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일 일요일

물이유취物以類聚 - 사물이 같은 종류에 따라 모인다.

물이유취物以類聚 - 사물이 같은 종류에 따라 모인다.

물이유취(物以類聚) - 사물이 같은 종류에 따라 모인다.

물건 물(牛/4) 써 이(人/3) 무리 류(頁/10) 모을 취(耳/8)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산다. 개미나 벌 같은 곤충들은 군집생활이 필수적이지만 일반 동물들도 더 큰 동물의 위험을 막으며 살기 위해서는 집단생활이 적합하다. 사람도 혼자서는 의식주를 해결 못하기 때문에 모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이더라도 적대적인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상정이다. 자기의 편을 들어주고, 자기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과 끼리끼리 모인다.

이 난에 나온 적 있는 同氣相求(동기상구)이고 同病相憐(동병상련)이다. ‘과부 설움은 과부가 안다’는 兩寡分悲(양과분비)도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가재는 항상 게 편을 들고, 풀도 같은 녹색이라며 草綠同色(초록동색), 같은 종류끼리만 類類相從(유유상종)한다면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

사물(物以)은 같거나 비슷한 종류에 따라 모인다(類聚)는 이 말도 변화를 겪었다. 유사한 부분이 나오는 ‘周易(주역)’부터 먼저 보자. ‘만물은 같은 종류끼리 모이고 무리를 지어 나누어지니, 이로부터 길함과 흉함이 생긴다.’ 繫辭上(계사상) 편에 실려 있다. 同氣相求(동기상구)가 나오는 文言(문언)의 뒷부분은 이렇다. ‘하늘에 근본을 둔 것은 위와 친하고, 땅에 근본을 둔 것은 아래와 친하니, 이는 모두 각자가 그 비슷한 것을 좇기 때문이다.’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에 淳于髡(순우곤, 髡은 머리깎을 곤)이란 대부가 있었다. 천한 신분이었지만 익살과 다변으로 유명했다. 어느 때 宣王(선왕)이 인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 사이에 7명이나 천거했다. 선왕은 놀라 천리를 다니며 백 년을 찾아도 한 사람 찾기가 힘든데 이들이 과연 현인인지 물었다. 순우곤이 대답한다. 새는 새들과 함께 있고 짐승은 짐승들과 있는 법인데 이것이 바로 ‘물건은 각기 비슷한 부류가 있다(物各有疇/ 물각유주)’는 이야기라 했다. 그리고 자신은 같은 무리기 때문에 주위에 현인이 많다고 말했다. ‘戰國策(전국책)’ 齊策(제책)에 나온다.

모여서 자신들만의 이익을 쫓고 타인에게는 해를 끼친다면 바람직한 모임이 아니다. 고급정보를 사유화하고 조직 안의 의견만이 옳다고 똘똘 뭉쳐 고집한다면 외부에서 욕을 먹는다. 처음에는 그런 의미를 가지지 않았지만 類類相從(유유상종)을 비롯한 이 성어들은 점점 나쁜 사람들의 집합체를 가리키거나 배타적인 집단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더 많이 갖게 됐다. 끼리끼리의 힘을 자기들만이 사유화했기 때문이다.

다난흥방多難興邦 -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난 뒤 나라가 흥하다

다난흥방多難興邦 -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난 뒤 나라가 흥하다

다난흥방(多難興邦) -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난 뒤 나라가 흥하다

많을 다(夕/3) 어려울 난(隹/11) 일 흥(臼/9) 나라 방(阝/4)

