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4일 일요일

가갸날

■ 가갸날

■ 가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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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는 등 침략 야욕을 본격화했던 1907년, 주시경선생은 서울 남대문 상동교회 안에 있던 청년학원에서 국어강습소를 열었다. 조선의 청년들에게 우리말과 우리글을 가르치며 민족의식을 심어주겠다는 취지였다. 주시경선생은 청년학원뿐 아니라 이화, 숙명, 진명, 보성, 배재, 경신 등 20여 개의 학교에서 국어는 물론 우리 역사와 지리 등을 강의하며 젊은이들에게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일깨웠고, 국어 문법에 대한 책을 펴냈다. 또한, 1908년 8월 31일 돈의문 밖 봉원사에서 30여 명의 ‘국어강습소’ 졸업생과 국어 연구에 뜻이 있는 사람을 모아 우리말 연구를 위한 ‘국어연구학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조선어연구회’의 모체가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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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면서 국어 연구는 더욱 어려워졌다. ‘국어강습소’는 조선어강습원을 거쳐 한글배곧(한글을 배우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바꿨고, ‘국어연구학회’는 배달말글몯음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1913년 한글모로 이름을 바꾸면서 우리말을 뜻하는 한글이라는 표현이 쓰이기 시작했다. 국어라는 말이 더 이상 우리말이 아닌 일본어를 뜻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었다. 한민족의 글 또는 큰 글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인 한글이라는 말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도 주시경선생이었다. 1920년대 들어서면서 한글은 기존에 쓰이던 언문이란 말을 완전히 대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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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연구와 교육 분야에서 큰 기둥이었던 주시경선생이 안타깝게도 1914년 38세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한글모 활동도 1917년 이후 사실상 중단되었다. 그렇지만 한글을 연구하고 보급해야 한다는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1921년 주시경선생의 제자인 임경재, 최두선, 장지영 등이 중심이 되어 한글모를 계승하는 조선어연구회를 만들었다. 조선어연구회는 1926년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기념하여 오늘날의 한글날이 된 ‘가갸날’을 제정하는 데 앞장섰다. 조선왕조실록에 1446년 음력 9월 훈민정음이 반포됐다는 기록이 있어, 음력 9월의 마지막 날인 29일(양력 11월4일)을 가갸날로 정했고, 1928년에 한글날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글날을 오늘날같이 양력 10월 9일로 확정한 것은 1945년 광복이 되고 나서이다.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 ‘9월 상한(上澣)에 정인지가 썼다’는 기록이 나왔기 때문이다. ‘9월 상한’을 9월 상순의 끝 날인 음력 9월 10일로 잡고, 이를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인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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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연구회는 1931년에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1933년에는 현대 한글맞춤법의 뿌리가 되는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했다. 이후 표준말 제정, 외래어 표기법 통일 등의 연구도 계속되었다. 일제가 한글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일제는 1942년 한글 교육 및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위반했다며 조선어학회 학자 33명을 체포 및 투옥했다. 이를 ‘조선어학회 사건’이라고 부른다. 다행히 1945년 광복이 찾아오면서 많은 학자가 무사히 풀려났다. 조선어학회는 1949년 이름을 한글학회로 바꾸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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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조선어학회 사건

