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일 일요일

백천귀해百川歸海 - 모든 하천은 바다로 돌아간다.

백천귀해百川歸海 - 모든 하천은 바다로 돌아간다.

백천귀해(百川歸海) - 모든 하천은 바다로 돌아간다.

일백 백(白/1) 내 천(巛/0) 돌아갈 귀(止/14) 바다 해(氵/7)

조그만 냇물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 바다가 될 수 있는 것은 모든 강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모든 강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든 강보다 낮은 쪽에 위치하여 차별을 하지 않고 강물을 받는다. 같은 의미의 李斯(이사)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秦(진)나라에 모여든 각국 인재를 축출하려 하자 諫逐客書(간축객서)로 부당함을 절절이 상소한다. 태산이 작은 흙도 사양 않고 받아들여 이뤄졌다는 泰山不辭土壤(태산불사토양)의 대구로, 강과 바다는 개울물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이루어졌다는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가 그것이다.

모든 하천(百川)은 바다로 돌아간다(歸海)는 이 성어도 물론 같은 뜻을 가졌다. 여기서의 百(백)은 숫자 100을 의미한다기보다 ‘많다’, ‘모든’의 뜻을 갖는다. 百川入海(백천입해), 海納百川(해납백천)라 해도 뜻이 같고, 처음에 가는 길은 서로 다르지만 나중에 도달하는 곳은 같다는 殊途同歸(수도동귀)도 의미가 통한다. 강물이 수도 없이 꺾여 흐르더라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는 萬折必東(만절필동)이란 말을 대사가 사용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원래의 뜻은 그렇더라도 충신의 절개를 비유했고 특히 조선시대 중국황제를 위한 충절을 가리켰기에 같이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百川(백천)의 성어는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저술한 ‘淮南子(회남자)’에 처음 사용됐다. 이 책은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의 손자인 유안이 전국의 빈객과 방술가의 지혜를 빌려 제자백가를 아우른 방대한 백과사전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관습이더라도 시의에 맞지 않으면 따르기가 어려우므로, 성인은 법을 때에 따라 변화시키고 풍속이나 법도도 적당함을 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어진다. 모든 개울은 근원을 달리 했으나 바다로 모이게 되고, 모든 사람은 직업이 다르지만 한결같이 잘 하도록 힘쓴다. 모든 일에 원칙만 찾고 순리로 받아들일 융통성이 없다면 일을 원만하게 이룰 수 없다는 이야기다.

办法 bànfǎ

办法 bànfǎ

办法 bànfǎ

1. 방법 2. 수단 3. 방식 4. 조치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 오륜의 하나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 오륜의 하나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 오륜의 하나

벗 붕(月/4) 벗 우(又/2) 있을 유(月/2) 믿을 신(亻/7)

朋(붕)이나 友(우) 모두 벗을 말한다. 중국에서 老朋友(노붕우, 라오펑유)는 오랜 친구를 뜻한다. 우리나라를 이렇게 불러놓고는 중국이 사드 등으로 온갖 졸렬한 짓거리를 하고 겉으로는 태연한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말이다. 모두 벗을 뜻해도 朋友(붕우)는 차이가 있다. 論語(논어) 첫 머리에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는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의 朋(붕)은 한 스승 아래서 공부한 동문을 뜻한다고 한다. 이에 반해 友(우)는 뜻이 같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다. 朋情(붕정)이란 말은 없고 友情(우정)이 있듯이 아무래도 동문보다는 故友(고우)가 더 가까운 벗이다.

어떤 벗이든 벗 사이에(朋友)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有信)는 이 성어는 三綱五倫(삼강오륜)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인륜의 기준으로 삼아 온 이것은 孔孟(공맹)의 학설에 기초하여 前漢(전한)의 유학자 董仲舒(동중서)가 논한 三綱五常說(삼강오상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삼강은 임금과 신하, 부자,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인 君爲臣綱(군위신강), 父爲子綱(부위자강), 夫爲婦綱(부위부강)이다. 붕우유신은 父子有親(부자유친), 君臣有義(군신유의), 夫婦有別(부부유별), 長幼有序(장유유서)의 뒤에 오는 오륜에 들어간다. 신라 圓光(원광) 법사의 五戒(오계) 중 交友以信(교우이신)과 통하는 말이다.

