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9일 토요일

◇ ‘한국인’을 자랑스럽게 만든 사람들

◇ ‘한국인’을 자랑스럽게 만든 사람들

◇ ‘한국인’을 자랑스럽게 만든 사람들

2009년 10월 파리의 ‘뉘 블랑슈(nuit blanche)’ 축제일 밤을 잊을 수 없다. 시민들이 문화예술 공연을 보며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백야(白夜)의 제전인데, 그해 축제의 주인공은 삼성이었다.

삼성은 노트르담 성당 뒤편에서 삼성 LED 제품으로 꾸민 초대형 라이트 쇼를 마련해 감탄을 자아냈다.

파리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삼성이 나눠준 빨간색 하트 모양의 LED 배지를 가슴에 단 채 축제를 즐겼다. 당시 파리특파원이던 기자도 한국인인 것이 마냥 자랑스러웠던 밤이었다.

10여년 전 네덜란드 스히폴 공항 부근의 삼성전자 유럽물류센터에 가본 적이 있다. 끝이 안 보이는 물류 창고에 삼성 TV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안내인은 “1주일이면 다 팔려나간다”고 해서 기자를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이렇게 풀린 삼성 TV가 유로 디즈니랜드 호텔 객실이며 파리의 퐁피두 센터, 초호화 유람선 객실 등에 깔려 대한민국을 알리고 있다.

몇 년 전 외교부가 세계 17국 남녀 성인 6000명을 대상으로 ‘한국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를 물었다. 1위가 ‘테크놀로지’, 2위가 ‘삼성’이었다. 삼성 휴대폰과 가전제품이 테크놀로지 강국 이미지 구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세계 최빈국이 반세기 만에 기술 강국 이미지를 갖게 된 데는 삼성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이 애견 단체 회원들의 반대 시위로 무산될 뻔했다. 한국은 ‘개를 잡아먹는 야만국’이라는 것이다. 당시 한 신문은 노 대통령이 국빈 만찬에서 여왕 애견을 보고 군침을 흘리는 만평을 싣기도 했다. 삼성이 나섰다. 이건희 회장의 애견 활동을 소개하고, 영국 애견협회가 주관하는 세계 최고 명견 선발 대회 후원을 약속하며 반대 여론을 누그러트렸다. 삼성은 지금도 그 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외국인 21만명을 고용해 세계 74곳에서 연구센터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 브랜드 가치가 올라간 만큼 대한민국 브랜드도 올라갔다. 이제는 삼성만이 아니다. 현대기아자동차, SK, LG 등 많은 우리 기업들도 글로벌 일류 반열에 올라서고 있다.

세계 유명 백화점 구석에서 먼지에 쌓여 있던 우리 기업 제품들이 이제는 가장 좋은 자리에 있다.

익숙한 풍경이 됐다. 과거 한국 출신이라고 하면 모르는 외국인이 적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도 주눅이 들었다. 지금 젊은이들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한다. 천지개벽이다. 이 변화를 이끈 사람들 중에서도 빛나는 한 분이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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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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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의 ‘최대 업적’은 이건희 발탁

◇ 이병철의 ‘최대 업적’은 이건희 발탁

◇ 이병철의 ‘최대 업적’은 이건희 발탁

삼성그룹을 취재한 동료 기자가 ‘이건희 회장의 도쿄 까마귀’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이 회장이 도쿄를 방문했을 때 ‘도쿄 사는 까마귀가 모두 몇 마리인가’라고 느닷없이 질문해 수행 임원이 진땀을 흘렸다는 일화였다. ‘그것도 기사냐’는 비난도 있었고 ‘이 회장은 특이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 회장은 정말 ‘다른 사람’이었다.

지난 25일 타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출근하는 게 뉴스가 될 정도로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한 ‘은둔의 경영자’였다. 사물이든 현상이든 취미든 일단 관심 가지면 뿌리를 뽑을 정도로 파고들었다. 본인은 엄청나게 고민한 주제인데 어눌한 어조로 툭툭 질문하니 다른 사람 듣기엔 선문답 같았다. 금융 계열사 사장단을 모아 놓고 회사 매출을 챙기는 게 아니고 “신용카드업의 개념이 무엇이냐”고 묻는 식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이건희 회장을 ‘사상가(big thinker)’라고 표현했다.

