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4일 일요일

숯으로 가족 건강 지키는 생활 지혜 17가지

숯으로 가족 건강 지키는 생활 지혜 17가지

숯으로 가족 건강 지키는 생활 지혜 17가지

1. 과일이나 채소, 쌀을 씻는 물에 숯을 넣고 10-20분 놓아두면 숯이 농약성분을 빨아들인다.

2. 음식을 끓일 때 넣으면 음식물이 으깨지지 않아 요리의 모양을 예쁘게 유지할 수 있다.

3. 숯은 물속의 유해물질을 흡착, 분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정수 효과를 낸다. 수돗물에 넣어두면 소독약 냄새도 나지 않고 물맛도 좋아진다.

4. 튀김 기름에 넣으면 기름이 잘 산화되지 않고 요리의 선도가 유지된다.

5. 숯을 넣어 밥을 하면 좋지 않은 쌀이나 묵은 쌀이라도 햅쌀로 지은 밥처럼 밥맛이 좋다.

6. 집안 구석 구석에 놓아두면 공기정화 역할을 한다.

7. 냉장고에 넣어두면 김치냄새 등의 여러가지 냄새를 없앨 수 있다.

8. 구두속에 넣으면 퀴퀴한 발냄새를 없애 준다.

9. 후미진 곳에 놓아두면 바퀴벌레나 개미를 퇴치하는 효과도 있다.

10. 쌀통에 숯을 넣어두면 바구미가 생기지 않는다.

11. 컴퓨터나 텔레비젼 등의 전자파를 흡수한다.

12. 화초를 심을때 숯가루를 뿌리면 화초가 잘 자란다. 화분위에 뿌리거나 숯덩이를 올려놓아도 화초가 잘 자란다.

13. 숯을 욕조물에 넣어 체내의 유해한 화학물질이 피부에서 배출된다. 아토피성 피부염과 피부미용에 좋고 신경통과 요통을 완화시킨다.

14. 숯가루를 탄 물로 관장을 하면 체내에 쌓인 숙변을 제거하고 변비를 예방한다.

15. 간장을 띄울 때 숯을 넣으면 잡균이 생기지 않는다.

16. 숯을 바구니에 담아 잠자리 옆에 두거나 침대밑에 두면 숙면과 피로회복 및 에너지 충전 효과가 크다. 숯가루를 잘 싸서 베개에 넣어두는 것도 좋다.

17. 습도를 조절, 가습기 역할을 해 준다.

단호박의 효능

단호박의 효능

단호박의 효능

1. 해독 작용을 한다.

단호박에는 비타민과 펙틴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 펙틴은 매우 좋은 흡착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펙틴의 흡착 작용은 체내 세균과 독소 및 기타 유해 물질을 해독합니다.

2. 소화를 돕고 위점막 보호 작용을 한다.

단호박에 들어 있는 펙틴 성분한 또 위점막을 보호해주어 거친 음식의 섭취로 인한 자극을 억제해주고 궤양의 아무는 것을 촉진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3. 당뇨병을 예방합니다.

단호박에는 코발트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 코발트 성분은 인체의 신진 대사를 원활하게 해주고, 조혈 기능을 촉진시킵니다.

4. 발암 물질을 제거합니다.

단호박은 발암 물질인 니트로소아민의 돌연변이하는 작용을 제거하는 함암 효능이 있습니다.

5. 성장 발육에 촉직 작용을 합니다.

단호박에 함유되어 있는 풍부한 아연은 인체 핵산 및 단백질의 합성에 도움을 줍니다. 또한 부신 피질 호르몬의 성분이 들어 있어서 인체 성장 발육에 좋습니다.

6. 임신 부종과 고혈압을 예방합니다.

단호박은 영양이 풍부합니다. 임신 주에 단호박을 섭취하면 태어의 뇌세포의 발육으르 촉진시켜줄 뿐만 아니라 활동력을 증가시켜주고, 임신 중 부종, 고혈압 등 임신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아침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9가지 이유

아침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9가지 이유

아침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9가지 이유

1. 뇌를 깨우는 아침밥

아침밥은 두뇌 회전에 필요한 당질을 공급하여 창의력, 기억력 등을 향상시켜줍니다. 아침밥을 거르면 점심때까지의 공복시간이 약 17시간이 되어 장시간 저혈당 상태에 있게 되고, 점심때는 과식을 하게 되면, 두뇌 회전에 필요한 당질이 부족하여 집중력과 사고력이 저하되고 무기력해집니다.