■ 조선어학회 사건

■ 조선어학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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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은 일제는 일본 헌병과 경찰을 우리 땅 곳곳에 배치해 한국인들을 무력으로 억누르는 무단통치를 실시했다. 3.1운동이 일어난 후 1920년대에는 한국 전통과 문화를 존중해주는 척하며 한국인을 다스리는 문화통치로 한반도를 지배했다. 그러나 1930년대가 되면서 미국·유럽에서 경제 대공황(제1차 세계대전 직후 과잉 생산과 실업자 증가 등으로 불거진 불경기)이 시작되자, 일본 역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일제는 전쟁을 통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1931년 만주를 침략하는 만주사변(滿洲事變)을 일으켰고, 더 나아가 1937년엔 중국을 상대로 전쟁(중일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한반도를 자기들 전쟁에 필요한 인력이나 물자를 공급하는 병참기지로 삼고, 한편으로는 한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뭉개 없애려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른바 민족문화 말살정책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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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하는 창씨개명(創氏改名:일본식 성을 새로 만드는 것)을 실시했고, 나라 곳곳에 일본의 조상신과 일본 황실을 섬기는 신사를 만들어 참배를 강요했다. 학교에서도 한국 역사 대신 일본 역사를 배우도록 했고 한국어 교육을 완전히 없애고 일본어만 사용하게 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한글로 발간되는 신문과 한글로 된 잡지도 전부 발간하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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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도 이어졌다. 조선어학회는 주시경선생 등을 중심으로 우리말과 우리글 연구와 보급을 위해 앞장섰던 민간 학술단체이다. 1908년 8월 국어연구학회라는 이름으로 창립됐다가 이후 배달말글돋음 한글모 조선어연구회 등을 거쳐 1931년 1월 조선어학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1926년엔 오늘날의 한글날인 가갸날을 제정했고, 잡지 한글을 만들고 조선어사전 편찬을 위해 애썼다. 장지영, 최현배, 이윤재, 이희승 등이 중심이 돼 활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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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 사건은 1942년 일어난 작은 사건 하나가 빌미가 됐다. 한 기차 안에서 함흥영생고등여학교 학생이던 박영옥이 친구들과 한국말을 쓰다가 조선인 경찰관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게 되었다. "너는 조선어 사용 금지도 모르나? 어째서 한국말을 쓴 거야?" 박영옥을 윽박지르던 경찰관은 박영옥이 서울의 정태진이라는 인물로부터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태진이란 인물을 뒷조사한 결과 그가 서울에서 ‘조선어사전’을 편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본 경찰은 정태진을 잡아다 ‘조선어학회’라는 모임이 순수 학술 연구 모임이 아니라 민족 독립운동을 하는 단체라는 \거짓\ 자백을 받아냈다. 일제는 조선어학회와 관련된 학자들을 33명이나 붙잡아 혹독하게 고문하고 28명을 감옥에 가두었다. 모진 고문과 고통스러운 감옥 생활 끝에 이윤재, 한징 등은 목숨을 잃었고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정태진 등은 실형을 받아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재판부는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 운동의 형태"라며 내란죄(內亂罪:폭동 등에 의해 국가 존립과 헌법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범죄)를 적용했다. 이처럼 일제가 조작한 ‘조선어학회 사건’ 이후 조선어학회는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가 1945년 광복 후 조직을 다시 정비해 활동을 시작했다. 1949년에는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조선어 사전\ 편찬 사업을 이어받아 1957년 6권으로 된 \큰사전\을 펴냄으로써 그 결실을 맺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비밀 프로젝트 훈민정음 2편

■ 비밀 프로젝트 훈민정음 2편

■ 비밀 프로젝트 훈민정음 2편

세종 28년에는 임금이 대간(臺諫:사간원, 사헌부)의 죄를 언문으로 써서 의금부와 승정원에 보이기도 한다. 관리를 뽑는 시험에 훈민정음도 치르게 했다. 이는 새로 만든 문자를 널리 보급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연산군은 훈민정음을 박해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연산군은 즉위 초에는 국정을 잘 운영하다가 생모의 죽음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안 뒤 파행적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연산군의 잘못을 훈민정음으로 기록한 투서가 발견되었다. 이 투서 사건으로 연산군 10년 7월 20일 언문을 배우거나 쓰지 못하게 했고, 이틀 후에는 언문으로 해석을 단 책을 불사르고 한어(漢語)를 언문으로 번역하는 것을 금했다. 개인적 감정이 언문에 대한 박해로 번진 것이다. 그런데 같은 해 12월 10일에는 병조 정랑 조계형에 명하여 언문으로 역서(曆書)를 번역하도록 했다. 공식적 일까지 언문 사용을 금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훈민정음은 중간 관리뿐만 아니라 임금이나 왕비, 왕대비 등도 사용했다. 숙종 15년 4월 24일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이 때 임금이 언문으로 된 유지(有旨)를 승정원에 내려 문자(文字)로 번역해서 《일기(日記)》에 추록하게 하였다. 도승지 유명견이 아뢰기를, "언문 유지를 승정원에 내린 것은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놀라게 할 뿐만이 아니라 뒷날 폐단이 있게 됩니다." 하니, 임금이 드디어 언문 유지를 삭제하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언문으로 된 유지를 썼다가 신하들의 반대로 언문 유지를 삭제한 것이다.

