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7일 목요일

흥이항이興伊恒伊 - 누가 흥이야 항이야 하랴,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다.

흥이항이興伊恒伊 - 누가 흥이야 항이야 하랴,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다.

흥이항이(興伊恒伊) - 누가 흥이야 항이야 하랴,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다.

일 흥(臼/9) 저 이(亻/4) 항상 항(⺖/6) 저 이(亻/4)

음률이 비슷한 이 성어를 보면 먼저 興淸亡淸(흥청망청)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듯하나 거리가 멀다. 흥청망청은 황음에 빠진 조선 燕山君(연산군)이 採紅使(채홍사)를 두고 전국에서 뽑아 올린 미인을 가리켜 흥청이라 했고 그로 인해 망했다고 망청이라 했다. 여기에서 앞을 생각하지 않고 멋대로 즐기거나 돈과 물건을 마구 낭비하는 것을 뜻하게 됐다. 興伊(흥이)와 恒伊(항이)는 형제의 이름으로 누가 흥이야, 항이야 할까 라는 말이다. 자신과 전혀 관계가 없는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사돈집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는 曰梨曰柿(왈리왈시)와 상통한다.

흥이 항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형제가 상이한 뜻으로 이 성어가 유래했다고 전한다. 먼저 조선 후기의 학자 趙在三(조재삼)의 ‘松南雜識(송남잡지)’에 실린 내용을 보자. 天文(천문)에서 동식물까지 33개 부문을 기술한 백과사전인 이 책의 方言(방언) 편에 속담을 한역한 부분이 나온다. 肅宗(숙종)대 조선 후기 驪興(여흥) 閔氏(민씨) 가문에 閔百興(민백흥)과 閔百恒(민백항)이란 형제 문신이 있었다. ‘이들이 나란히 강원감사를 지냈는데 모두 선정을 베풀어 형인 흥이 낫다, 동생인 항이 낫다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론이 분분했다(兄弟相繼爲江原監司 有善政 至今稱 興伊恒伊/ 형제상계위강원감사 유선정 지금칭 흥이항이).’

다른 이야기는 중기의 문신이자 모두 영의정을 지낸 金壽興(김수흥), 金壽恒(김수항) 형제가 등장한다. 이들은 높은 자리에서 국사를 처리하면서 독단이 심했는지 세간의 평판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러자 이들 형제가 ‘우리들이 힘써서 잡은 권세를 행하는데 누가 감히 흥이야 항이야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민씨 흥이 항이 형제와 김씨 흥이 항이 형제가 각각 다른 의미로 쓰이게 된 연유다.

자신이 맡은 바를 묵묵히 잘 처리하는 사람은 남이 뭐라 해도 갈 길을 간다. 자신의 임무도 신통찮게 하는 사람이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은 잘한다. ‘사람마다 저 잘난 맛에 산다’는 말대로 설사 잘못 처리한 일이라도 남이 지적하면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남의 흉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먼저 자기 자신을 먼저 살펴볼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매검매우賣劍買牛 - 칼을 팔아 소를 사다, 전쟁을 그만 두고 농사짓다, 평화세상이 되다.

매검매우賣劍買牛 - 칼을 팔아 소를 사다, 전쟁을 그만 두고 농사짓다, 평화세상이 되다.

매검매우(賣劍買牛) - 칼을 팔아 소를 사다, 전쟁을 그만 두고 농사짓다, 평화세상이 되다.

팔 매(見/8) 칼 검(刂/13) 살 매(見/5) 소 우(牛/0)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 성경에 나오는 말이다. 같은 칼이라도 한쪽만 날이 있는 刀(도)는 물건을 베는데 쓰고, 양날이 있는 劍(검)은 무기로 쓴다고 대체로 분류한다. 가장 오래된 무기인 칼은 양쪽의 날로 인해 남을 위협할 수도 있지만 자신도 위험하다. 나라 사이의 전쟁에서나 세력을 모아 대항할 때도 필요한 무기, 칼을 더 이상 소용없다고 팔아(賣劍) 농사지을 소를 사게 한다면(買牛), 어리석은 일이 아니라 백성을 가장 잘 다스리는 현명한 방법이었다. 원래는 봉건 통치자들이 불만을 품고 봉기한 농민들로 하여금 칼을 놓고 농사를 짓게 한다는 뜻으로 송아지를 산다는 賣刀買犢(매도매독)도 같은 말이다.