개인이나 나라나 평안한 나날만 계속되면 좋으련만 그렇게 되지 않아 好事多魔(호사다마)나 禍不單行(화불단행)이란 말이 많이 나왔다. 일면 興盡悲來 苦盡甘來(흥진비래 고진감래)라 하여 나쁘고 어려운 일 다음에는 좋은 세상이 온다고 위안을 주는 교훈도 있다. 어려운 일을 많이 겪으면(多難) 오히려 내부를 결속시켜 나라가 더욱 일어난다는(興邦) 이 성어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나라 위기 때마다 뜻있는 사람들이 인용하여 용기를 고취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 魏(위)나라에서 세력을 떨치던 司馬氏(사마씨)가 왕위를 물려받아 세운 晉(진)나라는 결국 통일을 이뤘다. 하지만 건국 초기 황족 8명의 피비린내 나는 세력 다툼 팔왕지난(八王之亂)이 16년이나 끌어 나라는 혼란의 극에 달했다. 이 틈을 타 북방의 匈奴(흉노), 鮮卑(선비) 등 다섯 민족이 남진한 五胡亂華(오호난화)까지 일어나 2대의 왕이 연속 살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광대한 영토가 유린되는 이런 난리를 보고도 좌승상 司馬睿(사마예)는 강남에서 관망만 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祖逖(조적), 劉琨(유곤)과 같은 장수들은 북벌을 단행하는 한편, 180여 명의 이름으로 勸進表(권진표)를 올리고 제위 계승을 권했다. 그 내용 중 ‘많은 재난이나 어려움은 우리나라를 공고히 하게하며, 깊은 근심은 황제로 하여금 더욱 현명하게 해줍니다’ 에서 이 성어가 나왔다. 사마예가 계승한 나라가 東晋(동진)인데 그는 현명하게 대처를 못하고 북벌은 커녕 두 장군을 의심해 죽게 만들었다. ‘晉書(진서)’ 元帝(원제)편에 실려 있다.

불로장생不老長生 - 늙지 아니하고 오래 살다.

불로장생不老長生 - 늙지 아니하고 오래 살다.

불로장생(不老長生) - 늙지 아니하고 오래 살다.

아닐 불(一/3) 늙을 로(老/0) 긴 장(長/0) 날 생(生/0)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바라는 것은 재산보다도 명예보다도 건강일 것이다. 아프지 않고 오래 살고(長生) 그것도 늙지 않은 채(不老) 살아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그래서 예로부터 영원히 죽지 않거나 오래 산다고 믿어왔던 열 가지 十長生圖(십장생도)를 옆에 두고 기원하거나 仙藥(선약)과 不死藥(불사약)을 구하려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노력을 기울였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聖書(성서)에서 므두셀라(Methuselah)는 969세, 노아(Noah)는 950세를 살았다고 하고, 중국 黃帝(황제)의 자손이라 하는 彭祖(팽조)라는 도인은 자취를 감출 때 770세였지만 그 때까지 피부가 동안이었다 한다. 훨씬 능가하는 사람이 있다. 前漢(전한)시대 해학이 넘치는 문인 東方朔(동방삭)은 신들의 어머니 西王母(서왕모)의 복숭아 蟠桃(반도)를 훔쳐 먹고는 三千甲子(삼천갑자)를 살게 됐다. 1갑자가 60년이니 무려 18만년, 어딘가에 아직 생존하는 셈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 말고 절대 권한이 있던 황제는 오래 살기 위한 불로초와 선약을 구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역시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 秦始皇(진시황)이다. ‘史記(사기)’ 진시황 본기에는 齊(제)나라 方士(방사)인 徐市(서불)이 저 멀리 바다 건너 三神山(삼신산)에 신선이 산다고 했다. 市은 치마 불, 徐福(서복)이라고도 한다. 진시황이 동남동녀 수천 명을 데리고 가서 모셔오라고 보냈다.

서불은 부산, 남해를 거쳐 제주도에 도착하여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西歸浦(서귀포)에는 축제로 기념하고 일본에도 곳곳 유적이 있는데, 뒤의 기록은 남지 않아 진위는 분분하다.

장수의 욕심을 부렸던 진시황은 그러나 49세의 나이로 순행 중 죽었다. 漢高祖(한고조)부터 200여 명의 중국 황제 중 80세를 넘긴 사람은 5명에 불과하다고 한 조사도 있다. 조선 왕조는 더해 환갑을 넘긴 왕이 5명뿐이었다고 한다. 유교에서 말하는 五福(오복) 중에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考終命(고종명)이라 한다. 억지를 부리지 말고 편안히 살다 제 명에 죽는 것 이상은 없다.

