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일 일요일

촌철살인寸鐵殺人 - 한 치의 쇠붙이로 사람을 죽이다, 한 마디로 핵심을 찌르다.

촌철살인寸鐵殺人 - 한 치의 쇠붙이로 사람을 죽이다, 한 마디로 핵심을 찌르다.

촌철살인(寸鐵殺人) - 한 치의 쇠붙이로 사람을 죽이다, 한 마디로 핵심을 찌르다.

마디 촌(寸/0) 쇠 철(金/13) 죽일 살(殳/7) 사람 인(人/0)

손가락 한 마디 정도(3cm)인 한 치는 작은 단위의 기본이다. 한 치 밖에 안 되는 쇠붙이(寸鐵)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殺人)는 말은 실제로 조그만 무기를 사용한다는 말이 물론 아니다. 한 마디의 말, 간단한 경구로 사람을 감동시키거나 사물의 핵심을 찌를 때 비유로 많이 쓰인다. 정수리에 침을 놓는다는 뜻으로, 따끔한 충고나 교훈을 말하는 頂門一鍼(정문일침)도 같은 말이다. 줄여서 단 한 방으로 무엇을 해결하거나 일거에 처리하는 것을 一針(일침)이라 하는 것도 같은 쓰임새다.

宋(송)나라 때의 선승 宗杲(종고, 1089~1163, 杲는 밝을 고) 선사는 설법에 능해 제자가 2000명도 넘었다고 한다. 화두를 사용하여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看話禪(간화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독특한 이야기를 던져놓고 깊은 사색으로 해탈에 도달해야 하니 한 마디가 촌철이 된다. 종고선사가 선에 대해 말한 대목을 보자. 어떤 사람이 수레에다 가득 무기를 싣고 와서 하나를 꺼내 휘두르고, 또 하나를 꺼내 휘둘러도 사람을 죽이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면서 이어진다. ‘나에게는 단지 한 치밖에 안 되는 쇳조각만 있어도 능히 사람을 죽일 수 있다(我則只有寸鐵 便可殺人/ 아즉지유촌철 편가살인).’ 선의 본바탕을 말하는 선사가 살인이라 비유한 것은 마음속의 잡된 생각을 없애고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을 집중하여 수양한다면 그 결과 나오는 아주 사소한 것 하나가 사물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감동시킬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의 출처는 ‘鶴林玉露(학림옥로)’란 책이다. 朱熹(주희)의 제자였던 南宋(남송)의 학자 羅大經(나대경)이 당대의 歐陽脩(구양수)나 蘇軾(소식) 등과 주고받은 어록과 시화, 평론을 모은 것이다. 天地人(천지인) 3부로 나눠진 이 책 地部(지부)에 실려 있다. 각 분야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고 정리하여 당시의 사회상을 아는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한 마디를 던져 놓고 모든 사람을 감동시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로써 말이 많은 오늘날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국정을 이끄는 수단이 말인 정치권에서는 더욱 말 폭탄이 오가 시끄럽다. 막말이 아닌 이치에 맞는 말로 주고받아 서로 승복하는 사회가 언제 되려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과하절교過河折橋 – 강을 건넌 뒤 다리를 부수다, 도와준 은공을 잊다...

과하절교過河折橋 – 강을 건넌 뒤 다리를 부수다, 도와준 은공을 잊다...

과하절교(過河折橋) – 강을 건넌 뒤 다리를 부수다, 도와준 은공을 잊다...

지날 과(辶/9) 물 하(氵/5) 꺾을 절(扌/4) 다리 교(木/12)

아주 비장한 각오를 말할 때 자주 쓰는 성어가 있다.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힌다는 破釜沈舟(파부침주)다. 죽기 살기로 싸운 項羽(항우)의 고사에서 왔다. 그런데 강을 건너고 나서(過河) 다리를 부숴버린다(折橋)는 이 말은 의미가 비슷할 것 같지만 전혀 다르다. 목적을 이룬 뒤에는 도와준 사람의 은공을 잊어버리는 배은망덕을 가리킨다. 過河拆橋(과하탁교, 拆은 쪼갤 탁)로도 쓰는 이 말과 유사한 성어도 제법 된다. 냇물에서 물고기를 잡은 뒤엔 통발의 고마움을 잊어버린다는 得魚忘筌(득어망전, 筌은 통발 전),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兎死狗烹(토사구팽) 등이 유명하다.