前漢(전한)의 10대 宣帝(선제) 때 명신이었던 龔遂(공수, 龔은 공손할 공)의 이야기에서 유래된 성어다. 선제는 즉위하기 전 각지를 유랑하며 일반 백성의 생활을 체험해 고난도 이해하려 했다. 왕에 오른 뒤 渤海(발해) 지역에 9년에 걸친 한발이 닥치자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관아에서도 속수무책이었다. 왕이 파격적으로 그 지역 태수를 모집했는데 주변에서 공수를 추천했다. 당시 공수는 70이 넘은 왜소한 노인이었지만 왕이 자신을 파견하려는 목적이 도적들을 감화시키기 위한 것임을 알았다. 혼란한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은 엉킨 실을 푸는 것과 같아서 서두르면 안 되니 차분히 기다려달라고 당부하고 부임지로 떠났다.

변경에 다다랐을 때 발해 지역관원들이 안전을 위해 병사를 보내왔으나 모두 돌려보낸 뒤 공표했다. 도적을 잡던 관병들은 고향으로 가고, 낫과 호미를 들고 있는 사람은 양민으로 볼 것이니 관리들은 그들을 해치지 말라고 명했다. 부임 후 즉시 곡창을 열어 구제하니, 백성들은 도적질을 그만 두고 농사를 짓는 등 한 순간에 혼란이 가라앉았다. 공수는 만나는 사람마다 나무와 채소를 심고 가축을 기르도록 권유하고 ‘칼을 차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칼을 팔아 소나 송아지를 사게 했다(民有帶持刀劍者 使賣劍買牛 賣刀買犢/ 민유대지도검자 사매검매우 매도매독).’ 班固(반고)의 ‘漢書(한서)’ 循吏(순리)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いいかげんいい加減·

いいかげんいい加減·

いいかげんいい加減·

=> 적당함, 알맞음, 꽤, 상당히, 무책임한 모양, 엉터리

가담항설街談巷說 - 길거리에 떠도는 이야기

가담항설街談巷說 - 길거리에 떠도는 이야기

가담항설(街談巷說) - 길거리에 떠도는 이야기

거리 가(行/6) 말씀 담(言/8) 거리 항(己/6) 말씀 설(言/7)

길거리에서 떠도는 이야기(街談)나 일반 사람들 사이에 오고가는 소문(巷說)을 말하는 성어다. 믿을 수 없는 뜬소문을 가리킬 때 많이 쓴다. 길에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한다는 뜻의 道聽塗說(도청도설)과 마찬가지다. 흘러 다니는 소문을 전한다고 책임을 묻지는 않겠지만 남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해칠 목적으로 퍼뜨리는 流言蜚語(유언비어)는 다르다. 모욕이나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뜻으로 街說巷談(가설항담), 丘里之言(구리지언), 浮言浪說(부언낭설) 등이 있다.

이 성어는 後漢(후한) 초기 역사가 班固(반고)의 대작 ‘漢書(한서)’ 藝文志(예문지)에 小說(소설)을 설명하면서 등장한다. 소설가란 대개 稗官(패관)들에게서 나왔다면서 ‘거리나 골목에 떠도는 이야기를 길에서 듣고 길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지어낸 것(街談巷語 道聽塗說者之所造也/ 가담항어 도청도설자지소조야)’이라 했다. 패관은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모아 기록하는 일을 맡아 하던 임시 벼슬 이름이었다. 민간의 풍속과 정사를 살피기 위해 사실의 이야기를 수집했기에 상상이 가미된 오늘의 소설과는 다른 셈이다. 고려시대 중후기에 발달했던 稗官文學(패관문학)도 항간에서 수집한 이야기에서 약간의 창의와 윤색이 가미된 설화문학이었다.