내우외환內憂外患 - 나라 안팎의 걱정근심

내우외환內憂外患 - 나라 안팎의 걱정근심

내우외환(內憂外患) - 나라 안팎의 걱정근심

안 내(入/2) 근심 우(心/11) 바깥 외(夕/2) 근심 환(心/7)

안에서 근심걱정(內憂)이 있는 차에 밖에서도 걱정거리(外患)가 찾아든다. 하나 해결하면 다시 걱정이 닥치니 죽을 지경, 진퇴양난이다. 불행은 언제나 홀로 오지 않고 꼭 겹쳐 온다는 禍不單行(화불단행)과 닮았다. 같은 근심이라도 憂(우)는 머리(頁/ 혈)가 위에서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다는 뜻으로 마음의 걱정, 患(환)은 괴로움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串(관)이란 꼬챙이 모양을 합쳐 아픔이 따르는 걱정이란 의미로 구분한다. 어느 것이나 아픔이니 집안이나 나라 안팎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뜻한다. 일상에 많이 쓰이고 뜻도 쉬운 이 성어에 조어가 아닌 고사가 따르니 흥미롭다.

먼저 ‘管子(관자)’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자. 春秋時代(춘추시대) 齊(제)나라의 桓公(환공)이 음식을 들지도 않으면서 외전에서만 지내고 있었다. 궁녀들을 관장하는 女官(여관)이 이제 임금이 거둥할 때가 됐으니 모시라고 일렀다. 환공이 여관을 불러 화를 내며 거둥할 때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다. 내관은 걱정거리가 있을 때 외전에서 주무시고 음식도 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다른 내우가 없으니 필시 다른 외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君外舍而不鼎饋 非有內憂 必有外患/ 군외사이불정궤 비유내우 필유외환)’고 했다. 내우는 아니니 곧 일어날 것이라 여겼다는 여관의 지혜에 환공은 기특히 여겼다. 饋는 먹일 궤.

춘추시대 중엽 晉(진)나라가 이웃 약소국가를 정벌하던 중 막강한 楚(초)나라의 침공을 받았다. 초와도 일전을 벌이자는 말에 대부 范文子(범문자)가 반대했다. 공격을 당하면 퇴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러다가 나라가 위태해질 수가 있다며 말한다. ‘오직 성인만이 밖으로의 근심도 안으로의 걱정도 없게 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경우 밖의 재난이 없으면 내부 근심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내부의 문제부터 정리하자는 의견이었다. 춘추 8국의 역사를 左丘明(좌구명)이 정리한 ‘國語(국어)’에 나오는 내용이다.

백천귀해百川歸海 - 모든 하천은 바다로 돌아간다.

백천귀해百川歸海 - 모든 하천은 바다로 돌아간다.

백천귀해(百川歸海) - 모든 하천은 바다로 돌아간다.

일백 백(白/1) 내 천(巛/0) 돌아갈 귀(止/14) 바다 해(氵/7)

조그만 냇물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 바다가 될 수 있는 것은 모든 강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모든 강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든 강보다 낮은 쪽에 위치하여 차별을 하지 않고 강물을 받는다. 같은 의미의 李斯(이사)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秦(진)나라에 모여든 각국 인재를 축출하려 하자 諫逐客書(간축객서)로 부당함을 절절이 상소한다. 태산이 작은 흙도 사양 않고 받아들여 이뤄졌다는 泰山不辭土壤(태산불사토양)의 대구로, 강과 바다는 개울물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이루어졌다는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가 그것이다.