2. 비만 예방

밥에는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비만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특히 밥과 함께 해조류, 나물류 등 반찬을 섭취하게 되어 영양의 균형과 체지방을 조절해 비만이 줄어듭니다.

3. 위장병 예방

아침밥을 굶으면 점심이나 저녁을 과식하게 되어 영양 불균형과 장기적으로 영양 결핍을 초래하여, 위장병 등 소화기질환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4. 수명 연장

아침식사와 평균수명과의 상관관계에 관한 조사연구에 의하면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침식사를 꼭 하는 사람들보다 남자는 40%, 여자는 28%정도 사망률이 더 높습니다.

5. 집중력 향상

아침식사를 하는 사람들과 안하는 사람들의 활동력을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아침식사를 거르는 사람들이 집중력이 떨어지고 신경질적이며 문제해결 능력이 감소합니다.

6. 당뇨병 예방

당뇨병을 예방하거나 당뇨병 환자의 경우 빵 식사보다는 밥을 위주로 한 식사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되며 밥식을 하더라도 흰 쌀밥보다는 잡곡밥을, 죽이나 떡의 형태보다는 밥의 형태로 먹는 것이 좋습니다.

7. 영양 공급

우리들이 주로 밥을 지어 먹을 때 이용하는 백미의 영양 성분을 보면 당질(탄수화물) 73.1%, 단백질 9.2%, 지방 1.3%, 수분 15.5%, 조섬유 0.3%, 회분 0.6%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쌀에는 비타민 B1,B2, 비타민 E, 염산, 나아신 등 인체에 중요한 여러 가지 비타민을 공급하며 식이섬유의 공급원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8. 성인병 예방

밥은 염분이나 콜레스테롤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병의 예방에 유효합니다. 쌀에 있는 지방 성분은 동물성 지방성분인 포화지방산이 아닌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이 대부분이므로 고지혈증을 예방합니다

9. 대장암 예방

밥은 정장작용을 가진 식물섬유와 같은 작용을 하는 난소화성전분을 포함, 변비나 대장암의 예방에 유효합니다.

단군신화 2편

■ 단군신화 2편

■ 단군신화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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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는 고려시대 일연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려 있다. 단군왕검이 세운 조선이라는 나라를 그보다 한참 뒤에 위만이라는 인물이 세운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옛 고(古)라는 한자를 붙여 고조선이라고 불렀다. 또한,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세운 조선과도 구별하는 의미로 우리 민족이 처음 세운 나라를 고조선이라고 널리 부르게 되었다. 단군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 말고도 제왕운기(帝王韻紀) 동국통감(東國通鑑)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등 여러 역사책에도 전해지고 있다. 그중 삼국유사가 가장 오래된 책으로, 우리 역사책에 등장하는 단군왕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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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왕검의 이야기는 신화(神話)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볼 때는 조금 황당하고 과장된 부분이 많다. 어떻게 곰이 사람으로 변해 하느님의 아들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을 수 있으며, 또 단군은 어떻게 1908세까지 살 수 있었을까? 신화란 고대의 신이나 영웅, 어떤 민족이나 국가의 기원(起源)에 얽힌 신비로운 이야기를 말한다. 그렇지만 그 바탕에는 역사적 사실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단군왕검의 이야기를 역사적인 내용을 신화의 형태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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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실린 단군 이야기에서 하느님의 아들 환웅은 다른 지역에서 온 부족을, 곰과 호랑이는 각각 곰과 호랑이를 숭배(토테미즘)하던 부족을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환웅과 웅녀의 혼인은 서로 다른 부족 사이의 연합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본다. 또한 단군왕검이라는 이름에서 단군은 제사장을, 왕검은 통치자를 뜻하는 것이므로 제정일치(祭政一致:제사와 정치가 일치)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단군왕검이 1908세까지 살았다는 내용은 단군 한 사람의 수명이 아니라 고조선을 세우고 그 후손이 다스리며 이어간 왕조의 지속기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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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단군신화 말고도 건국 시조(始祖)와 관련된 탄생 설화(說話)가 많다. 알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고구려 주몽, 신라 박혁거세, 가야 김수로의 설화가 대표적이다. 이것 역시 건국 시조나 영웅에 관련된 탄생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신화적 요소를 가미하여 시조(始祖)에 대한 존엄과 신성함을 극대화 시켰다고 할 수 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단군신화 1편