비슷한 뜻을 가진 성어로 孔子(공자)와 荀子(순자)에게서 나온 것도 있다. 앞의 도청도설은 論語(논어)의 陽貨(양화)편에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 것은 덕을 버리는 것과 같다(道聽而塗說 德之棄也/ 도청이도설 덕지기야)’란 구절에서 비롯됐다. 순자는 勸學(권학)편에서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 입으로 나온다(小人之學也 入乎耳 出乎口/ 소인지학야 입호이 출호구)’면서 들은 것이나 배은 것을 깊이 새겨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겨를도 없이 남에게 전하는 것을 꼬집었다. 그래서 깊이가 없는 가르침을 口耳之學(구이지학)이라 했다.

자기 할 일도 바쁜 세상에서 그래도 떠도는 남의 이야기에는 모두 귀를 쫑긋한다. 그럴 듯하게 꾸민 소식도 많이 퍼진다. 가짜뉴스일수록 더욱 날개를 달고 전 세계를 돈다. 악의적인 것에 더 흥미를 느끼기에 당사자는 더 큰 피해를 본다. 이런 뉴스가 퍼지지 않도록 단속이 앞서야 하지만 각 개인이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균형감을 가져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취모멱자吹毛覓疵 - 털을 불어 허물을 찾다.

취모멱자吹毛覓疵 - 털을 불어 허물을 찾다.

취모멱자(吹毛覓疵) - 털을 불어 허물을 찾다.

불 취(口/4) 털 모(毛/0) 찾을 멱(見/4) 허물 자(疒/6)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의 말하기다. 남의 잘못을 드러내어 말하는 것은 속담대로 ‘식은 죽 먹기’다. 다른 사람의 허물은 일부러 들춰내지 않더라도 눈에 훤히 들어오는 법이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성경(마태복음 7장)에서 깨우쳐도 아랑곳없다.

심지어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불을 켜고 묻혀있는 흠을 찾기까지 한다. 이럴 때 머리카락을 불면서까지(吹毛) 숨어있는 흉터를 찾아낸다(覓疵)는 이 성어가 적격이다. 吹毛求疵(취모구자), 吹毛索疵(취모색자)로도 쓰고 洗垢求瘢(세구구반, 瘢은 흉터 반)도 같은 뜻이다. 覓(멱)은 서울 남산의 옛 이름 木覓山(목멱산)할 때도 사용되는 글자다.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 법치주의를 주창한 韓非(한비)와 후학들의 논저 ‘韓非子(한비자)’에 비유가 처음 나온다. 군주와 신하간의 안정적 관계를 순리에 의해 이끌어야 한다는 큰 원칙 大體(대체)편에 들어 있다. 부분을 요약해보자. 현명한 군주는 조그만 지식으로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으며 사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법술에 의해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상벌에 의해 시비를 분별해야 한다.

하늘의 이치에 역행하지 않고 사람의 본성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어진다. ‘터럭을 불면서 남의 작은 흠을 찾으려 하지 않으며, 때를 씻어 알기 힘든 상처를 찾지 않는다(不吹毛而求小疵 不洗垢而察難知/ 불취모이구소자 불세구이찰난지).’ 높은 자리에서 백성을 다스리려면 사소한 것까지 들춰내다간 신망을 잃게 되리라는 가르침이다.

고려 말의 문신이자 대학자 李穡(이색)의 시 구절에도 등장한다. 출세 늦음을 한탄하며 서로 다투어 남을 모함하는 세태를 꼬집는 부분에서다. ‘터럭 불어 흠을 찾아 서로 헐뜯기도 하는데, 몸을 숨겨 남 모략하니 더욱 가소로워라(吹毛求疵或相詬 匿影射人尤可嗤/ 취모구자혹상후 닉영사인우가치).’ 詬는 꾸짖을 후, 尤는 더욱 우, 嗤는 비웃을 치. ‘牧隱詩稿(목은시고)’에 실려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함포고복含哺鼓腹 - 잔뜩 먹고 배를 두드리다, 의식이 풍족한 태평세월