조선 世宗(세종)대왕 때 三綱行實圖(삼강행실도)를 편찬한 뒤 이에 관한 여러 종류의 책이 발간되었다. 中宗(중종)때 학자 朴世茂(박세무)가 펴낸 ‘童蒙先習(동몽선습)’은 학동들이 배우는 초급교재로 오륜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붕우편에서 논어를 인용하여 정직하고(友直/ 우직), 성실하며(友諒/ 우량), 견문이 많은 (友多聞/ 우다문) 친구를 사귀면 유익할 것이라 했다. 또 벗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어버이에게 순종하지 못한다면 벗들에게서도 믿음을 얻지 못한다.

朱子(주자)가 교열했다는 小學(소학)이 너무 어려워 우리나라에서 쉽게 풀어 쓴 ‘四字小學(사자소학)’에도 ‘사람이 귀한 이유는 오륜과 삼강 때문(人所以貴 以其倫綱/ 인소이귀 이기윤강)’이라고 했다.

전호후랑前虎後狼 -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이리, 재앙이 끝없이 닥치다.

전호후랑前虎後狼 -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이리, 재앙이 끝없이 닥치다.

전호후랑(前虎後狼) -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이리, 재앙이 끝없이 닥치다.

앞 전(刂/7) 범 호(虍/2) 뒤 후(彳/6) 이리 랑(犭/7)

한 가지 화를 피하려다 더 큰 화를 당할 때 비유적으로 ‘여우 피해서 호랑이를 만났다’거나 ‘귀신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다’라는 속담을 쓴다. 사나운 늑대, 이리를 만나 전력으로 도망치는데 앞에는 더 무서운 호랑이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진퇴양난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호랑이를 막으려고 전력을 다해 앞문을 막고 있는데(前虎)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오면(後狼) 살아날 길이 없다. 나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일컫는 표현이다. 구덩이를 피하려다 우물에 빠지는 避坎落井(피감낙정)이나 노루를 피하다 호랑이를 만난다는 避麞逢虎(피장봉호, 麞은 노루 장)도 마찬가지다.

後漢(후한) 초기 환관의 폐해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던 때의 이야기다. 3대 章帝(장제)가 죽은 뒤 열 살의 어린 나이로 和帝(화제)가 제위에 올랐다. 임금이 어린 나이에 등극하면 외척이나 환관이 득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화제가 꼭 그런 경우로 이름만 황제였다. 장제의 황후인 竇太后(두태후)와 오빠 竇玄(두현)이 정권을 잡아 좌지우지하게 된 뒤로는 허수아비와 다름없는 화제를 제거하고 직접 왕위에 오르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이 사실을 측근을 통해 알게 된 화제는 환관 鄭衆(정중)을 시켜 두씨 일족을 체포하도록 했고 그 직전 두현은 자살했다. 큰 우환을 없앴다고 왕권이 강화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환관 정중이 권력을 쥐고 정사에 관여하기 시작해 여기서 싹튼 폐해가 후한을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

元(원)나라 문인 趙雪航(조설항)이란 사람이 지은 ‘評史(평사)’에 이 당시를 묘사한 표현이 나온다. ‘두씨가 제거되었지만 환관의 권세가 이로부터 성하게 되었다. 속담에 말하기를 앞문의 호랑이를 막으니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온다고 했다.

만사형통萬事亨通 -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다.

만사형통萬事亨通 -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다.

만사형통(萬事亨通) -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다.

