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6일 수요일

◇ 드라마 '더 킹:영원의 군주' 속 비밀의 숲은 부산 기장 아홉산 대숲

◇ 드라마 더 킹:영원의 군주 속 비밀의 숲은 부산 기장 아홉산 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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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더 킹:영원의 군주 속 비밀의 숲은 부산 기장 아홉산 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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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작가의 신작 ‘더 킹:영원의 군주(이하 ‘더 킹’)’는 설정도 배경도 별난 드라마다. 현재의 대한민국과 가상의 대한제국이 평행세계로 공존한다는 설정의 이야기. ‘차원의 문’을 넘나들게 된 대한제국의 황제 이곤(이민호)과 대한민국의 경찰 정태을(김고은)이 그렇게 만나 연을 맺는다. 차원의 문이 있는 대숲, 황제가 사는 황실 등 대한제국의 신비로운 공간들은 대체 어디서 촬영했을까.

‘더 킹’ 속 대한제국에는 청와대가 없다. 그 대신 부산 동백섬에 황제의 거처가 있다. 해운대 빌딩 숲 사이로, 성대한 황궁이 자리한 동백섬의 모습이 여러 차례 지나간다. 이순신 장군 동상도 광화문이 아니라 동백섬 꼭대기에 세워져 있다. 물론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장면들이다.

진짜도 있다. 차원의 문이 있는 동백섬의 신비로운 대숲은 부산시 기장군의 아홉산(361m) 자락에서 촬영했다. 남평 문씨 가문이 400년 가까이 9대에 걸쳐 가꿔 온 52만㎡(약 15만 평) 숲이다. 출입을 엄격히 막았다가 2016년부터 숲 일부를 개방했다. 숲 이름은 낯설지만, 풍경은 퍽 익숙하다. 영화 ‘군도’ ‘대호’,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등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더 킹’에서 그려진 대로 대나무가 아홉산숲을 빽빽이 채운다. 지름이 어른 허벅지만 한 맹종죽, 거북이 등 껍질을 닮은 구갑죽 등 대나무만 18종에 이른다.

차원의 문으로 등장하는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지금도 대숲 한가운데 서 있다(사진). 촬영을 위해 임시로 세운 돌기둥인데, 드라마 팬의 인증사진 장소로 톡톡히 인기를 누리고 있단다. 주말에는 하루 2000명이 다녀가지만, 평일엔 방문객이 200명 정도로 한적하다.

해운대 해안도로, 수영만 요트경기장, 벡스코, 이기대공원 등 이 밖에도 부산의 곳곳이 등장한다. 정태을이 요트를 타고 황궁으로 진입하는 야간 장면 속 거대한 다리는 광안대교, 이곤이 말을 타고 달리던 해변은 다대포 해수욕장이다.

-중앙일보-

◇ 강릉 노추산, 어미의 마음으로 쌓은 3000 탑

◇ 강릉 노추산, 어미의 마음으로 쌓은 3000 탑

◇ 강릉 노추산, 어미의 마음으로 쌓은 3000 탑

사람은 이미 돌아가고 없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없는 사람을 찾아 나섰습니다.

사람 없는 사람 사진을 찍으려 나선 겁니다.

그 사람은 아홉해 전에 돌아갔습니다만,

남긴 돌무더기는 늘 거기 있을 터기 때문입니다.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산 716, 노추산 자락에 들어섰습니다.

끝 간 데 없이 돌무더기가 이어졌습니다.

돌 놓고, 굄돌 올리고, 그 위에 또 돌 올리기를 수백·수천 차례,

우리는 그렇게 쌓아 올린 돌무더기 하나를 탑이라 부릅니다.

이런 탑이 자그마치 3000개가 넘습니다.

숫제 탑 하나하나가 이어진 게 길입니다.

차순옥이란 여인이 홀로 쌓았다고 합니다.

자그마치 스무 여섯해, 움막을 짓고 살며 그리했다고 합니다.