모든 하천(百川)은 바다로 돌아간다(歸海)는 이 성어도 물론 같은 뜻을 가졌다. 여기서의 百(백)은 숫자 100을 의미한다기보다 ‘많다’, ‘모든’의 뜻을 갖는다. 百川入海(백천입해), 海納百川(해납백천)라 해도 뜻이 같고, 처음에 가는 길은 서로 다르지만 나중에 도달하는 곳은 같다는 殊途同歸(수도동귀)도 의미가 통한다. 강물이 수도 없이 꺾여 흐르더라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는 萬折必東(만절필동)이란 말을 대사가 사용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원래의 뜻은 그렇더라도 충신의 절개를 비유했고 특히 조선시대 중국황제를 위한 충절을 가리켰기에 같이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百川(백천)의 성어는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저술한 ‘淮南子(회남자)’에 처음 사용됐다. 이 책은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의 손자인 유안이 전국의 빈객과 방술가의 지혜를 빌려 제자백가를 아우른 방대한 백과사전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관습이더라도 시의에 맞지 않으면 따르기가 어려우므로, 성인은 법을 때에 따라 변화시키고 풍속이나 법도도 적당함을 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어진다. 모든 개울은 근원을 달리 했으나 바다로 모이게 되고, 모든 사람은 직업이 다르지만 한결같이 잘 하도록 힘쓴다. 모든 일에 원칙만 찾고 순리로 받아들일 융통성이 없다면 일을 원만하게 이룰 수 없다는 이야기다.

办法 bànfǎ

办法 bànfǎ

办法 bànfǎ

1. 방법 2. 수단 3. 방식 4. 조치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 오륜의 하나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 오륜의 하나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 오륜의 하나

벗 붕(月/4) 벗 우(又/2) 있을 유(月/2) 믿을 신(亻/7)

朋(붕)이나 友(우) 모두 벗을 말한다. 중국에서 老朋友(노붕우, 라오펑유)는 오랜 친구를 뜻한다. 우리나라를 이렇게 불러놓고는 중국이 사드 등으로 온갖 졸렬한 짓거리를 하고 겉으로는 태연한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말이다. 모두 벗을 뜻해도 朋友(붕우)는 차이가 있다. 論語(논어) 첫 머리에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는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의 朋(붕)은 한 스승 아래서 공부한 동문을 뜻한다고 한다. 이에 반해 友(우)는 뜻이 같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다. 朋情(붕정)이란 말은 없고 友情(우정)이 있듯이 아무래도 동문보다는 故友(고우)가 더 가까운 벗이다.

어떤 벗이든 벗 사이에(朋友)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有信)는 이 성어는 三綱五倫(삼강오륜)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인륜의 기준으로 삼아 온 이것은 孔孟(공맹)의 학설에 기초하여 前漢(전한)의 유학자 董仲舒(동중서)가 논한 三綱五常說(삼강오상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삼강은 임금과 신하, 부자,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인 君爲臣綱(군위신강), 父爲子綱(부위자강), 夫爲婦綱(부위부강)이다. 붕우유신은 父子有親(부자유친), 君臣有義(군신유의), 夫婦有別(부부유별), 長幼有序(장유유서)의 뒤에 오는 오륜에 들어간다. 신라 圓光(원광) 법사의 五戒(오계) 중 交友以信(교우이신)과 통하는 말이다.

조선 世宗(세종)대왕 때 三綱行實圖(삼강행실도)를 편찬한 뒤 이에 관한 여러 종류의 책이 발간되었다. 中宗(중종)때 학자 朴世茂(박세무)가 펴낸 ‘童蒙先習(동몽선습)’은 학동들이 배우는 초급교재로 오륜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붕우편에서 논어를 인용하여 정직하고(友直/ 우직), 성실하며(友諒/ 우량), 견문이 많은 (友多聞/ 우다문) 친구를 사귀면 유익할 것이라 했다. 또 벗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어버이에게 순종하지 못한다면 벗들에게서도 믿음을 얻지 못한다.

朱子(주자)가 교열했다는 小學(소학)이 너무 어려워 우리나라에서 쉽게 풀어 쓴 ‘四字小學(사자소학)’에도 ‘사람이 귀한 이유는 오륜과 삼강 때문(人所以貴 以其倫綱/ 인소이귀 이기윤강)’이라고 했다.

전호후랑前虎後狼 -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이리, 재앙이 끝없이 닥치다.

전호후랑前虎後狼 -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이리, 재앙이 끝없이 닥치다.