일만 만(艹/9) 일 사(亅/7) 형통할 형(亠/5) 통할 통(辶/7)

모든 일이 뜻대로 생각대로 잘 되어 가는 것이 亨通(형통)이다. 亨(형)은 제사라는 뜻도 있어 조상신을 잘 모시면 일이 잘 풀린다는 뜻이 나왔다고 한다. 여기에 온갖 일, 여러 가지 일 萬事(만사)가 붙어 강조하며 바라는 대로 두루두루 잘 되어가는 것을 뜻했다. 일이 자기 뜻과 같이 萬事如意(만사여의)하다고 萬事太平(만사태평)으로 萬事無心(만사무심)하면 자칫 萬事瓦解(만사와해)되어 萬事休矣(만사휴의)로 헛수고가 된다. 인간의 길흉화복은 돌고 돈다는 의미의 ‘인간 만사는 새옹지마’라는 속담과 같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도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실패하기 쉬우니 조심하라는 뜻도 담겼다.

‘그가 손대는 일마다 만사형통이다‘, ’새해에는 하시는 일마다 만사형통하시길‘. 이런 식으로 평소에 자주 써 익은 말이 정작 유래를 보면 쉽지 않다. 유교 三經(삼경)의 하나이자 占卜(점복)의 원전이라 하는 ’易經(역경)‘에 나온다. 하늘은 양, 땅은 음, 해는 양, 달은 음 등 천지만물은 음과 양으로 되어 있는데 그 위치나 생태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관찰하여 八卦(팔괘)와 六十四卦(육십사괘)를 만들었다고 한다. 亨(형)은 64괘중 첫 번째 乾卦(건괘)에 나오는 四德(사덕) 중 하나이다.

복잡하지만 조금 더 옮겨보면 하늘이 갖추고 있는 네 가지 덕이 사덕으로 바로 元亨利貞(원형이정)이다. 元(원)은 만물이 시작되는 때로 봄에 속하며 仁(인)으로 이루어지고, 亨(형)은 만물이 성장하는 때로 여름에 속하며 禮(예)로서 실천하는 것이라 했다. 利(이)는 만물이 완수되는 때로 義(의)로 행해지고, 貞(정)은 만물이 완성되어 智(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건괘는 왕성하고 정력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건은 굳세다(健)는 뜻으로 자연으로 보면 하늘이 움직이는 것이고, 사람으로 보면 운이 뻗어가는 것이며, 사업으로 보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는 시점이다. 형통하다는 말은 여기서 나와 어떤 일을 하든지 뜻대로 이루어져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것을 뜻하게 됐다.

상저옥배象著玉杯 - 상아 젓가락과 옥 술잔, 하찮은 낭비가 사치로 이어짐

상저옥배象著玉杯 - 상아 젓가락과 옥 술잔, 하찮은 낭비가 사치로 이어짐

상저옥배(象著玉杯) - 상아 젓가락과 옥 술잔, 하찮은 낭비가 사치로 이어짐

코끼리 상(豕/5) 나타날 저(艹/9) 구슬 옥(玉/0) 잔 배(木/4)

‘산호 기둥에 호박 주추다’란 말이 있다. 귀한 珊瑚(산호)로 기둥을 세우고 보석 琥珀(호박)으로 주춧돌을 세웠으니 호화의 극치다. 아름다운 비단 옷에 흰 쌀밥, 요즘은 크게 사치는 아닌데도 錦衣玉食(금의옥식)도 호화생활을 뜻했다. 唐(당)의 杜牧(두목)이 阿房宮(아방궁)의 秦始皇(진시황) 생활을 묘사한 것이 있다. ‘귀중한 정이 가마솥 같고, 금은 흙덩이에 진주는 조약돌 취급(鼎鐺玉石 金塊珠礫/ 정쟁옥석 금괴주력)’했으니 굴러다니는 것이 보석이었다. 鐺은 솥 쟁, 礫은 조약돌 력.

상아로 만든 젓가락(象著)과 옥으로 만든 술잔(玉杯)도 옛날에는 사치품이었다. 이것을 태연히 만들게 하고 사용한 사람이 중국 商(상)나라 紂王(주왕, 紂는 주임금 주)이라면 그럴 듯하다. 앞서 夏(하)나라 桀王(걸왕)과 함께 桀紂(걸주)로 불리는 폭군의 대명사다. 妲己(달기, 妲은 여자이름 달)라는 요녀에 빠져 酒池肉林(주지육림)에서 질탕하게 향락을 즐겼고, 간하는 충신들에겐 숯불로 달군 구리기둥을 건너가게 한 炮烙之刑(포락지형)으로 죽였으니 악명으로 걸왕을 능가했다.