구천사백구십 날 돌 하나씩 쌓은 게 탑이 되고 길이 된 겁니다.

그 오랜 날 산중에서 홀로 3000탑을 쌓은 사연이 애달픕니다.

서울에서 강릉으로 시집와 슬하 4남매를 둔 어머니에게

자식 중 둘이 먼저 떠나는 우환이 겹쳤습니다.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우환이 사라질 것이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예서 비롯된 겁니다.

돌 하나, 굄돌 하나하나가 어머니의 염원인 겁니다.

자식을 위한 간절한 마음이 쌓이고 쌓인 겁니다.

이름하여 모정탑(母情塔)입니다.

모정탑을 만나고 가는 이들이 돌을 하나씩 쌓습니다.

또 다른 탑이 생겨납니다. 또 다른 탑 길이 됩니다.

어머니는 돌아갔습니다만,

돌에 밴 어머니의 염원이 우리의 마음에도 탑 길을 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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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권혁재의 사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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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급 공무원 vs 삼성전자

◇ 7급 공무원 vs 삼성전자

◇ 7급 공무원 vs 삼성전자

공무원 시험이나 취업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논쟁적인 질문이 있다. 7급 공무원과 삼성전자 중 어느 곳을 택하겠느냐. 대강 반응을 보면 7급 공무원의 선호도가 더 높다. ‘가늘고 길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다. 예전과 다르다지만 삼성과 비교하면 여전히 업무 강도나 실적 압박감, 경쟁 분위기는 덜하다. 근무의 ‘질’이 더 좋다는 얘기다. 연봉은 삼성보다 적다. 그러나 별문제 없으면 정년이 보장된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100세까지 사는 것을 가정하면 삼성보다 긴 평균 근속연수와 공무원연금 덕분에 7급·9급 공무원의 평생 총소득이 삼성전자보다 각각 8억1000만원·3억6000만원 많다는 심층분석을 곁들인 주장도 나온다.

올해 초 한 커뮤니티에서 실시한 투표에선 7급 공무원이 더 좋다는 답변이 68.7%로 삼성그룹(31.3%)의 배를 웃돌았다. 시중은행과의 비교에선 격차가 더 벌어졌다.

정부는 청년들의 이런 공직 사회에 대한 열망을 더 부채질하고 있다. 수많은 비판에도 공무원 수를 급격히 늘리고 있어서다. 전체 공무원 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10만4508명. 박근혜 정부 말보다 7만2177명 증가했다. 연 단위로 환산해 계산하면 매년 평균 2만7271명 늘어난 셈이다. 이명박(연 2423명)·박근혜(9875명) 정부는 물론 공무원 수를 크게 늘린 노무현(1만4889명) 정부의 배 정도다.

이는 퇴직 등 자연감소분을 뺀 수이기에 신규 채용 규모는 더 크다. 특히 올해 신규 채용은 6만 명이 넘는다. 역대 최대 수준이다. 정부는 국가공무원 정원 상한을 3년 연속 늘렸는데, 이 역시 전례 없는 일이다. 여기에 매년 사상 최대 임직원 수를 경신하고 있는 공기업·공공기관까지 합치면 공공부문의 비대화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정부는 청년 고용 증대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민생 분야에서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증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공공조직은 한번 늘리면 나중에 할 일이 없어져도 쉽게 없앨 수 없다. 문 대통령은 2022년까지 총 17만4000명의 공무원을 증원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국회예산정책처는 30년간 약 328조원(연금 추가분 제외), 시민단체인 한국납세자연맹은 약 419조원의 비용을 예상했다. 우리 자식·손자 세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복지지출에, 공무원 증원 부담까지 떠안는 셈이다. 늘릴 자리가 10년 뒤, 20년 뒤에도 꼭 필요한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 이유다.