■ 단군신화 1편

■ 단군신화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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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은 개천절(開天節)이다. 하늘(天)이 열린(開) 날이라는 뜻으로, 우리 민족 최초로 국가가 세워진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먼 옛날 하늘이 열리자 누군가가 지상으로 내려와 사람들에게 지혜를 가르치며 세상을 다스렸고, 또 누군가가 그 뒤를 이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를 세웠다는 ‘단군신화’로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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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하느님(天神)에게 \환웅\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환웅은 하느님에게 인간이 사는 세상에 내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저는 인간 세상에 내려가 인간을 이롭게 하며, 그들을 이끌고 싶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며 지상으로 내려가게 하였어요. 천부인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환웅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짐작된다. 환웅은 무리 3000명을 이끌고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비·구름·바람을 다스리는 관리(농경사회)를 거느리고,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 등에 관련된 지혜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며 세상을 다스렸다고 한다. 하늘에서 내려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려고 했던 존재는 바로 \환웅\이었고,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주변에 살던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환웅에게 찾아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말했다. "이것을 먹으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되게 해주겠노라." 곰과 호랑이는 쑥과 마늘을 받아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호랑이는 답답한 동굴 속에서 마늘과 쑥만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워 그만 뛰쳐나오고 말았다. 호랑이와 달리 곰은 꿋꿋하게 참아 삼칠일(三七日·21일) 만에 여자가 되어 \웅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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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웅녀는 혼인할 사람이 없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웅녀의 기도를 들은 환웅은 이를 딱하게 여겨 잠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하였고, 얼마 후 웅녀가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단군왕검(檀君王儉)이다. ‘단군’은 제사장을 뜻하고, ‘왕검’은 통치자를 뜻한다. 단군왕검은 자라서 평양성에 새로 도읍을 정하고,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를 세웠다. 나라 이름은 조선이라고 했다. 그 후 백악산 아사달로 도읍을 옮겨 1500여 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산신이 되었는데, 그때 나이가 1908세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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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마경장磨鏡匠

■ 마경장磨鏡匠

■ 마경장(磨鏡匠)

《연산군일기》 1504년(연산군10년) 1월 14일 기록에 의하면, 『마경장(磨鏡匠) 15명을 대령하라 했는데, 하지 않았다. 공조와 상의원 해당 관원을 국문하라.』는 내용이 있다. 마경장이 뭐하는 사람이기에 연산군은 15명이나 필요했을까?

조선 후기까지 거울은 우리가 지금 흔히 보는 유리 거울이 아닌, 청동이나 백동으로 만든 금속 거울이었다. 금속 거울은 쉽게 녹이 슬어 거울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녹을 벗기고 갈고 닦아 맑고 선명한 빛을 다시 살리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이를 담당했던 사람이 거울 가는 전문가 ‘마경장’이다. 낡고 녹슨 거울도 마경장의 손을 거치면 새것처럼 거듭났다.

마경장이 거울을 닦는 데 썼던 도구는 강려석, 중려석, 연일려석과 법유이다. 강려석은 거친 숫돌, 중려석은 중간 거칠기 숫돌, 연일려석은 포항 연일 특산의 고운 숫돌을 말한다. 법유는 들기름이다. 도구가 단출한 편이라 공정도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무조건 열심히 간다고 잘하는 게 아니다. 숫돌 세 종류를 고루 잘 써야 한다. 또 청동이나 백동 등 거울 재질에 맞춰 연마 강도도 잘 조절해야 한다. 여기에 들기름을 적당량 발라야 광택도 얻고 녹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작업 과정에 숙련도와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문성의 필요에 의해서 거울을 만드는 ‘경장(鏡匠)’에서 또 하나의 전문적 직업인 ‘마경장(磨鏡匠)’이 생기게 되었다. 연산군은 왜 많은 ‘마경장’이 필요했을까? ‘흥청망청’이라 불리울 정도로 많은 기녀들을 궁 안에 두었기 때문이다. 연산군을 모시는 기녀들이 치장하는데 그만큼 많은 거울이 필요했고, 그만큼 마경장도 많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경장의 수가 부족했다. 마경장이 부족해 거울이 불량했고, 기녀들이 제대로 꾸미지 못하자, 흥이 깨진 연산군은 마경장을 대령하지 않았다고 불호령을 내렸던 것이다.