삼성의 반도체 진출은 1983년 이병철 회장이 선언했지만, 씨앗은 한참 전인 1974년 30대 이건희 회장이 뿌렸다. 당시 사재를 털어 도산한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반도체에 대해 이 회장은 “양심 산업이자, 타이밍 사업”이라고 ‘업(業)의 개념’을 남다르게 정의했다. 박사부터 기능직까지 종업원 수천명이 300여 공정에서 단 한 번 실수 없이 합심해서 일해야 하는 ‘양심 산업’이고, 남보다 조기에 양산해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타이밍 사업’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 회장이 파악한 반도체 ‘업의 본질’이었다. 그래서 미국⋅일본 경쟁 기업들이 불황에 머뭇거릴 때 주저 없이 투자했다.

이 회장의 ‘뒷다리론’도 유명하다. “뛸 사람은 뛰어라. 말리지 않는다. 걷기 싫으면 놀아라. 안 내쫓는다. 그러나 남의 발목은 잡지 말고 가만있어라.” 세계 초일류를 꿈꾸고 일궜지만 그런 이건희 회장도 실패한 분야가 자동차 산업이다. 적자를 거듭하다 손을 떼야 했다. 당시엔 ‘문어발’ 경영이라 비난받았지만 만약 이 회장이 끝까지 자동차에 매진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일론 머스크와 경쟁하지 않았을까.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창업 1세대다. 이병철은 장남 상속의 관행을 깨고 막내아들 이건희를 후계자로 선택했다. 파격이었다. 이건희에게서 ‘무언가’를 보았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글로벌 초일류’라는 새 지평을 열었다. 이 역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다. 이건희를 선택한 것이야말로 이병철의 ‘최대 업적’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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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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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도원武陵桃源 - 무릉의 어부가 찾은 복사꽃 세계, 도연명이 그려낸 이상향

무릉도원武陵桃源 - 무릉의 어부가 찾은 복사꽃 세계, 도연명이 그려낸 이상향

무릉도원(武陵桃源) - 무릉의 어부가 찾은 복사꽃 세계, 도연명이 그려낸 이상향

호반 무(止/4) 언덕 릉(阝/8) 복숭아 도(木/6) 근원 원(氵/10)

아무런 걱정이 없고,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의 완전한 사회가 理想鄕(이상향)이다. 이런 세상은 예부터 많이 꿈꾸어왔고 나타내는 말도 많다. 토머스 모어(Sir Thomas More)가 그린 이 세상에 없는 곳이지만 가장 좋은 곳이란 뜻의 유토피아(Utopia)가 대표적이다.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이 창안한 샹그릴라(shangrila)는 히말라야 산록의 사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서 별세계로 대표적인 곳은 許筠(허균)의 洪吉童傳(홍길동전)에 나오는 栗島國(율도국)이다. 수평선 너머 바다 한 가운데 있는 신비의 섬나라로 嫡庶(적서)차별이나 탐관오리의 횡포가 없는 이상사회였다.

중국에서는 선인이 사는 항아리 속의 세계 壺中之天(호중지천)과, 인위적인 그 무엇도 있지 않은 곳이라는 뜻으로 莊子(장자)가 창안한 無何有之鄕(무하유지향)이 있지만 桃源境(도원경)이 아무래도 귀에 익다. 東晋(동진) 말기에서 宋(송)나라 초기의 시인으로 歸去來辭(귀거래사)로 유명한 陶淵明(도연명, 365~427)의 ‘桃花源記(도화원기)’에 나오는 이상사회다. 湖南(호남)의 武陵(무릉)이란 곳에서 사는 한 어부가 뱃길을 잃고 찾아간 곳이 복숭아꽃이 만발한 곳(桃源)이라 이렇게 불렸다.