선조는 직접 언문으로 백성들에게 교서를 내렸는데, 이 교서는 임진왜란 때 선조가 왜군 포로로 잡힌 백성을 회유하기 위하여 쓴 것이다. 부득이 왜군에게 잡혀간 백성들의 죄는 묻지 않음은 물론, 왜군을 잡아오거나 왜군의 동태를 자세히 알아서 나오거나 포로가 된 우리 동포를 많이 데리고 나오면 누구든지 벼슬을 시키겠다는 등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인현왕후가 숙희공주에게 언문으로 위로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정조 18년 4월 10일에는 왕대비가 모든 신하들에게 언문 전교를 내리기도 한다. 광해군 때에 허균은 당시의 사회 문제를 소재로 훈민정음으로 《홍길동전》을 썼다. 이와 같이 훈민정음은 백성을 염두에 두고 만든 문자이기는 하지만, 창제 초기에는 중간 관리나 하급 관리 등이 사용하기도 했고, 임금이나 왕비· 왕대비 등의 계층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비밀 프로젝트 훈민정음 1편

■ 비밀 프로젝트 훈민정음 1편

■ 비밀 프로젝트 훈민정음 1편

1443년 12월, 세종대왕이 신하들을 불러서 다음과 같은 발표를 했다. "과인이 직접 글자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소. 간단한 글자이지만 수없이 많은 말을 표현할 수 있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글자)\라는 뜻을 담아서 이 글자의 이름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지었소."

이 발표에 신하들은 깜짝 놀랐다. 임금이 우리글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기 때문이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를 아주 비밀리에 진행했다. 세종은 우선 믿을 만한 신하에게 지시하여 우리 조상이 사용한 언어는 물론 중국·인도·몽골·티베트·일본 등 세계 각국의 언어에 대한 자료와 책들을 직접 구해오게 했다. 그리고 그 책들을 참고하여 눈병이 생길 정도로 열심히 글자를 연구하고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눈병이 심해져서 치료 차 지방으로 요양을 갔을 때도 글자 연구에 필요한 책과 자료를 가지고 갔을 정도였다. 건강이 나빠지자 세자인 향(훗날의 문종)에게 나랏일을 맡기면서도 한글 창제에 끝까지 힘을 쏟았다. 세종은 이토록 중요하게 여긴 한글 창제 작업을 왜 비밀리에 진행하였을까?

세종이 훈민정음을 발표하자, 집현전 부제학이던 최만리 등은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하는 상소를 잇달아 올렸다. "우리 조선은 예로부터 중국의 예법과 제도를 본받아 왔고, 이미 한자를 널리 쓰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중국에서 이를 알게 된다면 중국에 비난을 당하여 부끄러울 것입니다." "한자와 다른 글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무리는 몽골, 여진, 일본 등 오랑캐들뿐입니다. 우리가 이들처럼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쓴다면 중국을 따르는 것을 버리고 스스로 오랑캐와 같아지는 것입니다." 훈민정음은 간단하고 배우기가 쉬운 문자였기 때문에, 백성이 글자를 알게 되어 나라의 법과 제도를 업신여기고, 학문을 공부한 선비들을 함부로 대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양반들도 있었다. 세종대왕이 우리말에 어울리는 우리 글자를 왜 비밀리에 만들려고 했는지 그 이유가 짐작될 것이다. 상소에서 보듯, 이에 대한 반발이 몹시 거셀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이처럼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반포한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세종대왕은 농사를 잘 짓는 방법, 시간과 날짜를 제대로 세는 방법, 간단한 병을 치료하는 법, 도덕과 예절을 잘 지키는 법 등을 책으로 엮어서 백성이 이를 배우고 익힘으로써 생활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책을 만들어도 백성이 글자를 모르면 읽을 수가 없으면 무용지물인 것이다. 또한 백성이 글자를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해도 관아에 제대로 호소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토지나 재산을 못된 관리나 권력자에게 억울하게 빼앗기는 일도 많았다. 이를 항상 안타깝게 여겼던 세종대왕은 백성 누구나 글자를 읽고 쓸 줄 알게 되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쉽고 간단하게 익히고 쓸 수 있는 글자인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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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숭례문