마경장이 필요했던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조선 후기 문인이며 화가인 유명한 윤두서(1668년∼1715년)다. 윤두서의 자화상은 붓, 물감, 종이로 그렸지만,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재료가 하나 더 있다. 깨끗한 거울이다. 천재 화가는 자신의 머리카락 한 올과 수염 한 올까지도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질 좋은 거울이 필요했고, 솜씨 좋은 마경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경장의 덕분인지, 윤두서의 자화상은 보는 사람이 정시(正視)할 수조차 없으리만큼 화면 위에 박진감이 넘쳐흐르고 있어, 우리나라 초상화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수작(秀作)으로 꼽힌다. 윗부분이 생략된 탕건,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는 눈, 꼬리 부분이 치켜 올라간 눈썹, 잘 다듬어진 턱수염, 살찐 볼, 두툼한 입술에서 윤두서라는 인물의 성격과 옹골찬 기개를 읽을 수 있다.

마경장과 비슷한 직업으로 마광장(磨光匠)이 있다. 마광장은 옥새부터 악기까지 온갖 물건을 빛나게 하는 광택 전문가였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울어야 사는 여인, 곡비哭婢

■ 울어야 사는 여인, 곡비哭婢

■ 울어야 사는 여인, 곡비(哭婢)

곡비(哭婢)는 조선 시대 왕실이나 사대부집에서 상(喪)이 났을 때, 곡성(哭聲)이 끊어지지 않도록 상주를 대신하여 울어주고 삯을 받는 여성이었다. 대개 왕실의 국장(國葬)인 경우는 궁인(宮人)을, 사대부의 경우는 자기 집의 비(婢)를 시켰으나, 여의치 않을 때는 민가(民家)의 여자를 고용하기도 하였다. 요즘 예식장에서 하객 아르바이트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곡비(哭婢)는 소쩍새가 피를 토하듯 서럽게 우는 것처럼 울어야 한다. 상가집 빈객(賓客)의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엉엉 크게 울어야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유가(儒家)에서 전해지고 있는 예서(禮書)의 상례편(喪禮篇)에 따르면, 고인의 호흡이 멈췄을 때부터 애곡병용(哀哭倂用)하는 것을 상례의 시작으로 규정하고 있다. 애곡병용이란 부모님을 잃은 슬픔으로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서럽게 우는 것으로, 부모상과 조부모 상에는 애곡(哀哭: 아이고 아이고), 그 밖에는 어이곡(어이 어이)을 한다. 주자(朱子)의 가례(家禮)에도 망자가 숨을 거두면 애곡병용하고, 시신을 묶고 싸는 소렴(小殮) 대렴(大殮:입관)까지 대곡하고 빈소에 모신 후에야 대곡을 멈추라고 했다. 입관을 마친 후 빈소가 차려지면 상주는 굴건제복(屈巾祭服)으로 갖춰 입고, 고인의 영전에 아침저녁으로 제사를 올리며 무시곡(無時哭)으로 울어야 한다고 규정(規定) 해 놓았다. 효(孝)를 중시하는 우리 조상들은 부모님이 죽음에 이르면 곧 자식이 불효를 저질러 잘 봉양하지 못한 탓이며, 따라서 자식은 천하의 불효자가 된다고 믿었다. 특히 양반으로서 체면을 중히 여기던 시절, 겉치레의 관습 때문에 부모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식음을 전폐하는 등 때로는 상주가 몸이 상하는 경우도 빈번하여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대두되자, 국가 차원에서 장례식 때 곡성 하는 방법을 법으로 규정하여 반포할 정도였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상주들은 구슬프게 우는 것이 예의였다. 겉치레가 날로 심해지고 초상집에서는 상을 마치는 날까지 곡성이 그치지 않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하지만, 장례를 치르는 집안의 여성들이 장례식장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음식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곡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곡을 전문으로 하는 곡비(哭婢)를 고용하는 것이다. 당시 곡소리의 크기와 애절함은 상가(喪家)의 위세를 판단하는 척도였으므로 체면을 세우기 위해 매우 능숙한(?) 곡비를 채용하기도 했다. 곡비는 어린 여성부터 나이든 여성까지 다양했지만, 목소리가 크고 심금을 울리는 울음소리가 낭랑한 여인들이 연습을 거듭하여 곡비로 나서게 되었다. 처량하고 구성지게 곡성(哭聲)을 잘하는 여인들은 인근 고을까지 소문이 나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도 했다.