마중물 역할도 잠시다. 민간의 고용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공공부문이 역대 최대 규모로 운영되면 민간의 활력이 떨어져 전체 일자리가 줄어든다. 공무원이 한 명 늘면 민간 일자리 1.5개가 사라진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도 있다. 외려 생산성이 왕성한 청년층이 경제활동 대신 시험에 매달리는 이른바 ‘공시’ 낭인을 양산하는 부작용을 키운다. 무엇보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이끄는 주체는 도전정신과 독특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창조형 인재들이다. 청년 인재들이 민간이 아닌 공공부문으로 몰린다면 다른 분야에서 혁신과 창조가 일어날 수 있을까.

경제관료 출신으로 한국개발연구원장과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을 지낸 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의 조언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90년대에는 생산가능인구가 매년 수십만 명씩 늘어 그중 일부를 공공부문에서 써도 괜찮았다. 그러나 2017년 이후에는 생산가능인구가 정점을 찍고 줄고 있기 때문에 한정된 인력을 공공부문에 쓰는 것은 민간의 동력을 죽이는 길이다. 그리스·아르헨티나 등이 방만한 정부와 해이한 공무원으로 인해 위기를 맞았다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앙일보-

◇ 강릉 노추산, 어미의 마음으로 쌓은 3000 탑

◇ 강릉 노추산, 어미의 마음으로 쌓은 3000 탑

◇ 강릉 노추산, 어미의 마음으로 쌓은 3000 탑

사람은 이미 돌아가고 없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없는 사람을 찾아 나섰습니다.

사람 없는 사람 사진을 찍으려 나선 겁니다.

그 사람은 아홉해 전에 돌아갔습니다만,

남긴 돌무더기는 늘 거기 있을 터기 때문입니다.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산 716, 노추산 자락에 들어섰습니다.

끝 간 데 없이 돌무더기가 이어졌습니다.

돌 놓고, 굄돌 올리고, 그 위에 또 돌 올리기를 수백·수천 차례,

우리는 그렇게 쌓아 올린 돌무더기 하나를 탑이라 부릅니다.

이런 탑이 자그마치 3000개가 넘습니다.

숫제 탑 하나하나가 이어진 게 길입니다.

차순옥이란 여인이 홀로 쌓았다고 합니다.

자그마치 스무 여섯해, 움막을 짓고 살며 그리했다고 합니다.

구천사백구십 날 돌 하나씩 쌓은 게 탑이 되고 길이 된 겁니다.

그 오랜 날 산중에서 홀로 3000탑을 쌓은 사연이 애달픕니다.

서울에서 강릉으로 시집와 슬하 4남매를 둔 어머니에게

자식 중 둘이 먼저 떠나는 우환이 겹쳤습니다.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우환이 사라질 것이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예서 비롯된 겁니다.

돌 하나, 굄돌 하나하나가 어머니의 염원인 겁니다.

자식을 위한 간절한 마음이 쌓이고 쌓인 겁니다.

이름하여 모정탑(母情塔)입니다.

모정탑을 만나고 가는 이들이 돌을 하나씩 쌓습니다.

또 다른 탑이 생겨납니다. 또 다른 탑 길이 됩니다.

어머니는 돌아갔습니다만,

돌에 밴 어머니의 염원이 우리의 마음에도 탑 길을 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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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권혁재의 사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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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벽返璧 - 구슬을 되돌려 보냄, 받은 선물을 돌려 줌

반벽返璧 - 구슬을 되돌려 보냄, 받은 선물을 돌려 줌

반벽(返璧) - 구슬을 되돌려 보냄, 받은 선물을 돌려 줌

돌이킬 반(辶/4) 구슬 벽(玉/13)

남에게 물건 등을 건네는 것이 선물이다. 뇌물은 사사로운 일에 이용하기 위해 건네는 부정한 돈이나 물건을 말한다. 이처럼 사전에서는 명확히 구별하지만 주고받는 과정은 큰 차이가 없다. 어떤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마음의 정을 나누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다. 선물과 뇌물의 차이를 잘 알 수 있게 소개한 것이 있다.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옮겨서도 받을, 혹은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선물이고, 현재 그 직위에 있기 때문에 수수하는 것이라면 뇌물이다. 영국의 한 기업윤리보고서에서 제시한 것이라 한다.