■ 병든 숭례문

■ 병든 숭례문

국보 제1호 숭례문이 2008년 2월 10일에 불에 타 제 모습을 잃은 지 벌써 15여년이 훌쩍 지났다. 5년에 걸친 힘든 복원 공사를 거쳐 제 모습을 찾는 듯 했으나, 몇 달 만에 곳곳에서 서까래단청이 벗겨지고 목재가 갈라지고 뒤틀리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숭례문 복원에 걸린 기간은 5년 2개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문화재 복원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긴 시간도 아니다. 복원에 쓰이는 목재는 7년이나 8년 이상 충분히 말린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것만 보더라도 숭례문을 복원하는 작업은 전통 공법으로 천천히 긴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권은 자신의 정권 내 공사를 끝마치려는 욕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로 인한 조급함 때문이었는지, 공사를 무리하게 감행하여 복원을 마무리하였다. 그 결과, 복원된 숭례문은 수많은 잡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일어났던 문제는 숭례문의 단청이었다. 단청이 갈라져 벗겨지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었다. 원인은 단청 위에 코팅 목적으로 바르는 동유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나무에 들기름과 합성수지를 바르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부득불 전통기법을 고수하겠다며 동유를 갖다 발랐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작성한 동유 실험보고서를 보면, 분명히 단청위에 동유를 바르면 안료가 갈라지거나 벗겨지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되어 있었다고 한다. 훼손될 걸 뻔히 알면서도 부득불 강행한 것이다. 또한, 현판은 변색되어 갈라지고, 곳곳에 물은 새고 지붕에 얹은 기와는 깨진 곳도 있었다. 거기다가 가장 어처구니가 없는 일은 숭례문 복원에 쓰였던 나무가 우리나라에서 공급된 금강송이 아니라, 그 금강송을 빼돌리고 러시아에서 수입된 나무를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말린 나무라도 사용했더라면 그나마 괜찮았을 터인데, 제대로 마르지도 않은 나무를 기둥이랍시고 세워놓았으니 뒤틀리고 쩍쩍 갈라지고 말았다. 앞으로 더 갈라질 수도 있다고 하니, 숭례문은 총체적 부실공사로 깊은 병이 들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최소 20년은 지나서 일어나야 하는 일들이 1년 만에 벌어진 것이라고 한다. 정말 기가 차고 안타까운 일이다.

또 하나, 석굴암도 위험하다. 신라 경덕왕 때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세운 석굴암은 조선시대의 억불(抑佛)정책으로 폐사되어 황폐해져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 우연히 길을 지나던 우체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오랜 세월 돌보지 않은 석굴암은 풍화현상으로 훼손이 심했다. 일제는 자기들이 복원을 하겠다며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리가 현재 볼 수 있는 본존불 하나만을 남기고 석굴암에 있던 석탑과 불상은 모두 해체되고 사라져 버렸다. 또한, 석굴암을 둘러쌓고 있는 지붕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는 바람에 문제가 발생했다.

석굴암은 감로수(甘露水)라 하여 불상 아래로 흐르는 물을 놔둠으로서 온도와 습도 유지가 가능했는데, 자연스런 공기 흐름이 막히게 되자, 습기가 차게 된 것이다. 여름에 얼음물이 담긴 컵을 놔두면 컵 표면에 결로현상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석굴함의 놀라운 자연적이고 과학적인 건축공법을 이해하지 못한 채 비가 새서 습기가 차는 것이라 하여 1960년대에는 콘크리트 위에 콘크리트를 한 겹 더 덧씌우는 공사를 하였다. 잘못된 보수로 인해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생기자, 그 해결책으로 석굴암 내 온도를 에어컨디셔너로 유지하고 있지만, 이로 인한 미세한 진동은 알게 모르게 석굴암에 영향을 주어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귀중한 우리 문화재 석굴암을 앞으로 볼 수 없게 되는 날이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주방 풍수인테리어 기법 ㉕

건강과 재물 운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주방 풍수인테리어 기법으로, 주방의\xa0전자제품 중 냉장고는 가능하면 동쪽에 위치하고, 전자레인지는 북쪽에 위치하는 것이 좋다.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붙어 있거나 마주 보게 배치하게 될 경우\xa0화기(火氣)와 냉기(冷氣)로 인하여, 불필요한 지출이 많이 발생하고, 가스레인지와 개수대도 같은 원리이다.

주방의 구조상 같은 방향으로 놓아야 하는 경우에는 관엽식물을 놓아두면 조금은 좋다.