함포고복含哺鼓腹 - 잔뜩 먹고 배를 두드리다, 의식이 풍족한 태평세월

함포고복(含哺鼓腹) - 잔뜩 먹고 배를 두드리다, 의식이 풍족한 태평세월

머금을 함(口/4) 고함지를 포(口/5) 북 고(鼓/0) 배 복(肉/9)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이 없는 세월이 이어지면 太平烟月(태평연월)이다. 모두들 먹고 입고 자는데 부족함이 없어야 함이 첫째다. 이렇게 살도록 위정자들이 잘 이끌던 시절을 나타내는 성어는 많다. 평화스런 거리 康衢煙月(강구연월), 길에 떨어진 남의 물건을 줍지 않는 路不拾遺(노불습유), 밤에 집 문을 열어 놓는 夜不閉戶(야불폐호) 등이다. 이런 세월을 가져오게 한 말이 음식을 잔뜩 먹어(含哺) 배를 두드린다(鼓腹)는 이 성어다. 흔히 속어로 ‘등 따시고 배부른’ 사람들이 많아져 다른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따시고‘는 ’따습다’의 사투리지만 더 와 닿는다.

천하가 태평하여 늙은 농부가 땅을 두드리면서 노래했다는 擊壤歌(격양가)는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인 堯(요)를 기린 노래다. 격양은 옛날 중국에서 신짝같이 생긴 두 개의 나무 중 하나를 땅 위에 놓고 다른 나무토막을 던져 맞추던 놀이라는데 노래든 놀이든 시름을 잊고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한 임금을 찬양한 것은 마찬가지다. 중국 南宋(남송) 말에서 元(원)나라 초기에 활약한 한족 학자 曾先之(증선지)의 ‘十八史略(십팔사략)’에 내용이 실려 있다. 史記(사기), 漢書(한서)를 비롯한 중국의 정사 18사를 역사와 아울러 한문을 익히기 위하여 조선 초기부터 학동들에게 읽게 했던 책이다.

帝堯篇(제요편)의 부분을 보자. 요임금은 어질고 지혜로운데다 근검하여 백성들은 하늘같이 우러러보았다. 천하를 다스리기 시작한지 50년이 되는 해 요임금이 평복으로 갈아입고 거리로 나가 실제 천하가 태평스러운지 살펴보았다. 한 노인이 무언가를 잔뜩 먹고서 불룩해진 배를 두드리며 노래하고 있었다(有老人 含哺鼓腹 撃壌而歌/ 유노인 함포고복 격양이가). 이 노래가 격양가다. ‘해 뜨면 일하고 해지면 잠자네(日出而作 日入而息/ 일출이작 일입이식), 우물 파 물 마시고 밭 갈아 밥 해먹네(鑿井而飮 耕田而食/ 착정이음 경전이식), 여기에 임금의 힘이 무슨 필요 있으랴(帝力于我何有哉/ 제력우아하유재).’

먹고 입고 자는 생활의 기본이 해결되면 걱정이 없다. 이 기본을 해결하기 위해 위정자들은 애를 쓴다. 하지만 모두에게 골고루 의식이 주어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檀君(단군)이래 가장 잘 살게 됐다는 산업화 이후다. 문제는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다. 온갖 정책을 펼치며 빈곤층을 줄이려 하지만 뜻대로 안 되고 벌어지기만 한다. 잔뜩 먹어 배 터지고, 굶주려 배를 움켜쥐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 - 먼 곳의 물로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 없다.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 - 먼 곳의 물로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 없다.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 - 먼 곳의 물로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 없다.

멀 원(辶/10) 물 수(水/0) 아닐 불(一/3) 구원할 구(攵/7) 가까울 근(辶/4) 불 화(火/0)

‘네 자신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웃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셀 수 없이 많다.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는 속담은 ‘좋은 이웃은 멀리 있는 형제보다 낫다’는 영국 격언과 똑 같다. ‘세 잎 주고 집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는 속담은 중국 사서 南史(남사)에서 宋季雅(송계아)라는 사람이 이웃을 보고 시세보다 10배나 되는 집을 샀다는 ‘百萬買宅 千萬買隣(백만매택 천만매린)과 판박이다. 이렇게 좋은 말이 많이 내려와도 각박한 생활을 하는 도시에선 이웃의 얼굴도 모르고 지내는 사이가 흔하다.