어부가 배를 저어가다 길이 다하자 복사꽃이 핀 숲을 만났다. 숲을 걸어가니 산이 나왔고 그곳에는 한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작은 굴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갑자기 앞이 확 틔면서 밝아졌다. 토지는 평평하고 넓으며 집들이 잘 정돈되어 있고, ‘기름진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들이 있었다(有良田美池桑竹之屬/ 유량전미지상죽지속)’. 논밭에서 일하는 남녀의 옷차림은 밖의 세상과 같았고 ‘노인과 아이들도 모두 유쾌한 모습으로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黃髮垂髫 並怡然自樂/ 황발수초 병이연자악)’. 髫는 늘어뜨린머리 초, 머리를 땋은 아이를 가리킨다.

이런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이전에 난리를 피해와 살고 있었다. 어부는 여기에서 잘 대접 받고 살던 곳으로 가면서 도중에 표시를 해 두었으나 고을 태수와 함께 다시 찾았을 때는 어디에서도 모습이 없었다. 정치 사회의 암흑기에 그려본 이상사회를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는 없다. 인터넷 여론조작 혐의로 실체를 드러냈던 드루킹이 회원들을 모아 세우려 했다는 ‘두루미타운’도 황당한 이상사회를 꿈꾸던 것이 아니었을까.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종선여등 종악여붕從善如登 從惡如崩 – 선을 좇는 것은 어렵고 악을 따르는 것은 쉽다.

종선여등 종악여붕從善如登 從惡如崩 – 선을 좇는 것은 어렵고 악을 따르는 것은 쉽다.

종선여등 종악여붕(從善如登 從惡如崩) – 선을 좇는 것은 어렵고 악을 따르는 것은 쉽다.

좇을 종(彳/8) 착할 선(口/9) 같을 여(女/3) 오를 등(癶/7) 좇을 종(彳/8) 악할 악(心/8) 같을 여(女/3) 무너질 붕(山/8)

올바르고 착한 善(선)은 동서양 구별 없이 많이 기렸다. ‘악을 선으로 갚는 자는 항상 승리를 얻는다‘는 영국 격언이다. ’선인 악인을 막론하고 선을 베푸는 사람이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마호메트도 말했다. 우리 속담엔 ’마음을 잘 가지면 죽어도 옳은 귀신이 된다‘는 것이 있다. 선행을 많이 쌓은 집안은 그 자손들에게 필히 경사로운 일이 넘쳐난다는 積善之家 必有餘慶(적선지가 필유여경)의 좋은 말도 있다. 見善如不及(견선여불급)이라며 선한 것을 보고선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라고 孔子(공자)님도 가르쳤다.

이처럼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명언이 넘쳐나지만 실제로 행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선을 좇는 일(從善)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如登)는 말이 따른다. 대구로 악을 좇는 것(從惡)은 무너지는 것과 같다(如崩)고 이어진다. 옳은 길로 나아가 발전하기는 산을 오르는 것처럼 어렵지만, 나쁜 길로 나아가 타락하기는 눈사태가 무너지듯 순식간이라는 뜻이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8국의 역사를 모은 책 ‘國語(국어)’의 周語(주어)편에 나온다. 이 책은 左氏傳(좌씨전)을 쓰기 위해 左丘明(좌구명)이 편찬한 것이라 한다.

周(주)나라 敬王(경왕)은 아들 朝(조)의 반란으로 洛邑(낙읍)이 점령당하자 晉(진)나라의 도움으로 간신히 진압했다. 아들은 도주했지만 잔당이 남아있어 외곽 成周(성주)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경왕의 중신들은 그곳에 성을 쌓아 도읍을 정하기로 하고 먼저 萇弘(장홍, 萇은 나라이름 장)을 보내 진나라에 알렸다.