주왕이 상아로 젓가락을 만들게 하자 箕子(기자)가 걱정했다. 기자는 주왕의 숙부인데 학정에 남아나는 사람이 없는 중에 나라의 운명을 생각했다. ‘상아 젓가락을 쓰게 되면 토기를 버리고 무소뿔이나 옥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할 것이다. 다음은 거기에 맞게 진귀한 음식을 담으려 하고, 그 다음은 먹을 때의 복장, 그 다음은 호화스런 궁전을 생각할 것이다. 점차로 사치가 도를 넘을 것이기 때문에 상아 젓가락이 단초가 되어 국가의 재정을 고갈시키고 멸망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 뒤 주왕의 사치와 포학이 지나쳐 나라는 망했다. ‘韓非子(한비자)’의 喩老(유로)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 조금 잘 살게 되면 지난 세월의 고생은 잊고 싶다. 그렇다고 물 쓰듯이 낭비에 집착하면 오래지 않아 옛날로 돌아간다. 상아 젓가락 하나를 보고 사치의 지름길임을 알아채는 지혜는 없더라도 작은 것의 의미는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골경지신骨鯁之臣 - 직언하는 강직한 신하

골경지신骨鯁之臣 - 직언하는 강직한 신하

골경지신(骨鯁之臣) - 직언하는 강직한 신하

뼈 골(骨/0) 생선뼈 경(魚/7) 갈 지(丿/3) 신하 신(臣/0)

욕심이 없이 맑고 깨끗한 것이 淸廉(청렴)이다. 이것은 공직자의 기본 임무이며 모든 덕의 근원이라고 茶山(다산)은 牧民心書(목민심서)에서 강조했다. 마음이 꼿꼿하고 곧음이 剛直(강직)이다. 청렴한 사람에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주장하며 양보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까지 지니면 錦上添花(금상첨화)겠다. 강직한 사람이라도 자칫 잘못 생각하면 쌓은 명예는 곤두박질친다. ‘사람이 욕심이 생기게 되면 강직이 사라진다(人有慾則無剛/ 인유욕즉무강)’고 朱子(주자)는 近思錄(근사록)에서 경계했다.

임금이나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바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강직한 신하를 생선가시에 비유한 성어는 ‘史記(사기)’에서 유래했다. 직언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마치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정도니 얼마나 아픈 소리일까. 생선뼈 鯁(경)은 쉽사리 굴하거나 양보하거나 하지 않을 만큼 강한 것을 말하는 强鯁(강경)에 쓰인다. 刺客(자객)열전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해 보자. 春秋時代(춘추시대) 吳(오)나라의 闔閭(합려)가 왕이 되기 전 공자 光(광)이었을 때 이야기다.

그는 부왕이 자기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아 숙부들이 차례로 왕이 된 것에 불만이 많았다. 막내 숙부 季札(계찰)이 왕위를 사양하자 둘째 숙부 아들이 왕위를 이어 僚王(요왕)이 되었다. 공자 광은 伍子胥(오자서)가 소개한 자객 專諸(전제)를 후대하며 때를 엿보던 중 요왕이 楚(초)나라를 치러 간 사이 살해하자고 했다. 전제가 말했다. ‘지금 오나라는 밖으로 초나라에 고통을 당하고 있고, 안으로는 조정이 텅 비어 믿을 만한 신하가 없습니다. ’ 왕을 없앨 기회라는 말에 거사를 일으켜 성공하고 공자 광은 왕위에 올랐다.

여기서 인용된 곳이 많다. ‘漢書(한서)’ 杜周傳(두주전)에는 ‘조정에 강직한 신하가 없다(朝無骨鯁之臣/ 조무골경지신)’고 했고 韓愈(한유)의 ‘爭臣論(쟁신론)’에는 ‘사방의 사람들과 후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조정에 직언하는 골경지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고 표현했다.