중국 隋(수)나라 때부터 본격 시행된 과거제도는 관리로 채용할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소수 정예를 선발하여 합격자는 전원 관리로 채용돼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폐해도 드러났다. 元(원)나라 順帝(순제) 때 徹理帖木耳(철리첩목이)라는 대신이 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 중에는 실제로 학문이 깊은 사람이 드물고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경학에 정통했던 伯顏(백안)은 적극 찬성했지만 참정 許有任(허유임) 등은 극렬 반대했다. 과거를 폐지하면 천하의 인재들이 벼슬길이 막혀 원한이 이어진다고 하면 급제한 사람들 중에 실제 쓸 만한 사람은 없다고 맞섰다. 계속하면 부정과 부패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 하자 그것은 과거 때문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왕은 논쟁을 그치게 하고 과거폐지에 관한 조서를 기초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선 문무백관들을 소집하여 가장 반대가 심했던 허유임에게 낭독하게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할 수도 없어 공손히 조서를 읽었다. 조회를 마치고 힘없이 나가는 허유임에게 한 사람이 놀렸다.

‘참정 그대는 강을 건넌 다음에 다리를 부숴버린 꼴이 됐군요(參政可謂過河折橋者矣/ 참정가위과하절교자의).’ 그렇게 반대하다가 돌아선 행동을 비웃은 것이다. 明(명)의 宋濂(송렴) 등이 편찬한 ‘元史(원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위기를 벗어나거나 출세를 하고 난 뒤에는 모두 자신이 잘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갈 때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이 달라지는 세태일수록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은혜를 잊지 않아야 더욱 돋보인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탄금무학彈琴舞鶴 - 거문고를 타니 학이 춤춘다, 한 가지 잘하면 다른 일도 잘 된다.

탄금무학彈琴舞鶴 - 거문고를 타니 학이 춤춘다, 한 가지 잘하면 다른 일도 잘 된다.

탄금무학(彈琴舞鶴) - 거문고를 타니 학이 춤춘다, 한 가지 잘하면 다른 일도 잘 된다.

탄알 탄(弓/12) 거문고 금(玉/8) 춤출 무(舛/8) 학 학(鳥/10)

거문고를 연주하니(彈琴) 학이 날아와 춤을 춘다(舞鶴). 신선들이 천상에서 노니는 듯한 이 말은 한 가지 일을 잘 하면 다른 일도 절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한 가지 재주만 잘 익히면 연속으로 일을 잘 해결할 수도 있으니까 복이 복을 부르는 셈이다.

거문고는 우리나라에서 관현악에 필수적인 현악기이니 이 성어도 처음 만든 王山岳(왕산악)과 연주에 이름 높았던 玉寶高(옥보고)에서 나왔다. 金富軾(김부식)의 ‘三國史記(삼국사기)’에는 雜志(잡지) 樂(악)편에 이에 관해 상세히 전한다. 高句麗(고구려)의 제24대 陽原王(양원왕, 재위 545∼559) 때 제2 재상이었던 왕산악은 중국 晉(진)나라에서 보낸 七絃琴(칠현금)을 완전히 뜯어 고쳐 6개의 줄로 된 새로운 악기를 만들었다. ‘더불어 새 악기에 맞는 100여 곡을 짓고 연주할 때,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고 하여 현학금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훗날 현금이라고만 불렀다(兼製一百餘曲 以奏之 於時 玄鶴來舞 遂名玄鶴琴 後但云玄琴/ 겸제일백여곡 이주지 어시 현학래무 수명현학금 후단운현금)’.