전호후랑(前虎後狼) -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이리, 재앙이 끝없이 닥치다.

앞 전(刂/7) 범 호(虍/2) 뒤 후(彳/6) 이리 랑(犭/7)

한 가지 화를 피하려다 더 큰 화를 당할 때 비유적으로 ‘여우 피해서 호랑이를 만났다’거나 ‘귀신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다’라는 속담을 쓴다. 사나운 늑대, 이리를 만나 전력으로 도망치는데 앞에는 더 무서운 호랑이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진퇴양난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호랑이를 막으려고 전력을 다해 앞문을 막고 있는데(前虎)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오면(後狼) 살아날 길이 없다. 나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일컫는 표현이다. 구덩이를 피하려다 우물에 빠지는 避坎落井(피감낙정)이나 노루를 피하다 호랑이를 만난다는 避麞逢虎(피장봉호, 麞은 노루 장)도 마찬가지다.

後漢(후한) 초기 환관의 폐해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던 때의 이야기다. 3대 章帝(장제)가 죽은 뒤 열 살의 어린 나이로 和帝(화제)가 제위에 올랐다. 임금이 어린 나이에 등극하면 외척이나 환관이 득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화제가 꼭 그런 경우로 이름만 황제였다. 장제의 황후인 竇太后(두태후)와 오빠 竇玄(두현)이 정권을 잡아 좌지우지하게 된 뒤로는 허수아비와 다름없는 화제를 제거하고 직접 왕위에 오르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이 사실을 측근을 통해 알게 된 화제는 환관 鄭衆(정중)을 시켜 두씨 일족을 체포하도록 했고 그 직전 두현은 자살했다. 큰 우환을 없앴다고 왕권이 강화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환관 정중이 권력을 쥐고 정사에 관여하기 시작해 여기서 싹튼 폐해가 후한을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

元(원)나라 문인 趙雪航(조설항)이란 사람이 지은 ‘評史(평사)’에 이 당시를 묘사한 표현이 나온다. ‘두씨가 제거되었지만 환관의 권세가 이로부터 성하게 되었다. 속담에 말하기를 앞문의 호랑이를 막으니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온다고 했다.

만사형통萬事亨通 -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다.

만사형통萬事亨通 -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다.

만사형통(萬事亨通) -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다.

일만 만(艹/9) 일 사(亅/7) 형통할 형(亠/5) 통할 통(辶/7)

모든 일이 뜻대로 생각대로 잘 되어 가는 것이 亨通(형통)이다. 亨(형)은 제사라는 뜻도 있어 조상신을 잘 모시면 일이 잘 풀린다는 뜻이 나왔다고 한다. 여기에 온갖 일, 여러 가지 일 萬事(만사)가 붙어 강조하며 바라는 대로 두루두루 잘 되어가는 것을 뜻했다. 일이 자기 뜻과 같이 萬事如意(만사여의)하다고 萬事太平(만사태평)으로 萬事無心(만사무심)하면 자칫 萬事瓦解(만사와해)되어 萬事休矣(만사휴의)로 헛수고가 된다. 인간의 길흉화복은 돌고 돈다는 의미의 ‘인간 만사는 새옹지마’라는 속담과 같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도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실패하기 쉬우니 조심하라는 뜻도 담겼다.

‘그가 손대는 일마다 만사형통이다‘, ’새해에는 하시는 일마다 만사형통하시길‘. 이런 식으로 평소에 자주 써 익은 말이 정작 유래를 보면 쉽지 않다. 유교 三經(삼경)의 하나이자 占卜(점복)의 원전이라 하는 ’易經(역경)‘에 나온다. 하늘은 양, 땅은 음, 해는 양, 달은 음 등 천지만물은 음과 양으로 되어 있는데 그 위치나 생태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관찰하여 八卦(팔괘)와 六十四卦(육십사괘)를 만들었다고 한다. 亨(형)은 64괘중 첫 번째 乾卦(건괘)에 나오는 四德(사덕) 중 하나이다.