곡비로 나서는 여인들은 대체로 불우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돈을 받는다고 해도 장례식장에 드나들면서 억지로 우는 걸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왕릉王陵 3편

■ 왕릉王陵 3편

■ 왕릉(王陵) 3편

재위 시절 왕비 폐출과 재신임으로 정국을 소용돌이치게 했던 숙종. 그러나 사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왕비들은 그의 무덤 근처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 숙종과 반대로 생전에는 3명의 왕비가 있었지만 죽어서는 1명의 왕비와도 함께하지 못한 왕이 있다. 바로 중종이다. 지금의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에 부왕인 성종의 선릉 경역(境域) 내에 조성된 중종의 정릉. 중종은 3명의 왕비를 두었지만 사후에 그를 지켜주는 왕비는 한 명도 없다.

첫 왕비인 단경왕후 신씨가 신수근(연산군의 처남)의 딸이었다는 이유로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면서 폐위되는 바람에 사후에 함께 할 수 없었다. 계비로 맞은 장경왕후 윤씨와는 서삼릉의 희릉(禧陵)에 함께 묻혀 있었지만 사후에 이들은 중종의 두 번째 계비 문정왕후 때문에 갈라지게 되었다. 사후에 자신이 중종 곁에 묻히고자 했던 문정왕후는 이미 중종의 무덤 옆을 지키던 장경왕후(인종의 생모)를 떼놓으려는 작업에 들어갔다. 1542년 문정왕후는 봉은사 주지였던 보우와 의논하여 지금의 서삼릉에 있던 중종의 왕릉을 아버지 무덤인 선릉(성종의 무덤) 부근으로 전격적으로 옮겨버렸다.

그러나 새로 옮긴 중종의 무덤(정릉)은 명당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대가 낮아 침수가 잦아서 홍수 때는 재실(齋室)까지 물이 차기도 했다. 결국 문정왕후는 중종 곁에 묻히려는 소망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사후 무덤은 지금의 태릉에 조성되었다. 결과적으로 중종은 자신과 함께했던 왕비 3명 중 어느 누구와도 함께하지 못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버지 성종이 근처에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다고나 할까?

현재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사망자 모두는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현대판 왕릉인 셈이다.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임무 수행 제일 첫 행사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있다. 4·19혁명, 5·16, 12·12 군사쿠데타, 5·18 광주민주화항쟁 등 굴곡 많은 현대사의 주인공들이지만, 최고 집권자에 대한 마지막 예우는 비교적 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6.25전쟁 영웅이지만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된 백선엽장군의 현충원 안장에 대해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해방 후 절실했던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역사적 업보일 터이다. 또한, 앞으로 전직 대통령 중 국립현충원에 들어가지 못할 인물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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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王陵 2편