통일신라 35대 景德王(경덕왕, 재위 742~765) 때의 옥보고는 지리산 雲上院(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를 연주하며 새로운 곡조 30곡을 만들어 연주했다. 그럴 때는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어 신선의 도를 얻었다 한다. 곡을 들은 사람들은 인간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조선 전기의 문신 徐居正(서거정)은 ‘四佳集(사가집)’에 제목이 彈琴舞鶴(탄금무학)인 시를 남겼다. ‘달 비친 숲에 이슬 맞은 한 장의 거문고여, 흐르는 물 높은 산이 다 태고의 마음일세(月林衣露一張琴 流水高山太古心/ 월림의로일장금 류수고산태고심), 흰 소매 검은 치마가 어느 곳 나그네인지, 온종일 춤을 추어라 이게 바로 지음일세(縞袂玄裳何處客 婆娑終日是知音/ 호몌현상하처객 파사종일시지음).’ 縞는 검을 호, 袂는 소매 몌. 흰 소매 검은 치마는 바로 학을 가리킨다.

여러 가지 일을 능숙히 잘 할 수 있는 만물박사라면 좋겠지만 이러한 재주를 다 가지기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한 가지 재주를 갖고서 다른 일도 깨우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우리 속담에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 한다’란 것이 있다. 본바탕이 갖춰져 있고, 기초실력이 탄탄하면 다른 일도 성공하기 쉬운 것은 물론이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곡반면出告反面 - 나갈 때 아뢰고 들어올 때 뵙는다.

출곡반면出告反面 - 나갈 때 아뢰고 들어올 때 뵙는다.

출곡반면(出告反面) - 나갈 때 아뢰고 들어올 때 뵙는다.

날 출(凵/3) 고할 고, 뵙고청할 곡(口/4) 돌이킬 반(又/2) 낯 면(面/0)

밖에 나갈 일이 있을 때는 매번 부모에게 가는 곳을 아뢴다(出告). 집에 돌아 왔을 때도 반드시 부모님을 뵙고 귀가했음을 알린다(反面). 옛날 효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께 자식으로서 지녀야 할 도리로 생각했던 효의 덕목이다. 원래는 出必告 反必面(출필곡 반필면)이라 했다. 고할 告(고)는 뵙고 청한다는 뜻으로는 음이 ‘곡’이 되어 ‘출곡’으로 읽는 것이 좋다. 중국 五經(오경)의 하나인 禮(예)에 관한 경전 ‘禮記(예기)’에서 상세한 것이 실린 후 아동들의 한학서 ‘小學(소학)’에 까지 실려 널리 알려진 성어이다.

먼저 예기 曲禮(곡례) 상편에 있는 내용을 보자. 곡례는 각종 행사에 몸가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을 설명한 예법을 말한다고 한다. ‘모든 자식된 자는 나갈 때에는 반드시 나간다고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부모에게 낯을 보여야 한다(夫爲人子者 出必告 反必面/ 부위인자자 출필곡 반필면).’ 형제와 친구, 연장자에 대한 태도 등에도 가르침을 주는데 부모에게는 늙었다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있다. ‘평상시 자신을 늙은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恒言不稱老/ 항언불칭로)’는 것은 부모가 늙은 것을 더욱 느끼게 되니 삼가라는 것이다. 70세가 된 효자 老萊子(노래자)가 그 부모를 위해 색동저고리를 입고 재롱을 떤 것도 그런 뜻이 있었다.

소학은 南宋(남송)의 대유학자 朱熹(주희)의 저작이라 되어 있지만 실제 그의 친구인 劉淸之(유청지)의 원본에 가필한 것이라 한다. 여기에 인용한 내용이 어려워 우리나라서 四字一句(사자일구)로 엮은 것이 ‘四字小學(사자소학)’이다. 아동들도 알기 쉽게 정리한 것이라 千字文(천자문)과 함께 교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충효와 윤리도덕, 벗과의 교유 등 올바른 인성을 갖추도록 권장하고 있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父生我身 母鞠我身/ 부생아신 모국아신)’로 시작되는 孝行(효행)편에 성어가 나온다.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오면 반드시 뵈어라(出必告之 反必面之/ 출필곡지 반필면지). 먼 곳에 가 노는 것을 삼가고, 놀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곳에 있게 하라(愼勿遠遊 遊必有方/ 신물원유 유필유방).’