복잡하지만 조금 더 옮겨보면 하늘이 갖추고 있는 네 가지 덕이 사덕으로 바로 元亨利貞(원형이정)이다. 元(원)은 만물이 시작되는 때로 봄에 속하며 仁(인)으로 이루어지고, 亨(형)은 만물이 성장하는 때로 여름에 속하며 禮(예)로서 실천하는 것이라 했다. 利(이)는 만물이 완수되는 때로 義(의)로 행해지고, 貞(정)은 만물이 완성되어 智(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건괘는 왕성하고 정력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건은 굳세다(健)는 뜻으로 자연으로 보면 하늘이 움직이는 것이고, 사람으로 보면 운이 뻗어가는 것이며, 사업으로 보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는 시점이다. 형통하다는 말은 여기서 나와 어떤 일을 하든지 뜻대로 이루어져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것을 뜻하게 됐다.

상저옥배象著玉杯 - 상아 젓가락과 옥 술잔, 하찮은 낭비가 사치로 이어짐

상저옥배象著玉杯 - 상아 젓가락과 옥 술잔, 하찮은 낭비가 사치로 이어짐

상저옥배(象著玉杯) - 상아 젓가락과 옥 술잔, 하찮은 낭비가 사치로 이어짐

코끼리 상(豕/5) 나타날 저(艹/9) 구슬 옥(玉/0) 잔 배(木/4)

‘산호 기둥에 호박 주추다’란 말이 있다. 귀한 珊瑚(산호)로 기둥을 세우고 보석 琥珀(호박)으로 주춧돌을 세웠으니 호화의 극치다. 아름다운 비단 옷에 흰 쌀밥, 요즘은 크게 사치는 아닌데도 錦衣玉食(금의옥식)도 호화생활을 뜻했다. 唐(당)의 杜牧(두목)이 阿房宮(아방궁)의 秦始皇(진시황) 생활을 묘사한 것이 있다. ‘귀중한 정이 가마솥 같고, 금은 흙덩이에 진주는 조약돌 취급(鼎鐺玉石 金塊珠礫/ 정쟁옥석 금괴주력)’했으니 굴러다니는 것이 보석이었다. 鐺은 솥 쟁, 礫은 조약돌 력.

상아로 만든 젓가락(象著)과 옥으로 만든 술잔(玉杯)도 옛날에는 사치품이었다. 이것을 태연히 만들게 하고 사용한 사람이 중국 商(상)나라 紂王(주왕, 紂는 주임금 주)이라면 그럴 듯하다. 앞서 夏(하)나라 桀王(걸왕)과 함께 桀紂(걸주)로 불리는 폭군의 대명사다. 妲己(달기, 妲은 여자이름 달)라는 요녀에 빠져 酒池肉林(주지육림)에서 질탕하게 향락을 즐겼고, 간하는 충신들에겐 숯불로 달군 구리기둥을 건너가게 한 炮烙之刑(포락지형)으로 죽였으니 악명으로 걸왕을 능가했다.

주왕이 상아로 젓가락을 만들게 하자 箕子(기자)가 걱정했다. 기자는 주왕의 숙부인데 학정에 남아나는 사람이 없는 중에 나라의 운명을 생각했다. ‘상아 젓가락을 쓰게 되면 토기를 버리고 무소뿔이나 옥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할 것이다. 다음은 거기에 맞게 진귀한 음식을 담으려 하고, 그 다음은 먹을 때의 복장, 그 다음은 호화스런 궁전을 생각할 것이다. 점차로 사치가 도를 넘을 것이기 때문에 상아 젓가락이 단초가 되어 국가의 재정을 고갈시키고 멸망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 뒤 주왕의 사치와 포학이 지나쳐 나라는 망했다. ‘韓非子(한비자)’의 喩老(유로)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 조금 잘 살게 되면 지난 세월의 고생은 잊고 싶다. 그렇다고 물 쓰듯이 낭비에 집착하면 오래지 않아 옛날로 돌아간다. 상아 젓가락 하나를 보고 사치의 지름길임을 알아채는 지혜는 없더라도 작은 것의 의미는 생각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