먼 곳에 있는 물(遠水)로는 가까운 곳에서 난 불을 끌 수 없다(不救近火)는 이 성어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법치를 주장한 韓非(한비)의 역저 ‘韓非子(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자. 春秋時代(춘추시대) 魯(노)나라는 강국 齊(제)나라와 북쪽과 동쪽으로 국경을 접하고 남쪽으로는 越(월)나라의 위협을 받는 등 항상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穆公(목공)은 왕자들을 晉(진)과 楚(초)나라로 보내 구원을 청할 생각을 했다. 이를 보고 犁鉏(이서, 犁는 얼룩소 리, 鉏는 호미 서)라는 신하가 충고했다. ‘

불이 났는데 바닷물을 끌어다 끄고자 한다면 바닷물이 아무리 많아도 불길을 잡지 못합니다. 먼 곳의 물은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는 없는 법입니다(失火而取水於海 海水雖多 火必不滅矣 遠水不救近火也/ 실화이취수어해 해수수다 화필부멸의 원수불구근화야).’ 진나라와 초나라가 강하기는 해도 가깝게 있는 제나라의 침공을 받았을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앞선 역사나 민간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엮은 說林(설림) 상편에 실려 있다.

금언과 명구를 모아 놓은 한문 교과서 ‘明心寶鑑(명심보감)’에도 대구를 붙여 더욱 뜻을 명확히 한다. ‘먼 곳에 있는 물은 가까운 불을 끄지 못하고, 먼 곳에 있는 친척은 이웃만 못하다(遠水不救近火 遠親不如近隣/ 원수불구근화 원친불여근린).’ 省心篇(성심편)에 나온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향기처재배向其妻再拜 - 아내를 향해 두 번 절하다, 효성스런 처를 존경하다.

향기처재배向其妻再拜 - 아내를 향해 두 번 절하다, 효성스런 처를 존경하다.

향기처재배(向其妻再拜) - 아내를 향해 두 번 절하다, 효성스런 처를 존경하다.

향할 향(口/3) 그 기(八/6) 아내 처(女/5) 두 재(冂/4) 절 배(扌/5)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꼽는다면 부부다. 寸數(촌수)로 따지더라도 형제가 2촌이고 부자가 1촌이면 부부는 무촌인 것만 봐도 그렇다. 모든 가족관계가 부부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 朴仁老(박인로)의 시조에도 ‘부부 있은 후에 부자 형제 생겼으니/ 부부 곧 아니면 오륜이 갖을소냐’란 구절이 있다. 이처럼 소중한 부부가 서로 아껴주고 위해주면 琴瑟相樂(금슬상락)하여 百年偕樂(백년해락)이 가능해진다. ‘색시가 고우면 처갓집 외양간 말뚝에도 절한다’란 속담이 있다. 귀중한 아내가 잘해주기까지 하면 주위의 보잘 것 없는 것까지도 좋게 보인다는 말이다.

처가 외양간 말뚝이 아니라 아내를 향해(向其妻) 두 번 절했다(再拜)는 이야기가 있다. 얼마나 아내가 소중했으면 그랬을까. 조선 후기의 문신 蔡濟恭(채제공, 1720~1799) 선생의 문집 ‘樊巖集(번암집)’에 실린 효자 이야기에서 나왔다. 호가 번암인 채제공은 英祖(영조), 正祖(정조) 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낸 중신으로 思悼世子(사도세자)의 폐위를 말리고 신원에 힘썼으며 수원 華城(화성)을 담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권55의 傳(전)에 전하는 충의, 미담, 효행 등에서 ‘林孝子傳(임효자전)’의 내용을 보자.