부모의 은혜를 알게 되는 것은 자식을 낳고 기를 때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복잡한 요즘 세상에 집을 나서고 들 때 이처럼 번거롭게 행하기는 어렵다. 또 멀리 떨어져 있다면 매번 알리지는 않더라도 부모에 걱정을 끼치지 않을 정도로 가끔씩 안부를 여쭙는다면 흡족해 할 것이다.

/ 제공 : 안병화 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안보당거安步當車 – 편안히 걷는 것으로 수레를 대신하다.

안보당거安步當車 – 편안히 걷는 것으로 수레를 대신하다.

안보당거(安步當車) – 편안히 걷는 것으로 수레를 대신하다.

편안 안(宀/3) 걸음 보(止/3) 마땅 당(田/8) 수레 거(車/0)

걷기는 바쁜 현대인에게 가장 권장되는 운동이다. 누구나 어디서든 할 수 있어 인간이 하는 가장 완벽한 운동이라고 한다.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 및 체지방률을 감소시키는 데에도 효과가 뛰어나다며 하루에 얼마 이상씩 걷도록 모두들 예찬한다.

천천히 편안히 걷는 것(安步)으로 수레를 대신한다(當車)는 이 말은 그만큼 유유하게 청렴한 생활을 한다는 말이다. 마음 느긋하게 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는 처음 뜻에서 고관대작들이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초야에 묻힌 생활을 가리키게 됐고 단순히 걷는 것을 예찬할 때 쓰기도 한다.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齊(제)나라에 재주가 많은 顔蠋(안촉, 蠋은 나비애벌레 촉)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벼슬에 뜻이 없어 초야에 은거하며 자유스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때 宣王(선왕)이 찾는다고 하자 하는 수 없이 궁궐을 찾았다. 왕이 그를 보고 앞으로 가까이 오라고 거만하게 불렀다.

왕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지만 안촉은 까딱도 않고 도로 자신에게 오라고 했다. 주위의 고관들이 안하무인의 무례를 일제히 꾸짖자 그는 태연히 대답한다. 이에게 걸어 나가면 임금에게 굽실거리는 것이 되고, 임금이 걸어 맞이하면 선비를 존중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옛날 선비 柳下惠(유하혜)의 무덤 주변 나무를 훼손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했고 왕의 머리를 가져오는 자는 큰 상금을 내린다고 했는데 그만큼 살아있는 왕이라도 죽은 선비만 못하다고 설명했다.

선왕은 안촉이 만만찮음을 알고 벼슬과 부귀영화를 약속했지만 사양한다. ‘식사가 늦으면 고기를 먹듯 맛날 것이고, 천천히 걸으면 수레를 탄 듯 편안할 것이며, 죄짓지 않고 사는 것을 고관대작이 되는 것으로 여기며, 청렴결백하게 살아가면 스스로 즐거울 것입니다(晩食以當肉 安步以當車 無罪以當貴 淸靜貞正以自虞/ 만식이당육 안보이당거 무죄이당귀 청정정정이자우).’ 前漢(전한)의 학자 劉向(유향)이 쓴 ‘戰國策(전국책)’ 齊策(제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높은 자리를 두루 차지했으면서도 산하 기관의 자리에 불을 켜는 고관들은 청문회 때마다 온갖 망신을 당하는 것이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할 만큼 했으면 그냥 욕심 없이 시장을 반찬 삼고 천천히 걷는 것을 운동 삼아 지내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한 사람을 많이 보니 답답하다. / 제공 : 안병화 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파라척결爬羅剔抉 - 긁거나 후벼 파내다, 남의 흠을 들추다.

파라척결爬羅剔抉 - 긁거나 후벼 파내다, 남의 흠을 들추다.

파라척결(爬羅剔抉) - 긁거나 후벼 파내다, 남의 흠을 들추다.