璧玉(벽옥)을 되돌려 보낸다는 이 성어는 남이 선사한 물건을 받지 않고 되돌려 보내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같은 구슬이라도 璧(벽)은 납작한 것, 玉(옥)은 둥근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受飧反璧(수손반벽, 飧은 저녁밥 손)의 준말이고 返錦(반금)도 같은 말이다.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의 뒷날 24대 文公(문공)이 되는 重耳(중이)의 도피생활 때 이야기에서 이 말이 유래했다. 중이는 19대 獻公(헌공)의 둘째 아들이었다. 헌공이 이민족을 정벌하면서 데려온 미인 驪姬(여희)가 왕비가 된 후 자신의 소생을 태자로 세우려 했다. 간신들과 합심, 여희는 장자를 모살하고 중이와 동생을 이웃 나라로 내쫓았다.

중이는 이후 19년 동안이나 암살을 피해 여러 나라를 떠돌았는데 曹(조)나라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중이의 갈비뼈가 통뼈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조나라의 대부 僖負羈(희부기, 僖는 즐거울 희)의 부인은 남편에게 말했다. 진나라 사람들이 예사롭지 않아 중이는 반드시 본국에서 왕이 될 것이라며 일찌감치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고 권했다. ‘그래서 희부기는 중이에게 소박한 저녁밥을 담아 보내면서 그 속에 구슬을 묻어 두었다. 중이는 음식만 받고 구슬은 되돌려 보냈다(乃饋盤飧寘璧焉 公子受飧反璧/ 내궤반손치벽언 공자수손반벽).’ 饋는 먹일 궤, 寘는 둘 치. 중이는 이 구슬에 다른 뜻이 있어 뇌물이라 본 것이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 僖公(희공) 23년 조에 나온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경국지색傾國之色 -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정도의 미인

경국지색傾國之色 -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정도의 미인

경국지색(傾國之色) -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정도의 미인

기울 경(亻-11) 나라 국(囗-8) 갈 지(丿-3) 빛 색(色-0)

임금이 정사는 뒷전인 채 여색에 빠져 나라를 기울게 할(傾國) 정도면 뛰어나게 아름다운 미인을 가리킬 것이다. 임금뿐 아니라 필부들도 미색을 멀리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니 미인을 나타내는 성어도 숱하게 많다. 그 중에서도 이 말이 거창한 만큼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나라를 흔들 정도의 절세미인을 나타내기는 唐(당)나라 白樂天(백낙천)이 \長恨歌(장한가)\에서 楊貴妃(양귀비)를 두고 "漢(한)의 武帝(무제)는 여색을 중히 여겨 뛰어난 미인을 생각하다(漢皇重色思傾國/ 한황중색사경국)"고 노래한 것이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처음 이 성어가 나온 것은 이보다 훨씬 앞서고 뜻하는 바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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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邦(유방)이 項羽(항우)와 다툴 때 부모처자가 모두 항우에 잡혀 포로가 된 적이 있었다. 말 잘하는 侯公(후공)이라는 선비가 담판 끝에 찾아오자 유방이 칭찬하기를 그는 천하의 변사이다. 그가 있는 곳에는 변설로 나라를 기울게 한다(此天下辯士 所居傾國/ 차천하변사 소거경국)고 했다. 史記(사기) 항우本紀(본기)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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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천하절색이란 뜻으로 사용되기는 백낙천이 언급한 한무제 때의 궁중가수 李延年(이연년)이 노래한 것이 처음이라 한다. 그는 노래 솜씨뿐 아니라 곡조를 만들고 가사를 붙이는 재주도 뛰어났다. 어느 때 연회에서 짧은 곡조를 읊었다. 북방에 미인 있으니 세상에 다시없을 정도로 빼어났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을 기울게 하고 다시 돌아보면 나라를 기울게 한다네(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북방유가인 절세이독립 일고경인성 재고경인국). 漢書(한서) 外戚傳(외척전)에 실렸다. 무제는 이 노래의 주인공 이연년의 여동생을 불러 말년을 같이 했다. 李夫人(이부인)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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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방관袖手傍觀 - 팔짱을 끼고 옆에서 보다, 그대로 버려두다.