소형 칼은 칼집에 넣어두어 보관하여야 운이 상승한다.

조미료 통이 널려 있다면, 작은 바구니나 선반에 넣어 보이지 않게 보관하여야 운이 상승한다.

또한 요리용 술이나 간장 및 액체 조미료는 물(水)의 기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반 안에 보관한다.

벽에 후라이팬, 국자 및 주방 용품을 걸어 놓지 말고 보이지 않는 장소에 보관하여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것이 운 상승에 도움이 된다.

♣ IFSA 국제풍수협회 선정 2018 대한민국 최고 풍수인테리어 전문가 / 문의 : 010-2432-5522

우리말 나들이

■ 우리말 나들이

■ 우리말 나들이

1. 심금을 울리다

석가모니 주변에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제자들이 많이 모여 들었는데, ‘스로오나’도 그 중 하나였다. 스로오나는 몸과 마음을 다해 누구보다 열심히 수행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깨달음의 길이 보이지 않자 조바심이 나고 지치기 시작했다. 그런 스로오나에게 석가모니가 다가와 거문고를 비유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거문고의 줄이 지나치게 팽팽하거나 느슨하면 고운 소리를 낼 수 없는 것처럼, 수행 역시 너무 강하거나 약하지 않도록 알맞게 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부처님은 마음을 거문고에 비유해 제자에게 깨달음의 길을 일러 준 것이다. 무언가에 자극을 받아 마음이 움직일 때 ‘심금(心琴)을 울린다’고 하는데 ‘심금’이란 마음의 거문고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마음의 거문고는 바로 이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금을 울린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감동(感動)’이라는 말도 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감격(感激)’은 크게 감동했을 때 쓰는 말이다.

2. 짬밥

‘짬밥’은 군대에서 유래된 말로 보인다. 어원을 ‘잔반(殘飯)’으로 보는데, ‘잔반’은 먹고 남은 밥이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에게 남은 밥을 먹였을 리는 없고, 아마도 과거 부실한 군대밥을 비꼬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잔반’은 빨리 발음하면 ‘잠반’이 되는데, 첫소리를 되게 발음하는 경향 때문에 ‘짬반’이 되고, ‘반’은 한글 ‘밥’으로 바뀐 것이다. ‘짬밥’이 된소리 ‘짬빱’으로 변형되고, ‘짬’이 다시 분리돼 ‘짬통, 짬당번’ 등으로까지 용법이 확대되게 되었다. 군대에서 만들어진 ‘짬밥’은 군대 밖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짬밥을 많이 먹었다는 것은 그만큼 군대생활을 오래 했다는 것이고, 그에 비례해 계급이 높고 경험이 많다는 것이다. 사회에서도 ‘짬밥’ 혹은 ‘짬밥 수’는 경험과 경력,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지위를 뜻한다. 이때의 ‘짬밥’은 이제 원래의 의미인 ‘남은 음식(잔반)’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3. 선술집

‘선술집’은 ‘선술’과 ‘집’이 결합된 형이다. ‘선’은 동사 ‘서다(立)’의 관형사형이고, ‘술’은 ‘酒’이므로 ‘선술’은 ‘서서 먹는 술’로 해석된다. ‘서서 먹는 술(선술)’을 파는 집이 바로 ‘선술집’이다. ‘선술집’에서는 백 잔을 마셔도 꼭 서서 마시고 앉지 못하는 불문율이 있었다고 한다. 앉아서 마시기라도 하면 다른 패의 술꾼들이 버르장머리 없다고 시비를 걸어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고 한다. 세월 따라 ‘선술집’ 형태는 달라졌지만, 서서 먹는 방식만은 그대로 이어져, 1960년대까지만 해도 곳곳에 술청 앞이나 드럼통을 사이에 두고 삼삼오오 서서 술을 마시는 싸구려 ‘선술집’이 많았다고 한다. 요즘은 꼭 서서 먹지 않더라도 저렴하고 서민적인 술집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선술집’이라는 말은 옛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고, 민태원 소설 ‘부평초’(1920년)에서 처음 발견된다. 그래서 이 말의 생성 시기를 1910년으로 잡기도 하나 그닥 미더운 근거는 없다. 사전으로는 ‘조선어사전’(1938년)에 처음 올라 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한약보다 좋은 무료 건강 비법

한약보다 좋은 무료 건강 비법

한약보다 좋은 무료 건강 비법

1. 머리를 두들겨라!

