상속에 관한 기록인 《경혜공주 분재기(分財記)》에서 "내가 불행히 병이 들어 유일한 아들인 미수가 아직 혼인도 못했는데 지금 홀연히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노비는 갑작스러운 사이에 낱낱이 기록해 줄 겨를이 없어 먼저 정선방(貞善坊)에 있는 하사받은 집과 통진(지금의 경기도 김포)에 있는 전답(田畓)을 준다"고 적혀 있다. 그러므로 야사가 허구라는 게 확실히 입증되었다.

경혜공주는 딸을 출산한 이후 두 아이를 왕궁에 맡기고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수양대군의 손자인 성종이 재위할 때 서른여덟의 짧은 삶을 마감하게 된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2편

■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2편

■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2편

경혜공주가 혼인식을 올리고 아직 신혼집을 장만하기 전인 같은 해 2월 17일(1450년 3월 30일) 세종이 승하(昇遐)했다. 혼인한 직후에 할아버지가 사망했으니 살림집 준비는 일단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살림집을 마련한 것은 세종의 소상(小祥:사망 1주기 식)이 끝난 뒤였다. 아버지가 왕(문종)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경혜공주의 신분은 공주(公主)였다. 하지만, 공주의 불운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할아버지 세종의 삼년상을 끝내고 한 달 뒤에 아버지 문종마저 쓰러진 것이었다. 공주의 입장에서는 할아버지의 삼년상에 이어 아버지의 삼년상까지 치러야 했으니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겪었을 것이다. 이때 그녀의 나이 열일곱 살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의 삼년상이 채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훗날 세조)이 계유정난(癸酉靖難:1453년)을 일으켰다. 공주의 동생 단종은 허수아비 임금으로 전락했다. 이때 공주는 열여덟 살이었다. 2년 뒤인 스무 살 때, 공주는 숙부 수양대군이 임금이 되고 동생이 상왕으로 물러났을 뿐 아니라, 남편인 정종이 강원도 영월로 귀양 가는 슬픔을 연달아 맛봐야 했다. 남편 정종이 귀양을 간 것은, 그가 단종을 감싸고 도는 숙부 금성대군(錦城大君:수양대군의 동생)과 친했기 때문이었다. 정종은 영월에서 경기도 양근(지금의 양평군 일부), 한성, 수원 및 김포 등지로 유배지가 변경되었다. 유배지가 수원으로 바뀐 뒤부터는 공주도 남편과 동행했다. 세조는 경혜공주가 원한다면 정종를 따라 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경혜공주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다. 그리하여 경혜공주는 남편을 따라 수원, 통진에 이어 광주까지 가게 되었다.

경혜공주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초상과 단종의 강제 양위 등 연이은 불행으로 인해 계속 각방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없었는데, 이후 25살이던 경혜공주는 혼인 9년 만에 유배지에서 장남 정미수를 출산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공주의 신분이었고, 그녀 자신은 죄인이 아니기에 유배지에서도 종을 부리는 등 최소한의 품위유지는 한 듯하다. 비록 유배지이기는 했지만 경혜공주는 남편과 함께 비교적 편안하게 지냈다. 그러나 그 생활도 오래 가지 못했다.

세조 집권 뒤에 발생한 사육신사건(1456년)은 공주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다. 단종 복위를 꾀한 이 사건으로 그렇지 않아도 복위운동이 일어날까 긴장하고 있던 세조와 측근들은 이 사건을 빌미로 그 싹을 자르려 하였다. 상왕(上王) 단종은 삼엄한 감시를 받아야 했고, 정종 또한 가혹한 처벌을 피하지 못했다. 유배 중이던 정종을 시종하던 종들은 모두 지방의 관노로 쫓겨났다. 그 뿐만 아니라 정종의 모든 재산이 몰수되었다. 혹시라도 정종과 상왕 단종 사이에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인맥과 자금을 차단하려는 조치였다. 정종의 유배지도 경기도 통진에서 더 멀리 전라도 광주로 바뀌었다. 정종을 상왕(上王) 단종이 머무는 한양에서 멀리 떨어뜨려 서로 접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