수수방관袖手傍觀 - 팔짱을 끼고 옆에서 보다, 그대로 버려두다.

수수방관(袖手傍觀) - 팔짱을 끼고 옆에서 보다, 그대로 버려두다.

소매 수(衣/5) 손 수(手/0) 곁 방(亻/10) 볼 관(見/18)

옆에서 큰 일이 벌어졌는데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 필요도 없는 일이다. 자기에게 관계없는 일인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점잖은 사람이라도 도덕적인 일보다 흥미로운 일에 더 관심을 가진다는 ‘남의 집 불구경 않는 군자 없다’는 속담까지 있는 판이다.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인데도 전혀 그 일에 상관하지 않겠다는 吾不關焉(오불관언)이나 너는 너 할대로 하고 나는 나 할대로 하겠다는 爾爲爾 我爲我(이위이 아위아, 爾는 너 이)와 뜻이 통하는 성어다.

손을 소매 속에 넣고(袖手) 옆에서 보고만 있다(傍觀)는 이 말도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요즘의 옷이야 소매가 좁아 손이 잘 들어가지 않지만 옛날 한복은 주머니가 없고 저고리 품이 풍성했다. 물건을 넣거나 손이 시릴 때는 주머니 역할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팔짱끼듯이 소매 속으로 팔을 넣기도 하는데 점잔을 떠는 행위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남의 급한 일을 도와줄 수가 없다. 간섭하거나 거들지 아니하고 그대로 버려둠을 이르는 말이 됐다.

이 성어는 일상에서 많이 사용되고 우리 고전에서도 비유한 것이 많이 나온다. 그래도 먼저 나타나는 곳은 唐(당)나라의 유명한 문학자이자 사상가 韓愈(한유, 768~824)의 글이라 본다. 문체개혁을 함께 했던 친구 柳宗元(유종원)이 먼저 죽었을 때 지은 ‘祭柳子厚文(제유자후문)’에서다. 한유의 자는 退之(퇴지), 유종원의 자가 子厚(자후)다. 부분을 보자. ‘나무를 잘 베지 못하는 사람은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얼굴에 땀이 범벅이 되는데(不善爲斫 血指汗斫/ 불선위작 혈지한작), 나무를 잘 베는 장인은 오히려 옆에서 쳐다보며 손을 거둬 옷소매 속에 넣고 있다(巧匠旁觀 縮手袖間/ 교장방관 축수수간).’ 유종원의 명문장이 널리 알려지기 전 떠난 것을 애달파하고 있다. 斫은 쪼갤 작, 旁은 곁 방.

복잡한 세상, 남에게 신경 쓸 여유도 없는 오늘날 이웃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많다. 죽은 지 며칠 만에 밝혀지는 고독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 중에도 화재사실을 알리고 목숨을 잃거나 위험천만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내 일같이 적극 돕는 의인이 나타난다. 직접 상관이 없다고 팽개치면 남도 자기를 똑 같이 대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양금택목良禽擇木 -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앉는다.

양금택목良禽擇木 -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앉는다.

양금택목(良禽擇木) -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앉는다.