임효자는 경상도 상주 사람이다.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지극한 효성으로 팔순이 넘은 노모를 섬겼다. 어느 날 그의 아내가 제사 때 쓰기 위해 기름을 짜 항아리에 담아 둔 것을 시어머니가 요강인 줄 잘못 알고 채소밭에 뿌리려 했다. 어린 손녀가 안 된다고 소리를 지르자 어머니가 얼른 입을 막고 노인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고 타일렀다. 그리고선 물과 섞어서 버려야 한다며 항아리를 받아 물을 섞어서 버렸는데 시어머니는 조금도 알지 못했다. 저녁 때 임효자가 돌아와 어린 딸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 ‘곧장 섬돌에 내려가서 그 처를 향해 두 번 절했다(孝子便下堦 向其妻再拜/ 효자편하계 향기처재배).’

임효자를 널리 알리기 위한 글에 더욱 효행이 빛나는 사람은 그의 부인이었다. 평소의 효행에 감화되어 그랬을 수도 있지만 어린 딸에게도 좋은 본보기를 보인 점에서 임효자에 못지않다. 솔선수범하는 가정교육의 중요성은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오늘날 가정에서 한두 명의 자녀를 키우면서 왕자나 공주처럼 떠받든다. 이렇게 자라서 자기밖에 모르게 되면 올바른 가정교육이라 할 수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도견와계陶犬瓦鷄 – 흙으로 구운 개와 기와로 만든 닭, 겉만 그럴듯하고 쓸모없는 사람

도견와계陶犬瓦鷄 – 흙으로 구운 개와 기와로 만든 닭, 겉만 그럴듯하고 쓸모없는 사람

도견와계(陶犬瓦鷄) – 흙으로 구운 개와 기와로 만든 닭, 겉만 그럴듯하고 쓸모없는 사람

질그릇 도(阝/8) 개 견(犬/0) 기와 와(瓦/0) 닭 계(鳥/10)

전통공예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는 도자공예는 점토를 사용하여 陶器(도기), 瓷器(자기), 질그릇 등을 만든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陶工(도공)들은 천변만화의 재주를 지닌 듯 작품을 빚어낸다. 도기를 만들거나 쇠를 주조하는 것이 陶冶(도야)인데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을 가리킨다. 이들이 개와 닭을 만든다면 어떨까. 아무리 신기를 지녔더라도 흙으로 구워 만든 개(陶犬)와 기와로 만든 닭(瓦鷄)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는 없다. 개가 낯선 도둑을 향해 짖거나 닭이 새벽을 깨우는 울음을 울리가 없다. 외모만 그럴듯하고 실속이 없어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성어는 중국 南北朝(남북조) 시대(420~589) 梁(양)나라의 蕭繹(소역)이 지은 ‘金樓子(금루자)’에 실려 널리 전해졌다. 남조의 제3왕조였던 양은 武帝(무제)가 502년 세운 나라였는데 소역은 그의 일곱째 아들 元帝(원제)다. 개국 초기는 내정의 정비에 힘써 제법 기강이 잡혔지만 얼마 못가 반란으로 어지러웠다.

소역은 국토 대부분이 西魏(서위)로 넘어가고 인구도 3만 명이 안 되는 소국에서 시부 읽기를 그치지 않다가 성이 함락되며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그의 문집에 실린 구절을 보자. ‘무릇 질그릇으로 구운 개는 밤에 집을 지키지 못하며, 기와로 구운 닭은 새벽을 알리는 구실을 하지 못한다(陶犬無守夜之警 瓦鷄無司晨之益/ 도견무수야지경 와계무사신지익).’ 개나 닭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실제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 전하여 겉과 속이 다르거나 쓸모없는 것의 비유가 되었다. 土牛木馬(토우목마)와 같고 羊頭狗肉(양두구육), 夏爐冬扇(하로동선) 등과 뜻이 통한다.