긁을 파(爪/4) 벌릴 라(网/14) 뼈바를 척(刂/8) 도려낼 결(扌/4)

어려운 한자로 이루어진 이 성어는 뜻도 섬뜩하다. 손톱 등으로 ‘긁는다’는 爬(파)는 搔爬(소파, 搔는 긁을 소)라 할 때 그 글자이고 爬蟲類(파충류)로 쓸 때는 ‘기어가다‘란 뜻이다. 뼈를 발라 도려낸다는 뜻의 剔抉(척결)은 범죄를 소탕하거나 선거 때 정당의 지도자들이 이 때까지의 잘못을 빌고 지지를 호소할 때 단골로 쓰는 말이다. 당선 후에는 씻은 듯이 잊어버리는 것을 되풀이해 뒤에 다시 들먹이면 깎을 뼈가 남아 있지도 않을 거라고 수군댄다.

이 두 글자가 모여서 손톱 등으로 긁고 그물로 잡아(爬羅) 뼈를 바르고 살을 도려낸다(剔抉)는 것은 처음 사용 때는 무시무시한 뜻이 아니라 묻혀있는 인재를 널리 발굴하여 적합한 자리에 등용시키는 좋은 의미를 가졌다. 그러다 한자 뜻대로 남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나 결점을 파헤친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이 성어는 뛰어난 문장가를 말하는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에 들어가는 唐(당)의 두 사람 중 韓愈(한유)의 ‘進學解(진학해)’에 등장한다. 쇠오줌과 말똥이라도 필요한 때를 대비하여 갖추는 것이 좋다는 牛溲馬勃(우수마발)의 성어가 나오는 곳이다.

학자는 오로지 학문 탐구에 정진하고 꾸준히 덕행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뛰어난 인재가 크게 쓰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불우한 생을 모냈던 孟子(맹자)와 荀子(순자)의 예로 들면서 토로한다. 국자감의 교수였던 자신이 학생들에게 학업의 중요성을 말하는 부분에 성어가 나온다. 오늘날 성군과 현령들은 간사한 사람을 멀리 하고 뛰어난 인재 등용에 힘쓴다면서 이어진다. ‘조그만 선행이라도 이름이 기록되고 한 가지 재주 있는 사람이라도 등용한다. 손톱으로 긁어내고 그물로 다잡듯 인재를 구하고 더러운 곳을 벗겨 광을 내듯 다듬는다(占小善者率以錄 名一藝者無不庸 爬羅剔抉 刮垢磨光/ 점소선자솔이록 명일예자무불용 파라척결 괄구마광).’ 때를 벗겨내고 광채를 낸다는 刮垢磨光(괄구마광)도 결점을 고치게 장점을 발휘하게 한다는 성어로 쓰인다.

한 방면에 뛰어난 인재가 있더라도 발휘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사장된다. 인사를 할 때 자신을 도왔던 사람을 우선하게 마련이라 재주가 묻히는 경우는 곳곳에서 보인다. 이런 인재를 주변에 묻은 흙을 털 듯 발굴해야 하는데 자기 사람만 챙기니 이런 폐습이야말로 척결할 대상이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입향순속入鄕循俗 – 다른 마을에 가면 그 지방의 풍속을 따름

입향순속入鄕循俗 – 다른 마을에 가면 그 지방의 풍속을 따름

입향순속(入鄕循俗) – 다른 마을에 가면 그 지방의 풍속을 따름

들 입(入/0) 시골 향(阝/10) 돌 순(彳/9) 풍속 속(亻/7)

세상 어디를 가든 그 지역만의 고유한 풍속이 있기 마련이다. 처음 그 지방을 방문하면서 자기들과 다르다고 야만스럽다고 욕하면 환영받지 못한다. 자기가 하던 대로 하지 말고 그곳 사람들의 문화와 풍습을 따른다면 조화롭게 동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마을에 들어갔을 때(入鄕) 그 풍속을 따른다(循俗)는 이 성어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란 서양 격언이 말해주는 그대로다. 그렇다고 이 말은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는 것처럼 약게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고 세상사에 대처하는 방식은 순리를 좇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隨鄕入鄕(수향입향), 入鄕從鄕(입향종향) 등의 같은 말이 있다.