어질 량(艮-1) 새 금(禸-8) 가릴 택(扌-13) 나무 목(木-0)

사람은 살아가면서 선택의 길목에 자주 서게 된다. 그럴 때 대체적으로 내용보다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기 쉽다. 눈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통찰력까지 갖고 있기가 드물기 때문이다. 여기에 좋은 격언이 따른다. 재주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은 있어도 판단력을 지니고서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좋은 새(良禽)는 나무를 가려서 깃들인다(擇木)는 뜻의 이 말은 현명한 인재는 자기의 능력을 키워줄 훌륭한 사람을 골라서 섬긴다는 뜻이다. 자신의 능력은 자기가 잘 안다고 보고 뜻을 펼칠 곳을 판단하는데 나무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익만을 보고 움직이다 모진 놈 곁에 가서 벼락 맞을 수도 있으니 잘 가려야 한다. 짐승을 나타내는 禽獸(금수)에서 禽은 날짐승, 獸는 네 발과 털이 있는 길짐승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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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丘明(좌구명)의 春秋左氏專(춘추좌씨전)에 유래가 나온다. 孔子(공자)가 치국의 도를 펼치기 위해 여러 제후국을 유세하던 중 衛(위)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대부 孔文子(공문자)가 공자를 불러 의견을 구했다. 이웃 晉(진)나라에서 망명해 온 대부의 딸이 위의 고관과 결혼했는데 낳은 아들이 자란 뒤 가문을 잇지 않고 도주했다. 공문자가 이 망명한 아들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공자에게 이에 대해 자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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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제사지내는 일은 배운 바 있지만 전쟁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며 물러 나왔다. 숙소로 돌아 온 공자는 제자들에게 즉시 위나라를 떠날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 영문을 모른 제자들에게 말한다. 새가 나무를 택하지, 나무가 어찌 새를 택할 수 있겠는가(鳥則擇木 木豈能擇鳥/ 조즉택목 목기능택조)? 전쟁만 말하는 나라에서 무슨 뜻을 펼칠 수 있겠는가 하며 철수를 서둘렀다. 哀公(애공) 11년 조에 실려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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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오지자웅誰知烏之雌雄 - 까마귀의 암수를 누가 알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다.

수지오지자웅誰知烏之雌雄 - 까마귀의 암수를 누가 알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다.

수지오지자웅(誰知烏之雌雄) - 까마귀의 암수를 누가 알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다.

누구 수(言/8) 알 지(矢/3) 까마귀 오(灬/6) 갈 지(丿/3) 암컷 자(隹/6) 수컷 웅(隹/4)

검은색은 대체로 어두움과 죽음을 상징하는데 이런 색깔을 온통 뒤집어쓴 새가 까마귀다. 까마귀는 예언을 할 수 있고 늙은 어미에게 反哺之孝(반포지효)하는 효성스런 새이지만 검은 색으로 인해 불길하고 불운을 가져오는 새로 배척받는다. 까마귀의 집단은 리더가 없는 단순한 집합체라는데, 이 때문에 烏合之卒(오합지졸)이라고 얕보인다. 보통 새들은 수컷이 암컷보다 깃털도 화려하고 몸통도 더 큰데 까마귀는 형태도 비슷하며 색깔도 다 같이 검기만 해서 어느 것이 암놈인지 수놈인지 구별 못한다고 화풀이도 당한다.

까마귀의 암컷과 수컷(烏之雌雄)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誰知)라는 이 말은 선악이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울 때 비유적으로 쓴다. 줄여서 烏之雌雄(오지자웅)이라 해도 같다. 중국 고대 周(주)나라에서 약 3000년 전부터 전해지던 시를 모은 ‘詩經(시경)’에서 유래했으니 역사도 오래다. 모두 305편의 시가 4개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중 잔치 때 사용되던 음악이라는 小雅(소아)편에 실려 있다. 모두 13개장으로 되어 있는 正月(정월)이란 시의 다섯 번째 부분을 보자.