직접 관련은 없어도 도공을 빗댄 명구가 있다. ‘옹기장이 집에는 깨진 동이를 쓰고, 기술자는 허름한 초옥에 산다(陶者用缺盆 匠人處狹廬/ 도자용결분 장인처협려).’ 淮南子(회남자)에 나온다. 宋(송)나라 梅堯臣(매요신)의 시 陶者(도자)는 숙연하다. ‘문 앞의 흙을 다 구워 내었건만, 자기 집 지붕에는 기와 한 조각 없네(陶盡門前土 屋上無片瓦/ 도진문전토 옥상무편와). 열 손가락에 진흙 한 점 묻히지 않고도,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이 있건만(十指不霑泥 鱗鱗居大廈/ 십지부점니 인린거대하).’ 가진 자와 없는 자의 까마득한 간극을 꼬집었다.

말만 앞세우거나 겉만 번드르르하게 일을 벌이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훌륭한 겉모습에 반하여 맹탕인 속을 못 보게 되면 땅을 치며 후회한다. 의욕적으로 이것저것 손대기보다 하나하나 알차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각골난망刻骨難忘 - 남의 은혜가 뼈에 새길 만큼 커서 잊히지 않다.

각골난망刻骨難忘 - 남의 은혜가 뼈에 새길 만큼 커서 잊히지 않다.

각골난망(刻骨難忘) - 남의 은혜가 뼈에 새길 만큼 커서 잊히지 않다.

새길 각(刂/6) 뼈 골(骨/0) 어려울 난(隹/11) 잊을 망(心/3)

뼈에 새길(刻骨) 정도로 잊을 수 없다(難忘)는 말은 원한을 잊을 수 없다는 뜻도 되겠지만 은혜를 잊지 못한다고 강조할 때 더 많이 쓴다. 증오나 한을 잊지 못할 때는 骨髓(골수)에 사무치다, ‘뼛골에 사무치다’로 약간 달리 표현한다. 남에게 큰 은혜를 입고도 갚을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지 ‘머리 검은 짐승은 남의 공을 모른다’는 속담이 전한다. 또 ‘큰 은혜는 갚을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작은 원한은 반드시 갚으려 한다‘고 菜根譚(채근담)에도 타이른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고사를 인용하면서 곧잘 깨우치는 성어가 많다.

뼈에 새기면서까지 은혜를 잊지 못한다는 이 말이 가장 강조된 뜻이면서도 처음 유래된 곳은 명확하지 않으나 한국성어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에서 여러 문인의 문집이나 實錄(실록)에 등장하고, 흔히 사극에서 임금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며 신하들이 입에 달고 다닌 말이라 더욱 그렇다. 같은 뜻으로 중국에서는 刻骨銘心(각골명심)이나 鏤骨銘心(누골명심)이란 표현을 쓴다. 은혜를 갚는 고사와 함께 가장 잘 알려진 것이 結草報恩(결초보은)이고 꾀꼬리가 반지를 물어 은혜를 갚는다는 黃雀銜環(황작함환)이란 재미있는 성어도 있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의 장수 魏顆(위과, 顆는 낟알 과)가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秦(진)의 명장 杜回(두회)를 사로잡은 이면에는 풀을 묶어 쓰러지게 한 보은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과는 부친이 죽었을 때 유언을 무릅쓰고 젊은 새어머니를 개가시켜 새 삶을 살게 해준 덕으로 계모의 아버지가 두회를 초원에서 쓰러지게 했다는 것이다. 後漢(후한)의 楊震(양진), 楊秉(양병) 부자는 부정에 흔들리지 않는 四知三惑(사지삼혹)의 주인공이다. 이들이 청렴으로 길이 빛나는 것은 그의 선조 楊寶(양보)가 어릴 때 올빼미의 공격을 받은 꾀꼬리를 구해 치료한 뒤 날려 보낸 덕분이었다. 西王母(서왕모)가 보낸 반지를 선물 받고 후손은 삼공에 오르게 됐던 것이다.

이처럼 은혜를 베풀면 언젠가는 보답이 된다. 착한 일을 많이 행하면 경사가 따른다고 積善餘慶(적선여경)이란 말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구하면 앙분을 하고 짐승은 구하면 은혜를 한다’는 말이 더 와 닿는지 홀로 사는 가구가 많아지는 만큼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더 크게 증가한다고 한다. 동물을 사랑하더라도 주변의 더 어려운 이웃도 살피면 더욱 좋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