손가락 끝으로 약간 아플 정도로 머리 이곳 저곳을 두들기는 겁니다. 두피가 자극되어 머리도 맑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집니다. 빠지던 머리카락이 새로 생겨나고 스폰지 머리(두피가 떠 있는 상태)가 치유됩니다. 머리카락에 산소와 영양분이 원활히 공급되므로 윤기가 흐르며 아름답게 됩니다.

2. 눈알을 사방으로 자주 움직여라!

눈알을 좌우로 20번, 상하로 20번 대각선으로 20번, 시계방향으로 회전하여 20번, 시계 반대방향으로 20번 , 손을 부벼서 눈동자를 지그시 눌렀다가 번쩍 뜨기를 20번 등을 하면시력이 좋아지고 실제로 안경이 필요 없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3. 콧구멍을 벌려 심호흡하라!

특별히 맑은 공기를 심호흡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알렉산드 로렌박사가 조사해보니 정신 질환자의 대부분이 가슴호흡만 하고 심호흡을 하지 않더라는 겁니다 폐세포는 페록시즘이란 해독기관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각종 유해물질을 잘 처리합니다. 그러므로 심호흡을 하면 각종 유해 물질을 배출하여 건강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머리가 맑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집니다. 노인들은 치매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4. 혀를 자꾸 입안에서 굴리라!

혀를 가지고 입천장도 핥고, 입 밖으로 뺏다 넣었다 하면서 뱅뱅 돌리고 혀 운동을 하는 겁니다. 침은 회춘 비타민입니다. 침은 옥수(玉水)라 했습니다 . 평소 식사 때도 충분히 꼭꼭 씹어 먹으면 충분한 침이 들어가 소화가 잘 되어 건강에 좋습니다. 그러나 가래 같은 탁한 것은 버려야 합니다.

5. 잇몸을 맛사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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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6개로 잇몸을 눌러서 비비며 맛사지 합니다. 그리고 치아를 딱딱딱 위아래를 부딪혀 주는 것이 치아를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치아를 단련시키는 이 방법을 고치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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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귀를 당기고 부비고 때리라!

귀를 잡고 당기고 비틀고 부비고 때리는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식욕을 억제하여 비만을 예방하거나 치료해 줍니다. 그리고 깊은 수면을 취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이것은 신장, 비뇨, 생식기 계통의 기능이 활성화되도록 돕습니다.

7. 얼굴을 자주 두드려라!

손바닥으로 좀 아플 정도로 얼굴을 자주 두드리면 혈관계통이 활성화되어 혈압, 동맥경화 등의 치료를 돕게 되며, 혈색이 좋아져 아름다운 얼굴이 됩니다. 허리가 자주 아파서 못견디는 분들은 코 바로 밑의 인중( 홈이 파진 곳)을 두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고 또 자주 문지르면 효과가 있습니다.

8. 어깨와 등을 맛사지 하라!

어깨와 등은 스스로 하기 어려우니 가족이나 친구끼리 서로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머리 뒤쪽과 어깨는 스스로 지그시 누르고 엄지와 다른 손까락으로 움켜잡으며 지그시 누르는지압을 하면 피로가 풀리며 중풍을 예방하고 우리 몸의 각 장기들을 강화시켜 줍니다.

9. 배와 팔 다리를 두들겨라!

배와 팔 다리를 약간 아플 정도로 자주 두들기면 건강에 아주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소화가 잘 되며 피곤이 풀리고 새로운 활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양 무릎을 두손으로 두둘기면 관절에 아주 좋습니다.

10. 손바닥을 부딪쳐 박수를 쳐라!

소리가 나는 것이 싫으면 한쪽 손은 주먹을 쥐고 손바닥을 교대로 치면 됩니다. 손바닥을 힘 있게 치면 한 번 칠 때마다 약 4천개의 건강한 세포들이 생겨납니다.

11. 발을 자극하라!

발바닥을 주먹으로 치고 발가락을 전후좌우로 돌리며 비틀고, 발까락 사이를 지그시 약간 아플 정도로 눌러 맛사지를 하며 발목을돌려 운동하는 것은 심신의 피로를 풀고 활력을 주는 데 좋습니다. 발바닥을 엄지손가락으로 지그시 이곳 저곳을 눌러주면 숙면을 취하게 됩니다.