선견지명先見之明 -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아는 지혜

선견지명先見之明 -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아는 지혜

선견지명(先見之明) -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아는 지혜

먼저 선(儿/4) 볼 견(見/0) 갈 지(丿/3) 밝을 명(日/4)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있다면 행복할까. 모두들 그에 대비하느라 현재의 삶을 소홀히 하기 쉬워 큰 복은 아닐 듯싶다.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알아버리면 항상 끝없는 기쁨과 공포가 뒤섞여 한 순간도 평화스러울 때가 없어진다는 서양 격언이 있다. 그래서 지혜가 깊은 전지전능한 신도 미래의 일을 모르도록 캄캄한 밤으로 덮었다고 했다. 앞날을 알지 못하므로 설사 오늘 모든 것을 잃더라도 아직 미래가 남아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 역시 모르는 것이 낫겠다.

운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물이 앞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알 수 있다면 일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내다보고(先見) 그에 대한 지혜(之明)를 발휘하는 것은 큰 능력이다. 이 성어는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曹操(조조)의 휘하 모사로 유명한 楊修(양수)의 일화에서 비롯된다. 양수는 폭넓은 지식과 깊이 있는 독서로 항상 조조의 의중을 읽어내는 데에 탁월했다. 그에 관한 성어로 닭의 갈비라는 뜻의 鷄肋(계륵)이 유명한데 그다지 큰 소용은 없으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점령지의 철수란 조조의 뜻을 알아챘다.

이런 양수의 재기에 조조는 크게 평가하면서도 깊은 신임은 주지 않았다. 양수가 원래 官渡(관도) 전투에서 조조에 패한 袁紹(원소)의 생질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여러 번 의중을 미리 알아챈 양수를 조조는 후환이 두려워 죽여 버렸다.

양수의 부친 楊彪(양표)는 아들을 잃고 비통해하다 조조가 야윈 이유를 묻자 대답했다. ‘저는 부끄럽게도 김일제와 같이 앞을 내다보지 못해 어미소가 송아지를 핥아주는 마음뿐입니다. ’金日磾(김일제, 磾는 )는 武帝(무제)때 匈奴(흉노) 출신으로 자신의 아들이 황제에 무례하다며 죽였다. 그와 같이 못해 아들을 죽게 했다는 것이다.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미래의 일을 지각할 수 있는 예지력은 큰 능력이다. 보통 삶들의 상상을 넘어서는 너무 앞서 나간 능력은 질시와 방해를 받을 수 있다. 양수의 앞을 내다본 재주도 결국 화를 입었다. 그 능력을 조화롭게 펼칠 수 있도록 주위를 설득하는 것도 큰 재주이다. 독불장군은 없는 법이다.

배중사영杯中蛇影 - 술잔 위에 비친 뱀의 그림자. 지나친 근심

배중사영杯中蛇影 - 술잔 위에 비친 뱀의 그림자. 지나친 근심

배중사영(杯中蛇影) - 술잔 위에 비친 뱀의 그림자. 지나친 근심

잔 배(木/4) 가운데 중(丨/3) 긴뱀 사(虫/5) 그림자 영(彡/12)

편안한 친구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데 술잔 속(杯中)에 뱀의 그림자(蛇影)가 어른거린다. 이 친구가 술에 무엇을 탔을까 의심하니 술맛이 싹 달아난다. 믿을 만한 친구인데 그럴 리가 없다며 억지로 마셨지만 속이 영 안 좋다. 이와 같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의심을 품고 지나치게 근심을 하거나 자기 스스로 걱정을 사서 하는 경우에 이 성어를 쓴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여 늘 안절부절 지낸 杞(기)나라 사람 杞人憂天(기인우천)과 꼭 같은 말이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 이후 세워진 晉(진)나라에 樂廣(악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집이 가난하여 독학을 했어도 영리하고 신중해서 주위의 칭찬이 자자했다. 장성한 뒤 벼슬자리에 천거되어 河南(하남) 지역의 태수로 있을 때의 일이다.

친한 벗을 불러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자주 들르던 친구가 그 이후 연락이 두절되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악광이 편지로 연유를 물었더니 답신이 왔다. 지난 번 술을 마실 때 권한 술잔에 조그만 뱀 한 마리가 보였다고 했다. 억지로 마셨더니 이후 병이 나 지금까지 누워 있다는 것이다.