이 성어는 여러 문헌에서 비슷하게 출전한다. 먼저 ‘淮南子(회남자)’의 齊俗篇(제속편)을 보자. 중국 前漢(전한)의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저술한 책이다. 春秋五霸(춘추오패)에 당당히 들어가는 楚(초)나라의 莊王(장왕)과 晉(진)의 文公(문공)은 옷차림으로 보면 도저히 군주의 예에서 벗어난 사람이었다. 장왕은 소매가 넓고 헐렁헐렁한 윗옷을 걸쳤고, 문공은 허름한 윗옷에 양가죽 옷을 걸치고 가죽 띠에 칼을 찼다. 이들이 그러면서 천하를 호령하고 제후들의 패자가 됐다. 이는 孔子(공자)와 孟子(맹자)의 鄒魯(추로) 지방 예만이 예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설명한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그 고장의 풍속을 따르고, 남의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서 꺼리는 바를 피해야 한다(入其國者從其俗 入其家者避其諱/ 입기국자종기속 입기가자피기휘).’

‘莊子(장자)’ 外篇(외편)의 山木(산목)에는 스승 老子(노자)에게 들은 것이라며 ‘그 풍속에 들어가면 그 풍속을 따라야 한다(入其俗 從其俗/ 입기속 종기속)’는 말이 보인다.

환경이 바뀌면 이전에 그곳서 금할 것을 물어보라는 뜻으로 入竟問禁(입경문금)이란 말도 비슷한 의미다. 한 조직의 장이 바뀐다고 이전의 내려오던 전통을 싹 무시하고 자기 할 바를 밀어 붙인다면 분란만 커진다. 이런 곳에서도 습속을 물어보는 것은 꼭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かけざん掛け算

かけざん掛け算

かけざん掛(け)算

=> 곱셈

하옥瑕玉 - 티가 있는 구슬, 완벽한 가운데 있는 한 가지 흠

하옥瑕玉 - 티가 있는 구슬, 완벽한 가운데 있는 한 가지 흠

하옥(瑕玉) - 티가 있는 구슬, 완벽한 가운데 있는 한 가지 흠

허물 하(玉/9) 구슬 옥(玉/0)

연한 녹색의 아름다운 보석인 玉(옥) 중에서 흠 없는 것이 있을까. 卞和(변화)란 사람이 발뒤꿈치를 잘리는 형을 받으면서도 가치를 지켰던 和氏之璧(화씨지벽)이나 그것을 강대국에 뺏기기 일보 직전에 藺相如(인상여, 藺은 골풀 린)가 되찾은 完璧(완벽)은 같은 옥이다. 완전무결한 이 옥 외에는 흠집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결점은 있다고 ‘옥에도 티가 있다’란 속담이 남았다. 옥은 쪼지 않으면 그릇을 만들 수 없다는 玉不琢 不成器(옥불탁 불성기)란 명언도 있다.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거나 좋은 것에 있는 사소한 흠은 ‘옥에 티’라 했다. 瑕疵(하자)라고 해도 똑 같다. 허물이 있는 구슬(瑕玉)이란 말은 아무리 값진 보배라고 해도 작은 허물이 있으면 제 값어치를 못한다는 뜻이다. 완벽한 가운데 아깝게도 한 가지 작은 흠이 있는 것을 비유하기도 하고, 잘 되어가는 일에 공연한 짓을 하여 사태를 악화시킬 때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말이 처음 사용된 곳은 ‘淮南子(회남자)’란 책에서다.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의 손자인 문학애호가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빈객들과 함께 다양한 주제로 저술한 책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옥에 티는 반드시 나쁜 의미만이 아니다. 說林訓(설림훈) 편에 실려 있는 내용을 보자. ‘쥐구멍을 함부로 뜯어고치려 한다면 마을의 문을 모두 부수게 되고, 작은 여드름을 짜다가 잘못 뾰루지가 나거나 등창이 된다. 그것은 흠이 있는 진주와 티가 있는 구슬을 그대로 놓아두면 온전할 것을 없앤다고 하다가 이지러뜨리는 것과 같다(治鼠穴而壞里閭 潰小皰而發痤疽 若珠之有纇 玉之有瑕 置之則全 去之則虧/ 치서혈이괴리려 궤소포이발좌저 약주지유뢰 옥지유하 치지즉전 거지즉휴)’ 潰는 무너질 궤, 皰는 여드름 포, 痤는 부스럼 좌, 疽는 종기 저, 纇는 실마디, 흠 뢰. 그냥 두어도 가치를 지니는 옥에 티를 지우려 하다가 모두를 잃게 된다는 뜻으로 썼다.