‘산이 비록 낮다고 하지만 산등성이도 있고 구릉도 있네(謂山蓋卑 爲岡爲陵/ 위산개비 위강위릉), 백성들의 뜬소문을 어찌하여 막지 못하나(民之訛言 寧莫之懲/ 민지와언 영막지징), 저 노인장을 불러 꿈을 점치는 사람에게 물어보네(召彼故老 訊之占夢/ 소피고로 신지점몽), 저마다 자기가 성인이라 하니 누가까마귀의 암수를 구별할 수 있으리(具曰予聖 誰之烏之雌雄/ 구왈여성 수지오지자웅).‘ 이 시는 소인배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를 어지럽히자 이를 탄식한 내용이다. 주나라의 포악한 幽王(유왕)을 규탄한 것으로 해석하는 내용이다.

죄를 가릴 때 주장이 팽팽하면 범인을 찾기 어렵다. 단시일에 해결 못하고 미궁에 빠진 범죄라도 세월이 지나면 해결된다. 하지만 가치에 대한 판단이라면 사람마다 다르므로 대립할 수밖에 없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하면목견지何面目見之 –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을 대하겠는가

하면목견지何面目見之 –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을 대하겠는가

하면목견지(何面目見之) –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을 대하겠는가

어찌 하(亻/5) 낯 면(面/0) 눈 목(目/0) 볼 견(見/0) 갈 지(丿/3)

얼굴과 눈(面目)은 자신을 남에게 보여주는 첫 번째 신체기관이다. 자기도 남의 됨됨이를 얼굴과 눈으로 평가한다. 사람이나 사물의 겉모습만 본다는 위험이 있으나 우선 보이는 것이 얼굴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염치가 없으면 ‘얼굴이 두껍다’고 하고 죄인의 얼굴에 먹줄로 죄명을 새기는 黥(경)을 가장 무서운 형벌로 여겼다. 그래서 면목은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인 체면과 같이 인격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면목이 들어간 말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무슨 낯이 있어(何面目) 남을 보겠는가(見之)란 이 성어다. 실패하고서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겠는가 하며 項羽(항우)가 남긴 최후의 말에서 나왔다. 無面渡江(무면도강), 無面渡江東(무면도강동)이라고도 한다.

중국 秦始皇(진시황, 기원전 259~210)이 죽은 뒤 혼란의 와중에 빠진 천하는 항우와 劉邦(유방)의 楚漢(초한) 쟁패로 좁혀졌다. 초기엔 ‘힘이 산을 뽑는(力拔山/ 역발산)’ 항우가 기세를 떨쳤으나 5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유방에 몰리게 되었다. 垓下(해하)에서 四面楚歌(사면초가)로 기력을 잃은 항우군이 참패를 당한 뒤 800여 기병을 이끌고 포위망을 뚫었다. 정신없이 쫓기는 중에 한 농민이 길을 잘못 가르쳐줘 수천의 추격군에 몰린 초군은 烏江(오강)에 이르렀을 때는 26명만이 남았다.

오강에서 배를 준비하고 기다리던 亭長(정장)이 항우에게 건너기를 권했다. 강을 건너기만 하면 처음 군사를 일으킨 江東(강동)이니 그곳에서 다시 왕업을 도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항우는 웃으면서 하늘이 자신을 버렸는데 강을 건널 수 없다고 했다. 강동의 자제 8000명과 함께 이 강을 건넜는데 지금 돌아갈 자는 아무도 없다면서 말한다. ‘설령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삼아준다 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볼 수 있겠는가(縱江東父兄憐而王我 我何面目見之/ 종강동부형련이왕아 아하면목견지)?’ 이렇게 말하고는 烏騅馬(오추마)를 정장에게 주고 칼로만 대적하다 옛 부하였던 呂馬東(여마동)을 보자 현상금을 가지라며 목을 찔러 31세의 생을 마감했다. ‘史記(사기)’ 항우본기에 실린 내용이다.

누구나 잘못을 알고 있는데 자신만 모르는 얼굴 두꺼운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는 만큼 실수할 수는 있어도 그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거나 숨긴다면 더 큰 화가 돌아온다. 항우처럼 목숨을 던질 일이 아니l라면 잘못을 인정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옳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