진나라는 도와줄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이곳에 와 있던 衛(위)나라의 대부 彪傒(표혜, 傒는 가둘 혜)가 이 소식을 듣고 반대했다. ‘속담에 말하기를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고, 나쁜 길을 따르는 것은 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諺曰 從善如登 從惡如崩/ 언왈 종선여등 종악여붕).’ 주나라는 혼군 幽王(유왕) 이래로 날로 쇠퇴하고 있어 도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악을 행하는 것이 쉽다고 했지만 당사자들은 악인 줄도 모르고 저지르거나 아니면 짐짓 악이 아닌 것처럼 포장한다. 그래서 세력을 쥔 자들은 나쁜 짓에 넌더리를 내다가도 쉽게 악을 재탕한다. 선을 좇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안다면 겉모습만 선인 것도 행하지 않을 텐데 악순환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언중유골言中有骨 - 말 속에 뼈가 있다, 드러나지 않는 속뜻이 있다.

언중유골言中有骨 - 말 속에 뼈가 있다, 드러나지 않는 속뜻이 있다.

언중유골(言中有骨) - 말 속에 뼈가 있다, 드러나지 않는 속뜻이 있다.

말씀 언(言/0) 가운데 중(丨/3) 있을 유(月/2) 뼈 골(骨/0)

말은 어렵다. 자기의 의사를 상대에 전달하는 수단이 여러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 될 수 있지만 남이 잘못 받아들이기라도 하면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이 나오는 입이 모든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라고 口禍之門(구화지문)이라 했다. 말조심을 하라는 대표성어로 잘 알려졌다. 항상 몸가짐을 바로 해서 다섯 왕조의 재상을 지낸 馮道(풍도)의 舌詩(설시)에서 유래했다. 우리의 속담은 혀를 대상으로 가르친다. ‘사람의 혀는 뼈가 없어도 사람의 뼈를 부순다’는 말랑한 혀에서 내뱉은 말이 다른 사람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말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으므로 항상 조심은 하되 직설적이 아니고 속에 담는 경우가 있다. ‘말 속(言中)에 뜻이 있고 뼈가 있다(有骨)‘고 겉에 드러나지 않는 숨은 뜻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속담을 한역한 것으로 보이지만, 번역서에 나타나지 않고 고전에서도 쓰임새가 적어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달걀에도 뼈가 있다는 鷄卵有骨(계란유골)은 비슷한 형식이라도 뜻은 다르다. 일이 안 풀리는 사람에게는 순조로운 일을 할 때에도 뜻밖의 장애가 생긴다는 黃喜(황희) 정승의 고사에서 왔다.

말 속에 뼈가 있어도 또 악의가 있어도 해칠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보다 심한 정도의 성어도 많다. 唐(당)나라 간신들의 행위에서 비롯됐다.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다가 돌아서서는 눈치 못 채게 공격하는 李林甫(이임보)의 口蜜腹劍(구밀복검)이다. 부드러운 솜 안에 날카로운 바늘을 감춘 綿裏藏針(면리장침)도 마찬가지다. 이보다 앞서 李義府(이의부)는 겉으로는 온화하게 웃으면서 태도가 겸손했지만 속으로는 해칠 칼을 숨기는 笑裏藏刀(소리장도)의 재주가 있었다.

속에 칼이 아니고 뼈가 있는 정도는 상대방의 허물이나 과실을 직접 지적하지 않고 에둘러 말하는 방식으로 바로 나타낼 때보다 효과가 크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측에서 불쾌하게 생각하면 역시 분란만 일어나니 잘 생각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주고받는 말싸움이 항상 이전투구인 것은 상대 당의 약점을 후벼 파서 속을 뒤집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막말이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의 역효과를 보면 알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유능제강柔能制剛 –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

유능제강柔能制剛 –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

유능제강(柔能制剛) –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

부드러울 유(木/5) 능할 능(肉/6) 절제할 제(刂/6) 굳셀 강(刂/8)

생명체가 세상에 태어나서는 똑 같을 수가 없다. 弱肉强食(약육강식)이라고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밥이다. 약자가 항상 당하기만 할까. 약한 자가 강한 자에 빌붙어 생명을 유지하거나, 약자끼리 연합하여 강자에 대항하는 수도 있다. 이런 인위적인 것을 제외하고도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결국은 강한 것을 이겨내고 살아남는다고 선인들은 가르친다. 어떤 일을 해결할 때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 이기는 듯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부드러움으로 감싸는 것보다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덕으로 감싸 안아 마음으로 복종하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기는 길임을 뜻한다.