함께 먹으면 효과 만점인 음식 궁합

함께 먹으면 효과 만점인 음식 궁합

함께 먹으면 효과 만점인 음식 궁합

1. 생선과 마늘

심장 건강을 위해 고기 대신 생선을 선택할 수 있다. 이때 마늘을 곁들이면 일부 암을 예방할 뿐 아니라 자연적인 면역력 촉진제가 되기도 한다. 마늘은 나쁜 콜레스테롤(LDL)의 증가를 억제하고 심장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2. 강황과 후추

카레에 주로 쓰이는 황금색 양념인 강황에는 당뇨 예방 등 몇 가지 장점이 있다. 특히 후추와 함께 쓰면 생물학적 이점이 더 충분히 발휘된다.

3. 구운 고기와 로즈마리

구운 고기나 스테이크를 먹을 경우 발암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로즈마리를 곁들이면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양념에 있는 자연적인 항산화 성분이 요리되는 동안 발암물질의 형성을 막아준다는 것이다. 더욱이 고기의 맛을 덜하지 않고 냄새가 강하지 않은 로즈마리 추출물을 살짝 뿌리기만 해도 효과가 있다.

4. 시금치와 레몬

샐러드에 감귤류를 살짝 뿌리면 먹음직스럽고 잎채소들은 영양의 보고로 변한다. 시금치, 케일, 근대 등 식물에 있는 철분은 비타민C와 함께 먹으면 더 흡수가 잘 된다. 레몬주스나 딸기 조금, 약간의 피망을 더하면 식물성 철분이 생선이나 고기에 있는 형태로 변한다. 그것은 인체의 면역력을 향상시키고 기운을 북돋아준다.

5. 브로콜리와 토마토

라이코펜이 풍부한 토마토와 브로콜리를 함께 먹으면 전립샘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6. 사과와 포도

사과나 딸기류에 있는 항산화물질인 케르세틴이라는 플라보노이드는 호흡장애와 특정 암을 퇴치하고 기억력을 좋게 해준다. 특히 다른 플라보노이드인 카테킨을 함께 섭취하면 혈전을 방지하고 심장 건강을 지켜준다. 포도에 있는 카테킨은 적포도주, 초콜릿, 녹차에도 있다.

오자차 효능 5가지

오자차 효능 5가지

오자차 효능 5가지

1. 구기자효능

구기자는 오래 복용하면 전신이 상쾌하고 더위와 추위를 모르는 젊음을 찾는다고 전해진다. 구기자에 함유돼 있는 베타인은 몸 속에 있는 콜레스테롤을 줄여주면서 간세포 내 지방 침식을 억제하면서 지방간 치료 및 예방과 새로운 간세포의 기능을 촉진하고 간기능을 강화하면서 눈을 밝게하고 피로를 풀어준다.

2. 오미자 효능

오미자에는 심폐기능을 강하게 하고 호흡을 세게 해주는 강장작용이 있어 몸이 허약하거나 무기력증, 피로회복, 심근쇠약, 동맥경화, 건망증, 불면증 등에도 효능이 있다. 오미자에는 중추 신경계를 자극해 신경을 이완시키고 머리를 맑게 해줘 집중도를 높이는 효능이 있다.

3. 사상자 효능

콩팥을 덥히고 성기능을 도우며 풍을 제거하고 습한 것을 건조하게 하며 살충하는 효능이 있다. 남자 음위, 음낭습양, 여자의 대하와 음부 소양증, 자궁한냉으로 인한 불임증, 풍습비통, 개선습창을 고친다.

4. 토사자효능

뼈를 튼튼하게 하고 허리 힘을 세게 하며 신장 기능이 허약하여 허리와 무릎이 시리고 아픈 것을 치료한다. 또 오줌소태와 소변을 잘 보지 못하는 것, 설사를 낫게 한다. 간을 보하여 눈을 밝게 하고 태아를 보호하는 작용도 있다.

5. 복분자효능

복분자에게는 리페놀이라는 성분이 함유돼 항암 기능을 갖고 있고, 혈액순환을 촉진시킨다. 성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 정력 감퇴 및 조루증 해결에도 탁월하다는 평가. 탈모를 예방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밖에숙취해소, 간 기능 강화, 피부노화방지, 시력 증진 등의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