■ 왕릉王陵 2편

■ 왕릉(王陵) 2편

현재의 경기도 고양시의 서오릉(西五陵)은 서쪽에 있는 5개의 왕릉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곳에 조성된 왕릉은 예종의 창릉과 숙종의 명릉 2기이고, 추존된 왕 덕종(성종의 아버지)의 창릉까지 합해도 3기이다. 서오릉이라 한 것은 왕비의 능인 익릉(숙종의 첫째부인 인경왕후)과 홍릉(영조의 정비인 정성왕후)이 포함되어 5개의 능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숙종과 첫 번째 계비(繼妃)인 인현왕후가 나란히 묻혀 있을 뿐 아니라, 10세 때 혼인한 조강지처 인경왕후와 두 번째 계비 인원왕후의 무덤까지 함께 있다. 인현왕후는 숙종과 나란히 묻혀 있고, 유언을 남기면서까지 숙종 곁에 묻히고 싶어 했던 인원왕후는 숙종과 인현왕후의 무덤 좌측의 언덕 높은 곳에 조금은 초라한 모습으로 조성되어 있어 두 사람을 질투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한때는 숙종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았던 장희빈이 1970년 이곳에 왔다. 사후 270년 만이다. 원래 숙종에게 사약을 받고 죽은 장희빈의 무덤은 경기도 광주(오포면 문형리)에 거의 폐허로 자리하고 있었으나, 장희빈의 무덤이 발견되자 후세 사람들이 알아서 숙종 곁에 모시고 온 것이다. 비극적인 최후만큼이나 장희빈의 무덤은 서오릉 경역에 옮겨진 이후에도 봉분이나 석물들이 모두 초라하고 옹색하다. 그러나 어쨌든 3명의 정비(正妃)와 한 명의 후궁(장희빈도 한때는 왕비의 자리에 올랐던 여인이다) 등 4명의 사랑했던 여인과 죽어서도 함께한 숙종은 생전에 그러했듯이 죽어서도 가장 여복(女福)이 터진 행복한(?) 왕이 아닐까. 물론 재위 시절에는 이들 여인들과 얽힌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이 여러 차례 전개되기도 했지만….

여기에 숙종의 며느리인 정성왕후(영조의 정비)의 무덤인 홍릉(弘陵)이 숙종의 무덤 근처에 있다. 영조는 자신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면서 어렵게 왕비의 자리에 오른 정성왕후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와의 사이에는 후사가 없었고, 1757년 정성왕후는 사망하였다. 영조는 왕비의 무덤을 부친인 숙종의 무덤 근처에 만들고 옆 자리를 비워 두게 하였다. 훗날 자신도 죽으면 그 옆자리에 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1759년 66세의 영조는 15세의 신부(정순왕후)를 맞이했고, 1776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정조는 영조의 무덤을 동구릉 자리에 만들었다. 아직 살아 있는 왕대비 정순왕후(영조의 계비)를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영조의 무덤(원릉)은 동구릉 내에 조성되었고, 무덤 옆의 빈 자리는 1805년에 사망한 정순왕후의 차지가 되었다. 결국 애매하게 정비인 정성왕후의 무덤은 홀로 서오릉에 남겨진 셈이다. 죽어서도 시아버지 숙종과 네 명의 시어머니를 모시는 가혹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간암이 진행되었을 경우 느껴지는 통증

간암이 진행되었을 경우 느껴지는 통증

간암이 진행되었을 경우 느껴지는 통증

01. 오른쪽 윗배 통증

간에 대해 걱정이 많다면 오른쪽 윗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간이 위치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통증이 있거나 덩어리가 만져진다면 빨리 병원으로가 검진을 받는 편이 좋습니다.

02. 심한 피로감

무리를 하지 않았음에도 이유없이 피로감이 느껴진다면 간암을 의심해 볼 만 합니다.

03. 체중 감소, 소화불량

이유없이 체중이 감소하고 식사 후 소화가 잘되지 않을 때도 의심해야합니다.

04. 황달, 복수

간경변증 환자에게 자주 나오는 증상입니다. 이런 증상이 발견된다면 암이 많이 진행되었을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병원으로가 진단을 받으셔야 합니다.

✅ 간암 예방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간암 80%가 바이러스 때문입니다. B형이 70% C형이 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방백신 접종만 철저히 해도 상당 부분 예방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간암 환자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추가적으로 만성 간질환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금주, 금연을 통해 간의 회복을 돕고 비타민, 무기질을 충분히 섭취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스트레스, 흡연, 음주, 서구화된 식습관, 만성 간질환 보유자, 간병변 등 간암 발생 고위험군 등은 6개월마다 건강검진을 받아 볼 것을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