굳센 것을 물리치는 것이 부드러운 것이라고 老子(노자)는 ‘道德經(도덕경)’ 곳곳에서 강조한다. 약간 변형시킨 노자에 앞서 이 성어가 그대로 나온 곳은 ‘六韜三略(육도삼략)’에서다. 周(주)나라 姜太公(강태공)의 저서라고 전하는 고대 병법서다. 감출 韜(도)는 화살을 넣는 주머니, 비결을 말한다고 한다. 부분을 보자. ‘군참에서 이르기를 부드러움은 강함을 제어하고, 약한 것은 능히 강함을 이긴다. 부드러움은 덕이고 굳셈은 적이다(軍讖曰 柔能制剛 弱能制强 柔者德也 剛者賊也/ 군참왈 유능제강 약능제강 유자덕야 강자적야).’ 군참은 전쟁의 승패를 예언적으로 서술한 병법서라고 알려져 있다.

도덕경 78장 任信章(임신장)에 잘 알려진 구절이 나온다. ‘이 세상에서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단단하고 강한 것을 치는 데는 물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 莫之能勝/ 천하막유약어수 이공견강자 막지능승).’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기는 이치를 세상사람 모두가 알지만 능히 행하는 이가 없다(弱之勝强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 약지승강 유지승강 천하막부지 막능행).’

노자가 스승에게서 부드러운 혀는 남아있고 단단한 치아는 빠진데서 가르침을 받는 齒亡舌存(치망설존)의 이야기는 劉向(유향)의 ‘說苑(설원)’에 실려 있다.

힘을 가졌을 때는 모든 일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난다. 그러나 그것이 자칫 오만함으로 비쳐 약자의 사정을 무시하는 것에서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힘은 오래 가지 않으니 부드러움으로 감싸 차근차근 일을 처리하는 것이 결국은 이기는 길이다. 노자의 말대로 세상 모든 사람이 알지만 당사자가 아는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거실 풍수인테리어 기법 ⑥

거실 바닥 인테리어는 가능하면 밝은 계통의 원목 마루로 깔고, 벽은 아이보리 색이나 흰색(밝은)으로 인테리어를 하는 것이 좋다.

거실 바닥 색이 지나치게 어두우면 기(氣)가 아래로 처져 가족 중에서, 우울하거나 무기력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어두운 색으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다면, 벽지를 파스텔 톤이나 초록색으로 인테리어를 하거나 바꿔 주면 기(氣)의 흐름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테이블은 나무(목재) 테이블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나무 테이블의 경우 나뭇결이 살아 있다면 천을 씌우지 말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운(運)을 높여준다.

차가운 유리나 대리석 테이블은 기(氣)를 반사시킨다. 즉, 유리나 대리석으로 된 거실 테이블은 차고 단단해서 기(氣)를 반사한다. 만약 유리 테이블로 사용해야 하는 경유라면 천을 덮어주는 것이 좋다. 특히, 대리석과 같은 석재 테이블은 젊은 사람에게는 가능한 피하는 것이 좋다.

♣ IFSA 국제풍수협회 선정 2018 대한민국 최고 풍수인테리어 전문가

문의 : 010-2432-5522, http://cafe.daum.net/kkb2005

연리지連理枝 -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 하나 된 나무, 화목한 부부나 남녀 사이

연리지連理枝 -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 하나 된 나무, 화목한 부부나 남녀 사이

연리지(連理枝) -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 하나 된 나무, 화목한 부부나 남녀 사이

이을 련(辶/7) 다스릴 리(玉/7) 가지 지(木/4)

두 나무가 뿌리는 각각이지만 가지가 서로 맞닿아 결이 통한 것이 連理枝(연리지)다. 이는 종종 볼 수 있다. 比翼鳥(비익조)라는 새는 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못하면 날지 못한다. 실제는 물론 없고 전설상의 새다. 이들 각각이 화목한 부부나 떨어지지 않는 남녀 사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합쳐서 比翼連理(비익연리)라고도 한다. 부부는 二身同體(이신동체)라고 한 말과 잘 들어맞는 말이기도 하다. 살다보면 싸우는 일이 있어도 ‘내외간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대로 지나고 나면 합쳐진다. 역시 화합을 말할 때 쓴다.