진정한 가치의 순수한 것은 구하기 어렵다. 계획에서부터 결과까지 일을 완전무결하게 해 내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떤 일에도 흠집은 있게 마련이고 또 그것은 상대방의 눈에 잘 띈다. 일부러 실수하려 한 흠이 아니라면 같이 해결해 나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남이 못되도록 결점을 침소봉대한다면 발전이 없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궁구물박窮寇勿迫 – 궁지에 몰린 도적을 쫓지 말라

궁구물박窮寇勿迫 – 궁지에 몰린 도적을 쫓지 말라

궁구물박(窮寇勿迫) – 궁지에 몰린 도적을 쫓지 말라

다할 궁(穴/10) 도적 구(宀/8) 말 물(勹/2) 핍박할 박(辶/5)

‘독 안에 든 쥐’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처지를 빗댄 말이다. 그런데 독 안으로 몰리기 전까지 순순히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막다른 지경에 이르면 약한 자도 마지막 힘을 다하여 반항한다는 ‘궁지에 빠진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도 있으니 말이다. 성어 窮鼠齧猫(궁서설묘, 齧은 깨물 설)와 똑 같다. 비슷한 뜻의 말이 많다. 쫓기는 짐승은 강적에게도 덤비는 困獸猶鬪(곤수유투), 사로잡힌 새도 막다르면 수레를 엎어버린다는 禽困覆車(금곤복거), 새가 막다른 곳까지 쫓기면 상대방을 쫀다는 鳥窮則啄(조궁즉탁) 등이다. 어느 것이나 곤란한 지경에 있는 사람을 모질게 다루면 해를 입게 되니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다.

전쟁판에도 이 말은 통용된다. 적을 막다른 곳으로(窮寇) 몰아넣지 말라(勿迫)는 것으로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의 전략가 孫子(손자)가 타일렀다. 적을 사지로 몰아넣어 맹공을 퍼부으면 결사적으로 반격하여 도리어 아군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손자병법’에서 말한다. 적을 완전히 섬멸하고 완전한 승리를 눈앞에 두고서 퇴로를 열어둔다는 것은 소극적인 전법이라 할 수 있지만 어찌 보면 미래를 위해 인간적인 배려를 한 것이라 더 가치가 있다.

적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패배를 안겼기 때문이다. 서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유리한 기회나 장소를 확보하는 것을 다룬 軍爭(군쟁)편에 실려 있다. 전쟁 중에 지켜야 할 여덟 가지 금기사항을 나열하면서 제일 끝에 내세운다. 내용을 보자. ‘용병의 원칙은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적을 올려다보면서 공격하지 말고, 언덕을 등지고 있는 적과 싸우지 않는다(故用兵之法 高陵勿向 背丘勿逆/ 고용병지법 고릉물향 배구물역). 거짓으로 패한 척하는 적은 추격하지 말고, 적의 정예부대를 공격하지 않는다(佯北勿從 銳卒勿攻/ 양배물종 예졸물공). 미끼로 유인하는 부대는 공격하지 말고, 돌아가는 군대의 퇴로를 끊지 않는다(餌兵勿食 歸師勿遏/ 이병물식 귀사물알). 포위된 적군은 한 쪽을 트게 하고, 궁지에 몰린 적은 성급하게 공격하지 않는다(圍師遺闕 窮寇勿迫/ 위사유궐 궁구물박).’

佯은 거짓 양, 遏은 막을 알.

힘이 있는 위치에 있을수록 아랫사람의 사정을 잘 이해하면 진정한 마음을 얻는다. 99를 가진 사람이 마지막 1을 가진 사람에게서 1을 빼앗는다면 이판사판으로 나와 99도 잘 지켜내지 못한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