술은 관가의 자기 방이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친구의 뒤편 벽에 뱀이 그려진 활이 걸려 있었다. 악광이 다시 친구를 불러 그 자리에서 술을 따르며 또 뱀이 보이느냐고 물었다. 전과 똑 같이 보인다고 대답하자 악광이 뒷벽을 가리키며 박장대소했다. ‘그건 저 활에 그려져 있는 뱀의 그림자(杯中蛇影)일세.’ 친구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그리고선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했다.

‘晉書(진서)’ 악광전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後漢(후한) 말 학자 應劭(응소, 劭는 아름다울 소)가 쓴 ‘風俗通義(풍속통의)’에는 등장인물이 應郴(응침, 郴은 고을이름 침)과 杜宣(두선)으로 다를 뿐 내용은 같이 나온다.

거짓은 더 큰 거짓이 필요하고 의심은 의심을 낳는다. 국가나 정당이나 이해집단을 막론하고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의 안을 너무 이것저것 따지며 의심을 한다면 한이 없다. 선의로 받아들일 것은 받고 줄 것은 줘야 앞으로의 거래가 원활하다.

설니홍조雪泥鴻爪 - 눈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 눈이 녹으면 없어지는 인생의 무상

설니홍조雪泥鴻爪 - 눈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 눈이 녹으면 없어지는 인생의 무상

설니홍조(雪泥鴻爪) - 눈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 눈이 녹으면 없어지는 인생의 무상

눈 설(雨/3) 진흙 니(氵/5) 기러기 홍(鳥/6) 손톱 조(爪/0)

인생이 길다고 한 말은 어디에서나 들은 적이 없을 것이다. ‘인생은 행복한 자에게는 너무나 짧고, 불행한 자에게는 너무나 길다’고 한 영국 격언만 제외하고 말이다. 생활이 지겹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형편이 나아진 이후로는 길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짧은 인생을 덧없다고 여기고, 욕심껏 이룬 부귀와 영화도 부질없다고 깨우치는 성어는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南柯一夢(남가일몽)과 같이 꿈 이야기만 해도 羅浮之夢(나부지몽), 盧生之夢(노생지몽), 役夫之夢(역부지몽), 一場春夢(일장춘몽), 黃粱之夢(황량지몽)이 있다.

꿈 이야기 말고 대조적인 비유로 나타낸 성어도 제법 된다. 인생이 풀끝에 맺힌 이슬처럼 덧없고 허무하다는 속담 ‘풀끝의 이슬’과 똑 같은 것이 人生如朝露(인생여조로)이다. 바람에 깜박이는 등불과 같다는 人生如風燈(인생여풍등)도 같은 뜻이다. 여기에 눈이나 진흙 위(雪泥)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鴻爪)이란 멋진 표현도 인생의 자취가 눈이 녹으면 사라지는 무상을 나타냈다.

중국 北宋(북송)의 문호 蘇軾(소식, 1036~1101)의 시에서 나왔다. 東坡(동파)란 호로 더 잘 알려진 소식은 부친 蘇洵(소순)과 아우 蘇轍(소철)과 함께 三蘇(삼소)로 불렸다. 서정적인 것이 많은 唐詩(당시)에 비해 철학적인 요소가 짙은 시가 많다는 평을 듣는다.

소식이 동생 소철에게 보낸 시 ‘和子由澠池懷舊(화자유면지회구)’에 성어 구절이 들어 있다. 子由(자유)는 소철의 자, 澠池(면지)는 河南省(하남성)에 있는 지명이라 한다. 澠은 고을이름 면. 앞 부분만 보자. ‘인생은 여기저기 떠도는 것 무엇과 같을까, 기러기가 눈 내린 진흙 벌을 밟아놓은 것 같으니, 우연히 진흙 위에 발자국은 남겼지만, 기러기는 동서 어디로 날았는지 어떻게 알랴.’ 기러기 발자국은 흔적도 없고, 그것을 남긴 기러기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참으로 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