가지가 잇닿은 나무가 짙은 부부애를 비유하는 말이 되기 전에는 효성이 지극한 것을 가리켰다고 한다. 중국 後漢(후한)때 蔡邕(채옹, 132~192)이란 학자는 문장에 뛰어난 문인이기도 했다. 성품이 독실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병을 앓는 노모를 간병하기 위해 삼년 동안 옷 한 번 갈아입지 않을 정도였다. 모친이 돌아가시자 초막을 지어 온갖 예를 다했다. 그 후 채옹의 초막 앞에 ‘두 그루의 나무가 나서 점점 가지가 붙어 한 그루가 되었는데 원근의 사람들이 기이해하며(又木生連理 遠近奇之/ 우목생연리 원근기지)’ 효성이 낳은 기적이라 했다. 范曄(범엽)이 편찬한 ‘후한서(後漢書)’에 나온다.

부부간의 지극한 사랑을 뜻하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唐(당)나라의 대시인 白居易(백거이, 772~846)의 ‘長恨歌(장한가)’부터다. 이 시는 玄宗(현종)과 楊貴妃(양귀비)의 사랑을 읊은 120구의 장시다. 마지막 두 구절에 이 말이 나온다. ‘하늘에 있을 때는 나래 붙은 비익의 새가 되고, 땅에선 가지 붙은 연리나무 되자고 했네(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 재천원작비익조 재지원위연리지),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가 있겠으나, 이 슬픔만은 면면히 끊일 날 없으리라(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 천장지구유시진 차한면면무절기).’

남녀가 결혼하면 백년을 함께 늙으며 같이 죽는다고 百年偕老(백년해로)라 하며 모두 이상으로 여겼다. 너무 오래 같이 사는 것이 이젠 지겨운지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각자의 삶을 사는 卒婚(졸혼)도 서슴지 않고, 가장 소중한 것이 자기 자신이란 조사가 있었다. 그래도 나이 들수록 더 소중히 여겨진다는 부부인데, 참고 사는 것만이 미덕이란 것은 옛말이 되어 가는 것인지 씁쓸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조삼모사朝三暮四 -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잔꾀로 남을 속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 -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잔꾀로 남을 속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 -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잔꾀로 남을 속이다.

아침 조(月/8) 석 삼(一/2) 저물 모(日/11) 넉 사(囗/2)

조삼모사하다고 하면 아주 간교한 사람을 멀리하며 많이 쓰는 말이다.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朝三), 저녁에 네 개(暮四)를 주거나 반대로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줄 테니 어느 쪽을 택하겠는지 묻는다. 어떻게 하든 합은 일곱 개로 같다. 이 당연한 것에서 이랬다저랬다 하며 변덕을 부리거나 교묘한 수단으로 남을 속이는 것을 말하는 성어가 됐다. 거기에 더하여 결과는 똑 같은데 ‘우선 먹기는 곶감’이라며 먼저 차지하려는 욕심을 경계하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道家(도가)의 사상서 ‘列子(열자)’에 전하는 이야기다. 宋(송) 나라에 원숭이를 많이 기르는 狙公(저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狙는 바로 원숭이다. 이름이 말해주듯 집안의 양식까지 퍼다 줄 정도로 저공은 원숭이를 애지중지했는데 그만큼 습성도 잘 알았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하여 도토리의 수량을 줄이기로 하고 꾀를 생각해냈다.

어느 날 원숭이들을 모아 놓고 “이제부터는 아침에 도토리를 세 개씩 주고 저녁에 네 개(朝三暮四)를 주려고 하는데 어떤가?” 하고 물었더니 모두들 마구 떠들며 화를 벌컥 냈다. “그러면 아침에 네 개씩 주고 저녁에 세 개(朝四暮三)를 주마.” 이렇게 말하자 원숭이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모두 저공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

莊子(장자)도 齊物論(제물론)에서 南郭子綦(남곽자기, 綦는 쑥빛비단 기)의 입을 빌어 비슷한 얘기를 전한다. 그는 이름도 알맹이도 달라지는 바가 없는데 화를 내고 기뻐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정의 차이일 뿐이며 자신의 관점에서 옳다는 편견을 갖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조삼모사하다고 욕하지만 말고 꼭 지금 당장 좀 손해를 보더라도 멀리 내다보면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교훈도 준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왕상지효王祥之孝 - 왕상의 효도,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봉양하다.

왕상지효王祥之孝 - 왕상의 효도,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봉양하다.

왕상지효(王祥之孝) - 왕상의 효도,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봉양하다.

임금 왕(玉/0) 상서 상(示/6) 갈 지(丿/3) 효도 효(子/4)

아버지와 아들간의 관계는 끊을 수 없는 천륜이라 부모를 정성껏 잘 섬기는 효도는 사람이 지켜야 할 첫 번째 도리였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중국인들이 東方禮儀之國(동방예의지국)이라 부를 정도로 효를 우선시했다. 집집마다 아동들에게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셨다(父生我身 母鞠我身/ 부생아신 모국아신)’란 四字小學(사자소학) 구절을 먼저 공부시켰고, ‘자식이 효도하면 어버이가 즐겁고, 집안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子孝雙親樂 家和萬事成/ 자효쌍친락 가화만사성)’란 가훈을 써 붙였다. 말뿐만 아니고 병든 부모에 허벅지 살이나 손가락의 피를 바쳤다는 割股療親(할고료친), 斷指注血(단지주혈)의 효자 이야기는 각지에서 내려온다.

중국에는 二十四孝(이십사효)라 하여 이전부터 24명의 효자를 기렸다. 종류가 많지만 옛 사서에서 발췌해 元(원)나라 때 郭居敬(곽거경)이란 사람이 편찬한 책이 가장 유명하다. 오늘날 보면 이들의 효행이 단순하고 오히려 부모께 걱정을 끼칠 정도의 황당한 내용도 많으나 여러 가지로 변형되어 교육하고, 지역의 고택마다 이들을 그린 그림까지 다양하게 전한다고 한다. 고사성어로 되어 유명한 老萊斑衣(노래반의), 孟宗泣竹(맹종읍죽), 子路負米(자로부미), 陸績懷橘(육적회귤) 등은 모두 24효에 들어가는 효자 이야기에서 나왔다.

여기에 한 사람 더 王祥(왕상)의 효도 이야기를 덧붙여보자. 왕상은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를 이은 西晉(서진) 때의 사람으로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계모 朱氏(주씨)밑에서 자랐다. 계모는 걸핏하면 왕상을 헐뜯어 아버지의 사랑조차 잃었다. 어느 얼어붙은 추운 겨울, 계모는 신선한 물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다.

‘왕상은 옷을 벗고 얼음 위에 누워 물고기를 구했는데, 홀연 얼음이 깨지더니 잉어가 두 마리 튀어 올랐다(祥解衣 臥冰求之 冰忽自解 雙鯉躍出/ 상해의 와빙구지 빙홀자해 쌍리약출).’ 괴롭힌 계모에게 잉어를 가져가 잘 봉양했다. 왕상의 효는 얼음을 깨뜨려 잉어를 잡았다고 叩氷(고빙), 剖氷得鯉(부빙득리), 王祥得鯉(왕상득리), 臥氷求鯉(와빙구리)라고도 한다.

효도가 백행의 근본이라며 중시했던 우리나라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많이 퇴색했다. 부모와 떨어져 핵가족이 된 오늘날 수시로 자식에 의한 폭력. 폭언, 유기, 방치, 무관심 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소수이지만 자식들만 식구로 여기는 이런 사람들도 얼마 안 있어 같은 처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살아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부모님을 챙겨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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